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정봉임권사님께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주일날 금음동네 잔치가 있는데 효부사을 받게 되어서 이장님이 동네잔치에 나오라는 통보를 받았는데 교회 가야 하기에 못간다고 했더니 얼마다 다그치는지 할수없이 간다고 약속을 했다고 하시면서 교회에 못오시겠다고 하셔서 제가 권사님이 부활줄일에 빠지시면 안됩니다. 하고 말씀을 드렸더니 사정 이야기를 하시면서 나도 상 안받아도 되니까 다른사람 주라고 하는데도 이장이 하도 막무가내로 야단을 해서 할수 없이 승낙을 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고서 안되겠다 싶어서 백광영집사님에게 일러야겠다고 생각하고 믿음이 좋은 큰 아들 백광영집사님에게 전화를 하려다가 며느리 옥연순집사님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옥연순집사님이 저에게 전화를 해서 선은 이렇고 후는 이렇고 해서 시어머니에게 시상식이 끝나면 빨리 교회로 가라고 말씀 드렸다고 하면서 저에게 자상하게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좀 풀어 졌습니다.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세계 제일의 대학중에 하나인 옥스포드 대학의 역사학 교수였던 아놀드 토인비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과거의 역사를 연구하고 이를 기록한 문헌과 유물을 고증해 왔습니다. 그중에 내가 깨닳은 인류 역사상 가장 분명하고도 완전한 사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살아 나셨기에 기독교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삼대 명절은 부활절, 성탄절, 추수감사절입니다. 그중에서도 부활절은 예수님께서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사신 날입니다. 예수님이 부활 하셨기에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예수님과 같이 죽어도 영원히 다시사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부활절을 영어로는 이스터(Easter)라고 합니다. 이스터는 “봄의 여신”을 뜻하는 말입니다. 얼어 붙었던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되면 잠자던 생명들이 약동 합니다. 그래서 부활절은 새 생명을 축하하는 축제일 입니다.
더불어서 부활절이 최대의 명절인 이유는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을 해결 받은 날이기 때문입니다. 현대과학과 의학은 죽음을 정복 하려고 온갖 노력을 거듭하고 있지만 그러나 죽음의 문제는 아무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죽음은 죽음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인류를 가장 불행하게 했던 숙적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죄요, 또 하나는 죽음입니다. 인류가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인류는 창세 이래로 늘 불행하게 살아 왔습니다.
죄와 죽음은 이 세상의 어떤 철학이나 종교가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다 죽어서 땅속에 들어 갔습니다. 위대한 성인들도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심지어는 남의 생명을 구원할 수 있을 것 같이 큰소리를 쳤던 부처나 마호멧이나 공자나 모든 종교 지도자들도 다 죽어서 덩그러니 무덤만 남겼습니다. 지금도 그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무덤을 최고의 성지로 꾸미고 그 무덤을 자랑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예수님의 무덤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무덤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삼일만에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영광중에 부활 하셔서 창조주 하나님의 자리에 다시 앉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11장25-26)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과 동일한 부활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이 죽음입니다. 사람들은 지인의 장례식에 참석하면,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죽을텐데!”라고 생각은 하지만 장례식장을 나서면 또 다시 세상일에 파묻혀서 살아 갑니다. 나에게 죽음이 갑자기 찾아오는줄도 모르고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는 데에는 순서가 없습니다 죽음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나와 먼 이야기도 아닙니다. 지난번에 제가 류금련권사님과 류복례권사님이 대화하는 이야기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이제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나?” 하시면서 두분이 이제는 내 인생을 마무리 할때가 되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죽음을 직시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이라는 문제를 생각하면서 살아 갑니다. 그런데 죽음에 대한 바른 해답을 갖지 못하면 인생이 허무하고 부질없는 것이라는 생각에 회의가 듭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와같이 소중한 생명의 문제를 허탄한 죽음으로 해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떠났다고 자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점수가 안나왔다고 옥상에서 뛰어 내리는 학생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일이 이루어 지지 않았다고 약을 먹고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노인들도 뭐가 마음대로 안되면 “늙으면 죽어야지 늙으면 죽어야지”하면서 넋두리를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죽음에 대해서 명확한 해답을 줍니다. 그 해답은 부활로 완성됩니다. 처음에 말씀 드린것과 같이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25, 26절)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엄청난 말씀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네 가지 축복을 선포 하셨습니다. 첫째는 평강을 선포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숨어 있는 제자들에게 찾아 오셔서 제일 먼저 평강을 선포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20장 19절에 보면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라고 선포 하셨습니다.
