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일 부흥회를 하겠습니다. 성령충만 말씀충만 은혜충만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야베스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본문 역대상4장9절로 10절을 보면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라고 증거 합니다.
서울에 사는 아들이 시골에서 온 나이든 아버지를 모시고 6.3빌딩을 구경하러 갔습니다. 아들이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에 아버지가 엘리베이터를 보고 있는데 어떤 할머니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더니 문이 닫혔습니다. 얼마후에 다시 문이 열렸는데 아주 예쁘고 젊은 여자가 나왔습니다.
그 광경을 본 아버지는 깜짝 놀라서 아들이 오자 “얘야 시골에 가서 빨리 네 어머니를 데려와라! 저 기계안에 네 어머니를 넣으면 젊고 예뻐져서 나오겠구나!”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버지는 엘리베이터가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운명”(運命) 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섭리”(攝理)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우주의 일월성신은 하나님이 천지창조 때 정해준 천체의 궤도를 따라 돕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서 운행되는 만물의 이치가 “운명”이라면 그런 뜻에서는 운명이라는 단어를 사용해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운명론자들은 우리인간을 운명의 노예, 즉 운명의 사슬에 묶여진 존재로 정의합니다. 그래서 운명론자들은 “인간의 운명은 사주팔자(四柱八字)나 관상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말을 합니다.
사주(四柱) 즉 년,월,일,시에 따라서 축복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고,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또 사람에게는 좋은 “운세”(運勢)가 있고, “삼재”(三災)와 같이 나쁜 운세가 있으니까 좋은 운세는 더욱 좋게 하고, 나쁜 운세는 막아야 화를 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복을 받으려면 나쁜 운세를 좋은 운세로 바꾸기 위해서 굿을 하거나 또는 이름을 바꾸거나, 부적(符籍)을 써서 몸에 지니고 다니면 운명과 운세를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런 엉터리 미신은 사람을 미혹하는 거짓말에 불과 합니다. 그들은 사람에게 임하는 재앙과 두려움을 이용해서 사람을 속여서 돈을 갈취합니다.
며칠전에 새신자 박예본성도님께서 문자를 보내오셨습니다. 아버지가 위독해서 비행기편으로 서울로 가는데 기도해 달라는 문자를 보내오셨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해서 통화를 했습니다.
박예본성도님은 아버지가 두달전에 쓰러져서 입원할 당시만 해도 “제발 아버지가 건강을 회복하고 일어나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임화자권사님을 모시고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를 하고 또 아버지의 간병을 하는 동안에,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병이 낫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아서 천국에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실 이라는 것을 깨닳았습니다.
그래서 “목사님! 제가 비로소 중요한 한가지 사실을 깨닳았습니다! 그동안은 아버지의 병이 낫기만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했는데 이제는 아버지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기도제목이 바뀌었습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박예본성도님이 더욱 심금을 울리는 고백을 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하나님께 한가지를 부탁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믿은 저를 위해서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셨다면, 그 자리를 우리 아버지에게 주십사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저는 천국에 못들어가도 좋으니까 우리 아버지만은 천국에 들어가게 해 주세요! 우리 아버지는 살아 생전에 고생도 많이 하시고 힘든일도 많이 겪으면서 사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가 꼭 구원받아서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박예본성도님의 간절한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 된 줄 믿습니다. 성경에 보면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서, 어머니가 딸을 위해서, 아들이 어머니를 위해서, 지도자가 백성들을 위해서 간절하게 기도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럴 때 마다 하나님은 온맘 다해 기도하는 사람들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습니다.
바울사도는 자기 형제와 골육친척의 구원을 위하여 자기가 저주를 받아 끊어질 지라도 구원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9:3)
모세도 자기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질지라도 내 동족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출32:32) 하나님은 이런 특심한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박예본성도님은 이제 예수 믿은지 두 달 밖에 안된 초신자입니다. 바울사도의 기도나 모세의 기도를 알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드린것과 같은 이런 놀라운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박예본성도님을 만나서 상담을 해 보니까 박예본성도님은 지금까지 무당과 점쟁이를 신봉하고 철저하게 그들의 말에 맹종하면서 지내 왔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지내던 친구분의 소개로 우리 남해세광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상담을 한 후에 기도를 해 드렸는데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귀신이 떠나가고 성령충만을 받아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의 여인이 되었습니다.
박예본성도님이 그렇게 예수님을 영접하고 새출발을 했는데 두달만에 인생이 완전히 180도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했고, 하나님만이 천지를 창조하신 참 신이요 천국과 지옥을 주관하시는 분임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생사화복도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따랐던 모든 무당들과 점쟁이들을 다 끊어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의 여인이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제가 서울까지 갈 수가 없어서 임화자권사님을 소개해 드렸더니 임화자권사님께서 시마다 때마다 달려가서 박예본성도님의 아버지 박경수성도님을 위해서 기도해 드리고 예수님을 영접시켜 드렸습니다.
