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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5년9월20일주일낮 창32장22-30 야곱의 번민과 브니엘의 축복

그리운시냇가 2015. 9. 20. 16:32

 

인생을 살다보면 예기치 못한 크고 작은 어려운 일들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고난은 축복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성경은 그 어느 곳에서도 고난이 저주이며 하나님께 버림받은 증거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고난은 축복의 전주곡과 같은 것이라고 증거합니다.

 

로마서 818절에 보면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말씀합니다. 고난이 크면 클수록 우리에게 다가오는 은혜와 축복이 더 크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영광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시편 기자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119:71)라고 고백합니다.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깨닫고 순종하게 되었고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하여 우리를 깨뜨리시고 변화시키시고 영적으로 성장시키셔서 귀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은 귀한 인물들은 모두가 고난을 믿음으로 잘 통과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야곱과 에서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야곱의 집안은 무엇을 해도 잘 되고 계속해서 복을 받습니다. 심지어는 죄를짓고 도망치고 사기치고 형편없이 사는데도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복을 주십니다.

 

반대로 에서는 타고난 강성과 장점이 많은데도 이상하게 되는일이 없습니다. 가면 갈수록 축복에서 멀어집니다. 에서의 집안은 무엇을 해도 안 되는 집안입니다.

 

이삭은 리브가와 결혼을 해서 쌍둥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먼저 태어난 에서는 형이 되었고 뒤따라 나온 야곱은 동생이 됩니다. 그런데 야곱은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형이 되고 싶어서 에서에게 싸움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해산할 때에도 야곱은 자기가 먼저 나오려고 에서의 발굼치를 잡고 따라나왔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에서와 야곱은 이스라엘 자손의 양대 산맥이 됩니다. 에서의 자손은 에돔족속이 되고 야곱의 자손은 이스라엘족속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야곱의 자손을 택하여 하나님 나라 자손을 삼았습니다. 에서의 후손은 마귀의 나라 즉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나라가 됩니다.

 

야곱의 후손과 에서의 후손은 자자 손손이 싸우는 관계가 됩니다. 야곱의 식구 70명이 요셉의 초대로 애굽으로 이민을 가서 거기서 400년을 살았습니다. 야곱의 후손은 200만명이 되었고 대 민족이 되어서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때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땅으로 인도했습니다. 그런데 40년 광야 생활을 하다가 드디어 가나안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가나안 초입에서 에서의 자손인 에돔왕을 만나게 됩니다.

 

모세는 에돔 왕에게 사람을 보내서 당신과 우리는 형제입니다. 우리는 애급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이제 돌아 오는 중입니다. 청이 하나 있습니다. 에돔 땅을 그냥 지나가게만 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우물물도 건드리지 않고 밭이나 포도원도 비켜 가겠습니다. 길만 열어 주시기 바랍니다”(20:14-17) 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에돔왕이 단호하게 거절하면서 안 된다 만일 우리 땅을 통과하게 되면 칼로 너희를 맞이할 것이다”(20:18) 라고 선언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돌이켜서 먼길을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에서는 하나님이 주신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팔 정도로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무시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에서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거나 기도했다는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본래 에서는 훌륭한 믿음의 조상들을 두었습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에서의 아버지 이삭도 온전히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에서는 그런 믿음을 본받지 않고 자기 뜻대로 행했습니다.

 

한편 야곱은 조상들의 믿음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축복이 야곱으로 흘러간 것입니다.

 

창세기 361절로 5절에 보면 에서의 결혼 이야기가 소개 됩니다. “에서 곧 에돔의 대략이 이러 하니라. 에서가 가나안 여인중 헷 족속중 엘론의 딸 아다와 히의 족속중 시브온의 딸 아나의 소생 오홀리바마를 자기 아내로 취하고, 또 이스바엘의 딸 느바욧의 누이 바스맛을 취하였더니 아사는 엘리바스를 에서에게 낳았고 바스맛은 르우엘을 낳았고 오홀리바마는 여우스와 얄람과 고라를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들이요 가나안 땅에서 그들에게 낳은 자더라”(36:1-5)

 

에서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이방 여자 세 명과 결혼을 합니다. 그때부터 에서는 하나님과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서 같은 핏줄, 같은 민족과 결혼하고 돌아와서 하나님을 극진히 섬기는 가정이 됩니다.

