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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8년 1월7일 주일낮 고린도전서13장1-13 제일은 사랑이라

그리운시냇가 2018. 1. 7. 22:30

오늘은 새해 첫 주일입니다. 송구영신예배를 드렸지만 주일로는 첫 주일입니다. 2018년에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임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한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올 한해에도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땅 끝까지 복음이 전해지고, 영육 간에 복을 받고 질병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은 건강을 회복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요즘 새 신자들이 점점 많아져서 새 신자들에게 기독교의 진리를 가르쳐 드리려고 합니다. 사람마다 뿌리가 있습니다. 조상의 뿌리, 태어난 뿌리 등 인생의 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의 진정한 뿌리가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냥 태어났으니까 살고 떠밀려서 살아갑니다.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이 죽은 후에 어떻게 되는지를 자세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528절과 29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은 사람도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가 옵니다. 525절에 보면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산 자나 죽은 자나 그 실체를 원천적으로 들추어내는 분이 계십니다. 인간의 뿌리를 송두리째 드러내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이 예수님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나뭇잎은 초록색입니다. 보라색도 아니고 검은 색도 아니고 초록색입니다. 왜 초록색입니까? 그 나무의 주인인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여기에 대해서 이의를 달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뿌리는 예수님이 결정합니다. 시작도 마지막도 예수님이 결정합니다. 예수님은 산 자나 죽은 자가 최종적으로 만나게 되는 분입니다. 그러면 왜 어떤 사람은 저주를 받아서 심판의 부활로 나오고 어떤 사람은 생명의 부활로 나와서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립니까? 그 이유가 요한복음 523절에 나옵니다.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


하나님은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서 세상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공경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모든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그래서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심판의 부활로 저주의 부활로 나오게 됩니다.

 

반면에 예수님을 공경하는 사람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집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영생과 부활을 주시는 분이기에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공경하는 자는 생명의 부활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천국으로 데리고 가실 예수님께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오늘 여기에 모인 것도 예수님을 공경하기 위해서 모인 것입니다. 공경은 고마움이 밑바닥에 깔려서 시작되는 감정입니다. 이 세상의 경험으로는 사람이 죽으면 더 이상 그 누구도 그 사람 운명에 관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장례식을 치르면서 그냥 조용히 바라 볼 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이 죽은 이 후에도 그 사람의 영원한 운명에 대해서 관여하신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예수님께서 반드시 분류하십니다. 요한복음 522절에 보면,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라고 증거 합니다.


사람은 죽으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그래서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게 됩니다. 즉 예수 믿은 사람은 구원 받아서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고, 예수 안 믿은 사람은 지옥 불에 들어가서 뜨거운 불 속에서 앗 뜨거 앗 뜨거 하면서 영원토록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예수 믿은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기에 누구든지 예수님만 믿으면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만 붙잡고 따라가면 온갖 축복을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백기현 교수님의 간증을 보았습니다. 백기현 교수님은 2살 때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척추 결핵으로 등뼈가 곪아서 곱추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온갖 조롱과 놀림을 받으면서 자랐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그가 잘하는 것은 노래였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음악 선생님이 노래를 들어 보시더니 너는 노래를 잘하니까 성악을 해봐라라는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성악공부를 했습니다.


그는 서울대학교 음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가서 공부를 한 끝에 드디어 스물 일곱 살의 젊은 나이에 목원대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가 승승장구하며 성공의 길을 갔지만 그러나 곱추로 살아야 하는 그의 아픔과 고난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교회에서는 놀리는 사람이 없었기에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곱추로 만든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미움도 가득했습니다. 자기를 놀리는 사람들은 죽이고 싶도록 미웠습니다. 하여튼 곱추로 인생을 사는 동안에 그 고통은 평생동안 짊어지고 가야할 고통이었습니다.


55세가 되던 200524일날 아내가 교회의 부흥회에 가면서 같이 가자고 해서 자기도 모르게 부흥회를 따라갔는데 그날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회개가 터져나왔습니다. 그래서 설교가 끝난 후에 기도시간에 회개를 했습니다. 그 때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자기 손을 번쩍 들어 올리더니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팔, 다리, 어깨, 허리가 꺾이면서 치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50년 곱추로 지냈던 곱사등이 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성령님의 치료는 예배가 끝나고 집에 와서도 계속되었습니다. 밤새도록 성려님께서 자기 등과 앞으로 튀어나온 곱사등이 뼈를 치료하셨습니다.

