포도나무/포도나무

[스크랩] 2014년3월5일수요저녁 로마서13장11-14 그리스도로 옷입고

그리운시냇가 2014. 3. 6. 00:25

 

저의 처 할머니께서 올해 106세 이십니다. 제 집사람이 미국에서 돌아온 직후에 10년전에 처 외삼촌댁에 계신 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갔었는데 그때에는 처 외삼촌께서 할 이야기가 많으셔서 그랬는지 이야기를 듣느라 할머니나 처 외삼촌에게 복음을 한마디도 못 전하고 돌아 왔습니다.

그후에 처 외할머님은 건강이 나빠져서 6년전에 분당 근교에 있는 성남시의 자광원이라는 노인 요양원으로 옮겨져서 거기서 요양을 해 오셨습니다. 그후로 제 집사람이 할머니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다가 할머니를 뵈러 가자고 해서 작년 7월2일날 성남의 자광원이라는 노인요양원에 계신 김달단할머니를 찾아가서 만났습니다.

그 당시에 분당에 사시는 처 외숙모님댁에 들러서 외숙모님을 모시고 할머니를 찾아 뵈러 갔습니다. 요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외숙모님이 하시는 말씀이 “이젠 할머니가 아무도 못 알아보세요! 내가 가도 못 알아보고, 아들이 가도 못 알아보고 마치 식물인간처럼 누워 계세요!”하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벌어 졌습니다. 제 집사람이 할머니의 귀에대고 “할머니 저 영순이예요! 왕지의 영순이예요! 미국에서 온 손녀딸이예요!”하면서 소리를 질렀더니 할머니께서 “네가 영순이가? 네가 영순이가?”하면서 너무나 반가와서 손을 붙잡고 “영순아 네가 왔나? 네가 영순이가?” 하면서 제 집사람을 부르셨습니다.

제 집사람이 할머니를 붙잡고 울면서 한시간동안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때 제 집사람이 외할머니를 만나서 눈물 콧물 흘리면서 복음을 전하는 모습과 더불어, 할머니가 손녀딸의 손을 붙들고 기뻐서 감격해 하던 아름다운 상봉 장면을 제가 사진으로 찍어서 작년 7월7일자 우리교회 사진 앨범란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렇게 작년에 105세가 되신 할머니를 만나 뵙고 돌아 왔는데, 할머니를 만나고 온 이야기를 들은 미국에 있는 처제가 그 소식을 듣고서 “언니! 형부가 할머니에게 세례를 주고 왔어?”하고 언니에게 물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저희는 아차 싶어서 “그때 간 길에 세례를 집례하고 올 걸 잘못 했구나!”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사시다가 귀국하신 장모님이신, 정설매집사님도 미국에서 돌아오신후에 어머니를 뵈온지가 10년이 넘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가 돌아 가시기 전에 한번은 모시고 가서 뵙는게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다시 할머니를 찾아가서 뵈옵게 되면 세례식도 집례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달 전에 처 이모님이 돌아 가셨습니다. 저는 그때 다시 김달단할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보다 자식들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데 금번에 신년 축복 대 심방이 끝나고 나면 처 외할머니를 찾아 뵈어야 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성경 디모데전서 5장 8절에도 보면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라고 말씀 합니다. 이 말씀은 가족을 구원하고 가족을 돌아보는 일에도 소홀히 하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그런데 심방이 거의 끝난후에 지난 주일날 부산에 사는 처제가 왔습니다. 처제가 오더니 분당에 계신 삼촌도 보고싶고 할머니도 돌아 가시기 전에 한번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어머니가 보고싶은 사람은 할머니의 딸이신, 저의 장모님, 정설매 집사님 이었을 것입니다. 정설매집사님도 이제는 나이가 82세라서 어머니가 보고 싶어도 버스를 타고 찾아 갈수도 없는 처지입니다.

게다가 정설매집사님이 미국 영주권자 이신데 이제는 한국에서 정착하고 사시게 되었기에 미국 대사관에 가서 영주권도 반납하고 주민등록도 새로 만들어야 하겠기에 겸사 겸사해서 미국 대사관도 들러서 일을 보고, 그리고 처 외할머니도 뵙고, 그리고 세례식도 베풀고 와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난 월요일날 아침 아홉시에 출발해서 서울의 미국 대사관을 들른후에 잠시 저의 어머니 강봉선권사님을 만나서 식사를 함께 하고, 그리고 성남의 자광 요양원에 계신 김달단할머니를 방문 했습니다.

