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포도나무

[스크랩] 2018년1월14일고후5장13-21절 강권하시는 주님의 사랑

그리운시냇가 2018. 1. 15. 10:10


사랑은 신기합니다. 베풀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사랑을 받는 것보다 사랑을 베풀 때 베푸는 사람에게 오히려 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실제로 한 연구에서 그것이 증명되었습니다. 미국 미시간대학교 사회연구소의 스테파니 브라운”(Brown) 박사님은 심리학 전문지인 심리과학”(Psychology Science) 이라는 잡지에 남을 돕고 사는 사람이 그렇지 않는 사람보다 훨씬 더 오래 산다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브라운 박사는 무작위로 선정된 423쌍의 장수한 노인 부부를 대상으로 5년간 조사를 했는데 장수한 노인들은 하나같이 이웃이나 친구, 또는 친척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살아온 부부였습니다. 손주나 아이들을 돌봐준다든지, 집안일을 도와준다든지, 어려운 사람들을 도운다던지 자선단체에 조금씩이라도 도움을 주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들은 아무 조건 없이 남을 도와주면서 살았습니다.


브라운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남을 도와주지 않고 오직 자기만 챙기고 자기만 아끼면서 사는 사람은 남을 도와주면서 사는 사람보다 일찍 죽을 가능성이 두배 이상 높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남을 도와줄 때 내 마음이 기쁩니다. 삶에 보람을 느낍니다. 그런 보람과 기쁨이 건강하게 만들고 장수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라는 계명입니다. 로마가 세계를 지배할 때, 사도요한은 도미시안 황제의 핍박으로 밧모섬에 유배가 됩니다. 그런데 아무런 소망이 없는 절망적인 섬에서, 하나님은 사도요한에게 놀라운 천국과 지옥의 환상을 보여 주십니다. 그래서 어려운 일이 생기고 고난스러운 일이 생길 때 그때가 하나님의 은혜가 예비된 때 임을 알게 됩니다.


AD 96년에 사탄마귀의 사주를 받고 기독교를 핍박하던 도미시안 황제가 죽자 사도요한은 밧모섬의 유배에서 풀려나게 됩니다.


오늘 새벽에 우리들교회의 김양재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는데 세상 권세 잡은 자들이 하는일은 하나같이 사탄마귀짓만 한다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권세잡은 자들 중에 존경할 만한 지도자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사탄마귀가 준 권세로 마귀짓만 한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로마의 황제들도 사탄마귀짓만 했습니다. 300년동안 기독교를 핍박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사일생으로 풀려나서 다시 에베소 교회로 돌아온 사도요한은 강단에 서서 설교를 했는데 그때 사도요한의 18번 설교는 소자들아, 서로 사랑하라!”라는 설교였습니다.


90세가 넘은 사도요한이 몸이 불편하니까 제자들이 부축을 해서 설교강단 의자에 앉혀 드린후에 선생님, 오늘 우리에게 새로운 말씀을 들려 주십시요하고 부탁을 하면 사도요한은 백발의 노구로 두손을 치켜 들고서 소자들아 내가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라는 설교를 했다는 것입니다. 


밧모섬의 유배에서 풀려난 사도요한이 마지막으로 깨달은 진리는 서로 사랑하라라는 진리였습니다.


교통을 원활하게 하려고 만든길이 일방통행입니다. 일방통행은 한쪽으로만 진행하는 길입니다. 사랑에도 일방통행이 있습니다. 사랑의 일방통행은 짝사랑입니다. 짝사랑은 행복하지 못합니다. 혼자서 사랑하면 짝사랑하는 사람은 애가 타고 너무나 힘듭니다. 서로 사랑해야 행복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랑의 쌍방통행을 말씀하셨습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사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들 부부에게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부인이 이름 모를 병이 들어서 앓아 누웠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남편은 중병에 든 아내를 치료해 주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함에 심히 괴로웠습니다. 고민하던 남편이 어느날 한가지 묘안을 짜냈습니다. 아내를 속이기로 한 것입니다.