백기현 교수님은 밤새도록 치료하시는 성령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눈물과, 콧물과, 땀을 흘리면서 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새벽 6시에 옷을 벗었는데 거울 앞에는 깨끗하게 치료괴 되어서 20센티나 키가 커진 새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백기현 교수님은 아내와 함께 울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자기 자신에 대한 미움과 그 동안 자기를 놀리는 자들을 향해서 가졌던 죽이고 싶도록 미운 감정을 다 내려놓고 새 출발을 했습니다.


그는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서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영과 혼과 골수와 뼈를 쪼개신다라는 말씀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그는 오페라 이순신을 제작했고 이탈리아 로마, 러시아 등 수 많은 국내외 공연을 통해서 이름을 떨쳤습니다. 그리고 그는 치유와 회복의 간증으로 전 세계를 다니면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토니 캄폴로 박사가 90세 이상 된 사람 100명을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앙케이트 조사를 했습니다. “만약 당신에게 또 한 번 새로운 인생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세 가지만 말씀해 주십시오.”


가장 많이 나온 응답 중에 첫 번째는 나는 내 자신을 돌아보면서 후회 없는 인생을 살겠다였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돌아보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너무나 후회스럽고 잘못된 것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에게 또 한 번 인생이 주어진다면 내 자신을 돌아보면서 후회없는 인생을 살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인생을 돌아보면 후회스러운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 그 때 그렇게 하지 말걸! 그 때 참았어야 하는건데! 내가 왜 그랬을까?” 하면서 후회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정태기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한 부부가 이혼을 했는데 여섯 살짜리 아들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가 아이를 안 맡겠다고 싸우다가 결국 아이를 고아원으로 보냈습니다. 이 아이는 자식이 없는 집에 양자로 갔습니다.


그런데 양부모가 아주 질이 나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부부는 양자로 들인 아이를 노예처럼 부려먹고 종처럼 구박했습니다. 어떤 때는 부부가 아이를 집에 남겨둔 채 며칠 씩 여행을 다녀왔는데 아이는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야 했습니다.


이 아이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양부모도 미워했지만 자기를 버린 부모에 대한 증오와 상처가 가슴 깊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 아이는 12살이 되면서부터 가슴에 칼을 품고 다녔습니다. 언젠가 자기를 버린 친부모를 만나면 죽여버리기로 결심을 했기 때문입니다.

중학교 때 양부모의 핍박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간 이 아이는 세상에서 안해 본 일이 없이 밑바닥에서 온갖 고생을 다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일이 끝나면 술로 자신을 달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결국 그는 스물 두 살에 위장이 망가졌습니다.


일하던 직장에서 보험처리를 해 주어서 위암수술을 했는데 위의 삼분의 일을 잘라냈습니다. 그 후 8개월 뒤에 다시 위암이 재발을 했습니다. 그래서 또 다시 수술을 해서 위장을 잘라내는 바람에 위장이 절반만 남게 됩니다. 그런데 6개월 후에 또 다시 위장병이 재발을 했습니다.


병원에서 그 환자를 조사한 결과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서 그를 정신과로 보냈습니다. 정신과 의사가 그 청년과 깊은 대화를 나눈 끝에 비로소 그 의사는 이 병이 6살 때 자기를 버린 부모에 대한 원한으로 인해서 생겨난 병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의사는 친부모를 찾아서 한을 풀어주는 길 만이 이 청년을 살릴 수 있는 길임을 알고 방송국에 섭외를 해서 이 청년의 부모를 찾아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래서 방송국의 도움으로 천신만고 끝에 부모를 찾았는데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고 어머니만 살아있었습니다.

