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에는 출타 하느라 설교를 못 올렸습니다. 일이 있어서 수요예배를 일찍 드리고 출타를 했는데 수원쯤 갔는데 형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형님은 함께 갈데가 있다고 하면서, 작은아버지의 아들 사촌동생인, 김동원집사가 소천했기에 파주 도립병원 장례식장에 가야한다는 소식을 전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 소식을 접하고 크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촌동생 김동원집사가 저의 어머니 권사님 장례식장에 와서 “형! 올해 우리 형제들 가족이 전부 모여서 형님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특송도 하기로 했어요! 제가 형님교회에 가면 섹스폰연주로 특송을 할께요!” 하고 이야기를 해서 “그래? 그거 참 잘됐다! 모두 다 와서 함께 예배 드리고 너에게는 특별히 시간을 배려해 줄테니까 섹스폰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56세 밖에 안 된 건강한 동생이 세상을 떠났다는 말에 어안이 벙벙 했습니다. 우리는 분당에서 박에스더집사님을 만나서 저녁식사를 하고, 그리고 임화자권사님댁에가서 여장을 푼 후에, 저녁 늦은 시간에 형님을 만나서, 경기도 파주에 있는 금촌 도립병원의 장례식장으로 갔습니다.
장례식장에 들어 섰더니, 김동원집사의 형, 김동현집사가 저를 보더니, 저를 끌어앉고 한없이 흐느껴 울었습니다. 김동현집사는 울면서 “형! 동원이가 먼저 갔어요! 하나님이 동원이를 데려 가셨어요!”하면서 울었습니다.
저도 김동현집사를 끌어안고 같이 울었습니다. 그렇게 한참동안 김동현집사와 얼싸않고 있다가 빈소에 들어가서 김동원집사의 사진을 보니 만감이 교차 했습니다.
김동원집사는 어려서부터 제가 참 좋아했던 동생입니다. 성품이 겸손하고 믿음이 좋아서 늘 하나님과 동행하던 동생입니다.
김동원집사는 금촌 중앙교회에서 충성을 다하면서 믿음생활을 했습니다. 금촌 중앙교회에서 얼마나 충성봉사를 했는지 최 연소 안수집사로 임직을 받고 지금까지 교회의 기둥으로 사명을 감당 했습니다.
김동원집사는 결혼한 후에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식이 없는 것도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아내권사와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전념 했습니다.
상가의 식탁에 앉아서 김동원집사의 형 김동현집사와 누나 김화영권사님, 그리고 우리교회 입당예배때 딸 다혜를 데리고와서 많은 봉사를 해준 김동원집사의 여동생, 김화경권사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김동원집사는 교회의 차량운행부터 교회청소, 성가대, 교사, 남전도회등 교회에서 충성봉사를 다했고 목사님의 오른팔처럼 섬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안타까운 일은 오래전에 사업을 하다가 사기를 당해서 빚을 지게 되었는데 그 빚을 갚느라 애를 많이 쓰면서 지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동생이 파산신청을 해서 부채를 면제 받을수도 있는데도 끝까지 부채를 갚느라 애를 많이 썼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런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쓰면서 지낸것이 화근이 되어서 결국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것 같다고 형제들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동생 김동원집사가 사랑하는 아내권사만 남겨두고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은 안스러운 일이지만 그러나 평생동안 주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고 충성을 다했기에 김동원집사는 하늘나라에서 예수님의 환영을 받고, 그리고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었으니 우리는 되어진 모든일에 감사하기로 했습니다.
동생의 죽음은 우리뿐 아니라 모든 가족들에게도 죽음은 순서가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 의미있는 죽음이었습니다. 세상에 올때는 순서가 있지만 갈때는 언제 누가 먼저 갈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 죽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준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제가 남해에 돌아와서 제 친구 목사들에게 동생의 영정사진을 카톡으로 보낸후에 “사랑하는 사촌동생 김동원안수집사가 56세를 일기로 소천 했다네! 너무 일찍 간건 안타깝지만 충성 봉사하다 천국에 갔으니 은혜로 받아야 할것같네!”라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친구 목사님들이 위로와 더불어 “우리 모두 주님 앞에 설 그날까지 늘 깨어서 살아가자” 라는 문자를 보내 왔습니다.
사람은 살아 생전에 잘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살아 생전에 죄만 짓다가 죽으면 지옥불에 들어갑니다. 사람은 죄를 해결 받아야 천국에 갈수가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절대로 죄를 씻을수가 없습니다. 죄는, 죄값을 치러야 사라집니다.
사람이 범죄하면 감옥에 가서 감옥살이를 하면서 죄값을 치르던지 아니면 벌금을 내야 죄값이 해결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들은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 할 수 없습니다. 미워하는죄, 아무도 모르게 도둑질한죄, 간음한죄, 살인한죄, 사기친죄, 거짓말한죄등은 반드시 하나님이 심판 하십니다.
