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부흥회를 한다 생각하고 한 시간 동안 집중해서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27장과 28장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하나님을 의지하여 담대하게 대처하는 사도 바울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매우 인상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부름받은 바울사도는 지중해 연안의 여러 나라들을 돌아 다니면서 열심히 선교를 하다가 예루살렘에 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고소를 합니다. “저 바울이라는 사람은 엉터리 이단사설을 전파하는 사람이다!”라고 모함을 합니다. 그래서 끌려가서 2년동안 감옥에 같혀서 지냅니다.
어느날 바울사도가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아그랍바 왕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자 바울사도는 로마황제인 가이사에게 항소를 합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로마로 가서 다시 재판을 받게 됩니다.
바울 사도는 죄수의 몸으로 쇠사슬에 매인채 배를 타고 로마로 갑니다. 그런데 바울사도가 탄 배 안에는 276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죄수들도 있었습니다. 이 죄수들은 사형선고를 받고,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맹수와 싸우다가 죽을 사람들입니다. 죽으러 가는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로마장교인 백부장 율리오와 그의 부하병사들도 함께 갑니다. 그들은 직업상 상관의 명령 때문에 로마로 가는 사람들입니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상업차 로마로 가는 사람들입니다.
엄청난 곡물도 싣고 갑니다. 로마나라에서 쓸 곡식을 거둬서 가져가는 것입니다. 그 배 안에는 직업 때문에, 사업 때문에, 또는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 배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그 배 안에 하나님의 종 바울사도가 함께 동행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27장1절에 보면 “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이탈리아)에 가기로 작정되매”라고 증거 합니다.
죄수의 몸으로 호송되어 끌려가는 바울 사도에게는 그와 동행하는 동역자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사도와 함께한 선교팀입니다. 바울사도와 동행한 첫 번째 사람은 사도행전을 기록한 바울사도의 주치의사 누가입니다.
누가는 바울 사도의 건강을 챙겨주기 위해서 로마까지 바울사도와 동행 했습니다. 누가는 예루살렘에서 병원을 차리면 잘먹고 잘살 수 있는 사람인데도 다 버리고 바울사도의 고난의 길에 동참했습니다.
누가가 자기의 이익을 다 버리고 바울사도와 고난의 길에 동행 했더니 하나님께서 그를 인류 역사에 가장 위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누가는 나중에 누가복음이라는 위대한 성경을 남기게 됩니다. 누가가 하나님께 헌신했더니 하나님께서 그를 가장 존귀한 사람으로 높여 주셨습니다.
이어서 아리스다고도 함께 갑니다. 아리스다고는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인데, 바울 사도의 동역자입니다(몬1:24). 그는 바울사도와 함께 끝까지 같이 간 동역자입니다. 그는 바울사도와 함께 감옥에도 들어갔습니다. 골로새서 4장10절에 보면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라고 증거 합니다. 그는 주의 종이 고난당할 때 끝까지 함께 함으로서 별과같이 빛나는 성도가 되었습니다.
바울사도에게는 금번 여행이 하나님이 명하신 여행이었습니다. 전에 예루살렘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바울사도에게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행23:11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로마에 가서 선교를 할 것을 친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2년 만에 로마로 가는 길이 열렸습니다. 바울 사도는 죄수가 되어서 로마로 선교 출정식을 합니다. 손에는 쇠고랑을 차고 로마의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서 갑니다. 주님이 바울사도를 그렇게 파송하셨습니다.
이제 바울사도는 죄수의 몸으로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서 로마로 항해를 하게 됩니다. 당시에는 돗단배를 타고 다니던 때였기에 지중해 바다를 항해해서 이스라엘에서 로마까지 가려면 두달 또는 석달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미항이라는 항구에 도착 했을 때 문제가 생깁니다. 지중해는 봄 춘분인 3월 21일부터 가을 추분인 9월 23일까지는 남동풍이 부는 절기입니다. 바람이 아프리카의 낮은 사막을 넘어서 지중해로 불어오기 때문에 그 시기에는 순풍이 불어서 배로 항해하기에는 최적의 날씨입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아주 안전하게 여행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추분이 지나면서부터는 갑자기 일기가 변하면서 다음해 춘분까지 겨울 동안에는 북서풍이나 북동풍이 불어 옵니다. 그 바람은 높은 알프스산맥을 통해서 거센 바람이 휘몰아쳐 오기 때문에 그 강한 바람이 지중해와 부딪히면서 바다에는 큰 폭풍우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겨울철은 대단히 위험한 계절입니다.
