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예수님의 생신날인 성탄절입니다. 성탄절은 기쁨의 좋은 소식을 받는 절기입니다. 예측하지 못했던 뜻밖의 좋은 소식을 듣는 절기가 성탄절 입니다.
누가복음 1장에는 복된 소식이 계속 됩니다. 늙은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소식과, 아직 남자를 알지 못하는 마리아가 성령의 잉태로 예수님을 낳을 것이라는 소식과, 비천한 마리아가 메시야 구세주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는 소식과, 그리고 예수님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이 모두가 놀라운 소식입니다. 우리가 복된 사람들인 이유는 이런 복된 소식에 마음 문을 열었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복된 소식이 전해 졌을 때 마음문을 열고 그 소식을 믿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새로운 세계에 마음을 열고, 그 세계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가장 복된 사람입니다. 우
리 예수 믿는 성도가 가장 기뻐하고 즐거워 해야 할 날은 성탄절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오셨기에 우리가 구원받아서 천국에 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에 모든 사람들은 구세주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왜냐하면 로마의 식민지 하에서 어디를 보아도 소망이 없고 절망적인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구원을 가져올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는 것” 그것만이 그들의 유일한 소망이었습니다.
톨스토이는 “인생은 지나가는 것이다” 라고 고백 했습니다. 현대 사회심리학자 에릭 후롬은 “인생이란 미래를 바라보며 기다리는 삶이다” 라고 고백 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더 좋은 내일을 기다리고 더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더 좋은 기회를 기다리고, 더 좋은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면서 살아 갑니다.
우리 기독교도 기다리는 종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렇게도 나를 사랑해주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는 소망과 더불어 천국에 들어 간다는 소망 때문에 기꺼이 그리고 두려움없이 죽음을 기다리고 또 맞이하게 됩니다.
이제 첫 성탄절에 메시야 구세주가 나셨다는 소식을 익히 들어서 아는 우리는 또 한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재림주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신랑을 기다리는 처녀들에 대한 비유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기다리다 지쳐서 피곤해서 졸다 잠이 들더라도, 등과 기름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주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등과 기름은 말씀과 성령안에서 기다리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기다림은 우리의 일생에 계속 되는 일입니다. 일상생활에서도 기다림이 있습니다. 저녁에 부엌에서 된장찌개가 부글부글 끓고 있으면 저녁식사에 대한 기대감에 마음이 즐겁습니다.
부모들은 명절에 자식들이 오는것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그래서 음식을 만들고 감주도 만들고 떡도 하고 전도 부치면서 자식들이 오는것을 학수고대 기다립니다.
어제 이중희성도님과 박예본성도님이 밤11시30분에 출발 한다고 전화가 와서 1시경에 유아방에 전기장판에 불을 넣어놓고 교회입구의 불도 켜놓고 주차장의 불도 켜놓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한 시가 조금 넘어서 "목사님 지금 전주인데 한복을 빌렸어요" 하고는 신이나서 지금 출발 한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그래서 “전주에서 출발하면 새벽 3시에는 도착 하겠구나!” 하고 새벽 2시 반쯤 전화를 했더니 전화를 안받습니다.
지난번 주일날 두분이 남해에 올 때도 새벽 3시경에 전화를 했더니 “지금 막 도착 했습니다” 하길래 달려 나가서 마중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전화를 안받는걸 보니까 거의 도착 했나보다“ 하고 밖으로 나가서 저 큰길 밖에 서서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옵니다. 그래서 30분쯤 기다리다 추워서 방에 들어와서 잠시 쉬고 있는데 3시25분에 “도착해서 방에 들어왔습니다. 너무 피곤해서 잘게요”하고 문자가 왔습니다.
그래서 교회와 주차장의 불을 끄고 들어와서 “무사히 도착하게 해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내일 기쁜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게 해 주세요”하고 기도를 한 후에 계속해서 설교 준비를 했습니다.
인생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언약이 이루어 질 줄 믿고 기다림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을 누리기 위해서는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어떤 약속을 하고나면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아이들은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날마다 사모하면서 기다립니다. 갖고싶은 선물을 사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그날부터 아이는 눈빛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 물어보고 확인하고 기다립니다.