남편은 시장에 가서 값싼 인삼 한 뿌리를 샀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여보 내가 산삼을 캐는 꿈을 꾸었어 내가 산에 다녀올게!” 하더니 하루종일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 왔는데 여보! 깊은 산에 갔는데 꿈속에서 본것처럼 산삼을 발견했어 그래서 캐왔으니까 당신이 이걸 먹으면 분명히 나을 거야! 꼭꼭 씹어서 먹어봐!”


아내는 남편의 사랑과 정성에 감격하면서 남편에 캐온 산삼을 잔뿌리까지 꼭꼭 씹어 먹었습니다. 모처럼 밝은 얼굴로 산삼을 먹는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은 마음이 기뻤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내가 그 가짜 산삼을 먹은 후에 병세가 금방 호전이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은 몹시 기뻤습니다.


아내의 건강이 완전히 회복된 후에 어느날 남편은 가짜 인삼을 산삼이라고 하면서 아내를 속인 죄책감에 마음이 편칠 않아서 자초지종을 털어놓고 솔직하게 용서를 빌었습니다.


남편의 말을 다 듣고난 아내가 미소를 띠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걱정마요! 나는 산삼도 먹지않았고 인삼도 먹지 않았어요! 난 당신의 사랑을 먹고 나은 거예요! 당신의 사랑이 나를 낫게한 거예요!”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산소가 없으면 질식해서 죽는 것처럼 사랑이 없으면 언젠가는 망가지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가난하고 어려워도 사랑만 있으면 살아갈 의미와 소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하면서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제가 전에 예수님 짜리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물건의 가치를 매길 때 이건 얼마짜리입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이 반지는 얼마짜리입니다라고 말을 하듯이 예수믿은 우리의 가치는 예수님 짜리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대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예수님의 보혈의 피 값은 액수를 계산할 수 없는 무한 값”(priceless)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 짜리입니다. 그 피로 우리가 죄사함 받고 지옥에서 건짐을 받아서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의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칭의”(稱義)라고 합니다. 우리가 무슨죄를 지었던지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죽으셨기에 우리가 의인이 된 것입니다.


로마서833절로 34절에 보면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기에 우리의 죄 값을 다 치러주셨습니다. 죽은후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올라가신 후에도 계속해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 하시고, 우리를 변호하면서 우리 편을 들어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누구도 감히 우리를 죄인이라고 고발하거나 나쁜 사람이라고 정죄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1511절로 32절에 보면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둘째 아들이 부자 아버지에게 생떼를 부립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후에 나에게 돌아올 유산을 미리 땡겨서 나에게 주세요!”하고 억지를 부려서 결국 탕자는 아버지의 재산을 받아가지고 멀리 떠나갑니다.


탕자 아들은 허랑방탕하면서 아버지가 준 그 많은 재산을 다 탕진하고 거지가 됩니다. 결국 굶어 죽을 지경이 되자 탕자 아들이 비로소 회개하고 돌아옵니다.


그때 아버지는 돌아온 탕자 아들에게 지나간 과거를 묻지 않았습니다. “그 많은 돈을 다 어디다 썼냐? 집나가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냐? 이게 무슨 꼴이냐?” 라고 다그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많은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탕자 아들을 무조건 받아주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돌아온 탕자를 환영하면서 잔치를 벌였지만, 그런 아버지를 아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화를 내고 원망불평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큰 아들입니다.


큰아들은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에게 충성을 다한 나에게는 염소새끼 한 마리라도 잡아서 대접을 해 주지 않으면서 창기와 함께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저 탕자동생에게는 어떻게 소를 잡아서 잔치를 벌이면서 맞이할 수가 있습니까?”


화가난 큰아들은 잔치가 벌어진 집으로 들어오지도 않고 집 밖에서 불만이 가득한 모습으로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큰아들에게 다가가서 얘야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서 돌아왔는데 왜 미워하느냐? 오히려 환영하고 즐거워 하는게 마땅하지 않느냐? 내가가진 모든 것은 다 네 것이다라고 하면서 큰아들을 위로했습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아버지는 집을 나가서 방탕하게 살았던 아들의 허물을 들춰내거나 책망하거나 꾸짖지 않았습니다. 무조건 받아주고 무조건 사랑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왜 탕자의 비유를 가르쳐 주셨습니까? 이 비유는 오늘날 교회에 대한 비유입니다. 큰아들은 먼저 믿은 성도들이고 탕자는 뒤늦게 교회에 들어온 초신자들입니다.