병원 측에서 보낸 사회복지사가 어머니를 만나서 아들이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사정을 알려 주었습니다. 사회복지사는 어머니에게 자초지종을 다 이야기 한 후에 당신이 아들에게 가서 용서를 구하십시오! 아들의 마음을 풀어주어야 아들이 살 수 있습니다!”라고 조언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아들을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들을 찾아갔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누워있는 침대 밑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얘야 내가 네 어미다! 나를 용서해다오!” 아들은 어머니가 찾아온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그러나 아들은 어머니 쪽으로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30분을 꿇어앉아서 빌던 어머니에게 아들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를 버린 어미니! 꼴도 보기 싫어요! 가세요!”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조용히 일어나서 병실을 나왔습니다. 그 다음 날 어머니가 다시 아들을 찾아와서 또 무릎을 꿇고 빌었습니다. “얘야 에미다 나를 용서해다오! 내가 잘못했다그 날도 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어머니가 찾아와서 무릎을 꿇으면서 빈지 4일째 되는 날 어머니가 또 찾아와서 용서를 빌자 아들이 비로소 일어나서 침대에서 내려와서 어머니를 끌어안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고백을 했습니다. “엄마! 보고 싶었어요! 엄마! 한 번 만이라도 엄마를 만나서 엄마라고 부르고 싶었어요! 엄마! 사랑해요!”아들과 엄마는 오랫동안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그 뒤로 아들의 병이 낳았습니다. 깨끗하게 회복이 되었습니다.


아들의 어머니는 홧김에 이혼을 하고 아들을 버린 것 때문에 자기 아들이 그렇게 된 것을 알고 뒤늦게 후회를 했습니다이와 같이 사람은 살다보면 뒤늦게 후회하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두 번째로 또 한 번 나에게 인생이 주어진다면 진실하게 살고 사랑하면서 살겠다라는 대답이 두 번째로 많았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가식이 많고 비굴하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눈앞의 이득 때문에 양심을 속이고 불의와 타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이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번 더 인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진실하게 살고 사랑하면서 살겠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최종병기는 믿음과 사랑입니다. 그 중에서도 사랑입니다. 전에 최종병기 활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역적으로 몰려서 살해를 당했습니다. 아버지는 죽으면서 아들에게 네 누이동생을 잘 돌봐 주어라라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주인공 아들은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어서 누이동생을 보호하고 그를 끔찍하게 사랑합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여동생이 결혼식을 하는 날 병자호란이 일어나서 여동생이 청나라 군사들에게 끌려갑니다. 그래서 오빠는 아버지가 남겨준 최종병기인 활 한자루를 들고 화살통을 메고 청나라 군사들을 쫓아가서 사랑하는 여동생을 구하러 갑니다.


오빠는 엄청난 청나라 군사들을 상대하면서도 조금도 두려워 하지 않고 불안도 없습니다. 오직 담대함과 용기로 나아가서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사랑의 힘이 그로 하여금 목숨을 걸고 동생을 구해내는 일을 하게 만든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게 만드는 힘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생을 사는 동안에 사랑하지 않고 살다가 나중에 뒤늦게 후회를 합니다. 그래서 나에게 또 한 번 인생이 주어진다면 진실하게 살고 사랑을 하면서 살겠다고 고백을 한 것입니다.


제가 설교 준비를 하고 있으면 제 집사람이 종종 저에게 다가와서 저를 끌어안고 뽀뽀를 하기도 하고 사랑한다고 고백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제가 같이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고백을 하면 되는데 여보 왜 그래? 설교 준비하는데 왜 시험들게 만들어?” 하면서 제가 사모를 밀어냅니다.


그리고 나서 사모가 나가면 곧 후회를 합니다. “아이고! 사랑한다고 할 때 같이 안아주고 뽀뽀도 해 줄걸! 내가 잘못해구나!”하고 후회를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제가 먼저 끌어 안아주고 백허그도 자주 합니다. 지금 사랑하면서 살아야 후회 없는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세 번째로 나에게 또 한 번 새로운 인생이 주어진다면 보람있게 살겠다라는 대답이 세 번째로 많았습니다. 늙어서 후회가 없도록 보람 있게 사는 것을 원했습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니, 지금까지 부질없는 일만을 위해서 살았다는 말입니다. 한 평생을 숨 가쁘게 살아왔는데 막상 뒤돌아보니까 제대로 해놓은 것이 없어서 후회가 됩니다.