 

에서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이유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여인과 결혼한 후에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주 나라의 왕은 청렴결백하게 통치하면서 백성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나라가 점점 강성하여 태평성대가 이루어 졌습니다. 그런데 나라가 부강하고 태평성대가 되자 왕이 점점 교만해졌고 마음이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날 왕이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라가 이만큼 부요해 졌으면 이제는 나무 젓가락 대신 상아 젓가락을 사용해도 되지 않겠느냐?”

 

그 말을 들을 신하들은 하나같이 지당하신 말씀입니다라고 하면서 당장 상아 젓가락을 만들어 올리겠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런데 유독 한 신하는 말없이 어전을 물러 나왔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슬퍼하다가 결국 자리에 누웠습니다.

 

충성된 신하가 병이 났다는 말에 다른 신하들이 그 집을 방문했습니다. 왜 병이 났는지 물었더니 상아 젓가락을 만들어 올리라는 말에 근심하다가 병이 났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른 신하들은 그까짓 상아 젓가락 하나 가지고 뭘 그렇게 상심합니까? 다시 일어나서 나랏 일에나 전념하십시다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그 신하는 지금 당장은 상아 젓가락이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지만 그 후가 문제입니다. 상아 젓가락을 해드리면 얼마 후에 은젓가락 금젓가락을 찾고 그 다음에는 산해진미를 요구하고 그 다음에는 금 자개상을 요구하고 그 다음에는 아름다운 여자들을 대령하라고 할 것입니다.

 

그 후에는 왕이 아방궁과, 대궐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러면 백성들의 세금은 늘어 날 것이고, 국력이 약해질 것입니다. 그런때에 적국이 쳐들어 오면 우리나라는 끝장이 납니다. 사실 상아 젓가락 속에는 나라의 운명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근심하다가 병이 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에서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에서도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믿음을 이어받으려고 노력 했습니다. 그 증거가 자식들의 이름에 담겨 있습니다.

 

에서가 비록 이방여자와 결혼했지만 믿음의 가정 답게 자식들의 이름은 신앙적으로 지었습니다. 이방여인인 아다에게서 낳은 아들의 이름을 엘리바스라고 지었는데 엘리바스는 하나님의 힘이라는 뜻입니다.

 

바스맛에게서 낳은 아들 르우엘하나님의 친구라는 뜻입니다. “오홀리바마에게서 낳은 아들 여우스하나님이 재촉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어서 오홀리바마에게서 낳은 둘째의 이름을 얄람이라고 지었는데 얄람은 하나님이 감추시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와같이 에서가 처음에는 자식들을 낳고서 할아버지와 아버지처럼 자식들의 이름을 신앙적인 이름으로 지었습니다. 그런데 이방여인과 결혼해서 사는 동안에 에서가 이방 땅으로 이사를 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과 아주 멀어지는 생활을 합니다.

 

에서가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들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의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얻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 동생 야곱을 떠나서 타처로 갔으니”(36:6)

 

에서가 이방땅에 가서 살면서부터 자식들의 이름이 180도로 달라집니다. 신앙적인 모습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에서는 다시 아들을 낳고 데만이라고 지었는데 데만은 나의 오른쪽에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 다음에 다시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오말이라고 지었습니다. 오말은 말이 유창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다시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스보라고 지었습니다. 스보는 행운아라는 뜻입니다. 에서는 세월이 흐를수록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모습으로 변해 갔습니다. 그에게서 하나님의 냄새는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이삭과 어머니 리브가는 이런 에서를 바라보면서 근심했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에서가 40세에 헷 족속의 여인들을 아내로 취하였더니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의 근심이 되었더라”(26:35)

 

부모의 근심이 된 에서는 하나님과 점점 멀어졌고 나중에는 구원의 반열에서 벗어나서 버림받은 족속이 되고 맙니다. 우리의 가문은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가문이 되어야 합니다.