그리고 21절에 보면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26절에서도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때에 도마도 함께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 나셔서 평강을 선포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으면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강이 지배 하기에 세상 근심 염려를 다 내려놓고 평안하게 사는 것입니다.
당시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잡아 죽인 그 종교 지도자들이 자기들도 잡아 죽일 것을 두려워 하여 꼭꼭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문이 잠겨 있는데도 불구하고 신령한 몸으로 부활 하셨기에 천사처럼 잠겨있는 문을 그대로 통과하여 집안으로 들어 오셨습니다. 그리고 두려워 떠는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라고 선포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평강을 선포하신 이후에 기적이 벌어 집니다. 두려움과 공포에 떨던 제자들은 두려움을 초월하고 평강의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예수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첫 번째 은혜가 평강입니다. 예수 믿으면 가난해도 행복하고 아파도 소망중에 감사하면서 살아 갑니다. 예수님이 주신 평강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성령을 받으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22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를 믿은 사람은 성령을 받게 됩니다. 성령을 받으면 참된 크리스챤이 되어 하나님의 뜻대로 살수가 있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세상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성령 받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을 받기에 참된 가치를 위해서 살게 됩니다. 그래서 순교도 불사하는 성도가 됩니다.
백 년 전에 영국 성공회의 감독으로 있었는 유명한 롤런드 앨런(Roland Allen 1868-1947) 목사님은 중국에 선교사로 가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 때 한 목사님이 그에게 말하기를 “중국에 간다면 그곳에서 목숨을 바치게 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이 때 감독은 말하기를 “그럴 줄 압니다. 그러나 나는 부활을 믿기에 두렵지 않습니다.”라고 고백 했습니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으면 선교지에서 목숨을 바치는 것이 영광이라고 그는 고백 했습니다. 이런 결단과 믿음은 부활신앙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화여대 초대 총장인 김 활란 박사님도 이런 진리를 깨닳았습니다. 그래서 김환란박사님은 돌아가실 때 “나는 죽는 것이 아니라 하늘 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장례식이라고 말하지 말고 환송식이라고 선포하고 장례를 거행하시오” 그래서 장례식을 치루지 않고 환송식을 거행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성도들의 장례식을 환송식으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어도 천국에 가기에 슬프게 울면서 장례식을 치르지 않습니다.
예수믿은 성도가 죽으면 세상에서는 다시 볼 수 없는 안타까움과 헤어지는 슬픔에 잠시동안은 슬퍼 할지라도 그러나 다시 소망을 가지고 찬송을 부르면서 천국에 들어간 성도를 기뻐하고 축하하면서 장례식을 치르는 것입니다.
예수믿는 사람에게 죽음은 잠시 떨어져 있는것 뿐입니다. 천국에서 다시 만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고 알리는 일에도 사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일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두려워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은 모두 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다가 순교했습니다.
두 번째로 부활하신 예수님은 “성령을 받으라”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사도행전20장 22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를 믿었으면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아야 참된 크리스챤이 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됩니다. 예수믿고 사기치고 예수믿고 여전히 죄를 짓고 예수믿고 덕을 세우지 못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받지 못한 크리스챤들 때문에 기독교가 욕을 먹는 것입니다.
