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포도나무

[스크랩] 2016년5월25일 수요저녁 사도행전2장37-47 성령강림 이후

그리운시냇가 2016. 5. 27. 20:25


제 집사람이 3일동안 성좌산기도원엘 다녀 왔습니다. 가면서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를 만들어놓고 갔는데 큰 냄비로 두 냄비를 만들어놓았습니다. 어제 저녁식사를 하고나서 두 찌개냄비를 끓여 놓으려고 개스렌지에 올려놓고 잠시 누워서 쉬다가 그만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어제 열집을 심방하면서 돌아 다녀서 그랬는지 피곤이 쌓인데다가 밥을 먹고나니까 식곤증까지 와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를 지났는지 누군가가 카톡을 연달아서 보내는 바람에 카톡소리에 놀래서 깨 보니까 온 집안이 연기로 가득차서 앞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듬거리면서 테라스로 가서 개스렌지의 불을 끄고 선풍기를 틀어서 집안의 연기를 밖으로 뺐는데 한시간이 지나서야 연기가 다 빠졌습니다.


설교준비를 하는 방으로 와서 누가 카톡을 보냈나?” 하고 보니까 정심이가 카톡을 보냈습니다. 정심이가 제 생명의 은인이 되었습니다.


테라스에 있는 개스렌지에 냄비를 올려 놓았는데 두 개의 냄비가 열을 받아서 불이 났으면 건물 전체가 다 타버릴뻔 했습니다. 집안에서 돕는 배필로 여자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하고 귀한지를 다시한번 깨닫는 사건이었습니다.


자다깨서 보니까 시커먼 연기가 가득해서 앞이 하나도 안보이는데,  테라스까지 더듬 더듬 찾아가서 개스불을 끄고난 후에 테라스의 문을 열고 선풍기를 틀어놓고 집안의 방문들을 다 열어놓고 밖으로 나오기까지 5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그동안에 탄내가 나는 연기를 마셔서 그랬는지 어제는 밤새도록 가슴이 찌릿 찌릿 하면서 아팠습니다. 오늘은 통증이 많이 사라져서 다행입니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일순간에 아침 안개같이 사라지는 것이 인생이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깨닳았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해야할 사명이 남아서 그랬는지 하나님께서 저를 데려가지는 않았습니다.


심리학자들이 사람을 심층분석해서 깊이 들어가보니까 사람은 두 가지를 걱정하면서 살아간다고 합니다. 첫째는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하나하는 걱정이고 또 하나는 죄 때문에 걱정을 한다고 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어떤 문제가 생기면, 사업이 안돼서 고민을 하는 게 아니라 내 죄가 생각나서 고민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 죄 때문에 사업이 안되는구나라고 생각하는가 하면 자녀가 공부를 못하거나 삐뚤어지면 공부를 못하는 자녀를 나무라다가도 내 죄 때문에 우리 아이가 저렇게 공부를 못하고 되바라 지는구나라는 생각 때문에 고민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인생을 살면서 어떤 문제가 생기면 이게 다 내 죄 때문에 생긴 일이구나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죄 문제와, 죽음의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존재라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믿은 사람들은 이 두가지 문제를 해결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된 사람들 입니다. 


죄 문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해결해 주셨고 죽음의 문제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죽어도 부활하여 천국에 가기에 우리가 복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두가지로 구분됩니다. 첫째는 예수님으로부터 진리를 배운후에 오직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좁은길을 가는 성도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예수믿고나서 예수님으로부터 복도 받고, 출세도 하고, 성공도 하고예수님을 통해서 예수님의 능력으로 내 소원을 이루어보려고 하는 성도가 있습니다. 이런 생각만 가지고 교회에 오는 사람은 예수를 잘못 믿는 것입니다.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은 중생한 사람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중생한 사람이 예수를 진짜 잘 믿는 사람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중생한 사람의 특징은 오직 믿음으로 삽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 성령이 임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설교말씀을 들을 때,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그 말씀에 감동되어 점점 더 성령을 따라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이 진짜 예수를 잘 믿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잘 믿는 사람은 성령충만한 사람입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의 성령에 이끌려서 살게 됩니다.


