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지난주에 이어서 간증설교를 하겠습니다.
어제 미국으로 귀국하는 윤영애집사님을 서울까지 모셔다 드리고 왔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한미 연합해상훈련이 진행중에 있습니다. 그래서 부산항에 미국의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과 더불어 한 대에 4000명의 해군이 승선한 핵 잠수함 두 대가 금번 전술훈련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윤영애집사님의 아들 즉 양유진집사님의 아들 앤드류가 핵잠수함의 핵 기술자로 근무하고 있는데 마침 부산항에 정박해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서울로 가는길에 부산을 경유해서 아들을 만나고 갔습니다.
우리가 오전 8시30분에 출발해서 윤영애집사님을 데리고 김막순권사님댁을 경유해서 부산으로 갔습니다. 가는 도중에 처제가 제 손녀딸의 옷을 사가지고 간다고 해서 진주에 들러서 부산에 갔더니 정확하게 한시가 되었습니다.
해운대의 파라다이스호텔로 가서 숙소에 갔더니 아들은 외출을 하고 없었습니다. 와이파이가 없는 곳에서는 서로 통화가 안돼서 하루전에 간다고 연락을 했지만 막상 부산에 가서는 서로 교통이 되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고민을 하다가 호텔 밖으로 나가서 앉아서 쉬는 미군 군인들에게 체제가 아들 사진을 보여 주면서 이 병사를 아냐고 물어보았더니 다들 모른다고 합니다. 그렇게 물어 보다가 결국 만나기가 어렵겠구나 하고 다시 호텔안의 주차장으로 가려고 호텔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마침 밖에서 아들 앤드루가 호텔 로비로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처제가 기쁨으로 아들을 만나서 상봉하고 대화를 나눈후에 서울로 출발 했습니다.
우리가 호텔에서 처제의 아들 앤드류군을 찾다가 아무래도 찾기가 어렵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포기할 무렵에 제 집사람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하나님 부산까지 와서 제 동생이 아들을 못만나고 가면 얼마나 섭섭하겠습니까? 꼭 만나고 가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를 했는데 기적적으로 아들을 만난 것입니다.
우리가 일분만 먼저 호텔을 빠져 나갔거나 아들이 일분만 늦게 들어왔어도 서로 못 만났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차장으로 가려고 하고 아들은 들어오려고 하는 절묘한 타임에 하나님께서 만나게 해 주셨습니다.
서울로 가는 차 안에서 우리 세사람은 그동안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신 놀라운 일들에 대해서 간증을 하면서 갔습니다. 그동안 매사에 개입하셔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관한 일들을 서로 간증을 하면서 은혜와 성령이 충만한 대화를 나누면서 서울로 갔습니다.
인생길에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놀라운 기적들은 끝이 없었습니다. 자식들에게, 부부에게, 이웃에게, 그리고 우리가 만난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한 기도들이 이루어진 것 까지 많은 기적들을 서로 나누면서 성령충만한 가운데 갔습니다.
처제의 친구인 천현주교수님을 만나서 처제와 처제의 가방을 인계해 주고 다시 돌아오는 차안에서 우리는 그동안 나누지 못한 비밀한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속풀이를 하면서 왔습니다. 그러면서 귀한 은혜도 발견 했습니다.
지난주에 예배가 끝난후에 김명심권사님께서 놉을 얻어서 마늘을 심느라 식사도 못하고 가셨습니다. 그날 정봉선권사님과 김예슬집사님부부도 광주에서 살고있는 정봉선권사님의 아들의 혼수 문제로 가족들이 다 광주에 가셨습니다. 그래서 남해읍에서 오신 새신자 성도님들을 제가 모셔다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영복성도님을 먼저 모셔다 드리고 새신자 최정희성도님과 안명순성도님을 모셔다 드리면서 두분에게 쌀을 사드리고 싶은 성령의 감동이 있어서 두분에게 10키로의 쌀을 사 드렸습니다.
그런데 쌀을 사 드렸더니 안명순할머니가 울면서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 사실은 어제 쌀이 없어서 밥도 못해먹을 지경이 되었는데 김예슬집사님이 쌀을 한됫박을 갔다 주어서 밥을 해먹고 교회에 왔습니다. 하면서 우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쌀을 사 드리고 싶은 것은 내 뜻이 아니라 성령님의 감동이었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트에서 쌀을 싸면서 할머니들이 혼자 사시면서 식사도 제대로 못하실텐데 돼지고기 양념한 것을 좀 사드리면 좋겠다 싶어서 쌀을 사면서 돼지고기 양념한 것을 두 봉지를 사서 두 할머니에게 드렸습니다.