 

옛날에는 미국에 가려면 대사관에 가서 서류를 내고 인터뷰를 해야 하는데 친구 목사님이 미국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는 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인터뷰를 하면서 영사에게 나는 3대 목사 가정입니다라고 했더니 영사가 그러면 따질 것도 없네요라고 하면서 미국 비자를 주더랍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가문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목사님과 장로님이 배출되고, 교회를 짓고, 선교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헌신하는 가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면서 이 땅을 떠나지 말아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12:1-2)

 

그 후에 아브라함은 문제가 생겨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다해도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 왔습니다. 아들 이삭도 흉년을 피하여 여기 저기 다른 땅으로 이사를 가서 산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삭도 결국은 가나안으로 돌아 왔습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란으로 가서 20년을 살았지만 결국은 가나안땅, 약속의 땅,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으로 돌아 왔습니다. 야곱의 가족 70명이 가나안을 떠나 애급에 가서는 400년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다 돌아 왔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서도 70년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돌아왔습니다. 야곱의 후손은 어디로 가든지 가나안으로 돌아 오는 역사요 하나님이 계신곳을 찾아서 돌아 왔습니다.

 

그러나 에서와 에서의 후손은 가나안을 영원히 떠났습니다. 돌아 올 생각도 하지 않고 제멋대로 살다가 이방사람과 섞여서 이방사람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에서는 가나안 땅에서 얻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세일산으로 가서 호리 족과 함께 살았습니다. 에서는 축복의 땅을 떠나서 이방 땅에서 사는 동안에 하나님과 멀어졌고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말았습니다.

 

할아버지보다 아버지가 잘 살고, 아버지보다 아들이 잘 살고, 그 후손은 더 잘 되어야 좋은 가문입니다. 야곱의 자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헌신하고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이바지하는 자손들이 줄줄이 배출 되었습니다.

 

그러나 에서의 족보에는 사회에 공헌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거나 성전을 짓거나 하나님을 위해서 희생한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성경에는 에서의 족보도 소개 합니다. 그런데 수 백년동안 족보가 이어지는 동안에 에서의 후손중에는 딱 한가지 사건만 소개 됩니다.

 

시브온의 자녀는 아야와 아나며 이 아나는 그 아비 시브온의 나귀를 칠 때에 광야에서 온천을 발견하였고”(36:24)

 

에서의 후손에 대한 기록중에 유일하게 아나라는 사람이 온천을 발견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세일 산에는 그 때 에서의 후손이 발견한 온천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온천 하나 발견해서 온천을 관리하면서 돈을 벌어 먹고 산 것이 에서의 후손이 한 유일한 일입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족보입니다.

 

어제 박경호인테리어 사장님으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길고 긴 장문의 안부 문자와 함께 마지막에는 이제부터는 술도 담배도 줄이고 꿔다논 보리짝 취급하던 마누라를 챙겨 가면서 재미있게 살겠습니다라는 문자를 보내 주셨습니다.

 

저도 그동안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까 그렇게도 엄청난 사랑으로 우리 남해세광교회를 사랑해 주시고 성전을 짓는일에 온맘다해 헌신해 주시고 또 하지 않아도 될 일들까지 해 주시고 임승미회장님을 소개해 주셔서 아름다운 고급 가구까지 선물을 받도록 주선해 주신 박경호사장님에게 인사 문자도 못보내고 있었는데 추석을 맞이하여 저에게 먼저 안부 문자를 보내 주신 박사장님을 생각할 때 송구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박경호사장님께서 보내주신 문자를 보면서 한 집사님에 대한 간증이 생각 났습니다. 이 집사님이 예수 믿기 전에는 술, 담배, 놀음 그리고 주색잡기와 육림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분이 천재일우의 기회로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이분이 도박을 끊고 이성 관계도 버리고 급기야 술도 끊었습니다. 그리고 점점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 갔습니다.

 

그런데 다 끊었는데 담배만은 끊지 못 했습니다. 어느날 목사님이 그분에게 담배만 끊으시면 이제 새사람이 되시는 겁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의 권면을 들은 그분이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성경에 담배 피우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까?”

 

