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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7년2월15일수요저녁 여호수아23장1-11 여호수아의 마지막 설교

그리운시냇가 2017. 2. 16. 13:32


사람은 누구나 때가되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은 어떤 이유로든지 죽게 됩니다. 그런데 죽음도 복된 죽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죽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뜻하지 않은 사고로 마지막 죽음을 안타깝게 마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수명을 다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고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난 토요일날 김연아집사님의 큰아들 정석훈집사님과 작은 아들 정석홍집사님께서 어머니 김연아집사님이 토요일 새벽에 돌아 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주셨습니다.


제가 김연아집사님을 만난 것은 지금부터 7년 전입니다면사무소에서 후원금을 주는 마을 청결 정화사업이 있습니다. 동네 길 청소를 하고 풀을 베는 일을 하는 사업인데 우리교회의 몇몇 권사님들도 그 일을 하셨습니다. 하영순권사님께서 거기서 김연아집사님을 만나서 사귀신 후에 집사님을 전도해서 김연아집사님이 우리 교회로 오시게 되었습니다.


제가 첫 심방을 갔는데 그때 김연아집사님은 감암 바닷가의 셋집에서 살고 계셨습니다. 김연아집사님은 본래 설천면에서 아주 부유한 집으로 시집을 오셨습니다. 남편께서 군에서 장교로 지내시다가 전역하셔서 설천면 남양리에 있는 우체국장으로 부임하셨기에 부족함이 없이 사셨습니다.


그러다가 남편이 놀음을 하는 바람에 모든 재산을 다 날리면서 중년 이후부터는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남편이 돌아가신 이후에는 가세가 기울어서 어렵게 사셨습니다. 그래도 두 아드님이 장성해서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섬겼기에 큰 위로를 받으면서 지내셨습니다.


김연아집사님이 감암의 셋집에서 혼자 살고 계실 때 첫 심방을 갔는데 김연아집사님은 키가 크고 아름다운 할머니였습니다. 집사님은 마치 새색시처럼 착하고 온유하셨습니다. 김연아집사님은 마음밭이 착하고 선해서 교회에 나오시면서부터는 주의 종이 가르쳐 주는 것은 무조건 순종하면서 믿음생활을 성실하게 잘 하셨습니다.


저는 호랑이같이 무서운 어머니 아래에서 자랐기에, 김연아집사님처럼 착하고 순한 분들을 보면 더욱 정이가고 마음이 끌렸습니다. 그래서 김연아집사님을 특별히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김연아 집사님께서 살고있던 감암집의 자녀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소식과 함께 김연아집사님에게 집을 비워 달라고 해서 김연아집사님은 살 집을 구하느라 애를 썼는데 갈곳이 마땅치 않아서 고민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때 우리는 식당과 사택을 지어서 입주를 한 때 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소마굿간 성전 안쪽에 있었던 사택에서 살다가 새 사택으로 입주하여 지내던 터라 우리부부가 살던 구 사택이 비어 있었기에 상의 끝에 김연아집사님을 구 사택으로 모시기로 하고 김연아집사님을 교회로 이사를 시켜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이사야58장7-9)


저는 청년때 성경을 읽으면서 빈민을 집에 들이며라는 말씀을 읽으면서 이 구절은 정말 실천하기 어려운 구절이겠구나 라는 생각을 한적이 있습니다. 생면부지의 남을 내집에 들여서 같이 산다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열린 마음을 주시고 또 상황이 허락한다면 오갈데 없는 가난한 사람을 내 집에 모시고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국의 옥스나드장로교회에서 목회할 때 우리교회에 나오시는 분 중에 한 여자집사님이 이혼한 후에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데리고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갑자기 아파트를 옮겨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아파트를 옮기려면 디파짓머니와 한달치 월세를 포함해서 두달치를 내야만 합니다. 이 집사님은 한달 벌어서 한달 먹고사는 집사님이었기에 이사갈 아파트의 디파짓머니와 월세까지 합쳐서 두달치 아파트비를 마련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 딱한 사정 이야기를 듣게된 저는 기도중에 어떻게 도와드릴수가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마침 제가 시무하던 교회의 김학철장로님께서 저에게 영주권을 신청하라고 2000달러를 주셔서 그 돈을 통장에 가지고 있었기에, 


