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문동관집사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저희 교회에 옷과 신발을 주고 싶다는 전화 였습니다. 그래서 지난 목요일날 집사님께서 행사를 하고계신 진주 홈플러스를 찾아 갔습니다.
문동관집사님은 명품신발40켤레와 명품잠바,조끼,바지등이 들어있는 세 개의 대형 박스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지난번에도 문동관집사님께서 양복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옷을 주셔서 우리 성도님들에게 나누어 드렸는데 이번에는 대량으로 주셔서 성도님들 뿐 아니라 동네 주민들에게까지 나누어 주기로 했습니다.
내가가진 재산과 재물을 누군가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일을 말처럼 쉬운일이 아닙니다. 죽은 다음에는 내가 입던 옷이나 물건들을 가족들이 다른사람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지만 그러나 살아 생전에 내가가진 재물을 남에게 나누어 주는 것은 온전한 희생과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금번에도 아낌없는 사랑으로 저희 남해세광교회에 많은 명품신발과 명품옷을 선물해 주신 문동관집사님내외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문동관집사님을 만나러 가는날 새벽기도를 마치고 먼저 성좌산기도원으로 갔습니다. 3일동안 기도원에서 기도한 박예본성도님과 이중희성도님 그리고 사모를 데리러 갔습니다.
지난 7월달에 박예본성도님의 아버지 박경수성도님이 돌아가셔서 7월28일날 박경수성도님의 장례예배를 드렸습니다. 박경수성도님은 일년 넘게 병원에서 투병 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박예본성도님과 이중희성도님은 아버지의 병 수발을 하느라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당시에 남해 힐튼 리조트에서 캐디로 일하던 박예본성도님을 윤기원집사님과 김예슬집사님이 전도해서 우리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때 박예본성도님을 만나서 상담을 하고 기도를 하면서 아버지가 서울의 바오로병원에 입원해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저는 임화자권사님에게 연락을 해서 예본씨 아버지를 구원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임화자권사님은 80이 넘은 노구를 이끌고 계속해서 병원을 찾아가서 박경수성도님에게 예수님을 영접시켜 드렸고 박경수성도님은 예수님을 믿고 돌아가셔서 천국에 입성하셨습니다. 저
희 부부는 수요예배를 마치고 밤새도록 달려서 목요일날 장례예배를 집례하고 임화자권사님과 이상천목사님을 만나서 교제를 나눈후에 다시 밤새도록 달려서 새벽예배를 인도했습니다.
그렇게 만난 박예본성도님과 이중희성도님이 장례식장에서 저에게 “목사님! 김제에서 일년 계약했는데 계약이 끝나면 남해로 갈께요!”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금번에 기도원에 가서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김제에서 사는 동안에 아는 언니가 집을 내 주었는데 넓고 좋은 새 원룸을 공짜로 주었는데 월세가 35만원 정도하는 새 원룸을 공짜로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언니가 식당도 운영하는데 두사람이 언제든지 와서 밥을 먹을수 있게 배려해 주고 음식도 늘 아낌없이 싸주면서 친동생처럼 사랑을 베풀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귀한 사랑을 베풀어 주신 언니가 누구인지 궁금해 졌습니다.
중희씨와 예본씨가 최근에는 골프장 캐디일을 마치고 중국에 돈을 벌러 가려고 짐을 다 정리하고 비행기표만 사서 가면 되는데 이상하게 일이 지연 되면서 중국에 가는일이 계속 미루어졌습니다.
그 와중에 한번 남해를 다녀 갔는데 최예진성도님을 만나서 중국에 간다는 사실을 알렸고 김예슬집사님도 중국에 간다는 사실을 알고 놀래서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김예슬집사님이 기도를 해 보니까 중국은 가면 안된다는 성령님의 감동이 있어서 박예본성도님에게 중국에 가지 말라고 권면을 했는데 나중에는 얼마나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 하시는지 중국에 가면 너는 살아서 돌아올수 있지만 중희씨는 죽어서 돌아온다는 예언의 말씀이 터지면서 예본씨에서 절대로 가지 말라고 신신 당부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민하던 예본씨와 중희씨가 결국 중국행을 포기하게 되었고 급기야 남해에 왔다가 기도원에 가서 기도를 해보라는 김예슬집사님의 권면에 마음이 동한 박예본성도님이 남편 중희씨와 함께 성좌산기도원에 가게 된 것입니다.
