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은 종교 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많이 진행 되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종교 개혁에 대한 각성과 새로운 도전이 파도처럼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해서 종교개혁에 관해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종교개혁의 핵심 인물은 마르틴 루터입니다. 루터는 1483년에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법학을 전공했습니다.
어느날 루터는 들판에서 예기치 않은 엄청난 사건을 경험하게 됩니다. 친구랑 걷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져서 둘이서 비를 피하려고 달려갔는데 앞서서 달리던 친구가 루터의 눈 앞에서 벼락에 맞아 쓰러졌습니다.
루터는 절친인 자기 친구가 눈앞에서 벼락에 맞아 타 죽는 모습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고 땅바닥에 엎드려서 “하나님 저를 살려 주시면 제가 주의 종이 되겠습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후에 루터는 신부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아버지는 노발대발하면서 반대했지만 루터는 끝내 어거스틴 수도회의 신부가 되었습니다.
루터는 경건하고 성결한 수도사가 되기 위해서 매일 7번씩 기도하면서 성경을 묵상했습니다. 그는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몸부림쳤습니다. 성수를 뿌리고 밤낮으로 찬양과 기도를 드리고 심지어 길에서 구걸하는 고행도 하면서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남아있는 깊은 죄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1510년도에 루터는 수도원의 대표로 뽑혀서 로마를 순례하게 됩니다. 그는 로마의 교황이 거주하는 대성당의 28개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 올라가면서 참회의 기도를 드렸지만 거기서도 아무런 참회의 기운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로마에 가서 교황청의 비리를 목도하게 됩니다. 교황청에서 뇌물을 주고 성직을 얻은 사제들이 위선적인 모습으로 형식과 가식에 사로잡혀서 성직자로 지내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게다가 로마 교황청이 베드로대성당을 지으면서 면죄부를 팔아서 성당을 짓는 것을 직접 목도 하면서 “이건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싶어서 로마에서 돌아온 후에 깊이 성경을 묵상하기 시작했습니다.
루터는 비텐베르크 어거스틴 수도원의 탑 안에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합2:4) 라는 말씀과 더불어 “하나님의 의”(롬1:17) 에 관한 두 가지 말씀을 통해서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래서 로마서 1장 17절을 종교개혁의 모토구절로 삼게 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그는 첫째로 “오직 믿음”의 신학으로 무장을 했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공로나 업적이나 선행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고 또 예수 그리스도만이 생명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종교개혁의 횃불을 높이 들게 됩니다.
이어서 두 번째로 마르틴루터는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유명한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가 어느날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보니가 자기가 천국에 갔는데 자기도 줄을 서서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기는 평생동안 쓴 많은 신학서적들을 큰 수레에 싣고 천국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천국문 앞에서 베드로가 물었습니다. “너는 누구냐?” “나는 스위스 바젤에서 온 칼 바르트입니다” “내가 너를 안다 천국으로 들어가라! 그러나 수레의 책은 안된다” “
이것은 제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평생동안 심혈을 기울여서 쓴 책들입니다”
“다 소용없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자만 들어간다 네가 쓴 그 책을 꼭 가지고 들어가겠다면 너는 천국에 못 들어간다!”
그는 깜짝 놀라서 꿈에서 깼습니다. 평생 성경을 토대로 쓴 책인데도 천국에 들어가는데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닳은 바르트는 천국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자 만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때부터는 성경의 핵심인 십자가와 부활만을 강하게 전하는 신학자가 되었습니다.
요한 계시록 1장 3절에 보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라고 증거합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성경을 잘 읽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지도 않고 배우지도 않고 가까이 하지도 않습니다. 성경을 읽지 않는 신자, 성경을 배우지 않는 신자, 성경을 멀리하는 신자가 점점 많아지는 것은 교회의 큰 문제 입니다.
종교개혁의 근본정신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입니다. 루터가 남긴 가장 큰 공적중에 하나는 전통, 교권, 조직에 가려져 있던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을 재 발견한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성경으로 돌아가서 성경이 가르쳐 주는대로 살고 성경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야 한다는 정신입니다.
