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간증을 좀 한 후에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제가 주님 안에서 사랑했던, 그리고 지금도 사랑하는 한 여자 아이에 대해서 간증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월요일날 진주에 가서 세나를 만났습니다. 세나는 근 10년동안 제가 교회에서 가르친 제자입니다. 세나가 유치원에 다닐때 부터 제가 세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또 많은 이야기를 해 주면서 세나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 것을 권면했습니다.
세나를 처음 만난 것은 2004년 5월달입니다. 세나는 제가 부임한 설천교회의 사택 바로 아랫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제가 설천교회에 부임한지 일주일 쯤 지났을 때, 세나의 집에 제 집사람과 함께 전도심방을 갔습니다. 세나는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사시는 세나 할머니와 세나가 교회를 안나오길래 세나 할머니에게 인사도 드릴겸 해서 과일과 음식을 싸들고 세나 집으로 갔습니다.
당시에 세나는 여섯 살이었고 세나 할머니는 65세이신 차행순성도님 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차행순성도님에게 “교회와 담이 붙어있을 정도로 교회 가까이에서 사시는데 왜 교회를 안나오세요? 교회에 나오세요!”라고 하면서 전도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차행순성도님께서 “목사님! 죄송하지만 저는 교회에 안나갑니다. 저에게 그럴만한 사정이 있습니다. 묻지는 마시고 그냥 교회는 안나가니까 그리 아시고 저에게 교회 오란 말을 하지 말아 주세요” 하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무슨 사정이 있으신지는 몰라도 굳이 그러시다면 더 이상 강요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저희와 이웃 사촌이 되었는데 제가 종종 놀러 오겠습니다! 놀러 오는 것은 괜찮겠죠?” 하고 말씀을 드렸더니 “놀러 오시는 것은 상관 없습니다” 하시길래 “그럼 할머니는 교회에 못 오시더라도 세나는 교회에 보내 주세요 제가 잘 가르쳐 보겠습니다!” 하고 사정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세나 할머니는 “세나가 교회 가는 것은 막지 않겠습니다! 목사님이 잘 지도해 주세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주부터 세나가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무슨일이 있어도 세나 할머니를 전도 해야 겠다는 마음에 그 다음부터 일주일에 한 두번씩 꼭 세나 할머니집에 놀러가서 세나 할머니와 대화를 했습니다. 세나 할머니 집에 갈 때는 항상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서 가져갔고 사택에 들어오는 과일 음식 건강식품 생필품까지 선물이 들어올 때마다 늘 챙겨서 세나 할머니집으로 가져가서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7개월쯤 지났을 때, 세나 할머니께서 저에게 놀라운 간증을 해 주셨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마음문이 열리면서 목사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는지 지나간 이야기를 저에게 털어 놓으셨습니다.
세나 할머니가 죽어도 교회를 안나가겠다고 하신 이유는 교회에서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세나 할머니가 자녀들을 데리고 오랜 세월동안 그 집에서 사셨는데, 처음에는 모든 식구들이 교회를 다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사는 동안에 교회 때문에 너무나 많은 상처를 받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모두가 교회를 떠났다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일상적으로 제일 많이 받는 스트레스는 교회의 음식 찌꺼기와 쓰레기들을 세나 할머니의 밭에 버리는 일이었다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교회 아래에서 살다 보니까 교회에서 나오는 쓰레기들과 더불어, 나무를 베거나 제초작업을 하면 잘라낸 나무들과 풀들을 다 세나 할머니 집으로 내려 보내서 시마다 때마다 그런일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일이 있을때마다 세나 할머니가 교회에 올라가서 장로님에게 이야기를 해도 장로님은 소귀에 경읽기처럼 들은척도 안했다는 것입니다.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집을 짓기 전에 교회에서 하수구를 파서 아래쪽 도랑으로 물이 내려가는 하수도를 냈는데, 장로님께서 하수도 공사를 하는데 교회에서 내려오는 하수구를 파서 배관을 묻는 공사를 했는데 세나 할머니네 밭 한가운데로 땅을 파고 하수관을 묻었다고 합니다.