쌀과 돼지고기를 사서 차에 싣고서 두분에게 쌀과 돼지고기를 샀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이번에는 최정희할머니께서 “목사님! 사실은 지지난주에 아침에 일어났는데 어지럽고 힘이 없어서 일어날수가 없어서 교회에 못왔습니다. 목사님께서 고기를 사 주시니 이걸 먹고 힘을내서 교회에 와야 겠네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신세를 져서 어떻게 합니까?” 하면서 미안해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 할머니에게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것은 힘들고 어렵게 사시는 분들을 도우라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겁니다. 그러니 아무 걱정말고 교회에 나오세요 그리고 우리교회에 처음 나오신 분은 3년동안 헌금을 받지 않습니다. 주정헌금도 안해도 됩니다. 헌금 때문에 부담갖지 마시고 그저 열심히 예배 참석 하시고 식사를 하고 가세요 헌금 안해도 되니까 절대로 헌금 때문에 부담갖지 마세요!” 했더니 두 할머니가 고맙다는 말을 수십번도 더 하셨습니다.
제가 두 할머니댁에 쌀을 어깨에 짊어지고 한집씩 방문을 해서 갖다 드렸는데 남해읍에 그렇게 가난한 할머니들이 사시는 줄은 저도 미처 몰랐습니다. 김예슬집사님이 저에게 “목사님! 할머니들이 너무나 가난하고 사시는게 열악해서 절대로 목사님을 자기들집에 데리고 오지 말라고 신신 당부를 하셨어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심방을 하기는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나 하고 고민을 했는데 쌀을 배달해 드리느라 집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 할머니집을 방문해 보니까 정말 남해에서 가장 가난하게 살고 계셨습니다. 저는 두 할머니집을 방문 하면서 “김예슬집사님이 주님의 마음으로 가난한 할머니들을 섬겨서 그분들을 전도했으니 하늘나라에 상급이 크겠구나!” 라고 생각을 하면서 돌아 왔습니다.
돌아와서 양념통닭 4마리를 주문해서 김명심권사님이 놉을 얻어서 일하는 마늘밭으로 갔습니다. 가기전에 김명심권사님에게 전화를 해서 일하는 일군이 몇사람이냐고 물었더니 일군이 열 여섯분이 일을 한다고 해서 통닭 네 마리를 준비해서 가져갔습니다.
김명심권사님은 참 대단한 분입니다. 보건소에서 일을 하고 그 엄청난 농사일을 하는 남편을 도와서 일을 하고 동창회 총무도 맡아서 일을 하고 교회일에도 충성을 다하는 귀한 권사님입니다. 하나님께서 권사님에게 큰 복을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김명심권사님을 만나고 돌아오는길에 김춘자집사님댁을 들러서 박한선성도님 생신을 축하해 드리고 돌아왔습니다.
금번에 타이완에 여행을 갈 때 수중에 돈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외국 여행을 가는데 수중에 땡전 한푼 없이 타국에 여행을 가려니까 왠지 허전하고 처량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처제가 초대하는 거니까 처제가 다 알아서 돈을 쓰겠지 하고 생각은 했지만 그러나 사람이 주머니에 돈이 좀 있어야 어디를 가든지 마음이 든든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하나님을 의지 한다고 해도 주머니에 돈이 없으면 불안한게 사람의 인지상정입니다.
물론 정 쓸 돈이 없으면 크레딧카드를 쓰고 갚으면 됩니다. 최후의 보루인 크레딧카드가 있기에 저는 안심하고 타이완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여행을 떠나기 한 주 전에 김인보장로님께서 저희를 초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 집사람과 함께 대구를 방문을 했는데 김인보장로님께서 금일봉을 주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과 배려하심에 감사하면서 김인보장로님 내외분을 축복하면서 돌아 왔습니다.
차량헌금도 해야하고 여행경비도 필요하고 빨간불이 들어온 정수기도 필터값이 20만원인데 그값도 지불해야 하고 복사기도 수리하고 토너도 사야하는데 마침 김인보장로님께서 그 모든 필요에 합당한 도움을 주셔서 다 감당할 수가 있었습니다.
떠나기 전날 문자가 들어와서 보니까 박에스더집사님이 20만원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의 회비 20만원을 그 돈으로 내서 환전을 했습니다.