성좌산기도원은 워낙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는 곳이라서 귀신이 들어있는 사람들은 귀신이 그 속에서 요동을 쳐서 견디기가 힘듭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밤부터 박예본성도님 안에있는 귀신이 머리가 아프게 하고 정신이 빙빙돌게 만들고 다음날에는 도저히 견딜수가 없어서 집에 가야겠다고 사모에게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사모는 예본씨를 붙잡고 간절히 기도를 했고 조금 진정이 된 예본씨는 기도원에서 힘든 시간을 잘 견디면서 2박삼일을 지낸 끝에 지난 목요일날 아침에 기도원을 나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세사람을 만나러 목요일 새벽예배를 마치고 성좌산기도원으로 가서 세사람을 태우고 광주 고속버스 터미널로 갔습니다. 광주에서 잠시 아침겸 점심식사를 하면서 서로가 신뢰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방법에 대한 성경말씀을 가르쳐 주고 다시 근처에 있는 커피숖으로 가서 거기서 두사람에게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두시간동안 대화를 나누면서 설교를 했습니다.
그리고 대화중에 예본씨는 장차 그 가정과 가문에 영적인 복의 통로가 될 것이요 중희씨는 재물의 축복을 받는 통로가 될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기도를 해 주고싶은 성령의 감동이 있어서 두사람을 위해서 기도를 할만한 장소가 없을까 하고 커피숖을 둘러 보니가 마침 안쪽에 신방처럼 잘 꾸며진 또 하나의 아름다운 룸이 있길래 자리를 그곳으로 옮겨서 두사람을 위해서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기도중에 예본씨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래서 전기가 임하듯이 찌릿 찌릿한 은혜가 임하더니 불이 임해서 온 몸이 뜨거워 졌습니다.
알고 보니까 예본씨는 손발이 얼음장처럼 차서 냉냉한 시체같았는데 기도후에 손발과 몸이 따뜻해 지면서 발바닥까지 뜨거워서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고 간증을 했습니다.
예본씨가 성경을 사겠다고 해서 우리는 기독교백화점으로 갔고 저는 예본씨에게 성경을 사주고 예본씨와 중희씨는 고맙다고 우리에게 자동차에 거는 십자가와 강댓상용 컵과 물병을 사 주었습니다.
저는 커피숖에서 대화중에 예본씨에게 시간을 내서 3일동안 금식기도를 하면서 회개를 하라고 권면을 했습니다. 사실 그 권면은 일평생 지은 죄를 회개하라는 권면이 아니라 예수믿은 이후에 하나님앞에서 잘못 살았던 죄들을 회개하라는 충고였습니다.
그런데 두사람과 헤어진 후에 이제 문동관집사님을 만나러 광주에서 진주로 오는 동안에 박예본성도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오늘밤 열두시부터 삼일동안 금식기도를 하기로 했어요!”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서 “아니 그렇게 빨리 결심을 했어요?” 했더니 집에 도착 했는데 몸 컨디션이 얼마나 좋은지 손발이 계속해서 따듯하고 온 몸도 따뜻하고 집에와서 목사님이 사준 성경책을 읽는데 성경이 너무나 재밋어서 삼일만에 성경을 다 읽기로 작정하고 성경을 읽다 보니까 차라리 금식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금식을 작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목사님! 주일날은 남해세광교회에가서 예배 드리고 싶어요!”합니다.
금식이 얼마나 힘든줄 모르고 남해세광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겠다는 말에 저는 어쨌든 금식에 승리하라고 이야기를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금식하면 제일먼저 하루가 지나면 배가 고파서 머리가 아픕니다.