사람이 짓는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생명을 주시고 땅과 하늘과 온갖 좋은 것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을 믿지 않은 죄입니다. 그 죄값으로 인해서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죄들은 하나님이 씻어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씻겨 주시려고 세상에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우리죄를 대신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함으로서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돌아 가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내죄를 대속하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죄사함을 받고 천국에 가게 됩니다. 그래서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지만, 이미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은 성도들에게는 반드시 지켜야할 의무가 주어 집니다.
하나님은 믿는 성도들에게 성결과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안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기회와 동기는, 오직 믿는 성도들의 언행심사와 태도를 보고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믿은 성도들은 "너희는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믿는 성도가 세상에서 엉터리로 살고 덕이 안되는 삶을 살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아서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악한 나라도 악한 사람도 회개하고 구원받아서 천국에 가는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믿는 성도가 개차반으로 살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울 뿐 아니라 전도의 길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수믿는 길을 가로막는 그런 못된 성도는 차라리 연자맷돌을 목에 걸고 바다에 빠져 죽는 것이 낫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마가복음9장42절)
예수 안믿으면 무조건 지옥으로 갑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도 신앙생활을 엉터리로 하거나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면, 즉 신앙생활을 잘못해서 구원 받아야 할 사람이 나때문에 구원을 못받게 된다면 그런 사람도 지옥행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목사와 장로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길을 가로막고 서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죽하면 천국간증을 하시는 분들이 입신이나 또는 죽었다가 깨어나서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천국에 가 보니까 목사와 장로가 별로 없다고 간증을 했겠습니까?
그만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진실한 목사와 진실한 장로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말입니다.
지난주에 장경현 안수집사님이 저희 교회를 방문하셨습니다. 장경현집사님은 울산 성문교회의 안수집사님이신데 지금은 은퇴 하시고 1톤 트럭에 항아리와 후라이팬등을 가지고 다니면서 판매를 하고 계셨습니다. 설교 준비를 하다가 잠시 바람을 쐬려고 나갔는데 항아리를 실은 차가 지나 가길래 제가 불렀습니다.
서울에서 어머니권사님의 짐을 정리해서 가져왔는데 크고 작은 항아리를 열개 쯤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다섯개가 뚜껑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항아리를 파는 분이 지나가길래 그분에게 항아리 뚜껑을 샀는데 마침 점심시간이라 그분을 모시고 대접을 하려고 했더니 식사를 하셨다고 해서 다과를 나누면서 대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장경현집사님이 울산에 있는 본교회에서 안수집사님으로 충성을 다해서 섬겼는데 어느날 담임목사님이 목회를 그만두고 다른 목회지로 떠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회의 장로들이 떠나는 목사님에게 일체 인사도 못하게 하고 광고도 못하게 해서 목사님이 허무하게 교회를 떠나시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동안 목사님께서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으로 목회를 하셨는데, 그런 목사님을 장로들이 냉대하고 홀대해서 떠나 보내려고 하는 것을 지켜보던 집사님이 이건 아니다 싶어서 예배시간에 일어나서 목사님이 오늘 떠나신다고 광고를 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장로들이 노회에 고소를 해서 집사님은 재판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노회에 100만원의 공탁금을 내고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노회에서 재판을 받으러 오라는 통보가 와서 갔더니 노회의 담당 목사님 네분과 장로님 네분이 재판정에 앉았는데 첫 마디가 “왜 집사님은 교회에 분란을 일으켜서 교회를 시끄럽게 하셨습니까?”하고 묻더랍니다.
그래서 집사님이 일어나서 “내가 보기에 우리 목사님은 지금까지 오직 사랑과 희생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신 훌륭하신 목사님인데 그런 목사님이 교회를 떠나시게 되었는데 교회에서 인사도 못하게 하고 또 왜 떠나야 하는지 소명의 기회도 주지않고 아무말없이 무작정 떠나라고 한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지금 여기에 앉아계신 목사님들이 지금 목회하고 계신 목회지와 섬기는 교회에서 떠나시게 되었는데 인사도 하지말고 아무런 말도 하지말고 무작정 떠나라고 한다면 그런 결정에 동의하시고 묵묵히 떠나실 목사님 계십니까?” 하고 이야기를 했더니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이 아무말도 못하시더랍니다.
그렇게 재판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기다렸는데 노회에서 장경현안수집사의 의견이 합당한 것으로 결정 되었으니 100만원의 공탁금은 교회에서 지급하라는 결정을 통보 받았다고 합니다.
영의 아버지를 보내 드리면서 인사도 못하게 하고 매몰차게 내 보내려고 한 그런 엉터리 장로가 울산에 또 있었나 봅니다.
그 사건후에 장경현집사님은 더 이상 이런 교회에서는 신앙생활을 못하겠다 싶어서 그 교회를 떠나서 이웃 교회로 옮겼는데, 그 교회에 가 보니까 그 교회는 마치 천국같더랍니다. 장로님들이 주일 아침에 일찍 와서 화장실 청소를 하고, 권사님들은 사랑이 넘치고, 주일마다 늘 잔칫집처럼 행복하더랍니다. 아마 그 교회가 마치 우리 남해세광교회와 같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집사님은 교회를 옮긴후에 지금까지 너무나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간증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집사님께서 또 한가지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얼마전에 상주에 갔는데 거기서 은퇴 목사님을 만난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그 은퇴 목사님과 대화를 나누는데 목사님이 직분을 묻더랍니다. 그래서 “저는 안수집사로 은퇴를 했습니다” 했더니 그 은퇴목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집사님! 참 잘했습니다! 안수집사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쉽지만 장로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내가 보기에 장로중에 천국에 들어갈 장로는 몇 안될 것 같습니다! 안수집사로 은퇴 하신 것은 정말 잘한 일입니다!” 하고 말씀을 하시더랍니다.