믿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언가를 기대하면서 사는 것이 믿음생활입니다. 그러나 성급한 현대인들은 기다리는 일을 잘 못합니다. 현대인의 특징은, 무언가가 당장 보여져야 하고 당장 만져져야 만족 합니다. 현대인에게 있어서 기다림은 매력적인 일이 아닙니다. 매사에 더 빠르고 더 신속한것을 요구 합니다. 그래서 기다리다 안되면 점장이를 찾아가서 묻는 것입니다. 점장이는 당장 답을 줍니다. 그러나 점장이의 답은 인생을 더욱 미궁으로 빠뜨릴 뿐입니다.
사람들은 기다리지 못합니다. 게다가 믿기 어려운 것을 기다리고 바라면서 산다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믿음은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소망하고 기다리던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믿음 입니다. 그중에서도 예수님을 사모하고 기다리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야 구세주를 기다리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을 때 예수님을 영접하고 환영한 사람들은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천국에 들여보내 주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나 천국에 가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안 믿으면 뜨거운 지옥불에 들어가서 영원토록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제가 이곳 설천에서 목회를 하는 동안에 잊지 못할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하영순권사님의 남편 김종백성도님이 구원을 받은 일입니다.
하영순권사님이 먼저 교회에 나와서 예수를 믿었습니다. 저는 하영순권사님의 남편을 만나서 복음을 전했고 급기야 김종백성도님이 교회에 나오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김종백성도님을 전도해서 예수님을 영접 시켜 드린지 정확하게 한달 후에 김종백성도님이 돌아 가셨습니다. 김종백성도님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을 믿은 것은 일생 일대의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다음에 또 한분 잊지 못할분이 정춘자집사님의 남편 김진규씨입니다. 지금부터 정확하게 10년전인 2007년 10월달에 한 권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저는 김도겸권사인데 내 동생이 떼드리에 삽니다 이름이 김진규인데 목사님이 심방을 좀 해 주셔서 우리 동생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전도를 좀 해 주세요!” 하고 전화가 왔습니다.
알고 보니까 도마교회의 김도심권사님이었습니다.저는 권사님의 전화를 받고 당장 김진규성도님댁에 찾아가서 예수를 믿으셔야 천국에 간다고 전도를 했습니다.
당시에 김진규성도님은 몸이 아파서 교회를 나올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신기한 것은 김진규성도님이 순순이 제 전도를 받아 들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 했습니다.
지난 목요일날 최예진성도님과 함께 송정해수욕장이 있는 송정마을에 가서 정흥열성도님과 최미진성도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두분을 전도 했는데 두분이 오늘 주일예배에 동참하셨습니다.
최예진성도님의 아버님과 정흥열성도님이 최예진성도님댁에 놀러 왔는데 그때 최예진성도님이 정흥열성도님을 전도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같이 만나서 송정으로 심방을 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송정해수욕장에 가서 두분을 만났는데 정흥열성도님의 아내인 최미진성도님은 다리가 아파서 잘 걷지도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간신히 집에서 나오셔서 허리를 구부리고 기다시피 걸어 나와서 승합차를 타고 점심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제가 식사를 대접하기로 하고 모시고 갔는데 식사후에 정흥열성도님께서 먼저 나가셔서 계산을 하셨습니다. 제가 평생동안 전도심방을 다니면서 처음만난 초신자가 먼저 식사를 대접해 주신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직장을 은퇴하고 이제는 아무런 벌이도 없는 정흥열성도님이 정성껏 저희 일행에게 식사를 대접해 주시는 것을 보면서 저는 “정흥열성도님이 복받을 분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자기집앞을 지나가는 나그네를 대접하고 복을 받은 것처럼 그런 축복을 받을것을 확신 했습니다.
잘 걷지도 못하면서도 식사초대에 응해주셔서 함께 동참해 주신 최미진성도님도 고마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식사를 나누면서 최예진성도님과 우리가 두분을 교회로 초대 했는데 두분께서 오늘 주일예배에 동참해 주셨습니다.