저는 그 돈을 드리면 되겠다 싶어서 2000달러를 그 집사님에게 드려서 이사를 하게 했습니다. 그후에 저는 영주권을 신청하지 못한채 지냈습니다. 어느날 장로님이 저에게 영주권을 신청했냐고 묻기에 신청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2년이 지나도 영주권 인터뷰 한다는 소식이 없자 장로님이 영주권 신청한 것은 잘 돼 갑니까?”하고 묻기에 더 이상 속일수가 없어서 사실은 영주권을 신청하라고 주신돈을 아무개 집사님이 이사가는데 도와 드렸습니다했더니 장로님이 그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계시더니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참 잘 하셨습니다목사님이 그동안 우리교회에서 2년동안 어떻게 목회를 하셨는지를 제가 잘 압니다. 사실 저는 교회에 목사님이 새로 부임해 오시면 목사님이 어떻게 돈을 쓰시는지 몰래 조사를 합니다. 목사님이 교회일이나 선교나 구제나 어떤일로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목사님이 하자는대로 다 드리고 다 도와 드립니다.


그러나 제가 무조건 목사님이 하시는 일을 도와 드리고 끝나지 않습니다. 저는 목사님이 돈 쓰시는 것을 일일이 다 뒷조사를 합니다. 목사님이 교회에 제출하는 영수증도 낱낱이 다 확인합니다. 물건 산곳을 일일이 찾아가서 목사님이 리베이트를 받았는지 아니면 싸게사고 영수증을 가짜로 받아서 금액을 더해서 제출 했는지 제가 다 조사를 합니다.


그런데 제가 목사님을 2년동안 뒷조사를 했는데 목사님은 우리교회에 오셔서 제가 모신 목사님들중에 가장 청렴결백하셨습니다. 목사님! 이제부터 제가 목사님을 잘 섬기려고 합니다하더니 영주권을 다시 신청 하라고 3천달러를 주시고 그 다음달에는 옥스나드에서 가장 좋은 타운아파트를 구해서 쓰리베드룸으로 이사를 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처음 부임할때 사례비를 2200달러를 주셨는데 사례비를 3000달러로 올려 주시고 그 외에도 용돈을 매달 천달러씩 주셨습니다. 아이들 학비와 용돈도 다 해결해 주시고 차도 좋은차를 사 주시고 한달에 한번씩은 우리가족을 최고급식당으로 데리고 가서 식사를 대접해 주시고 그리고 무엇이든지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은, 교회의 사업이 됐든 가정의 일이됐든 장로님께서 아낌없는 후원을 해 주셨습니다.


영주권을 신청하라고 준 돈을 가난한 집사님을 위해서 도와 드렸더니 하나님께서는 영주권도 주시고 장로님을 통해서 부족함이 없는 축복을 누리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 가난한자를 선대하는 일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큰 축복이 있구나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체험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식사를 대접할 일이 있거든 부자들을 청해서 대접 하지말고 갚을수 없는 가난한 자들을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14:12-14)


그런데 김연아집사님께서 오갈데 없는 상황이 된 것을 알게 된 저는 김연아집사님을 우리가 살던 소마굿간 성전의 구 사택으로 모셨습니다.


김연아집사님은 거기서 영적인 축복을 받으셨습니다. 감암에 사실때는 새벽기도에 올 수가 없었지만 교회 사택에 사시면서부터는 새벽기도에도 나오시게 되었고 그때부터 하나님과 더욱 깊이 사귀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집사님이 되셨습니다.


게다가 우리 남해세광교회가 설립된 이후에, 종종 교회에 있는 집기들과 농기구들등 물건들이 없어지는 일들이 있었는데 집사님이 이사온 후로는 그런일들이 현저하게 줄어들었습니다. 집사님은 화단의 풀도 매 주시고 교회 주변 청소도 하시면서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저희도 집사님을 친어머니처럼 생각하고 정성을 다해서 섬겼습니다. 제 집사람은 늘 반찬을 챙겨 드렸습니다.


그렇게 3년을 같이 사시다가 정평관집사님께서 금음집을 선물해 주신 후에는 김연아집사님을 금음집으로 모시고 그곳에서 사시도록 배려해 드렸습니다. 집사님은 금음에 사시는 할머니들과 모여서 행복하게 지내셨습니다. 그래서 집사님은 우리와 함께 만 5년을 행복하게 사셨습니다. 


그러다가 다리의 건강이 좋지 않아져서 둘째 아드님이신 정석홍집사님께서, 어머니 김연아집사님을 서울로 모셔 가셨습니다.