톨스토이는 말하기를 인생 존재의 참 비결은 살아있다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데 있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성령충만을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 그리스도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갑니다.


오늘 이진숙권사님의 고향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멀리 양산에서 오셨는데 그동안 우리교회를 방문하신 분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사님이셨습니다. 이름이 김윤숙집사님 이신데 옛날에 이진숙권사님과 같은 동네에 사시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다 보니까 김윤숙집사님은 오직 믿음으로 사는 훌륭한 집사님이었습니다. 집사님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귀한 헌신과 섬김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계셨습니다.


김윤숙집사님은 암웨이 회사의 일원으로서 그 사업을 통해서 주시는 재물로 전도와 선교에 헌신하시는 사명을 감당하고 계셨습니다. 집사님은 필리핀, 아프리카등 성령께서 감동하시는 일이라면 아낌없이 그리고 기꺼이 헌신하셨습니다. 


제가 우리교회에도 암웨이 사업을 배우는 집사님이 있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목사님께서 암웨이 사업을 하는 그 집사님을 많이 도와 주세요 암웨이 사업은 정말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사업이예요" 하고 당부도 해 주셨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김윤숙집사님을 위해서 기도를 해 드리고, 그리고 멀리서 이진숙권사님을 찾아와 주셔서 고맙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전에 피아노선생님인 김인숙선생님이 오셨을 때에도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람이 잘 나갈 때는 내 주변에 사람들이 많지만, 그러나 삶이 어렵고 힘들어지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다 떠나버립니다. 부산에서 잘 나가던 이진숙권사님이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에, 우여곡절 끝에 남해의 시골에 와서 어렵고 힘들게 살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진숙권사님이 어렵게 지내고 계신 것을 알면서도 이곳까지 찾아와서 이진숙권사님을 뵈옵고 가는 김윤숙집사님을 보니까 김윤숙집사님은 주님의 마음을 가진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김윤숙집사님을 보내 주신 것을 감사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는, 사람이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성령을 따라서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가 많은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그러나 예루살렘교회는 성령을 받았기에 모범 교회가 됩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성령을 받은후에 반석위에 견고하게 세워져서 불시험과 환란을 이기는 교회가 됩니다. 그래서 나라의 공권력도, 군대도, 그 어떤 세력도 예루살렘교회를 무너뜨리지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미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세상이 무너뜨리지 못하는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수제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는 올바른 신앙고백을 하자 예수님은 크게 기뻐 하시면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6:17-18)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같은 예수님의 선포가 있었기에 세상나라는 무너져도 교회는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셨습니다. 교회는 제자들의 열심으로 세워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언약을 따라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서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오순절날에 성령 충만을 받은 베드로가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복음을 전하면서 너희가 죽인 예수가 바로 메시야 구세주이시다라고 선포하자, 복음을 들은 수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어찌할꼬”하고 탄식하면서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이 3천명이나 되었습니다.


성령을 받은 이후에 베드로는 더 이상 변덕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성령받은 후에는 죽기를 각오하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까 성령받기 전 까지는 베드로의 신앙이 가짜신앙 이었습니다.


성령받지 못한 이스라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을 받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따라 다니다가 하루 아침에 예수님을 배반하고 예수님을 정죄하다가 모두 다 실족했습니다.


당시에 수만명 수십만명이 예수님을 추종하면서 따라 다녔지만 그러나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은 사람들은 오직 성령충만을 받은 120명 뿐입니다. 하나님은 성령받은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셨습니다.


2000년 기독교 역사를 주도해온 사람들도 성령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령에 사로잡혀서 뜨거운 열정으로 복음을 전하고 전도하고 선교한 사람들에 의해서 기독교가 성장해 왔습니다.