예수 믿었어도 성령받지 못한 기독교인은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군대에 가면 수용연대에 들어갑니다. 수용연대에 있는 군인은 군인이 아입니다. 주특기 검사를 받고 훈련소에서 훈련을 다 마치고 송충이 하나를 받아서 일병 계급장을 달고 다블백을 받아서 자대에 배치를 받아야 비로소 군인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믿었어도 성령받지 않으면 거듭나지 못했기에 여전히 한발은 교회에 한발은 세상에 두고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살아가기에 가짜 신앙인으로 살면서 사기도 치고 죄도 지으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입니다.
오늘 이 예배자리에 서울에서 저의 어머니권사님과 이모님 그리고 큰외삼촌 내외분께서 동참해 주셨습니다. 저에게는 가장 가까운 친족이고 귀한 분들입니다.
이모님은 저의 어머니께서 힘들고 여려울 때 옆에서 많은 도움을 주시고 또 사랑과 위로로서 형제우애의 본을 보여주신 귀한 권사님입니다. 이모님은 한남동감리교회의 권사님으로서 평생동안 성실하게 믿음생활을 해 오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저의 큰 외삼촌께서는 공수 특전단으로 월남전때 맹호부대에 참전하셔서 목숨을 걸고 싸우다가 돌아오셨습니다.
외삼촌께서는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군대에 가셨고, 군대에서 월남전에 참전 하셨는데 한번은 제가 중학교에 다닐 때 외삼촌께서 휴가를 나오셔서 제가 살고 있었던 경기도 파주군 광탄면 신산리로 오셨습니다.
저는 그때의 광경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광탄 우체국 앞에 있는 친구, 구식이네 집 앞 다리밑에서 구식이와 놀고 있는데 외삼촌께서 공수 특전단 군복을 입고, 멋진 베레모를 쓰고 나타나셔서 다리 위에서 “동명아!” 하고 저를 부르셨습니다. 저는 누가 부르나 하고 고개를 돌렸더니 외삼촌께서 공수 특전단 옷을입고 멋진 베레모를 쓰고 위풍 당당한 모습으로 서 계셨습니다.
저는 멋진 특전사 군복을 입은 외삼촌을 보는 순간에 얼마나 기쁘고 자랑스럽던지 온 세상이 다 내것이나 된 듯이 신이나서 “와 삼촌이다! 삼촌 오셨어요?” 하고 삼촌을 부르면서 달려갔습니다. 그날 멋진 외삼촌을 만난 저는 그 이후로 큰 외삼촌을 우리 집안에서 가장 존경하는 지존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춘기 시절을 어머니와 떨어져서 힘들게 보냈습니다. 사실 어머니와 떨어져서 지내는 동안에는 그 누구도 저에게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의지할 사람이 없었던 고난의 사춘기 시절에, 멋진 군복을 입고 제 앞에 나타나신 큰 외삼촌은 저에게 큰 위로가 되었고 큰 힘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위풍당당하고 멋진 큰 외삼촌이 늘 제 마음속에 자랑스럽고 위대한 전사처럼 각인이 되어 있습니다.
외삼촌께서는 저와 제 여동생을 데리고 중국집에 가서 탕수육과 자장면을 사 주셨습니다. 저는 외삼촌을 만난 이후로 오랜 세월동안 큰 외삼촌을 존경하고 흠모하면서 지내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예수를 믿고 보니까, 나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서, 이 구원의 기쁨을 외삼촌과 외숙모님에게도 선물해야 겠다는 생각에, 자주 외삼촌을 찾아가서 예수님을 믿어 보시라고 권면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외삼촌은 사업을 하시다가, 거듭나지 못한 예수믿는 사기꾼에게 여러번 사기를 당하시는 바람에 끝내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지금까지 지내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 하시기를, 누구든지 예수를 믿어야 할 사람의 길을 가로막고 예수를 못믿게 만드는 사람이 있으면 그런 사람은 연자맷돌을 목에 매고 바다에 빠뜨려 죽는게 낫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못믿게 하는 사람이 가장 저주받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성령받지 못하면 예수를 믿으면서도 사기를 칩니다. 그래서 구원을 가로막는 사람이 됩니다. 어제도 어머니 강봉선권사님께서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이 비 인격적으로 행동한 한 성도를 지목하시고는 어떻게 예수를 믿는 사람이 그런 언행심사를 할 수 있냐고 하시면서 탄식을 하셨습니다.