목사님은 그분에게 그럼 성경은 믿으시나요?” “! 믿습니다. 예수 믿고 보니까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기 시작 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말씀 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성도님이 담배를 피울 때마다 예수님은 매번 화생방 훈련을 하는것과 같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에게, 성도님이 담배를 피울때마다 화생방 훈련을 시켜서야 되겠습니까? 담배 피우실 때마다 예수님은 방독면을 쓰셔야만 합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힘드시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그 성도가 담배를 끊고 새출발을 해서 지금은 충성된 장로님이 되셨다고 합니다. 예수를 믿었으면 점점 변화되고 달라져야 합니다.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지난 주일날 인태균목사님 가족들이 다녀 가셨습니다. 그런데 인태균목사님께서 수요일날 밤에 전화를 하셔서 목사님! 내가 목사님과 함께 다녀올 곳이 있는데 시간좀 내주세요하고 전화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목요일날 아침에 인태균목사님댁에 가서 목사님 내외분을 모시고 한 장로님댁을 방문 했습니다. 그 장로님은 중소기업을 운영하면서 과거에 주색잡기에 빠진적도 있었지만 나중에는 충성된 믿음으로 장로님이 되어서 선교지에 교회도 짓고 밥퍼목사님인 최일도 목사님도 수십년간 도와 주시고 가난한 교회들도 도와 주시면서 평생동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을 많이 하신 장로님 이셨습니다.

 

그런데 장로님과 권사님이 병이 들어서 힘들게 지내고 계시기에 그 장로님댁에 가서 기도도 해 드리고 또 장로님과 대화도 나누려고 그 장로님댁을 방문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장로님의 아내 권사님으로부터 은혜스러운 간증을 들었습니다. 장로님께서 한창 잘나갈 때에 집안에 식모를 들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권사님은 잠자는 시간 이외에는 늘 기독교 방송을 틀어 놓으시고 지냈는데 그 기독교방송을 듣던 식모가 어느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권사님은 그 식모를 딸같이 여기고 사랑하면서 돌보아 주었는데 나중에는 그 가정부를 데리고 교회를 다니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가정부가 은혜를 받더니 점점 믿음이 자라서 나중에는 신학공부를 하겠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권사님께서 학비를 대 주셔서 신학공부를 하고 전도사가 되어서 졸업을 한 후에는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전도사로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분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수십년동안 충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그리고 장로님과 권사님을 친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대하면서 지금도 시마다 때마다 찾아와서 섬기고 기도를 해 주신다는 간증을 해 주셨습니다.

 

내 집에서 종처럼 일하는 가정부나 일군들이 예수믿는 주인을 따라서 예수 믿기가 쉽지 않습니다. 같이 살다보면 때로는 주인에게 야단을 맞고 때로는 핍박을 받고 무시를 당하기가 일수 이기에 그게 상처가 되어서 오히려 하나님을 등지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이 권사님이 얼마나 사랑으로 배려하고 주님의 마음으로 선대 했으면 그 가정부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종까지 되었겠습니까? 그래서 저와 제 집사람이 그 권사님의 간증을 듣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인태균목사님 댁에서 한 남자를 만났는데 인태균목사님께서 그분을 저에게 소개 하면서 이분이 법무부 산하에 있는 기관에서 재소자들에게 좋은 일을 하면서 지내는 법조계의 일군입니다라고 소개를 해 주셨습니다.

 

저는 법조계에서 일을 한다기에 법원이나 변호사사무실에서 일하는 서기쯤 되는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우를 갖추고 인사를 나눈후에 대화를 나누는데 이분이 처음 만난 자리에서 대뜸 하는 말이 목사들중에는 사기꾼이 많고 엉터리 목사가 많아서 나는 목사들을 안좋아 합니다라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서 마음이 조금 움츠러 들었습니다. “요즘 하도 잘못하는 목사들이 많아서 목사들에 대한 비판과 정죄가 많은데 이분도 목사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분이구나라는 생각에 제가 의기소침 해 졌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요즘 목사들이 덕을 세우지 못해서 말들이 많은데 그래도 좋은 분들도 많습니다했더니 이분이 목사들은 자기밖에 모르고 교만하고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고 내멋대로 살아가는 목사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사들을 싫어합니다합니다.

 

그러면서 내 안에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나는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말하고 시키는 대로 행동합니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이분이 아주 신령한 분이구나! 나도 책잡히지 않도록 언행심사를 조심해야 겠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긴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모님이 밥을 차려 오셨는데 밥을 두숫갈쯤 떴는데 갑자기 그분이 내 안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을 모시고 삽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기에 나도 하나님입니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제가 밥숫가락을 놓고서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내가 하나님이라는 것은 교만해진 마귀가 하는 말입니다 혹시 예수님을 영접 하셨습니까?” 했더니 예수님을 왜 영접합니까? 내가 하나님인데 왜 예수님을 영접합니까?” 합니다.

