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찬양을 준비하는데 김막순권사님께서 앞으로 오셨습니다. 저는 나를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서 오시나 했더니 권사님이 드럼 앞으로 가셨습니다. 그래서 김예슬전도사님이 하도 드럼을 은혜스럽게 치니까 드럼을 구경하러 오시나 했더니 다시 드럼 옆으로 가셨습니다. 그러더니 "야 참 예쁘다!" 하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보니까 저 드럼 뒤에 강댓상에 있는 화분에서 꽃이 피었는데 그 꽃을 보시면서 참 예쁘다고 고백을 하셨습니다.
윤옥희권사님도 나오셔서 꽃을 구경 하셨습니다. 윤옥희권사님은 “목사님! 저는 청년부부들과 이상경집사님을 위해서 날마다 기도를 합니다”하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권사님! 감사합니다 계속 기도해 주세요!” 하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봄을 만들어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꽃피는 봄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꽃 한송이 풀한포기도 하나님께서 만들어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지난 월요일날 전북 김제에 있는 오렌지타운의 식당에서 일하시는 이경선집사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이경선집사님은 박예본성도님이 오렌지 마트에서 일할 때 소개를 받아서 알게된 분입니다.
이분은 같은 식당에서 일하시는 집사님의 전도로 김제에 있는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초신자인 이경선집사님께서 박예본성도님의 소개로 저와 통화를 하게 되었고 이경선성도님은 아들의 직장 문제로 저에게 기도를 부탁하셔서 기도를 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월요일날 다시 전화가 와서 통화를 했습니다. 저는 그분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경선성도님이 일하는 오렌지식당의 사장님이신 문현진성도님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문현진성도님은 박예본성도님의 인도로 우리 남해세광교회의 주일예배에 두 번 참석하셨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오셨을 때 예수님을 영접했는데 그때 성령께서 문현진성도님에게 임하셔서 거듭나는 체험과 더불어 신령한 영적 체험을 하셨습니다.
그후에 박예본성도님이 오렌지 마트를 그만 두었기에 저는 성령께서 임하시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신 문현진성도님의 근황이 무척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오랬만에 이경선성도님과 통화를 하면서 문현진성도님의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문현진성도님이 전에는 식당에서 일하시는 직원분들과 대화도 잘 하지않고 관리자로서의 위치에서 식당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의 임재를 체험한 이후에 문현진성도님은 너무나도 자상하고 친절하고 온유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식당 직원분들을 대해 주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저는 이경선성도님으로부터 그 이야기를 듣고나서 전화를 끊은후에 “할렐루야! 하나님 감사 합니다! 하나님! 영광을 받으시옵소서!”하고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는 사실 문현진성도님이 무척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지내시는지도 궁금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사업을 경영하는 사장님이요 직장에서는 아랬사람들을 다스리는 경영자의 위치에 있었던 문현진성도님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은 후에는 함께 일하는 직장의 직원들에게 사랑과 배려가 있는 삶을 사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저는 전북 김제의 오렌지 식당에서 문현진성도님을 처음 본 순간 “이분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는 믿음의 여인이 되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문현진성도님은 에스더처럼 아름다운 미모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남편을 잘 만나서 재물의 부요함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러니 이제 예수님을 만나서 성령받고 사명을 깨닫기만 하면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귀하게 쓰임받는 아름다운 믿음의 여인이 될 것이 틀림 없기에 저는 그토록 박예본성도님에게 “문현진성도님이 꼭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라고 권면을 한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낳으면 그 자식을 애지중지 키웁니다. 평생동안 그 자녀를 사랑하면서 살아갑니다. 마찬가지로 주의 종은 성령으로 거듭난 영적 자녀를 평생 기억하면서 거듭난 그 영적 자녀가 잘되기를 기도하고 또 항상 그 자녀를 그리워 하면서 살아갑니다. 성령안에서 거듭난 문현진성도님도 영적으로는 저의 자녀요 또한 이제는 영적인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늘 그녀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고 또 소식이 궁금한 것입니다.