다리가 불편하신데도 불구하고 예배에 동참해 주신 최미진성도님과 더불어 귀한 사랑으로 식사를 대접해 주시고 예배에도 와 주신 정흥렬성도님을 이시간에 소개하고 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정흥열성도님과 최미진성도님은 그 자리에서 한번 일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올려 드리겠습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오늘 김철언성도님의 죽마지우 친구인 김종훈성도님과 아내 이고운성도님도 예배에 동참해 주셨습니다. 한번 일어나시고 같이 인사를 나누겠습니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
또 한가지 간증할 일이 있습니다. 박예본성도님이 아버지를 전도해서 천국에 보내드린후에 아버지를 구원해 주시고 그리고 나같은 죄인을 다시 불러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서 “금번 성탄절에 무엇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까?” 하고 기도하다가 “옳지! 대형 화환을 만들어서 하나님께 드리자!” 하고 마음 먹고는 직장애서 매일 밤 10시30분에 퇴근해서 하루도 쉬지않고 매일 밤을 새가면서 한달 남짓한 기간동안 아름다운 종이꽃 화환을 만들어서 하나님께 봉헌 했습니다. 그 화환이 바로 이 앞에 와 있습니다.
박예본성도님이 꽃을 만드는 동안에 이중희성도님도 옆에서 수고를 많이 하셨습니다. 사실 이중희성도님은 성탄절이 지난후에 직장일을 시작하기로 예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일찍 발령이 나서 오렌지타운의 마트와 원룸을 관리하는 과장으로 취직이 되어서 일찍 출근을 시작하는 바람에 이번 주일날과 성탄절에는 교회에 오지못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두분은 아르바이트를 구하기로 했습니다. 소식을 들은 우리도 두분 때문에 비상이 걸려서 새벽마다 두분이 예배에 참석할수 있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두분이 교회에 오기 하루전날인 어제 하나님께서 아르바이트 직원을 구하게 해 주셔서 오늘 두분이 예배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올려 드리겠습니다.
두분이 예배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모릅니다. 두분은 김제에서 남해까지 오매불망 예배드리러 오는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교회 오는날을 기다리는 것이 두분의 소망이요 기쁨입니다. 저렇게 하나님을 사모하고 예배를 사모하니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대형 화환을 만들기로 하고 재료를 사러 가는데 언니 문현진성도님께서 같이 동행하셔서 재료를 사 주셨습니다. 그 후에 문현진성도님이 낮에는 박예본성도님의 일터에 나오셔서 퇴근 할 때까지 마트일을 도와 주시고 그리고 밤에는 박예본성도님댁에 와서 종이꽃을 만드는 일을 도와 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언니가 꽃을 만드는일을 도와 주시는데 전에도 한번 말씀 드렸지만 언니가 꽃잎을 하나씩 까는일을 도와 주시는데 얼마나 꽃잎을 잘 만드는지 정말 천재적인 재능으로 꽃잎을 만들더랍니다.
이 화환의 꽃을 박예본성도님 혼자서 만들었으면 엄청나게 힘이 들었을텐데 언니가 도와주는 바람에 성탄절에 맞추어서 대형 화환을 헌화하게 되었습니다.
문현진성도님은 꽃을 세워놓을 대형 화환대도 사 주시고 그리고 지난번에 두분이 교회에 올 때는 차를 빌려 주시고, 보험도 들어 주시고, 기름까지 가득 넣어 주셨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성탄절에 아이들에게 주라고 선물까지 사서 보내주셨다고 합니다.
하여튼 문현진성도님이 하시는 일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문현진성도님이 큰 축복을 받겠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운영하는 사업체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사람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고, 또 두사람에게 삼시세끼 식사도 무료로 제공해 주시고, 35만원이나 하는 원룸도 무료로 제공해 주시고, 시마다 때마다 친동생처럼 챙겨주시고, 사우나 데리고 다니고, 매일 식사에 간식까지 챙겨 주시고, 하여튼 자녀도 아니고 형제도 아닌 남에게 저렇게 사랑을 베푸는 언니는 평생에 처음 봅니다.