 

그러면서 목사들이 주제파악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면서 엉터리로 가르치니까 교회가 엉망이 되고 성도들도 이단이 됩니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이제보니 당신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씻음을 받고 죄사함을 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십자가 보혈로 죄사함을 받지 못하면 교만해져서 마치 마귀가 자기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말한 것처럼 이상한 사람이 되고 이단이 됩니다 그러니 이제라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죄사함 받고 새사람이 되어야 합니다했더니

 

이분이 내 머리위에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안보입니까? 내 머리위에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안보이면 당신은 가짜 목사입니다!”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내 마음속에 있습니다 천국도 내 마음속에 있습니다 하늘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천국은 내 마음속에 있습니다합니다.

 

그분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 보니가 이분이 아주 교묘하게 사람을 미혹합니다. 그분의 말을 들어보면 틀린말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내 마음속에 있다는 말도 맞고 하늘나라가 내 마음속에 있다는 말도 맞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나라가 마음에 임하는 것이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절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속에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말하는 것은 속이는 것입니다. 이분은 하나님의 나라나 천국은 내 마음속에만 있지 저 천국에는 없으니까 그런말은 믿지 말라고 하면서 하늘나라는 없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분이 저에게 "내 위에 지금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안보입니까?"라고 물으면서 마치 영적으로 자기가 신령한 사람처럼 행동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눈에 안보이는 사람은 자기보다 저급한 신앙인으로 취급하려는 말을 합니다.

 

저는 처음에 인태균목사님께서 이분을 소개할 때 이분이 우리집에 자주 놀러오고 나와 절친한 동네분입니다 이분이 법조계에서 일을 합니다라고 하길래 정중하게 인사를 나누고 정중하게 대화를 했는데 알고 보니까 이사람은 완전히 사탄마귀에게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이런 사탄마귀에 사로잡힌 사람을 그냥 둘수는 없다는 생각에 지금당장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으셔야 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당신은 교만한 사탄마귀의 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제부터 이렇게 하십시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더러운 사탄마귀는 내게서 떠나라 라고 고백하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사함을 받고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랬더니 이사람이 밥을 먹다말고 일어서서 밖으로 나갑니다. 그래서 따라 나가서 대청마루에 서서 내 말을 잘 들으세요 이제부터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더러운 귀신아 내게서 떠나가라 라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더러운 귀신이 나갈 겁니다했더니

 

이분이 내 평생에 이렇게 무서운 사람은 처음 보겠네 아이고 무서워라 난 갑니다하면서 줄행랑을 쳤습니다.

 

그래서 다시 들어와서 인태균목사님에게 목사님! 저 사람 뭐하는 사람입니까?” 했더니 그제서야 목사님이 사실은 저사람이 우리동네 사람인데 동네 사람과 싸워서 감옥에 가서 수년동안 감옥살이를 하고 나왔는데 종종 교도관들이 불러서 순화교육을 받으러 간다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법조계에서 일한다는 말은, 저사람이 전과자인데 전과자 교육을 받으러 다닌다는 말을 우회해서 법조계에서 좋은일을 한다고 저에게 이야기를 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법조계에서 일을 한다고 해서 무슨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을 하거나 아까 말씀 드린대로 법원같은 곳에서 서기나 또는 브로커일을 하는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완전 왕마귀가 들려서 교만하기 이를데 없는 귀신들린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 귀신이 들리면 자기를 높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 됩니다.

 

에서가 그랬습니다. 에서는 본래 아브라함의 증손자입니다. 그것도 장자입니다. 하나님은 에서를 통해서 구세주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려고 계획 하셨습니다. 그 계획을 증조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아들 이삭에게 가르쳐 주었고 이삭은 그 축복을 큰아들인 에서에게 넘겨 주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을 등한히 여겼습니다. 그래서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흐르는 장자권을 그렇게 헐값에 팔 정도로 하나님의 축복을 무시했습니다.

 

게다가 에서는 이방 여자와 결혼해서 이방 땅으로 떠난후에 이방사람들과 어울려서 살았고 하나님이 축복하신 가나안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을 외면한 에서를 버리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하나님과 동행한 야곱에게 그 모든 축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된 결정적인 이유가 오늘 본문에 소개 됩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3224절에 보면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라고 증거 합니다.

 

야곱은 거부가 되어서 돌아올 때 얍복강 나룻터에서 형 에서에게 줄 예물과 가족들을 먼저 보내고 홀로 남아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날 밤은 그의 생애 가운데 가장 길고 고독한 밤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일이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 속에서 깊이 번민한 밤이었을 것입니다.