아버지 박경수성도님은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계셨습니다. 박예본성도님이 처음에는 아버지를 살려 달라고 기도를 했지만 이제는 사는 것 보다 중요한 일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천국에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닳았기에 자기는 천국에 못들어가도 좋으니까 아버지는 꼭 천국에 들어가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불러오고 하나님의 축복을 불러오는 결정적인 동기가 됩니다.
며칠전에 기독교 방송에서 “철가방 우수씨”라는 영화를 감독한 윤학렬감독님이 나와서 간증을 했습니다. 윤학렬감독님은 자기 아내가 우리나라 남묘호랭계교의 부회장이라고 고백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우리나라의 용한 무당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철저한 무당 신봉주의자였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는 매사에 점쟁이가 이야기 하는대로 맹종하면서 살았습니다. 심지어 어린 아들까지 무당에게 데려가서 무당이 시키는 대로 살도록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지인의 소개로 예수님을 믿게 된 윤학렬감독이 예수님을 믿고 보니까 자기가 얼마나 한심하고 어리석은 짓을 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열 살된 아들아이를 데리고 목욕탕에 가서 비누로 아들아이와 자기의 몸을 깨끗이 씻은후에 목욕탕 바닥에 아들아이를 앉혀놓고 자기가 아들아이 앞에 무릎을 꿇고 아들에게 용서를 빌었다고 합니다.
“아들! 지금까지 아빠가 잘못 살았다! 아빠가 잘 몰라서 무당말만 믿고 살아왔다! 너에게도 무당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는데 그게 다 잘못된 일이었다! 그러니 이 아빠를 용서해 다오! 알고 보니까 가장 높은신은 하나님이란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데, 내가 그걸 모르고 무당을 믿고 너에게도 무당이 시키는 대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으니 아빠가 정말 잘못했다! 이제라도 이 아빠를 용서해다오! 내가 이렇게 너에게 용서를 빈다!”하고는 진심으로 아들아이에게 용서를 빌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아들아이가 울면서 “아빠 괜찮아요! 아빠 저는 아빠가 시키는 대로 할거예요! 이제부터 저도 하나님을 믿을께요!”하면서 울더랍니다.
윤학렬감독은 사람들이 보던말던 목욕탕바닥에서 아들아이를 부등켜 않고 한참을 같이 울었다고 합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제 아들아이가 어렸을 때 아주 말썽꾸러기 였습니다. 누나하고도 툭하면 싸웠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번은 아들아이의 버릇을 고쳐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느날 집에서 차를 타고 나오는데 뒷자리에서 아들아이가 뗑깡을 부리면서 또 누나하고 싸웁니다. 그래서 제가 큰길로 나가는 동네 골목에서 차를 세우고 뒷자리로 가서 아들 아이를 차에서 끌어내서 밖에 내려놓고 그대로 차를 타고 달렸습니다.
그리고 백미러로 보니까 아들아이가 차를 따라오면서 막 뛰어오다가 넘어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들 아이는 넘어진 후에 다시 일어나서 죽어라고 달려 왔습니다. 아빠가 가버리면 자기는 고아가 된다는 생각에 죽자 사자 울면서 뛰었습니다.
제가 그 모습을 보고 차를 세우고 아들아이를 데리고 와서 차에 태우고 다시는 싸우지 말고 고집 부리지 말라고 훈계를 했습니다.
저는 그 사건을 잊을수가 없습니다. 그 일이 두고 두고 제 기억에서 사라지질 않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아들 아이가 그때 얼마나 놀랬을까?를 생각하니 내가 너무했구나!” 라는 생각에 늘 그 생각만 하면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들아이가 자라서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저는 아들아이를 공원으로 데리고 가서 어렸을때 있었던 그 이야기를 하면서 아들아이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아빠가 다섯 살때 네 버릇을 고치려고 차에서 내려놓고 갔는데 그때 울면서 따라오다가 넘어지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아빠가 그때 너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들아이가 “아빠 저는 기억도 안나요 걱정 마세요”하고 이야기를 해서 제 마음의 무거운 짐이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을 보면 축복을 받은 이유가 있고 또 축복의 원리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축복받은 사람들이 수 없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 중에 돋보이는 사람이 야베스입니다.
야베스가 축복을 받은 원리가 오늘 본문에 소개 됩니다. 야베스는 하나님께 축복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아니 기도했다기 보다는 축복을 주십사고 크게 호소 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방송인인 폴 하비(Paul Harvey)가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어느 날, 다섯살짜리 아들이 엄마와 함께 수퍼마켙에 갔습니다. 수퍼마켙에 갈 때마다 아들이 초콜릿 쿠키를 사달라고 졸랐습니다.