장로님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좀 기분이 나쁘겠지만 그러나 평생 목회하신 은퇴 목사님의 고백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제가 보기에도 지금까지 제가 50년 신앙생활을 하고 또 근 30년동안 목회를 하는 동안에 제가 만난 장로님들 중에 훌륭한 장로님도 계셨지만 그러나 “저 장로님은 정말 천국에 들어 가시겠구나!” 라고 생각되는 장로님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노회에 가보니까 “저런 사람이 어떻게 목사가 되었나?” 싶을 정도로 비 인격적이고 완악하고 강퍅한 목사가 수두룩 했습니다.
총회에 갔더니 이건 더 난장판입니다. 세상에 전국의 목사들과 장로들이 다 모이는 총회에 갔더니 그곳에 온 목사와 장로 총대들이 서로 삿대질을 하고 욕을 하면서 싸우는데 그 광경을 보면서 제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 싸움이 수십년동안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총회와 노회를 보면서 이 민족의 교회에 과연 소망이 있는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지난번에 말씀 드린것처럼 총회장과 임원들이 도박에 미쳐서 총회 경비 수십억원을 도박으로 탕진했다는 소식에, 이미 오래 전부터 금권선거로 부패와 타락의 온상이 되어버린 총회와 노회에서 그런 소식이 들려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에 더 이상 놀라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기독교를 이끌어 가는 목사들과 장로들이 이정도니 우리나라의 기독교에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예수를 믿어야 구원 받아서 천국에 가는데 예수를 증거하고 소개하고 가르치고 본을 보여야할 목사 장로들이 이렇게 타락했으니 어떻게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겠습니까?
오늘날 우리 기독교는 마치 사사시대를 방불케 합니다. 모두가 제멋대로입니다. 자기만 옳습니다. 그래서 갈라지고 분열된 우리나라의 기독교는 이제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는 종이 호랑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노무현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큰 기대를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기에 뭔가 다른 정치를 할 것으로 기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2년이 지나자 택시 운전기사, 시장의 상인들, 식당에서 장사를 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고백하기를 “노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우리 서민들은 희망을 가졌어요! 과감하게 개혁도 하고 민생도 잘 챙겨주고 정치도 건설적으로 깨끗하게 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지난 2년간 우리는 너무나 실망을 했어요! 희망이 있어야 오늘 고생을 해도 참을 수가 있는데, 갈수록 점점 희망이 없으니 어떻게 이런 불경기를 견디겠어요! 하루 종일 쉬지않고 택시를 운전해도 네 식구 먹고 살기가 힘듭니다!”라고 너나 할것없이 고백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지적하기를 “지난 2년 동안 국보법 폐지니, 과거사 청산이니 하면서 여야는 물론이고 온 나라가 보수와 진보 양쪽으로 갈려서 싸우는 통에 민생은 뒷전으로 밀리고 서민들만 새우등 터지는 꼴이 되었습니다! 지금 실업자들을 보십시오! 실업자가 100만에 육박합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도덕적인 면에서는 어땠습니까?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렵더라도 사회의 도덕풍토가 건전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으면 그 사회는 정화가 됩니다. 그래서 부정을 일삼던 무리들도 도태되는 날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가장 불거진 문제가 수능시험 부정과 교사가 대리시험을 보아준 일입니다. 서강대학교에서는 서강대 입학처장 아들을 부정입학시킨 것 때문에 서강대 총장과 17명의 조직교수들이 사퇴를 했습니다.
사회 곳곳이 다 병들고 도덕 불감증에 걸렸습니다. 당시에 우리나라가 세계 앞에 부끄러운 1위가 여러 가지 였습니다. 첫째가 포르노사이트 접속율 1위, 청소년 흡연율1위, 여자 하루 흡연량1위, 주당 노동시간1위, 40도 이상 술소비량1위, 간암 사망률1위, 사이버 폭력1위, 교통사고율1위, 이혼율 1위입니다.
한국사회가 얼마나 깊이 병들어 가고 있는지를 알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라가 이런 지경까지 이르게 만든 책임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우리나라는 이상한 병폐가 생겼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면 무조건 대통령 탓으로만 돌립니다.
심지어는 다리가 무너져도 “대통령이 나와서 책임을 져라” 라고 하면서 데모를 하고 사이비 이단이 운영하는 배가 항해를 하다가 물에 빠져 사고가 났는데도 "대통령이 책임을 져라"라고 하면서 미친개처럼 물고 늘어지면서 데모를 하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 모두가 한심한 나라꼴을 보고 있습니다. 물론, 이 나라를 이렇게 만든 데에는 상당 부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대통령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책임을 대통령이 질 수는 없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의 지도층들이 함께 책임을 져야 하고 그런 악한 일을 한 당사자들이 책임을 져야합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아무 책임이 없습니까? 아닙니다. 나라의 도덕이 이처럼 타락할 대로 타락한 것은 바로 우리 종교인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숫자가 포함된 기독교의 책임이 막중합니다.