예수 믿어도 성령받지 못하면 속이고 사기치고 염소처럼 들이 받기나하고 가라지처럼 열매가 없고 교만해서 뻣뻣합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으면 거듭나서 온유와 겸손하여 섬기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었으면 반드시 성령을 받고 거듭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예수 믿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마음이 넓어 집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이 생깁니다. 이웃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여기고 도와 줍니다.
부활절이면 늘 말씀드리는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 이야기가 있습니다. 톨스토이의 “부활”이라는 작품 입니다. 톨스토이는 예수님을 믿은 후에 불후의 명작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 중에 최고의 작품이 “부활” 입니다. 이 소설은 톨스토이의 지인이 경험한 실화를 배경으로 쓴 작품 입니다.
러시아의 귀족 청년 “네플류도프”는 청년 때, 시골에 있는 고모 집을 방문 했는데, 거기서 고모가 데려다가 키우는 “카츄샤”를 처음 만나게 됩니다. 카츄샤를 본 네플류 도프는 첫눈에 그녀에게 반해서 그 후로 종종 고모집을 찾아 갑니다.
그러나 그렇게 시작된 만남이 카추샤에게는 비극적인 만남이 되고 맙니다. 군대에 간 네플류도프가 어느날 군위 장교가 되어서 다시 그녀를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전의 순수한 청년이 아니라 이기적이고 동물적인 남자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는 부활절 날 밤에 카츄샤를 유혹하여 그녀를 강간합니다. 그날 네플류 도프는 카츄샤에게 100루블의 돈을 주고 떠나가서 다시는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카츄샤가 임신을 합니다. 임신을 한 카츄샤는 불량한 여자라고 낙인이 찍혀서 고모집에서 쫓겨납니다. 나중에는 아기도 유산하게 됩니다. 그녀는 크게 낙심하여 실의에 빠져 있다가 남의 집에 들어가서 식모 살이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녀는 식모살이를 하는 집 주인에게 또 당하고 이사람 저사람에게 당하면서 지독한 고생을 하다가 결국은 창녀가 되고 맙니다. 그런데 몸을 팔아서 먹고 사는 것도 힘든데 끊임없이 찾아와서 괴롭히는 한 부자 상인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를 증오하던 카추샤는 어느날 그에게 약을 먹게 해서 죽여 버립니다.
살인죄를 범한 그녀는 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네플류 도프는 그동안 법을 공부하고 재판정의 요직 인물이 되어 있었습니다. 어느날 재판정의 배심원 자리에 앉아있던 네플류도프는 재판을 받기위해 법정에 서 있는 한 여자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그녀는 바로 자기가 오래전에 성폭행으로 상처를 입힌 카추샤였던 것입니다.
네플류 도프는 그녀의 조서를 보면서 그녀가 오랜 세월동안 비참한 인생을 살다가 결국 사람까지 죽여서 법정에 서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됩니다. 자기가 저지른 죄로 인하여 그녀가 비참한 인생을 살아온 것을 깨닳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카추샤를 도와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가 혼신의 힘을 다해서 애쓴 결과 사형은 면했지만 그러나 카추샤는 시베리아로 귀향을 가는 형벌을 받게 됩니다. 시베리아로 귀향을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합니다. 누구든지 거기서 고생 끝에 죽고 맙니다.
네플류도프는 그녀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 하다가 그녀에게 용서를 빌어야 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네플류도프는 카추샤를 만난후에 “영혼의 대청소”작업을 시작합니다. 그는 지금까지 아무도 모르게 지속해온 한 유부녀와의 불륜 관계를 청산합니다. 그리고 결혼 상대로 사귀어온 크르차진 가의 처녀 “미시”와도 인연을 끊습니다. 토지 문제의 부정한 일들도 다 청산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카추샤에 대한 자기의 죄가 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카추샤를 마나서 용서를 비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감옥에 있는 그녀를 찾아가서 그녀에게 결혼을 신청합니다. 그러나 카추샤는 그의 청혼을 거절합니다. 오히려 카추샤는 그에 대해서 증오와 불신의 감정만을 보여줍니다.
