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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7년2월15일 수요저녁 에베소서1장3-14 찬양은 축복의 통로

그리운시냇가 2017. 2. 19. 21:36


며칠전에 친구 김기종목사님이 동영상을 보내 왔습니다. 열어 보니까 스티브잡스가 살아 생전에 남긴 고백이 담긴 동영상이었습니다.


스티브잡스는 애플 컴퓨터를 창업한 세계 최대의 갑부중에 한사람입니다. 그는 어렸을 때 어머니가 키울수가 없어서 폴과 클라라 라는 부부에게 입양이 되어서 자랐습니다.


성장한 후에 스티브잡스는 망해가던 넥스트사와 픽사를 세계최고의 애플사로 키우면서 IT계에서 신화적인 인물이 됩니다. 그가 성공해서 최고 정상의 자리에 있을 때 병마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2004년도에 췌장암 진단을 받고 대수술을 합니다. 2009년에는 간 이식 수술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2011년도에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전에 고백한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 합니다.


나는 사업분야에서는 최고의 성공을 거뒀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나는 성공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도 자부심을 느꼈던 사회적 인정과, 부와, 성공은, 죽음 앞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병원침대에 누워서 생명을 연장해 주는 기계의 소음소리를 들으면서 죽음의 신이 나에게 점점 다가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비로소 깨닳았습니다. 우리가 살아갈 만큼의 부가 축적 되었다면, 그때 부터는 다른일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부 보다 훨씬 중요한 일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쉬지않고 부 만 추구한다면 그것은 결국 나같이 뒤틀린 괴물을 만들 뿐 입니다. 저는 제가 인생에서 축적한 부를 가져 갈 수 없습니다. 제가 가져 갈 수 있는 것은 사랑의 기억들 뿐 입니다.


신은 우리 가슴속에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부가 가져다주는 환상들이 아닙니다. 사랑만이 영원한 행복의 조건입니다


스티브잡스는 죽을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기가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지만 산처럼 쌓아놓은 모든 재물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닳았습니다.


그는 뒤늦게 뭔가 보람있는 일을 하면서 살지 못한 것을 후회 했습니다. 게다가 그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기에 죽을때에도 참된 평안과 행복을 모르고 영원한 음부로, 고난의 처소로 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가난하게 살았던 김연아집사님은 예수님을 만났기에 지금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고 있습니다. 누가 행복한 사람입니까? 세계 제일의 부자로서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던 스티브 잡스가 행복합니까? 아니면 가난하게 살았지만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들어간 김연아집사님이 행복합니까?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배울 때 마다 가난했던 나사로가 왜 그렇게도 복 받은 사람인지를 알게 됩니다. 행복은 재물의 풍요로움에서 오지 않습니다. 참된 행복은 오직 예수님안에 있습니다.


성경 요한복음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은 인생을 사는 동안에 아픔과 괴로움이 많았습니다. 특히 남자관계에서 상처가 많았습니다. “이 남자를 만나서 살면 행복 하겠지하고 만나서 살다보면 상처와 아픔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여러 남자를 만나서 살다보니까 상처와 고통만 남았습니다.


그녀는 인생이 슬프고 괴로워서 더 이상 아무도 만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과거가 부끄럽기도 하고 또 마음이 슬프고 괴로운데 누구를 만나고 싶겠습니까? 그래서 우물가에 물을 길러 갈 때도 아무도 없는 뜨거운 한낮에 물을 길러 갔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거기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을 만난 그녀는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 얽히고 설킨 자기 인생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놀라운 말씀을 듣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메시야 구세주를 만나면 진리를 알게되고 또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되고 목마른 영혼에 생명수 샘물이 넘칠 것이라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명수 샘물, 즉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순간 그녀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 받았습니다. 그녀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돌아가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내가 메시야를 만났습니다. 당신들도 와 보세요! 그분을 만나 보세요!”그래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다 나와서 예수님을 만나서 구원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그녀는 찬송을 부르지 못했습니다. 인생이 괴로운데 무슨 찬송이 나오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다음부터 그녀는 찬송하면서 살았습니다.