며칠 전에 제가 생일을 맞이했습니다. 여러 성도님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사랑을 받고 나니 힘들고 피곤한 목회 여정에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올 해부터는 가능하면 실명을 거론하지 않기로 했기에 선물을 주신 분들과 식사를 대접해 주신 분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하여튼 성도님들의 사랑에 큰 힘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전에 조정숙 권사님이 환갑이 되었을 때 환갑을 맞이한 권사님이 아직도 젊고 예쁘네!”라고 생각을 했는데 어느덧 저도 60세가 훌쩍 넘었습니다. 생일날 밤에 조용히 뒤돌아보니까 이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사는 동안에 행한 일이 죄와 허물로 얼룩진 삶뿐이요! 무엇하나 제대로 한 일이 없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숙연해 졌습니다.

사랑도 많이 식어진 것 같아서 회개를 했습니다.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사랑이 식어진 성도, 사랑이 식어진 주의 종, 사랑이 식어진 교회는 아무런 동력이 없습니다. 사랑이 식어졌다는 것은 사명이 끝났다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은 성령이 충만해야 하고 또 가슴이 뜨거워야 합니다. 부부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이 식어지면 그 때부터 온갖 문제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납니다. 그래서 부부 상담을 하는 상담가들은 첫사랑을 잃고 밤낮 쌈박질만 하는 부부들에게 추억여행을 권한다고 합니다.


부부가 처음 만났던 곳, 첫키스를 나누었던 곳, 프로포즈를 했던 곳,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던 곳으로 다시 여행을 해 보라고 권면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사랑의 추억이 깃든 곳을 같이 돌아봄으로써 잃어버린 첫사랑의 감격을 되찾고 사랑도 회복하라고 그런 프로그램을 권면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첫사랑을 회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첫사랑은 나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신 은혜를 깨닫고 주님께 헌신하기로 작정한 때의 사랑을 말합니다.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 주님이 너무나 좋아서 주님! 주님은 나의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주님 사랑해요!”하면서 감격과 흥분 속에서 사랑을 고백하던 사랑이 첫사랑입니다. 주님만 생각하면 감사하고, 고맙고, 기뻐서 찬송이 나오고 눈물이 앞을 가렸던 사랑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내 놓겠다고 고백하면서 주님을 섬기던 뜨거운 사랑이 첫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잊거나 망각하면 안 됩니다.

고린도전서 131절로 3절을 보면 이렇게 증거 합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내가 순교한다 할지라도, 내가 누군가를 대신해서 죽을 정도로 엄청난 사랑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주님을 향한 사랑이 아니라면 그런 희생과 헌신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상태는 어떻습니까? 첫사랑에 대한 열정이 계속되고 있습니까? 그 감격과 그 은혜를 유지하고 있습니까?

 

창세기 28장에 보면 죄를 짓고 도망가던 야곱이 돌베개를 하고 누워서 자다가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야곱이 꿈을 꾸는데 사닥다리가 하늘에 닿았고 하나님의 사자가 사닥다리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꿈을 꾸게 됩니다. 그 꿈을 통해서 야곱은 비로소 하나님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과 함께 늘 예배를 드리면서 살았지만 습관적인 예배를 드리는 동안에는 한 번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도망가다가 광야에서 비로소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죄를 짓고 도망치던 야곱을 만나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짓고 도망치는 야곱을 야단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야곱을 긍휼히 여기시고 그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제부터라도 다시 마음을 새롭게 하고 나와 함께 동행하자!”라고 하시면서 언약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첫 번째 언약은 내가 너에게 주는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라는 언약이었고 두 번째 언약은 그 꿈을 다 이루기까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않겠다라는 언약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감격과 두려움이 교차하면서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두렵도다. 이곳이여, 여기가 하나님의 전이요, 여기가 하늘이 문이로다 야곱은 일어나서 자기가 베고 자던 돌을 세우고 거기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야곱은 평생에 처음으로 뜨거운 마음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혼자 드리는 예배였지만 성령이 충만해서, 기쁨이 충만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비로소 새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그 동안 자기가 가졌던 두려움과, 실패와, 거짓된 자아와, 한발 차이로 늦게 태어나서 장자권을 뺏긴 서러움 등 모든 아픔의 상처까지 다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 날 야곱은 믿음없이 살던 부끄러운 과거와 단절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만 바라보게 됩니다.