우리나라 고위 공직자 1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는데 기독교인이 42명, 카톨릭이 20명, 불교가 9명, 무종교가 26명, 기타가 3명으로 조사가 되었습니다.
이와같이 기독교는 한국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받는 비난 중에 가장 가슴 아픈 것이 무엇입니까?
기독교인들이 25%나 되고 상류층으로 갈수록 기독교인이 42%나 되고 천주교까지 계산하면 예수 믿는 사람들이 62%나 되는 데도 한국 사회의 도덕은 역사 이래로 가장 부패하고 타락했습니다.
그 이유는 종교적으로 가장 영향력이 있는 기독교인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각종 대형비리 사건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기독교 중직자들입니다. 그러니 부끄러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요즘 대형교회들은 마치 비리의 온상처럼 비쳐 집니다.
이런 총체적인 위기의 시대에 우리 기독교가 어떻게 해야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이끌어 갈수 이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 잠언14장34절에 보면 “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나라가 잘 되려면 나라가 의로워야 합니다. 죄가 판을 치는 나라는 썩어서 희망이 없습니다. “썩은 나무에 좀이 든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라가 죄로 인해서 썩으면 외적이 침입하고 마침내 그 나라는 망하게 됩니다.
또한 “썩은 나무에 조각할 수 없고 썩은 흙으로 담을 칠 수 없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죄로 썩은 나라는 하나님이 심판 하십니다. 우리나라가 아무리 경제가 회복되고 국방을 튼튼히 한다 해도 나라가 죄악으로 부패하면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역사상 모든 나라들이 망한 배후에는 군사력의 약화보다는 도덕적 부패와 타락이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가나안 일곱 족속이 망한 것도 죄악 때문이요,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망한 것과, 남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망해서 모든 백성들이 노예로 끌려가는 비참한 지경이 된것도 하나님 앞에서 타락과 방탕으로 범죄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바벨론이나 메데 파사, 그리고 로마제국이 망한 것도 하나같이 타락과 부패 때문에 망했습니다.
나라가 망하는 가장 결정적인 죄는 도덕적인 타락죄도 문제 이지만 영적인 타락이 제일 큰 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큰 범죄는 우상숭배입니다.
로마의 패망은 한 마디로 황제숭배를 강요하기 위해서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면서부터 멸망이 시작되었습니다. 소련이나 공산권 나라들이 세계를 지배할 것처럼 강하게 확장되다가 100년도 못 가서 무너진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면서 기독교인들을 죽이고 가두고 배척했기 때문입니다.
소련은 레닌을 비롯해서 독재자들을 우상처럼 숭배했습니다. 소련 전역에 레닌의 동상을 세우고 거기에 절을 하고 레닌의 묘를 성역시하고 높이 숭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와같이 우상숭배와 더불어 기독교를 핍박하는 나라들을 반드시 심판하셨습니다.
북한과 남한은 처음에는 거의 같은 기후조건에 비슷한 인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하나님을 배척하고 김일성을 우상시 했고 남한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기독교가 흥왕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 남한은 음식쓰레기가 넘쳐 날 정도로 호의호식하면서 지내는 반면, 김일성 우상화에 김정일 우상화로 수십년을 지낸 북한은 굶어 죽는 백성들이 속출하고 지지리 가난한 나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남한에 복을 주셨기 때문이고 우상을 숭배하는 북한은 하나님께서 외면 하셨기에 그렇게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북한은 하얀 쌀밥에 고깃국을 먹는 것이 소원입니다. 우리나라는 살찔까봐 고기를 기피하고 채식을 선호하는 나라로 변해 갑니다. 이와같이 북한이 비참한 지경에 처한 이유는 북한이 교회를 폐쇄하고 김일성의 동상을 북한 도처에 세우고 절하면서 섬기게 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을 숭배한 나라치고 복을 받는 나라는 없습니다. 그런데 근래에는 우리나라도 점점 미신이 판을치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통계숫자로 볼 때 무당이 목사의 일곱배에 달합니다. 수십만명의 무당들이 나라 곳곳에서 점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대기업에서 사원을 뽑을 때나 감원을 시킬 때 점쟁이를 불러다가 사주관상을 보게 하는 회사도 있습니다.
가장 건전해야 할 매스컴들도 소위 유명한 점쟁이나 무당들을 불러다가 그들의 점괘와 엉터리 예언을 금과옥조처럼 공개적으로 방송하고 있습니다. 이런것들도 나라가 망할 징조입니다.