엄마는 가게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아들에게 “존! 절대로 초콜릿 쿠키 사달라고 하면 안 돼! 묻는 것도 안 돼!” 그렇게 단단히 다짐을 받은 엄마는 아들을 카트에 태운후에 카트를 밀고 마켙으로 들어갔습니다.
처음에는 아들아이가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초콜릿쿠키가 진열된 곳에 도착하니까 아들아이가 “엄마! 초콜릿 쿠키좀 사주시면 안 돼요?”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엄마는 “내가 묻지도 말라고 했지? 절대 안 돼!” 하고 엄하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들은 할수없이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물건을 찾다가 다시 한바퀴 돌아서 다시 쵸콜렛 쿠키가 있는 섹션으로 오자 아들아이가 “엄마! 제발 이번만 초콜릿쿠키를 사주시면 안 돼요?”하고 물었습니다.
엄마는 인상을 쓰면서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안 된다고 했지? 더 이상 그 얘기는 꺼내지도 말아!”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엄마가 너무나 단호하게 말을 하니까 아들은 기가 죽어서 말이 쑥 들어갔습니다.
쇼핑이 거의 다 끝나고 엄마가 계산대로 가는데 계산대 앞에 있는 간이 물품대에 쵸콜릿쿠키가 놓여져 있었습니다.
아들아이는 이때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계산대 줄에 서서 기다리는 엄마에게 “엄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초콜릿 쿠키 좀 사주시면 안 돼요?”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계산을 하려고 줄에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다들 “아하하하” 하고 웃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박수까지 치면서 “너 참 믿음이 좋구나!” 아저씨가 초클렛쿠키하나 사줄께!” 하더니 계산대 앞에 있는 간이 물품대에서 초콜릿쿠키를 하나 사서 아이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줄에 서 있던 사람들중에 여러 사람들이 다들 감동을 받아서 여기 저기서 초콜릿쿠키를 사 주었습니다. 심지어 한 할아버지는 20개가 들은 초콜렛쿠키를 통째로 한박스를 사주고 갔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는 그날 스물 세 개의 초콜릿 쿠키를 얻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원하는 것을 구했던 다섯살 꼬마는 풍성하게 받았습니다.
야베스도 기도함으로 자신의 운명이 풍성하게 바뀌었습니다. 우리도 기도할 때 삶이 바뀌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해도 잠깐 구하다가 포기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구하라! 그러면 주신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것이니라”(마7:7-8)
윌리암 바클레이(William Barclay)는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이 말씀을 “기도 헌장”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예수님은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기독교의 역사는 기도하는 사람의 역사다”라고 말했습니다. 기도는 은혜와 축복의 통로입니다. 진실한 기도는 삶을 바꾸고, 가정을 바꾸고, 자녀를 바꿉니다. 많은 믿음의 선진들은 기도를 통해서 현실을 극복하고 위대한 삶을 살았습니다.
야베스도 그런 인물입니다. 야베스는 다윗 왕의 지파인 유다 지파에 속한 사람이지만 가문은 별로 대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역대상 3장에 나오는 왕족의 족보에는 들지 못했습니다. 역대상 4장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족보에 그 이름이 나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9절에 보면 야베스는 아버지가 이름을 지은 것이 아니라 그의 어미가 야베스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유대인들은 보통 아버지가 이름을 지어줍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아들의 이름을 지은 것을 보면 그는 유복자였을 것이라고 성경학자들은 추정합니다.
그 옛날에 임신중에 아버지가 죽어서 유복자로 태어났으니 그의 인생이 얼마나 험난했겠습니까? 예나 지금이나 혼자된 어머니가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별히 유대 땅에서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자기의 처지를 생각하면서 아들의 이름을 “수고와 슬픔과 고통을 받은자”라는 뜻의 “야베스”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오늘 본문 9절에 보면 야베스의 어머니가 야베스를 낳을 때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야베스가 난산을 통해서 장애자로 태어났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야베스의 어머니는 자기가 낳은 아기를 보면서 “내 아들이 이런 모습으로 태어나다니! 앞으로 이 힘든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꼬! 건강해도 살기가 어려운데 몸이 정상이 아니니 이를 어찌할꼬”하면서 “고통” 이라는 의미의 “야베스”라고 지은 것입니다.
야베스는 이와같이 태어날 때부터 난산의 고통과 아버지가 없는 고통을 겪으면서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야베스는 주어진 현실이 어렵고 고통스럽다고 해서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오늘 본문 9절에 보면 야베스는 다른 형제들보다 존귀한 자가 되었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역대상 1장에서 9장까지에 보면 아담부터 이스라엘 열두지파의 족보에 올라있는 수 많은 이름이 소개 됩니다. 그런데 열두지파에 속한 수천명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름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야베스에 대해서는 이름과 더불어 몇 줄의 설명을 덧붙여 놓고 있습니다. 이것은 수천명들 중에 야베스가 특별한 인물이었기에 그에 대해서만 설명을 덧붙인 것입니다.