아무쪼록 문현진성도님이 포도나무되신 예수님께 접붙임이 되어서 생명수 진액을 받고 성령의 열매를 맺으면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전에 한 빌딩에 갔는데 엘리베이터에 이런 글이 붙어 있었습니다. “첫 번째 만남은 우연이고 두 번째 만남은 인연이고 세 번째 만남은 필연입니다”
사람의 만남은 인생의 향방을 결정 합니다. 사람은 사람을 잘 만나야 복되게 살수가 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첫 번째로 만나는 사람은 부모입니다.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가 인생의 향방을 결정합니다. 부모를 잘 만나면 행복한 인생을 보장받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부모를 잘 못 만나서 불행하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단종교인 여호와의 증인은 군대 복무를 거절합니다. 그래서 국방의 의무를 준행하지 않습니다. 부모도 군복무를 거절하고 자식도 군 복무를 거절합니다. 잘못된 신앙을 가진 부모 때문에 자식도 외곡된 인생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올바른 신앙을 가진 부모를 만난 아이들은 부모의 축복기도를 받고 자라서 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뉴욕에서 모범 경찰 표창을 받은 “죤 하워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수상 소감을 이렇게 고백 했습니다.
“오늘의 내가 있게 된 것은 아버지를 잘 만났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24년 전에 제가 열 다섯 살 때 저는 추운 겨울날 한 빌딩에 올라가서 자살 소동을 벌였습니다. 그 이유는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가 늘 집에서 난동을 부리고 때려서 어머니가 집을 나가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아버지까지 나가 버렸습니다.
가난과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저는 너무나 괴로운 나머지 자살하기로 결심하고 높은 빌딩으로 올라 갔습니다. 거기서 뛰어내려서 자살을 하려고 하는데 그때 옥상에서 청소를 하던 한 남자가 저에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얘야 왜 죽으려고 하는거냐? 죽으면 안된다 죽으면 네가 알지 못했던 지옥에 간단다 지옥은 절대로 가면 안된다 죽지마라!”
“나는 살고싶지 않아요 엄마도 나가고 아빠도 나가고 내 옆에는 아무도 없어요 혼자서는 살 수가 없어요 그래서 죽으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자 그 사람이 “얘야 오늘부터 내가 네 아빠가 되어 줄게 죽지마라 내가 너를 책임지고 돌봐줄께! 제발 죽지만 마라! 내가 친절하고 자상하게 너를 돌봐줄께!”
“그분이 친절하고 자상하게 돌봐 주겠다는 말에 저는 망설이다가 마음이 변했습니다. 그래서 자살을 포기하고 그분을 따라 갔습니다 알고 보니까 그분은 빌딩 청소부 였는데 독실한 크리스챤 이었습니다.
비록 가난했지만 그분은 정성과 사랑으로 저를 돌보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매 주일마다 저를 교회로 데리고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을 만났고 그후에 저는 나같이 고난 당하는 소년들을 돌보아 주겠다고 마음먹고 경찰이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수 많은 아이들을 위경에서 구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상까지 받게 되었습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이와같이 사람은 어던 부모를 만나느냐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친부모가 아니라도 믿음좋은 양부모를 만난 그는 인생이 달라 졌습니다.
정봉임권사님은 자기가 낳은 두 아이들보다 시집와서 이미 남편이 데리고 있었던 세 아이들을 더욱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면서 키웠습니다. 그랬더니 그 자녀들이 권사님을 얼마나 끔찍하게 사랑하는지 내가 낳은 자녀들 못지않은 사랑으로 권사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정봉임권사님은 지지난주에 경상대학에서 뇌시술을 받으셨습니다. 오늘 다시 부산대학병원에서 두 번째 시술을 받으셨는데 시술이 잘 끝났다는 소식을 큰며느리 옥연순집사님을 통해서 전해 들었습니다.