세나 할머니에게는 말도 안하고 세나 할머니가 밭에 가 있는 동안에 제멋대로 밭을 파내고 그 밭 한가운데로 하수구 배관 공사를 한 것입니다. 세나 할머니는 그 밭에다가 집을 지으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장로님이 통보도 하지않고 밭 한가운데로, 그것도 집을 지을 장소에 하수구를 파서 물이 흘러가는 하수관을 묻었으니 너무나 화가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나 할머니가 장로님에게 찾아가서 그 밭은 우리가 집을 지을 땅인데 하수도를 묻으면 어떻게 하냐고 하면서 하수도를 다시 파서 밭 가장자리로 둘러서 하수관을 묻어 달라고 여러번 이야기를 했는데 장로님이 끝내 그 이야기를 무시하고 외면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할 수 없이 그 땅에 집을 지었는데 짓고 나서 보니까 그 하수관이 세나 할머니의 안방으로 지나 가더랍니다. 그래서 밤에 잠을 자려고 누우면 교회에서 또는 사택에서 사용한 물이 방바닥 아래로 흘러 가는데 물소리가 얼마나 시끄러운지 도무지 잠을 잘수가 없더랍니다.
그래서 안되겠다 싶어서 장로님에게 “물 흐르는 소리 때문에 잠을 못자겠으니 하수관을 집 둘레로 다시 파서 묻어 주세요”하고 부탁을 하는데도 들어 주질 않아서 결국은 포기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와 원수가 져서 교회를 떠났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너무나 속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세나 할머니! 제가 그 문제를 꼭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하고는 그 다음부터 그 문제를 놓고 기도를 하기 시작 했습니다.
“하나님! 교회가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하는데 교회가 이웃이 당하는 아픔을 나몰라라 하면 어떻게 세상의 빛이되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차행순할머니의 마음을 위로해 주시고 한맺힌 이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세요!”하면서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문제를 해결해 드리겠다고 말씀을 드린후에 계속해서 세나 할머니에게 사랑을 베풀었더니 어느날 세나 할머니께서 저에게 “목사님! 목사님께서 그렇게 사랑을 베풀어 주시고 세나에게 잘 해 주시는데 제가 목사님의 정성을 봐서라도 교회를 나가겠습니다”하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세나 할머니에게 “고맙습니다! 세나 할머니가 교회에 오시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가정도 복을 받고, 자녀들과 손주 손녀들도 복을 받을겁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게 세나 할머니를 섬긴지 7개월만에 드디어 세나 할머니께서 교회로 나오셨습니다.
그후로 세나 할머니와 저희부부는 마치 한 가족처럼 지냈습니다. 그리고 세나 할머니는 세례를 받으셨고 수년후에 집사 임명까지 받고 새벽기도까지 나오셔서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셨습니다.
저는 세나 할머니 하수도 문제를 놓고 일년동안 기도를 한 후에 어느날 당회때에 장로님에게 “차행순집사님집 안방 아래로 지나가는 하수관 때문에 차행순집사님이 잠도 못자면서 고생을 하신다니 우리가 그 하수관을 다시 파서 집 옆으로 돌려서 공사를 해 드리는게 어떻겠습니까?” 하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장로님은 그런공사를 왜 우리가 하냐고 하면서 할 필요 없다고 하시면서 제 제안을 외면하셨습니다. 그 후에도 저는 계속해서 당회를 할때마다 여러차례 건의를 했지만 장로님은 의논할 가치조차 없다는 식으로 제 의견을 묵살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내가 사례비를 받아서 이 일을 처리하자” 하고는 어느날 일군을 사서 하수관을 다시 파서 집 옆쪽으로 돌아가면서 하수관을 묻어드렸습니다. 그래서 결국 안방으로 지나가는 하수관 문제를 해결해 드렸습니다.
세나는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초등학교 3학년 때 까지는 거의 매일 저희집에 놀러와서 한시간씩 있다가 갔습니다. 세나는 저희집에 와서 학교생활에 대한 이야기,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아빠처럼, 그리고 카운슬러처럼 세나의 이야기를 들어 주면서 지냈습니다.
엄마 아빠와 떨어져서 할머니 밑에서 자라나는 세나를 바라 보면서, 저는 저의 과거가 생각나서, 더욱 세나에게 애정을 쏟고 사랑으로 세나를 돌봐 주었습니다.