10년만에 어머니를 만난 정설매집사님은 “엄마! 엄마!” 하고 부르면서 김달단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우셨습니다. 그러나 김달단할머니는 정설매집사님의 팔만 붙잡고 아무 말씀도 하지 못하셨습니다. 간호사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며칠전에 감기가 걸리셔서 식사도 못하시고 영양제 주사만 맞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할머니의 귀에 대고 “할머니!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꼭 붙잡고 구원 받고 천국에 가셔야합니다!”하면서 복음을 전한후에 세례식을 거행 했습니다.

김달단할머니에게 세례식을 거행한 후에 우리는 분당에 있는 정설매집사님의 남동생, 제 집사람의 외삼촌이신 정기륭 성도님댁에가서 대화를 나누고 저녁 9시에 출발해서 남해로 돌아 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운전을 하면서 저는 가만히 인생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래 사는 것도 좋지만 그러나 침대에 누워서 오래 사는것은 별 의미가 없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요양원에 입소하면 입원비가 한달에 7-80만원씩 들어 가는데 6년이 넘도록 요양원의 침대에 누워서 의미없는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이 안타깝게 여겨 졌습니다. 저

는 그동안 심방을 할 때 마다 저희 성도님들이 100살이 넘게 살게 해 달라고 늘 기도를 해 왔습니다. 그런데 금번에 할머니를 방문하면서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로 오래 사는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래 사는것이 복이지만 그러나 오래 살아도 건강하게 오래살고 자식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고 오래 사는것이 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사람의 수명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인간의 수명 만큼은 인간이 좌지 우지 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금번에 처 외할머니를 심방하면서, 우리가 죽음의 문제를 위해서도, 잘 죽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번에 할머니를 방문 했을때는 할머니가 얼마나 큰소리로 “영순아 네가 영순이냐?” 하시면서 소리를 지르시는지 “할머니께서 아직은 좀더 사시겠구나”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금번에는 세례식을 집례 하는데 제 마음에 “할머니가 오래 사시지는 않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 집사람도 똑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금번에 할머니를 뵈오니까 할머니가 오래 사시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런데 남해로 돌아온지 하루만에 처 숙모님께서 할머니가 돌아 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 소식을 듣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실수가 없으시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금번에 할머니를 찾아 뵙지 못했다면 아마도 장모님은 “한국에 돌아와서 10년동안 한번도 어머니를 뵙지 못하고 어머니를 천국으로 떠나 보낸일이 두고 두고 마음에 아쉬운일이 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장모님과 제 집사람 그리고 처제까지 찾아가서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할머니를 뵈옵고 그리고 세례까지 베푼후에 돌아 가셨으니 이 모든일이 하나님의 은혜요 성령께서 감동하신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할머니가 돌아 가시자 마자 처 외숙모님이 제 집사람에게 전화를 해서 “그래도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 엄마가 다녀 가셔서 정말 다행이야!”라고 하시면서 그 먼길을 왔다 갔으니 장례식장에는 오지 말라고 당부를 하셨습니다.

제 집사람도 할머니가 돌아 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저에게 “할머니가 세례를 받고 돌아 가시려고 지금까지 안돌아 가셨나봐요!” 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제가 어제 밤새도록 차를몰고 남해로 돌아와서 새벽예배시간에 처 외할머니를 방문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제부터는 기도제목을 바꾸겠습니다!” 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저 무조건 오래 살게 해달라고 기도할게 아니라 건강하게 오래 사시다가, 돌아 가실때는 고통없이 평안하게 천국에 가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해야 겠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운전을 하면서 남해로 오고 있는데 김부송권사님께서 제 집사람에게 동영상을 하나 보내 주셨습니다. 북한의 어린이가
“내가 좋아 뽀뽀

 우리 아빠 뽀뽀

 우리 아빠 뽀뽀가 제일 좋아”

하면서 부르는 노래인데 얼마나 앙증맞고 귀엽게 노래를 부르는지 그 노래를 들으니까 운전을 하다가 잠이 확 깨었습니다.