 

그밤이 새고나면 야곱은 20년간 자기를 죽이려고 칼을 갈아온 형 에서를 대면해야만 합니다. 야곱은 이제는 더 이상 도망갈 수 도 없고 마냥 피할 수만도 없습니다. 그래서 홀로 남은 야곱이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기도하는 일 밖에 없었습니다.

 

기도가 간절해지면 하나님 앞에서 무릎이 꿇어지고 머리도 저절로 숙여집니다.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다 보면 자세가 마치 레슬링 선수처럼 등이 휘게 됩니다. 운동경기 가운데 가장 힘들고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운동이 레슬링입니다.

 

레슬링을 하는 사람은 손에 아무런 도구도 없이 경기에 임합니다. 유도 선수 같으면 잡을 옷깃이라도 있지만, 레슬러들은 몸에 딱 붙는 옷을 입고 잡을 것도 없는데다 자세를 낮추고 상대를 눌러 넘어뜨리고 온몸으로 짓누르면서 상대를 제압해야 하기에 대단히 힘이 드는 경기입니다.

 

더구나 레슬링은 매우 위험한 운동입니다. 바닥에서 서로 비비다 보면 귀가 닳아서 없어집니다. 게다가 같이 붙잡고 씨름하다가 잘못 넘어지거나 던져지면 목뼈나 척추가 다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런데 얍복 강가의 야곱이 그런 상황이 됩니다. 기도를 하는데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야곱을 붙잡는 바람에 야곱이 놀래서 그사람과 씨름을 하게 됩니다 아마도 야곱은 그사람이 에서의 첩자인줄 알고 지면 죽을가봐서 필사적으로 씨름을 했습니다. .

 

야곱과 씨름한 인물은 신비스러운 인물입니다. 성경에는 오직 그 사람이라고만 기록되어 있는데 그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3230절에 보면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라고 증거 합니다.

 

야곱은 자기가 만난 그 사람을 하나님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신비스러운 사람은 여호와의 사자”(The Angel of the Lord) 또는 천사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분이 바로 성육신하기 이전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야곱은 밤새 예수 그리스도와 씨름을 했습니다. 우리 인생도 때로는 이처럼 외로운 기도의 씨름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존 칼빈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모든 종들은 하나님과 씨름하는 씨름꾼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어두움 속에서 홀로 하나님과 씨름해야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좌절감 때문에, 때로는 고독감 때문에, 때로는 상실감 때문에, 때로는 몰려오는 두려움 때문에, 때로는 허무감과 배신감 때문에, 혹은 내재하는 죄성 때문에, 누구든지 어둡고 캄캄한 밤에 하나님과 홀로 씨름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하나님과의 씨름은 하나님이 이기시는 씨름이 아닙니다. 25절에 보면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 즉, 성육신하기 이전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야곱을 이기실 능력이 없었겠습니까? 그분은 야곱을 이길 능력이 있는 분입니다. 25절 후반 절에 보면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잠깐 만졌을 뿐인데(touch) 야곱의 환도뼈가 위골되었습니다. 만지기만 해도 야곱을 완전히 KO패 시키실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이 야곱에게 졌다는 데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다라는 말이 생각 났습니다. 아들이 부모의 마음에 들지 않는 여자와 결혼을 하겠다고 할 때 그것을 말리고 떼어 놓으려고 했더니, 자식이 그것 때문에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것을 보면 부모가 더 이상 반대를 하지 못합니다.

 

공연히 잘못되는 것 보다는 마음에 내키지는 않지만 결혼을 시켜주는 것이 더 낫겠다고 판단해서 부모가 결국 져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식의 슬픔은 부모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부모가 져주는 것입니다.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하면 절대로 이기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야곱에게 져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지는 편을 택하신 것입니다. 져주시는 이유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져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씨름하면 우리가 이깁니다. 하나님과 씨름하면 우리가 다 이깁니다.

 

다섯 살짜리 어린 아이가 아빠하고 팔씨름하면 아이가 이깁니다. 아빠가 지는 이유는 능력이 없어서 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에 져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씨름하면서 기도하는 기도제목은 반드시 응답받고 승리하게 됩니다.