아울러 이런 미신과 우상과 점쟁이들이 판치는 사회가 된 것은 전적으로 우리 한국교회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우리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은 엄청난데 백성들은 점점 우상숭배와 점쟁이들을 찾고있으니 한심한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섬겨야 합니다. 시편144편 15절에 보면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라고 증거 합니다. 하나님만 섬기는 나라가 곧 의로운 나라요, 그런 나라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상황은 경제적으로는 부요해 졌을지 몰라도 방탕과 타락이 물밑으로 점점 더 퍼져가고 있습니다. 정치가들은 쌈박질만 하고있고 모든 백성들이 물질만능주의에 물들어서 재물을 우상으로 섬기고 술과 도박과 마약이 판치는 세상이 되어갑니다.
이런 새상에서 하나님은 호세아처럼, 그리고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세상을 변화시킬 하나님의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오늘날 미국이라는 나라는 온통 폭력과, 음란으로 가득하고 타락할 대로 타락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미국이라는 나라가 아직도 저렇게 건재하여 세계를 좌지 우지 하고 있는 이유는 미국에 범죄자들도 많지만 한편으로는 의인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로 우리나라의 오갈 데 없는 수 많은 고아들을 양자로 받아 드리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심지어는 장애자들도 양자로 받아 들이는 가정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나라는 기독교인이 천만이라고 자랑 하면서도 이 세상에서 고아를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 없습니다.
전에 TV에서 우리나라 장애자 아이를 양자로 받아 들이기 위해서 공항에 나온 미국의 양부모가 그 아이를 끌어안고 우는 모습이 방영 되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부끄럽고 한편으로 그 미국 부부가 정말 훌륭한 부부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이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교인들의 숫자가 몇 명이냐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철저히 행하려는 의인이 몇 명이냐에 달려 있습니다.
교회 역사를 전공한 한 박사님은 말하기를 “로마시대에 5%도 안 되는 기독교인들이 로마를 정복한 반면, 95%의 등록 기독교인이 있었던 러시아는 5%도 안 되는 공산주의자들이 나라를 정복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기독교인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빛과 소금으로 사는 의인들이 필요합니다.
“최춘선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최춘선할아버지는 구부정한 몸을 이끌고 30년을 맨발로 다니면서 지하철이나 길에서 복음을 전한 할아버지입니다. 누구나 그런 사람을 보면 모자라거나 광신도 중의 하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 분이 일본 와세다대학을 나오고 5개 국어를 하는 수재요 최고 엘리트출신 이라는 것입니다. 김포공항에서 인천으로 가는 국도까지 엄청난 땅이 그분의 땅일 정도로 그분은 부자 였습니다. 그분은 하루에 두 차례나 옷을 갈아입고 승용차도 몇 대나 있었습니다.
최춘선할아버지는 일본에 서 유학할 때 하천풍언의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김구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다가 광복 후에 김구선생과 같이 우리나라로 들어 왔습니다.
고국으로 돌아온 최춘선씨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 했습니다. 그 많은 땅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나중에 너무나 가난해서 먹고 살게 없자 나라에서는 독립운동가 출신이라고 해서 보조를 해 주려고 했는데 나라의 보조도 거절을 했습니다.
누가 묻기를 “왜 이 추운 겨울에 맨발로 다니십니까?” 하고 묻자 “우리나라에 통일이 오기 전에는 절대로 신발을 안신을거야”라고 대답을 하셨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나라가 분단되어 있는것과 더불어 통일에 대해서 뫼됨됨한 생각으로 살아가지만 최춘선할아버지는 북한땅에서 고생하는 동포들을 생각하면서 항상 추운 겨울에도 맨발로 다니는 고통 속에서 민족의 아픔에 동참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분은 한국의 이사야요, 예레미야였습니다. 이사야도 삼년 동안 벗은 몸과 맨발로 다니면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회개를 외쳤습니다. 그리고 망해가는 조국 이스라엘을 바라 보면서 줄과 멍에를 메고 다니면서 백성들에게 눈물로 회개를 호소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최춘선할아버지는 대한민국의 이사야로 그리고 예레미야로 사셨습니다. 그렇게 최춘선 할아버지는 맨발로 복음을 외치다가 수년전에 지하철에서 자는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최춘선 할아버지같이 나라를 사랑하는 독립투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일제 강점기에 호세아와 예레미야처럼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믿음의 선조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은 꺼져가는 등불같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생명을 담보로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들이 가졌던 믿음을 재 조명 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지난 3월 1일은 3.1절 97주년을 맞이하는 날이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근대 역사 가운데 잊어서는 안되는 두 날이 있습니다. 하나는 3·1절이고, 또 하나는 8·15광복절 입니다.
이 두 날은 우리 신앙인들과 깊은 관련이 있는 날입니다. 삼일절과 광복절은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 깊이 개입하신 날이요, 또한 우리 기독교가 대단히 중요한 사명을 감당한 날 입니다.
아울러 3·1절과 8·15광복절은 모두 다 자유와 평등과 관계가 있는 날입니다. 인간은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부여 받은 선물입니다.
그리고 약자는 반드시 보호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레위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가르쳐주는 교훈의 말씀입니다. 레위기에는 “부약사상”(扶弱思想) 이 강조됩니다. 즉 “약한 자를 도우라”라는 사상입니다.