두 번째는 배가 고프다가 배가 아픕니다. 속쓰림에 엄청 힘듭니다. 세 번째는 기운이 없어서 아무말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네 번째는 음식냄새만 맡으면 환장을 할 정도로 음식이 먹고 싶습니다. 다섯 번째는 금식한지 3일째에는 인생을 다 산 사람처럼 회의가 밀려오고, 절망에 빠지다가 금식이 끝나면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과 위로가 임합니다. 금식 3일째 되는날은 기운이 하나도 없을텐데 버스를 타고 남해에 오겠다고 하니까 제가 어이가 없어서 우선 금식을 잘 하라고 권면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본씨가 금식을 시작한 첫날 오후에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신기할 정도로 몸이 건강하고 기분도 좋고 성경을 하루종일 읽고 있는데 성경이 너무나 재밋어요”하고 전화를 했습니다. 이해가 안가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머리 안아파요? 했더니 머리가 하나도 안아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 많이 고프죠? 했더니 배도 안고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를 잘 넘기고 둘째날 오후에 또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제가 할말이 있어서 전화 했어요! 철이 지나서 이맘때가 되면 몸이 시리고 아파서 너무나 힘든데 몸 아픈게 사라졌어요!” 합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죄를 고백하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치료해 주시려고 금식을 하게 하신 것 같다고 하면서 자기의 허물을 고백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런 자기를 치료해 주시는 것 같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니까 이건 금식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도원에서 은혜를 받고 성령이 충만해서 마치 은혜받은 요나가 니느웨에 가서 삼일동안 외치면서 소리를 지른것처럼 그렇게 신이나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아니 금식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힘이 넘쳐요?” 했더니 목사님 사실은 어제 밤에 너무나 힘들었어요 합니다. 알고 보니까 중희씨가 끼마다 때마다 짬뽕 시켜먹고 자장면 시켜먹고 라면 끓여먹고 계속 먹는데 냄새가 얼마나 고소한지 음식냄새가 그렇게 맛있는지 처음 알았다는 것입니다. 저녁에 중희씨가 소세지와 쵸콜렛을 방에 가지고 들어와서 먹으려고 하길래 아니 지금 그걸 내 앞에서 먹으려고 하는 거냐고 했더니 그래도 그걸 안먹고 밖으로 나가더랍니다. 밤에 중희씨가 잠이 들어서 물을 마시려고 부엌으로 나가 보니까 부엌에 쵸콜렛과 소세지가 있더랍니다. 그래서 소세지를 보고서 “저걸 입에 넣고 꼭꼭 씹었다가 다시 뱉으면 안될까?”하고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소세지를 먹으면 내가 남해세광교회에 가서 어떻게 하나님앞에서 떳떳하게 예배를 드릴수가 있을까 싶어서 소세지를 안먹었다고 합니다. 평소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소세지가 그렇게 맛있어 보이고 음식에 대해서도 초월하고 지냈는데 먹을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 기쁨인가를 절실하게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금식은 죄를 회개하고 성령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일입니다. 내가 해결할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기도가 금식기도입니다. 나를 비우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기도가 금식기도입니다. 금식기도는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식음을 전폐하고 드리는 기도 이기에 몸과 마음이 정말 힘든 기도입니다. 초신자는 금식기도가 더욱 어렵습니다. 믿음없이 기도하면 시험만 계속됩니다. 그런데 박예본성도님은 금식을 마음먹은 첫날부터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머리도 안아프고 배도 안고프고 성경을 보아도 즐겁고 힘도 넘치고 금식 마지막날 500리길을 버스를 타고 남해세광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겠다고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금식하는 박예본성도님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남해에 오려고 했는데 김제에서 집을 무료로 주시고 음식도 아낌없이 주시고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사랑을 베풀어 주신 언니께서 남해세광교회에 함께 오시게 된 것입니다. 한번도 그런일이 없었는데 남편이 갑자기 인천으로 2박3일동안 출타하게 되어서 언니와 함께 남해를 오게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박예본성도님을 사랑해 주시는 언니께서 우리교회 예배에 동참해 주셨습니다. 이시간에 박예본성도님을 사랑하는 동네 언니 문현진성도님을 소개하겠습니다. 한번 일어나서 인사하시고 박수로 환영하겠습니다. 참 반갑습니다. 제가 꼭 뵙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은 주는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문동관집사님의 섬김과 사랑에 마음이 참 기뻤는데 오늘 뜻밖에 박예본성도님을 끔직하게 사랑해 주신 동네 언니분을 만나서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어서 참 감사를 드립니다. 잠언 19장17절에 보면 “가난한 자를 선대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라고 증거 합니다. 집이 없는 사람에게 집을 선물하고 먹을것이 없는 자에게 먹을 것을 주면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에게 큰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박예본성도님과 이중희성도님을 선대한 언니 문현지성도님에게 하나님께서 큰 축복을 내려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박예본성도님이 금식을 하면서 최예진성도님에게 전화를 했다고 합니다. 자기 아버지가 구원받은 이야기를 하면서 언니도 부모님을 구원해야 되지 않겠냐고 하면서 하나님은 새벽기도와 금식기도를 잘 들어 주신다니까 언니도 금식기도를 해 보라고 권면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예진성도님도 이틀 금식을 하기로 작정하고 금식기도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박예본성도님으로부터 들었습니다. 