그런데 타이완에가서 패가망신을 당했습니다. 처제가 미국에서 도착할 시간에 인천공항으로 마중을 나간 저와 사모의 세 형제들이 윤영애집사님을 기다리는 동안에 한사람당 10만원씩 걷어서 타이완돈으로 바꾸어서 타이완에 가면 그 돈으로 주전부리라도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네 사람이 10만원씩 모아서 타이완 돈으로 환전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돈을 양복주머니에 넣고 있다가 다음날 타이완으로 떠나는날 공항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후에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데 환전한 그 돈을 양복주머니에 넣어놓고 가져오질 않았습니다.
저는 타이완에 도착해서 그 사실을 사모의 형제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리고 환전한 돈 만큼을 제 크레딧카드로 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타이완은 생각보다 수준이 낮은 나라였습니다. 둘쨋날 브랜던군과 며느리 패리스양이 처제와 함께 일이 있어서 출타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끼리 저녁식사를 하기로 하고 호텔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스시집에 들어가서 음식을 시키려고 하는데 그 음식점은 선불제 음식점 이었습니다. 우리가 음식을 다 고른후에 제가 음식값을 내러 가서 크레딧카드를 냈더니 주인이 자기네 음식점은 크레딧카드를 안받는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도 괜찮은 음식점에 들어 갔는데 크레딧카드를 안받는다는 바람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 일행은 할 수 없이 나와서 큰 중국집으로 들어 갔습니다. 거기서 제가 크레딧카드를 받냐고 물었더니 안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나와서 가다보니까 뷔페식당이 있기에 거기에 들어가서 크레딧카드를 받냐고 물었더니 안받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200미터를 왕복하면서 괜찮은 식당을 다 방문하면서 물어보았는데 한군데도 크레딧카드를 받는 식당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녁식사도 못하고 쫄쫄 굶고 다시 호텔로 돌아 왔습니다.
호텔에 돌아와서 처제에게 “크레딧카드를 안받아서 저녁식사도 못하고 돌아왔어요”하고 카톡을 보냈더니 처제가 음식을 잔뜩 사가지고 돌아 왔습니다.
저는 그 사건을 통해서 우리 대한민국이 얼마나 좋은 나라인지를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아무리 작은 가게도 카드를 받고 거리도 깨끗하고 공해와 매연도 타이완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가면 오래된 오토바이에서 나는 매연은 자동차에서 나오는 매연의 수십배나 됩니다. 타이완은 오토바이가 중요한 대중교통수단 입니다. 그래서 호텔 밖에만 나가면 수천 수백대의 오토바이가 거리를 누빕니다. 시내는 오토바이 매연 때문에 눈이 따갑습니다.
그래서 금번 여행은 우리가 얼마나 좋은 나라에서 살고 있는지를 다시한번 깨닫고 감사하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어제는 처제가 미국으로 돌아가는데 그래도 우리를 위해서 애쓰고 수고한 처제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사 주려고 노량에 있는 고봉례집사님의 딸 집에 가서 건어물을 샀습니다. 제일 좋은 멸치 한상자와 좋은 오징어 한축을 샀습니다.
그런데 박분심성도님이 멸치값만 받고 5만원이나 하는 오징어값을 안받았습니다. 박분심성도님은 저에게 “목사님! 우리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섬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제가 교회에 한번 찾아가려고 했습니다” 하면서 비싼 오징어를 그냥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제 집사람이 처제가 선물해 준 영양제와 쵸콜렛을 가져다 드리면서 감사 사례를 했습니다.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믿음을 보시고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뿌린대로 거두게 해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제가 지난주에 간증한 것처럼 처제 윤영애집사님은 미용실을 경영하면서 돈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으로 미용실을 경영 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도 일등이요 이웃을 섬기는 일에도 일등입니다. 그런데 풍기에 가서 깜짝 놀랄만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설악산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김막순권사님의 딸 윤영희성도님과 류동현성도님을 만나 뵙고 왔습니다.
윤영희성도님은 제 집사람의 초등학교 동창입니다. 우리가 저녁 8시 반에 도착해서 윤영희성도님과 남편 류동연성도님이 베풀어 주시는 만찬으로 극진한 대접을 받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10시가 넘었습니다.