오랜 세월동안 지중해를 여행하면서 선교를 했던 바울사도는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선장과 선주 그리고 죄수들을 호송하는 로마의 백부장에게 “지금 항해하면 위험 할 뿐 아니라 생명과 재산상에 큰 손해가 있을 것이니 항해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행27:10) 라고 조언을 합니다.
그러나 오늘본문 11절에 보면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라고 증거 합니다. 그들을 별볼일 없는 죄수처럼 보이는 바울사도의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엄청난 고난에 처하게 됩니다.
사실 그 배에서 가장 높은 책임자인 로마장교, 백부장의 입장에서 볼 때, 재판을 받기 위해서 로마로 이송되고 있는 죄수인 바울의 말 보다는, 항해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항해기술과 지식만을 믿고 출항을 결정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얼마 못가서 무서운 태풍인, 유라굴로를 만나게 됩니다.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476명이 탔던 세월호가 침몰 하면서 476명중에 294명이 물에 빠져 죽고 열명이 실종되고 172명만 구조가 되엇습니다. 세월호 참사때도 선장과 승무원들은 476명의 승객들에게 “동요하지 말고 그대로 배 안에 대기하고 있으라”라는 방송만 남기고 자기들만 쥐새끼들처럼 탈출을 했습니다. 그래서 선장과 승무원의 말만 믿고 배 안에서 대기하던 294명이 다 물에 빠져 죽은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 졌을때 학생들은 희망의 쪽지를 남겼습니다. “엄마! 꼭 살아서 돌아 갈께요!” “엄마! 구조대가 출발 했다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살아서 돌아갈께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들의 마음이 무너지고 점점 볼멘소리가 들려옵니다. “어른들 말 들을 것 없어! 우리 스스로 살 길을 찾자!” “나중에는 절망에 빠진 소리가 카톡으로 전해 집니다. “언니! 오빠!, 다신 이런 나라에 태어나지 마세요!”
정말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선장과 선원들이 선실에 가만히 있으라는 엉터리 방송을 하지만 않았어도! 빨리 갑판위로 나와서 바다에 뛰어 내리라고 방송만 했어도 다 살았을 것입니다.
어떤 실종 학생의 어머니는 평소에 어른들 말 잘 들으라고 한 게 후회가 된다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의식이 없는 엉터리 선장과 선원들 때문에, 그리고 판단을 잘못한 사람들 때문에 수 많은 사람들이 고귀한 생명을 잃었습니다.
오늘날의 세상이 이렇게 한심합니다. 이 험한 세상에서 우리는 과연 누구의 말을 믿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도무지 믿을 사람이 없습니다. 이런때에 우리는 다시 한 번 불변의 진리를 붙잡아야 합니다. 험한 세상 일수록, 믿을 사람이 없을수록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야합니다.
평소에 바울사도는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를 소원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소원을 들어 주셨습니다. 비록 죄수의 몸이었지만 이제 바울사도의 마지막 소원이 이루어 진 것입니다. 그런데 항해를 하다보니 더 이상은 항해를 해서는 안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겨울이 지난후에 다시 항해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9절 하반에 보면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바울사도는 만약에 이번에 출항한다면 하물과 배 그리고 인명에도 큰 타격이 있을 것을 경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장과 선주는 항해를 강행합니다. 선장과 선주가 백부장에게 항해를 하자고 강력하게 요청한 이유가 12절에 나옵니다. “그 항구가(미항)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
지금 정박 중인 미항은 작은 항구이기에 여러모로 불편하다는 것입니다. 머물 숙소도 마땅치 않고, 위락 시설도 부족하고, 작은 항구라서 모든면에서 불편 했습니다. 그래서 선장과 선주는 큰 항구인 뵈닉스 항구에 가서 겨울을 보내고 가는게 훨씬 더 편리하고 유익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미항은 작은 도시라서 먹고 마시고 노는 데 불편하다는 게 그들의 불만 사항이었습니다. 그래서 항해를 강행한 것입니다. 그들은 안전보다 욕심을 선택 했습니다.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욕심입니다. 욕심이 개입되면 판단이 흐려지고 무리를 하게 되고 그래서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그들이 항해를 시작하자 처음에는 순풍이 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득의양양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못가서 갑자기 광풍이 불어왔고 배는 뒤집히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엄청난 태풍에 떠밀려서 보름동안이나 바다를 헤메고 다녔습니다.
14절로 15절에 보면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20-21)
이들에게 불어닥친 풍랑의 이름이 유라굴로인데 직역하면 북동풍(北東風Northeaster)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허리케인입니다. 천지가 파도로 뒤집히고 사방은 캄캄하고 아무리 기다려도 파도가 도무지 잔잔해 질 줄 모릅니다. 그래서 18절에 보면, 배의 무게를 줄이지 않으면 배가 가라않겠기에 배 안의 모든 물건들을 다 바다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소용이 없습니다. 구조 가능성이 제로입니다. 게다가 배가 보름동안 요동을 쳤기에 그들은 절망속에서 식음을 전폐하게 됩니다. 배가 요동치면 뱃속에 있는 음식물과 함께 똥물까지 다 토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시달렸으니 다들 지쳐서 죽게 되었고, 먹지 못해서 굶어죽게 되었습니다.