제가 놀래서 설교준비를 하다말고 최예진성도님에게 “금식기도 한다면서요?” 하고 카톡으로 문자를 보냈더니 답장이 왔는데 “시어머니가 오셔서 짬뽕과 자장면을 사주시는 바람에 금식에 실패 했습니다” 하고 답장이 와서 “다음에 기회를 내서 같이 금식해요!”하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우리교회가 기도의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성령의 은혜도 강하게 임하고 있습니다. 젊은 성도들은 열심히 전도하고 있습니다. 초신자들은 금식하고 있습니다. 권사님들은 불철주야 기도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도들은 행복한 가운데 믿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은혜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치료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부흥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면서 영광의 박수를 올려 드리겠습니다. 사람은 마치 죽지 않을것 처럼 살아갑니다. 그러나 죽음을 전제로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오늘 아침에 박양순집사님으로부터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언젠가는 뜻하지 않은 죽음이 찾아 온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만 가지고 살다가 하나님을 모르고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죽는다면 그처럼 허무한 인생은 없습니다. 중국의 진시황은 건강하게 오래 살려고 음식에 엄청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번 이라도 같은 음식이 식탁에 오르면 그날은 주방장의 목이 날아갔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이 황제의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서 온갖 종류의 음식을 개발했다고 합니다. 한번이라도 같은 음식을 내 놓으면 안 되니까 식탁에는 희귀한 음식이 끝없이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원숭이 골요리, 산삼볶음,모기 뒷다리 볶음, 굼벵이 튀김등 온갖 요리가 다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요리가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제일 좋은것만 먹은 진시황은 마흔아홉살에 죽었습니다. 잘 먹는다고 해서 오래 사는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수명은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민족 중에도 중국의 진시황 같이 정신 나간 사람이 있었습니다. 북한의 김일성이 그사람입니다. 김일성은 미국의 카터 전 대통령을 만나서 “나는 앞으로 10년을 더 통치한 후에 내 아들 김정일에게 정권을 넘겨주겠습니다”라고 호언장담했습니다. 그런데 호언장담한지 채 한 달도 되기 전에 김일성은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김일성은 건강하게 오래 살려고 북한의 젊고 아름다운 여자들을 모아다가 “기쁨조”라는 여인 수종단체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밤마다 젊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여인들이 돌아가면서 김일성의 침실에 들어가서 수발을 했습니다. 심지어는 매 주 젊은처녀들과 건강한 청년들의 혈액을 채혈해서 수혈을 받았습니다. 당시 평양에는 “김일성 장수 연구소”가 세워져서 몇 백명의 의사들과 학자들이 김일성을 하루라도 더 살게 하기 위해서 김일성과 나이가 같은 노인 수십 명을, 장수 치료를 위한 실험용으로 이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져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도 아버지와 똑같은 짓을 되풀이 하다가 죽었습니다. 허무하게 인생을 떠나는 사람들을 볼 때 마다 톨스토이의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단편이 생각 납니다. 다시한번 소개 합니다. 그 책에 보면 “미하엘”이라는 천사가 세상에 내려와서, 인간이 되어서 구두수선공으로 일을 합니다. 어느 날 험상궂게 생긴 사람이 찾아와서 미하일에게 “내가 몇년 동안 튼튼하게 신을 구두를 내일까지 만들어 놓게! ”하고 엄포를 놓고 나갔습니다. 그러자 구둣방 주인은 안절부절 못하면서 미하일에게 “이걸 어쩌면 좋겠나! 저 사람은 무법자라네! 내일까지 구두를 못 만들면 아마도 구둣방을 다 때려 부수고 난리를 칠텐데 어떻게 하면 좋겠나?” 하면서 벌벌 떨었습니다. 미하엘은 “아무 염려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해결 하겠습니다!” 하더니 구두를 안 만들고 놀기만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사람이 구둣방에 왔다가 말을 타고 집으로 가다가 말에서 떨어져서 뇌진탕으로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입니다. 미하일은 그 험상궂은 사람이 구둣방에 들어올때 그를 따라 들어온 죽음의 저승사자를 보았습니다. 그는 그날 죽을 사람이었기에 죽음의 저승사자가 그를 데려 가려고 따라붙은 것입니다. 천사였던 미하일은 죽음의 저승사자를 보았기에 태연하게 놀면서 하루를 보낸 것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아름다운 여인이겠습니까?” “몇년동안 잘 신고다닐 구두이겠습니까?”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말하기를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시편저자는 인생을 이렇게 표현 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 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편90:9-10) 사람의 모든 날은 하나님의 분노 중에 지나간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분노 중에 지나가는 존재 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라는 말씀 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공의에 따라서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죄인은 죄 값을 치르게 되어 있습니다. 죄값의 마지막은 죽음입니다. 사람은 죄 때문에 죽는 것입니다. 죄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살아 생전에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으면 고난이라는 죄값을 치르다가 지옥에 갑니다. 