가끔 세나 엄마인 최승연집사님이 세나를 보러 왔다가 주일 날 함께 예배를 드렸는데 세나 엄마는 참 믿음이 좋은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릴때마다 늘 눈시울이 뜨거워서 눈물을 닦으면서 “목사님! 고맙습니다! 목사님 설교말씀에 은혜를 받았습니다”라고 하시면서 은혜를 받으셨습니다.
세나 엄마인 최승연집사님은 제가 세나를 사랑하고 그리고 어머니인 차행순집사님을 돌봐 주시는 것을 무척이나 고마워 하셨습니다. 그래서 세나를 보러 올 때 마다 맛잇는 음식들과 선물들을 사다 주셨습니다.
그 당시에 세나도 저를 많이 의지 했습니다. 세나는 유치원에서 만든 조형품들을 늘 저에게 가져왔고 졸업할 때 받은 상장이나 사진첩 그리고 자기가 아끼는 소장품까지 가져와서 저에게 주었습니다. 저는 세나가 초등학교에 다닐때 세나가 준 모든 물건들을 소중하게 보관을 했습니다.
그렇게 초등학교 5학년까지 열심히 사택에 놀러오던 세나가 6학년이 되니까 사택에 오질 않았습니다. 드디어 여자 친구들과 정이 두터워지고 그리고 남자 친구들과 함께 놀면서 자기의 세계가 생겼기에 세나는 더 이상 사택을 찾아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세나가 초등학교 6학년때 교회가 갈라지는 바람에 부득불 교회학교 아이들도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설천교회에 부임할 때 교회학교 아이들이 두명 이었는데 그후로 열심히 전도하면서 아이들을 사랑했더니 2년만에 교회학교 아이들이 40명이 되었습니다. 전교생이 80명 밖에 안되는 시골에서 아이들의 절반이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설천교회에서 쫓겨 나면서 교회가 갈라질때 가장 가슴 아픈 일이 아이들도 갈라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뜻이 계셔서 이런일이 생긴 거니까 갈등하지 말고 원하는 교회에서 믿음생활을 잘 하도록 해라”라고 권면을 하고 이사를 했습니다.
저는 그 누구에게도 우리교회로 오라고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에게 “너희가 원하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라”라고 이야기를 하고 이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사를 앞 둔 어느날 세나 할머니께서 저를 찾아 오셔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저는 무슨일이 있어도 목사님을 따라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설천교회 바로 밑에 살면서 목사님을 따라가면 제가 무슨 고난을 당할지 몰라서 도저히 갈수가 없습니다! 집이 바로 교회 밑인데 제가 목사님을 따라가면 두분이 저를 얼마나 미워 하시겠습니다!
제가 두분 성격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러니 저는 목사님을 따라가고 싶어도 갈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못가더라도 이해를 해 주세요!” 라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서 알았다고 하고는 차행순집사님을 위해서 간절하게 축복기도를 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봉우에서 창고를 얻어서 새 교회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놀라운 것은 그때 세나가 저희 남해세광교회로 와서 예배를 드렸다는 사실입니다. 할머니는 설천교회로 나가셨는데 세나는 저희 교회에 와서 주일학교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세나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저 어린 것이 의리가 있구나! 우리 남해세광교회로 오면 엄청난 핍박이 있을텐데 저 어린 것이 그래도 자기를 사랑해 준 목사님에게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구나!” 라는 생각에 제가 개척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첫 교회학교 예배때 큰 기쁨과 함께 마음속으로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교회가 시작되고 세나는 저희 교회에 와서 매 주일마다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드디어 핍박이 시작 되었습니다. 장로님과 권사님이 차행순집사님에게 “도대체 아이를 어떻게 교육 시켰길래 손녀딸이 남해 세광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게 만드는겁니까?”라고 하면서 차행순집사님을 다그치면서 야단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장로님과 권사님의 치도곤을 견디다 견디다 못한 차행순집사님이 하루는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목사님! 장로님과 권사님이 얼마나 저를 힘들게 하는지 제가 견딜수가 없습니다! 세나에게도 만나기만 하면 혼을 내면서 그 교회 가지 말라고 야단을 칩니다!. 그러니 세나도 힘들고 저도 힘들어서 못살겠습니다!” 하고 탄식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차행순집사님에게 “집사님! 알겠습니다. 제가 다음주에 세나가 오면 세나에게 잘 이야기를 해서 설천교회로 거서 예배를 드리라고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하고는 그 다음주에 세나를 불러서 “세나야! 아무래도 할머니가 다니는 교회에 다니는게 너에게도 이로울 것 같으니 설천교회로 가도록 해라!”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주부터 세나는 설천교회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헤어진 후에 세나는 중학교에 들어 가면서 진주로 전학을 가게 되었고 이모집에서 중학교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나 할머니 차행순집사님은 남해 설천에서 혼자 사셨습니다. 그런데 세나를 진주로 보내고 혼자서 사시던 차행순집사님께서 그후로 서서이 건강이 나빠 지셔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저는 차행순집사님이 돌아가신지 두주가 지나서야 집사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차행순집사님이 돌아 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저는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우리 교회로 오셔서 믿음생활을 하셨다면 집사님이 훨씬 더 오래 사셨을텐데!” 하는 아쉬움에 마음이 안타까왔습니다.