울산에서 두 다리가 없는 장애인인 손위용씨가 서울 법대에 합격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장애인이 합격해서 화제가 된 것이 아니라 그의 나이가 50살 이었기에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가 서울 법대에 합격하기 까지에는 피눈물 나는 도전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울산에서 부산까지 기차 통학을 하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부산에서 하숙을 할 돈이 없어서 매일 5시간씩 기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루도 결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비가오는 어느날 기차가 부산역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기차에서 뛰어 내리다가 그만 미끄러지면서 두 다리가 기차바퀴 속으로 들어가서 두 다리가 잘려나갔습니다.


그는 두다리를 잃은후에 한동안 절망속에서 지냈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여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 나를 도와 주세요! 내가 비록 두 다리를 잃었지만 다시 시작하게 해 주세요!”


기도하는 그에게 하나님은 힘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는 학교에 다닐 수가 없어서 혼자 독학으로 검정고시 공부를 했습니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한 후에 과외공부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결혼도 해서 딸 셋을 낳았습니다. 집에서 과외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세 딸을 모두 다 대학에 보냈습니다. 큰딸은 학원 강사가 되었고, 둘 째 딸은 간호사가 되었습니다. 막내딸은 컴퓨터를 전공했습니다.


딸들이 졸업해서 돈을 벌자 그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서울 법대에 합격했습니다. 50살에 도전해서 성공한 것입니다. 고난의 때에도 찬송을 부르면서 하나님을 바라본 그는 결국 꿈을 이루었습니다.


미국 뉴저지주의 프린스턴 신학대학에 신약학 교수님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채플 시간에 전혀 찬송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신학교에서는 교수님들이 강의를 시작할 찬송을 한 장 부르고 그리고 기도를 한 후에 강의를 시작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최홍석교수님은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항상 찬송을 한 장 부르고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프린스턴신학대학의 그 교수님은 전혀 찬송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본인이 음치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도 그 교수님이 찬송을 못부르는 것을 알았기에 그 교수님의 별명을 음치 교수님이라고 붙여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교수님이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찬송을 한 장 부르자고 하더니 힘차게 찬송을 불렀습니다. 학생들은 모두 다 놀랬습니다. 음치라서 음정도 틀리고 박자도 엉망이었지만 그러나 목소리만은 힘차게 울려 퍼졌습니다.


강의가 끝난후에 학생들이 궁금해서 교수님에게 물었습니다. '“교수님 오늘은 웬일로 찬송을 부르셨습니다. 어쩐 일입니까?”했더니 교수님이 하는 말이 내가 어젯밤에 참 신기한 꿈을 꾸었다네! 내가 꿈에 천국에 갔는데 천국 문을 두드렸더니 베드로가 나와서 누구시요?”하고 묻지 않겠나!


그래서 나는 미국에 있는 프린스턴신학대학의 아무개 교수입니다했더니, 베드로가 장부 같은 것을 넘기면서 하는말이 당신은 공부는 많이 해서 아는 건 많은데,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올린 기록은 거의 없군요! 천국은 지식이 많은 신학 박사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찬송을 하나님께 올려드린 사람을 환대 합니다. 당신은 다시 가서 찬송을 많이 부르다가 오시오!” 하더니 천국 문을 쾅 닫아 버리는게 아닌가?


놀래서 깨어보니 꿈이었다네! 그래서 내가 그동안 찬송을 부르지 않은 것이 큰 잘못이라는 사실을 깨닳았다네하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 꿈을 꾸고난 이후부터 그 교수님은 누구보다 열심히 찬송을 부르는 교수님이 되었습니다.


찬송은 곡조가 있는 기도요 또한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입니다. 에베소서를 쓸 당시에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마음에서 우러 나온 것은 찬송과 축복입니다.


2절을 보면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증거 합니다. 이 말씀에서 은혜는 헬라인의 인사말이고 평안은 히브리인의 인사말입니다.


바울사도는 모든 언어를 다 동원해서 축복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복을 빌어주는 것은 진정한 크리스천의 삶의 모습입니다. 불평하고, 원망하고,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은 크리스챤의 삶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축복으로 하루를 열고 축복으로 마감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1절로 2절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찬송하리로다입니다. 3절에도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라라고 증거 합니다.


사실 찬송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모든 신학적 노력의 결론은 찬송입니다. 우리의 삶의 궁극적인 목적도 찬송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올라가면 하늘나라에서는 기도도, 성경공부도, 전도도, 다 필요 없습니다. 오직 찬송만이 우리가 해야 할 영원한 일 입니다.


