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여섯째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이제 다음주일은 종려주일입니다.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우리나라 코메디계에서 한시대를 풍미했던 이주일씨가 폐암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같은 방송국에서 코미디언으로 일하는 이성미씨가 이주일씨를 병 문안 하는 모습을 방송국에서 취재를 했습니다.
저도 그 장면을 본적이 있는데 지금도 그 광경이 생생합니다.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이주일 씨가 갑자기 폐암에 걸려서 입원을 해서 안타까운 심정으로 고백하기를 “내가 1년 전에 만 담배를 끊었다면 이 모양 이 꼴은 안 되었을 텐데 내가 담배를 못끊어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진작에 담배를 끊었으면 이렇게 빨리 죽지는 않을텐데 너무나 아쉽습니다! 병원에 입원해서 얼마 못산다는 진단을 받고보니, 내가 조금만 더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여러분 담배를 끊어야 합니다. 담배를 끊어야 오래 삽니다”라고 고백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생명에 대한 간절한 애착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모습을 모든 사람들이 보았습니다.
7년전에 저의 어머니께서 당뇨와 장 검사를 하느라 강남 삼성 병원에 모시고 갔습니다. 병원 복도에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기다리는 동안에 간호사들이 여러명의 중환자들을 옮겨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산소통에 링겔을 꽂고 여러 사람이 달라 붙어서 바쁘게 어디론가 이동했습니다. 그런 사람은 “아마도 생명이 매우 위독한 상태이기에 급히 수술실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합병원의 의학박사님께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생명에 대한 애착이 가장 강한 사람들은 누구인가에 대한 조사를 했는데, 환자들중에 생명에 대한 애착이 가장 강한 사람은 방금 말씀드린대로 이주일 씨와 같이 말기암 판정을 받은 암 환자가 가장 살고싶은 애착이 강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말기암 판정을 받은 사람은 비관에 빠져서 죽을날만 기다립니다. 그런데도 더 이상 소망이 없는 그런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서 몸부림을 친다는 것입니다.
말기 암 판정을 받은 환자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은, 방금 말씀드린대로, 심장이 됐든지 위장이 됐든지 배를 가르고 대 수술을 받으러 수술실로 들어가는 환자들을 가장 부러워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대 수술을 받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그래도 한 가닥 살 희망이 있는 사람들이기에 부러워 한다는 것입니다.
말기 암 환자는 더 이상 수술도 할 수 없고 수술을 한다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기에 죽는 시간만 기다립니다. 그래서 말기 암 환자들은 대 수술을 받으러 들어가는 그 환자들이 가장 부럽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선배 목사님도 몇 년 전에 대장암에 걸려서 대장의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 목사님은 뜻밖에 어느날 갑자기 꿈에도 생각지 못한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다시 십이지장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대장수술은 짤라내고 잇기만 하면 되지만, 십이지장은 그 부위와 연관된 모든 곳을 다 도려내야 하는 수술입니다. 그래서 멀쩡한 위장의 일부도 잘라내야 하고 췌장의 일부도 잘라내야 하고 그리고 멀쩡한 쓸개도 제거해야 하고 소장 즉 작은창자의 일부분도 제거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수술 중에는 십이지장 수술이 가장 큰 수술이라고 합니다.
십이지장 수술은, 수술을 하다가 잘못되면 곧 바로 죽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십이지장 수술을 한 사람은 짧으면 6개월을 살고 길면 2년 정도밖에 못산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이 막상 그런 엄청난 수술을 받으려니까 죽음에 대한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더 랍니다.
“만약에 이 수술이 잘못되면 나는 죽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까 솔직히 지금은 죽고 싶지가 않더랍니다. 좀더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밀려 오더랍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입원해 있는 병원의 창문 너머로 오가는 수 많은 자동차들을 바라 보면서 “나도 한 때는 저렇게 활기차게 운전을 하고 다녔는데, 이제 저런 모습들이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지도 모르겠구나!” 라는 생각에 마음이 슬퍼 지더랍니다.