성경적 근거가 없는 교황청의 권위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루터는 강조했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 듯이 오직 의인은 성경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합니다.
세 번째로 루터가 강조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회개입니다.
어거스틴은 아프리카 힙포에서 살다가 로마로 유학을 갔습니다. 흑인들만 살던 아프리카에서 살다가 로마에 가서 보니까 멋진 서양여자들이 즐비했습니다. 어거스틴은 거기서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주색잡기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날마다 아들을 위해서 하루 세 번씩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어거스틴이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어머니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어서 기적이 벌어집니다.
그가 잘 아는 지인의 집에 놀러가서 정원을 거니는데 담 밖에서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렸습니다. “책을 들고 읽어 보세요 책을 들고 읽어 보세요”
그 노랬소리가 마음을 파고들었습니다. 그 순간 어거스틴은 마침 정원의 탁자에 노여진 성경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펼펴져 있는 그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날 그가 본 곳은 로마서 13장 13절과 14절입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특히 14절 말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라는 말씀을 읽을 때 성령이 강하게 그에게 임했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 꿇어앉아서 회개를 했습니다. 그날 그는 거듭났고 새생명이 임했습니다.
회개한 어거스틴은 기독교 역사에 길이 빛나는 사람이 됩니다. 당시는 로마가 세상 최고의 지상의 도성(civitas Mundi)이었습니다. 그런 시대에 어거스틴은 “지상의 도성”보다 더 아름다운 “하나님의 도성(civitas Dei)”이라는 위대한 저서를 써서 기독교를 세상에 크게 알리게 됩니다. 어거스틴이 지은 하나님의 도성은 기독교 교리의 뼈대가 됩니다.
회개한 어거스틴은 로마서 6장 13절을 깊이 사랑했습니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신앙과 삶은 병행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자신을 구별시키고 성별시켜서 하나님의 의를 실천하는 도구로 살아야 참된 성도입니다. 그래서 종교 개혁의 정신은 끊임없이 회개하는 것입니다.
신섭 장로님은 보정침례교회의 장로님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예수를 안믿었습니다. 예수를 안믿을 때 잘 나가다가 망해서 패가망신을 당해서 밑바닥 인생을 살다가 하나님을 만나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닳은 신섭장로님은 충성된 믿음으로 살면서 장로가 되었고 “7전 8기의 은혜”라는 책을 내셨습니다.
장로님이 예수를 믿기전에 대학을 졸업하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6년 만에 30대 초반에 30개가 넘는 기업의 총수가 되셨습니다. 하는 일마다 승승장구해서 젊은 나이에 엄청 잘나갔습니다.
그랬더니 주변에서 시기질투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주변에 그를 모함하는 악성 루머를 퍼트리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의 사업에 딴지를 걸고 훼방하는 사람들 때문에 결국 그는 잘 나가다가 도산을 했습니다.
그는 하루 아침에 망해서 온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본인은 좌절해서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지만 자살미수에 그쳤습니다.
그때 모태 신앙인 이었던 아내가 그에게 이런 권유를 했습니다. “여보, 당신은 예수님을 믿어야 해요, 기도하고 주님께 매달리면 주님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거예요!”
아내가 하도 간절하게 부탁을 하니까 그가 기도원에 들어갔습니다. 기도원에 들어갈 때는 자기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에 대한 미움과, 원망과, 증오심과, 복수심으로 가득해서 들어갔는데 기도원에서 집회에 참석하고 또 조용한 시간에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성령이 임했습니다.