아울러 찬송은 성 삼위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일입니다. 4절로 6절에보면 우리를 자녀로 택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찬송하라라고 증거 합니다. 7절로 12절에서는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를 속량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송하라라고 증거 합니다. 13절로 14절에서는 우리의 구원을 인 치신 성령님을 찬송하라라고 증거 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을 찬송하라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왜 우리가 성 삼위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까? 그 이유가 3절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사도는 이와같은 은혜를 그 누구보다 깊이 체험하고 깨닳았기에 감옥에 갇혀서도, 사슬에 매여 있는데도 나의 주님을 찬송하리로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찬양은 억지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깨닳아지면 그때부터 터져 나오는 것이 찬송입니다. “십자가를 볼 때마다 나의 값을 깨닫는다라고 말한 20세기의 위대한 신학자 칼 바르트는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기도였고, 두 번째가 찬송을 부르는 일이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신학자 칼 바르트에게 당신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입니까?”하고 물었더니 칼바르트는 서슴없이 바하 입니다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칼 바르트는 바하의 음악을 들으면서 인간이 어떻게 그렇게 감동적인 음악을 만들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아름다운 음악을 만든 바하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평생 그의 음악을 들었다고 합니다.


송에 대해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 성경구절은 이사야 4321절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 찬송을 부르게 하려고 사람을 만드셨다고 이사야 선지자는 증거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찬송의 종교입니다.


찬송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악기를 연주하고 목소리를 높여서 노래하는 것이 찬송입니다. 두 번째로 찬송은 하나님이 하신 모든일을 감사하면서 위대하신 하나님을 입으로, 마음으로, 몸으로, 시로, 오페라로, 연극으로, 예술작품으로, 춤으로,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도 찬송입니다.


운동선수가 자기에게 주어진 재능을 통해서 승리를 쟁취하고 꿇어앉아서 기도를 하거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고백을 하는것도 찬송입니다.


연예인이나 가수가 큰 상을 받고서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라고 고백하는 것도 찬송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받고 싶어하는 것은 헌금이 아니라 찬송입니다. 성도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일도 찬송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나를 택하셔서 자녀 삼으신 목적도 찬송을 받으시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에서는 존경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위한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어머니는 희생의 대명사요 존경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때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이라는 가사로 어머니를 찬양하는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선생님도 고마운 분이기에 선생님을 존경하라는 의미에서 스승의 노래가 만들어 졌습니다.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남편에게 바치는 노래는 없습니다.


남편에게 바치는 노래가 왜 없습니까? 남편들이 가정을 위해서 많은 노력도 하고 애를 쓰지만 한편으로는 아내의 속을 썩이고, 술마시고, 바람피우고, 아이들에게 존경받지 못하는 남편들이 많기에 남편에게 바치는 노래가 안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본래 우리 민족은 노래를 좋아하는 백성입니다. 생활속에서도 일에 맞추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무거운 짐을 나를 때에도 장단을 맞추어서 어기어차 어기어차 하면서 장단을 맞추면서 소리를 지르면서 짐을 운반 했습니다.


시집살이하는 며느리가 부르는 노래도 있었습니다. “고초당초 맵다 하나 시집살이 당할 손가?”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시집살이를 참았습니다.


사람이 죽어서 장례식을 치를 때, 상여를 메고 가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먼저 상두꾼이 종을 쩔렁 쩔렁 치면서 선창을 합니다.


이제가면 언제오나 어헤이 어헤이 어헤이 어헤여그러면 상여꾼들이 화답을 합니다. “어허 어허이 어헤여 어헤이


그러면 다시 상두꾼이 종을 치면서 저승길이 멀다더니 대문 밖이 저승일세! 북풍한설 찬바람에 나 어이 갈거나!”

그러면 상여꾼들이 받아서 ““어허 어허이 어헤여 어헤이! 어기영차 어어이 어헤이 어헤여!”


이렇게 우리 선조들은 슬픔과 고난의 때에도 노래를 통해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고난의 역사요 서러운 일이 많았기에 문학도 비애 문학이 발전했고 노래도 비애가 담긴 노래가 많았습니다.