우리 부부는 서울의 아드님댁으로 이사가신 김연아집사님에게 자주 전화통화를 하면서 안부를 물었고, 일년에 한번씩은 떡과 과일을 준비해서 서울에 계신 집사님을 찾아가서 만나서 같이 예배를 드리고 기도도 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집사님께서 수개월전에 췌장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아드님을 통해서 전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집사님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라는 사실을 알고 조만간에 한번 더 찾아가서 만나뵙고 예수님에 대한 구원의 확신도 확인하고 임종예배도 드려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신년축복심방이 끝나면 한번 찾아가서 만나뵈어야 겠다!” 라고 생각을 하면서 신년 심방중에, 지난 화요일날 김연아집사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둘째 아드님이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드님은 저에게 어머니가 이제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합니다라는 소식을 전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는데 그만 토요일 아침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듣게 된 것입니다.


저는 한번 더 집사님을 뵙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고 안타까왔지만 뒤늦게 하관예배를 드리러 가서 김연아집사님의 아드님들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중에 김연아집사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잘 보살펴 주신분들이 계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위로를 받았습니다.


김연아집사님은 서울 국립중앙의료원에 입원해 계셨습니다. 그 병원에는 원목 목사님과 전도사님이 계셔서 환자들을 돌봐 주셨다고 합니다. 원목 목사님이 자주 오셔서 기도를 해 주셨는데 임종 직전에 원목 목사님이 오셔서 임종예배를 드려 주시고 그리고 김연아집사님이 새벽 한시경에 돌아 가셨는데 자녀분들과 며느리들이 다 모여서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 보았다고 합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아들들과 며느리들이 시편을 읽어 드렸는데 시편 1편에서 51편까지를 돌아가면서 읽어 드렸다고 합니다. 임종을 앞두고 있는 어머니에게 자녀들이 한시간이 넘도록 성경을 읽어 드린 것입니다. 참으로 훌륭한 자녀들입니다.


그렇게 김연아집사님은 예수님을 믿은후에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시다가, 주의 종들과, 자녀들과, 성도들의 환송을 받으면서 영광스런 하나님이 계신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저는 김연아 집사님이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아드님들과 통화를 하면서 주일이 겹쳐서 서울까지 문상을 하러 가기는 어렵고, 월요일날 가겠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김연아집사님의 남편께서 장교로 예편을 하셨고 또 국가 유공자로 등록이 되어 있어서 대전에 있는 현충원 국립묘지에 안장이 된다는 소식을 듣고 월요일날 대전 현충원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저는 지난 토요일 저녁에 주일예배 준비 때문에 잠을 못자서 주일 저녁에는 잠이 잘 올 줄 알았는데 김연아집사님 생각과 더불어 이생각 저생각에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5년동안 김연아집사님과 같이 사는 동안에 집사님과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금음집으로 이사를 가신 후에 때로는 잘 챙겨 드리지 못한때도 있었다는 생각에 죄송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런생각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몸은 피곤한데 잠이 안와서 새벽 한시 반까지 잠을 못 이루고 있다가 문득 대전 현충원에서 하관예배를 드리고 하관식을 할텐데 서울에서 목사님은 오시는건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관예배를 집례하실 목사님이 동행하시는지 그걸 물어보질 않았기에 혹시라도 하관예배를 집례할 목사님이 동행하지 않았다면, 내가 하관예배와 하관식을 집례해 드려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새벽 한시반에 일어나서 책상앞에 앉아서 하관예배 준비를 했습니다. 두시 반경에 준비를 마치고 다시 누웠는데 계속 잠이 안오는 바람에 밤을 새우다가 6시에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아침 7시에 권사님들과 고재준집사님과 함께 일곱명이 남해를 출발해서 현충원으로 향했습니다.


대전 현충원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10시였습니다. 서울에서도 자녀분들이 새벽 5시에 발인을 해서 화장장에서 화장을 마치고 10시경에 대전 현충원에 도착해서 휴게실에서 쉬고 계셨습니다.