성경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사상이 흐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강자에게는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다만 약자에게는 “이렇게 하라”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그 대표적인 말씀이 바로 오늘본문 레위기 19장 말씀입니다.
9절부터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너희는 도둑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하지 말며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너는 네 이웃을 억압하지 말며 착취하지 말며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맹인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 너는 네 백성 중에 돌아다니며 사람을 비방하지 말며 네 이웃의 피를 흘려 이익을 도모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네 이웃을 반드시 견책하라 그러면 네가 그에 대하여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면 “너는 네 이웃을 압제하지 말며 늑탈하지 말며 품삯을 떼먹지 말며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소경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이 바로 “부약사상” 즉 “약자를 보호하라는 하나님의 지고하신 명령입니다.
더불어서 이 말씀 속에는 한가지 중요한 경고가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만일 네가 약자를 압제하고 핍박하면 내가 심판하겠다“라는 경고 입니다.
일본사람들이 36년 동안 우리민족을 아주 가혹하게 압제하고 핍박했습니다. 일본사람들은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던 모든것을 다 빼앗았습니다. 우리의 주권과 자유를 빼앗았습니다. 이름과 성과 땅을 강제로 빼앗았습니다. 약한 나라라고 얕잡아보고 통째로 우리 나라를 집어삼키려고 했습니다.
일본은 하나님이 명하신 말씀을 깡그리 무시하고 악을 행했습니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 고종을 독살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위협을 느낀 고종은 밥을 먹을 때마다 항상 개를 옆에 두고 식사를 했다고 합니다. 개에게 음식을 먹여서 별 이상이 없으면 그제서야 안심하고 먹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고종은 위협을 당하면서 살 았습니다.
일본이 한일합병을 하는데 가장 방해되는 사람은 민비였습니다. 민비는 아주 똑똑한 여인이었습니다. 일본이 그 냥 밀어붙이면 뜻대로 될 줄 알았는데 똑똑한 여인인 민비 때문에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그래서 민비를 죽이려고 모의를 한 후에 군인들을 풀어서 민비가 자고 있는 침실을 군화발로 차고 들어가서 민비를 칼로 난도질을 하고 시체를 녹지원으로 끌고 나가서 이불을 뒤집어씌우고 기름을 붓고 불태웠습니다.
일본이 이렇게 잔혹하게 우리를 괴롭혔습니다. 인권도 주권도 무시하고 모든 것을 다 약탈해 갔습니다. 그러니 이런 악한 일본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가만 두실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리고 악을 행한 일본의 중심부에 원자탄을 투하해서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대신 갚아주신 것입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핍박하고 압제할 때 이같은 압제를 참다 못해서 들고 일어난 사건이 3·1 운동입니다. 지금은 그 1 세대들이 모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날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3·1절의 역사를 통해서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첫째는 “고난을 통해서 나라를 생각하고 국민은 성숙해 진다”라는 것입니다. 전도서 7장 14절에 보면 “곤고하면 생각하라”라고 증거 합니다. 고난을 겪은 사람은 생각이 성숙해지고 행동도 어른스러워집니다.
독립선언문을 보면 참 위대한 표현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독립선언문은 문학적으로도 손꼽히는 작품입니다. 고난 속에서 피어난 작품입니다. 그런 글은 책상 앞에 앉아서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다듬어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습니다.
독립선언문에는 나라와 민족의 절절한 고난이 배어 있습니다. 고난 속에서 점철된 인간의 가장 소중하고 근본적인 외침이 그 안에 담겨져 있습니다.
군대에 가면 부모의 소중함과, 집의 소중함과, 음식의 소중함 등을 생각하면서 구구절절이 철든 편지를 쓰게 됩니다. 그래서 철없던 자식이 군대에 가서 고생을 하면 달라집니다.
마찬가지로 나라와 민족이 어려움을 겪게되자 민족이 살아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게 삼일운동입니다.
맥아더 장군의 기도문을 보면 아들에 대한 부성애가 절절이 흐릅니다. 맥아더의 기도문은 어느 날 갑자기 생각나서 쓴 기도문이 아닙니다. 전쟁터에서 수 많은 청년들의 아픔과 죽음을 직접 보면서 체험했기에 그런 기도문이 나온 것입니다.
성 프란시스의 기도문을 보면 하나님에 대한 헌신과 사랑이 가득차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방탕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지나간 생활을 참회하면서 그와같이 성결한 고백이 나온 것입니다
세계 문학사에 빛나는 불후의 명작중에 존 번연의 “천로역정”과 존 밀턴의 “실낙원”이 있습니다. 이 두 사람도 암흑과 같은 인생의 고통스런 터널을 통과하면서 이 책을 썼습니다.