욕심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욕심은 인간을 파멸로 이끌어갑니다. 욕심이 지나치면 하나님도 안 보입니다. 양심도 팔아버립니다. 판단력이 상실됩니다. 결국 망하는 길로 가고 맙니다.
세월호 사건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욕심 때문에 악천후 속에서 항해를 강행했습니다, 욕심 때문에 배의 화물도 엄청 초과해서 실었습니다, 태워야 할 정원보다 더 많이 태우려고 배를 불법으로 개조했습니다. 그런 욕심 때문에 화를 부른 것입니다.
영국 해군에 이런 유명한 속담이 있습니다. “One Inch, 0ne Year”(일년에 3센티미터) 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한번 해군 군함에 타면 몇 년씩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를 합니다.
그런데 배에 탄 해군 수병들이 도착하는 항구마다 외출을 나갔다가 군함에 복귀할 때면 수백명이 선물 보따리를 사들고 배로 돌아 옵니다. 양 손에 짐을 한 보따리씩 들고 배를 탑니다. 그래서 받은 월급으로 가는 곳마다 선물을 사다가 배안에 쌓아 놓다 보면 일년이 지나면 배가 1인치, 즉 3센티미터가 가라앉는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그런일을 반복하고 또 그것을 그냥 방치하면 기름 소비도 많아질뿐 아니라 나중에는 배의 안전에도 큰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배의 짐이 많아지면 위험하니까 배의 짐을 줄이라는 의미에서 수병들에게 “One Inch, 0ne Year”“일년에 일인치” 라는 글을 써 붙여 놓았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의 배를 항해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욕심을 줄여야 행복하고, 욕심을 줄여야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습니다. 누가 됐든지 욕심 부리는 사람의 조언은 절대로 듣지 말아야 합니다.
디모데후서4장 3절에 보면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라고 증거합니다. 누구의 말을 듣느냐가 중요합니다. 욕심을 불러오는 사람의 말은 무조건 거절해야 합니다.
“이거하면 대박터진다!” “여기에 투자하면 한 방이면 끝난다”라고 유혹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고 선포하고 물리쳐야 합니다. 사탄마귀가 아담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하나님처럼 되리라”라고 미혹을 했는데 아담과 하와가 그 유혹에 속아 넘어가는 바람에 인류역사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광풍에 휘말리고 있는 것입니다.
어제 보니까 그렇게도 잘나가던 국민가수 송대관씨가 재판을 받고 아내는 2년형을 받았고, 송대관씨는 징역1년2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습니다. 아내가 땅투기를 하다가 걸려서 패가 망신을 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사도는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4~15) 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선장과 선주의 말만 듣고 떠난 배가 난파를 당하게 된 첫 번째 원인은 욕심입니다. 두 번째는 교만과 음란 그리고 장삿속 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에 보면 선장과 선주가 미항을 떠나서 뵈닉스로 가자고 할 때 많은 사람들이 그 말에 동조 했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그 배에는 무역상도 있고 보따리 장사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사람들이 선장과 선주의 말에 기꺼이 동참 했습니다. 게다가 선장과 선주는 자기들의 지식과 경험만 믿고서 “지금은 가면 안됩니다”라고 주장하는 바울사도를 향해서 “네까짓게 뭘 안다고 까불어? 우리가 이래뵈도 베테랑 선원들이야!” 하면서 교만하게 바울사도를 무시 했습니다.
그리고 그 배에 탄 모든 사람들도 뵈닉스로 가는 것에 동의를 했는데 그 이유는 미항은 작은 항구라서 행락시설도 없고 술집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뵈닉스항구는 항구가 크고 사람들도 많아서 그곳에는 행락시설도 많고 술집도 많고 예쁜 여자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선장과 선주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뵈닉스항구에 가서 이 겨울을 멋지게 지내자, 쾌락도 즐기면서 신나게 보내자”라는 생각에 항해를 고집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교만하고 타락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이렇게 경고합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약4:13~16)
인간이 자기 생각으로 아름다운 내일의 쾌락을 꿈꾸지만 그러나 인간의 미래는 오직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제가 전에 타이타닉호의 침몰에 대해서 아주 상세하게 소개를 했습니다. 타이타닉호는 그 당시 초 호화여객선인데 건조된 후에 2200명을 싣고서 영국에서 출발해서 뉴욕으로 첫 출항을 합니다. 그런데 출발한지 5일째 되던 1912년 4월 15일날 빙산과 충돌해서 차디찬 대서양바다 속으로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원인은 선장의 교만 때문입니다. 당대 최고의 연봉을 받았던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은 멋지게 달려서 최단시간의 기록으로 뉴욕항에서 수 많은 인파들의 환호를 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전 속력으로 달렸습니다.