수십년 전에 우리나라의 가수가 히트를 치려면, 이별이나 슬픔을 주제로 한 노래를 불러야만 힛트를 쳤습니다. 그래서 돌아와요 부산항에” “허공” “이별의 부산 정거장” “비 내리는 호남선” “목포의 눈물” “이별” “그때 그 사람등 대부분의 힛트곡이 하나같이 슬픈노래 였습니다. 슬픈 내용으로 노래를 해야만 감정이 동화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노래가 히트를 치지 못합니다. 이제는 분위기가 많이 변했습니다. 소리 지르고 춤추고 흔들고 뛰고 난리법석을 치는 노래들이 히트를 칩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모이면 노래 불러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민족입니다. 이제는 온 나라 구석구석에 노래방이 없는곳이 없습니다. 노래방 문화가 세계에서 가장 발달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이와같이 모이면 흥에 겨워서 노래를 부르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얼마나 더 하나님을 극진히 찬양해야 하겠습니까?


구약성경에서 찬송하다”라는 단어는 히브리말로 하랄입니다. 하랄은 영광을 돌린다라는 뜻입니다. 이 하랄이 할렐루야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라는 뜻입니다.


마산의 한 부둣가에 있는 은행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할머니 한 분이 은행 여직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창구에서 일하는 여직원이 물었습니다. “할매!, 비밀번호가 뭐라요?”


그러자 할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비둘기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직원은 황당한 대답에 어이가 없어서 다시 한번 이야기를 했습니다. “할매요, 비밀번호를 말 안 하면 돈 못 찾는다 앙이요, 비밀번호를 말 하이소


그러자 할머니가 입을 살짝 가리고 작은 목소리로 한번더 비둘기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짜증이난 은행직원이 할매요, 바쁜데 지금 장난하지 마이소! 와 이라는교? 퍼뜩 비밀번호를 대이소!”하고 나무라듯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제야 할머니가 비밀번호를 고백 했습니다. “비밀번호가 구구구구야!” 할머니의 비밀번호는 “9999”였습니다. 그제서야 은행 직원들이 깔깔대고 웃었습니다.


은행창구에서 내 돈을 찾으려면 비밀번호를 꼭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는 비밀번호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할렐루야 찬송하리로다!”입니다. 할렐루야!는 방금 말씀드린대로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하나님을 높여 드립니다! 하나님을 송축합니다라는 뜻입니다.


신년축복심방예배중에 박한선성도님과 김춘자권사님댁에 갔는데 저희 부부가 들어가니가 박한선성도님께서 저희를 보시더니 할렐루야!”하면서 반겨주셨습니다.


저는 그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교회 나오신지 두달밖에 안된 어르신이 저희를 보자마자 할렐루야!”하고 환영인사를 하셨기에 저는 너무나 놀랐고 또 기뻤습니다.


그동안 이곳에서 목회를 하는 십수년 동안에 심방을 갔을 때 할렐루야!” 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환영을 해 주신분은 한 분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다 마치고 집을 나올 때도 박한선성도님께서 할렐루야하고 환송인사를 해 주셨습니다. 환영부터 환송까지 할렐루야!”라는 인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프랑스 황제 루이14세는 베르사이유 궁전을 완성하고 프랑스의 권위를 세계에 널리 떨친 왕입니다.

프랑스에 갔을 때 베르사이유 궁전을 돌아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진이나 영화에서 본 궁전들 중에서,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궁전보다 아름다운 궁전이 베르사이유 궁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베르사이유귱전을 지은 루이14세는 나라를 새롭게 정비하고 프랑스를 강력한 나라로 세우는데는 큰 공을 세웠지만, 그러나 그는 철저한 카톨릭 신자였기에 신교인 기독교를 엄청 박해했습니다.


당시에 신교의 대표자인 세오졸프가 황제의 명을 거역하고 자꾸만 기독교신앙의 자유를 역설하자 황제는 그를 칙령 거역죄라는 죄목으로 파리탑 제일 높은 꼭대기에 가두었습니다.


그해 부활절에 루이14세는 황제의 위엄을 갖추고 호화찬란한 부활절 행렬대를 거느리고 파리 시내를 행진 했습니다. 높은 감옥 꼭대기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세오졸프는 큰 목소리로 옥탑 꼭대기에서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예수 영광의왕 되셨네!” “왕의 왕은 우리예수 주님 밖에 없도다”행렬이 지나가는 아래로 우렁찬 찬송이 울려 퍼졌습니다.