오늘날에도 성령받은 성도들은, 교회가 깨지던 목사님이 바뀌던 그런일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을 모시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기도하면서 충성을 다합니다. 그러나 성령받지 못한 성도들은 이랬다 저랬다 하면서 변덕을 부립니다.


전에 제가 김연숙씨의 간증을 소개한적이 있습니다. 이분이 미국에 이민을 가서 사는 동안에 한 장로님을 만났는데 그 장로님은 미국에서 22년을 살았습니다. 다행히 미국에 가자마자 교회에 나가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열심히 믿음생활을 해서 장로님까지 되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22년동안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에 이 장로님이 교회를 옮겨 다녔는데 자그마치 100교회가 넘는 교회를 옮겨다녔습니다. 무려 1년에 약 다섯교회를 옮겨 다녔습니다. 평균 두 달에 한 번 정도 교회를 옮긴 것입니다.


이 장로님은 이상향의 교회를 찾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장로님은 교회를 옮기는 그 날 부터 좋은점은 안보고 단점만 찾았습니다. 좋은 교회를 찾아서 교회를 옮겨갔는데  장로님은 교회를 옮기자 마자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마음에 안드는 부분들을 기억해 놓았다가 예배가 끝나면 만나는 사람들에게 목사님의 설교에 대해서 비판을 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동안에 교회 주보에 잘못 타이핑된 글씨들을 찾아내서 동그라미를 쳐놓고 지적을 했습니다. 성가대와, 주방의 식사와, 교인들의 태도들을 지켜보면서 그들의 단점을 기억했다가 기회가 생기면 지적을 합니다. 그렇게 장로님은 100교회가 넘는 교회를 옮겨다녔습니다.


어느날 그 장로님이 병 들어서 죽었는데 어떤 교회도 그 장로님의 장례식을 치러주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그 장로님이 제대로 섬긴 교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다닌 교회의 목사님이 그 장로님을 불쌍히 여겨서 장례식을 치러 주었습니다.


그 장로님이 천국에가서 예수님을 만나면 무슨 말을 듣겠습니까? 밤낮으로 교회와 목사와 교인들의 허물만 들춰내다가 죽은 그 장로님은 예수님으로부터 크게 책망을 받고 지옥으로 갔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성도들은 이 장로님처럼 이상향의 교회를 찾아 다닙니다. 마음에 안들면 교회를 떠나서 다른교회로 옮겨 갑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이상향의 교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편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에 이상향의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 사람은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겸손한 마음으로 교회에 나오는 사람입니다. 그런 겸손한 마음을 가진 성도는, 교회가 크던 작던, 목사님이 훌륭하던 훌륭하지 않던간에 이상향의 교회에서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성령충만을 받은 예루살렘 교회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교인들 중에는 성령을 속이고 밭을 판 헌금을 띠어먹었다가 벌을 받아서 죽은, 아나니아와 삽비라같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교회안에서 과부들의 구제 문제로 인해서 헬라파와 히브리파가 싸우는 바람에 자칫하면 교회가 갈라질 뻔 했습니다.


예수님은 땅끝까지 가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라고 명령을 하셨는데, 예루살렘교회는 오직 유대인들에게만 전도를 하다가 결국 스데반집사가 돌에맞아 죽는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안으로는 갈등과 시험이 계속되었고 외적으로는 종교지도자들의 핍박과 환란을 받는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나중에는 흩어진 사람들이 다시 교회를 세웠는데 그 교회의 지도자인 바울과 바나바가 갈등이 생겨서 크게 싸우고 갈라서는가 하면, 초대교회 최고의 지도자인 베드로와 사도바울도 서로 갈등을 빚었습니다.