10시 반경에 금산 휴게소에서 라면을 하나 먹고 다시 출발을 했는데 밤 12시쯤 되니까 또 피곤이 몰려 오는데 늦은 시간에는 카톡을 안보내던 친구 목사님들이 그날따라 밤 늦은 시간에 카톡을 보내 주는 바람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무사히 돌아 왔습니다.

금번 여행을 통해서 저는 성령께서 인도 하시는 일에는 아름다운 열매가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마음을 맡기고 주시는 감동대로 준행 했더니 이렇게 좋은 마무리를 짓게 되었다는 생각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오늘은 “그리스도를 옷입고”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요즘 세상 소식을 들어보면 기상의 변화가 심상치 않습니다. 엄청난 폭설이 내리는가 하면 비가 안오는 곳은 몇 년씩 비가 안와서 기근이 극심합니다. 이전에 없었던 전무 후무한 쓰나미가 여러 나라에 밀어 닥치는가 하면 지진 때문에 상상을 초월하는 재난이 불어 닥치기도 합니다.

전 세계 각처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고있는 기상 이변과 자연 재해로 인해서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한번 쓰나미가 오거나 지진이 나면 수십만명이 하루 아침에 생을 마감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지진에 관한 한 안전지대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나라도 지진의 위험성이 고조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반도에서 작년 한 해 동안 총 60여건의 지진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느낄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앞으로 규모 6 이상의 대형 지진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전문가의 분석도 있었습니다.

이런 모든 현상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것 처럼 종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모든 현상들이 점점더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종말에 있을 심판에 대해서 그날을 대비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세상 사람들은 종말이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날에 있을 심판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습니다.

적어도 세계 처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상이변이 종말의 신호탄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상 이변에 대처할 수 있는 안전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나 건축을 할 때 내진 설계를 통해서 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는 “지구의 종말이 임한다는 사실을 알고 종말을 대비하는 신앙으로” 무장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종말론적 신앙을 가지면 건강한 긴장감을 가질 수 있고, 죄를 멀리하고 경건한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종말에 가져야할 신앙인의 자세를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로마서의 후반부인 12장부터 마지막 16장까지는 이른바 실천편에 해당합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세지말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셨는데도 사람들을 귀를 막고 들을 생각을 안합니다. 온갖 세상 즐거움과 건강강좌와 드라마는 열심히 보면서도 정작 인간의 근본과 종말에 대한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종말”이라는 말과 더불어 “말세”라는 말이 나옵니다. 비슷한 말 같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종말은 지구의 마지막 시점(point of time, 신학에서는 ω point라 부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말세는 마지막 기간(period)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말세는 예수님의 초림(성탄)부터 재림(종말)까지의 기간을 가리킵니다. 이 기간은 예수님의 재림이 임하면 언제든지 마감될 수 있습니다. 그 마감이 바로 종말입니다.

그런데 말세의 기간 중에서도 종말이 아주 가까워진 시기를 가리켜 “말세지말”(末世之末) 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말세지말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잘 가르쳐줍니다.

11절에 보면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라고 증거 합니다. “이 시기”가 바로 종말이 가까운 말세지말을 가리킵니다.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때보다 가까웠다는 말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웠다는 말입니다.

구원에는 세 가지의 시제가 있습니다. 과거의 구원, 현재의 구원, 그리고 미래의 구원입니다. 과거의 구원은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를 말하는데 예수님을 믿고 의롭다 하심을 얻은 칭의(稱義)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됩니다.

현재의 구원은 예수님을 믿고 천국백성이 된 후에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성화(聖化) 과정을 현재의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미래의 구원은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말하고 종국에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종말의 날에 썩어진 육체까지 부활해서 완전한 영광을 이루는 영화(榮化)를 가리킵니다. 

다시 정리해서 말씀드리면, 칭의는 이미 이루어진 구원이요, 현재의 구원은 우리가 날마다 이루어가고 있는 구원이요, 미래의 구원인 영화는 예수님의 재림때 우리가 얻을 구원을 말합니다.

