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에 제가 육순잔치를 했습니다. 그런데 육순잔치에 오신 분중에 한분이 저에게 "육갑잔치를 하게 된것을 축하 드립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회갑잔치와 육순잔치가 생각이 안나서 육갑잔치라고 말씀을 하신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육갑을 떠는 육갑잔치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요즘은 치매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말을 해야 하는데 말이 생각이 안납니다.
아기돼지 삼형제 라는 유명한 동화책이 있습니다. 아이 엄마가 이 책을 사려고 책방에 갔는데 책 이름이 생각이 안나서 "돼지고기 삼형제 주세요"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점원이 "아 아기돼지 삼형제요!"하고 책을 찾아 주더랍니다.
커피 전문점에 주문을 하러 갔는데 "아메리카노"를 주문해야 하는데 자기도 모르게 "아프리카노" 주세요 하고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우리 사모님도 열쇄 잊어버렸다고 열심히 찾다가 "아이고 열쇄를 손가락에 끼고 있는데 몰랐네!"합니다.
아이스크림 사러 갔는데 "설레임"이 생각이 안나서 "망설임 주세요"하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철학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말 가운데 “실존”(實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유명한 실존주의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말하기를 사람은 “죽음에 이르는 병 가운데서 실존을 발견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그는 죽음에 이르는 병은 바로 절망이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절망에 사로잡힌 인간은 예수님을 통해서만이 구원받을수 있으며 죄를 해결 받음으로서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칼 야스퍼스”는 “난파(難破) 된 삶에서 실존을 발견하게 된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떤 방법도 의존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을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가 경험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 하려면 철저하게 낮아져서 겸손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겸손의 성품을 갖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수도 없고 하나님의 축복을 맛볼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 하려면 어린아이처럼 되어서 하나님의 품에 안길때 복을 주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열심히 일을 하면서 사시던 때만해도 우리에게는 가정이 있었습니다. 태산같이 든든한 아버지와 사랑이 가득한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학교에는 하늘같은 선생님들이 계셨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종교계든 예술계든 교육계든 각 분야에서 존경받는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렸을때는 동네 어른들을 만나면 고개를 90도로 숙이고 겸손하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존경과 신뢰가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자녀들도 아버지, 어머니를 존경하지 않습니다. 학생들은 선생님을 무시합니다. 심지어 학생들이 선생님을 때리고 욕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대통령 알기를 동네북같이 여기면서 살아갑니다. 나라와 민족안에 아무도 존경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저 나만 잘났다고 설치는 사람들 뿐입니다. 한탕주의와 이기주의가 판을 칩니다.
동네마다 거리마다 정욕에 굶주린 남자들이, 여자들을 유린하려고 두루돌아 다니고 있습니다.
예의범절이 훌륭하다고 해서 붙여진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도 이제는 더 이상 소용이 없습니다. 수틀리면 부모고 형제고 이웃이고 무조건 죽입니다.
큰소리치는 사람이 이기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여기 저기서 다들 목청을 높여서 큰소리를 질러 댑니다. 사회도 나라도 점점 무너져 갑니다. 세울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127편에 보면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네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라고 증거 합니다.
이런 새상에서 우리에게 잘되는 길과 행복의 길을 가르쳐 주시는 분은 오직 한분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세가지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라고 증거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영혼이 잘되는 복, 범사가 잘되는 복, 그리고 건강한 복이 임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범사가 잘되는 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심을 믿고, 범사가 잘되게 하시는 분인 줄도 믿어야 합니다.
건강의 복이나, 범사가 잘되는 복은, 영혼이 잘되는데서 부터 따라오는 복입니다. 영혼이 잘되면 모든 축복이 저절로 따라 옵니다.
그러면 영혼이 잘되는 복은 어디서 옵니까? 그것은 진리 안에서 행할 때 옵니다. 요한삼서 4절에 보면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라고 증거 합니다.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아파트를 지어서 부자가 된 서희 건설의 회장이신 이봉관 장로님은 노회나 총회나 어떤 모임이 있던지 모이기만 하면 식사비가 됬든지 경비가 됬든지 무조건 자기가 다 계산을 하는 것으로 유명 합니다.