이와같이 초대교회는 여러 가지 문제와 갈등과 죄가 있었던 교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가 모든 교회의 본이 된 이유는, 벌어진 모든 문제들을 하나님 안에서, 성령을 따라 해결하는 영성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파벌이 생겨서 서로 싸우자 베드로는 공회를 열고 모여서 기도한 후에 사도들은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고 집사들은 구제와 봉사를 하게 함으로서 교회의 갈등을 잘 처리 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크게 다툰 후에 그들은 서로 기도하고 각자 자기와 함께 동역할 사람들 데리고 선교  여행을 떠남으로서 오히려 더 큰 영혼구원의 열매들을 얻게 됩니다. 


이와같이 초대교회는 문제가 생겼을때 감정싸움을 하지않고 하나님앞에 엎드려서 기도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문제를 해결했기에 더 좋은 열매가 맺혔고 그렇게 행한 모든 일들을 하나님이 기뻐하셨습니다.


초대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들의 영성이 오늘 본문 43절에 잘 나타납니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초대교회의 지도자와 성도들은 하나님을 두려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도들을 통해서 기사와 표적이 많이 보여 주셨다라고 오늘 본문 43절은 증거 합니다.


그 옛날 마르틴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때, 보름스 라는 국회 앞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생사를 가름하는 재판이 그곳에서 열렸습니다. 스튜트가르트에 가면 그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루터는 하늘을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Oh, God. Here I stand”


이게 아주 유명한 말입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여기 서 있습니다!” 딱 한마디입니다. 루터는 자기가 사람 앞에 서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내가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루터를 보호해 주셔서 종교개혁에 성공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그 신전 의식이 바로 성령 받은 사람의 생각이요 참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스데반집사가 순교할 때에 보면, 스데반집사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이 바로 자기와 같은 동족인 헬라파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왕년의 동료들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이를 갈면서 스데반에게 돌을 던졌습니다. 


그때 스데반집사는 하늘을 우러러 봅니다. 스데반집사가 하늘을 우러러보았다는 것은 지금 나는 예수님 앞에 서 있다라는 사실을 확신한 행동입니다.


저 사람들이 나에게 돌을 던지든 말든 내가 죽던 말든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절체 절명의 때에도 오직 예수님만 바라봅니다. 이게 바로 성령 받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성령받은 사람은 항상 초점을 하늘에 두고 삽니다. 독일의 신학자인 몰트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명의 영에 사로잡히게 되면 개인의 모든 삶은 카리스마적 체험이 된다


성령에 사로잡혀서 사는 사람은 자기의 모든 경험과, 지식과, 모든 사건이 카리스마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도 점점 깊은 은혜의 체험속에서 진행되고, 모든 일이 하나님과 나와의 은사적 관계, 즉 카리스마적 관계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더불어서 성령충만을 받으면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명력을 그대로 체험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영이 내 안에 계신 삶을 살게 됩니다. 그것을 영어로는 “Exalted Christ”라고 말을 합니다. 부활승천하신 예수님이 “Living Christ”로 내 안에 함께 살아계신 삶을 산다는 말입니다.


이런 확신이 있는 사람에게는 기적이 나타나게 됩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거지가 예루살렘 성전 문에 앉아있었습니다. 제자들도 그 거지를 성전에 갈때마다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성령받은 베드로가 성전에 올라가다가 그 거지를 보는 순간에 성령께서 감동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베드로야 너는 왜 저 앉은뱅이 거지를 보고도 그냥 지나가는 거냐? 지금당장 저 앉은뱅이거지를 일으켜라!”라고 성령께서 감동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감동을 받은 베드로는 놀라운 기적을 일으킵니다. 베드로는 나면서 앉은뱅이 된 40세 된 사람을 향해서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3:6)라고 명령을 합니다. 그랬더니 앉은뱅이 거지가 벌떡 일어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놀래서 베드로와 요한을 우러러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베드로가 한 일이 아니라 성령께서 베드로와 함께 계셨기 때문에 벌어진 기적입니다. 그걸 모르는 수 많은 사람들은 베드로를 우러러 보면서 베드로에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어찌하여 나를 쳐다보느냐?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살아 계신 그리스도께서 이런 일을 행하셨다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성령충만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내 손으로 하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두 다 주님이 나를 통해서 역사하는 것 뿐입니다. 그래서 성령충만을 받은 성도는 오직 하나님만 경외하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립니다.