그런데 놀라운일이 벌어졌습니다. 루이14세가 그 찬송을 듣더니 갑자기 다리가 떨리기 시작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 하셔서 그의 심장이 떨리고 다리가 떨린 것입니다.


루이 14세는 자기에게 임한 놀라운 충격에 두려운 마음이 들어서 곧장 감옥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는 세오졸프의 손을 잡고 자신의 잘못을 고백한 후에 그를 석방하고 즉시로 신앙의 자유를 선포했습니다. 찬송의 능력이 역사해서 그런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왜 우리가 왜 날마다 주님을 찬양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만 왕의 왕이시기 때문에 찬양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주님을 찬양해야 합니까?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온맘다해 찬양해야 합니다.


시편 150편에 보면 하나님을 찬양하되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하라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하라 큰 소리 나는 제금과 높은 소리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라라고 증거 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악기를 다 동원해서 찬양을 드리고 온몸과 온맘다해 찬양하고 춤을 추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증거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십니다. 외형적으로 아무리 화려하고 웅장한 성가대와 오케스트라가 찬양을 한다해도 마음과 정성이 담겨 있지 않으면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습니다. 온맘다해 연주하고 온맘다해 찬양할 때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십니다.


어제 연세중앙교회의 성도들이 구주의 십자가 보혈로찬송을 부르는데, 앞에서 찬송을 부르는 리더와 청년들, 그리고 자리에 앉아서 함께 찬송을 부르는 성도들중에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찬송을 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온맘다해 찬송을 부르니까 성령께서 은혜를 주셔서 눈물젖은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시편 1506절에 보면 호흡이 있는 자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라고 증거 합니다. 모름지기 살아 있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은 호흡을 주신분 즉 생명을 주신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찬송을 받으시기 위해서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도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호흡을 가진 인간이 존재 목적을 성취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찬양을 해야 합니까? 호흡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찬양해야 합니다. 아니 죽은 이후에도 영원한 천국에서 우리는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삽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하는 중요한 또한가지 이유는 찬송하는 사람에게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본문 3절에 보면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1:3) 라고 증거 합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면 신령한 복이 임합니다. 신령한 복은 가장 높은 차원의 복입니다. 구약성경은 눈에 보이는 복을 말씀합니다. 자손의 복과 물질의 복과 형통의 복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이런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많은 자손과 넓은 땅과 복의 근원이 되게 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눈에 보이는 복은 말 그대로 만져지고 보이는 복들입니다. 물질적이고 이생 적이고 양적인 땅의 복을 말합니다.


땅의 복은 한결같이 화려합니다. 높고 많고 귀하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들입니다. 이런 복의 공통점은 일시적이고 변한다는 것입니다. 땅의 복은 부럽고 화려한 복이지만 한편 유한한 것이 특징입니다. 구약성경에서 말씀하는 복은 대체적으로 눈에 보이는 축복입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령한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첫 설교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선포 하셨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령한 복은 사랑, 희망, 소망, 은혜, 부르심, 자녀됨, 죄사함 받음, 구원받음, 천국, 영생같은 복들입니다.


신령한 복은 겉으로 드러나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영원하고 소중한 복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신령한 복이 훨씬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복중에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복은 오직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만주어집니다. 예수님 안에서 주어지는 복을 신령한 복이라고 말합니다.


땅에 있는 육적인 복은 돈에 여유가 생기고 몸이 건강해지고 자식이 잘되는 것등을 말합니다. 그러나 육적인 복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습니다. 내 영혼에 계속되는 허전함이나 우울함이나 슬픔이나 외로움은 육적인 복 만으로는 채워지지 않습니다. 채워진다 하여도 잠시 뿐입니다.