하루는 한 목사님이 이봉관장로님에게 “장로님! 너무 과용하시는 것 아닙니까?” 했더니 “아닙니다! 저는 목사님들을 대접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저에게 더 큰 축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제가 대접할 때마다 목사님들이 축복기도를 해 주시는데 그 목사님들의 축복기도가 그대로 이루어 집니다. 그래서 사실은 제가 대접을 하고나면 복은 제가 더 받습니다” 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이봉관장로님은 교회건축의 대가입니다. 우리나라의 큰 교회들은 거의 다 이봉관장로님이 지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건축을 하다보면 돈을 못받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이봉관장로님은 큰 복을 받고 있습니다. 장로님은 그 비결을 기도에서 찾았습니다. 교회 건축을 하고나서 돈을 못 받으면 전 교인이 이봉관장로님을 위해서 기도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워낙 많은 성도들이 기도를 해 주니까 그 기도가 상달이 되어서 다른곳에서 축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이봉관장로님은 인천에서 고물상으로 사업을 시작 했습니다. 그런데 담임 목사님이 심방을 오셔서 간절하게 축복기도를 해 주셨는데 그때 기도가 이루어 질줄 믿고 아멘 아멘 하면서 화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축복한 그대로 다 이루어 졌습니다.
새벽예배를 드릴때에도 목사님이 무슨 말씀을 주시던지 아멘으로 받고 그대로 순종 했더니 하나님이 그대로 복을 주셨습니다.
고물상이 잘되자 트럭 세 대를 가지고 운송사업을 했는데 운송회사가 점점 잘 되더니 돈을 벌어서 건축을 시작 했습니다.
사업을 하면서도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던지 앞장서서 충성봉사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계속해서 복을 주시는데 건설회사를 시작한지 12년만에 서희건설이 설립되었고 건설회사가 설립된지 12년 만에 건설과 물류운송, 철강부문까지 포함해서 총 매출액 1조원 이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이봉관장로님은 고백하기를 “저는 오직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했고 목사님의 목회사역을 무조건 앞장서서 도왔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이렇게 복을 주셨습니다”라고 간증을 하셨습니다.
오늘본문 신명기 8장 2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하심이라” 라고 증거 합니다.
하나님은 복을 받기까지 연단과 시험을 치르게 하십니다. 그런데 이봉관장로님은 그 시험에 합격 했습니다. 장로님은 어려서부터 안해본일이 없을 정도로 밑바닥 인생으로 인생을 시작 했지만 하나님을 믿으면서부터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했고 목사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던지 목사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처럼 순종했기에 복을 받았다고 간증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닳았습니다. “아! 그렇구나! 하나님께서 사십 년동안 우리를 광야로 보내서 고난의 길을 걷게 하신 이유가 있었구나! 그것은 우리를 낮추시며 우리의 마음을 시험하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가는 사람이 되는지 안되는지 그것을 시험 하시려고 그러셨구나!” 하고 비로소 깨닳은 것입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우리가 고난 중에 겸손하게 낮아지면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서 깨닫게 되는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쓰실 때, 훌륭한 사람을 찾으신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사람을 다듬어서 쓰신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동안 연단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을 낮추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그들이 광야생활을 통해서 얻은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바로 전에 모세는 민수기 8장 14절에서 “두렵건대 너희가 가나안땅에 들어가면 교만하여질 까 두렵도다”라는 설교를 합니다.
사람이 겸손할 때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지만 교만해지면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걱정한 것처럼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잘살게 되자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12절 이하와 같이 경고한 것입니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강남에서 목회하는 목사님들은 목회하면서 때때로 탄식을 한다고 합니다. 성도가 목사님에게 식사를 대접 하는데 성도들이 종종 자기를 과시하고 싶어서 대접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본적인 겸손과 감사가 없는 밥을 얻어 먹으려니까 아무리 좋은 것을 대접 받아도 목사님들이 마음이 행복하질 않다는 것입니다.
