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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6년3월16일수요저녁 누가복음23장1-31 너희자녀를 위해 울라

그리운시냇가 2016. 3. 17. 22:26


사순절이 막바지로 접어 들었습니다. 다음주는 종려주일입니다. 그리고 고난주간

입니다. 고난주간을 앞두고 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시면서 대중을 상대로 하신 마지막 말씀을 살펴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의 재판정에서 재판을 받은후에 밤새도록 로마 병사들로부터 고문을 당했습니다. 로마 병사들은 쇳조각이 달린 채찍으로 예수님을 무자비하게 때렸고 예수님의 몸은 갈기 갈기 찢어져서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27:26)


그렇게 밤새도록 고문을 당하시고 아침이 되자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의 머리에 가시면류관을 씌우고 갈대를 예수님의 손에 들려 주었습니다. 무자비한 로마병사들은 손바닥으로 예수님의 뺨을치면서 예수님에게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 지어다라고 조롱을 했습니다.(27:29)


그들은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갈대를 빼앗아서 가시면류관을 쓴 예수님의 머리를 쳤습니다(27:30) 희롱을 다한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예수님에게 십자가를 지게하고 골고다로 가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지칠대로 지친 몸으로 백근이나 되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로 올라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서 가면서 계속해서 넘어지고 고꾸라 지면서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 가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가막힌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은 울면서 따라오는 여인들을 걱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땅에서 살아계신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를 따르는 성도들을 위해서 위로와 사랑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재판을 받으신 장면과 더불어 죽으러 가시면서 보여주신 사건들을 통해서 우리가 어떤 교훈을 받아야 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우리는 이 세상에서 불의가 행해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불의가 사라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서 잡혀가서 빌라도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지금까지 역사가 존재한 이래로 수 많은 재판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역사에 남는 두 가지 재판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솔로몬의 재판이고, 다른 하나는 빌라도의 재판입니다.


솔로몬의 재판은 두 아기중에 한 아기가 죽자 살아있는 아기를 놓고 서로 자기 아기라고 싸우는 엄마들 앞에서 솔로몬이 데려온 아기를 칼로 두 동강을 내서 두 어미에게 각각 나누어 주라라고 판결 함으로써 그 아기를 진짜 어미에게 찾아준 명 판결로 유명한 재판입니다.


그러나 역사상 가장 잘못된 재판은 당연히 빌라도의 재판입니다. 빌라도의 재판이 가장 잘못된 재판인 이유는 첫째로 빌라도의 재판은 인간이 하나님을 심판한 재판이었기에 잘못된 재판입니다.


인간은 너나 할것없이 마지막 날에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하는데, 심판을 받아야 할 인간이 심판주이신 하나님을 재판했으니, 이것은 용서받지 못할 악한 재판입니다.


이 재판을 모의하고 가담하고 결정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심판을 받고 지옥불에 들어가서 영원토록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빌라도의 재판이 잘못된 이유는 죄가 전혀 없는 의로운 예수님을 이 세상에서 가장 극악무도한 죄인으로 판결한 재판이기에 가장 잘못된 재판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죄인입니다. 재판정에서 판결을 내리는 판사나 범죄자를 수사하여 법원에 제소하는 검사도 모두 다 죄인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살았던 사람중에 유일하게 죄가 없으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히브리서 415절에 보면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이와같이 순결하고 정직하고 온전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라는 판결을 내렸으니 이 재판은 역사상 가장 큰 오심(誤審)재판인 것입니다.


세번째로 빌라도의 재판은 정당한 법적 근거도 없이 여론에 떠밀려서 재판한 무법한 재판입니다.


오늘 본문 앞쪽의 누가복음 23:4절에 보면 빌라도는 분명히 예수님에게서 아무런 죄를 찾아내지 못했다고 증거 합니다.


당시에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로마의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해도 죄를 찾지 못했기에 예수님을 다시 이스라엘백성의 지도자인 헤롯에게로 돌려보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기에 사형을 구형 할 수 없다는 결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군중들의 함성과 아우성에 민란이 날까 두려워서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판결을 내립니다.


방금 말씀 드린것처럼 빌라도가 재판을 시작해서 사형판결을 내릴때까지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인이라는 법적 근거를 하나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엉터리 판결을 내린 재판이 바로 빌라도의 재판입니다.