그러면서 비로소 목사님이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간절해 지더니, 기도가 나오는데, “하나님 제발 저를 한번만 살려 주세요!” 하는 기도가 나오더랍니다. 그 이후로 목사님이 수술을 마치고 나올때 까지 기도제목은 오직 단 한가지 “하나님 저를 한번만 살려주세요!” 라는 기도만 나오더랍니다.
목사님은 비로소 생명에의 집착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를 그때 깊이 체험을 했다고 고백을 하셨습니다. 게다가 죽음이 눈앞에 다가 오니까 “내 생명을 연장 할 수만 있다면 전 재산을 다 바쳐서라도 생명을 연장하는 일에 투자를 하고싶다!”라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다만 2년이나 3년이라도 더 살수만 있다면 집을 팔아서라도 병을 고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병을 고치느라 돈이 다 없어져서 길거리에 나 앉아서 거지가 되더라도 살기만 한다면 무엇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랍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도대체 생명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애착이 강한걸까? 죽으면 하늘나라에 가는데 왜 이렇게 살고싶은 걸까?” 하면서 곰곰이 죽음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제 내가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죽음을 순순이 받아 드릴수는 없을까? 도대체 왜 그렇게 죽기를 싫어하는 것일까?
혹시 사랑하는 아내나 부모 또는 자식들이나 형제들그리고 성도들과 이별하는 것이 섭섭해서 그런걸까?”하고 생각을 해 보니까,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는 아픔도 안타깝지만 그러나 근본적인 것은 그게 아닌 것 같더랍니다.
아직도 세상에 대한 미련과 애착도 지극히 강하지만, 그러나 정말 깊이 깊이 생각해 보니까, “이제 내가 죽으면 하나님 앞에 가서 심판을 받아야 하는데 하나님앞에 어떻게 설 것인가?”라는 문제에 붇딪히면서 하나님앞에 설 자신이 없더랍니다.
“정말 죽으면 내가 지금까지 가르친대로 나도 하나님 앞에 가서 심판을 받을텐데, 내가 그 심판대 앞에 당당하게 설 수가 있을까? 심판대 앞에서 떳떳하게 “주님 저 이제 주님앞에 왔습니다. 주님 그동안 정말 주님을 보고 싶었습니다. 이제 죽어서 주님앞에 왔아오니 제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맞습니까?”하고 주님께 고백을 해야 하는데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까 솔직히 그렇게 말할 자신이 없더랍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정말 올바른 목사라면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이제 제 명이 다해서 하나님께서 제 영혼을 불러 가신다면 주님이 계신 천국에 가게 될 것이니 감사합니다! 그렇게도 사모하던 천국에 가게 되었으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주님! 오늘까지 이 시간을 손꼽아 기다려 왔습니다!. 이 시간을 사모하면서 살아 왔습니다! 이제 제 영혼을 받아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를 해야 정말 하나님을 믿는 참된 목사인데, 그런 생각은 뒷전이고, 아파서 병원에 입원 하는 그 순간부터 두 번이나 대 수술을 받는 동안에 한번도 지금 방금 말씀드린 그런 기도를 드려 본적이 없다고 합니다. 오직 나오는 기도는 단 하나, “하나님 제발 나를 좀 한번만 살려 주세요!” 그 기도만 죽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깊은 생각과 고민을 한 후에 목사님이 비로소 회개를 하면서 “하나님! 제가 하나님 앞에 정말 구원의 확신도 없고, 하나님앞에 설 자신도 없고, 또 하나님 앞에 가서 아무 할말도 없고, 지금까지 해 놓은일도 아무것도 없는 형편없는 목사입니다! 저를 용서해 주세요!”하고 회개기도를 한 후에
“이제부터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하고는 자기의 믿음을 재 점검하고 구원의 확신부터 새롭게 가다듬어 나가고, 또 언제 죽더라도 담대하게 주님앞에 갈수 있도록 죽음을 준비하기로 결심하고 열심히 성경을 읽으면서 기도를 하는중에 천국 갈 준비를 했더니 비로소 마음이 평안해 지더랍니다. 이 선배 목사님이 2년을 더 살고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죽는 것 때문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않고 평안하게 지내다가 소천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에수님께서 인간의 목숨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온 천하를 얻고도 네 목숨을 잃어 버린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라고 말씀 하시면서
그 귀중한 생명을 아무렇게나 쓸데없는 일에 허비하면서 살지 말고 35절과 같이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 하리라“ 라는 교훈을 주셨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귀한 생명을 보람있는 일에 헌신하면서 살다가 천국에 들어가라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좆을 것이니라”라고 34절에서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내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남편이 아내에게 속을 썩이면 “이게 바로 내 십자가구나!” 라고 생각을 합니다. 자식이 말을 안들어서 속을 썩이면 “자식이 내 십자가구나! 하나님이 나에게 자식을 위해서 기도의 십자가를 주셨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으면 그 어려움이 “내가 짊어지고 살아야할 십자가구나!” 라고 생각 합니다.