강남에서는 교회에 등록할 때 두가지 조건을 건다고 합니다. 첫째는 “나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말 것”입니다. 내가 무슨 직장을 다니는지, 공무원인지, 사장인지 나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심방오지 말것”이라고 합니다. 이 두가지를 지켜주면 등록 한다고 합니다. 내가 청담동에 사는지, 강남구에 사는지 알필요도 없고 집에 심방도 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저 주일날 교회 나가서 예배드리고 헌금하고 올테니까 교회 외에는 밖에서는 만나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것을 받아드리면 등록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게 공동체입니까? 그래서 강남에서 목회하는 목사님들은 재미가 없다고 합니다. 도대체 목회를 하는 건지, 뭘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목회자가 성도의 집에 갈 수도 없고, 목사가 오는 것을 반가워하지도 않고, 그래서 내 교회에 나오는 성도가 도대체 무슨 직장에 다니는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고, 알려고 하면 기분나빠 하면서 교회를 떠나니까 관계가 단절된 상태로 지내는 성도가 많습니다. 그러니 무슨 공동체의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 배경이 바로 교만 때문입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하나님이 교만을 꺽기 위해서 용광로에 집어 넣으습니다.
새신자들을 위해서 이어령씨를 다시 좀더 구체적으로 소개 합니다. 이어령씨는 2007년 여름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때 한국 사회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국의 지성이라고 불리운 이화여대 교수요 문교부장관 출신의 이어령교수가, 온누리 교회에서 기획한 일본 선교 행사장인 “러브 소나타” 행사 중에 “동경 프린스 파크 호텔”에서 무릎을 꿇고 하용조목사님으로부터 세례를 받았습니다.
무신론자였던 그는 평생동안 기독교에 대해서 강한 비판의 글을 써 왔습니다. 그는 누구에게도 무릎을 꿇어본 적이 없는 석학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기에 한국이 발칵 뒤집힌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께로 돌아오게된 것은 그가 “인생의 광야”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의 딸 김민아씨가 미국에서 검사로 지내다가 변호사가 되어서 지낼 때 암으로 투병을 하다가 시력까지 잃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자폐증을 앓았습니다.
이어령교수는 자기 딸과 손주가 인간의 의술로 해결 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자 비로소 하나님께 엎드려서 호소를 했습니다. “하나님! 내 딸의 눈이 보이게 해 주시면 제가 예수님을 믿겠습니다!”라고 서원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벌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민아씨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게다가 암도 낫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어령교수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나아온 것입니다.
이어령 교수는 인터뷰에서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절망속에서 하나님의 기적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했습니다. 고난이 없었다면 하나님을 믿지 못했을 것입니다. 고난 때문에 지성에서 영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어령씨는 “지성에서 영성으로” 라는 유명한 베스트 셀러를 쓰게 됩니다.
이어령교수는 예수를 구세주로 믿은 이후부터 세상이 완전히 달라 졌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예수를 믿은후에 교만한 현자에서 겸손한 신자가 되었습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이어령교수가 예수를 믿고나서 쓴 시가 있습니다. 제목이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입니다.
“하나님! 저는 당신의 제단에 꽃 한 송이 바친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절 기억하지 못하실 겁니다.
그러나 고난의 때에 모든 사람이 깊이 잠든 밤에 저는 당신의 숨소리를 들으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리고 너무 괴로워서 저는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는 오랜 세월동안 당신을 무시하고 당신을 외면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당신이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라도 제가 당신께 좀 더 가까이 가도 되겠습니까?
하나님! 당신의 발끝을 가린 성스러운 옷자락을, 때 묻은 제 손으로 조금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아, 그리고 제 손으로, 제가 무지했던 것처럼 저 무지한 사람들의 가슴 속을 풍금처럼 울리게 하는 아름다운 시 한 줄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그렇게 해 주신다면 저는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되는길을 가도록 하겠습니다”
교만했던 그가 예수님을 믿은후에 하나님께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를 원했던 마음을 헤아릴수 있는 시입니다.
이어령교수님의 딸 이민아씨는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이민아씨는 CTS기독교 방송에 성경강사로 나와서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민아목사가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서 천국으로 갔습니다.
딸이 죽었을때 장례식장에서 문상객을 맞이하던 이어령 박사는 자기의 딸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예수를 믿지 않고 지낼 때 딸이 평소에 나에게 신신 당부를 했던 말이 있었습니다. 그 말은, “아버지! 아버지는 꼭 하늘 아버지를 만나야 합니다! 아버지가 하늘 아버지를 만나면 아버지의 모든 문제가 다 해결 될거예요!”라는 말이었습니다.
어느날 저는 미국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딸에게 크레딧 카드를 주면서 “민아야! 네가 쓰고싶은 대로 쓰고 마음껏 원하는 것도 사라” 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딸아이는 제가 준 크레딧카드를 받고서 “아빠! 이 카드만 있으면 내가 원하는 것을 다 가질수 있겠네요?” 하면서 웃었습니다.