저는 차행순집사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하고 장례식장에도 가보지 못한 것 때문에 마음아파 하다가 문득 세나 생각이 났습니다. “할머니를 그렇게도 사랑했던 세나가 할머니가 돌아 가셔서 참 마음이 아팠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세나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교회는 다닐까?” 하는 생각에 궁금해져서 작년에 세나 전화번호를 찾아서 문자를 보냈지만 답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일날 교회학교 아이들에게 혹시 세나의 전화번호를 아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는데 마침 세나의 전화번호를 아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화번호를 받아서 문자를 보냈는데 세나에게서 답장이 왔습니다. 그래서 통화를 해 보니까 세나는 이모집에서 학교를 잘 다니고 있었지만 교회는 다니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모가 워낙 독실한 불교 신자였고 그리고 더 이상 세나 옆에서 세나를 교회로 이끌어 주는 사람도 없었기에 세나는 교회를 등지고 학교생활에만 전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년 7월달에 전효인전도사님과 박세권집사님이 오셔서 함께 진주에 있는 빕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세나에게 전화를 해서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제안을 했고 세나가 시간을 내서 우리가 함께 모인 식사 자리에 와서 드디어 세나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세나와 초등학교 6학년때 헤어지고 그후로 4년만에 다시 세나를 만난 것입니다. 그런데 세나가 얼마나 키도 크고 날씬하고 예뻐 졌는지, 초등학교에 다닐 때의 통통하고 고집불통인 모습은 전혀 온데 간데 없고, 아주 예쁘고 착한 요조 숙녀로 변해 있었습니다.
저는 그날 세나에게 다시 교회에 다닐 것을 권면 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복이요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것이 인생을 행복하게 살고 복되게 사는 비결이니까 꼭 교회를 다녀라”라고 권면을 했습니다.
그런데 세나가 제 권면을 받아드렸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세나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다시 믿음생활을 시작하게 된 세나를 생각할 때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세나를 만나고 헤어진지 또 다시 일년 수개월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저는 세나를 만난 후에 세나를 위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세나가 다시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복된 인생이 되게 해 주세요!”라고 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기도중에 세나가 보고싶어 졌습니다. 이제는 고등학생이 된 세나를 다시한번 만나보고 싶어서 지난주에 세나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시험이 끝난후에 시간을 내 보겠다고 해서 세나와 약속을 하고 드디어 지난 월요일날 세나를 만났습니다.
저는 세나에게 약속장소에 나올 때 교회를 안다니는 친구를 한사람 데리고 나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기왕이면 교회 안다니는 친구를 데리고 나와서 전도를 하면 좋겠다 싶어서 그리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월요일날 저희 부부와 세나 그리고 세나 친구까지 네명이 만나서 저녁식사를 같이 했습니다. 알고 보니까 세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반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도 열심히 다니고,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하고, 나름대로 힘들고 어려운 학창시절을 소신껏 꿋꿋하게 잘 적응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세나는 엄마 아빠와 떨어져서 지내면서도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그리고 반장까지 되어서 학급일을 위해서 애쓰고, 그리고 힘들고 바쁜 중에도 주일마다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가까이하면서 지냈습니다. 저는 세나의 이야기를 듣고 큰 감동과 기쁨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하나님께서는 택한 자녀를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부르시고 사랑하시는구나!” 라는 생각에 하나님께 무한감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특히 청소년들은 부모나 그 누구의 말에도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자기 소신과 자기 감정대로 살아가는 세대가 오늘날의 세대입니다. 이런 자유 분방하고 내가 하고싶은대로 살아가는 세대에, 그래도 목사님의 권면을 받아 드리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세나를 볼 때 저는 “그래도 소망이 있구나!” 라는 생각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사실 교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때로는 실망도 하고, 낙심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학교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제가 항상 하는 생각이 “이 아이들중에 한 아이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아이가 있다면 나의 희생과 헌신은 의미있는 희생과 헌신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쳐 왔습니다.