특히 야베스를 “귀중한자”라고 소개를 했습니다. 귀중한자는 “존귀한 자”입니다. 재산이 많고 높은 사회적 지위와 함께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야베스는 당대에 유명한 율법 학자였고 사랑과 존경을 받은 인물이라고 전해 집니다. 그래서 후에 야베스가 살던 마을은 야베스의 이름을 따서 “야베스”로 부르게 됩니다. 그 내용이 역대상2장 55절에 나옵니다.
“야베스에 거한 서기관 족속 및 디랏 족속과 시므앗 족속과 수갓 족속이니 이는 다 레갑의 집 조상 함맛에게서 나온 겐 족속이더라”(대상2:55)
세상 모든 나라들은 사람 이름을 지명으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지명을 이름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름을 김서울 또는 박부산 이라고 짓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 이름은 지명으로 사용합니다. 서울에 가면 세종로가 있습니다. 세종대왕을 기념하는 도로입니다. 퇴계로는 이황을 기념하는 도로입니다. 충무로는 이순신장군을 기념하는 도로입니다.
미국의 라과디아공항은 뉴욕시장이었던 라과디아시장의 이름을 따서 라과디아공항으로 지었습니다. 캐네디공항은 케네디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케네디공항으로, 프랑스는 드골공항으로, 이탈리아는 레오나르도다빈치공항으로 이스라엘은 벤구리온공항으로
로스앤젤레스 공항은 흑인 최초로 시장에 당선된 톰 브레들리의 이름을 따서 “톰 브래들리 공항”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이와같이 도로나 공항에 사람 이름을 붙이는 이유는 나라를 위해서 큰 공로가 있거나 존경스러운 인물을 기념하기 위해서 사람 이름을 붙이는 것입니다.
야베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야베스의 이름을 동네 이름으로 사용한 것을 보면 야베스가 위대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는 태어날 때는 불행하게 태어났지만 불행을 극복하고 존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야베스가 어떻게 그처럼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까? 그 결정적인 이유는 기도입니다. 야베스가 하나님께 드린 기도를 자세히 살펴보면 야베스의 기도는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째로 야베스는 하나님께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혀 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새로 구입해서 사용하고 있는 개역개정 성경에는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이라는 조건문의 기도로 번역을 해 놓았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야베스의 기도를 이와같이 조건문으로 번역한 것은 성경 본래의 뜻과는 차이가 있는 번역이라고 문제를 제기 했습니다.
저도 말씀을 준비하면서 다른 성경 번역본을 찾아 보았지만 어느 번역본에도 야베스의 기도를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이라고 조건문으로 번역한 성경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새로 번역된 개역개정성경은 오히려 옛날에 우리가 쓰던 “개역성경”보다 말씀의 영감도 떨어지고 또 단어가 주는 문학적인 맛도 떨어질 뿐 아니라 개역성경에서 잘 번역해 놓은 부분을 오히려 뜻이 다르게 번역해서 이전의 개역성경보다 질이 떨어진다고 다들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에 우리가 쓰던 개역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실 때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개역개정성경은 “너는 복이 될지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복이 될지라” 라는 말은 어감도 이상하고 말도 맞지 않아 보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복이 됩니까?
차라리 “복을 받으라” 또는 이전처럼 “복의 근원이 되라”가 더 어울립니다. 가정이나 직장이나 내가 있는 곳에서 “복의 근원이 되라는” 개역성경의 어감이 훨씬 더 잘 어울립니다.
그래서 저는 설교준비를 하면서 이전에 쓰던 개역성경을 인용 할 때가 많습니다. 이전에 사용하던 개역성경에는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나에게 복에 복을 더하여 주시옵소서”라는 간구입니다. 야베스의 기도를 원문으로 직역하면 “내게 진짜로 복에 복을 주시옵소서!”입니다. 야베스는 하나님이 복 주시는 하나님임을 알았기에 그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히브리어는 단어가 반복되면 최상급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나에게 복에 복을 더하여 주세요!”라는 기도는 “내게 최상의 복을 주세요 갑절의 복을 주세요!”라는 뜻입니다.
야베스는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기도하되, 작은 복이 아니라, 큰 복을, 최상의 복을, 갑절의 복을 달라고 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항상 무언가를 줍니다. 주고 또 주어도 더 주고 싶어서 안달을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자식이 못살거나 부족하면 더 주고싶은 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사 더 선한 것으로 복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야베스는 비록 장애가 있고 가난하고 유복자에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인생을 시작했지만 그러나 아브라함처럼 복의 근원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끝내 복을 받고야 말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고, 그 축복을 세상에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 축복을 나누어 주고, 베풀어 주려고 물질을 구하는 기도는 결코 잘못된 기도가 아닙니다.