자녀분들에게 하관예배를 드릴 목사님이 동행 하셨는지를 물었더니 아무도 안오셨다고 해서 저는 밤에 잠이 안오게 해 주셔서 하관예배를 준비하도록 배려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예배중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저는 하관예배를 인도하고 하관식을 집례 하느라 유족들을 살피지 못했는데 나중에 돌아오는길에 점심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유족중에 몇분이 예배중에 설교를 들으면서 얼마나 눈물을 흘리면서 펑펑 우는지 그 광경을 보고 우리 권사님들이 놀랬다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분들은 교회도 안다니는 분들인데, 갈화에 사시는 분들인데 그분들이 그렇게 울면서 은혜를 받더랍니다. 그러면서 하영순권사님께서 목사님이 예배를 은혜스럽게 집례 하셔서 모두가 은혜를 받고 우리도 은혜를 받았습니다그분들이 얼마나 울면서 설교를 듣는지 그분들이 예배중에 은혜를 많이 받은 것 같았습니다!”라고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처음에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는 시험꺼리가 있었습니다. 현충원 안에서 매장일을 하는 분이 하는 말이 오늘 여러팀이 와서 매장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예배를 5분안에 끝내 주세요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5분안에 하관예배와 하관식을 끝내기는 어렵고 15분정도는 해야 취토까지 할 수가 있습니다했더니 그럼 저는 다른곳에 갔다가 오겠습니다라고 뗑깡을 부리길래 잘 설득하면서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더니 그분이 다행히 저의 제안을 받아주셔서 무사히 하관예배를 진행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요구대로 대충 5분만에 하관식을 끝낼수도 있지만 그러나 김연아집사님께서 예수를 믿고 돌아 가셨기에 하나님께서 그곳에 모인 가족들과 친지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주셨는데 그 기회를 놓친다면 그들중에 예수 안믿는 사람들은 살아 생전에 복음을 들을 기회가 없을 수 도 있기에 제가 고집을 부려서 하관예배를 드리면서 복음을 전한것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저는 장례식을 집례할 때나 또는 먼곳에서 장례식을 할때 장례식에 동행해 주시는 성도님들이 그렇게 고맙고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장례식에 가는것이 낫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잠언7장2절)


그래서 김연아집사님의 장례식에 동참하신 권사님들과 고재준집사님이 너무나 고마워서 돌아오는길에 일곱분을 모시고 전주로 가서 전주의 명물인 코다리한정식집에서 식사를 대접해 드리고 그리고 다시 남원으로 가서 광한루에 들러서 거기서 한시간동안 이도령과 춘향이의 스토리가 담긴 명소를 돌아보았습니다.


제가 전에 이도령과 춘향이를 예수님에 비유해서 설교를 했습니다. 이도령은 예수님에 비유되고 춘향이는 우리와 비유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탄마귀같은 변사또가 춘향이를 잡아다가 자기에게 수청들지 않는다고 춘향이를 옥에 가두었습니다. 춘향이가 변사또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도령이 과거에 장원급제를 해서 마패를 품고 돌아와서 암행어사 출두야!”하고 춘향이를 구해 낸 것처럼, 예수님이 하늘나라의 영광의 권세를 가지고 오셔서 십자가와 부활로 마귀의 포로된 우리를 건져 내셔서 우리를 신부삼아 주셨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신부가 되어서 영생복락을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저는 권사님들을 광한루 앞에 있는 정자에 모두 앉으시라고 권한 후에 기념촬영을 하고나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곳 남원이 하나님의 도성이 되고 또 우리나라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민족이 되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임받는 나라가 되고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나라의 일군들이 되게 해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하영순권사님께서 김연아집사님이 복이 있는 분입니다라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김연아집사님덕분에 좋은 시간을 갖게 되어서 우리도 복을 받았습니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김연아집사님은 예수믿고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김연아집사님은 예수믿은 그 순간부터 하늘나라에 갈 때 까지 이전에 맛보지 못한 행복과 평안과 기쁨을 누리면서 사셨습니다.


예수믿기 이전에는 남편이 힘들게하고 환경이 힘들게 하고 이웃이 힘들게 해서 힘든일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설천면에서 부자로 잘 살다가 가난해 지니까 자괴감이 들어서 늘 마음이 괴로우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믿은 다음부터는 그런 자괴감과 수치심이 다 사라졌습니다. 예수믿은 다음에는 세상에서 잘살고 못사는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닳았습니다. 예수님안에 행복이 있고 예수님안에 영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후에는 삶이 180도 달라졌습니다.


범사에 감사하고 범사에 행복하고 범사에 소망을 가지고 사셨습니다. 집사님께서 늘 자식들을 위해서 기도하더니 자식들도 다 잘 돼서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가서 보니까 손주 손녀들도 얼마나 멋지게 컷는지 다들 늠름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김연아집사님이 예수믿고 날마다 새벽제단을 쌓으면서 자손들을 위해서 축복하면서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자녀들과 손주 손녀들에게도 많은 축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김연아집사님은 예수믿고 그 누구보다 축복받은 삶을 살다가 천국에 들어가셨습니다. 아마도 지금쯤은 천국에서 춤추며 기뻐하면서 지내실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여호수아는 매우 엄숙하고 뜻 깊은 자리에 서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는 머지않아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직시하면서 자기의 새애를 돌아보는 자리에 서 있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고, 또 다가올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별 생각 없이 지내다가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호수아는 죽음이 가까웠을때 임종을 앞두고 이렇게 고백 했습니다. 1절로 2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들로부터 이스라엘을 쉬게 하신 지 오랜 후에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은지라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 곧 그들의 장로들과 수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불러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 날 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여호수아의 충성스러운 동역자인 갈렙과 대제사장 비느하스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평생 전쟁터에서 땀과 피와 눈물을 함께 흘리면서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친구들과 전우들과 제자들이 여호수아의 마지막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단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는 단어입니다7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기의 능력이나 전술이 뛰어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입니다.