왜 나에게 이런 고난과 어려운 상황이 주어 졌는지 지금은 이해가 안되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순종할 때 그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십자가를 통해서 복이 오는 것입니다.
총회 신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시는 최춘선 교수님은 어느날 5대 독자를 잃었습니다. 여름 수련회 때 그만 아들이 물에 빠져서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아들의 장례식장에서 교수님은 이렇게 송사를 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께서 왜 제 아들을 데려가셨냐고 묻지 않겠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저의 5대 독자 아들을 데려가신 데에도 하나님의 뜻이 계심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부터 저는 제 아들이 죽은 사건이 주는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 더욱 기도하고 더욱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살도록 하겠습니다!”라고 고백을 하셨습니다.
귀한 아들이 죽은 후에 교수님은 그때부터 신학교에서 가장 가난하고 열악한 가운데에서 공부하는 신학생들을 친 자식처럼 양육하고 돌보아 주심으로서 우리나라에 수 많은 기라성같은 목회자들을 배출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일이 벌어져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계획하신 모든 일에 순종과 감사로 답해야만 합니다. 자식이 아프거나 심지어 죽는다 해도 하나님은 그 일로 인해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하나님의 깊은 은혜에 도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모든 일들은 내가 짊어 져야할 십자가 입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십자가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짊어지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가장 가까운 가족부터 시작해서 멀리는 땅끝까지 증거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일”이 바로 주님이 말씀 하신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었이 유익 하리요”라고 말씀 하시면서 영생을 얻지 못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천하를 정복했다 하더라도, 재벌이 되었다 하더라도, 유명인사가 되었다 하더라도, 빌딩을 가지고 떵떵 거리며 산다 할지라도, 구원 받지 못해서 지옥에 간다면 그런 사람이 가장 비참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옥불에 들어가는 사람을 구원해 내는 삶을 사는 사람이 바로 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복된 사람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수년전에 제가 김유봉장로님이 운영하는 “뉴욕 설렁탕집”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이분은 장로님이 되기전에 하루벌어 하루먹고사는 날품팔이 였습니다. 그러다가 청년때 1976년도에 혈혈단신(孑孑單身) 비행기표 한 장만 들고 미국 뉴욕에 도착 했습니다
그는 영어도 못하고 마땅히 할 일도 없었기에, 한인신문 구직광고를 보고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설렁탕집의 종업원으로 들어가서 그릇 닦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릇을 닦는 일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설렁탕집 주인의 눈에 들어서 차츰 주방 일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주방일에도 재능을 인정받아서 주방장이 되었습니다. 주방장으로 열심히 일을 하는데 단골로 다니시는 목사님이 중매를 해서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주례를 서 주셨고 그게 인연이 되어서 드디어 교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외로운 객지에서 고생하는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 주셨고 나중에는 좋은 여자를 소개시켜 주셔서 결혼까지 하게 되자 목사님이 고마워서 인사치레로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에서 한국에서 유명한 강사님을 모시고 부흥회를 했는데 그때 큰 은혜를 받아서 충성된 믿음생활을 시작 헀습니다. 그분이 얼마나 은혜를 받았는지 그 부흥회에 참석하고 나서 하나님 앞에 두 가지 서원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사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면 제 사업장을 전도의 장소로 쓰겠습니다! 또한 물질의 복을 주시면 100만불의 건축헌금을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사명을 감당하겠습니다”
사실 사업장소를 전도의 장소로 쓴다는 일은 사실 그리 쉬운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100만불은 우리돈으로 10억원입니다. 그의 2가지 소원은 너무나도 엄청난 소원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그는 주인의 배려로 독립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설렁탕집을 새로 개업하게 됩니다. 그는 설렁탕집 이름을 “뉴욕 설렁탕집”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새로 시작한 그의 설렁탕집에 얼마나 복을 쏟아부어 주시는지 정말 장사가 엄청나게 잘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때부터 자기가 섬기는 교회에서 가장 많은 십일조를 드리게 되었고, 성가대장에 주일학교 부장에 하여튼 봉사직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직분을 두루 거쳐서 충성한 끝에 그 교회의 장로님이 되었습니다.