그런데 출발한지 4일째 되던날 빙하가 떠내려 온다는 경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이를 무시하고 시속 22노트가 넘는 고속으로 달렸습니다. 그래서 결국 빙산과 충돌해서 1천 5백명이 사망하는 초대형 사고를 내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교만은 언제나 사고와 문제를 일으킵니다. 아무리 지식과 기술이 발달하고 아는게 많아져도, 인간은 단지 피조물일 뿐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인간이 잘난 줄로 착각하면 안됩니다. 사람은 절대주권자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하면 흥하지만 교만 하면 반드시 실패하고 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 잠언16장 18절에 보면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라고 증거 합니다. 특히 인생의 미래는 하나님의 고유 영역입니다. 과거는 알 수 있어도 미래는 알 수 없습니다. 사고가 날 때 마다 우리는 내 자신을 돌아 보아야 합니다.
사고가 생겼을 때 슬퍼하고 분노하고 끝내는 것은 후회입니다. 그러나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서 방향 전환을 하는 것은 회개입니다. 사고가 날 때마다 개인도, 사회도, 국가도 변화되어야 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한 모습으로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나도 저런 사고를 당할수 있고, 나에게도 어느날 갑자기 홀연히 죽음이 찾아 올 수 있다”라는 사실을 직시하면서 늘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엎드려서 근신해야 합니다.
이제 유라굴로 광풍을 만난 사람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됩니다. 15절에 보면 “배가 밀려 바람에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 가다가” 17절에는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 가더니”라고 증거 합니다.
배가 광풍에 떠밀려 이리 저리 쫓겨 다니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풍랑 둘째 날에는 사공들이 짐을 모두 다 바다에 버렸습니다. 그 배는 곡물도 운반하는 배인데 배에 가득 실었던 모든 곡식도 다 바다에 던져버렸습니다.
사흘째에는 배의 기구까지 전부 다 바다에 버렸습니다. 죽게 되니까 돈이고 재산이고 아무것도 중요한게 없었습니다. 욕심따라 가다가 결국 죽을날이 다가와서야 다 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소망이 없습니다.
여러 날 동안 해도 달도 별도 보이질 않습니다. 27절에 보면 거센 태풍과 풍랑이 14일간이나 계속되었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그러니 파도 때문에 토하느라 먹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20절에 보면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라고 증거 합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인생의 유라굴로같은 광풍을 만날때가 있습니다. 내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포자기 합니다. 될대로 되라! 그러나 이럴때 어떻게 하면 고난과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한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고난과 절망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제 다 죽게된 폭풍 속에서 희망을 선포하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안심하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울사도는 이렇게 외칩니다. 21절에 보면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바울사도는 그들에게 완곡한 표현으로 “내 말을 들었으면 좋았을뻔 했다!” 라고 말을 했지만 사실 이 말은 그들의 회개를 촉구한 것입니다. “세상만사가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니 이제라도 하나님께 겸손히 무릎 꿇으라” 라는 선언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도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6:1)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면 만사가 해결됩니다. 회개는 축복으로 향하는 인생의 유턴(U Turn)입니다. 하나님께로 유턴하면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유라굴로같은 시험과 환란이 닥친 사람은 좌고우면 할 것 없이 무조건 하나님께 유턴하면 문제가 해결 됩니다.