여호수아는 자기의 죽음앞에서 하나님을 상기시켰습니다. 첫째, 우리가 이런 복을 받은 것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이라는 것입니다.


3절에 보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이시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본래 애굽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투 경험이 전혀 없는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가나안 입성때 승승장구 한 것은 하나님이 군대를 지휘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지휘관입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기만 하면 반드시 이겼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면 마귀와의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하고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끝까지 가나안의 악한 세력을 몰아내신다는 것입니다. 4절과 5절에 보면 보라 내가 요단에서부터 해 지는 쪽 대해까지의 남아 있는 나라들과 이미 멸한 모든 나라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제비 뽑아 너희의 지파에게 기업이 되게 하였느니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 앞에서 그들을 쫓아내사 너희 목전에서 그들을 떠나게 하시리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그 남은 자들을 몰아내는 일도 하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예수믿은 사람도 환란을 당합니다.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가정적으로 얼마든지 환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파산을 하기도 하고 사업이 실패하기도 하고 실직하기도 하고 결혼을 했지만 갈라서야 하는 아픔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날 때도 있습니다. 아침에 멀쩡했던 아이가 죽기도 합니다. 인생은 한치 앞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 믿다가 이런일을 당하면 하나님이 안계신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열심히 부르짖어도 금방 응답해 주시지 않는것처럼 여겨질때도 있습니다. 열심히 기도하는데 응답이 없는 이유는 고작 기도 몇마디 했다고 응답을 주시면 요행수나 또는 자기의 능력으로 응답을 받았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신혼여행을 가서 허니문 베이비가 생겨서 임신한 사람들은 그 자녀를 하나님이 자녀를 주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신혼여행가서 사랑했더니 아기가 생겼으니 그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혼해서 5, 7년 10년이 지났는데도 아이가 생기지 않다가 특별 새벽 기도회에 나와서 간절히 기도하고, 안수 기도 받고 애타게 기다리다가 아기가 생긴 사람은 이 아이는 하나님이 주신 아이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렇게 아기를 낳은 부모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그 아이를 위해서 더욱 열심히 기도합니다. 그래서 그 아이가 더 잘됩니다. 한나가 그렇게 애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더니 기도를 많이 받고 자란 사무엘이 하나님앞에 귀하게 쓰임받는 것처럼 기도를 많이 받고 자란 아이들은 더욱 귀한 일군이 됩니다.


청주 청석교회의 이동식교수님은 자손이 귀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가 자손이 귀하다고 아기를 열심히 낳았습니다. 자식 일곱을 낳고 이제 그만 낳기로 했습니다.


큰 아들이 결혼하자 어머니는 며느리를 목사님에게로 데리고 가서 기도를 받았습니다. 며느리에게 자손이 많게 해달라는 기도를 해 주십사고 목사님께 부탁을 했습니다. 목사님이 며느리를 위해서 기도를 한 후에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셔서 첫째부터 아들을 낳을 지어다하고 선포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며느리는 시어머니 앞이라 창피해서 아멘을 하지 못하고 부끄러워서 그냥 잠잠히 있었습니다. 그때 시어머니가 아멘하고 화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나서 임신을 해서 아기를 낳았는데 며느리가 아기를 낳은 것이 아니라 시어머니가 아기를 낳았습니다. 어머니가 늦둥이로 아들을 낳은 것입니다.


이동식교수님은 그 때 어머니가 아멘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면 자기는 태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간증을 하셨습니다. 아멘이 그렇게 큰 능력입니다. 축복을 선포하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은혜가 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이 떨어질때 아멘으로 화답하는 자에게 큰 축복을 주십니다.


가끔 인터넷 또는 벼룩시장같은 신문이나 서울의 전봇대에 보면 이런 광고가 납니다. “월수입 1000만원 보장. 숙식과 승용차 제공. 용모단정한 20대 아가씨 구함이런 광고는 무슨일을 하는지 모두가 다 압니다. 무엇 때문에 20대의 여자에게 월수입 1000만원을 보장해 주고 자동차를 주겠습니까?