그녀가 시베리아로 떠난후에 네플류 도프는 심히 큰 갈등에 빠집니다. 자기의 실수로 말미암아 인생이 망가진 그녀를 생각 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괴로워 했습니다. 고민을 하던 네플류도프는 결국 카추샤를 돕기로 결심하고 그녀를 따라서 시베리아로 갑니다.
그런데 시베리아로 가는 길에 한 여인숙에 머물게 된 네플류도프가 우연히 방에 놓여있는 성경을 읽다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야기를 읽고서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이 세상 모든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밖혀 죽으시고 대속의 죽음을 통하여 모든 죄인들을 구속 하셨다는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주님이 부활하셔서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신다는 말씀을 읽고 가슴이 뜨거워 집니다.
네플류도프는 자기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자리에 엎드려서 주님을 영접하고 예수님께 진심으로 회개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자 성령께서임하셔서 그는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는 그날 이렇게 고백 합니다.
“이제는 카츄샤를 만나서 사과하자! 어린애가 빌듯이 솔직하고 진실하게 빌자, 그리고 주님께 모든 것을 고하고 도움을 청하자! 주님 저를 도와주소서, 저의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제 인생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주소서! 제가 새사람이 되어서 새출발을 하겠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 하면서 뜨거운 참회의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카추샤를 만나서 그녀를 돕고 그리고 나서 그는 예수님처럼 살아 갑니다. 이것이 바로 톨스토이의 “부활”이라는 소설의 줄거리 입니다.
이와같이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새로운 인생이 펼쳐 집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회개하면 성령님이 임하셔서 새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면 모든 죄가 씻겨 집니다. 과거에 무슨죄를 지었던지 예수님이 다 용서해 주시고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세 번째로 부활하신 예수님은 23절에서 죄를 용서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요20:23)
남을 용서해야 우리가 마지막 심판날에 하나님의 긍휼을 입게 됩니다. 미국에서 자기 주변에 훌륭한 인재들과 충성된 일꾼들을 가장 많이 둔 재벌은 강철왕 앤드류 카아네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느날 칼럼니스트가 카아네기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미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인재들과 가장 충성된 일꾼들을 거느리고 있는 경영자로 유명한데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카아네기는 “그 비결은 용서입니다. 예수님은 용서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와 관계된 모든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서 살아 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엄청난 복을 주셨습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카아네기는 자기가 경영자가 된 이후에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든 실수와 모든 잘못을 다 용서해 주었습니다. 아무리 큰 실수를 하고, 회사에 아무리 엄청난 손해를 입혔더라도 고의가 아니요 열심히 일하다가 실수한 것은 어떤 잘못이든지 다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직원들은 그런 경영자 카아네기를 위해서 더욱 충성을 다해서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와같이 충성된 직원들을 거느린 카아네기는 세계 제일의 철강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나중에 전 재산의 80%를 사회에 환원하는 결단을 통해서 인류역사에 길이 빛나는 족적을 남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래서 용서받고 또 용서할줄 아는 사람이 되는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죄를 용서받지 않고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활 하신후에 가장 중요한 당부중에 한가지로 “너희는 누구의 죄든지 용서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끝으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 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하셔서 당부하신 마지막 부탁은 전도와 선교 명령입니다. 우리가 이 사명을 잘 감당하면 하나님께서 그에 합당한 분복과 축복을 상급으로 주신다고 주님은 분명히 약속해 주셨습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예수님이 부활 하셨기에 우리도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모든 죄도 사함받고 평강을 누리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믿은 우리는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는 믿음의 사람, 성령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죄사함 받은 것처럼 나도 나에게 죄를 지은 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함으로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의 증인이 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쪼록 이 복된 부활절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주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면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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