 

사람이 은혜를 받고 나면 그 때부터 마음에 평안이 있고 기쁨이 생깁니다. 천국이 어디입니까?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천국입니다. 야곱은 평생에 처음으로 벧엘에서 천국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감격해서 여기가 하나님의 집이요 여기가 하늘의 문이로다(28:17)라고 고백을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내 마음 속에 있는 미움과 상처를 다 씻어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천국의 기쁨 때문에 세상을 초월하게 됩니다. 사랑이 가득해서 미운 사람이 없어집니다. 힘이 넘칩니다.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성령 충만해서 외삼촌 라반의 집까지 약 1600리 길을 찬송하면서 신나게 갔습니다. 부산에서 평양보다 먼 거리를 갔는데도 그렇게 멀고 험한 길을 단숨에 갔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오직 하나님이 주신 말씀만 생각하면서 갔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28:15)


야곱은 그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은혜가 충만해서 하란 땅까지 간 야곱은 평생에 처음으로 놀라운 고백을 하게 됩니다.


야곱은 한달 만에 만난 양치기들에게 내 형제여라고 고백합니다.(29:4) 이 이야기는 전에 한 번 말씀드렸습니다. 이 고백은 야곱에게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고백입니다. 지금가지 야곱은 자기가 만난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경쟁의 대상이요 경계의 대상이었습니다. 형님조차도 이겨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고 보니까 사람들이 더 이상 경쟁의 대상이나 원수가 아니라 형제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서 은혜를 받은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산천도 초목도 새 것이 되었고 죄인도 원수도 친구로 변한다 새 생명 얻은 자 영생을 맛보니 주님을 모신 맘 새 하늘이로다”(436)


한 번 다 같이 부르겠습니다. 산천도 초목도 새것이 되었고 죄인도 원수도 친구로 변한다 새 생명 얻은 자 영생을 맛보니 주님을 모신 맘 새 하늘이로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사람도 세상도 모두가 새 하늘과 새 땅처럼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낯선 땅에서 처음 만난 그들과 신나게 이야기를 주고 받습니다. 지금까지는 간사하고 교활하게 살았고 또 사기꾼처럼 살았고 자기 고집대로 살았지만 이제는 감사와 감격이 넘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늘 감격과 흥분이 넘칩니다. 야곱은 하란에 도착해서 목자들과 대화를 나눈 후에 드디어 라헬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녀를 만나자 마자 펑펑 울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내가 이곳까지 무사히 도착했구나!”“벧엘에서 나에게 나타나셔서 나를 지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하나님이 분명히 나를 보호해 주셨구나!”“정말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하나 하나 이루어지고 있구나!”그래서 야곱은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내 꿈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감격과 흥분의 눈물이 흘러 나올 때 그 사람은 비로소 인생의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야곱은 부모 형제를 떠나서 먼 타향으로 가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이후부터는 오늘 밤에는 내가 어디서 잠을 자지? 오늘은 무엇을 먹지? 오늘은 얼마를 벌어야 하지?”하는 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고 있다는 것과 더불어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고 계신다는 그 분명한 사실 때문에 수천리 먼길을 단숨에 갔고 또 외삼촌의 딸 라헬을 만나자 하나님의 뜻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그 분명한 사실 때문에 야곱은 라헬 앞에서 감격스러운 눈물을 힐리면서 소리내어 목놓아 울었습니다.


라헬에게 홀딱 반한 야곱은 라헬을 위해서 7년을 하루 같이 일을 했습니다. 이게 사랑입니다. 사랑이 충만하면 힘든 일을 해도 힘든 줄 모릅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을 위해서 시간과 정성을 투자합니다. 그래서 저렇게 하루에 종이 꽃을 여섯 송이 밖에 못만다는데도 밤 열시에 일이 끝나고 퇴근해서 열한시부터 종이 꽃을 만들기 시작해서 새벽 세시까지 밤새도록 하루에 여섯 송이씩 꽃을 만들어서 한달 만에 꽃을 완성해서 저렇게 크리스마스 때 하나님께 아름다운 화환을 바칠 수 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3000만원 상당의 옥합도 아낌없이 깨뜨려서 부어 드립니다.


내 아버지를 구원해 주신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서 아버지가 물려준 일억 원 상당의 집과 땅도 하나님께 아낌없이 드립니다.