특히 빌립보서 2장 5절 말씀을 읽다가 성령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이 말씀을 읽는 순간 그의 마음에 원망, 미움, 섭섭함, 증오심이 사라지면서 주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그날 그는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내 욕심과 욕망, 아집, 허물, 죄, 원망, 불평, 불만으로 가득한 마음을 비워 주시고 원수를 죽이고 싶었던 마음마저 모두 내려놓게 하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셨던 하나님의 그 무한한 사랑을 느꼈고 그 사랑으로 가슴에 불덩어리가 타오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그는 성령 충만함을 받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변화된 그는 집으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기도원에서 3년6개월을 지냈습니다. 그는 기도원에서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식사 시중을 하고, 목욕 수발을 하고, 봉고차를 운행하면서 봉사하고, 기도원에서 온갖 잡일을 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렇게 3년동안 충성봉사한 후에 집으로 돌아와서 새롭게 시작한 일이 브리태니커 영어백과사전을 파는 외판원 일입니다. 그는 밑바닥부터 인생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가족들도 지하 단칸방을 얻어서 같이 모여서 살았습니다.
그는 개척교회에 나가서 충성되이 섬겼습니다. 그때부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당시는 집집마다 백과사전이 별로 없었을 때인데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주셔서 6개월 만에 전 세계 54개국 중에서 판매실적 1위로 세계최고의 판매왕이 되었습니다.
그가 일을 잘하고 높은 실적을 낸 것이 소문이 나자 여러 회사에서 그를 CEO로 스카웃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쓰러져가는 회사의 임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가는 회사마다 잘되고 성공했습니다. 급기야 그는 다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고 사업가로 성공해서 큰 재물의 복을 받았습니다.
장로가 된 후에 자녀들도 다 유학을 보냈고 선교의 사명도 그 누구보다 잘 감당했습니다. 살면서 두 번이나 죽을병에 걸려서 사경을 헤맷는데 그때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함으로서 기사회생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서 “7전 8기의 은혜”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이 3주 만에 매진이 되어서 다섯 판을 찍었는데 지금까지 15판이나 인쇄하면서 큰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책으로만 10억을 벌었습니다.
신섭장로님은 지금도 새벽 세 시 반에 일어나서 기도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신섭장로님은 간증하기를 “제 인생의 황금기는 30개 회사를 거느리던 총수 시절이 아니라, 광야와 같았던 3년 반의 기도원 생활입니다. 기도원에서 밑바닥생활을 하면서 병든사람을 돕고 낮아져서 섬길 때 비로소 저는 참된 크리스챤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인생에서 넘어짐과 일어섬은 모두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실패하고 쓰러지더라도 다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죽을병에 걸렸더라도 믿음으로 기도하면 치료해 주십니다! 안 된다, 못 한다, 죽겠다, 힘들다! 라고 고백하면 안됩니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사랑받는 존귀한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역경과 환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성령 충만한 열정으로 끝까지 기도하면, 하나님은 복을 주셔서 누구나 오뚝이처럼 7전8기 할 수 있습니다!”라고 신섭장로님은 간증을 하셨습니다. 개인의 신앙개혁도 하나님을 만날 때 이루어 집니다.
다시 종교개혁으로 돌아갑니다. 1592년도에 독일의 카를 황제는 종교개혁운동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슈파이어 제국회의를 소집했습니다. 그런데 그 회의에 14개 도시를 이끌던 6명의 제후들이 당당히 자신의 신앙을 표명하고 그 제국회의에 항거했습니다.
여기에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즉 “항거하는 자”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개신교인들은 “프로테스탄트”입니다. 불의에 항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잘못된 일들에 대해서는 권력과 폭압에도 당당하게 항거했습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킬 당시에 천주교의 교황과 그 교권에 맞서는 일은 마치 바위에 계란던지기처럼 어리석고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습니다. 무소불위의 권세로 세계를 통치하던 교황청에 맞서서 싸우던 마르틴 루터는 종종 절망감에 괴로워 했습니다.
그때마다 절친한 친구였던 멜랑히톤(P. Melanchthon)이 루터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우리가 발견한 복음은 분명한 하나님의 진리요, 우리가 믿는 진리가 확실한 진리라면 진리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할 것이요” 그리고 멜랑히톤은 편지의 마지막에 항상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1)라고 썼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힘을 얻었습니다.