죄 때문에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세기3:17-19) 대부분의 사람들은 죄악속에서 살다가 지옥으로 갑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결론적으로 의미심장한 말씀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전12:13-14)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 하신다고 분명히 말씀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내가 무슨일을 하면서 사는지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시다가 선악간에 심판 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잘 경외하고 그 명령에 순종해서 살아야 합니다. 오늘은 요나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제가 박예본성도님과 기도원에 다녀 오면서 박예본성도님은 요나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나가 누구인지 무슨일을 했는지 한번 살펴 보겠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이스라엘역사를 살펴보면, 이스라엘나라가 부강해 지면 왕부터 백성들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타락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이 되면 이상한 짓들을 해서 다들 감옥엘 갔습니다. 우리나라에 장로가 대통령이 된 분이 두분입니다. 두 장로님이 대통령이 되어서 청와대에 들어 간 후에, 두분은 바쁘다는 핑계로 거의 예배를 안드렸습니다. 대통령이 되었으면 대통령이 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하면서, 나라를 잘 이끌게 해달라고 더 열심히 예배 드리고, 기도도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그와 정 반대였습니다. 그러니까 한 장로님 대통령은 IMF경제위기를 맞이해서 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했고, 또 한 장로님은 하나님을 등한히 하더니 요즘 감옥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선지자입니다. 선지자 요나가 활동할 당시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는 앗수르였습니다. 하나님은 앗수르를 들어서 죄악이 창성했던 이스라엘을 심판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망해서 비참해 졌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심판하는일에 쓰임받은 앗수르나라가 갈수록 교만해졌습니다. 그런때에 하나님은 선지자 요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요나에게 “너는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라” 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 내용이 오늘본문 요나서 1장1절로 2절에 증거 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가 이 세상에서 가장 타락한 도시로 전락한 것을 보시고 그 도시를 심판하기로 작정 하셨습니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가 타락했을 때 유황 불비를 내려서 심판을 받아 멸망한 것처럼 니느웨도 심판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니느웨를 당장 심판하신 것이 아니라 먼저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 기회가 바로 선지자 요나를 그곳에 보내서 “하나님의 심판이 오기전에 회개하라”라는 말씀을 선포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이 범죄하면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요나서 1장 3절에 보면 하나님이 요나를 부르셨을 때, 요나는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다시스로 도망을 갔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도 정 반대편으로 도망을 간 것은 인간적인 생각 때문입니다. 요나가 하나님을 피해서 도망간 이유는 니느웨가 이스라엘을 망하게 만든 원수나라이기에 그곳에 가기 싫어서 도망을 갔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을 믿는 선지자 인데도 선민의식과 편협한 민족주의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도망을 갔습니다. 자기 민족을 괴롭히고 온갖 악을 일삼는 니느웨는 심판받아 마땅한 나라이지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 믿어도 이런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엉터리 신앙인들이 많습니다.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경상도 사람들은 전라도 사람들을 싫어 합니다. 전라도 사람들은 경상도 사람들을 싫어 합니다. 이 문제는 예수 믿어도 잘 해결이 안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역감정에 사로잡혀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13년전에 광주 새순교회에서 청년들 열명이 우리동네에 전도봉사를 하러 왔는데 하루종일 고생하면서 영혼구원을 위해서 애쓴 청년들에게 자장면을 사주자고 제안 했다가 제가 망신만 당했습니다. 그게 무슨 예수믿는 사람입니까? 전라도 사람 욕하면서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 헛믿는 것입니다. 그런사람 때문에 하나님이 탄식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경기도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살았지만, 제가 사귄 친구들이나 목회를 하는 동안에 사귄 성도들 중에는, 전라도 친구들과 전라도 사람들이 가장 의리가 있고 신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경상도에서 목회를 하다 보니까 경상도 사람들은 무조건 전라도 사람을 미워합니다. 예수 믿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저 전라도 사람이라면 색안경을 끼고 싫어 합니다. 저는 제가 살아 오면서 만난 나쁜 사람중에 경상도 사람들이 여러명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한번도 경상도 사람들을 싸잡아서 “경상도 사람들은 참 나쁩니다!”라는 말을 해 본적이 없습니다. 언젠가 제가 설교를 하다가 일부러 “경상도 사람들 정말 나쁩니다!”하고 설교를 했습니다. 제가 그런 말을 한 이유는 그런말을 들을때 기분이 어떤지 한번 들어 보라고 일부러 그런말을 했습니다. 