그런데 사모의 오빠 윤희승성도님이 급히 오느라 선물도 하나 못사왔으니 수퍼마켓에 가서 선물을 하나 사와야겠다고 해서 저도 같이 나갔습니다. 큰길로 나가서 보니까 훼미리 마트가 있었습니다. 마트에 갔더니 동네 여자분들이 너댓분이 마트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사모의 오빠는 큰 두루마리 휴지를 한봉지 샀고 저는 커피를 한통 샀습니다. 그런데 가게 안에 계셨던 한분이 저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남해에서 왔습니다! 이화식당에 볼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했더니 70세쯤 되신 네 분의 아주머니들이 김막순권사님딸 이화식당 사장님을 칭찬하는데 “이화식당 사장님은 참 훌륭한 분입니다. 이 동네에서 모든사람들이 다 좋아합니다. 그 사장님은 베풀기를 좋아하고 동네사람들 섬기는데는 일등입니다!” 하면서 칭찬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남해사람이 타향에 와서 살면서 동네분들에게 칭찬을 받으니 참 기쁩니다! 사장님이 이 동네에서 인심을 잃지는 않았나 봅니다!”했더니 네분이 입에 게거품을 품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들에게 “저는 남해세광교회의 목사입니다 이화식당의 여사장님은 제가 목회하는 교회의 김막순권사님 딸입니다”했더니 그중에 한분이 저에게 “저는 목사님을 뵈었습니다!”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제가 깜짝 놀라서 “아니 언제 저를 보셨습니까?”했더니 “목사님이 2년전에 어떤 할머니들을 모시고 이화식당에 오셔서 식사하러 들어가는 것을 제가 보았습니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성전건축을 마치고 수고하신 권사님들과 집사님들 열 다섯분을 모시고 소백산 온천에서 온천을 하고 이화식당에 가서 식사를 했는데 그때 제가 권사님들을 모시고 이화식당으로 들어가는 것을 그분이 보고 그때 만난 이야기를 하신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분의 고백에 또 한번 깜짝 놀랐습니다. 2년전에 자기앞을 스쳐 지나가는 한 무리의 일행들을 지켜 보았는데 그걸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했다가 밤에 물건사러 간 마트에서 그때 저를 보았다는 말을 했으니 제가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지켜보고 있구나!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를 사람들이 다 보고있고 또 하나님도 다 보고 계시겠구나!”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어제는 처제를 데리고 가면서 잠간 진주 휴게소에 들렀습니다. 제 집사람과 처제가 어디로 갔는지 없어서 저는 휴게소의 부트에서 일하는 한 여자분에게 혹시 방금 나와서 방황하는 두 여인을 보셨습니까? 하고 이야기를 했더니 아무도 못봤는데요 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저는 두리번 거리다가 그녀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그분에게 “예수님을 믿으시죠?” 하고 이야기를 했더니 “어머니는 교회에 나가시는데 저는 안나가요!” 합니다. 그래서 “제가 보니까 얼굴에 은혜가 있는데 왜 교회를 안나가세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분이라고 얼굴에 쓰여 있는데요? 어머니가 기도를 많이 하시는 분이시죠?” 했더니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래서 그분에게 명함을 한 장 드리면서 “꼭 예수 믿으시고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세요!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을 꼭 누리면서 사셔야 해요! 우리 남해세광교회 카페에 들어오시면 행복을 찾으실 겁니다”하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분에게 전도를 마치고 나니까 처제와 제 집사람이 건너편의 호빵집에 서 있었습니다. 편의점에서 나오자마자 두사람을 보았으면 그분에게 전도를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와서 아무리 둘러봐도 두사람이 없어서 그분에게 전도를 했는데 전도를 마치고 나니까 건너편에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니 어디를 갔다가 왔냐고 했더니 계속 그자리에 서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참 신기한일도 다있다 하고는 아마도 그분에게 전도를 하라고 하나님께서 내 눈을 가려 주셨구나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어머니께서 하도 열심히 기도를 하니까 복음을 전할 기회를 주셨구나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분은 얼굴에 은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딸 임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은혜가 있는 분은 얼굴이 틀립니다.
그러나 사탄마귀에게 사로잡혀서 사는 사람들은 얼굴에 평화가 없습니다. 마귀에게 사로잡혀서 살기에 얼굴에 어둠의 그림자와 사탄마귀의 그림자가 씌여 있습니다.