그러면서 민아는 저에게 “아빠!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도 우리가 기도로 긁으면 기도하는 대로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을 다 주시는 분이예요! 아빠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필요한 것을 기도로 긁으세요! 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 딸 아이는 정말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딸아이는 마치 하늘에서 사는 것처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국민일보, 2012년3월17일자 신문에서 인용)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서 문제와 상처와 고통을 않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구세주되신 예수님과 동행하면, 그 모든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해 주십니다. 그래서 비록 몸은 땅에서 살지만 영혼은 천국의 축복을 누리면서 살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광야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살면 하나님이 반드시 복을 주십니다.
지난주 목요일날 김예슬전도사님의 생일을 맞이해서 전도사님에게 운동화를 하나 사 드렸습니다. 그런데 운동화가게에서 일하는 여자 직원이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신발을 가져다가 신겨주고 끊을 묶어 주면서 섬기는지 제가 그 모습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여 직원이 바닥에 꿇어 앉아서 전도사님에게 신발을 신기고 끊을 묶어주면서 섬기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한가지 생각나는게 있었습니다.
미국의 오렌지카운티에 포도원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에 들어가면 예수님이 대야에 물을 떠다가 베드로의 발을 씻기는 동상을 세워 놓았습니다.
저는 세미나에 참석 하기 위해서 그 교회에 갔는데 그때 교회 로비에 세워놓은 예수님과 베드로의 동상을 바라보면서 “나도 예수님처럼 저렇게 제자들과 성도들을 섬기는 목회자가 되리라!” 라고 다짐을 했습니다.
제가 신발가게에서 일하는 자매에게 교회에 다니냐고 물었더니 광양 생수교회에 다닌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름을 물었더니 “정유빈”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저는 유빈양이 바닥에 꿇어 앉아서 섬기는 아름다운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난 후에 운동화를 사가지고 나오면서 김예슬전도사님에게 미국의 포도원교회에서 본 동상 이야기를 들려 주면서
“전도사님! 나는 예수님이 발을 씻기는 동상을 보면서 예수님처럼 섬기는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을 했어요! 전도사님도 섬기는 목회자가 되면 좋겠어요!”하고 권면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전도사님이 당연히 섬기는 주의 종이 되어야죠!“ 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종들이 주인의 발을 씻기는것이 통례 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발을 씻기셨습니다. 이것은 겸손함의 극치입니다.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겸손하게 섬겨야 합니다.
바울사도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5-8) 라고 하면서 그리스도와 같이 겸손하라고 권면 했습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들을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혀달라고 예수님에게 청탁을 했습니다.
본래 사람들은 두 종류로 살아 갑니다. 하나는 마음이 닫힌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이 열린 사람입니다. 닫힌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마음문이 닫혀서 대화가 통하지 않습니다. 혼자 고독에 빠져 삽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 힘만으로 인생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늘 절망과 두려움에 젖어서 삽니다.
그러나 열린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남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삽니다.
1939년 9월 1일 새벽 4시 45분에 독일 나치전체에 공격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공격명령이 떨어지자 마자 히틀러의 정예부대와 탱크부대가 폴란드를 침략했습니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 되었습니다.
전쟁이 시작된 지 한 달만에 폴란드는 독일에게 점령을 당해서 독일의 영토로 편입이 되었습니다.
당시에 폴란드가 제일먼저 망한 이유가 있습니다. 폴란드는 유럽에서 가장 잘 나가는 나라 였습니다. 부자가된 폴란드는 유럽에서 가장 타락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거리마다 동네마다 캬바레와 술집이 들어서고 아이들부터 청소년 할것없이 전 국민이 술을 마시고 방탕하게 지냈습니다.
본래 폴란드는 유럽에서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기던 나라 였습니다. 동네마다 거리마다 교회가 있었고 모든 국민이 하나님을 경외하던 그런 나라 였습니다. 그런데 잘살게 되자 하나님을 몰아냈습니다. 인본주의와 물질주의가 판을 쳤습니다. 그래서 2차 대전때 제일먼저 심판을 받아서 가장먼저 독일의 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독일은 제일먼저 점령한 폴란드에 아우슈비츠라는 포로수용소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폴란드의 정치인, 군인, 사상가, 교수, 교사, 공무원, 지식인, 언론인, 국가 지도자등 10만명의 폴란드 지성인들을 아우슈비츠에서 잔인하게 처형을 했습니다.