마르틴 루터에게는 중요한 두 도시가 있습니다. 하나는 비텐베르그(Wittenberg)입니다. 비텐베르그는 루터가 평생 살았던 곳입니다. 거기서 종교개혁 95개 조항을 내 걸었습니다.
또 한 곳은 보름스(Worms)입니다. 보름스는 루터가 평생에 10일 정도 머물렀던 곳입니다. 그런데 보름스에서 벌어진 재판 사건 때문에 루터가 온 세상에 종교개혁자로 알려지게 됩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기치를 들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당연히 면죄부사건 때문입니다. 면죄부 사건을 다시 설명하면 카톨릭교회의 교황 레오10세가 자기 당대에 역점사업으로 베드로 대성당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엄청난 공사비가 들어가면서 공사비가 부족하자 공사비를 충당하기 위한 방법으로 고안해 낸 것이 바로 면죄부입니다. 면죄부를 사면 죽은사람도 천국에 들어간다고 사기를 친 사건이 면죄부사건 입니다.
교황 레오10세는 알베르트(Albert of Brandenburg.1490-1545) 주교 신부에게 그 일을 맡겼습니다. 교황은 알베르트주교에게 면죄부판매를 강행할 것을 지시했고 일부의 이익을 알베르트주교에게 주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알베르트 주교는 당대 최고의 웅변가인 테첼(Tetzel, Johann.1450-1519)을 고용하여 그에게 신학박사의 학위를 주고 유럽의 성당을 돌면서 면죄부에 대해서 설교 아닌 웅변을 하게 했습니다. 그의 유창한 웅변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그 웅변에 속아서 너도나도 면죄부를 샀습니다.
알베르트와 테첼 일행이 전 유럽을 순회하면서 면죄부를 판매하다가 독일의 비텐베르크(Wittenberg)에 와서 웅변을 할 때 루터가 이 기막힌 사기꾼들의 엉터리쇼를 목격하게 됩니다.
루터는 그 광경을 보면서 견딜 수 없는 분노를 느꼈습니다. 교황이 발행한 면죄부를 사기만 하면 지옥에 간 사람도 천국으로 옮겨진다는 거짓말 설교를 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면죄부를 사는 모습을 목격한 루터는 당시 천주교의 잘못된 관행 95가지를 적어서 비텐베르크성당 전면의 벽에 붙인후에 부패하고 타락한 카톨릭교회의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이와 같은 루터의 모습은 마치 요단강가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외치는 세례요한과 같았습니다.
마태복음3장 7절로 10절에 보면 세례요한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라고 외쳤습니다.
루터는 마치 세례요한과 같이 외로운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루터는 “인간의 의지나 행위로는 구원받지 못하고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라고 외쳤습니다.
루터는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오직 믿음으로,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자” 라고 외쳤습니다.
루터가 외친 말씀 중에 유명한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곳이라면 천국이라도 살수가 없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이라면 비록 그곳이 지옥이라도 살아갈 수 있다”
둘째, “매일 아침 새벽기도를 하지 못한 날은 마귀에게 패한다. 나는 평소에 매일 새벽마다 기도한다” 셋째, “찬양과 음악을 모르는 사람은 목회자가 될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루터는 삶 속에서 찬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 했습니다.
찬송가 585장 “내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라는 찬송은 1529년에 루터가 직접 작사 작곡을 한 찬송입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로마서 8장 35절을 붙잡고 목숨을 건 종교개혁에 착수 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루터는 순교당할 것을 각오하고 1517년 10월 31일날 자기가 일하던 비텐베르그 교회의 청동 문에 천주교를 반박하는 95개 조항을 써붙여 놓고 종교 개혁을 시작했습니다.
그 일로 인해서 루터는 보름스 국회에 출석하라는 통보를 받게 됩니다.