또 한가지 초대교회에서 배워야할 영성은 교제의 영성입니다. 44절로 46절을 다시보면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라고 증거 합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교회안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를 내 가정처럼내 가족처럼 여기고 힘을 다해 섬겼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이스라엘에 매우 심한 기근이 닥쳤습니다. 그래서 모든 백성들이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런 힘든 상황이 되자 너나 할 것 없이 살아남기 위해서 허리를 동이고 지출을 꺼리는 형편이 되엇습니다.


그런데도 예루살렘교회의 성도들은 환란이 오자 자기가 가진 땅과 모든 재산을 아낌없이 팔아서 교회에 내어 놓고 함께 나누었습니다. 죽어도 함께 죽고 살아도 함께 살기로 작정하고 공동체를 위해서 아낌없이 헌신한 것입니다.


당시에 헤롯왕은 엄청난 돈을 들여서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그 당시에 헤롯이 돌로지은 성전은 지금도 불가사의한 건축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헤롯이 지은 영화로운 성전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초라하고 볼품없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성령강림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금번에 성지순례를 갔을때 가이드로 수고한 이현정집사님이, 가는 곳마다 목사님들에게 돌아가면서 기도를 시켰습니다. 이스라엘 북쪽의 므깃도평원으로부터 시작해서 갈멜산과 가버나움과 벳세다와 팔복교회와 오병이어교회와 베들레헴교회와 부활승천하신 곳과 예루살렘성전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전체를 성지순례를 하면서, 가는 곳마다 한분 한분 목사님들에게 돌아가면서 기도를 시켰습니다.


그런데 제차례가 와서 제가 기도를 하게 된 곳은 마가의 다락방이었습니다. 저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대표 기도를 하면서 얼마나 은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각 나라마다 성지순례객들이 그 다락방에 들어와서 구석 구석에 모여서 통성기도를 하는데, 저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를 하면서  “2000년전에 예수님의 제자들과 120명의 성도들이 이 자리에서, 죽자 사자 기도하다가 성령충만을 받았구나!” 라고 생각하니까 감개무량해서 저도 성령을 사모하면서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이곳에 모인 우리모두에게도 성령충만을 주시옵소서! 이곳에 모인 목사님들께서 목회하는 모든 교회의 성도들에게도 성령충만을 주시옵소서! 예수믿는 모든 성도들이 성령충만을 받고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나라의 모든 교회와 세계교회와 선교지에 성령충만을 주시옵소서! 특히 이곳에 모인 주의 종들에게 성령충만을 주셔서 주님의 지상명령을 이루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면서 얼마나 은혜가 임하는지, 마음 같아서는 계속해서 기도를 하고 싶었지만 마가의 다락방 안으로 끊임없이 들어오는 사람들 때문에 더 이상 오래 기도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를 끝낸후에 모든 목사님들이 나간후에, 다시 얼른 마가의 다락방 구석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하나님! 저에게도 성령충만을 주세요! 시간이 없습니다! 이곳에서 성령충만을 받은 제자들처럼 저에게도 성령충만을 주세요!”하고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뜨거운 은혜가 임했고 엄청난 기쁨이 엄습했습니다.  저는 너무나 기뻐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하고 소리를 외치면서 기뻐 했습니다.


그 감동과 기쁨을 안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나와서 시온산으로 올라 갔습니다. 저는 목사님들 일행이 올라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맨 뒤에 처져서 아름다운 시온산에 순례자는 올라가겠네 아름다운 시온산에 순례자는 올라가겠네라는 찬송을 부르면서 날아갈것 같은 마음으로 시온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시온산을 돌아본후에 다시 내려와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반한 장소로 갔습니다. 베드로도 변덕이 죽끓던 믿음을 가졌지만 나중에는 놀라운 변화가 생깁니다.