세상에서는 독재자가 자기의 정적을 죽일 때에도 반드시 법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나서야 사형선도를 내립니다. 그 법이 악법이든, 잘못된 법이든 간에 법적인 근거가 없이는 절대로 판결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재판했던 빌라도는, 예수님이 사형에 해당될만한 합당한 법적인 근거가 단 한가지도 없는데도 그저 군중들이 아우성치는 소리에 떠밀려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런 빌라도의 잘못된 재판 때문에 가장 이득을 얻은 사람은 바라바라는 사람입니다. 마태복음2726절에 보면 예수는 채찍질하고 바라바는 놓아 주었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당시에는 명절에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광복절이나 개천절과 같은 국경일이나 성탄절과 같은 특별한 절기가 되면 대통령이 특별사면을 합니다


특별사면은 죄가 확정된 어떤 사람에 대해서 대통령이 그 죄에 대한 형의 집행을 면제하거나 유죄선고의 효력을 상실시켜서 죄를 용서해 주는 제도입니다.


2000년 전 이스라엘에도 그런 전통이 있었습니다. 당시의 이스라엘은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체에서는 사형을 언도하거나 또는 형을 정지시킬 수 있는 권한이 없었습니다. 오직 이스라엘을 다스리기 위해서 파송된 로마의 총독에게만 사형 집행권이 있었고 또한 황제의 이름으로 형을 정지시킬 권한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최대 명절인 유월절에 유대인들은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죄수 가운데 하나를 석방시켜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과 바라바를 그들 앞에 세워놓고서 누구를 놓아주면 좋겠느냐?”라고 물었습니다. 빌라도는 자기가 그렇게 물으면 사람들이 당연히 죄 없는 예수님을 놓아 달라고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집니다. 예수님을 석방시켜 달라고 해야 할 사람들이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라고 소리를 지른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난동을 부린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충동질했기 때문입니다.


재판을 받기 불과 몇일 전에는,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실때 수 많은 무리들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호산나라고 외치면서 예수님을 환영하고 예수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무리들이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과 장로들에게 매수 되어서 이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라고 소리를 지른 것입니다.


자고로 사람이 군중심리에 휩쓸려서 이성을 잃어버리면 엄청난 죄악을 저지르게 됩니다. 오늘 날 우리 한국사회가 그렇습니다.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어떤 방송사의 제작진이, 악의적으로 거짓 제작한 광우병소고기파동 보도 때문에 수만명의 사람들이 길거리로 뛰쳐나와서 촛불을 들고 매일같이 데모를 하는 바람에 나라가 근 일년동안 마비상태로 지내야만 하는 한심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광우병 소고기를 먹고 죽은적이 없는데도, 엉터리 보도에 흥분해서 미혹된 사람들이 군중심리를 부추기고 선동하는 바람에 거기에 넘어간 무지한 사람들도 같이 동조하는 바람에, 나라가 멍들고 엄청난 손해를 보았습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바르게 살고 진실하게 살려는 사람들이 억울하게 희생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의로운척 큰소리치고 권모술수와 모략으로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국회의원까지 되어서 대리기사를 폭행하면서 갑질을 하는가 하면 나라를 전복시키려고 모의를 하다가 감옥에 가기도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런 악한 세상 풍조와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바른 믿음 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는 믿음으로 살아가야만 합니다. 세상이 타락과 불신의 분위기로 치달을수록 우리 신앙인들은 더욱 바른 신앙을 가지고 진리를 사수해야 합니다.


성경 로마서 122절에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라고 증거합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입니다. 그런 악한 세대의 풍조에 휩쓸리지 말고, 세상에 희망을 주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갈 이 시대의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군중들이 바라바를 석방시키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를 지른 또 한가지 이유는 그들의 잘못된 야망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9절에 보면 바라바는 민란을 꾸미고 살인하고 옥에 같힌자라고 증거 합니다.