제가 세나를 만나서 대화를 나눈 중에 특별히 제 마음에 와 닿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목사님! 이제는 제가 옛날처럼 순수하지도 못한 것 같고 부족한게 많은 것 같아서 하나님을 뵙기도 죄송한 것 같아요!”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서 “세나는 참 솔직하고 진실한 아이구나!”라는 생각에 더욱 마음이 기뻤습니다. 세나는 할말을 다하면서도 가식이 없고, 그리고 자기를 잘보이려고 하지도 않고, 내숭도 떨지않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세나를 바라 보면서 “세나가 주님 안에서 잘 성장하면 앞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귀하게 쓰임받는 여인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사모와 함께 대화를 하면서 “세나가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된다면 훌륭한 목사가 되겠구나!” 라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의 청소년들의 특징은 원망 불평입니다. 감사를 모릅니다. 학생들 대부분이 매사에 원망불평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세나는 식사 한끼에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감사를 표현 할 줄 아는 훌륭한 아이 였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 왔는데 세나 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목사님! 빗길 안전하게 가셨는지요, 오늘 너무 맛있게 잘먹고 용돈도 주셔서 감사합니다, 친구 소윤이까지 같이가서 부담이 크셨을텐데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크면 맛있는거 꼭 대접할께요, 오늘 너무 감사 드려요!”
제가 남해에 와서 10년동안 목회를 하면서 이런 감사인사는 처음 받아 보았습니다. 아무리 좋은걸 사주고, 매달 용돈을 주고, 수련회를 데리고 가고, 교복을 사주고, 서울로, 제주도로, 설악산으로 수련회를 데리고 다니면서 호텔 뷔페로, 맛집으로, 최고로 대접을 해도 한번도, 진심에서 우러난 마음으로 저에게 고맙다는 감사 문자를 보내 준 아이가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늘 아이들을 섬기고 사랑하고 도와 주면서도, 마음 한편은 늘 허전하고 쓸쓸했습니다. 그런데 세나에게 처음으로 이런 감사의 문자를 받고 보니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지나간 허전함과 아쉬움이 다 사라지는 듯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과 열명의 문둥병자 생각이 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명의 문둥병자들을 고쳐 주셨을 때 열명이 다 제각기 제갈길로 가버렸지만, 그때 한 사람 사마리아 문둥병자가 예수님께 돌아와서 “예수님! 제 병을 고쳐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하면서 예수님께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너무나 기뻐 하시면서 “열명이 다 고침을 받았는데 돌아온 자가 너 밖에 없느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라고 선포하심으로서 그 사람은 육체도 고침받고 영혼의 구원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금번에 세나 때문에 큰 기쁨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내려 주십니다. 그러나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있는 있는 축복도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세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날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청소년들이 많지 않은데 세나가 하나님을 잘 믿고 아름답게 성장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귀한 사명을 잘 감당하는 믿음의 여인이 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증거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지난주에 이어서 “인내하는 자는 복되도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 하도록 하겠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인내에 대해서 설교하면서 욥을 본받으라고 증거 했습니다. 욥은 인내와 참음의 대명사입니다.
욥은 동방 최고의 부자였습니다. 그런 욥이 하루 아침에 전 재산을 다 잃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랑하는 자녀 10명도 하루 아침에 사고로 죽었습니다. 가장 힘든 것은 질병입니다. 욥은 몸에 심한 악창이 나서 진물과 고름 때문에 너무나 가려워서 기왓장으로 몸을 박박 긁고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다못한 아내는 욥에게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라고 소리를 지르더니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그러나 욥은 “주신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가 찬양을 받으실지로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런데 더 기가막힌 일이 벌어집니다. 고난의 때에 위로하고 힘이 되어주어야 할 친구들이 찾아와서 “너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지경이 된거냐? 네가 잘못해서 벌을 받았으니 회개해라!” 라고 하면서 비판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욥은 여전히 믿음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기23:10)
욥은 왜 자기에게 이런 시련과 고통이 닥쳐왔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아는 한가지는 하나님이 절대로 자기를 버리지 않으시고, 언젠가는 모든 행복을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성경에 나오는 수 많은 믿음의 사람들 중에서 욥을 본받으라고 강조 한 것입니다.