그래서 11절에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워졌다는 말은 이미 예수믿고 구원받은 우리에게 종말이 다가오고 있으며 그 종말에 우리가 누리게될 영화의 순간도 다가오고 있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말세에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설명합니다. 그런 징조들을 말세의 징조(Sign)라고 말을 합니다. 말세의 징조는 요한계시록과 더불어 특히 마태복음 24장에 아주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4장에서 말세의 징조를 말씀 하셨는데 그래서 24장은 “소 계시록”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말세에 나타날 징조는 난리, 전쟁, 지진, 천재지변, 기근, 인간성의 타락, 세계 선교, 등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들은 예수님의 부활승천 이후에 지금까지 계속해서 점점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종말에 있을 현상들이 더욱 빈번하게 그리고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두주동안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종말에는 두가지 종말이 있습니다. 우주적(역사적) 종말과 개인적 종말입니다. 역사적 종말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세상이 불타서 없어지고 새하늘과 새땅이 임하는 것을 말합니다. 개인적인 종말은 한사람 한사람의 죽음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이 두가지 종말을 준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를 해야 합니까? 그것은 영적 각성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 합니다. 원수 마귀는 성도들이 깨어서 기도하고 종말을 준비하면서 사는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종말은 비유컨대 마귀의 제삿날입니다. 이미 십자가에서 패배한 마귀가 예수님 께서 재림하시는 종말의 날에는 마귀가 최종 심판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종말의 날이 가까워질수록 마귀는 발악을 합니다. 마귀는 인간을 멸망시키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은 영적으로 더욱 깨어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사도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8)라고 증거 했습니다. 마귀의 역사가 얼마나 강성하면 우는 사자로 비유했겠습니까?

군대에서 전방 GOP 부대(휴전선 지키는 부대)에 근무하는 병사들이 보초를 설 때 항상 숙지해야 되는 수칙이 있습니다. “졸면 죽는다!” 보초 서다 졸거나 자면 간첩에 넘어와도 속수무책입니다. 철조망이 뚫리고 큰일 나게 됩니다. 영적인 각성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면서 깨어 있어야 항상 승리하는 삶을 살수가 있습니다.

고대의 성자 어거스틴은(Aurelius Augustinus 354~430) 기독교 2천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학자 중 한사람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방탕한 사람이었지만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어린 기도로 인하여 그에게 변화가 찾아 옵니다. 그가 결정적으로 변화된 회심의 간증은 유명합니다.

오늘 본문은 성 어거스틴을 회심으로 이끈 구원의 말씀입니다. 본래 그는 북 아프리카에서 수사학 교수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그는 큰 꿈을 품고 로마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는 가르치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는 몇몇 학생을 집으로 모아서 수사학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로마의 학생들은 아주 약아빠졌습니다. 월사금을 안 주려고 두세달쯤 배운후에 다른 선생을 찾아간다면서 신의를 배신했습니다. 학생들은 신의보다는 돈과 향락에 더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어거스틴은 그런 학생들 때문에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상처를 달래려고 술을 마셨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타락한 생활에 젖어들었습니다.

어느날 그는 밀라노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평생의 스승인 암브로시우스를 만납니다. 그때 그는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이었습니다. 암브로시우스는 철없는 천재 어거스틴을 자비와 사랑으로 가르쳤고 어거스틴은 그에게서 진리를 배웠습니다. 그렇게 서서이 준비가 되어가던 어느날 어거스틴에게 놀라운 일이 벌어 집니다.

그가 AD 386년 밀라노의 정원 벤치에 친구 알리피우스(Alypius)와 함께 앉아 있다가 친구는 가고 혼자 있었는데, 밖에서 어린아이들이 떠들면서 노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있던 어거스틴은 갑자기 자기에게 들려오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책을 펴서 읽어라! 책을 펴서 읽어라!” 주위에 아무도 없는데 하늘에서 그런 음성이 들려온 것입니다.

어거스틴이 그가 앉아있던 정원의 테이블에는 친구가 읽던 성경책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어거스틴은 펼쳐진 성경책을 드려다 보았는데, 그의 눈에 로마서 13장 11절로 14절 말씀이 들어 왔습니다.

“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어거스틴이 그 말씀을 읽었을때 가슴에 불이 임했습니다. 어거스틴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평생에 처음으로 성경을 읽다가 성령의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가 32세였습니다. 그때부터 그 말씀이 그를 변화시켰습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령하신 말씀처럼 마음속에 아로새겨 졌습니다.