루터는 1521년 4월 2일 비텐베르그 시청이 제공한 말 세 필이 끄는 이륜마차를 타고 보름스로 출발했습니다. 그곳까지 가는데 두 주가 걸렸습니다. 그는 4월 16일 화요일날 보름스국회에 도착합니다. 루터는 수도사였지만 이미 교황청에서 파면당했기에 수도원에도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하니터호프(Johanniterhof) 여관에 머물렀습니다. 그것도 3 인실에 머물렀습니다.
교황청의 명령에 의해서 독일의 국회가 루터를 심문한다는 소문이 온 유럽을 뒤덮자 칠천명의 인구가 살고있는 보름스에 14,000명이 몰려왔습니다. 그래서 로마 교황청의 특사로 루터의 심문을 맡은 알레안더(Aleander) 추기경도 보름스에 와서 방을 구하지 못하고 쩔쩔 매야만 했습니다. 놀라운 일은 보름스로 몰려 온 사람들의 90%가 루터의 지지자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4월 17일 오후 4시에 수도복을 입은 루터가 국회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독일황제인 칼(Karl) 5세의 명령을 받들어 요한네스가 루터의 심문을 맡았습니다. 제일 먼저 심문한 것은 그동안 루터가 쓴 20권의 종교개혁에 관한 책들에 관해서 심문을 했습니다. 요한네스는 루터에게 “이 책들의 저자가 루터 당신이 맞는가?” 라고 물었습니다. 루터는 “그렇습니다 내가 저자입니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요한네스는 “이 책의 전부 혹은 일부를 폐기할 수 있는 가?”라고 물었습니다. 루터는 “생각할 여유를 주십시오”라고 대답했고 요한네스는 “하루 여유를 준다 만일 거절하면 너는 댓가를 치를 것이다”라고 경고한 후에 일차 심문을 마쳤습니다. 다음 날 4월18일 오후 4시에 다시 심문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날 똑같은 질문이 주어졌습니다. 루터는 원고없이 처음에는 독일어로, 나중에는 요청에 따라 라틴어로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본인은 성경의 증언이나 분명한 근거에 어긋나지 않는 한 성경에 따라 증언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동안 교황이나 공의회의 판정은 너무나 많은 오류를 범했습니다. 그래서 교황청의 판정과 지시는 신뢰할 수 없음을 밝힙니다. 제 양심이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는 한 저는 그 어느 것 하나도 취소할 수 없고 또 취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과 양심에 반하여 행동하면 그것은 옳지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여! 도와 주옵소서! 아멘” 이렇게 말한 루터는 빠진 말이 한가지가 있다고 하면서 추가로 이렇게 고백 했습니다. 이 고백이 역사에 남는 유명한 고백입니다. “하나님! 제가 여기 있나이다! 저는 달리 어찌할수 없습니다! 하나님! 도와 주세요 아멘!” 그 말을 들은 독일 황제는 즉각 심문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놀라서 대응책을 논의 했습니다. 루터는 심문 장소를 빠져 나오면서 구름떼같이 모여 있는 군중들에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제가 해냈습니다!” 한달후에 황제와 캐터릭은 보름스 칙령을 발표했습니다. 황제는 5월 21일날 서명했고 공포는 5월 26일에 했습니다. “루터의 모든 서적은 불태울 것이며 독일에서 출판되는 루터의 서적은 모두 사전 검렬을 받아야 한다” 루터를 심문하던 그때에 이런 발표를 하지 못 하고 한 달이나 지연한 것은 군중들이 루터를 지지하고 있었기에 폭동이 일어날 것을 염려해서 뒤늦게 발표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보름스국회에서 심문을 마친 루터는 귀가하는 길에 알렌슈타인에게 납치가 됩니다. 그러나 사실은 프리드리히 3세가 루터를 보호하려고 그를 납치해 오라고 지시를 한 것입니다. 프리드리히 3세는 루터를 데려다가 “전커 조그”(Junker Joerg)라는 가명을 주고 “바르트부르크” 성으로 데려다가 그곳에서 10개월 동안 루터를 보호해 주었습니다. 루터는 그 성안에서 헬라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면서 종교 개혁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사실 프리드리히 3세의 도움이 없었다면 종교 개혁은 불가능했습니다. 그의 도움이 종교개혁에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루터가 카톨릭의 오류 95개 조항을 발표한 후에 유럽 곳곳에서 종교 개혁의 불길이 엄청난 속도로 번져나갔습니다. 