그리고 똑똑한 것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돕고 섬기기 위해서라면 지혜를 구하고, 높은 지위를 구하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를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재물도 풍성하게 주시고 지혜와 지위와 권세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지만 특별히 복을 나눠주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복을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야곱은 얍복강 나루터에서 하나님과 씨름해서 복을 받았습니다. 그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붙들고 날마다 “복을 달라!”고 씨름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복을 주시면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고, 이웃을 섬기면서 살아야 합니다.
성도가 하나님앞에 드리는 기도중에 가장 아름다운 기도는 “하나님! 저를 사용해 주세요!”라는 고백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상급과 복을 주십니다.
도미니카 공화국에 선교사로 가셨던 윤철기장로님께서 지난주에 오셔서 대화중에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 내가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내 자식들에게 복을 주시고 나에게도 복으로 갚아 주시는데 사람들이 그걸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걸 알기에 하나님을 위해서 온맘다해서 헌신합니다”라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진리를 깨닳은 신앙의 달인의 고백입니다.
현대인들은 얼짱이 되고 싶어 합니다. 몸짱이 되고 싶어 합니다. 돈도 많아서 마음대로 돈을 쓰고 싶어합니다. 어디서나 큰 소리 치면서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인정받고 또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는 야베스처럼 하나님께 인정받고 또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제 새벽에 우리가 히브리서11장을 배웠습니다. 히브리서11장은 믿음장 이라고 일컫는 유명한 성경입니다. 성경에서 큰 획을 그은 기라성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히브리서 11장에 등장합니다. 11장에는 또한 그들이 행한 큰 업적들도 소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에 대해서도 한 줄이 소개되고 있는데 신기한 것은 야곱에 대해서는 “죽을 때 기도하고 경배한 일”을 소개 했습니다.
실상은 야곱도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입니다. 사기치고 도망가다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서 축복받은 사건은 정말 획기적인 사건입니다.
야곱이 얍복강 나룻터에서 천사와 씨름하여 복을 받은 사건이나, 하나님의 얼굴을 친히 대면한 브니엘 사건이나, 디나의 강간 사건후에 다시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만난 사건도 엄청난 사건입니다.
그런데도 히브리서 11장은 이 많은 사건들중에 야곱을 대표하는 사건으로 야곱이 죽을 때 기도하고 경배한 사건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 내용이 히브리서11장21절입니다.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야곱의 임종기도는 이스라엘 역사 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기도였기에 이 축복기도를 기록하고 소개한 것입니다.
야곱은 죽기전에 열두명의 아들들을 모두 다 불러놓고 일일이 축복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축복한 기도대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도 야곱의 임종기도와 축복기도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자식들을 위하여 축복기도를 한 후에 마지막으로 이런 유언을 남겼습니다.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선영에 장사하라”(창47:30)
이런 유언은 영적으로 깨어있지 않고서는 할 수가 없는 유언입니다. 이 유언을 남길 당시에 야곱의 나이가 147세입니다. 당시에 야곱은 요셉의 초대로 이집트에서 이민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자녀들과 손주손녀들이 다 이집트로 와서 이민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죽을 때 “내가 죽으면 내 시신을 이스라엘 땅에 묻어 다오!”라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오늘날 같으면 비행기의 냉동실에 시신을 넣어서 옮기면 되지만, 그 옛날에는 관에 시신을 넣고 어깨에 메어서 날라야만 했습니다. 그것도 수백키로를 걸어가야만 합니다. 서울 부산 거리를 관을 메고 장례 행렬이 따라가야 합니다. 보통사람은 엄두도 못내는 거리의 장례식입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기도하면서 영적으로 깨어 있었기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들 요셉에게 “내가 죽으면 반드시 내 시신을 고향인 이스라엘땅에 가져가서 매장을 해라”라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러면 왜 야곱이 자기 시신을 이스라엘 고향땅에 묻어 달라고 아들들에게 간청을 했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땅을 네 후손에게 주겠다”라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중요한 예언을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 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 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창15:13-16)
이 말씀은 야곱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라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손자인 야곱은 할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속 깊은곳에 새겨 두었습니다.
그러다가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죽고 다시 아버지 이삭도 죽고 이제 자기도 죽을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들려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의 말씀에 의하면, 지금 애굽에서 살고있는 야곱의 가족들과 후손들은 장차 400년이 지난후에 이집트에서 나간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늘 깨어 기도했기에 그 말씀을 잊지않고 기억한 것입니다.
앞으로 400년 후에 나간다는 것은 까막득한 미래의 일입니다. 야곱은 130세에 애굽나라로 이민을 왔습니다. 이집트에 이민온지 이제 겨우 17년이 지났습니다. 야곱의 나이가 지금 147세입니다. 죽음을 앞두고 있습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나이입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장차 400년이 지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기의 후손들이 애굽에서 떠나갈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믿음입니다.