그 후 그는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기독교 2000년 역사에 신학적으로 기독교의 기초를 닦고 교리를 정립하고 온갖 이단으로부터 기독교를 변증하고 보호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공로를 이룬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또한 우리들에게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1절에 보면,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라고증거 합니다. 종말이 코앞에 닥쳐 왔음을 알고 정신을 차리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종말에 우리가 개인적으로 가져야할 믿음은 성숙함입니다. 디모데전서 4장15절에도 보면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라고 증거 합니다. “너는 지금, 스스로, 믿음의 성숙함을 위하여 힘써야 한다”라는 뜻입니다. 성숙함을 개역성경은 “진보”라고 번역했습니다. 표준 새번역은 “그대가 발전하는 모습을 모든 사람에게 드러나게 하라”라고 번역했고 공동번역은 “그대가 발전하고 있음을 모든 사람이 보고 알 수 있게 하시오”라고 번역했습니다.

신앙에는 진보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 다닌 지 오래 되었는데도 전도한번 안한다면 죽은 신앙입니다. 신앙이 살아 있다면 반드시 영혼구원에 관심과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믿음도 성숙해지고 하나님의 지상명령을 가슴에 품고 열심히 전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호주 시드니의 조지가 길거리에서 오가는 행인들에게 40년간 전도를 한 “프랭크 아서 제너”(Frank Arthur Jenner)는 젊은 시절을 방탕하게 보냈습니다. 그가 한 목사님의 전도를 받고 주님을 영접한 후에 결심하고 40년간 매일 길거리에 나가서 전도를 했습니다.

그는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항상 두 마디의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은 구원 받았습니까(Are you saved)?” “만일 당신이 오늘밤 죽는다면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If you died tonight, Are you going to heaven)?”

그러나 그가 40년동안 열심히 전도를 했지만 자기가 교회로 데리고 간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오직 두가지를 물으면서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 받는다는 말만 했습니다.

그가 나이가 들어서 70이 넘은 노인이 되었습니다. 늙고 쇠약해진 그가 더 이상 거리 전도를 계속할 수 없게 되자 “이제는 길거리 전도를 그만 두어야 겠구나!”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한 목사님이 그를 찾아와서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 주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호주에서 아주 명한 목사님이요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부흥집회를 인도하는 유명한 부흥강사 목사님 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찾아와서 하는 말이

"내가 당신의 전도에 마음을 돌이키고 다시 교회로 돌아가서 목사가 되었고 세계를 다니는 부흥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세계 여러곳을 다니면서 부흥집회를 할때마다 비행기에서 또는 교회에서 집회장소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를 하다보면 “나는 시드니 조지가에서 전도하던 한 길거리 전도자의 질문을 받고 하나님께로 돌아 왔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수도없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당신을 만나러 온 것입니다 내가 면밀하게 조사를 해 보니까 당신의 길
거리 전도자를 통해서 구원받은 사람이, 파악된 숫자만 14만명이 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제너는 자기가 40년간 길거리에서 전도한 자기의 전도가 헛되지 않고 풍성한 열매를 거두었다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전도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라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멸망으로 치닫는 세상 모든 사람들중에 한사람도 멸망치 않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그 다음 일은 성령께서 책임지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도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합니다. 포기하지 말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작정된 사람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지 하나님께 돌아옵니다.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고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전도 대상자에게 복음을 받아드릴 기회를 주십니다.