자기는 화장품도 안사고 밤낮 쌩얼로 살고 또 집에 가보면 먹을 것도 제대로 없습니다. 그런데도 시골교회인 우리 교회가 성전건축을 한다니까 천만 원 상당의 냉 난방기를 아낌없이 헌신하더니 다시 4000만원의 건축헌금을 드리고 프로젝터를 헌물하고 끝없이 헌신하는 여인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절대로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를 합니다.


인생이 무엇입니까? 인생은 사랑입니다. 사랑의 승리자가 인생의 승리자입니다.

 

20세기 최고의 성경신학자인 C.S 루이스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천국은 가슴 설레는 첫사랑을 만나서 축제의 잔치와 향연을 벌이는 곳이다


천국은 우리가 사랑했던 예수님을 만나서 파티를 벌이는 잔치자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갈 때 가져가는 것이 있습니다. 다른 것은 다 이 땅에 놓고 가지만, 나의 믿음과 나의 인격과 나의 행실은 가져갑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늘나라의 상급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전도한 사람들도 언젠가는 천국에서 다 만나게 됩니다. 부모님을 전도했으면 부모님을 만나고 자녀를 전도했으면 천국에서 자녀를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몇 명을 전도했느냐를 보시고 천국에서 영광의 면류관과 아름다운 집을 선물로 줍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지고 가는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한 경험들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했던 경험들, 하나님이 맡겨주신 교회에서 교회를 사랑하고 성도들을 섬긴 경험들, 이웃을 사랑한 경험들, 이런 사랑의 행위는 천국에서 모두 다 상급으로 돌려받게 됩니다. 그래서 다른 것은 다 사라져도 사랑으로 행한 일들은 끝까지 죽어서도 나를 따라옵니다.

돈 쓰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헌금 드린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성전 건축할 때 얼마나 건축헌금을 드렸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사업에 얼마나 돈을 쓰는지가 하나님 사랑의 바로미터입니다.

 

사랑은 아낌없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겼을 때 이해하고 덮어가고 긍휼히 여길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사랑 밖에는 없습니다.


중국의 문화혁명 때 여러 해 동안 갇혀있다 풀려난 중국신앙인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자기 사무실에서 근무하다가 갑자기 체포되었습니다. 당시 그의 아들은 일곱 살이었습니다. 그는 여러 해 동안 감옥 속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수많은 고통이 있었지만 그의 삶에 의욕을 안겨다 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침이면 어김없이 붉은 연이 하늘을 나는 것을 감옥 창 틈사이로 보게 된 것입니다. 그 연은 자기가 아들에게 만들어준 연이었습니다. 그 연은 어린 아들과 함께 날리던 연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바람만 불면 밖으로 나가서 함께 연줄을 붙잡고 힘차게 연을 날렸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감옥에 갇히자 아버지가 갇혀있는 감옥 저 편에서 날마다 연을 날리면서 아버지를 그리워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날리는 연을 바라보면서 소망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절망적인 감옥 속에서도 날마다 아들이 날리는 그 연을 바라보면서 소망을 품고 지냈습니다. 그래서 결국 살아 나와서 가족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기도의 연을 날리면 그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어서 다시 축복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날마다 찬송의 연을 날리면 그 찬송의 연이 우리를 사탄마귀와 더러운 귀신의 역사에서 벗어나게 하고 감사의 자리로 나아가게 만듭니다.

 

지금 내 몸에 병이 있고 삶이 어려워도 주님을 향하여 날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의 연을 날리면 하나님이 건강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교회 일을 하다가 상처받고 인간관계에 갈등이 있어도 변함없는 마음으로 교회를 사랑하고 또 주의 종과 성도를 사랑하는 연을 날리면 축복의 보고가 열리는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2018년에는 기도의 연을 날리고 찬송의 연을 날리고 사랑의 연을 날려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3장에서 계속해서 반복하는 말씀은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라는 말씀입니다. 인생의 평가 기준은 오직 하나,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그래서 2018년도에 우리 교회의 표어도 사랑과 섬김을 영혼을 구원하자라고 정했습니다.


아무쪼록 2018년에는 사랑과 섬김으로 영혼을 구원함으로서 주님께 칭찬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출처 : 보물섬남해세광교회
글쓴이 : 행복을 주는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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