사람이 나쁘면 그 사람이 나쁜 것이지, 그 사람이 잘못 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을 다 싸잡아서 나쁘다고 이야기를 하는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소수의 문제를 전 지역의 문제로 끌고 가는 일반화의 오류가, 사회를 하나되지 못하게 하고, 교회도 하나되지 못하게 하고, 나라도 하나되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지역감정을 해소하지 못해서 수천년동안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는 역사로 지내은 것입니다. 오래전에 대통령도 경상도, 서울시장도 경상도, 장관들과 군장성들까지 나라의 요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대부분 경상도 출신들로 포진을 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때에 서울의 한 동네에 전라도 사람들이 모여서 살고 있는데, 대문 밖에서 경상도 거지가 “밥 좀 주이소”하고 동냥을 하러 왔습니다. 그랬더니 전라도 사람들이 화를 내면서 “느그들끼리 다 해 쳐 먹거라 잉!” 하면서 경상도 거지에게 화를 내면서 그 경상도 거지를 쫓아 냈다고 합니다. 거지가 동냥을 왔으면 동냥을 해 주어야지, 가난해서 거지가 된 것 뿐인데 경상도 거지라고 문전박대를 하면서 쫓아 내는 것은 잘못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도 이런 매카시즘 바람이 엄청 납니다. 그래서 시대적인 집단의식으로부터 벗어나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윤영순사모가 언젠가 저에게 “목사님! 전라도에 가서 목회를 하면 어떨까요?”하고 제안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경상도토박이 출신의 사모가 전라도에 가서 목회를 하자는 말에 제가 우리 사모를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요나는 민족주의라는 편협한 생각에 사로 잡혀서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아무에게나 선지자의 직분을 맡기지 않으십니다. 선지자는 특별한 직분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부름받은 사람이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요나는 부름은 받았지만 자기고집과 자기생각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알지 못했고 하나님의 사랑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사랑을 베푸십니다. 특히 죄인들을 더욱 사랑하십니다. 선지자는 그런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한 여자가 TV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부모없이 불우하게 자라난 아이의 고통스럽고 슬픈 인생을 티비로 보다가 마음이 아파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한참 TV를 보고 있는데, 자기 아들이 들어와서 “엄마 배고파 밥줘!”하면서 밥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엄마가, 밥 달라는 아이를 야단을 치면서 “야! 너는 왜 엄마가 TV보는데 시끄럽게 방해하는거야! 니가 찾아먹어!” 하면서 아이를 혼을 냈다고 합니다. 여자들은 TV드라마를 볼때는 거기에 빠져서 “아이고 불쌍해라! 저아이 불쌍해서 어떻게 해!”하면서 눈물을 흘리면서도, 막상 현실에서는 내 아이에게 화를 내고 또 실제로 그런 불쌍한 아이를 보면 아랑곳 하지않고 무관심합니다. 생각 따로, 행동 따로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늘 배우지만 전혀 사랑하지 않는 성도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말로는 청산유수처럼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이 실제 생활에서는 전혀 사랑을 베풀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요나는 배우기는 많이 배웠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전혀 실천하지 못한 선지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다에 태풍이 불자 선원들은 다 들 열심히 노를 젓고 있는데 선지자 요나는 배 밑창에 들어가서 잠만 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잠자는 요나를 발견한 선장이 화가 나서 요나를 깨웠습니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잠만 자느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기도하라!” 그런데도 요나는 끝까지 기도하지 않고 계속 잠만 잡니다. 급기야 선원들은 더 이상은 버틸수 없다고 생각해서 배를 가볍게 하려고 배에 실은 화물을 다 바다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배에 탄 사람들이 전부다 모여서 누구 때문에 이런 풍랑이 일어났는지를 알기 위해서 제비를 뽑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요나가 뽑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요나에게 물었습니다. “이 재앙이 너 때문에 왔구나! 너는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냐? 어느 나라 사람이냐?” 그랬더니 요나가 1장 9절에서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라고 대답을 합니다. 여러분,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서 도망을 가서는 안됩니다. 무슨일이 있어도 주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적어도 바다와 육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면, 풍랑이 일어나서 배가 뒤집혀 모두가 죽을 지경이 되었을때 하나님께 기도했어야만 합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이 죽게 되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하고 기도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이라면 최소한 이정도의 양심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나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요나는 제비를 뽑은후에 비로소 뒤늦게 회개하고 12절과 같이 자기를 바다에 던지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비로소 요나는 죽음으로서 배에탄 모든 사람들을 구하고자 결심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사공들은 요나를 바다에 던지지 않고 안간 힘을 써서 노를 저어 배를 육지로 돌리고자 했다고 1장13절은 증거 합니다. 