민저 믿은 성도들은 오랜 세월동안 충성을 다한 성도들입니다. 탕자는 개판치다가 예수를 믿거나 또는 뒤늦게 들어온 초신자들입니다.


그런데 오래된 성도들이 가만히 보니까 개판치던 성도와 초신자들이 교회에 와서 더 사랑을 받고 더 칭찬을 받습니다. 그래서 오래된 성도들이 시기질투가 나서 회개하고 돌아온 성도나 초신자들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결국 사랑이 메마른 큰아들이 돌아온 탕자동생을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것처럼 교회에서도 그런일이 벌어져서 하나되지 못하고 갈등이 생길 것을 아시고 예수님께서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아버지같은 사랑을 가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모든 것을 수용하고 무슨일이 벌어져도 덮어갑니다.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데모를 했습니다. 심하게 체벌하는 한 선생님의 처벌을 요구하면서 데모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학교 당국이 이를 거절하고 주동 학생들을 징계하려고 하자 학생들은 운동장에 모여서 데모를 하다가 교무실로 몰려갔습니다. 그러자 교사들이 슬슬 피해서 다 도망나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지긋한 선생님 한분이 교무실에 남아서 학생들에게 호통을 쳤습니다. “! 이놈들아! 이게 뭐하는 짓이야? 썩 나가지 못해!” 그러자 흥분한 몇 명의 학생들이 자기들을 야단치는 선생님을 구타했습니다.  선생님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매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선생님이 팔로 눈을 가리고 매를 맞았습니다.


경찰이 출동하고 사태가 수습되자 선생님을 구타한 학생들이 그 선생님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 죽을 죄를 지었다고 빌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일으키면서 잘못을 깨닫고 뉘우쳤으니 됐다! 일어나라!”하더니 학생들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앞으로 잘해라!“ 하고 위로를 했습니다.


그러자 그중에 한 학생이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 매를 맞으실 때 왜 눈을 가리셨어요?”


그러자 선생님이 빙그레 웃으면서 , 그건? 나를 때리는 녀석을 보고싶지 않아서 눈을 가렸지! 나도 인간인지라 만약에 나를 때리는 녀석을 보게되면 그 녀석을 볼 때 마다 두고두고 나쁜 감정을 품게 될까봐서 눈을 가렸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은 모두다 고개를 떨구고 더욱 진심으로 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그 아이들은 모범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이 선생님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허물과 죄를 보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무슨죄를 지었던지 다 용서하고 사랑하십니다.


로마서832절에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증거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도 보내 주셨지만 그와 함께 모든 것을 다 주신다고 말씀 하십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살아갈 인생도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1~3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다 돈 없으면 노후에 어떻게 사나?” 하고 걱정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노후대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는 행복하게 살다가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사랑은 기적을 가져옵니다. 미국의 피츠버그의 한 가구점에서 일하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가게 문 밖에서 서성이는 노인을 발견하고 나가서 뭘 하시는지 물었더니 그 노인은 여기서 아들을 만나기로 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모시고 들어와서 불을 쬐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청년이 대신 밖에서서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한참을 밖에서 기다렸더니 한 신사가 나타났습니다. 알고 보니 그 신사는 당대 최고 부자인 강철왕 카네기였습니다. 사연을 들은 카네기는 그 청년에게 소원을 하나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청년은 사양하다가 강권에 못 이겨서 작은 가구점을 하나 차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카네기는 그 청년에게 가구점을 차려 주었습니다. 그 소문이 퍼지자 청년이 시작한 가구점은 입 소문이 나서 점점 잘 됐고 나중에 그 청년은 큰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작은 사랑을 베풀었는데 그게 인생을 뒤바꾸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나와 상관없는 나그네에게 친절을 베풀면 복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131절로 2절에 보면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예수님께서도 말씀 하시기를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10:42)


이 말씀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남을 사랑하다 보면 결국 자기에게 유익이 오고 상급이 예비됩니다. 사랑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존재의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심으로서 서로 섬기고 봉사하는 사랑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 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13:14-15)


먼저 사랑하고 먼저 본을 보이고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입니다.