이제 바울사도는 그들에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라고 외칩니다. 22절에 보면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76명중에 한사람도 죽지않고 다 살 것이라고 선포 한 것입니다. 이렇게 확신에 찬 선포를 하게된 근거는 무엇입니까? 23절로 24절에 그 답이 있습니다.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라고 증거 합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사도에게 계시해 주셨기에 바울사도는 확신에 차서 모두가 살 것이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왜 풍랑이 시작된지 하루 만에 말씀하시지 않고 왜 14일 후에야 말씀하셨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권한입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가 있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 침묵하실 때는 기다려야 할 때입니다. 말씀하실 때는 믿고 순종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스케쥴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 하셨기에 유라굴로 광풍이 아무리 험악하게 몰아쳐도 절대로 바울 사도를 죽게 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사명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24절에서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아직도 네가 해야할 사명이 남아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로마 황제 가이사 앞에 서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 사명이 끝날 때 까지는 너의 생명도 절대로 끝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사명을 붙잡고 있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습니다. 어떤 고난도 시험도 죽음의 재앙도 그를 넘어뜨리지 못합니다. 오히려 사명을 붙잡고 있는 사람이 세상의 풍파와 고난과 사망권세를 이기고 헤쳐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애쓰는 바울사도를 살리시려고 바울사도와 같은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을 살려 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진 그 때부터 그 배의 지도자는 더 이상 백부장이 아닙니다. 선장과 선주도 아닙니다. 사명을 붙잡고 가는 바울 사도가 진정한 지도자입니다. 비록 사람 앞에서는 죄수의 몸으로 쇠고랑을 차고 끌려가는 비참한 신세 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사도를 새로운 리더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용기 백배하여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25절)
바울사도가 이처럼 당당하게 “안심하라”고 외친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 때문입니다.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 말씀 하셨다고 바울사도는 선포 합니다. 이 말은 “나는 하나님의 소유”이기에 전적으로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말입니다.
“하림 주식회사”를 경영하시는 김홍국 장로님의 간증을 소개합니다. 김홍국장로님의 공장은 전북 익산에 있는데 장로님의 집무실에는 액자가 하나 걸려 있습니다. 그 액자에는 “이 풍랑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라고 씌여 있습니다.
김홍국장로님은 고등학교 3학년때부터 사업자 등록증을 걸고 양계장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김홍국장로님은 시시때때로 변하는 닭 값이, 시세의 영향을 받지 않고 안정적으로 유통을 하려면, 생산 원가를 낮추어야 한다고 판단해서 양계장 옆에 사료를 만드는 공장을 지어서 통합 경영을 시작 했습니다.
그래서 1986년도에 하림 식품을 출발시켜서 양계장과 사료공장을 통합 운영하게 됩니다. 1997년도에는 코스닥에 등록하고 다시 공장을 확장 했는데, 일일 생산 능력 200톤 규모의 닭을 육가공하는 신축 공장을 건립했습니다.
그 이후에 지속적으로 성장을 해서 탄탄일로를 걷고 있는데 어느날 갑자기 전기누전으로 인해서 9000평의 건물이 몽땅 불타 버렸습니다. 그래서 1,000억원이 넘는 손해가 발생 했습니다.
당시에 장로님에게는 재기 불능에 가까운 엄청난 환란이 닥쳐 왔습니다. 김홍국장로님은 잿더미가 된 공장 앞에서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의 간증이 실린 국민일보를 보면, 화재 사건 당시의 고백이 실려 있습니다.
“모태 신앙이지만 저는 교회를 건성으로 다녔습니다! 불이 나자 비로소 저는 영적인 눈이 열리기 시작 했습니다! 불이 난 후에 저에게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성경을 읽게 되었고 성경을 읽는 것이 즐거워졌습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그 다음 장이 궁금해졌습니다. 예배 때마다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던 목사님의 설교가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려오는 놀라운 은혜가 임했습니다. 그래서 제게 불어닥친 고난은 저로 하여금 거듭나서 영적 축복을 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공장이 불탄지 3개월 후에 김홍국장로님이 다니던 이리 신광교회가 건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이리 신광 교회를 건축하는 건축 위원장으로 김홍국장로님을 임명 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지금 다 망해서 알거지가 되었고, 회사도 사태 수습이 안되어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상황인데, 그런 나에게 건축 위원장을 맡겨?” “이런 무식한 목사님이 도대체 어디있어?”하고 항의를 하던지 교회를 떠날수도 있는데 김홍국장로님은 그때 목사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 했습니다.
장로가 된 후에 목사님의 말씀에 이유 불문하고 순종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장로님은 고백을 했습니다. 겉으로는 목사님이 하는 일에 순종하는척 했지만, 속으로는 늘 목사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뭐 일을 저렇게 하나?” 하고 불만과 불평이 많았다고 고백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화재 이후에 하나님께서 장로님에게 겸손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일에 헌신해야 겠다는 감동을 주셨기에, 목사님이 맡기시는 건축 위원장직을 무조건 순종함으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건축위원장이 되어서 교회를 지어야 하는데 어느날 새벽에 하나님께서 "네가 헌신해라” 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장로님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담보로 기백억을 융자해서 하나님께 건축헌금을 드렸습니다.
갚을 여력이 없는데도 무조건 엄청난 목돈을 융자 받아서 건축헌금으로 헌신한 것입니다. 그래서 5년 동안 450억의 예산을 투입하여 한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효율적인 예배당을 지어서 하나님께 봉헌해 드렸습니다.