김유봉장로님은 사업에 성공하자 뉴욕에서 가장 번화한 32번가의 6층 건물을 구입해서 새롭게 설렁탕가게를 열었습니다. 김장로님은 하나님과 약속한대로 자기 식당의 모든 테이블에 전도지를 비치하고 또 오시는 손님들에게 담임목사님의 설교 테입을 나누어 드리고, 노인들에게는 설렁탕값을 절반으로 깎아 드리고, 교회에 처음 나오시는 성도들에게는 그 가족 수 대로 식권을 무료로 증정하고, 외부에서 오시는 강사님들과 목사님들과 선교사님들에게는 항상 무료로 식사대접을 했습니다.
김유봉장로님은 하나님께 서원한 대로 자기 식당을 전도를 위한 장소와 봉사를 위한 장소로 사용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설렁탕집에 와서 무료로 식사를 대접받은 모든 목사님들이 너도 나도 성도님들을 모시고 와서 설렁탕을 드시는 바람에 설렁탕집은 점점 발디딜 틈도 없이 북적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늘 교회에 충성을 다하던 장로님이 어느날 목사님으로부터 특별한 광고를 들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가 부흥성장해서 이제 여기서 4키로 떨어진 곳에 교회를 건축하기로 했습니다. 새로 건축하는 교회를 위해서 땅을 사야하고 건축도 해야 하는데 이 일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성도님들이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목사님의 광고를 듣는 순간, 김장로님은 마치 그 광고가 하나님이 자기에게 광고를 하시는 것 같이 들렸습니다. 그래서 장로님은 “이제야 비로소 내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킬 때가 왔구나!” 하고 확신 하고는 다음주에 선뜻 100만불을 하나님께 헌금을 했습니다.
사실 돈이 많지 않을때는 하나님께 헌금하기가 쉽지만, 돈이 정말 많아지면 헌금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김유봉 장로님은 서원한대로 100만불을 하나님께 헌금을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은혜중에 건축이 되었고 그런 헌신을 한 이후에 하나님은 김유봉장로님에게 더 많은 축복을 주셔서 장로님은 뉴욕에서 최고의 매출을 올리는 한인식당을 운영하게 되었고 성공한 한국기업인이 됩니다.
장로님은 미주 동부 국제사랑재단의 회장으로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일에 지금까지 헌신하고 계십니다. 2014년도에는 미주 전체에서 선발되어 “장한 크리스챤상”을 수상받기도 했습니다.
장로님의 설렁탕집을 방문한 사람들이 식사를 하다가 종종 장로님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고 합니다. “장로님! 성공의 비결이 무었입니까?” 성공의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김유봉 장로님은 항상 이런 대답을 하셨다고 합니다. “성공하는 신앙인은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지배를 받았더니 오늘날 내가 이렇게 복을받게 되었습니다”
김유봉장로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봉사와 섬김의 십자가를 잘 감당하신 분입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종종 헌신을 작정한 성도들이 성가대나 교회학교 또는 청소나 주방일로 열심히 봉사를 하다가 어느날 목사를 찾아와서 “제가 일이 바빠서 이제 봉사를 그만 두어야 겠습니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저는 복창이 터집니다. 주님께 봉사하는 일이 직장보다 또는 자기 일보다 저급한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내어 주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아서 영생복락을 누리고 이땅에서 누리는 모든 축복을 하나님이 주셨는데 그런데도 그걸 모르고 엉뚱한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답답합니다.