그 때가 되면 야곱의 후손들은 야곱을 알지 못합니다. 야곱의 산소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야곱은 미리 고향인 가나안땅에 가서 묻혀 있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들에게, 특히 애굽의 총리로 있는 아들 요셉에게 맹세를 시키면서 “내 시신을 꼭 고향땅에 장사지내라”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야곱은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받은 계시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애굽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아니라 가나안땅을 기업으로 주셨다”라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이 땅이 우리와 우리 후손이 영원히 살 땅이 아닙니다. 이 땅은 우리가 나그네 인생길에 잠시 머물다 가는 땅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은 천국입니다. 그곳이 우리의 본향입니다.
세상에만 목을 매고 사는 것은 하나님나라 백성이 할 일이 아닙니다. 오직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헌신하면서 사는 것이 하나님나라 백성들의 일입니다.
노년에 야곱은 오직 하나님앞에서 기도하고 경배하면서 하루 하루를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와같이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낸 것입니다.
야베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늘 하나님앞에 나아가서 기도하는 삶을 살았기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존귀한 복을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9절에 보면 “야베스는 그 형제들보다 존귀한 자라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대상4:9)라고 증거 합니다.
야베스는 형제보다 더 존귀한 사람이 되었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야베스는 다른 형제들보다 돈 많은 사람이 된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인생을 역전시키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 갑니다. 그러나 나의 노력만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도와 주셔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행복과 불행은 하나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것을 깨닳은 야베스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를 드렸습니다.
복에 복을 더하여 주시고, 나의 지경을 넓혀주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셔서 환난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참으로 탁월한 선택입니다. 야베스는 기도함으로서 고난의 인생을 존귀한 인생으로 역전시켰습니다.
우리 교회가 남양으로 이사와서 새 출발을 했습니다. 그런데 소마굿간 성전을 리모델링하고 또 식당을 지으면서 여러번 공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종종 교회의 물건들이 없어졌습니다. 농기구도 없어지고 공구도 없어졌습니다.
한번은 논에서 일하던 분이 교회에 와서 밭을 일구는 괭이를 가져가셨습니다. 우연히 마당에 나왔다고 그것을 보게된 제가 “괭이를 쓰시려고요?” 했더니 “예 잠간 쓰고 갔다 놓을께요!” 하고 가져갔습니다.
어떤분은 삼태기를 가져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분은 삽을 가져가고 호미도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가져가는 것을 제가 본 사람은 가져간 기구를 다시 가져다 놓고 갔지만 제가 안볼때 가져간 분은 연장을 안가져오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교회와 식당과 창고와 사택을 잠그고 다니기로 했습니다.
처음에 교회를 개척할 때는 교회를 개방해서 언제든지 와서 기도 하고 화장실도 언제든지 누구든지 와서 사용하고 식당에도 언제든지 와서 물과 커피를 드실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가면 갈수록 여러 가지 도구들이 계속해서 도난을 당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모든곳에 자물쇄를 채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물건들이 없어졌습니다.
물건만 없어지는게 아니라 성물이 사라졌습니다. 예배도 훼방을 당했습니다. 그동안에 농기구,연장,돈,후레쉬,그릇,선글라스,곡괭이,톱,삽등 여러 가지 물건들이 없어졌습니다. 나중에는 본당의 마이크도 없어지고 앰프도 건드려놓고 기타줄도 끊어놓고 심지어 금년에는 부활절 현수막이 두개나 없어 졌습니다.
예배당 안에 걸어야 할 현수막과 큰길에 걸어야할 전봇대 현수막도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얼마전에 사모가 교회 열쇄를 회수하라고 해서 교회 열쇄를 회수했습니다.
우리는 지난 화요일날 남해경찰서 형사과에 가서 그동안 교회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도난사건에 대해서 신고를 했습니다. 웬만하면 그냥 넘어갈까도 생각했는데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이런일을 하는 것 같아서 남해경찰서에 가서 신고를 했습니다.
이건 잘잘못을 가리려는 고소가 아니라 도둑놈을 잡으려고 한 도난신고입니다. 남해경찰서 형사과 유태경형사님이 제가 신고한 사건을 담당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보고 했습니다. 수년전에 사택에서 수십만원의 돈이 없어진것과 더불어 농기구들을 도둑맞은것과 빨간 충전후레쉬를 도둑맞은것과 금번에 부활절 현수막 두개가 없어진것과 마이크와 앰프등 예배를 훼방한 다양한 사건들도 신고를 했습니다.
기타줄을 끊어놓고 앰프와 마이크를 조작해서 예배를 훼방하고 물에 이상한 것을 타고 나무와 밭의 농작물에 농약을 뿌려서 죽게하고 전동 드라이버가 없어진것과 충전후래쉬가 없어졌다가 수개월만에 고장난채로 제자리에 돌아온것 등 하여튼 제가 이곳에서 목회를 하는 동안에 있었던 도난사건과 이상한 사건들에 대해서 다 신고를 했습니다.