에베소 사람들은 아테네 여신이 인간에게 행복을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신전에 가서 제사를 지내고 여 사제들과 성관계를 가졌습니다. 그러면 뭔가 속이 시원해지고 복이 임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테네 여신은, 그들의 마음속에 생긴 죄책감과 두려움과 불안함과 더불어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목마른 육체의 갈증과 텅빈 공허함을 해결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적인 복이 진짜 복이라고 증거 합니다. 그 진짜 복이 오늘본문 4절에 나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선택해 주신 축복입니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세상에는 버림받은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은 버림받은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가장 슬픈 일입니다. 부모에게 버림받거나, 직장에서 버림받거나,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거나, 이웃으로부터 무시를 당하는 것은 불행이요 비극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지옥으로 가는 사람이 가장 비참하게 버림받은 사람들입니다.


지옥은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 못합니다. 지옥은 펄펄끓는 유황불속에서 영원한 고통을 당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나같은 죄인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서 예수믿고 구원 받아서 천국에 가게 되었으니 이게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하나님은 예수를 믿으면 지나간 과거의 죄를 기억도 안하시고 묻지도 않고 용서해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과거에 무슨짓을 했던지 십자가 보혈로 씻어 주셔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되었다는 그 사실 하나만 깨닳아도 그 사람은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어제 설교준비를 하다가 이탈리아의 산타 치칠리아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유럽에서 오페라로 명성을 떨친 조용갑집사님이 간증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조용갑집사님은 전라남도 흑산도 남쪽 최남단에 있는 가거도에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지지리 고생을 하면서 자랐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 했는데, 신문팔이, 구두닦이, 껌팔이 자장면배달, 막노동, 공장노동자등 안해 본 일이 없이 고생을 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불량 청소년들에게 죽도록 매를 맞고 너무나 분해서 이렇게 당하고 살 수 많은 없다싶어서 권투를 배우기 시작 했습니다. 그는 공장에 다니면서 열심히 권투를 배웠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운동을 했는지 드디어 권투선수로 승승장구하여 챔피언에 도전하려고 했는데 도전을 하기 직전에 그만 연습을 하다가 다쳐서 챔피언의 꿈을 접었습니다.


그는 이것을 해봐도 실패요, 저것을 해봐도 실패를 거듭했기에 자살을 하려다가 자살도 실패 합니다.


더 이상 갈곳이 없어서 전전 긍긍하던 그는 자기보다 먼저 서울에 와서 살던 누나를 찾아 갔습니다. 누나집에서 며칠을 지냈는데 누나가 주일날 교회에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그는 누나집에서 밥을 얻어 먹었으니까 한번 가주자 하고 교회를 갔습니다. 그런데 그날 교회에서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교회에 다녔습니다.


섬에서 살 때 그의 아버지는 술만 마시고 들어오면 새벽 한시에 자식들을 다 깨워서 한사람씩 노래를 시켰다고 합니다. 노래를 못하면 주먹으로 때렸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유행가를 열심히 배워서 노래부를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매일 그렇게 유행가를 부른 것이 습관이 되어서 노래를 잘 불렀고 초등학교때 유행가를 다 외울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찬송을 부르는데 찬송이 너무나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가대에 들어가서 열심히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는 신문을 돌리고 짜장면 배달을 하면서 지냈는데 신문배달은 하루라도 빠지면 월급을 안주니까 교회에서 잠을 자고 새벽기도 시간에 일어나서 새벽기도하고 신문을 돌리러 나갔다고 합니다.


그렇게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슬픔이 사라지고 행복이 넘쳤습니다. 어느날 나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께 뜨거운 마음으로 찬송을 불렀는데 목사님께서 너는 찬송을 잘 부르니까 유학을 가도록 지금부터 기도를 해라하고 이야기를 하시더랍니다.


중학교밖에 못나온 자기에게 유학을 가라고 하니까 어이가 없었지만 그러나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에 순종해서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한 집사님이 오셔서 간증을 하는데 이 집사님은 자기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서 어느날 한달 월급을 받았는데 그 월급을 몽땅 하나님께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큰 축복을 내려 주셨다는 간증을 하더랍니다.


그래서 자기도 한달동안 짜장면 배달하고 신문배달해서 받은 월급 30만원을 몽땅 하나님께 드렸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때부터 돈이 없어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여기서 만원꾸고 저기서 만원 꾸고 하면서 일년을 죽도록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월급을 몽땅 하나님께 드린후에 죽도록 고생을 하면서 일년을 지낸후에 내가 앞으로는 다시는 하나님께 목돈을 드리지 않겠다라고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힘들게 살면서 삼년이 지났는데 어느날 한 집사님이 목사님에게 저 조용갑집사는 찬양에 특별한 재능이 있으니까 제가 유학비를 대 줄테니까 조용갑집사님을 유학을 보내주세요하면서 목사님에게 일억원을 주더랍니다.