스위스에서는 츠빙글리를 중심으로 일어났고, 요한 웨슬레는 영국을 중심으로 일어났고, 네델란드에서는 칼빈을 중심으로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독일에서는 루터가 종교개혁을 주도했고, 체코에서는 후스가 종교개혁을 주도 했습니다. 종교개혁에 불일 듯 일어나자 로마 교황청은 루터의 종교 개혁을 막으려고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종교개혁의 지도자들을 모조리 잡아다가 처형했고 각 나라에서 수 만명의 개신교 신자들도 목숨을 잃었습니다. 루터는 종교개혁의 취지가 담긴 내용의 글을 독일 전역의 귀족들에게 보냈습니다. 루터는 그 호소문에 로마 카톨릭교회의 오류 세가지를 지적했습니다. 로마 교황청은 주장하기를 1.종교가 세상을 지배해야 한다. 2.교황만이 성경을 정확무오하게 해석할 권한이 있다. 3. 교황만이 공의회 소집 권한을 독점한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루터는 이 세 가지 주장이 완전 잘못된 것임을 강하게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루터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1.교황권은 그리스도의 가난을 본받아야 합니다. 2.나라마다 왕권을 중심으로 분리시키고 종교가 나라를 지배해서는 안됩니다. 3. 교회는 교황청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합니다. 4.성직자 독신의무 조항은 철폐되어야 합니다. 5.로마교황청이 시행하고있는 성직매매, 빈농을 착취하는 고리대금업, 면죄부 판매, 부패한 교육은 즉시 중단되어야 합니다. 이와같은 루터의 주장은 독일뿐 아니라 유럽 전체 모든나라에서 크게 환영했고 모든 국민들도 대대적으로 지지했습니다. 루터는 1520년 10월달에 “교회의 바벨론 현상에 대하여”라는 글을 발표했습니다. 루터는 그 글에서 카톨릭의 형식화된 성례전을 폐기할 것을 공포했습니다. 그리고 1520년11월달에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관하여”라는 글을 전국으로 보냈습니다. 그는 고린도 전서 9장을 근거로 이런 논리를 펼쳤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에서 자유하는 주인이요,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는다” 당시에 로마 교황청의 노예로 전락한 모든 나라의 황제들은 루터의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루터의 종교 개혁은 유럽 전역에 불일 듯이 번져 나갔습니다. 체코에서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후스는 체코의 대주교의 지지를 받아서 총회에서 설교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는 당시의 카톨릭 성직자들에게 세속적인 부와 명예를 추구하는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살라고 설교를 했습니다. 후 스는 성직자들이 신앙적 도덕적으로 변화될 것을 강조하는 설교를 했습니다. 후스는 고백하기를 “나의 목적은 하나님이 내게 알려 주신 진리, 특별히 거룩한 성경의 진리를 죽기까지 지키는 것이라고 고백한다. 왜냐하면, 진리는 영원히 서 있으며 영원히 남아있기 때문이다”라고 증거 했습니다. 그 설교로 인해서 후스는 1411년에 로마 교황청에서 파면됩니다. 그리고 모든 교회에서 설교금지명령이 떨어집니다. 그때 후스는 동료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악당처럼 파문되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것처럼 나도 그분을 위하여 파문당한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데 죽는것도 두렵지 않다 형편없이 사는 것보다는 잘 죽는 것이 낫다” 후스는 루터처럼 당시에 유행했던 성직매매와 면죄부 판매를 신랄하게 공격했습니다. 1411년 요한 23세교황은 일찍이 십자군의 군비를 조달하기 위해서 면죄부를 판매 했습니다. 그때 후스는 교황의 면죄부판매를 맹렬하게 비판했습니다. “교황은 물리적 힘을 사용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으며, 돈을 지불해서 면죄부를 산다고 해서 진정한 용서를 받을수는 없다, 용서는 진정으로 회개하고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는 사람들에게는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이다” 후스는 교황이 주도하는 성직매매와 면죄부가 잘못된 것이라고 반발하면서 신부들이 대신해주는 “고해성사” 역시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신부가 성도들의 죄지은 이야기를 듣고 신부가 용서해 주는 제도는 전적으로 잘못된 것임을 지적한 것입니다. 