어젯밤에 밤9시가 넘에서 서울에 도착해서 처제의 친구인 천현주교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처음보는 또 한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자기가 천주교 신자 라고 하면서 만나자 마자 어떤 분을 욕을 하는데 인정사정없이 그사람 참 못된 사람이라고, 내가 그사람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그분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분은 악한영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악한영에 사로잡힌 사람은 말이 다릅니다. 말은 생각에서 나옵니다. 생각이 악한영에 사로잡힌 사람의 특징은 상대방을 의식하지 아니하고 시종일관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서 정죄와 비판과 원망과 불평을 쏟아 낸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때때로 신세 한탄도 할 수 있고 슬픔을 표현할수도 있고 상한 감정을 토로할수도 있습니다. 답답할때는 엄마나 친구에게 또는 아내나 남편에게 답답함을 고백 함으로서 치유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픔의 고백과 비판과 정죄는 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악한 영에 사로잡혀서 뿜어져 나오는 말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고통을 줍니다.
그런데 평생에 처음 만난 그분이 우리 일행 세사람에게 시종일관 자기 감정에 사로잡혀서 오래된 이야기들을 끄집어내면서 정죄와 비판과 악담을 쏟아 냈습니다.
우리 부부는 돌아오는 차안에서 그분이 쏟아낸 이야기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이 성령에 사로잡히지 못하면 저렇게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악한말만 쏟아낼수가 있구나!” 라는 생각에 “우리가 성령에 사로잡혀서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를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종종 설교할 때마다 “사람은 자기가 뿌린대로 거두는 인생을 산다”라고 설교를 하곤 합니다.
성경 시편에도 보면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5-6)라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제가 지난주에 윤영애집사님의 간증을 했습니다. 그런데 금번에 정말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윤영애집사님이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지금까지 자기 주변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면서 사랑하면서 살아왔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금번에 윤영애집사님이 한국에 와서 뜻하지 않은 엄청난 축복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 선물을 제공한 사람은 김막순권사님의 딸 윤영희성도님과, 풍기에 사시는 김대종성도님 입니다.
본래 윤영희성도님과 처제 윤영애집사님은 어렸을때 자라나면서부터 특별한 사이 였습니다. 친언니와 친동생처럼 사랑하는 관계로 자랐습니다.
그런데 금번에 윤영애집사님이 암에 걸린 남편을 수발하면서 많은 시간을 힘들게 보냈습니다. 시어머니까지 수발하느라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그래서 몸도 마음도 지쳐서 건강이 많이 나빠 졌습니다. 그런 광경을 지켜보면서 안타깝게 여긴 윤영희성도님이, 산에 산삼을 캐러 다니는 친구에게 윤영애집사님의 이야기를 하면서 “혹시 산에서 산삼을 캐면 나에게 이야기를 좀 해주라 내 동생에게 좀 주고싶다!”라고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산에서 산삼을 캤습니다. 금번에 처제와 함께 풍기를 방문 했더니 윤영희성도님이 산삼을 캔 그 친구를 데려와서 우리에게 소개를 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월요일에는 윤영희성도님이 남편과 함께 산삼을 캔 김대종성도님을 모시고 남해를 방문했습니다.
김대종씨가 캔 산삼은 윤영희성도님의 제안으로 윤영애집사님에게 전달이 되었습니다. 김대종씨가 윤영애집사님에게 선물한 산삼은 3천만원 상당의 산삼이라고 합니다.
산삼을 캐신 김대종씨는 풍기에서 태어나서 거기서 사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풍기에 이사와서 사는 윤영희성도님부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윤영희성도님이 베풀기를 좋아하고 선하게 사는 모습에 감동을 받은 김대종씨는 윤영희성도님과 친구가 되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두분은 동갑내기여서 마치 죽마지우 친구처럼 가깝게 지내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제가 지난 금요일저녁에 풍기에서 윤영희성도님의 소개로 김대종성도님을 처음 만나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윤영희성도님이 김대종씨를 저에게 소개 하면서 “목사님 이 친구는 풍기에서 사귄 제 친구인데 쥐새낍니다” 하고 소개를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을 저에게 소개하면서 “쥐새낍니다” 하고 소개를 했으니 제가 그말을 듣고 웃을수도 없고 내색을 할 수도 없어서 무안해 했습니다.