며칠전에 박예본성도님과 통화를 했는데 목사님! 우리 가게에 매일 오셔서 술을 서너병씩 마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런데 어제는 그분들에게 아저씨들! 이렇게 술만 마시면서 지낼때가 아니예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해요! 예수님을 믿으면 너무나 좋아요 아저씨들도 예수님을 믿으셔야 해요!하고 이야기를 했어요!"합니다. 


술마시는 4050대 노가다 아저씨들에게 예수 믿으라고 이야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잘못하면 술마시는 분들에게 얻어 터지든지 개망신을 당할 지도 모르는데도 담대하게 예수 믿으라고 전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중에 한분이 그럼 일요일날 교회갈 때 나를 좀 교회에 데리고 가 주세요!”하고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소망이 없는 세상에서 날마다 술로 인생을 달래고 있는데 그분에게 예수님을 믿으면 새로운 인생을 살수가 있다고 했더니 그분이 자기를 교회에 데리고 가 달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가장 싫어했던 사람입니다. 예수믿는 사람만 보면 경기를 하면서 싫어했던 사람입니다. 나중에는 나라에서 권세를 받아서 예수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는데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가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기적적인 사건으로 예수님을 만난 바울사도는 그때부터 자기의 생각을 돌이키고 그렇게도 미워했던 예수님을 믿으라고 증거하는 사람이 됩니다.


최근에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최예진성도님의 친구중에 예수믿는 아버지 예수믿는 이복 어머니에게 큰 상처를 받아서 예수믿는 사람들만 보면 경기를 하면서 싫어하는 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그분에게는 예수믿는 사람들이 진절마리 나도록 미워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예수믿는 부모와 형제들이 얼마나 자기를 괴롭히고 핍박하고 상처를 많이 주었는지 그 상처 때문에 예수믿는 사람만 보면 학을 띠면서 미워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서 사랑도 없고 배려도 없이 자기 감정대로 자기 고집대로 사는 사람들 때문에 구원의 길이 막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구원의 길을 가로막고 서 있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라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예수를 잘못믿는 사람들 때문에 천국에 가야할 사람이 천국에 못들어가는 것을 예수님은 탄식하시면서 그런 일을 행하는 너희는 지옥불 속에서 영원토록 고난을 당할 것이라고 저주를 선포하셨습니다.


제가 평생에 잊지 못할 몇가지 사건이 있습니다. 그 사건들 때문에 하나님앞에서 회개를 많이 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교사로 재직중에 감정적으로 아이들을 체벌해서 상처를 준 사건입니다.


두 번째는 저한테 사랑의 배신을 당해서 상처를 받은 여자에 대한 회개입니다.


세 번째는 군대에 있을 때 있었던 사건입니다. 겨울에 살을 에이는 추위에 동계훈련을 나갔습니다. 다섯명씩 조를 짜서 땅을 파고 하룻밤을 땅속에서 자는 훈련을 했습니다. 그때 조원들 다섯명이 하루종일 땅을 파서 참호를 만들고 그 위에 나뭇가지를 덮고 다시 거적대기와 푸댓자루를 덮은후에 다시 흙을 덮고 그 속에 들어가서 잤습니다.


그런데 한밤중에 두시경에 잠이깼는데 산소가 부족해서 그랬는지 숨이 막혀서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차례대로 누워 있는데 참호 입구쪽에 누워있는 졸병이 나가야 밖으로 나갈수가 있기에 졸병에게 잠간 밖으로 나가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그러자 졸병이 밖으로 나갔습니다. 저도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추운지 일분도 못되어서 다시 참호 속으로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들어가면 얼마 못가서 또 질식할 것 같아서 그 졸병에게 너는 취사병 이니까 저기 취사장에서 자면 안되겠냐?”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임시 취사장에는 불도 지펴져 있고 텐트도 쳐져 있으니까 그곳에 가서 자라고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러자 그 졸병이 취사장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동계 훈련이 끝난후에 부대로 돌아와서 식사를 하러 식당에 갔더니 식당의 고참병장 취사병이 배식을 하면서 저에게 김상병! 동계훈련때 우리 취사병을 참호에서 내보냈다면서! 그래도 되는건가? 우리 아이가 밤새 잠도 못잤다는데!”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알고 보니까 그 졸병이 취사장으로 갔는데 잘곳도 마땅치 않고 해서 밤새도록 모닥불 옆에서 밤을 샌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죄송합니다!”하고 사과를 했습니다.