바라바는 단순한 강도가 아닙니다. 민란을 꾸민자입니다. 민란을 꾸몄다는 말은 로마 통치에 항거한 자라는 말입니다. 그 민란에서 살인까지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민란을 꾸민 근본적인 목적은 로마에 항거해서 이스라엘의 독립을 쟁취하겠다는 애국적 민족정신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 에게는 진정한 애국자로 보였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열심당원이라고 불렀습니다. 바라바는 지금 정치범으로 잡혀 와서 사형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의 민족적 소망을 대변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제자들과 수많은 사람들도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시켜줄 정치적인 메시야의 사명을 감당해 줄 것을 기대하면서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예수님이야말로 고통당하는 이 민족의 아픔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분으로 생각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는 그런 열망이 더욱 강렬했기에 모든 사람들이 다 길거리로 나와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하면서 에수님을 환영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어느날 갑자기 잡혀가서 빌라도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는데 끌려간 예수님이 그들에게 너무나 비참하게 당하고 보잘 것 없고 허약한 모습으로 사형 선도를 받자 군중들은 너나 할것없이 모두 다 크게 실망을 했습니다.


죽도록 매를 맞고 처절한 모습으로 끌려나온 예수님을 보니까 저런 모습으로는 이스라엘나라를 회복하지 못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예수님이 잡혀갈때도 칼 한번 써보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잡혀갔고 또 빌라도 앞에서 심문을 받는데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침묵과 무능과 무기력으로 일관하자 예수님을 바라보던 군중들은 예수님에게서 큰 실망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런때에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과 장로들이 군중들을 매수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에게는 포상과 이익이 돌아가게 해 주겠다는 궤계를 부리자 군중들도 점점 마음이 돌아서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사람들이 가만히 보니까 예수님은 심문을 당하고 채찍질을 당하면서도 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힘없이 매를 맞으셨지만, 바라바는 그래도 로마에 대항하기 위해서 결사대를 만들고 살인까지 해 가면서도 자기 민족을 위하여 뭔가를 해보려고 안간힘을 썼다는 사실이 점점 부각되기 시작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보다 강인하고 담대한 바라바가 우리나라를 회복시키는일에 더 적격자라는 생각이 들어서, 바라바야말로 자기들의 기대에 부응해 줄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고 때마침 제사장들이 매수하자 거기에 넘어간 군중들이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으라라고 소리를 지른 것입니다.


이와같이 악한 종교지도자들의 선동과, 나라의 회복을 바라는 정치적인 야망을 가진 자들과, 그리고 혹시라도 이스라엘나라에서 민란이 일어나면 자기 목이 위태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있는 빌라도의 세속적인 동기들이 연합해서 결국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당시에 하나님을 믿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지 아니하고 세상적인 동기와 인간적인 욕심으로 나아갔기에 메시야 구세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엄청난 죄를 범하고 맙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다가 어느날 등을 돌리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 믿어봐야 나에게 별 도움이나 유익이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 입니다.


처음에는 뭔가 믿음생활을 열심히 하면 이 세상에서 누리지 못한 명예나 영광도 얻을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 계획과 꿈이 자기 생각대로 안되면 결국 교회를 떠나고 믿음도 저 버리게 됩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그런 사람들을 종종 보았습니다. 교회에 와서 집사가 되고 안수집사가 되면 그때부터 최소한 10년 동안은 하나님을 위해서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해서 하나님과 성도들에게 인정을 받고 그리고 나서 장로투표나 권사투표와 함께 장로님이 되고 또 권사님도 되는 법입니다.


그런데 안수집사가 되자마자 그때부터 당장 장로가 되고 싶어서 인간적인 방법으로 애를 쓰다가 수년 내에 장로가 되지 못하거나 또는 장로투표에서 떨어지면 그날로 당장 교회를 옮기는 엉터리 집사들을 종종 보았습니다.


이런 일들은 인간적인 욕심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리고 믿음도 엉터리 믿음이지만 인간관계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참상입니다.


하나님을 믿었으면 목사님을 믿어야 합니다. 목사님이 가르치고 시키는 대로 지도를 받으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나의 신앙성장을 도와주고 또 내가 잘되기를 기도하는 주의 종을 신뢰하면 직분과 상관없이 보람있고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신뢰가 싸이면 서로에게 큰 위로가 되고 어려울때에도 큰 힘이 됩니다.