당시에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베드로의 과거를 다 알고 있었습니다. 성령받은 후에 베드로가 밖에서 열심히 설교를 하고 있었지만, 그는 불과 며칠전에 예수님이 붙잡혀 가셨을 때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면서 맹세를 했습니다.


그런 베드로의 비겁한 모습을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설교하는 베드로를 보면서 저 사람이 예수의 수제자인데 예수를 배신하고 도망간 사람이야하면서 떠들어 댔을 것입니다, 모두가 그런 모습으로 베드로를 바라 보는데도 베드로는 아랑곳 하지않고 담대하게 설교를 했습니다.


어떻게 그런일이 가능합니까? 사람들은 베드로의 어두운 과거를 다 알고 있습니다. 불학 무식한 것까지도 알고 있습니다. 학교에는 가본적도 없고 그는 갈릴리에서 물고기를 잡던 어부라는 것도 다 압니다. 한마디로 형편없는 인간이 무슨 낮짝으로 우리앞에서 설교를 하는거야”?라는 비난과 조소가 넘쳐 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모든 부끄러운 과거로부터 완전히 출애굽을 했습니다. 이게 놀라운 기적입니다. 베드로는 이제 새로운 용기로 충만합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자기를 비난하고 과거가 자기의 발목을 잡아도 상관이 없습니다.


지난날에 내가 형편없는 배신자요 변덕쟁이요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고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성령받은 후에 지나간 과거는 깨끗이 지워버렸습니다.


베드로는 오직 한가지만 생각 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나를 부르시고 예수님께서 나를 주님의 사람으로 쓰기를 기뻐 하셨어!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까 이제는 세상사람들이 뭐라하던 상관없어 나는 오직 양을 치는 일을 잘 감당할거야!베드로는 그 마음만 가지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실 자기를 부정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과거를 다 알고 있는데, 자기의 과거로부터 완전히 자유한 삶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특히 인간관계에 있어서 상처를 주고받은 후에는 더 더욱 그런 일들이 발목을 잡고 마음을 힘들게 합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을 받은 사람들은 그것까지도 초월하면서 살아갑니다. 어떤일이 벌어져도 감사하면서 살아갑니다. 예수믿는 사람은 무슨일이 벌어져도, 심지어 죽음이 와도 초월하는 신앙을 가지게 됩니다.


베드로도 과거를 뒤로하고 새로운 믿음으로 새출발을 했습니다.


저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그 장소에서 눈물로 회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곳에서는 약 20분동안의 자유시간을 가졌는데, 


저는 거기서 하나님! 제가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에 저도 베드로처럼 얼마나 변덕을 부리면서 살아왔는지 모릅니다. 어렸을때부터 교회는 다녔지만 사춘기 시절에는 미움과 증오가 가득한 마음으로 지냈습니다.


장성하여 청년이 된 후에는 성가대에 교사에 청년부지도자로 열심히 교회에서 봉사를 하면서도 종종 예수님을 외면하고 내멋대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정욕에 빠져서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사랑을 받아서 주의 종이 되었는데도 미워하고 시험에 들고 넘어지면서 지냈습니다. 천국백성이 되었는데도 세상 즐거움과 땅의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기보다는 텔레비전을 보고,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을 더 좋아 했습니다.