요나의 믿음없었던 행동에 비해서 사공들은 자기와 상관도 없는사람이요 정작 태풍을 불러온 요나를 살리고자 최선을 다했습니다. 사공들은 비록 힘들게 사는 뱃사람 이었지만 그러나 그들은 얼마나 사람을 아끼고 사랑했는지 모릅니다. 사실 사람이 자산입니다. 사람이 미래입니다. 사람이 희망입니다. 사람이 전부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예수님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하늘영광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죄인인 우리를 살리려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성도들에게 “너희는 사랑을 배워서 서로 사랑하라”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나 요나에게는 이런 사랑의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남이야 힘들던지 말던지 이웃의 아픔과, 이웃의 고통과 전혀 상관없이 내멋대로 행동 했습니다. 사명을 거부한 요나는 인생의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사명을 거절하면 생명과 재산에 큰 손상을 입게 됩니다. 주변 사람까지 피해를 입게 됩니다. 그래서 요나 때문에 배에 있는 모든 물건들은 다 바다에 수장되었고 같이 동행한 모든 사람들도 고통과 어려움을 당한 것입니다. 모름지기 사람은 고난이 와야 정신을 차립니다. 고난이 오면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찾게 됩니다. 요나도 고난중에 비로소 자기가 누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결국 풍랑이 더욱 심해지자 선원들은 요나를 바다에 던졌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예비해서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비로소 철저하게 회개를 합니다. 요나는 “나를 한번만 살려 주시면 내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라고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요나가 진심으로 회개한 것을 보신 하나님은 물고기를 명하여 요나를 육지에 토하게 하셨는데 그곳이 니느웨 였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나서 니느웨에 복음을 전하는 귀한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요나는 하룻길을 다니면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라고 선포 했습니다. 그랬더니 기적이 벌어 졌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합니다. 왕부터 시작하여 모든 백성이 회개하고 심지어 왕은 짐승들까지도 금식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요나의 전도를 받은 니느웨 백성들이 멸망을 당하지 않게되자 요나는 또다시 변덕을 부립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때는 신나서 기뻐하다가 자기 마음에 안드는 일이 생기면 또 원망불평 합니다. 요나속에 숨어있는 악한 본성이 드러난 것입니다. 4장1절에 보면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했다” 라고 증거 합니다. 심히 싫어했다는 말은 시기심이 가득한 상태를 말합니다. 노했다는 말은 “불타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인데 너무나 화가나서 심장이 터질것 같다는 말입니다. 맹렬하게 화가난 상태를 말합니다. 요나는 회개한 니느웨를 심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극렬한 분노의 감정을 나타냈습니다. 그 이유는 “40일이 지나면 망한다” 라고 선포 했는데 망하지 않으니까 자존심이 상한 것입니다. 죽을 각오를 하고 심판으 복음을 선포 했는데 사람들이 회개하자 하나님이 심판을 안내렸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죽지 않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내가 이 성이 무너진다고 선포한 일이 다 헛수고 엿구나!” 라는 생각과 더불어 원수 나라가 망하기를 은근히 바랬던 마음이 다시 고개를 쳐든 것입니다. 게다가 하나님도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화가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많은 일을 하고도 요나처럼 “싫어하고 노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재물도 바치고 마음도 바쳐서 충성봉사를 했는데 아무도 안 알아주면 마귀가 틈을 탑니다. 그래서 “내가 아무리 죽어라고 봉사하고 헌신해 봣자 아무 소용이 없어! 칭찬은 다른사람이 받고 영광도 다른 사람에게 가잖아 목사님도 나를 알아 주지 않쟎아! 새신자만 좋아하고!”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슬며시 화가 납니다. 그래서 요나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침체가 오고 그 다음에는 “두고 봐라 나는 이제부터 아무것도 안한다”하면서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해도 봉사도 안하고 꿈쩍도 않는 철밥통이 되어 버리고 나중에는 불순종의 병과 의심 병에 걸려서 노한 요나처럼 됩니다. 요나는 다시 편협해 졌습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힌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성에 사는 악한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복음을 전하다가 화가나서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이것은 교회에서 비일 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자기보다 늦게 교회에 온 사람이 열심히 일하면서 칭찬을 받으면 견디지를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보다 신앙연륜이 짧은 사람이 먼저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고 안수집사가 되는 것을 보면 시기질투가 나서 견딜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시기질투하고 비방하는 것입니다. 요나가 그랬습니다. 앗수르 사람들이 지옥에 가야 마땅한데,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심판에서 구원으로 바뀌자 요나는 하나님께 대들었습니다. 4장 3절에 보면 “차라리 나를 죽여 달라고 호소를 합니다. 