뻔한 일입니다. 룸사롱에서 술시중을 들거나 성매매를 하는 여자를 구하는 광고입니다. 그런일을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성실하게 일한 댓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생활도 절대로 이단에 빠지거나 잘못된 곳에서 신앙생활을 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확실한 구원의 표적인 십자가를 붙들고 진리를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아들을 주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범사에 간섭하시고 복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얼마전에 제가 남해읍에서 주차를 하다가 그만 주차해 놓은 차를 들이받아서 상대방차도 긁히고 제 차도 오른쪽이 길게 긁혔습니다. 평생에 자동차 사고를 내지 않고 타고 다녔는데 이상하게 그런일이 생겼씁니다.


그래서 마음이 상해서 상대방 차주에게 차를 고쳐 드리겠다고 말씀을 드리고 보험사에 전화를 해서 신고를 한 후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집에와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1월달에 보험료 갱신을 해서 일년치를 보험을 들어 놓았는데 사고신고를 한후에 보험회사에서 전화가 왔는데 보험사 직원이 하는 말이 차종이 스타렉스에서 올란도로 바뀌어서 보상이 안됩니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매년 당신들 회사 싸이트에 들어가서 자동차 번호를 클릭해서 시키는 대로 갱신가입을 했는데 어떻게 중간에 차종이 바뀔수가 있습니까? 올란도는 올란도대로 지금 보험에 들어있고 스타렉스는 스타렉스대로 보험을 들었는데 어떻게 그런일이 생길수가 있습니까?”라고 하면서 조목 조목 따졌더니 자기들이 이 문제를 놓고 회의를 해서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 문제로 인해서 며칠동안 보험사와 통화를 하면서 신경을 썼습니다. 저는 이건 분명히 당신들의 컴퓨터상의 실수나 또는 서류상 착오니까 차량을 바꿔놓고 보험도 일년갱신된 것을 정상으로 돌려 놓으십시요!”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렇게 보험회사와 3일동안 통화를 하면서 지냈는데 보험회사에서 회의를 한 결과 제 의견이 받아드려져서 1월달부터 다시 소급적용을 해서 모든 서류가 정상적으로 회복이 되었고 차량도 올란도에서 스타렉스로 정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일이 정상적으로 처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고신고를 했기에 사고담당 부서에서 전화가 왔는데 그분이 하는말이 보험에 든 차량이 차종이 바뀌어서 어려우셨겠네요! 차종이 바뀌면 전혀 보상이 안됩니다! 인명사고가 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네요!” 합니다.


보험에 들었어도 서류상으로 차종이 바뀐 상태에서 인명사고가 났으면 아무런 보상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서 비로소 하나님께 더욱 감사를 드렸습니다.


교회에서 차량운행을 하다가 인사 사고가 났다면 그런 상태로는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할뻔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차를 하다가 살짝 접촉 사고가 난 것도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이었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 하나도 다 세신바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무슨일이 벌어져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셋째로, 여호수아는 율법책에 기록된 것을 지키는 것이 인생을 행복하게 살고 승리하면서 사는 길이라고 고백 합니다. 6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바로 이것이 여호수아가 지금까지 원수를 이기고 인생을 승리한 원리입니다. 여호수아는 늘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읽고 묵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을 이끌어 가는 힘이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지도자로 세움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여호수아서 1장에 기록해 놓았습니다.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


이 말씀은 여호수아를 처음 부르실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여호수아는 지도자로 부름을 받아서 사역을 시작할 때 하나님이 주신 이 말씀!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라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라는 말씀을 일생동안 붙들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순간에 자기곁에 둘러선 지도자들과 후손들에게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라고 선포했습니다.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다 지켜 행하라 치우치지 말라라고 강조합니다. 요한계시록 13절에도 보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라고 증거 합니다. 지켜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성경을 20번 읽었습니다혹은 “100번 읽었습니다라고 자랑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중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 대해서 조심할 것을 당부합니다. 


12절과 13절에 보면 너희가 만일 퇴보하여 너희 중에 빠져 남아 있는 이 민족들을 친근히 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피차 왕래하면 정녕히 알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필경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절하리라“ 


여기서 친근히 하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다바크인데 바싹 달라붙다” “매우 가까이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은 이방 민족들을 가까이 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들과 친근히 하지 말고 혼인도 하지 말고 피차 왕래도 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살고 있던 가나안 사람들을 다 몰아내지 못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점령한 가나안 땅을 제비뽑기를 통해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골고루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지파들이 가나안 사람들을 다 물리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땅 구석 구석에 적들이 숨어살게 됩니다. 사사기 1장에 보면 그 상황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다 지파는 적을 남겼습니다.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하신 고로 그가 산지 거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거민들은 철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1:19)