존 번연은 감옥에서 고난을 겪으면서 천로역정을 썼습니다. 밀턴은 노년에 시력을 상실한 후에 딸에게 대필을 시켜서 “실낙원”이라는 위대한 명작을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흑인영가 찬양을 들어보면 그들의 노래에는 심금을 울리는 호소력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단순히 흑인들에게 탁월한 음악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노예생활을 하면서 당한 아픔과, 압제를 당하면서 그 영혼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상한 심령을 고백한 노래이기에 듣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은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들고 정신을 차리게 만들고 의미있는 고백을 하게 만듭니다. 3·1절에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기 까지 우리 조상들은 엄청난 곤혹을 치렀습니다. 유순했던 우리 민족성으로 볼 때 우리 선조들은 어지간하면 봉기를 일으킬 사람들이 아닙니다. 너무나 극심한 압제를 당하니까 결국 몸부림을 친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민족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들고 일어난 것입니다.
두 번째로 “3·1운동은 하나님이 만드신 작품”입니다. 평등과 자유는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정신입니다. 최남선의 글을 살펴보면 평등, 자유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는 그 말을 기독교에서 배웠다고 고백 했습니다.
최남선이 살아가던 그 시대는 평등, 자유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오면서 평등과 자유의 개념을 깨우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권리입니다.
평등이 없고 자유가 없는 것은 짐승의 세계입니다. 그리고 노예의 세계입니다. 짐승의 세계에는 힘만 있을 뿐 자유는 없습니다. 죄인들의 세계에도 자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죄를 지으면 먼저 자유부터 박탈합니다. 죄인에게는 수갑을 채우고 구속하여 감옥에 집어 넣습니다. 그래서 짐승, 노예, 죄인은 자유와 평등을 누릴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유와 평등을 누려야할 인간을 무자비하게 압제하고 또 자유를 뺏고 억압하면 그 억압자는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독재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심판하셨습니다. 그래서 독재자들의 말로를 보면 하나같이 비참합니다.
힘없는 사람의 돈을 떼 먹으면 당장은 이익이 될지 모릅니다. 일군의 품삯을 떼어 먹으면 당장은 돈이 쌓 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인생 전체로 보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힘없는 사람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무시하면 하나님이 대신 그 억울함을 갚아 주십니다.
세 번째로 “약자가 압제를 당하면 대신 소리지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19장 40절에 보면 “이 사람들이 소리지르지 아니하면 돌들이 소리지르 리라”라고 예수님이 말씀 하셨습니다.
이 말은 당연히 할 말을 해야 할 사람에게 말을 하지 못하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대신 소리를 지른 다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우리 선조들은 목숨을 걸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대한독립만세를 목노아 외쳤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총칼을 들고 쫓아다니면서 소리를 지르지 못하게 죽이고 찌르고 가두고 고문을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국민들이 만세 소리를 지르다가 쓰러져 낙심했습니다.
그런데 이런때에 우리나라에 와서 선교하던 스코필드 선교사님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우리 민족의 참상을 사진에 담아서 외국 신문사에 전해 주었습니다. 우리의 언로가 막히고 길이 막히니까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소리를 지르게 하셨습니다.
우리민족이 일본의 총칼에 나라를 잃고 신음하고 있을 때 우리 대신 소리를 질러준 분이 또 있습니다. 그분은 바로 미국의 윌슨 대통령 입니다. 윌슨 대통령은 세계 만국평화회의에서 민족자결주의를 선언했습니다. 우리가 하지 못하니까 그분이 우리를 대신해서 소리를 질러 준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듣고 우리 선조들이 용기를 내서 3·1운동을 일으킨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약자들이 소리를 질러도 누구 하나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재벌들이 꿈쩍도 안 합니다. 권력자들이 관심도 갖지 않습니다.
그래서 약자들을 대신해서 소리를 질러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시민 단체들입니다. 약자들이 권력자나 재벌들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면서 호소를 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으니까 시민 단체들이 나서서 벌떼같이 소리를 질러줍니다.
그들이 들고 일어나니까 재벌들도, 권세를 가진 정치가들도 무시 못하고 결국은 약자의 소리에 귀를 기우리는 것입니다.
3·1운동은 근대사에 있어서 가장 극적인 시민운동입니다. 작은 나라의 국민들이 소리를 질렀는데 세계에 메아리쳐진 운동입니다.
삼일운동은 지금부터 97년전에 탑골공원에서 민족대표 33인이 모여서 3.1운동을 선포함으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吾等(오등)은 玆(자)에 我(아) 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
그날은 일제의 압제와 탄압에 신음하던 우리 민족이 자주독립을 위해 만세를 부른 날입니다. 1910년도에 한일병합이 이루어진지 9년이 지난 후에 고종 황제 의 시해설이 떠돌면서 민심이 소란했습니다. 그래서 고종황제의 국장일에 맞추어서 서울 탑골 공원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독립만세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3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60일 동안 1,542번의 만세 운동이 벌어졌고, 202만 명이 시위에 참가 했다고 사가들은 증거 합니다. 그리고 일본과 연해주 등 해외에서도 독립만세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당황한 일본 군대와 경찰은 폭력을 동원하여 삼일운동을 전개한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했습니다. 그 결과 사망자7,509명, 부상자15,961명, 체포,감금된 사람이 46,948명이었습니다. 불에 탄 주택이 715호, 학교가 2곳, 그리고 47개의 교회가 불에 탔습니다.