조만식장로님과 주기철목사님은 처음에는 긴장관계와 갈등관계도 있었지만 조만식장로님이 인품이 훌륭하고 마음이 넓어서 주어진 시험들을 사랑으로 이겼더니 그 다음부터 두분은 뗄레야 뗄 수 없는 훌륭한 동역자가 되었고 두분은 나라를 위해서 그리고 한국 기독교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신뢰가 쌓이면 신뢰하는 사람들은 서로가 동역하면서 엄청난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목사는 성도를 믿어주고 성도는 목사를 믿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큰 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빈스 롬바르디는 승률 10%도 안되는 미식축구팀을 맡아서 승리와 기적을 창조한 코치로 유명합니다. 그를 통해서 기라성같은 미식축구 선수들이 많이 배출 되었습니다. 미국최고의 수퍼볼 트로피도 전설적인 그의 이름을 따서 빈스 롬바르디 트로피라고 부립니다.


윌리 데이비스는 빈스 롬바르디가 길러낸 미식축구 영웅입니다. 한창 경기가 진행되던 어느날 그는 존경하던 코치, 빈스 롬바르디가 병환으로 입원해서 죽어간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윌리 데이비스는 다음날 수천리가 넘는 미국대륙을 비행기로 횡단해서 죽을날이 얼마 안남은 롬바르디 코치를 찾아가서 2-3분간 문병을 한 후에 다시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된 기자들이 윌리를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겨우 2-3분을 보기 위해서 그 많은 비행기값을 치르고 그 많은 시간을 들여서 미국 끝에서 끝을 왕복 했습니까? 그럴만한 이유라도 있나요?


그러자 윌리는 나는 돈이 아무리 많이 들어 간다 해도, 롬바르디 코치가 세상 끝에 있다고 해도 그 분을 찾아갔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내 인생에 정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해 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별볼일 없었던 우리 팀의 모든 선수들을 귀하고 소중한 사람으로 여겨 주셨습니다!


저도 그 중에 한사람이었습니다! 나는 사실 운동을 하면서 별로 내세울만한 특기도 없고 자질도 부족했지만 롬바르디 코치님 때문에 늘 용기를 얻고 자신감을 얻어서 이렇게 위대한 미식축구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제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를 깨닫게 해 주신 분입니다” “롬바르디 코치는 저에게 항상 이런 말을 했습니다. 윌리! 너는 우리 팀에서 아주 중요한 사람이야! 네가 없으면 우리팀은 승리하지 못한다! 힘을내라!”


그래서 저는 부족한 저에게 늘 용기를 주고 좋은말로 격려해 주신 롬바르디 코치님 때문에 열심히 운동을 했고 결국 이렇게 유명한 선수가 된 것입니다!” 라고 그는 고백을 했습니다.


롬바르디 코치는 아무리 자질이 부족한 선수라도 절대로 면박을 주거나 함부로 말을 하지 않고 모든 선수들에게 꿈을 키워준 훌륭한 코치입니다. 그래서 부족 하기만 한 선수들이 롬바르티 코치의 격려와 위로에 힘입어서 세계적인 미식축구선수가 되었습니다.


윌리는, 롬바르디 코치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 바쁜 경기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비행기표를 산 후에 대륙을 횡단하여 그를 찾아가서 만났고,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코치를 만나서 위로하고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인정해 주고 나를 신뢰해 주면 그 신뢰와 인정 때문에 힘을 내고 용기를 얻어서 세상을 이기면서 힘있게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도 신뢰가 형성되기 전에는 다 도망가고 배신하고 내멋대로 였습니다. 그러나 말씀과 성령을 받고 깨닫고 난 후에 신뢰를 회복하자 모든 제자들이 예수님을 위해서 순교도 불사하고 주님의 가르침을 따랐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만 견고하면 세상에서 넘어지고 엎어져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승리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면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대해 주십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는지를 깨닫고 그 주님을 믿으면 그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 주시고 또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빌라도의 법정에서 재판을 마친 예수님은 십자가 형이 확정되자마자 십자가를 지고 총독관저를 나섰습니다. 밖에 있던 예루살렘 사람들은 십자가를 지고 걸어 나오는 예수님을 바라보자마자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금방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예루살렘성 전체에 예수님의 처형 소식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걸어간 길은 비아 돌라로사라는 길인데 그 길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많은 이적을 행하던 예수님께서 과연 어떤 모습으로 죽는지 보고자 하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그 행렬을 따라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비참하게 끌려가는 예수님을 동정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중에 여인들이 따라 왔습니다. 오늘 본문 27절에 보면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라고 증거 합니다. 수많은 여자들이 울면서 가슴을 치면서 예수님을 따라 왔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여자들은 사람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당시의 제사장들과 랍비들은 여자들을 사람취급도 안하고 무시했습니다. 이스라엘 남자들도 그렇게 행동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자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했고 여자들을 귀하게 여기셨고 여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많은 여자들이 위로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이혼을 해서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던 사마리아 여인에게 큰 소망을 주셨습니다. 심그래서 여러번 이혼하고 숨어살던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서 진리를 깨닫고 나자 동네로 들어가서 메시야가 오셨다고 다들 나와 보라고 전도를 해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 여인 때문에 모두들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심지어는 간음 중에 잡혀온 비참한 여인을 용서하시고 새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람들 앞에 나오면 안되는 혈루증을 앓던 여인을 고쳐 주시고 창녀였던 막달라 마리아를 존귀하고 위대한 여인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디를 가든지 자기에게 나아오는 모든 여인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여인들이 예수님을 존경했고 또 극진히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선하신 예수님이 십자가 처형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들 달려나와서 슬퍼하며 가슴을 치면서 예수님을 따라 왔습니다.