베냐민 지파도 여부스 사람을 내쫓지 못했습니다. “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한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사람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날까지 예루살렘에 거하더라”(1:21)


이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예루살렘이 반쪽으로 나뉘어서 이슬람 사람들이 점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므낫세 지파도 마찬가지입니다. “므낫세가 벧스안과 그 향리의 거민과 다아낙과 그 향리의 거민과 돌과 그 향리의 거민과 이블르암과 그 향리의 거민과 므깃도와 그 향리의 거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사람이 결심하고 그땅에 거하였더니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사람에게 사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1:27-28)


에브라임 지파도 게셀족을 내쫓지 못 했습니다. “에브라임이 게셀에 거한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사람이 게셀에서 그들 중에 거하였더라”(1:29)


스불론 지파도 그랬습니다. “스불론은 기드론 거민과 나할롤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나 가나안 사람이 그들 중에 거하여 사역을 하였더라”(1:30)


아셀 지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아셀이 악고 거민과 시돈 거민과 알랍과 악십과 헬바와 아빅과 르홉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 땅 거민 가나안 사람 가운데 거하였으니 이는 쫓아내지 못함이었더라”(1:31-32)


납달리 지파도 그랬습니다. “납달리가 벧세메스 거민과 벧아낫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 땅 거민 가나안 사람 가운데 거하였으나 벧세메스와 벧아낫 거민들이 그들에게 사역을 하였더라”(1:33)


이같이 각 지파가 제비뽑아 나누어 준 땅에 들어가서 그들을 완전히 점령하지 못 하고 그 땅 거민들을 여기 저기에 남겨 두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이스라엘에 성지순례를 가보면 중요한 성지의 여러곳곳을 아랍사람들이 점령하고 차지하고 있어서 들어가기가 어렵고 테러위험지역으로 분류 되어서 순례가 어려운 곳들이 많습니다. 


이스라엘 구석 구석을 이방사람들이 점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툭하면 테러가 일어나서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예루살렘성도 입구마다 이스라엘 군인들 수십명이 기관단총을 들고 지켜 서서 검문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상을 숭배하고 죄가운데 사는 이방사람들을 다 척결하라고 명령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그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도자 여호수아가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지도자들과 후손들에게 이 거민들이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침략할 것을 걱정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섬기는 잡신들이 이스라엘에 흘러 들어올 것을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죽기 직전에 모든 장로들과 두령들과 재판장들과 유사들을 불러놓고 여호와께서 강대한 나라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 내셨으므로 오늘날까지 너희를 당한 자가 하나도 없었느니라 너희 중 한 사람이 천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너희가 만일 퇴보하여 너희 중에 빠져 남아 있는 이 민족들을 친근히 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피차 왕래하면 정녕히 알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필경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절하리라”(23:8-13) 라고 훈계한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더 이상 그들과 혼인도 하지말고 친근하지도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명령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남겨 두었던 거민들과 왕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풍습과 우상도 받아 드렸습니다. 가나안족속들의 처녀들과 결혼을 했습니다. 그것이 올무가 되고 덫이 됩니다.


그래서 그것이 옆구리의 채찍이 되고 눈에 가시가 되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미움을 받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무엇보다도 음란이 문제 였습니다. 음란은 좀처럼 다스리기 힘든 죄입니다. 누구도 안심할 수 없는 죄입니다.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죄입니다. 그렇게 의롭게 살았던 다윗도 음란에 넘어졌습니다.


솔로몬이 통일 왕국을 유지하려다 보니까 자기가 점령한 민족 중에서 후궁으로 왕비를 많이 받아 드렸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에 큰 올무가 됩니다.


시돈에서 온 왕비가 이스라엘에 아스다롯우상을 가져왔습니다. 암몬에서 온 왕비가 밀곰우상과 몰록우상을 가져왔습니다. 모압에서온 왕비가 그모스 신을가져왔습니다. 솔로몬은 이런 신을 척결하기는커녕 왕비들과 같이 그 신들을 섬기기를 즐겼습니다. 그들과 결혼함으로서 그것이 올무가 되고 덫이 되었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음란이 판을 칩니다. 인터넷, 음란 서적, 음란 CD, 음란 영화, 음란 잡지, 음란 술집, 음란 업종들이 즐비합니다. 이것들과 접하면 파멸밖에 없습니다.