그래서 이틀전에 남해에서 김대종씨와 윤영희성도님을 다시 만나서 식사를 할 때 제가 윤영희성도님에게 “그래도 처음 만나는 분에게 친구를 소개 하면서 쥐새끼라고 소개를 하는 것은 좀 무안하니까 다음부터는 그렇게 소개하지 않는게 좋겠습니다”라는 말을 하려고 쥐새끼 이야기를 꺼냈더니
김대종씨가 듣고 있다가 저에게 “목사님 괜찮습니다! 얼마나 좋습니다! 허물없이 서로 친하게 지내고 위선떨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는게 좋지 않습니까?” 하면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이야기를 하셔서 제가 또 놀랐습니다.
살다보면 별것 아닌 일에도 자존심이 상해서 뒤짐을 파거나, 또는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도 남들 앞에서 눈에 불을켜고 혈기를 부리면서 “뭐이라!”하고 안하무인처럼 격이 떨어지는 행동으로 분위기를 깨는 사람에 비하면, 김대종씨는 정말 훌륭한 인격을 가졌다는 생각에 존경하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친구의 우정과 사랑으로, 산에서 힘들게 캔 엄청난 값이 나가는 산삼을 윤영애집사님에게 무료로 선물을 해 주신 김대종씨를 지켜 보면서 “저분이야말로 예수를 믿어서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을 누리고 하나님으로부터 큰 상을 받아야 할 분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이와같이 우리를 놀라게 하는 선한 분들이 계십니다. 김대종씨나 윤영희성도님은 교회를 다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분들은 참으로 훌륭한 분들입니다. 세상을 밝히고 이웃에게 선을 행하는 선한 사마리아사람같은 분들입니다.
저는 풍기의 수퍼마켙에서 동네 분들이 윤영희성도님과 류동연성도님을 칭찬하는 칭찬을 들으면서 정말 마음이 기뻤습니다. 그래서 “김막순권사님이 딸 하나는 잘 낳았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권사님에게 윤영희성도님이 김막순권사님에게 가장 큰 기도제목이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윤영희성도님이 어머니의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지어준 때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윤영희성도님이 그 누구보다도 선하게 살고있고 착하게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에게 효도도 잘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윤영희성도님은 예수를 믿겠다고 제 집사람과 분명히 약속을 했습니다. 이제 윤영희성도님이 예수만 믿으면 그 모든 영광을 하나님이 받으실줄 믿습니다.
저는 금번에 윤영희성도님의 이웃사랑과 더불어, 엄청난 값이 나가는 산삼을 거저 시사한 김대종씨를 만나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틀전에 저는 김대종씨와 같이 식사를 하면서 김대종씨로부터 뜻 밖의 충격적인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사슴처럼 빨리 달리면서 산을 잘 타는 건강한 김대종씨가 마흔 한 살에 중풍으로 쓰러져서 반신불수가 되어서 오랜 시간동안 병치레를 하면서 인생의 고난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김대종씨는 열심히 재활훈련을 했고 그리고 몸이 회복이 되자 열심히 산을 타면서 몸의 건강을 회복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그런 고난을 겪으면서 큰 아픔을 겪었기에 고난 당하는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또 고난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엄청난 값의 산삼도 기꺼이 선물하는 넓은 아량을 갖게 된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김대종씨는 김막순권사님과 저희 내외와 사모의 오빠까지 풍기로 놀러 오라고 초대를 했습니다. 자기집에 오면 드릴게 많다고 하면서 마치 주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처럼 그렇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김대종씨는 우리 크리스챤들이 본받고 배워야할 훌륭한 분입니다. 예수님은 주는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도 주고 베풀고 나누어 주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복을 내려 주십니다. 나밖에 모르는 사람에게는 복이 오질 않습니다.
이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됩니다. 예배에 참석해서 말씀을 듣는 중에 믿음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로마서에서도 하나님의 축복이 말씀을 듣는중에 온다고 증거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서는 절대로 하나님을 믿을수도 없고 복도 오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후13:5)
고린도교회의 신자들은 이미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믿음생활을 오랬동안 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사도바울은 그들에게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라고 명령 했습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라는 말은 “너희가 믿음으로 사는가?”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기본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어야만 예배를 드리는 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을 창조하신분도 하나님입니다.