제가 수년전에 익산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지나가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 변방도시에 저렇게 아름다운 교회가 지어져 있다니 정말 놀랍구나!” 하면서 지나간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 교회가 바로 김홍국장로님의 헌신으로 지어진 교회 였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벌어 졌습니다. 장로님이 융자를 받아서, 빚을 내서 새 예배당 건물을 지었는데, 교회를 짓는 기간에 병행해서, 공장을 재 정비했고 다시 시작한 하림닥과 오리고기 그리고 돼지고기값이 갑자기 승승장구 하더니 닭, 오리, 돼지고기와 사료 부문에서 하루 아침에 국내 점유율 제1위로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기사회생한 하림산업은 그후로 임직원 1,800명에, 시장점유율 21%의 매출을 올리면서 국내 식품산업의 간판 업체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김홍국장로님이 성전건축에 헌신한 이후에 하나님은 물붓듯 그에게 재물의 복을 쏟아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일곡산, 농수산홈쇼핑, 올품, 선진, 맥시칸 치킨, 등 10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게 되었고, 축산분야 전문기업으로 입지를 다지게 되었습니다.
작년에만 해도 11년 연속 브랜드파워 1위(냉장·냉동육 부문), 2년 연속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한국능률협회컨설팅), 4년 연속 한경마케팅대상(마켓프론티어 부문), 4년 연속 GBCI 1위 인증(계육부문, 일본능률협회) 2013 DLG 국제품평회 금메달(독일농업협회) 등 각종 상을 휩쓸었습니다.
하림기업은 매년 천문학적인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작년만 해도 25개 계열사중에서, 양돈 업체인 선진은 2108억원, 농수산 홈 쇼핑은 2108억원, 제일사료, 제일곡산, 천하제일사료는 3063억원, 역시 양돈 업체인, 대상 팜스코는 3537억원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김홍국장로님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과 야곱, 이삭 모두가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면 고난도 축복인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고난과 환란은 고생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축복이라는 것을 깨닳았습니다. 고난중에 깨닫고 하나님 뜻대로 살았더니 하나님께 서 복을 주셨습니다. 이제는 무슨일을 하던지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기에 하나님이 모든일에 복을 주실줄 믿습니다”
지금도 익산 하림 공장의 장로님 집무실과 식당 벽에는 “이 풍랑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라는 찬송가 503장 “고요한 바다로”의 한 구절이 써 붙여져 있습니다.
고요한 바다로 저 천국 향할 때 주 내게 순풍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
내 걱정 근심을 쉬 없게 하시고 내 주여 어둔 영혼을 곧 밝게 하소서 이 세상 고락간 주 뜻을 본받고 내 몸이 의지 없을 때 큰 믿음 주소서
김홍국장로님은 화재 사건이 일어난 그 을씬년스러운 현장에서 이 찬송을 부르면서 기도했고, 하나님께 새로운 헌신을 다짐할 때 하나님께서 재기시켜 주셨다고 고백을 하셨습니다. 장로님은 자기 인생에 찾아온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었고, 그래서 겸손해 졌고, 비로소 그것이 축복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난이 올 때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께 헌신하면, 하나님이 더 큰 축복을 내려 주십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 갑니다. 이제 바울사도는 일어서서 선포 합니다.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지금까지 나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말씀하신 그대로 되었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안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니, 우리 모두 이 풍랑 가운데서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곧 이 배는 한 섬에 걸릴것입니다”(행25:25-26)
바울사도가 일어나서 구원을 선포하자 사람들이 놀라서 바울사도를 바라보기 시작 했습니다. 풍랑이 일기 전에는 들을 척도 안 하던 사람들이, 모두가 귀를 쫑긋 세우고 바울사도의 말을 들었습니다.
처음에, 바울사도는 쇠사슬에 묶여 있었고 그리고 재판을 받으러 가는 죄수였기에 그 누구도 바울사도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바울사도의 말을 미친놈이 넋두리 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보니 저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사도가 처음에 말 한 대로 큰 풍랑이 일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사도가 말 한 대로 화물과 배가 큰 손실을 입었습니다. 모든상황이 바울사도가 말한대로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사도가 다시 구원을 선포 합니다. 그러자 그 순간에 모든 사람들이 “이제는 살 수 있겠구나” 라는 소망이 솟구쳤습니다.
배안의 사람들은 태풍속에서 자기들이 의지하고 자기들의 믿었던 신을 부르면서 기도 했습니다. 그리스 사람은 제우스신을 불렀고, 로마사람은 주피터를 불렀습니다. 바다를 항해하는 선원들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부르면서 기도했고, 태양을 숭배하던 에집트 사람들은 태양신 아폴론에게 기도를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제각각 자기들이 믿는 신들을 부르면서 보름동안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신도 자기들을 구원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비로소 그들은, 한 죄수가 믿는 신이 자기들을 구원해 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신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었습니다.