이어서 아우슈비츠는 타락한 폴란드사람들을 제일먼저 심판한 후에 그 다음에는 유대인들을 처형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나치는 유럽 전역에서 유대인들을 색출하여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냈습니다. 당시에 유대인들은 전 유럽의 경제와 상권을 다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수전노에 자린고비였습니다. 이웃을 돕거나 선한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기와 자기 가족 밖에 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폴란드에 이어서 두 번째로 돈이 있어도 쓸줄 모르고 자기 밖에 모르는 유대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당시에 나치는 80명이 타는 기차 화물칸에 300명의 유대인들을 콩나물처럼 몰아넣고 그들을 수용소까지 실어 날랐습니다. 기차로 12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를 달려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도착하면 그 안에 타고있던 사람들은 절반 이상이 질식해서 죽어 있었습니다. 유대인 수송열차는 송장 수송 열차가 되었습니다.
유럽 전역에서 실려온 유대인들이 수용소에 도착하면 수용소장이 안내 방송을 합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이곳에서 자유롭게 살 것입니다” 수용소장의 친절한 안내방송이 흘러 나왔지만 그러나 그들은 곧바로 생체 실험실로 보내져서 이루 말할수 없는 고통을 당했고 개스실에서 개처럼 죽임을 당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유없이 그런 고난을 당한것이 아닙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돈도 많이 벌고 잘먹고 잘살았지만 그들은 이웃을 위해서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심판하신 것입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특별한 쇼가 매일 저녁 진행 되었습니다. 수용소 에서는 독일 간수들이 밤만 되면 술을 마시면서 특별한 쇼를 즐겼습니다. 그들은 수용소 비밀한 곳에 무대를 만들어 놓고 무대 한 복판에 조명을 비추고 요염한 술집 여자나 춤추는 여자들을 데려다가 춤을 추게 했습니다. 그리고 수용소에 갇힌 유대인 남자를 데려다가 뉘어놓고 춤추는 여자와 성관계를 갖게 했습니다. 그런데 성관계를 구경하던 건장한 독일 병사가 가죽벨트를 가지고 올라와서 남자의 목을 감아서 조릅니다. 남자는 고통에 몸부림을 치면서 죽어 갑니다. 결국 남자가 죽으면 쇼가 끝나고 여자는 가운을 걸치고 나치의 환성을 들으면서 무대를 떠납니다.
이런 살인 쇼가 매일 밤 계속 되었습니다. 이런 개만도 못한 비참한 죽음으로 수용소에서 죽은 사람들이 바로 유대인들입니다.
왜 유대인들이 이렇게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까? 당시에 유대인들은 유럽의 상권과 정치 경제 문화계를 장악했고 유럽의 술시장과 음란문화와, 돈벌이가 되는 모든 유흥업소들을 다 장악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부자가 된 유대인들은 은밀하게 이중 삼중으로 타락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타락한 유대인들을 보란듯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잔인하게 다루시고 그들이 음란했던 만큼 수치스러운 죽음으로 심판을 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예루살렘 북쪽 “아인케렘”이라는 곳에는 나치에 의해서 희생된 유대인 추모 기념관이 있습니다. 그 기념관 에는 이런 의미 심장한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아우슈비츠보다 더 무서운 것은 아우슈비츠를 잊는 것이다” 이 말은 그 고통의 기억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잘 살게 되었다면 하나님께 더욱 헌신하고 전도와 선교와 구제에 힘써야 합니다. 그러나 나만을 위해서 재물을 쌓아놓고 먹고 마시고 즐기면 심판을 당하게 됩니다.
러시아의 소설가 톨스토이는 말하기를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다”라고 고백 했습니다.
파스칼은 말하기를 “인간의 위대함은 자기 자신의 보잘 것 없음을 깨닫는데 있다”라고 증거 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만,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스스로 낮아져서 하늘을 쳐다보고 기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과 도움을 받게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은혜안에서 사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그 선물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엄청난 선물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아무쪼록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김으로서 나와 내 자손들이 복을 받고 그리고 땅끝까지 복음을 전함으로서 주님의 지상명령을 이루는 일에 쓰임받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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