전도하고 선교하기 보다는 여행하고 사람들 만나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이 모든 죄를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내가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하고 울면서 통회자복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성지순례는, 가는 곳마다 은혜의 도가니 속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여정이었습니다. 금번 성지순례는 주님의 제자된 믿음을 회복하고, 또 영성을 회복하고 주님께로 다시 돌아가는 은혜가 있었던 성지순례 였습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도 성령받은 후에는 더 이상 세상 부귀영화와 재물에 대해서 연연해 하지 않았습니다. 성령받기 전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아서 더 잘 먹고, 더 잘 살고, 더 높아지기 위해서만 믿음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받은 이후에는 오직 예수님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성령받은 초대교회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게 됩니다. 47절에 보면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그동안 예수믿는 사람들은 세상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멸시천대를 받으면서 지냈습니다. 그러나 성령충만을 받은 이후에는 사랑으로 하나되어 사랑으로 섬기는 공동체가 되었기에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교회가 된 것입니다.


교회는 평판이 좋아야 합니다. “그 교회 참 좋더라, 목사님도 참 좋더라, 성도들도 착하더라라는 소문이 나야 합니다. 이런 소문과 평판이 전도의 문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합니다.


어제 김상철성도님께서 점심식사를 대접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김상철성도님이 친구를 데리고 가자고 해서 친구의 상가 앞에서 그분을 태우고 같이 갔습니다. 그분은 남해읍에서 아주 오랬동안 전자제품을 취급하는 사장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식사를 하는 도중에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사장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을 만나 뵈니까, 제 친구가 왜 술을 끊었는지 알겠습니다! 이제야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목사님을 만나 뵈니까 제 친구가 술을 끊을 만 하네요!”하고 저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남해사람들의 평판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제가 그 사장님에게 남해사람들은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에 대해서 마음문을 잘 열지 않는 것 같습니다했더니


맞습니다. 우리 남해사람들이 안으로만 강하게 결속하는 관습이 있습니다라고 하시면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만난 어떤분의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만난 그분은 우리나라 전국을 다니면서 살만한 곳을 살피다가 남해가 마음에 들어서 남해에 와서 살려고 작정을 하고 우선 동네를 순방하자 하고는 남면의 한 마을에 텐트를 치고 이틀을 지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틀동안 텐트를 치고 지내는 동안에 동네 사람들이 와서 얼마나 텃세를 하는지 마음이 상해서 그분은 결국 남해에서 살기를 포기하고 다른곳으로 가서 둥지를 틀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남해는 외지에서 온 사람이 살기가 힘든 곳입니다 살데가 못됩니다라고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예수믿는 사람들도 안믿는 사람들로부터 예수믿는 것들은 상종하기도 싫어! 예수믿는 사람들은 별로야!”라는 말을 들으면 안됩니다. 그저 누구에게든지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제가 김상철성도님을 집에다 모셔다 드리고 오는데, 길에 나이드신 분이 걸어가길래 차를 세우고 태워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하는 말이 누워서 침뱉기지만 우리 집안의 한 가정은 며느리가 잘 못 들어오는 바람에 집안이 망했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서 여자가 잘못 들어오면 집안이 망하듯이 교회에도 성령받은 여자가 들어오면 교회가 흥하지만 악령받은 여자가 들어오면 교회가 망한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성령받은 사람들이 많아져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됩니다.


마전에 김혜은집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별일 없으시죠! 교회는 평안한가요?” 그러면서 집사님이 최근에 있었던 한가지 사건을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사모님이 그러는데 김다윗목사님은 남해에서 빅 5에 드는 훌륭하신 목사님이라고 하시던데요?”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남해에 있는 50개 교회에서 빅5에 드는 목사님이라는 말을 듣고 나니까 마음이 참 기뻤습니다.