바울사도는 “내가 속한 나의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이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모든일은 바울사도가 말한대로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배에탄 모든 사람들은 “저 죄수가 믿는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믿는 하나님 때문에 우리도 구원을 받겠구나!” 라는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가 하나님을 경외하면, 우리나라가 살 것입니다. 우리 기업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업을 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실 것입니다. 정부와, 국회와, 법원과, 학교와, 군대와, 사회가 하나님을 경외하면 하나님이 그 모든 처소에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바울 사도처럼 하나님을 믿으라고 선포해야 합니다. 희망의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말씀 드립니다. 유라굴로 광풍은, 행복의 조건으로 여기던 배와 화물과 선박 기구들을 다 빼앗아 버렸습니다. 276명은 죽음의 계곡을 넘나 들면서 공포와 전율에 떨기를 14일간이나 계속했습니다.
이런 생지옥 속에서 인간의 지위와, 명예와, 부귀영화같은 세상적인 것들은 아무런 소용도 없었습니다. 오직 일엽편주 안에서, 침몰하여 익사하지 아니하고 살아 남기만을 소망했습니다.
이런때에 33절과 34절에 보면 바울사도가 모든 사람들에게 이렇게 선포 합니다. “날이 새어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지가 오늘까지 열 나흘인즉 음식 먹기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자가 없으리라 하고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바울 사도는 떡을 들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사실 상황으로 보면 지금은 도무지 감사기도가 나올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바울사도는 떡 한조각을 들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본문에서 “축사”라는 단어는 “감사”라는 말입니다. 바울사도는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풍랑 속에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일반적으로 감사는 부족한 것이 채워 졌을 때, 또는 약한 몸이 강해졌을 때, 아니면 잃은 것을 찾았을 때, 잘되거나 복을 받았을 때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재산이 다 없어지고 모든 것을 다 바다에 버린후에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데 그런때에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19절에 보면 마지막 구원의 방편인 선박 기구들까지 몽땅 버린후에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참된 감사는 내가 하나님 안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드리는 감사가 진정한 감사 입니다.
루이스교수가(C.S.Lewis) 옥스퍼드 대학의 예배당에서 설교를 하고 나오는데 한 학생이 다가와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교수님이 증거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어째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설명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고통을 허용하시는 겁니까?”
그 때 루이스 교수가 역사에 남는 유명한 대답을 했습니다. “고통이 있어도 사람들이 이렇게 교만하게 사는데, 만약에 인생길에 고통마저 없다면 사람들이 얼마나 더 교만하겠는가?”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고통이란 귀먹은 세상 사람들을 깨우기 위한 하나님의 메가폰(확성기)이라네”
유라굴로 광풍도 인간을 흔들어 깨우는 하나님의 확성기였고 바울사도는 그 광풍속에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도 평온할 때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자녀들이 말썽 부리지 않고 잘 커갈 때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남편이 다른 사람들보다 승승장구하며 승진을 잘 할 때와, 손대는 일마다 잘 되고 일이 잘 풀릴 때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그러나 인생 가운데 폭풍이 불고, 풍랑이 밀려올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고통이 변하여 복이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마지막 고난을 견디던 276명의 사람들에게 또 한번 절체 절명의 위기가 닥쳐 옵니다. 배가 암초에 걸려서 파선되어 배에 물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배가 바닷속에 수장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되자 선장과 선원들은 당황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도망가기로 결심을 합니다.(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행27:30) 그런가 하면 로마 병사들은, 다급한 상황에서 죄수들이 도망가면 자기들이 책임추궁을 받겠기에 죄수들을 죽기기로 결심 합니다.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그들을 죽이는 것이 좋다:행27:42)
항해를 강요하면서 고집을 부리던 선장과 선주는 위급한 상황이 되자 도망갈 생각만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사도는 호송되는 죄수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에서 위기를 관리하는 역할을 감당합니다.
우선 바울사도는 275명의 모든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위로의 말을 합니다. 사도행전 27장 24절로 26절을 보면 “어제 밤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환상중에 나타 나셔서 말씀 하셨는데 한사람도 죽지 않고 한 섬에 상륙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 하셨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도망치려고 거룻배를 내리는 선원들을 바라보면서 “저 사람들이 거룻배를 타고 도망가면 다 죽는다! 선원들이 배 안에 있어야 산다!”라고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래서 백부장과 군인들은 거룻배의 밧줄을 끊어서 그들이 도망을 가지 못하게 했고 결국 그들도 살아남게 됩니다(27:31)
바울사도는 먹지 못하고 주린 사람들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면서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행27:33,37)라고 하면서 소망이 없는 사람들의 돌보미 역할을 감당 했습니다.