무슨 병에 걸렸던지 예수님께 나아오기만 하면 치료를 해 주시고 선한일만 하셨던 예수님이 흉악범으로 몰려서 십자가 처형을 당한다는 소식에 망연 자실한 여인들이 예수님을 따라 가면서 울었습니다.


사실 그 동안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을 살펴보면 대통령상을 주어도 부족합니다. 그런데 상을 주기는 커녕 십자가에 못밖는 극형선도를 받았으니 그 소식을 들은 수 많은 여인들이 쏟아져 나와서 어떻게 이럴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이럴수가 있습니까?”하면서 예수님을 따라 가면서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세상이 악하기에 이런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나만 잘먹고 잘살면 된다는 이기적인 종교 지도자들 때문에 이런 엄청난 비극이 벌어진 것입니다. 불의가 온 세상을 덮어 버렸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이 각박하고 나밖에 모르는 세상이 되다 보니까 별일이 다 벌어집니다. 전에 나이가 서른 한 살인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 팔과 다리를 쓰지 못하는 지체장애인의 동냥통에서 돈을 훔쳤습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고 3개월 동안 20여 차례에 걸쳐 상습적으로 훔치다가 걸렸습니다. 벼룩의 간을 떼어 먹는다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런가 하면 서울 청량리역에서 같이 구걸해서 벌어먹고 살던 두 사람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37살이고 또 한사람은 목발을 짚고 다니는 56세입니다. 두 사람이 역 광장에서 술을 마시다가 37살의 젊은 거지가 나이많은 불구자의 목발을 빼앗아서 불구자를 마구 때려서 전치 8주의 큰 상처를 입혔습니다.


왜 그랬는지 조사를 해 보니까 불경기라 서로 같이 구걸을 해도 먹고 살기가 어려운데 이런 어려운때에 불구자가 열심히 구걸은 안하고 낮잠만 잔다고 화가나서 젊은 거지가 나이든 거지의 목발을 뺏어서 두들겨 패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옛날에는 거지 세상에도 위계질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위아래도 없는 무법 천지가 되어 갑니다. 힘이 있는 사람이 위 아래 가리지 않고 폭력을 휘두르는 세상이 되어 갑니다.


청소년들의 비행을 책망하고 바로잡으려다가 그들에게 봉변을 당하는 사람들이 부지기 수 입니다. 우리는 사회가 이렇게 되어 가는것에 대해서 애통해 해야 합니다.


그런데 천인공로할 재판을 받고 처형을 당하러 가시는 예수님께서 자기를 따라오는 여인들에게 마지막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오늘본문 28절 이하에 증거 됩니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예수님은 여인들에게 나를 위해서 울지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해서 울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제 머지않아 하나님께서 이 모든일에 대한 심판이 임할 것이기에 그날을 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날에 임할 심판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이미 누가복음2120절로 24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리라...”(21:20,23,24)


그 날은 예루살렘이 로마 군대에게 멸망을 당하는 날이요 또한 그 날에는 아이를 가진 부녀가 큰 환난을 겪게 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떠나지만 이제 악을 행한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인데 그날에 너희가 당할 환란을 기억하고 미리 준비하라는 충고를 해 주신 것입니다. 앞으로 엄청난 심판과 환란의 날이 불어닥친다는 것입니다.