세계적인 성악가 호세 카레라스는 파바로티와 플라시도 도밍고와 더불어 전 세계를 통털어 가장 위대한 3대 성악가중에 한 사람으로 칭송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의 명성이 가장 절정에 이르렀던 41세에 그가 백혈병으로 쓰려졌습니다. 이 세상을 하직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나이요 억울한 나이였습니다.
이런때에 호세 카레라스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 교회에 다녔던 그는 고난의 현장에서 다시 예수님께로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의 생명을 연장해 주시면, 남은 평생을 주를 위해 충성하겠습니다”라는 서원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는 기도하면서 골수 이식 수술과 더불어 힘든 항암치료를 받았습니다. 머리카락은 빠지고 손톱과 발톱도 다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통속에서 계속해서 기도했고 주일마다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을 올려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기적같이 몸이 회복되기 시작했고 그는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건강이 회복되자 그는 자기가 가진 전 재산을 처분해서, 고향인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 “호세 카레라스 백혈병 재단”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어디에 가서 공연을 하든지 생활비 외에는 모든 공연 수익금을 그곳으로 보냈습니다. 그래서 수 많은 백혈병 환자들이 그를 통해서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호세 카레라스는 간증 하기를 “때로는 질병도 은혜가 될 때가 있습니다. 나는 백혈병과의 싸움을 통해서 하나님을 다시 만났고 그리고 나보다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나는 단순히 노래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증거하고,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소망을 주는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난없이 살면서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살다가 지옥에 가는 인생보다는, 고난을 통해서라도 주님을 만나는 사람이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로마서8장 18절에 보면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증거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고난을 주셨지만 그 고난을 통과한 후에 갑절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고난의 때에 욥이 고백한 신앙고백대로 그를 정금과 같은 인생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욥은 동방 최고의 부자로 살다가 망했지만 다시 나중에는 갑절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떠나갔던 모든 사람들도 다 다시 돌아와서 욥에게 금을 주면서 욥을 위로했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열명의 자녀들 대신 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열 자녀를 다시 주셨습니다. 욥의 딸들은 이스라엘 전국에서 가장 아리따운 여자가 되었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욥은 백사십년을 살면서 아들과 손자 4대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욥은 5대 조상으로 살았고 나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나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다는 것은 지난날에 그가 겪었던 슬픔과 모든 질병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건강하게 장수했다는 증거입니다.
욥이 이런 엄청난 축복을 받은 비결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무슨일이 벌어져도 하나님을 지극정성으로 섬겼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엎드려서 겸손한 마음으로 회개 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의로운 사람도 자기를 살펴보면 회개할 것이 있습니다. 그가 동방의 의인이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회개할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욥기42장 6절에서 욥은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라고 고백하면서 자기죄를 회개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갑절의 축복을 쏟아부어 주신 것입니다.
셋째로 욥은 하나님의 섭리를 순종의 믿음으로 받았기에 복을 받았습니다. 기쁠때나 슬플때나 건강할 때나 병들었을때나 욥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순종 했습니다. 욥은 고백하기를 “주신분도 하나님이시요 가져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세상에 올 때 빈손 들고 왔으니까 빈손으로 가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욥기 2장 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켰느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욥은 순전한 믿음, 겸손한 믿음 순종의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넷째로 욥은 끝까지 인내했기에 복을 받았습니다. 아랍 속담에 “태양만 비추면 사막이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늘 우리의 삶에 밝은 태양만이 비추는 삶을 살기 원하지만 사실 태양만 계속되면 인생은 사막이 되고 맙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이 촉촉하고 푸르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폭풍우와 장마도 경험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인생이 더욱 강건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무지개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 화사하고 아름다운 무지개는 소낙비가 없이는 결코 볼 수 없습니다. 아름답고 찬란한 무지개와 같은 인생을 원한다면 때로는 아픔과 고통의 소낙비를 맞아야 하고 그것을 견디어내야 합니다.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어느날 “프란체스코 델 조콘다”라는 귀족이 세기의 화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찾아와서 자기 부인의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알았다고 하자 조콘다는 작품이 완성 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다 그리면 연락을 하겠노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다빈치는 그녀의 초상을 장장 4년에 걸쳐서 완성을 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화가가 4년에 걸쳐서 완성한 그림을 조콘다에게 건네주면서 또 한번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이 초상화는 아직도 미완성입니다” 그 그림이 바로 그 유명한 “모나리자”라는 작품입니다.