저들이 잘 되는 꼴을 보면서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났겠다고 고백 합니다. 남 잘되는 꼴을 못 보겠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요나도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다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사람입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내가 잘못 했습니다. 나를 용서해 주세요 한번만 살려 주세요” 하면서 회개하고 기도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받고 살아난 사람입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살아서 일하게 된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인데도 요나는 자기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는 다 망각하고서, “나는 용서 받아도 되지만 원수는 절대로 용서받으면 안 돼”라고 생각 하면서 하나님께 대들면서 따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나서4장 4절과 같이 말씀 하십니다. “너의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네가 지금 성내는 것은 부당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요나가 어떻게 합니까? 5절에 보면 “어디 두고 보자, 잘 되는 꼴 한번 보자”하는 식으로 니느웨성이 잘 내다보이는 동편에 초막을 짓고 성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아마도 요나는 니느웨성이 소돔과 고모라처럼 유황불이 내려서 다 불타 버리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박넝쿨의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낮이되자 햇빛이 얼마나 뜨거운지 요나가 심히 괴로워서 힘들어 하자 하나님께서는 마치 만화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박넝쿨이 쑥쑥 자라게 하셔서 뜨거운 햇빛을 가려 주셨습니다. 그러자 요나가 박넝쿨로 인하여 심히 기뻐했다고 4장 6절은 증거 합니다. 그런데 박넝쿨로 인하여 금방 화가 풀리고 즐거워하는 요나에게 하나님은 다시 벌레를 보내서 박넝쿨을 먹게 해서 박넝쿨이 말라 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요나는 다시 8절과 같이 원망합니다. “요나가 혼곤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사는것보다 죽는것이 내게 낳으니이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났다는 원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9절과 같이 “네가 이 박넝쿨이 말랐다고 성내는 것이 합당한 것이냐? 그게 정당한 일이냐?”하고 물어 보십니다. 그러자 요나는 “내가 성내어 죽을 지라도 합당합니다”라고 말대꾸를 합니다. 요나는 변덕쟁이입니다. 자기 좋으면 신나서 해해 거리고 마음에 안들면 울분을 토하면서 원망불평을 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끝까지 참으십니다. 평생 뒷골목에서 불량배생활을 하면서 술주정꾼으로 살다가 뒤늦게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어서 새출발을 한 사람이 나중에 은혜가 감사해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마을에 전도를 하러 갔는데 동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람취급도 안하면서 상대를 안해줍니다. 그는 너무나 화가 났지만 꾹 참고 계속 전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전도하러 나갈때마다 동네 사람들이 그를 미친놈 취급을 하면서 우습게 알고 놀려 댑니다. 이 사람이 참다 참다 못해서 산에가서 바위에 엎드려서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 더 이상 참을수가 없습니다, 이 수모를 어떻게 참으란 말입니까? 차라리 저를 데려 가십시요!” 그러자 주님이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돌아 오기까지 50년을 참았노라 그런데 너는 동네에 몇 번 전도하러 나가서 수모를 당했다고 그걸 못견디냐? 참고 계속 전도해라!” 그래서 그사람이 인내로 전도해서 결국 많은 동네사람들을 구원 했습니다. 예수님은 참을 뿐 아니라 용서해 주십니다. 내 과거가 어땠던 간에 그것을 문제 삼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저사람 과거가 어땠니 저땠니 하면서 정죄하고 수근 거리지만 하나님은 과거를 전혀 상관하지 않습니다. 지금 예수믿고 거듭나서 믿음으로 사는것만 보십니다. 지금 예수믿고 거듭나서 믿음생활을 잘 하고 있으면 지난날에 사람을 죽였던 간음했던 이혼했던 도둑질했던 그 어떤것도 문제를 삼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끝까지 물고 늘어 지면서 과거를 캐고 따집니다. “너는 이런사람이었쟎아! 이런 악한일도 했었쟎아!”하면서 정죄하고 비판합니다. 자고로 정죄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사탄마귀의 앞잡이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 결론을 맺습니다. 어쩌면 요나같이 변덕스럽고 삐치기를 잘하고 마음에 안들면 원망하고 불평하는 내멋대로 신앙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오늘도 변덕스러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기대를 걸고 지켜보시면서 인내하고 계십니다. 언젠가는 변화된 요셉처럼 변화된 바울처럼 살기를 소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믿음의 사람으로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만 돌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포도나무 > 포도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2017년11월29일 수요저녁출31장1-11절 축복은 성령을 통해서 옵니다 (0) | 2017.11.29 |
---|---|
[스크랩] 2017년11월15일수요저녁 스바냐13장14-20 노래 할 이유있네 (0) | 2017.11.15 |
[스크랩] 2017년11월8일 로마서1장16-17절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0) | 2017.11.08 |
[스크랩] 2017년10월29일주일낮 히브리서11장1-7 믿음으로 사는자의 축복 (0) | 2017.10.29 |
[스크랩] 2017년10월25일수요저녁고린도후서 13장5절 믿음안에 있는지 확인하라 (0) | 2017.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