1919년 4월 화성에 있는 제암리 교회에서는 23명의 교인들이 무참히 죽임을 당했습니다. 일본 경찰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교회안에 잡아다 놓고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불을 질렀습니다. 뜨거움을 참지 못하고 창밖으로 뛰어나오는 사람들을 향해서 일경들이 무차별 총격을 가했습니다. 그래서 23명이 전부 다 순교를 당했습니다. 일경들은 마을 가옥 30여 채를 불살랐습니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사람의 살이 타는 냄새가 10Km 밖까지 진동했다고 전해 집니다.
삼일 독립운동의 주체는 바로 기독교입니다. 민족대표 33인 중에 기독교인이 16명, 천도교인이 15명, 불교인이 2명이었습니다.
당시에 우리나라 전체의 기독교인은 약 30만명 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가 천7백만명 이었으니까 기독교인은 1.8%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도 기독교는 독립만세 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삼일독립운동은, 성경의 가르침대로 철저하게 비폭력, 무저항 운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건 구국운동이었습니다.
당시에 3.1 운동을 지켜 본 한 선교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 시점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만이 국제정세에 가장 정통하여 민족 자결의 횃불을 들 수 있었다. 예수교만이 참혹한 식민정책에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유일한 부류의 한국인이다”
한국교회는 3·1 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 민족의 기개를 온 세상에 떨쳤고 우리 민족이 독립된 민족임을 온 세계에 전하는데 크게 공헌을 했습니다.
오늘날 역사가들 가운데는 삼일운동을 종교적 측면에서 “한민족의 출애굽운동”(Korean Exodus) 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삼일절의 거사는 단순한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통해서 나라를 바로 세우고 새롭게 새출발한 자주 독립운동임을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삼일 독립운동에서 보여준 것처럼 한국 초기 기독교인들의 숫자는 소수였지만 그들이 이 민족을 이끌었습니다. 기독교 지도자들과 기독교인들은 암울한 상황 속에서 절망 가운데 지쳐있는 국민 모두에게 새로운 소망을 불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기독교 학교를 세워서 수 많은 애국지사들을 배출했습니다.
더불어서 한국 기독교는 세계 기독교 역사상 찾기 힘든 영적 부흥을 이뤄 냈습니다. 오늘날 기적과 같은 경제성장도 사실은 기독교인들의 기도와 헌신으로 인해서 이루어진 축복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선교사가 들어온지 130년만에 7만개의 교회와 10만 여명의 목회자와, 그리고 860만명의 기독교인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주일날 우리나라처럼 많은 교인들이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민족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한 선교대국이 되었습니다.
50년 전만해도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이 76달러 였습니다. 그런데 인도 다음으로 못살던 우리나라가 이제는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을 온 땅에 선포하라는 사명 때문에 복을 주신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대한민국은 미국에 이어 2만 7천명의 선교사를 전 세계에 파송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세계 선교는 한국 교회의 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리나라는 선교의 열기가 뜨거운 나라입니다. 우리가 선교를 바르게 감당하는 한 하나님은 이 민족을 제사장 나라 삼으셔서 큰 복을 베풀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기미년 독립만세를 부른지 97주년을 맞이하는 우리도 기억해야 할 것은 지나간 과거를 밑거름으로 삼고 기대와 소망을 품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 민족이 당한 아픔은 기억해야 하지만 이제는 용서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야 합니다.
이 민족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서 생애를 불살랐던 도산(島山)안창호(安昌浩) 선생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나라를 망하게 한 것은 일본이 아니요, 이완용도 아니요, 그것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우리가 왜 일본으로 하여금 내 조국에 손톱을 박게 하였으며, 이완용으로 하여금 조국을 팔도록 내버려 두었소? 그러므로 망국(亡國)의 책임자는 곧 나 자신이오. 자손은 조상을 원망하고, 후진은 선배를 원망하고, 민족 불행의 책임을 자기 이외로 돌리려 하니, 왜 남만 책망하시오? 우리나라가 독립이 못되는 것이 “아! 다 나 때문이로구나!” 하고 가슴 두드리며 뉘우칠 생각은 왜 못하고, 어찌하여 그 놈이 죽일 놈이요, 저 놈이 죽일 놈이라고만 하시오? 진정 내가 죽일 놈이라고 왜들 깨닫지 못하시오?”
그렇습니다. 우리 민족이 살 길은 다른사람 탓만 한다고 되지 않습니다. 먼저 나 한 사람이 변화되고 그리고 누구 때문이 아니라 모든 것이 내 탓임을 깨닫고 나 자신부터 새로워지도록 결단할 때 사회와 나라도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진 것을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엄청난 복을 주셨는데 그동안 우리는 사치와 방탕으로 일관했습니다. 자신의 탐심을 위해서 가난한 자들의 아픔을 외면했습니다. 이기적인 울타리를 쌓아놓고 이웃들의 고통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다시한번 우리 민족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감사하면서 이웃을 섬기고, 베풀고, 나누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작은 것에서부터 사랑의 실천을 해야 합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삶 속에서 전해야 합니다.
이 민족의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민족이 살 길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아무쪼록우리 모두가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함으로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땅에 임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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