알콜 중독자와 결혼한 한 아내가 남편의 구원을 위해서 무진 애를 썼지만 남편이 돌아오질 않았습니다. 10년동안 기도하던 아내는 결국 지쳐서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어느날 그녀가 목욕탕 속에서 울면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남편은 돌아올 생각을 안합니다 이제 저는 남편을 포기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남편의 한 친구가 그를 금주단체로 데리고 가더니 교육을 받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남편이 술을 끊더니 아내를 따라서 교회에 나오기 시작 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내가 10년동안 남편을 위해서 기도한것이 결코 허사가 아니었구나” 라는 깨닳음을 얻고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저도 오래전에 형님의 소개로 뜨레스 띠아스에 참석을 했는데 그때 같이 동행한 한 남자가 아내의 강권에 못이겨 무슨 사업 설명회를 하니까 가보라고 등떠밀려서 들어 왔는데 거기서 예수님을 만나서 회심하는 역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교회의 목적은 빛의 사명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낙심한 자에게 위로를 주는 것입니다. 1862년 2월달에 링컨대통령의 큰아들 윌리가 죽은 지 얼마 못되어서 작은아들 데드도 심각한 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병원을 찾은 링컨은 아이가 진찰을 받는 동안에 혼자서 고백을 했습니다. “내 생애에 가장 큰 어려움이 닥쳤어!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런 어려움이 오는거지?” 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옆에서 그 말을 들은 간호사가 “저도 얼마전에 남편과 두 아들을 잃었어요! 그러나 그런 시련후에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더욱 알게 되었죠!”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링컨은 “어떻게 그런일을 당하고도 그런 마음을 가질수가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모든 것을 이미 알고 계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함으로 마음을 잡을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도 독생자 아들을 내어 주셨쟎아요” 그러자 링컨은 그 말을 듣고서 아이를 데리고 돌아 갔는데 얼마후에 아들아이가 죽고 말았습니다.

아이의 장례를 치른 링컨이 며칠 후에 그녀를 찾아와서 고백을 했습니다. “그때 참 고마웠습니다. 비록 두 아이는 세상을 떠났지만 이제는 모든 아픔을 이길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간호사님의 조언이 제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후로 링컨은 더욱 강한 믿음으로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죽음과, 누군가의 아픔이 또 다른 사람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줌으로서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내는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멜린데일의 아버지로 불리는 ”로이 린드“(Roy Lind) 박사의 이야기도 감동이 됩니다. 그는 미국의 멜린데일이라는 가난한 농촌에서 일하는 믿음좋은 의사입니다. 마을의 젊은이와 아이들 대부분이 린드 박사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왔을 정도로 린드 박사는 오랫동안 마을 사람의 건강을 돌보아 왔습니다.

그의 허름한 진료소는 늘 새벽까지 불이 밝혀져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병원의 불이 켜져 있어야 사람들이 찾아와서 도움을 청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늘 불을 켜놓고 잠을 잤습니다. 린드 박사는 쉬는 날이 없었습니다. 한 겨울 눈사태 속에서도 환자를 진찰하러 나갔습니다. 아무리 멀고 험한 곳이라도 환자가 있으면 즉시 달려갔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린드 박사를 보는 것 만으로도 벌써 병의 절반은 나은 것 같다고 이구동성으로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는 가족이 없었습니다. 아내마저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홀로 수십년을 살아 왔습니다.

남을 위해 헌신하면서 일생을 살아온 린드 박사가 일흔 번째 생일을 맞았을 때 마을 사람들은 평소의 고마움을 보답하기 위해서 박사 몰래 마을 회관에 생일상을 마련했습니다. 사람들이 오라해서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강당에 들른 린드 박사는 깜짝 놀랐습니다. 박사가 들어오자 모든 마을 사람들이 떠나갈 듯이 큰소리로 생일 축가를 불러주었기 때문입니다.

박사가 뜻하지 않은 생일 파티에서 눈시울을 붉히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이런 날 린드 박사에게 자녀가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꼬?”하고 넋두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꼬마가 일어나서 소리치듯 말했습니다. “제가 박사님 아들이에요!”그러자 이번에는 다시 그 옆에 앉아 있던 여자아이도 일어나서 “저는 박사님 딸이예요!”

그러자 뒤에서 또 누군가가 소리치면서 “저도 박사님 아들입니다!” 마침내 강당 안의 모든 아이들과 청년들이 린드 박사의 자녀라고 고백하면서 일어섰습니다. 그 고백을 듣고있던 린드 박사는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감격스런 마음으로 많은 아이들과 청년들을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보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베풀고 나누어준 진정한 일꾼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우리가 영혼을 구원하면 그 영혼이 내가낳은 영적인 자녀요 동역자가 됩니다.

우리가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일군이 되려면 우리 마음속에 말씀과 성령이 충만해야 합니다. 말씀과 성령이 충만하면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열정이 충만하면 그 열정에 사로잡혀서 살게 됩니다.

잭 캔필드(Jack Canfield)는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라는 책을 썼는데 그 책에 “춤추는 사람”이라는 제목의 글이 나옵니다. 미국의 오클랜드와 샌프란시스코를 연결하는 금문교(Golden Gate Bridge)에 7개의 통행료를 징수하는 부스가 나란히 세워져 있습니다.