전에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을 하려는 티모르사람들에게 인도네시아 정부군이 얼마나 끔찍한 만행을 저절렀는지를 보여주는 사진이 인터넷에 게재되었습니다. 군인들이 두명의 젊은 여자들의 상의를 벗긴 후에 나무에 묶어놓고 담뱃불로 가슴을 지지는 사진도 있고, 성폭행을 당한 뒤에 실신해 있는 여성의 배에 못을 박는 사진도 있고, 죽은 여성의 온몸에 칼로 낙서를 하는 사진도 있었습니다. 그 사진들을 보면 사람들이 어떻게 저렇게 잔인할 수 있나? 완전 사탄마귀가 들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광주사태 때에도 진압군들이 이와 비슷한 만행을 저지른 것이 일부 사실로 드러나서 모두가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세계 모든 나라가 인권상황에 대해서 쌍심지를 켜고 주시하고 있는 오늘날에도 그런일이 벌어진다면 하물며 2000년전인 그 옛날에는 얼마다 더 잔인했겠습니까!


유대인들의 독립운동에 시달린 로마는 드디어 로마 군대를 동원해서 이스라엘을 치기로 결정을 합니다. 유대의 열성당원들이 툭하면 로마 병사들을 죽이고 괴롭히니까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고 A.D 70년에 로마의 티투스 장군을 보낸 것입니다.


티투스가 로마 군사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쳐들어 갔을때 그들은 무자비한 행동을 했습니다. 아이 밴 여인들의 배를 칼로 가르는가 하면, 엄마 품에 있는 아이를 가로채서 바위에데 메쳐서 죽였습니다. 그래서 그런 비참한 지경에 처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런 고통을 겪으면서 차라리 아이를 갖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응한 것입니다.


이어서 31절 말씀은 의미 파악을 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기 쉬운 구절입니다.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여기서 푸른 나무는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고 마른 나무는 예수님을 배척한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죄가 없는 나도 너희와 로마 사람들이 이처럼 십자가에 못박아서 처참하게 죽이는데 하물며 죄 있는 너희 유대인들과 나를 악한자로 취급 해서 십자가에 처형한 로마의 지도자들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심판하시겠느냐? 그 모든 자들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요 그 모든 행악자들은 심판과 함께 지옥불에 들어갈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한 웨슬레는 설교할 때 종종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때때로 눈물 때문에 설교를 중단할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 했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설교중에 우느라 설교를 하지 못하고 중단할 때마다 저를 비난 하겠지만 그러나 제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영혼이 멸망 직전에 있는데 어찌 울지 않을수가 있겠습니다. 우리중에 아직도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런분은 지금 오늘 마지막 설교를 듣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한치 앞을 모릅니다. 언제 어느때 인생이 끝날지 모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예수님에 관한 복음이 여러분에게 제시될 기회를 가지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이 그냥 죽으면 지옥불로 갈텐데 그런 불쌍한 영혼을 보면서 제가 어찌 울지 않을수가 있겠습니까?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그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심판을 받고 영원한 불속에서 지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당신과 당신의 자녀를 위하여 슬퍼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그리하면 죄사함 받고 영생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요한 웨슬레가 설교를 하다가 종종 눈물을 흘린 이유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가신 길을 살펴 보면서 주님이 가신길을 우리도 따라 가야만 합니다. 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계속해서 따라 가야 합니다. 나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신 것을 감사 하면서 주님을 따라 가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걸어 가시면서도 여인들을 걱정하시고 그 자녀들을 걱정 하신 것처럼 우리도 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가면서 나와 가족과 자녀들과 이웃들의 구원과 행복을 위해서 기도하고 또 종말의 심판이 오기전에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도록 열심히 전도 하면서 주님의 십자가만 바라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아무쪼록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러 가면서도 여자들과 그 자녀들을 걱정 하시면서 네 자녀들을 위해서 울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면서 우리도 나와 내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주님의 뜻대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출처 : 보물섬남해세광교회
글쓴이 : 행복을 주는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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