지난주에도 주보에 냈지만 김영순집사님이 헌물한 수석셑트의 상자 속에 들어있는 수석의 받침 세 개가 없어졌습니다. 교회에서 하나님께 드려진 성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됩니다. 아간처럼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무서운 심판이 임할수도 있습니다.
제가 담당 형사님에게 신고를 했더니 형사님이 조사팀을 꾸려서 조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인 증거와 현장감식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또 다시 그런일이 벌어지면 즉시로 신고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녹화된 씨씨티비와 자동차의 블랙박스도 앞 뒤로 다 녹화가 되니까 자동차 블랙박스와 씨씨티비도 제출하고 증거가 될만한 모든 자료들을 제출하라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러면 지문도 채취하고 과학조사를 통해서 교회를 방문한 사람들과 예배당을 드나든 사람들과 교회 주변을 왕래한 사람들을 전부 다 조사를 해서 범인을 색출해서 조사를 하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동안 이상한 일들이 많아서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못된 짓을 하는 좀도둑과 훼방꾼을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성도님들도 교회 주변에 수상한 사람이 기웃거리거나 야밤이나 예배시간이 아닌때에 교회를 드나드는 사람이 있으면 유심히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아가서2장15절에 보면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포도원은 교회를 말합니다. 교회에 교회를 훼방하는 여우가 있으면 행복한 교회가 망가집니다. 그래서 주님은 포도원을 허는 여우를 잡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시 야베스로 돌아갑니다. 야베스는 지경을 넓혀달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 기도의 문자적인 뜻은 “보다 넓은 땅을 주세요!”라는 뜻입니다. 넓은 땅은 당시에 유대 사회에서는 가장 큰 축복의 징표였습니다. 또한 넓은 땅은 큰 영향력을 나타냈고, 많은 수확을 얻게 했고, 많은 사람들을 고용하게 만들었습니다.
넓은 땅은 이웃을 섬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산이었습니다. 오늘본문 9절에서 야베스를 “존귀한 자”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그는 자기만 생각하는 사악한 지주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더 많은 사람을 섬기려고 넓은 땅을 구했습니다.
위대한 리더는 사랑과 섬김의 지경이 넓은 사람을 말합니다. “나의 지경을 넓혀 주옵소서!”에서 지경은 곧 땅을 말합니다. 내가 경작할 수 있는 땅을 넓혀 달라는 기도입니다.
오늘날의 의미로 해석하면, 나의 사업을 확장 시켜달라는 기도이고, 그래서 나의 영향력을 확대시켜 달라는 기도입니다. 지금 사업을 하고 있다면 사업이 확장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직장에 다니는 분은 유능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서 좀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직분의 영향력이 넓어지고 확대되게 해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자녀에게도 진학의 문이 열리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어디로 가든지 형통케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이 기도는 이기적인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으로 구해야 합니다. 기왕에 예수 믿었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영향력이 높아지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도를 드리면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바꾸어 놓으시고, 우리의 운명을 바꾸어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민을 갈 때 큰 꿈과 비전을 가지고 갑니다. 그래서 야채가게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공장에서 일하고, 생선 가게에서 일하고, 세탁소에서 일을해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런 일을 하면서도 자녀 교육은 최고로 시키고, 몸은 고단해도 열심히 교회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짧은 이민사에도 훌륭한 2세들을 많이 배출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인 2세들 중에서 점점 유능한 인물들이 배출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유대인들은 세계를 주름잡고 있고, 미국을 좌지우지하고 있습니다. 뉴욕 월가의 돈줄을 거의다 유대인들이 잡고 있고, 언론과 문화계와 영화계도 유대인들이 잡고 있습니다. 또한 수소폭탄, 원자폭탄, 원자력 잠수함과 같은 첨단 무기를 만든 사람들도 유대인이고, 나사의 과학자들 중 절반이 유대인이고, 노벨상 수상자의 30%가 유대인입니다.
지금 100만 명의 미국 변호사 중에 20%가 유대인이고, 뉴욕 의사의 절반이 유대인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철저하게 믿고 하나님께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셨기에 그런 결과를 얻은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인들도 점점 지경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미국에 가면 한국인들의 저력을 느끼게 됩니다. 이민 2세들이 무서울 정도로 미국 주류사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부모들이 날마다 하나님께 지경을 넓혀달라고 매일 기도하면서 희생하니까 하나님이 복을 주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미국 다음으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런 영향력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각 분야에서도 나타날 것입니다.
이어서 10절에 보면 야베스는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구절을 보면 그가 사람의 힘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큰 꿈을 가졌음을 알 게 됩니다.