상황과 환경은 수시로 바뀝니다. 사업을 하다보면 I.M.F 같은 상황을 만날 수도 있고, 때로는 수출이 잘되서 여름 휴가도 반납하고 24시간 공장을 돌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환경이 바뀐다고 해서 바쁘다고 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도 덩달아서 바뀐다면 그런 믿음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우리 믿는 성도는 환경이 바뀌던 상황이 달라지던 변함없는 사랑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바쁘다고 봉사를 그만두고, 자식들이 왔다고 교회 안오고, 비온다고 안나오고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학교보다 못합니까? 학교는 하루도 안빠지고 가면서,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을 등한히 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닙니다. 기쁠때나 슬플때나 주님과 동행하고, 지구의 종말이와도 주님만 바라보면서 오직 믿음으로 사는 것이 성도의 본분입니다.
기독교 교리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교리는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죽기까지 전파한 복음이 바로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십자가와 부활 신앙을 제거 한다면 교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십자가 진리를 바로 깨닳아야 구원받아서 천국에 가고 교회는 교회의 사명을 잘 감당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 신 피는 대속의 피입니다. 대속이라는 단어는 “Redemption” 인데 “값을 지불하고 해방시켜 준다”라는 뜻입니다.
대속은 또한 구속이라고 표현 하기도 합니다. “구속”에는 두가지 뜻이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 “구속(拘束)”은 “arrest”인데 죄인을 억류(抑留)하거나 가두는 것을 말합니다.
두번째 “구속(救贖)”은 “redemption” 또는“Atonement”라는 단어인데 “보상한다” “갚아준다”라는 뜻입니다. 우리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구속은 두 번째 구속, 즉 죄를 보상한다, 갚아준다는 뜻의 구속(救贖)을 사용합니다.
다시 말해서 죄로 말미암아 사탄마귀의 종이 되어서 사탄마귀에게 끌려 다니면서 죄를 짓다가 죽으면 죄값으로 인해서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는데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이 내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내 죄값을 대신 치르시고 나를 구속(救贖) 하셨기에 내 죄는 예수님이 다 갚아 주셨기에 의인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의로 죄사함 받고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믿은 성도가 복받은 사람인 이유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내 죄값이 지불되었기에 우리는 죄에서 해방되고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 십자가 복음의 특징은 인간은 결코 인간의 의로운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예수님을 영접하면 값없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또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5장 24절에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 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 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 느니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천하에 그 어떤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 2장 8절에서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라고 증거 했습니다. 이 구절에서 믿음, 은혜, 선물은 모두 다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 기독교의 진리가 어리석어 보인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서 “십자가의 도” 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 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 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라고 증거 했습니다.
십자가는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는 어리석고 미련해 보이지만 그러나 예수믿고 구원받는 사람에게는 가장 큰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이와같은 진리를 외면하고 무시하고 받아드리지를 않으니까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방법으로 안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신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사람은 지혜롭고 똑똑하게 창조 되었습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얼마든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 하셨다는 사실을 알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마귀에게 잡혀서 하나님을 부인하고 외면하니까 하나님은 전도라는 우매무지한 방법을 동원 해서라도 안믿는 사람들을 구원하기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 하셨도다”(고린도전서1장21절)
그러니까 우리가 사람들을 만나서 전도 하는 것은 참 미련한 일입니다. 얼마든지 자기가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이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한 것을 알아야 하는데 그걸 모르니까 우리가 사람들을 만나기만 하면 예수믿고 구원 받아서 천국에 가시라고 미련스런 방법으로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구원을 받으려면 어리석어 보일 정도로 단순하고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가져야 복음을 받아 드리고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태복음18:3-4)
십자가의 도는 죄를 대속 하시고 구원의 축복을 주는 복음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죄를 용서하시는 복음입니다.
아울러 구원은 우리의 공로로 받는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받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윤리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윤리의 종교가 아닙니다.