바울사도는 끌려가는 죄수였지만 위기상황 속에서 마치 선장처럼 자신의 역량을 발휘했습니다. 그래서 절체 절명의 위기를 헤쳐나가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는 캡틴의 역할을 제대로 해 냈습니다. 그래서 276명 모두가 구원을 받게 됩니다.
위기상황에서 누군가가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된 역할을 할 때 문제는 해결 됩니다. 우리도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처럼 위기 앞에 혼절하지 말고 위기 앞에 강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한국 교회가 세월호처럼 위기를 맞이했다고 다들 이구동성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위기의 파도가 아무리 커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기도하면 우리에게도 소망이 있습니다.
위기는 사람의 됨됨이를 드러나게 합니다. 다시 이 사건을 자세히 살펴보면, 배가 깨지고 배에 물이 들어오자 배의 전문가인 선장과 선원들은 도망가기에 바빴습니다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내리는 체하고 거룻배를 바다에 내려놓거늘”(행27:30)
정말 한심한 일입니다. 배와 바다를 무대로 살아가는 전문가 집단이 위기 앞에서 자기들만 달아나는데 앞장을 섰습니다. 수많은 승객들이 죽던 말던 나만 살겠다고 도망을 간 것입니다. 그들은 비겁한 사람들이요, 희생을 모르는 사람들이요, 책임을 회피한 나쁜 사람들입니다. 위기의 때에 인간성이 드러난 것입니다.
로마 군사들도 배가 깨어져 가니까 그 황급한 시간에 죄수가 도망치는 것에 연연하여 그 죄수들을 모조리 죽이려고만 하였습니다(행27:42) 그들도 상황 판단이 편협하고 융통성이 없었습니다. 이런때에 비로소 정신을 차린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기 위해서 병사들의 뜻을 막았습니다. 그래서 백부장은 헤엄칠 줄 아는 이들에게 명령하여 물에 뛰어내려 육지로 헤엄쳐 나가라고 지시를 합니다.
17세기에 영국의 해양 대국 정신은 세 가지 였습니다. 첫째① 배가 침몰하면 여자와 아이들을 먼저 구명 보트에 탑승시킨다. 둘째② 그래도 자리가 남으면 남자를 탈출시킨다. 셋째③ 그래도 자리가 남으면 선원들이 탈출한다.
이런 정신을 가지고 항해를 했기에 혹시라도 배가 침몰하게 되면 선원들은 침몰하는 배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인명을 구조 했습니다. 배가 침몰하여 잠기게 되면 마지막 순간에도 모든 선원들이 도열하여 찬송가를 부름으로서 죽음의 공포를 물리치고 장렬하게 순직 했습니다.
그래서 최대의 호화 여객선인 타이타닉호가 침몰했을 때, 어린이 및 여성 구조율은 78%였고, 남성 구조율은 20%였고, 선원 및 선장 구조율은 0% 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세월호의 구조율을 보면, 선박직에 종사한 선장과 선원들의 구조율은 100%였고, 고교생의 구조율은 23% 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세월호는 선장과 선원들이 살기 위해서 자기들만 도망가는데 급급했습니다. 꽃다운 학생들의 생명 구조는 완전히 나몰라라 하고 도망쳤습니다.
그나마 고교생 23%가 생존한 것은, 자기의 구명 조끼를 제자들에게 벗어주고,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서 배 안의 객실로 뛰어 들어가서 빨리 밖으로 나가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살신성인의 모습으로 학생들을 대피시킨 스물두살의 (故)박지영선생님등 단원고 선생님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위기의 때에 제대로 믿음의 사람인지, 아닌지가 드러나게 됩니다. 평상시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교회가 어려움에 처하거나, 교회가 중대한 사명을 감당할 때 그런때에 용기와 믿음을 가지고 헌신하는 성도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바울사도는 비록 세상적인 계급장은 달지 못했지만 위기의 날에 신앙의 능력, 소망의 능력, 사랑의 능력으로 최고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바울사도는 승객 전원 276명 모두를 구조했습니다. 사망률 0%, 생존률 100%를 만든 캡틴이 된 것입니다.
결국 276명은 바울사도의 말대로 전원 구조가 되어서 멜리데 섬에 상륙해서 겨울을 잘 지내고 다시 알렉산드리아 호를 타고 로마로 가게 됩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도 고난의 때에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이 도와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머리털 하나까지도 세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집중하면 바울사도처럼 귀한 사명을 감당하게 될줄 믿습니다. 그리고 김홍국장로님처럼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헌신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축복을 누리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가 이런 축복을 누리면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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