문현진성도님의 남편 강진수회장님은 두분에게 그랜져 차를 사 주셨다고 합니다. 차가 내일모레 26일날 나온다고 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대형화환을 만드는 일과 더불어 시마다 때마다 박예본성도님과 이중희성도님을 사랑으로 챙겨주신 김제의 미스코리아 문현진성도님과 통큰 남자 강진수회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아무쪼록 박예본성도님과 이중희성도님을 사랑해 주시는 두분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아브라함의 가문이 되시고 또 재물의 복을 받고 그리고 구원의 축복까지 받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대형 꽃 화환을 다 만든후에, 지난 금요일날 윤기원집사님과 김예슬집사님이 저녁에 출발해서 김제까지 가서 화환을 싣고 밤새도록 운전을 해서 교회로 왔습니다. 제가 새벽예배 설교준비를 하다가 새벽 두시가 넘어서 교회와 주차장 불을 환하게 켜놓고 두분이 싣고온 대형 화환을 맞이했습니다.
윤기원집사님과 김예슬집사님이 직장에서 퇴근해서 그 먼곳까지 가서 화환을 싣고오는 수고를 해 주셨기에 금번 성탄절에 이렇게 아름다운 화환이 하나님께 봉헌 되었습니다. 화환을 가져오느라 수고하신 두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조금전에 말씀드린 김진규성도님 이야기를 조금 더 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진규성도님은 공무원으로, 설천면사무소에서 평생 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술을 좋아 하셔서 평생 술로 인생을 사셨습니다.
그런데 전도를 하러 갔더니 김진규성도님이 생각보다 쉽게 예수님을 받아 드렸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나중에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방금 말씀 드린대로 김진규성도님의 누나 김도심권사님이 새벽마다 동생의 구원을 위해서 평생 기도 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딸 중에 예수믿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분이 김정임집사님입니다. 따님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지옥가면 안되니까 밤낮으로 부모님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를 하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와같이 김진규성도님 주변에 구원을 위해서 늘 기도하는 분들이 계셨기에 김진규성도님이 쉽게 마음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한 것입니다.
그래서 집안에 기도로 공로를 쌓아놓은 분이 있거나 옛날에 교회를 다녔던 경험이 있는 분은 쉽게 구원을 받습니다.
저는 종종 김진규성도님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기도를 해 드렸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김진규성도님이 병세가 악화 되어서 김해에 있는 병원으로 후송이 되셨고 얼마 후에 김진규성도님이 돌아 가셨습니다. 저는 김진규성도님의 장례식을 집례하면서 김진규성도님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김진규성도님의 아내인 정춘자집사님은 중풍으로 인해서 몸이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 나는 중풍으로 잘 걷지도 못하고 남보기에도 부끄러우니까 교회에 안나가겠습니다”하면서 교회에 나오기를 꺼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찾아가서 “비록 몸이 불편해도 살아 있는 동안에는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열심히 믿음생활을 해야 합니다”라고 권면을 드렸더니 드디어 정춘자집사님도 다리를 절면서도 지팡이를 집고 교회에 나오셔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또 한분 제 평생에 잊을수 없는 분은 정평관집사님 아버지 정효범성도님입니다. 정효범성도님은 이미 여러번 간증을 드렸기에 더 이상 말씀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정효범성도님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서 천국에 들어 가셨습니다.
이와같이 살아 생전에 예수를 믿은 사람은 복중에 복을 받은 분들입니다. 살아 생전에 예수를 믿지 못하고 죽으면 영원한 지옥불에 들어가서 영원토록 고통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 시므온과 안나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오늘 조금 더 부연설명을 하겠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 예수를 안고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그때 선지자 시므온이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고 이렇게 고백 했습니다.
“보라 이 아기는 장차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는 사람이 되리라”(2:34-35)
예수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흥하게 하거나 망하게 하는 표적이라고 시므온은 증거 했습니다. 즉 축복을 받거나 저주를 받는 표적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맞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은 사람은 영생복락이 선물로 주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안믿은 사람은 뜨거운 지옥불이 선물로 주어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축복과 저주의 바로미터인 것입니다.