생명체들은 진화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하나님이 종류별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기본은 하나님께서 인생들을 구원하시려고 독생자를 보내신 것을 아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서 지옥불에 들어갈 인생들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성경에서 한구절만 믿으면 천국에 들어갈수 있습니다. 그 구절이 바로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절에는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증거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들이 죄로 인해서 지옥에 가는 것을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은 내 죄를 대속하려고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내 대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아서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4:9-10)
믿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수학 공식을 외우듯이 기독교의 교리를 머리에 넣는 것이 아니라 독생자를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면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소개하시면서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라고 하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는 사랑으로 맺어진 인격적인 관계이듯이, 하나님과 성도들의 관계 역시 사랑의 관계요 인격적인 관계인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기본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위대한 성현 가운데 한 분이 아니라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려고 모든 사람의 죄 값을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 받아서 천국에 가게 된 것은 예수님이 내 대신 죄값을 치르시고 형벌을 대신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치러야 할 죄의 형벌을 예수님이 대신 치르셨습니다. 그래서 나를 위해서 희생하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큰 위기에 처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주장과 신학이 교회를 공격했고 그것을 수용한 자유주의 때문에 위기가 온 것입니다.
유럽 교회들이 힘을 잃고 무너진 것도 성경적인 신앙노선을 버리고 진화론을 비롯하여 인본주의 사상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성령의 능력을 부인하고 인간의 이성으로 성경을 풀려고 하다 보니까 하나님의 창조도 믿지 않고 성경에 기록된 모든 기적도 부인하고 예수님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신앙이 피폐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인간의 머리로 이해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만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못믿는 사람들과 안믿는 사람들은 악령에 사로잡혀 있기에 못믿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성령께서 복음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을 열어 주셔야 진리를 믿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서 박사가 되어도 성령의 은혜를 받지 못하면 하나님과 예수
리스도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은 성령과 상관없이 자기들의 머리로 기독교를 판단하고 이해하기 때문에 복음의 진리와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말을 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산헤드린 공회 의원이요 경건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압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고백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니고데모는 평생 성경을 연구한 성경박사요 국회의원이요 존경받는 스승이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에게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습니까 두 번 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단 말입니까?”라고 반문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에게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자 니고데모는 충격을 받고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요 랍비입니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경외하고 성경을 공부한 사람입니다. 모세의 율법을 지키느라 힘썼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가는 것은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영의 세계를 알지 못합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 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도무지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육체가 전부요 세상에 전부요 땅이 전부요 보이는 것이 전부 이기에 영적인 일에는 지혜가 없습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도 알지 못합니다. 영적인 일에는 무지한 노새와 같습니다.
육에 속한 자가 영에 속하려면 성령의 은혜로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나려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때 성령이 들어와서 영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 1장 12절로 3절에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후서 13장5절에 보면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라고 증거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 자신이 거듭난 사람인지 아닌지를 생각해 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내가 거듭났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주이신 것을 믿는지 안믿는지로 판가름이 납니다.
로마서 10장 9절 이하에 보면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도들이 전한 말씀은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4:12) 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내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가 되었는지를 확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주님을 따르면 주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부부사이에도 아내가 남편을 믿어주고 남편이 아내를 믿어주면 은혜가 임하고 기적이 벌어집니다.
헨리 포드는 자동차를 발명한 자동차의 왕입니다. 그는 본래 에디슨 전기 회사의 수석기사였습니다. 포드는 에디슨 회사에서 일을 하고 퇴근하면 자기 집의 낡은 창고에서 자동차 엔진을 만드는 실험에 열중했습니다. 툭하면 밤을 새웠습니다.
아버지는 단순한 농부였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빈정거렸습니다. “미친 짓 그만하고 직장이나 잘 다녀라”
동네사람들도 자동차 엔진을 만드는 실험에 열중하는 포드를 보고 젊은 사람이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조롱을 했습니다.
포드가 자동차를 만들어 보겠다는 꿈을 믿어준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 아내 뿐이었습니다. 아내는 추운 겨울 날에도 남편을 위하여 등불을 들고 비춰 주면서 남편을 격려했습니다. “당신의 꿈은 언젠가는 꼭 이루어질 거예요! 여보 힘내세요 내가 당신곁에 있을께요!”
포드는 너무나 힘들어서 도중에 포기하려고 여러번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럴때마다 아내는 “여보! 결코 포기하지 마세요! 힘을 내세요! 다시 시작하세요! 나는 언제까지든지 당신 옆에서 당신을 도울께요!”라고 하면서 위로를 했습니다.
포드는 아내가 불어 넣어 주는 위로와 격려 속에서 드디어 자동차를 발명합니다. 그때 기자들이 몰려 와서 물었습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당신은 무엇이 되고 싶습니까?”