십자가의 진리가 복음입니다. 십자가의 진리는 피의 복음입니다. 오직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공로를 믿을때 구원받아서 천국에 가는 복음이 십자가복음입니다.
기독교는 그 어떤 악한 죄를 지은 사람도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죄사함을 받고 천국에 갑니다. 그래서 이런 복음때문에 때로는 기독교가 비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저런 사람이 무슨 예수믿는 사람이냐는 비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어떤 죄인도 예수믿고 회개하면 천국에 들여보내 주십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복음이 복음, 즉 복된소식인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예수믿고 진리를 깨닳았으면 그때부터는 두 번째 말씀 즉 오늘 본문 마가복음8장34절과 같이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는 말씀을 붙잡으면 됩니다.
십자가의 공로로 나같은 죄인이 구원 받은 것을 깨닳았으면 그 다음부터는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십자가, 즉 내 몸에 태인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 십자가는 안믿는 나의 아버지나 어머니의 구원을 위하여 애쓰고 또 부모님을 지극정성으로 섬겨서 무슨일이 있어도 부모님이 천국에 가실수 있도록 해 드리는 것이 예수믿은 내가 짊어져야하는 첫번째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가족과 형제와 자녀와 손주 손녀들과 친구들 직장 동료들 그리고 내 민족도 구원하고 세계 모든 민족을 선교하여 구원하는 것이 믿는 성도들이 짊어 져야할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재물의 복을 받은 사람은 선교도 해야하고 성전도 지어야 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심지어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사명자들은 자기를 부인하고 때로는 주님을 위해서 자기 목숨도 버릴 각오로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은후에 가슴이 뜨거워져서 “내가 내 몸을 쳐 복종케 함은 내가 남에게 예수를 전파한 후에 도리어 내가 버림을 받을까 두려워서 날마다 내 몸을 쳐서 주님앞에 복종케 한다"라고 고린도전 서 9장 27절에서 고백 했습니다. 바울사도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고백하면서 선교사로 사명을 감당하다가 로마 감옥에서 순교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도 구원은 받았다고 고백은 하면서도 가정에서 또는 사회에서 져야할 희생과 섬김의 십자가를 지지 않기에 이런 저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어떤 부부가 결혼해서 신혼재미에 깨가 쏟아졌는데 아들 하나를 낳고 갑자기 교통사고로 부모가 다 죽었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가 할머니 밑에서 자라게 됩니다. 할머니는 이 아이가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십자가라고 믿고 열심히 아이를 키웁니다. 이 아이가 잘 자라서 인류의 베스트 셀러를 쓰게 됩니다. 그가 바로 루시 모드 몽고메리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근깨 빼빼마른 빨강머리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라는 노래와 함께 만화로 방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하루는 잠을 자는데 예수님이 나타나서 커다란 십자가를 하나 주시면서 받으라고 하시더랍니다. 그래서 이게 무슨 꿈인가 하고 고민을 하다가 아마도 그 손주 아이를 데려다가 키우라는 하나님의 뜻인 것 같다는 생각에 결국 그 손주를 데려다가 키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손주가 그 유명한 빨강머리 앤 이라는 소설을 써서 유명해 진 것입니다. 빨강머리 앤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자전적 성향이 반영된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캐나다의 아름다운 프린스 에드워드 섬을 배경으로 전개 됩니다. 빨간 머리 앤은 빨간 머리의 주근깨투성이 고아 소녀 앤이 사회복지사의 실수로 커스버트 남매에게 입양되면서 생기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성장소설입니다.
앤의 풍부한 상상력과 밝은 성격, 그리고 수다스러움은 무미건조하던 커스버트 남매의 삶 뿐만 아니라 에이번리 마을의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이 어린 고아 소녀의 성장기는 “에이번리의 앤”(Anne of Avonlea)을 비롯해서 9권의 후속편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어렵고, 고통스럽고, 힘들어도 손주를 잘 키워낸 몽고메리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자기들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잘 감당함으로서 역사에 길이 빚나는 위대한 소설가가 세상에 나오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도 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갈때 지금은 힘들어도 때가되면 그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의 열매를 맺고 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은혜와 축복을 누리면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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