 

늘 본문 창세기 3225절에 보면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라고 증거 합니다.

 

한글성경에는 쳤다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영어성경(NIV)에는 “Touch”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강하게 타격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만진 것입니다. 만졌을 뿐인데 환도뼈가 위골되었습니다.

 

환도뼈란 엉덩이를 받쳐주는 고관절(Hip Joint)입니다. 이분이 그냥 만졌는데 야곱의 고관절이 어긋나게 됩니다. 관절이 어긋나면 통증과 함께 꼼짝 못합니다. 그래서 레슬링을 하는 선수가 고관절이 어긋나면 엄청난 고통으로 인해서 결국 기권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환도뼈가 어긋나서 하체의 힘을 다 잃었는데도, 남아 있는 상체의 힘을 이용해서 그 사람을 꽉 붙들었습니다.

 

그런데 날이 밝으면 야곱이 자신의 얼굴을 직접 보게 되기에 그 사람은 빨리 떠나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백주대낮에 야곱과 대면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라고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32:26) 라고 하면서 이 사람을 놓지 아니하고 끝까지 붙잡았습니다.

 

야곱은 울면서 매달렸다고 호세아서 124절은 증거 합니다. “야곱이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야곱은 울면서 부르짖어 간구 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깊이 생각해 볼 문제가 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선택받은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지금 몹시 곤고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지금 야곱과 씨름하는 그 사람이 성육신하기 이전의 예수 그리스도시라면 마땅히 야곱을 도와주셔야 하는데 어찌해서 야곱을 찾아와서 대적자처럼 야곱과 씨름을 하시는것일까?” 이게 궁금합니다.

 

야곱에게 용기를 주고 격려를 해 줘도 시원찮을 마당에 예수님이 야곱과 씨름하는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야곱이 현재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보다 야곱의 성품을 변화시키려는 보다 큰 뜻이 그분에게 있었습니다.

 

야곱의 기도는 당장 눈앞에 다가온 문제들을 해결해 달라는 간구를 하고 있지만, 주님은 야곱의 본성 자체를 다루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마치 이런 것과 같습니다. 어린 아이가 아빠에게 돈을 달라고 하면 아빠의 관심은 그 돈을 가지고 무엇에 쓰려고 하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돈을 어떤 용도로 지출할 것인지를 묻습니다. 아빠의 관심은 이 아이가 어떤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돈을 사용할 것인지를 확인해서 꼭 필요한 일에 돈을 쓰는 좋은 아이가 되게 하기 위해서 확인을 하고 또 교육을 시킵니다.

 

야곱과 씨름을 하던 이 사람은 27절에서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나는 야곱이니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야곱이라는 뜻은 우리가 배워서 아는대로 나는 남을 속이는 사기꾼이요, 남의 것을 빼앗는 찬탈자입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관심은 이런 사기꾼과 같은 야곱을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사람으로 바꾸려고 밤새도록 그와 씨름하신 것입니다.

 

로마서 829절에 보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세전에 미리 아시고, 미리 구원하시기로 정하신 목적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까? 그 이유는 성품의 변화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성도이지만 아직도 성화되지 못한 부분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과 같은 문제점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현세적인 기도제목을 이루어 주시기 전에 먼저 네 속에 나를 닮지 않은 영역이 있다라는 문제를 다루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편의 영혼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했던 사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믿고 30년 동안 기도를 했습니다. 심지어 남편 구두를 강대상 앞에 갖다 놓고 이 구두의 주인이 이 곳에 나오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남편은 믿음을 가질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께 이렇게 항변합니다. “기도하면 들어주신다더니 왜 안들어 주시나요?” 그러면 하나님은 이렇게 응답하실 것입니다. “너는 네 남편의 영혼을 감동시킬 만한 그리스도인의 성품을 남편에게 보여주었느냐? 네가 남편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품을 남편에게 보여주면 내가 응답해 주마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야곱에게 그의 부패한 본성부터 다루시고 변화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것을 깨닳은 야곱은 비로소 기도가 바뀝니다.

 

26절에 보면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야곱이 밤새도록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는 제발 나를 에서에게서 구원해 주십시요!”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사기꾼 같은 내 본성을 나도 어찌할 수 없으니 내게 복을 주사 나를 변화시켜 주십시요로 기도가 바뀌었습니다.