그래서 제가 김혜은집사님의 전화를 받고나서 그래도 내가 남해에서 목회하는 동안에 목회를 잘못하지는 않았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제 집사람은 이곳 고향에서 환영 받지 못하는 모습을 제가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사모가 어렸을때부터 자라나는 모습을 다 보았습니다. 그래서 사모가 자라나는 과정뿐 아니라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에 사모의 단점과 헛점을 다 알고 있기에 사모가 아무리 잘 섬기고 또 주님이 주신 사명을 열힘히 감당해도 사모에 대해서는 존경심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처음에 이곳에 와서 목회를 할때 이곳 사람들이 배척을 하는 바람에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저를 대적한 몇몇분이 얼마나 악한 소문을 내고 다녔는지, 이 동네에서 저는, 고등학교밖에 못나온 가짜목사요, 신천지 이단목사요, 사기꾼목사요, 부정한목사요, 엉터리 목사라는 소문이 지금도 떠돌아 다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중에는 그 소문을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에 대해서 악담을 한 사람들 때문에 저는 이 동네에서 사이비목사로 소문이 났습니다. 그래서 전도가 쉽지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소문을 듣고 사람을 평가 합니다. 그런데 평가가 극에서 극입니다. 나쁘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저를 사이비 이단에 가짜 목사로 압니다. 그러나 저를 만나보고 저를 아는 분들은, 저를 세상에 없이 좋은 목사라고 칭찬을 합니다.


예수님도 똑같은 상황속에서 지내셨습니다. 예수님을 체험적으로 알게된 사람들은 예수님을 메시야 구세주로 알고 예수님을 극진한 마음으로 존경하고 경외하면서 섬겼습니다.


그러나 시기질투에 사로잡힌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귀신들렸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귀신의 왕이라고 정죄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미혹하는 자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요 신성모독자요 이단이라고 정죄를 했습니다. 그 내용이 마가복음322절 이하에 나옵니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예수께서 그들을 불러다가 비유로 말씀하시되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만일 사탄이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하느니라”(22-26)


이런 말을 들은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29)


그러니까 예수님을 향해서,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지어내서 악담을 한 사람은 성령을 모독하는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말씀 하시기를 "다른죄는 다 사하심을 받아도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용서받지 못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성령을 훼방한 사람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그에 합당한 벌을 받게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함부로 교회를 비방하고 주의 종을 비방해서는 안됩니다. 그 비방이 사실이면 문제가 없지만, 만약에 사실이 아닌 거짓말을 지어내서 말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성령훼방죄로 벌을 받게 됩니다. 


끝으로 하나님은 모든 교회들이 사랑하고 섬기고 전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고 섬기고 전도하는 교회가 되려면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성령받은 성도들은 인생의 목표가 분명해 집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이 영혼구원임을 깨닫고 순교를 불사하면서 전도를 했습니다.


전도는 쉬운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이적과 기적과 말씀과 능력을 행하면서 전도를 하셨기에 수만명 수십만명이 따라 왔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남은 제자는 12명 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예수님을 따르기로 작정한 사람들은 이스라엘 전체에서 120명 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전도하던 시대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마귀에게 미혹되어서 실족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일이다라고 하시면서 성령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은 성령시대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성령강림 이후에는 성령님께서 교회를 이끌어 가십니다 그래서 모든 교회는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받은 예루살렘교회는 비로소 교회다운 교회가 됩니다.


강원도 예수원에서 사역하셨던 대천덕 목사님은 성공회 신부님입니다. 저도 청년때 예수원을 세 번이나 다녀왔습니다. 참으로 훌륭하신 목사님이 그곳에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할아버지인 R. A. 토레이 목사님이 남긴 글에는 성령 충만이 자주 강조됩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성령 충만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성령 충만하게 도와주십시오

왜냐하면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오늘 하루,

나는 너무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제가 성령 충만하다고 느끼지 못할 때 

 함부로 말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성령 충만하지 않을 때 말하면 실언이 되기 쉽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제가 성령 충만하지 않을 때 

 제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저의 결정은 잘못될 가능성이 항상 있기 때문입니다.”


R. A. 토레이 목사님은 이처럼 성령 충만을 사모했습니다.


우리도 성령으로 충만할 때 성령의 열매를 맺으면서 살게 됩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면 아름다운 교회를 세워갈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까지 성령충만한 가운데서 신앙생활을 함으로서 주님께 칭찬받는 성도와 교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출처 : 보물섬남해세광교회
글쓴이 : 행복을 주는사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