그 사건이 두고 두고 일생동안 제 마음에 걸렸습니다. 저는 그 사건을 생각할 때마다 그 취사병이 나 때문에 예수믿는 사람을 증오하면서 구원의 길을 외면했다면 내가 바로 연자맷돌을 목에걸고 바다에 빠져 죽어 마땅한 자구나라는 생각에 늘 회개를 했습니다.


천국길을 가로막고 실족케 하는 죄는 죽어 마땅한 죄입니다. 인생을 돌아볼 때 그런 큰 죄를 지었던 바울사도는 예수님을 만난후에 자기가 살아온 인생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180도 선회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14:8) 라고 고백을 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믿기 전에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고, 최고의 학벌을 가졌고 국회의원에 부자에 권세있는 배경으로 출세 가도를 달렸습니다. 그는 고생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믿고 나서 깨닳은 후에 예수님을 전하는 선교사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을 잘 아는 베스도라는 로마 총독은 사도 바울에게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하는구나”(26:24) 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우리가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후에 나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신 예수님의 사랑에 감복해서 용광로와 같이 활활 타오르는 사랑과 열정이 넘쳤습니다. 그래서 미쳤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복음전하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바울사도가 예수님에게 미쳐서 살아간 이유가 오늘 본문 고린도후서514절에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예수님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시기에 힘들고 어려워도 기쁜 마음으로 복음전하는 사명을 감당한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자기를 아낌없이 바쳐서 희생한 사랑입니다.


어느날 한 아이가 아버지와 함께 수백명이 타는 유람선을 탔습니다. 그 아이는 강아지를 데리고 배를 탔습니다. 이 아이가 강아지와 함께 갑판 위에서 공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공을 던지면 강아지가 그 공을 물고 왔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공을 잘못 던져서 공이 바다에 빠졌습니다. 그러자 공을 따라가던 강아지가 바다에 빠진 공을 건져오려고 바다로 뛰어 들었습니다. 바다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강아지를 본 아이는 놀라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선장실로 달려가서 선장님에게 강아지가 빠졌으니 배를 좀 멈춰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선장은 단호하게 거절을 했습니다. 강아지 한 마리 때문에 이 커다란 배를 멈출 수는 없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선장에게 사정을 해도 선장이 말을 들어주지 않자 아이의 아버지는 다시 돌아와서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 속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강아지를 구하려고 배에서 뛰어 내린 것입니다.


선원이 달려와서 선장에게 상황 보고를 하자 선장은 아이의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서 배를 멈췄고 아버지를 구하면서 강아지도 건져 냈습니다. 강아지 한 마리 때문에 커다란 배를 멈출 수는 없었지만 그러나 한 사람의 생명이 달려 있는 문제 앞에서는 아무리 큰 배라도 가던 길을 멈추어야 합니다. 배보다 생명이 더 고귀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세상 죄악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저와 여러분을 구원 하시려고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와 절망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죽어서 지옥불에 들어갈 우리를 건지시려고 세상으로 뛰어들어 오셨습니다. 그래서 마른 막대기 보다도 못하고 지렁이보다 못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구원 받아서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런 엄청난 사랑을 깨닳은 사도요한은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4:10) 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사랑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우리는 늘 묵상하고 또 감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그런 주님의 사랑이 자기를 강권하시기 때문에 어려운 선교사역을 감당하게 되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도 강권하시는 사랑의 힘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전쟁 직후에 나환자촌을 방문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 방문객이 나병환자의 상처를 싸매어 주는 광경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나는 백만 불을 준다 해도 저 일은 할 수 없어


그러자 그 이야기를 들은 간호사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사실은 나도 할 수 없습니다! 단지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시기에 이 일을 할 뿐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면 예배를 드리는 것이 세상에서 최고의 기쁨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면 복음을 전하는일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보람과 사명을 느낍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시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고 고백한 사도 바울처럼, 우리도 사랑의 기적을 만들어 갈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시면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우리도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함을 받고 새로운 한 해 동안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삶에 사랑의 발자취를 남기면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출처 : 보물섬남해세광교회
글쓴이 : 행복을 주는사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