포드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내와 함께 있기만 한다면 무엇을 하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저는 디트로이트를 방문했을 때 포드 박물관을 바라보면서 “저곳에 위대한 포드 부부의 업적이 깃들어 있구나”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포드 박물관에는 “포드는 꿈꾸는 자였고, 포드의 아내는 꿈을 믿는 사람이었다”라고 써 놓았습니다.
영화 감독 강제규씨는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로 히트를 치면서 유명한 영화 감독이 되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무명의 영화 감독이었습니다. 영화감독이 된 그가 여러편의 영화를 만들었지만 실패를 했습니다. 그래서 가난에 쪼달리면서 고생을 했습니다.
그가 어느날 방송 대본을 한 편 썼는데 자기가 쓴 대본이 선정되어 방송에서 방영이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아내에게 “여보! 내가 당신에게 생활비를 못 주어서 미안해! 사실 방송 작가도 돈을 많이 버는데 영화를 그만두고 차라리 방송작가로 직업을 바꿀가?”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 강제규감독의 아내는 “그렇게 편하게 살고 싶다면 당신은 방송 작가가 되세요! 그대신 나는 더 이상 당신하고 안 살래요! 내가 결혼한 것은 영화 감독 강제규와 결혼한 것이지 방송작가 강제규와 결혼한건 아니예요!”하고 냉정하게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강제규감독은 심기일전해서 용기를 가지고 다시 영화 감독의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공전의 히트 작품인 “쉬리”와 “태극기 휘날리며”를 만들어서 우리나라 최고의 감독이 되었습니다.
부부간에나 성도간에도 서로 신뢰하고 믿어줄 때 힘이 생기고 사랑이 열매를 맺고 성공적인 삶이 되고 행복한 교회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예수님을 믿어야 영육간에 복을 받고 천국에도 들어갈수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사회에서 비방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믿음으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모든 교회가 다 잘못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교회가 잘못하고있고 또 아주 극소수의 성도가 잘못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들도 크던 작던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교회요 또 한 사람의 성도가 잘못하면 그 성도가 기독교 전체를 대표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한 교회가 잘못하면 한국 교회 전체가 욕을 먹고, 교인 하나가 잘못하면 한국교인 전체가 비난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누구든지 “내가 믿음에 서 있는가?”를 돌아보하면서 자기의 영적 상태를 점검해야 합니다.
“혹시라도 나 때문에 기독교가 욕을 먹고 비방을 받지는 않는가?”하면서 진지하게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항상 믿음으로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절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여기서, 바울사도는 믿음안에 있는 사람과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안에 모신 사람을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라고 증거 한 것처럼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예수님이 그 사람 안에 계신 것이라고 증거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그 마음속에 계신 사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셨다는 것은 곧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요 나의 인생의 왕으로 모시고 그분의 명령만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시기에 내 생각과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지시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가라” 하시면 가고, “서라” 하시면 서고, 이것을 하라 하시면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라 하시면 저것을 하는 성도가 될 때 참된 크리스챤이 된 것입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 노릇을 하고 내가 내 인생의 왕 노릇을 하면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한국 목사님들에게 영향을 많이 주는 미국 목사님중에 한분이 “오럴 로버트” 목사님입니다. 오럴 로버트목사님은 프린스턴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프린스턴에서 구강외과 의사로 개업해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분은 오세올라 교회의 장로가 되었고 의사로서 벌어들인 수입의 대부분을 남을 돕는 일에 기부하면서 살았습니다. 딸을 6명을 낳았는데 모두 훌륭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한 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대학교 에 다닐 때 목사가 되겠다는 서원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의 반대로 신학교에 못가고 의과대학에 갔습니다. 부모는 그에게 “의사도 목사 못지 않게 중요한 직업이다. 돈을 많이 벌어 서 그것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라” 그래서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하나님과 한 약속이 자꾸 생각이 났습니다. 그는 20년 만에 의사를 그만두고 프린스턴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졸업한 후에 선교를 위한 신학교를 세우고 선교사양성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는 세계를 선교할 꿈에 불타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오랄 로버트목사님은 설교할 때마다 “사람과의 약속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과의 약속은 더욱 소중합니다”라는 설교를 했습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요한 계시록 3장20절에 보면 예수님이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내 뜻과 내 생각대로 사는 사람은 마치 주님을 문 밖에 세워둔 것과 같은 신앙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주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내 마음의 보좌에 모시고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아무쪼록 주님으로 모시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서 믿음안에서 살고 은혜와 진리가 풍성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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