 

참된 기도는 이렇게 기도 자체가 바뀌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아뢰는 것으로 기도를 시작하지만 깊이 기도하다 보면 나중에는 하나님 앞에서 내 영혼을 변화시켜 주세요라는 본질적인 문제로 바뀝니다.

 

야곱은 이제 울면서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야곱이 하나님 앞에서 진실로 굴복하자 드디어 남은 문제들은 저절로 해결이 됩니다. 야곱이 사기꾼인 나에게 복을 주셔서 나를 변화시켜 주십시요라는 기도가 응답되자 에서와의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고 그 후로는 가는 곳마다 엄청난 복을 받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얍복 강가에서 드린 야곱의 기도는 발등에 떨어진 당면한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 기도를 시작했지만 그 기도는 급기야 야곱의 성화과정에 큰 전환점이 됩니다.

 

야곱은 이 때부터 엄청난 변화와 성화의 삶을 살게 됩니다. 비록 환도뼈가 위골되어 육신적으로는 약해졌지만 영적으로는 강화되고 성화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210절에서 사도 바울도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강한 척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약하고 부족합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내가 약할때가 강한 때입니다.

 

야곱은 그날 이후로 새 이름을 받게 됩니다. 28절에 보면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야곱의 이름은 이스라엘로 바뀌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의미를 살펴보면 이스라엘은 히브리어로 이스라의 혼합어인데 하나님을 뜻하고 이스라싸라가 원형동사인데 싸라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통치하다” “다스리다라는 의미이고, 둘째는 싸워서 이기다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하나님처럼 통치하는 자하나님의 황태자라는 의미가 있고 또 싸워서 이기다하나님과 더불어 싸워 이기는 자라는 의미등 두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 두가지 의미를 종합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더불어 씨름하여 이김으로 하나님의 황태자가 된 사람입니다.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황태자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또한 이 이름은 야곱의 개인의 이름이 되었지만 한편 한 국가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믿어서 새 이름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이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이 우주 만물의 왕이시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왕자와 공주가 되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1:12). 이 얼마나 놀라운 이름입니까?

 

아울러 하나님과 더불어 씨름하여 이긴 야곱은 이제 사람을 상대로 하는 모든 씨름에서 백전백승을 거두게 됩니다.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딴 유도선수는 동네에서 하는 유도경기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야곱이 하나님과 더불어 싸운 후에는 사람과 더불어 싸우거나 문제가 생길 때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 됩니다.

 

다음날 야곱이 형 에서를 만나러 가는데 창세기 33장에 보면 에서가 400명을 이끌고 야곱을 죽이려고 달려 옵니다 그때 야곱은 혼자서 에서를 맞이하러 갑니다. 그때 야곱이 다리를 절면서 에서를 만나서 그 앞에 절을 하고 형님을 뵈오니 마치 하나님의 얼굴을 뵈온 것 같습니다라고 고백을 했는데 그 말 한마디로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그래서 야곱은 생명을 보전하고 형과 화해를 이루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어떤 문제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기 전에는 저주받은 자식들처럼 죄가운데서 살았고 야곱처럼 인간적인 꾀를 부리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얍복강에서 하나님을 만난 야곱이 하나님의 은혜안에서 형통한 복을 누리면서 살아간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다시만난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누리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얍복강 이후에 담대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날 야곱은 그 사람에게 이름을 물어 봅니다.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32:29~30)

 

야곱은 그 사람의 이름을 물었지만, 그는 대답해 주지 않고 그저 야곱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불렀습니다. “브니엘하나님의 얼굴”(The Face of God)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죄가 크고 많은 사람입니다. 아버지를 상대로 사기를 쳤으니 이 얼마나 큰 죄입니까? 그런데도 야곱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5:20) 라는 말씀처럼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죄가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으면 은혜도 많이 받습니다. 예수님만 믿으면 하나님께서는 지은 죄보다도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서 신자가 되었다면 우리에게는 아직도 야곱처럼 하나님이 다루셔야 될 죄성들이 많이 남아 있는 존재입니다. 이 남은 죄성 때문에 우리도 얍복 강의 야곱처럼 처절한 씨름이 필요합니다. 이 씨름에서 이기기만 하면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와, 사람과의 씨름에서도 이기게 됩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가 이 씨름에 승리해서 야곱처럼 복된 인생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출처 : 보물섬남해세광교회
글쓴이 : 행복을 주는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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