명작은 순간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명작은 완성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명작인생, 명품 인생이 되려면 우리에게도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야고보사도는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이어서 다섯번째로 욥이 복을 받은 이유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 재산이 날아가고 지독한 병치레를 하면서도 그리고 극심한 고난중에 있어도, 심지어는 사랑하는 아내가 자기를 저주하고 떠나가도, 마지막에는 친구들이 와서 비난하고 조롱하면서 공격해도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라고 욥기 1장 22절은 증거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오직 믿음”입니다. 조건부 믿음은 한 단계 떨어지는 믿음입니다. “하나님! 저에게 건강을 주시면 제가 하나님을 잘 섬기겠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재물을 주시면 하나님을 잘 섬기겠습니다! 하나님, 제가 시간이 나면 봉사 하겠습니다!” 이런 조건부 믿음은 수준이 낮은 믿음입니다.
수준이 높은 믿음은 조건없이 무조건 감사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믿고,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일에 감사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고난중에도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아니면 조건부로 사랑하는지를 헤아려 보십니다. 히브리서 12장 8절로 11절에 보면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요즘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체벌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사들이 학생들을 가르치기가 많이 힘이 든다고 합니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올 때 대부분의 선생님이 매를 하나씩 들고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매만 봐도 벌벌 떨었습니다. 잘못하면 벌을 서게 되고 엉덩이나 손바닥에 매를 맞았습니다. 그러면 정신이 번쩍 듭니다.
그러나 요즘은 징계를 못하게 합니다. 그러니까 학생이 선생을 때려서 선생이 병원에 입원하는 기 현상이 벌어집니다. 이렇게 되면 교육은 불가능합니다. 잘못하면 매도 맞아야 되고 꾸중도 들어야 변화가 됩니다. 지나간 과거를 돌아보면 “자기를 때려주고 혼내준 선생님이 나를 가장 사랑한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징계를 통해서 우리에게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해 주십니다. 오늘 본문 야고보서5장 11절에 보면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씀은 주께서 주신 결말입니다. 욥의 인생을 자세히 들여다 볼 때 그에게 임한 저주나 자식들이 죽는 일이나 재산이 다 없어진 일이나 병들어서 중병을 앓으면서 지금 곤두박질치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밑바닥에서 헤메고 있는것도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죽을 것 같은 고통속에 있는 것도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이 아니라 결말입니다.
모든 운동경기에서 중요한 것은 결말입니다. 모든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결말입니다. 우리 인생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결말입니다. 어떤 인생으로 우리의 인생이 종지부 찍게 되느냐! 이것이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일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받아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열매는 인내하는 자가 거두게 된다고 증거 합니다.
오늘 본문 7절에서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라고 증거 합니다. 성도의 인내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참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인내는 하나님이 그 뜻을 이 땅에 나타내시는 통로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서는 참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내가 아닙니다. 참된 인내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내는 마지막까지 참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 주님의 강림하시기까지 참으라는 말씀은 마지막까지 참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만이 참을수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인내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죽기까지 참으셨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세상에서 마지막까지 참으심으로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종말의 증거들이 나타나는 것을 볼 때마다 우리는 이사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천국으로 이사 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사 갈 준비가 무엇입니까? 주님 앞에 설 때, 주님께 칭찬을 받을 준비, 상급 받을 준비를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천국을 상속받는 절차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 앞에 설 때, 보고 할 것이 없고 받을 상급이 없고 하나님 앞에 칭찬받을 일이 없다면 그런 사람은 당황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주님이 오실 때가 되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하나님의 일에 열심을 내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우리는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처럼 예수님을 기다리면서 소망중에 살아가야 합니다.
아무쪼록 영광의 그날이 올때까지 참고 인내하면서 승리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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