아내가 있는 한 남자가 술을 마시고 놀다가 만난 한 여자와 사귀어서 그녀와 동침했습니다. 불륜관계를 갖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그 여인은 사라지고 머리맡에 쪽지가 한 장 놓여 있었습니다. “에이즈 가족이 된 것을 환영합니다


이것은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내가 놀고 즐기다가 에이즈에 걸렸는데 그렇다면 나만 억울하게 죽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나도 한명이라도 더 에이즈에 걸려서 죽게 만들겠다는 악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상대방을 유혹해서 그런일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결혼하기 전에 애인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사귀던 여자가 애인이 군대에 간 사이에 애인을 버리고 미국 군인과 국제 결혼을 해서 미국으로 가서 살았습니다. 남자는 군대를 제대한 후에 옛 애인을 찾았습니다. 찾아보니 애인여자가 미국남자와 결혼해서 미국으로 간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자는 악착같이 여자를 찾고 또 찾아서 결국 미국에서 그녀의 집을 찾았습니다. 옛 애인남자가 문을 두드렸고 문을 연 여자는 기절할 것처럼 놀랬습니다. 남편이 나오자 여자는 당황한 나머지 자기 남편에게 그 남자를 친 오빠라고 둘러 댔습니다. 오빠가 군대를 제대하고 말도없이 갑자기 찾아왔다고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 남자는 그 집에서 며칠동안 머물렀습니다. 남편이 아침 일찍 출근하자 옛정이 밀려온 여자는 옛 애인과 관계를 가졌습니다. 밤에는 미국 남편과 같이 자고 낮에는 한국 애인과 같이 관계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며칠후에 미국남편이 눈치를 챘습니다. 미국남편은 아내와 심한 말다툼 끝에 총으로 아내를 쏘아 죽였습니다. 한국 남자도 쏘아 죽였습니다. 미국남자는 죽은 아내의 손에 총을 쥐어놓고 신고를 했습니다. 그리고 미국 경찰에 아내가 정부를 죽이고 자기도 자살을 했다고 신고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살아가는 곳곳에서 섹시하고 아름다운 가나안 여인들과 간음을 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래서 타락하게 됩닏. 하나님의 축복을 죄와 바꿨버렸습니다.


하나님이 대신 싸워 주셨기에 승리했고 가나안땅을 차지했는데 그후에 그들이 무사안일에 빠졌습니다그 땅에 살고 있던 거민들을 다 점령하지 않고 불씨를 남겨두었습니다. 더 이상 전쟁도 귀찮고 그 정도는 무시해도 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남겨둔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망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음란의 불씨를 안고 살면서도 안일하게 살아갑니다. “그것쯤이야 뭐 어때! 즐기고 사는게 인생이지!” 라고 생각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 합니다. 그러나 그게 인생을 망칩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상을 따라갈 때 그들이 세상 사람들을 이기지 못할 뿐 아니라 평생 그들의 종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종이 될 수밖에 없는 것들을 네 가지로 표현했습니다.


첫 번째는 올무입니다 목에 올무가 매여 있으면 질질 끌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발이 덫에 걸리면 꼼짝달싹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마귀의 종이 되어서 아무것도 못하고 오직 마귀가 시키는 대로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옆구리의 채찍이 되어서 옆구리를 모질게 때리고 고통스럽게 합니다. 말을 타는 사람은 장화 끝에 뾰족한 것을 달고 옆구리를 치기 때문에 뛰기 싫어도 달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좋아하고 쾌락을 사랑하면 쉴 수도 없고 행복할수도 없습니다. 가시채를 뒷발질하는 고생이 계속 됩니다. 끝없이 돌아가는 욕심의 수레바퀴에 매여 있기에 고난이 계속됩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누구나 한 생을 마감하는 자리에 설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종말에 마지막으로 남기는 것이 무었입니까? 그것은 역사가 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또는 나의 후손과 이웃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것도 다 부질없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실까?”입니다.


내가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이 기뻐하는 사람으로 살다가 예수님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인생을 잘 산것입니다.


이 세상은 다 심판 받아 없어집니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심판하시고 영원한 새하늘과 새땅을 창조하시고 그 나라에는 예수님을 믿은 거룩한 백성들이 들어가서 살게 됩니다.


예수님만이 그 나라를 주관하시고 영원토록 다스리십니다. 그래서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죽은 후에도 천국과 지옥을 다스리시는 분은 예수님이시기에 그 예수님 앞에서 어떻게 살다가 죽느냐가 인생을 잘 살았느냐 못살았느냐의 평가 기준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경건하게 살다가 천국에 가면 칭찬과 상급과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아무쪼록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승리한 여호수아처럼 예수님을 의지하여 영적 전쟁에서 이기고 천국에서 영광의 면류관을 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출처 : 보물섬남해세광교회
글쓴이 : 행복을 주는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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