얼마 전에 한 장로님은 자기가 건축업을 하는데 10년 전에 하나님이 단기간에 1000배의 축복을 주셨다고 간증을 했습니다. 그런 축복은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가능합니다. 사람이 땀을 흘리며 성실하게 살면 먹고사는 일에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삭처럼 100배의 축복을 받고, 단기간에 1000배의 축복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도와 주실 때 누리는 축복입니다.
비전이 클수록 내 힘으로는 그 비전을 이루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믿고 구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손을 움직이게 하는 지상최대의 수단입니다.
사실상 모든 진정한 축복은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할 때 시작됩니다. 그 믿음은 건강보다 중요하고, 자본이나 인맥보다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더욱 크게 쓰십니다.
끝으로 야베스는 근심이 없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10절에 보면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 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고 기도 했습니다.
이 기도는 야베스의 삶에 얼마나 걱정거리가 많고, 염려거리가 많고, 어려운 일들이 많았는지를 암시하는 기도입니다. 야베스의 삶은 어려서부터 환난의 연속이요, 근심거리가 끊이지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야베스의 기도를 풀어서 해석하면 “하나님! 제 인생은 산 너머 산입니다, 저에게는 환난과 근심거리가 너무도 많습니다,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에서 벗어나서 더 이상 근심하면서 살지 않게 해 주세요!” 이런 기도입니다.
환난은 예고하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날 갑자기 닥쳐오는 것이 환난입니다. 사람은 갑자기 찾아오는 환난으로 인해서 근심할 때가 많습니다.
우간다에 살던 한 흑인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 청년은 한 저택에서 살면서 열심히 허드렛일과 청소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주인이 집 계단에서 미끄러져서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흑인청년은 자기 때문에 넘어진 것 같아서 병원에 가서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괜찮네 자네처럼 성실한 사람은 처음 보네 내가 미끄러질 정도로 청소를 해 주었으니 오히려 내가 고맙네!”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얼마 후에, 주인은 퇴원해서 자기가 소유한 건물 2개의 청소계약이 끝나자 그 청년에게 청소를 맡겼습니다.
청년은 주인에게 “주인님! 제가 어떻게 그런 큰 건물을 청소를 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사장은 “뭘 고민하나? 사람을 고용해서 하면 된다네 이제부터 자넨 작은 사업을 시작하는 걸세! 한번 열심히 해보게!”
그래서 그 청년은 사람을 고용해서 청소를 시작했는데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나중에는 직원이 수십 명이 되었고, 큰 돈을 벌었습니다.
사업 성공의 최대비결은 현재 내가하고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가끔 스스로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는가?”
에디슨은 결혼날짜를 잡았는데도 연구실에서 실험하다가 결혼식 날을 잊어버렸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자존심을 지키는 일에만 최선을 다합니다. 그래서 성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공의 비결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또 자기가 선택한 일에 전력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분당의 한 골목길에서 50대 초반의 여성이 붕어빵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그 여자는 얼굴이 단정했습니다. 인상이 좋고 겸손해서 손님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얼마 후에는 남편도 같이 나와서 붕어빵 장사를 도왔습니다. 남편도 잘생기고 인상도 좋았습니다.
그 남편은 과거에 유명한 건설회사 간부였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망해서 붕어빵 장사를 시작한 것입니다. 키가 크고 잘생긴 대학생 아들이 틈틈이 부모님이 붕어빵 장사를 하는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년 후에는 아이스크림 할인점을 얻어서 장사를 했고 돈을 잘 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망했지만 자존심을 버리고 한 단계씩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서 기초를 다졌습니다. 그래서 다시 재기 했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서 살기가 어랴워도 자존심을 버리고 성실하게 맨 몸으로 시작하면 복을 받게 됩니다. 시험과 환란이 올 때 기도하고 찬송해야 합니다.
찬송가 79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난처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오라,
땅들이 변하고 물결이 일어나
산 위에 넘치되 두렵잖네,
4절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높으신 여호와 우리를 구하니 할렐루야,
괴롬이 심하고 환난이 극하나
피난처 있으니 여호와요
주님이 도와주시면 환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시편 37편 4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다 아십니다. 그러나 소원에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높이면 하나님은 반드시 복을 주십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어제도 많은 사람들이 인생역전을 위하여 로또 복권을 삿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권을 사서 인생 역전을 얻은 사람은 없습니다. 복권에 당첨될 확률이 벼락맞을 확률보다 어렵습니다. 그러니 당첨될 가능성은 없습니다.
혹 당첨이 되었다 해도 더 좋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더 불행한 일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복권에 당첨되면 직업을 버리고 이혼하고 더 불행해 집니다.
진정한 인생역전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기도교”입니다.
야베스는 기도했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께 이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대상4:10)
야베스는 기도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나의 부족함을 하나님께 아뢸 때 하나님께서 야베스처럼 고귀하고 존귀한 삶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아무쪼록 야곱처럼 그리고 야베스처럼 기도로 인생역전을 누리면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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