이 복된 성탄절에 예수님을 믿고 예배당에 나와서 예배의 자리에 동참한 분들은 복중에 복을 받은 것입니다. 더불어서 예수 잘 믿고 하나님께 봉사하고 이웃도 섬기고 전도도 하면서 믿음 생활을 열심히 하면 하나님 앞에 갔을 때 큰 상급이 있고 영광의 면류관도 받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시므온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일평생을 기다리다가 비로소 예수님을 만나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시므온도 여느 이스라엘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와 내 민족을 구원하실 메시야 구세주가 오실것을 기다리면서 살아왔습니다.
25절에 보면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다”라고 증거 합니다. 그런데 시므온은 자기의 성공을 위한 바램이나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메시야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민족에게 임할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렸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그는 이제 나이가 들어서 모든 꿈을 접을 만한 인생의 황혼기에 처해 있었지만 그러나 시므온은 그 시대에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위로 였습니다.
시므온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영적인 안목으로 메시야 구세주를 기다린 동기가 오늘본문 25절에 나옵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경건하게 살았기에 예수님을 만나는 은총을 입게 됩니다.
요즘은 경건하게 살기가 힘든 세상입니다. 아이들이고 어른이고 노인이고 컴퓨터나 텔레비전을 틀면 온통 음란물과 방탕한 영상물들이 넘쳐 납니다.
우리가 이런 세상에서 파도와 같이 밀려오는 더러운 음란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거룩하고 깨끗한 삶을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닙니다.
제가 사회 복지사 공부를 하면서 "노인 복지론" 이라는 강의를 들었는데 그 과목에 보면 “사람이 나이가 들고 노인이 되면 외롭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남녀 관계에 대한 육체적 영상물들을 보는것을 더욱 좋아 하게 되고 이성에 대한 관심도 더욱 증가 한다”라는 이론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시므온은 나이가 많았지만 죄를 멀리하면서 깨끗하고 성결하게 살았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그는 오직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첫 성탄절에 가장 먼저 예수님을 만나는 영광을 시므온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롭고 성실한 믿음의 사람을 통해서 역사를 이끌게 하십니다. 인류 역사를 이끌어간 사람들을 살펴 보면 세상에 존재했던 나라들과 도시들의 흥망 성쇄가 훌륭한 정치가나 돈 많은 재벌이나 공부를 많이한 박사나 탁월한 군인이나 그 어떤 사람에 의해서 좌우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 하실 때 누구를 찾으셨습니까? 하나님은 오직 의인 열명을 찾으셨습니다. 예루살렘에 멸망이 임박했을 때에도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예루살렘에서 의인 한 사람을 찾으면 예루살렘을 멸망시키지 않겠노라” 라고 선언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백만명 천만명의 군대보다 하나님이 인정 하시는 의롭고 경건한 한 사람을 귀하게 보십니다. 그래서 의인 한사람은 백만명의 군대보다 강하고, 믿음으로 사는 의인 한사람은 천하보다 가치 있는 존재인 것입니다.
종말에 다시오실 예수님을 만날 사람들도 시므온처럼 경건한 사람들이 재림주 예수님을 만나서 휴거될 것입니다.
믿는 성도는 오직 성화 되어야 합니다. 영적인 능력은 신앙의 순수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과 가까워지면 하나님과는 멀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가까워지면 세상과는 멀어집니다.
구원 받아서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의 모습이 요한 계시록 14장 4절에 나옵니다.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 이더라”
예수믿은 후에는 육체의 정절을 지키고 신앙의 정절을 지킨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복락을 누린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더불어서 시므온이 예수님을 만난 또 한가지 결정적인 동기는 그가 의롭고 경건할뿐 아니라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 이었다는 것입니다.
25절 하반에 보면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라고 증거합니다. 그리고 26절에서 그는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다”라고 증거 합니다. 그리고 27절에 보면 그는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갔다”라고 증거 합니다.
이와같이 그는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이었고 성령의 지시를 받는 사람이었고 성전에 들어갈 때에도 성령의 감동을 따라 들어갔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올 때 성령의 감동을 따라서 예배드리러 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더불어 나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신 은혜가 감사해서 기쁨으로 교회에 와야 합니다. 시금치 묵다가도,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예배시간이 되면 “할렐루야 은혜 받으러 가야지! 주님이 최고지!”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교회에 오면 하나님이 기뻐 하셔서 시금치보다 몇백배 몇천배의 축복을 내려 주시고 건강도 주시고 장수와 부귀도 주십니다.