그래서 그는 1998년도에 일억원을 받아가지고 이탈리아로 유학을 갔습니다. 뒤늦게 그는 헌금의 축복을 깨닳았습니다. 한달월급 30만원을 몽땅 바친 것을 기특하게 여긴 하나님께서 때가차매 그에게 300배로 갚아 주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밖에 못나온 촌닭같은 시골뜨기 집사가 이탈리아의 산타체칠리아음악원에 가서 시험을 보았는데 얼마나 노래를 잘했는지 당당하게 합격 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성악공부를 한 적도 없고 악보도 볼 줄 몰랐던 그가 이탈리아 제일의 음대에 합격해서 정식으로 성악을 공부를 했습니다. 나중에는 성악을 전공한 사람들을 제치고 당당하게 세계 최고의 오페라가수가 되었습니다.


그는 유학시절에 아르바이트로 관광가이드를 했습니다. 그런데 버스에서 관광 가이드를 하면서 열심히 관광지 소개를 하고 노래도 불렀는데 한 관광객이 그를 보고 반해서 자기 딸을 소개해서 믿음좋고 착하고 예쁜 여자를 만나서 결혼을 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게 됩니다.


그는 유럽에서 14년동안 오페라 가수로 승승장구 합니다. 그런던 어느날 그는 갑자기 다리에 이상이 생겨서 걷지를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와서 을지병원과 혜민병원과 원자력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피부암과 더불어 다리뼈에 암이 생겨서 다리를 짤라야 한다는 판정을 받게 됩니다.


그는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고 하나님앞에 나아가 기도를 했습니다. 그는 옛날에 기도하면서 하나님 제가 성공하고 출세해서 돈을 벌면 하나님께 헌신하겠습니다라는 기도를 드린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출세하고 성공했어도 14년동안 자기 영달을 위해서 살았지 하나님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한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회개하면서 이제부터라도, 아니 지금부터 당장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또 이웃을 돕는일에 저의 재능을 기부하겠습니다라는 서원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는 비로소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자기 명예와 영광만 구하면서 살았다는 생각에 깊이 회개하면서 마지막에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두 다리를 자르더라도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죽던 살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겠습니다!”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일주일 후에 다리를 수술하기 위한 두 번째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벌어졌습니다. 처음 검사할 때에는 피부암에 뼈까지 암이 생겨서 다리를 잘라야 한다고 했는데 두 번째 검사에서는 아무런 암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암이 깨끗하게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적적으로 고침을 받고 퇴원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하나님께 자기의 재능을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교도소라는 교도소는 안간곳이 없을 정도로 다 다니면서 노래와 간증을 했습니다. 그래서 범죄자들과 우범 청소년들과 재소자들에게 간증을 하면서 희망을 주는 사역을 했습니다.


전국의 교회와 세계의 교회를 다니면서 간증을 하고, 그리고 대기업과 각종 공공기관과 연수원, 방송국, 군부대등 수많은 곳에서 초대를 받아서 간증을 했습니다. 일년에 200번이 넘는 간증과 강연을 다녔습니다. 그래서 우울중과 자살을 생각하면서 낙심해 있는 자들과 소망없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는 귀한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조용갑집사님은 고백하기를 저는 보잘 것 없는 섬마을 촌부 였는데 교회에 가서 예수믿고 복중에 복을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보잘 것 없고 흠과 티가 가득한 죄인을 하나님이 높여 주시고 사랑해 주셨습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하고 예수님께 경배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지혜와 총명을 넘치게 하셔서 하나님의 뜻의 비밀을 알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구원의 은혜를 알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런 놀라운 축복을 주신 성삼위 하나님께 늘 찬송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아무쪼록 나를 택해주신 하나님, 아들이 되게 하신 하나님, 죄를 사해주신 하나님, 하늘에 기업을 주신 하나님, 성령으로 인치며 돌보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우리 모두가 일년 삼백육십오일 찬송하면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출처 : 보물섬남해세광교회
글쓴이 : 행복을 주는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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