어느 날 켄필드가 차를타고 금문교를 지나가면서 통행료를 내는데 한 직원이 부스 안에서 음악을 아주 크게 틀어놓고 춤을 추면서 통행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재미가 있어서 캔필드가 그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예 저는 파티를 열고 있습니다.” “파티라니요? 누구와 파티를 하는 겁니까?” “저 홀로 파티를 합니다”

얼마 후에 다시 그곳을 통과하는데 그 직원이 또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춤을 추면서 통행료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파티를 열고 계십니까?” “아, 물론이지요” “그런데 왜 다른 부스의 사람들은 파티를 열고 있지 않습니까?” “저 사람들이요? 저 사람들이 들어가 있는 부스는 관입니다. 아침 8시 30분에 출근해서 오후 4시 반에 퇴근하기까지 저 사람들은 관속에 갇혀 있는 시체들입니다” “그래요? 당신이 저들과 다른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요? 나는 중요한 비전이 있습니다. 나는 앞으로 댄스 교수가 될 겁니다. 그래서 나는 이곳 연습장에서 매일 춤추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저들의 부스를 보세요. 저게 닫혀있는 관이라면 제가 있는 이 부스 안은 열려있는 무대입니다. 하루 종일 춤을 추면서 월급까지 받으니 이게 얼마나 좋은 직업입니까?!”

켄필드는 그의 고백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똑같은 공간이지만 어떤 사람은 그 좁은 공간이 꿈과 비젼을 이루어가는 공간이요 어떤 사람은 그 공간에서 소망없이 일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생각이 다르면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마음이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진정한 행복을 얻지 못합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모르면 늘 불행이 맴돌고 그 불행감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변화되면 내 주변 사람도 변화되고 달라 집니다. 매일 아침마다 침이섞인 수프를 먹지 않아도 됩니다.

어느 돈 많은 고급 요리집 사장이 예수를 믿은후에 전속 요리사를 불러놓고 그동안 자기가 심하게 야단치고 냉정하게 대한것을 용서해 달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앞으로 내가 자네에게 좀더 친절하도록 노력하겠네. 그동안 참으로 미안했네”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말에 놀란 요리사가 “그게 정말입니까?” 하더니 “사장님, 그렇다면 제가 이제부터 교통정체로 지각을 하더라도 제게 야단을 치지 않으시겠다는 뜻입니까?” “물론일세”

“그렇다면 어쩌다가 컵이 깨끗하게 닦이지 않은게 발견 되어도 그 컵에 물을 담아서 저에게 물을 끼얹는 일도 안 하시겠다는 뜻입니까?” “그럼 그렇고 말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요리가 맛이없다는 손님의 말을 들을 때마다 제 월급을 공제하셨는데 그 일도 이제 안 하실 겁니까?” “당연하지 자네 지금 나를 뭘로 알고 그러나, 내가 분명히 그런일이 다시는 없을것을 약속하겠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렇다면 저도 한가지 사장님께 드릴 약속이 있습니다. 사장님이 식당에 오셔서 매일 아침식사를 하실때마다 제가 사장님의 수프에 침을 뱉었는데 이제부터 저도 그 일을 중단하겠습니다” 하고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그런데도 이 사장님이 정말 거듭났기에 그 요리사를 해고하지 아니하고 그 다음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변화된 성도는 그와같이 무슨일이 벌어져도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오래전에 안소니 멜로 박사를 소개한적이 있습니다. 그는 고백하기를 “내가 청년 시절에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중년이 되어서는 내 이웃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70세가 된 지금은 하나님께 나를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원대한 꿈도 필요하고 이웃을 변화 시키고자 하는 기도제목도 중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기도제목은 내 생각과 마음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13장 11절로 14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어거스틴에게 말씀하신 말씀이면서 오늘날 우리에게도 주시는 말씀입니다. 어거스틴은 이 말씀을 읽고 지금까지의 방탕한 생활을 깨끗이 청산하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비로소 빛의 갑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빛의 갑옷 즉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죄악많은 세상을 이기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아무쪼록 우리도 빛의 갑옷을 입고 날마다
승리하면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출처 : 보물섬남해세광교회
글쓴이 : 행복을 주는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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