시므온은 나이가 들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데도 예배 드리러 가는 시간만 되면 기쁘고 즐거워서 신명나게 성전에 왔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도 기뻐서 그에게 성령을 충만히 부어 주시고, 놀라운 언약의 말씀을 직접 계시해 주시고, 결국은 구세주 예수님을 만나는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과거에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를 하신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정영자권사님과 박천엽권사님은 신랑 얼굴도 못보고 결혼했다고 하시니까 그런 두근거리는 만남의 행복을 체험하지 못하셨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성도님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갈 때 여자는 거울 앞에 앉아서 정성을 다해서 화장을 하고 머리도 지지고 볶고 하면서 잘 만집니다.
옷도 열심히 입어 봅니다. 향수도 뿌리고 다 준비가 되면 설레이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갑니다. 남자도 한껏 멋을내고 나가서 기다립니다.
콩깍지가 씌이면 내 주변에 아무리 예쁜 여자들이 있어도, 내 주변에 아무리 멋있는 남자들이 있어도 아무도 눈에 안들어 옵니다. 오직 사랑하는 그 사람이 나타 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그러다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설레여서 어쩔줄 모릅니다.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행복합니다. 같이 있기만 해도 시간 가는줄 모릅니다.
이와같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언제나 큰 행복이 있습니다. 시므온도 설레이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지금 시므온은 여느 노인들 처럼 나이가 들어서 인간 적으로는 아무런 낙이 없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이젠 뼈도 아프고 힘들고 하니 쉬어야 겠다”하면서 모든 일 손을 놓고 하루하루 그냥 그렇게 살아 갑니다.
그러나 시므온은 나이가 들어서 천국에 갈날이 가까웠는데도 성령충만하여, 거룩한 비젼을 가지고, 늘 성전에 나아와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첫 성탄절에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시므온은 그날도 여느때와 마찬 가지로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려고 성전에 왔습니다. 그런데 비로소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이때 시므온은 예수님을 만난것이 너무나 기뻐서 29절에서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 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당시에 하나님의 성전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있었습니다. 제사장들,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랍비들 장로들 레위인들 그리고 제사를 위해서 온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예수님 앞에 달려와서 경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시므온보다 더 잘나고 성경에 박식한 똑똑한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러나 그중에 한 사람도 예수님을 알아 본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직 한사람 나이많아 늙은 시므온 한 사람만 아기 예수님을 메시야로 알아보는 영적인 통찰력을 가졌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성령께서 그의 영안을 열어 주셔서 성전에 들어온 아기 예수가 메시야 구세주 이심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시므온은 “이제 내가 예수님을 만났으니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리고 28절에서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했다”라고 증거 합니다 아기 예수를 안았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안은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을 안아본 사람은 몇사람 안됩니다. 그중에 한사람이 바로 시므온입니다. 정말 대단한 영광입니다. 대통령하고 악수만 해도 가문의 영광으로 여깁니다. 하물며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친히 안았다는 것은 영광중에 영광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안은 시므온은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한번 안아본 일로 인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노인이 됩니다. 그래서 시므온은 2000년동안 인류역사에 가장 위대한 노인으로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여러분은 이번 성탄절에 누구를 안을 생각입니까? 시므온처럼 예수님을 안아보고 싶은분은 없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을 사모하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예수님 나도 예수님을 안아보고 싶어요!” 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다가오셔서 안아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구세주로 이땅에 오신 예수님을 안고 감격속에서 성탄과 새해를 맞이해야 합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시므온처럼 예수님을 안고 복된 성탄절을 맞이 하고 또 새로운 한해를 맞이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기도: 우리에게 4주의 기다림을 통하여 복된 성탄절을 주시니 감사 를 드립니다. 우리도 시므온처럼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께 감사하고 예수님을 높이고 예수님을 경배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의 감동으로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린 시므온처럼 우리도 온 세상에 하나님의 위로와 평화가 임하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복된 성탄절을 지내게 하여 주시고 성탄절의 주인되신 예수님만 높이는 성탄절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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