고해성사 제도는 로마 교황청에서 교인들과 성직자들을 지배하기 위해서 만든 제도입니다. 자기의 모든죄를 신부에게 다 고백하면 신부가 그사람에 대한 모든 비리를 알게 됩니다. 그러니 비리를 알고있는 카톨릭교회가 지시하는대로 따르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용서하는 신부는 마치 자기가 하나님의 권한을 가진 사람처럼 됩니다. 그래서 자기죄를 신부에게 고백한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유함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성직자 앞에서 억압된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런 모든 비리 때문에 루터가 그리고 후스가 로마 카톨릭과 교황권에 대해서 강력하게 반기를 든 것입니다. 예수님은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권위를 이어받은 교황이, 그 사랑의 이름으로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팔아서 성당을 건축했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실종되고 회개도 없고 용서도 없는 면죄부신자만 배출했고 로마 교황청은 면죄부 신자 즉 엉터리 가짜 신앙인만 양산한 것입니다. 원수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사랑은 성지를 탈환한다는 명목으로 십자군 전쟁을 일으켜서 사람들을 무차별하게 학살했습니다. 이 모든일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저지른 일이 아니라 자신들의 권위와 자신들의 욕심 때문에 저지른 일들입니다. 교회는 어디서나 화평을 회복하기 위해서 존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9절에서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종교개혁자들의 신앙과 개혁정신을 되새겨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아시아와 유럽 그리고 로마로 퍼져 들어갔습니다 로마는 처음에는 기독교를 심히 핍박했지만 결국 A.D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칙령에 의해서 기독교가 공인되고 후에는 로마의 국교가 되었습니다. 그후 로마교회는 점점 성장해서 세상의 정치와 결탁하면서 귀족화 되었고 나중에 로마 교황청은 세상의 모든 왕들을 임명하고 파면하는 권력까지 갖게 되면서 타락하게 됩니다. 로마 교황청은 성경에도 없는 연옥설을 주장하고 마리아를 예수님과 동등한 자리에 높이고 신부와 수녀들의 독신생활을 교회법으로 정해서 결혼을 금지시키고 죄를 지은 자들에게 면죄부를 판매해서 천국에 들어가는 말도 안되는 제도를 만들고 성직을 매매하고 교황은 죄가 없는 절대 무오한 사람이라는 “교황 무오설”을 주장하고 인간의 구원은 믿음뿐 아니라 인간의 고행이나 선행이나 구제로 구원을 받을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완전 성경에서 벗어난 이단종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마르틴루터는 종교개혁을 일으켰고 급기야 우리가 믿는 개신교가 탄생한 것입니다. 당시에 로마 카톨릭 교회의 신부였던 루터는 카톨릭 교회의 95가지 비성서적인 교리들을 하나하나 반박하면서 종교개혁의 횃불을 높이 들고 “오직 은총으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성경으로” 구호를 외침으로서 오늘날의 개신교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종교개혁 기간 동안에 로마 교황청은 대대적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박해를 했기에 결국 이 사건은 신구교간의 전쟁으로 발전했고 수십만명의 개신교 신자들이 순교했습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개신교는 종교개혁과 더불어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위에 세워진 종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따라간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축복된 신앙의 삶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도 순교자들의 피가 헛되지 않도록 끝없이 내 자신을 개혁하고 또 교회를 개혁하면서 주님만 따라가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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