두번째로 사람은 스승을 잘 만나야 합니다. 사람은 일생에 가장 중요한 시간을 선생님과 지내게 됩니다. 훌륭한 스승을 만난 제자들은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그 가르침대로 살기에 성실하게 살아 갑니다. 설
리반선생님은 귀머거리요, 소경이요, 벙어리였던 헬렌 켈러를 극진한 사랑으로 가르쳐서 위대한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설리반선생님은 헬렌켈러에게 점자로 ABCD를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점자로 나중에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가르쳤고 후에는 시각 장애인으로는 최초로 대학을 졸업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습니다. 그래서 헬렌켈러는 하버드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녀는 세계 최초의 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구원”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헬렌켈러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부상병을 돕는 구제운동을 했습니다. 그녀는 많은곳을 돌면서 돈을 모았고 그 돈으로 부상병들을 치료하는데 기여 했습니다. 그녀는 우리나라에도 방문해서 많은 시각 장애인들에게 소망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이 모든일은 “앤 설리반”이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났기에 맺어진 열매 입니다.
헬렌켈러는 고백하기를 “나는 앤 설리반 선생님을 만나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설리반 선생님은 짐승과 다름없이 비참하게 살던 나를 참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가장 악랄하고 잔인한 살인 사건의 주인공인 지존파의 행동대장 김기훈은 선생님을 잘못 만나서 인생이 망가졌습니다.
지존파 대장 김기훈은 살인 공장을 만들어 놓고 사람을 무작위로 잡아다가 죽이고 인육을 구워 먹는등 짐승만도 못한 짓을 했습니다. 그는 사형을 당하기 직전에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악랄한 사람이 된 결정적인 동기는 중학교 때 미술 선생님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17년 전에 미술수업 시간에, 그 때 나는 너무나 가난해서 미술 도구를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저는 미술 도구를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미술 선생님은 미술 도구를 가져오지 못한 나를 일어나라고 하더니 따귀를 후려 갈기면서 “다음 시간에는 훔쳐서라도 미술도구를 가져와 이새끼야!”라고 야단을 쳤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다음 미술시간부터는 다른반에 가서 미술도구를 훔쳐왔습니다.
나는 그때부터 필요한 모든 것들을 도둑질로 해결 했습니다. 그후에 나는 수퍼마켓에서 그리고 백화점에서 닥치는 대로 도둑질을 하다가 잡혀서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감옥살이를 마치고 나온 후에는 또 다시 절도에 강도짓을 하다가 결국 사람을 죽이는 살인범이 되었습니다”
이와같이 김기훈은 비인격적인 선생님의 잘못된 말 한 마디에 인생을 망쳤습니다. 그는 결국 살인범이 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스승을 잘 만나야합니다.
세번째는 친구를 잘 만나야 인생이 행복 합니다. 조지 휫필드는 영국의 뒷골목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뒷골목에서 장사를 했기에 뒷골목이 그의 출생지요 놀이터 였습니다. 그는 죄의 온상인 뒷골목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거기서 보고 배운대로 그는 청소년 시절에 온갖 방탕과 타락을 경험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고3때 한 여자친구를 만났는데 그 여자친구가 신실한 크리스챤 이었습니다. 그는 마음에 드는 여자친구와 사귀고 싶어서 그녀를 따라서 교회에 나갔습니다. 교회에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후에 그는 인생이 180도 변했습니다.
그는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술집일도 그만두고 여자친구의 권면으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팸부록 컬리지”에 근로 장학생으로 입학을 해서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또 한번 의미있는 만남을 통해서 인생이 역전됩니다. 대학 기숙사에서 지내는 동안에 그는 경건한 목사의 아들인 요한 웨슬레를 만나서 친구로 사귀게 됩니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요한 웨슬레가 얼마나 진실한 마음으로 사랑을 베푸는지 조지 휫필드는 그에게 반해서 “나도 기왕이면 저런 신앙인이 되어보자”하고는 요한 웨슬레의 신앙을 따르게 됩니다.
이 두 사람은 영국을 이끌어가는 위대한 신앙 지도자가 됩니다. 요한 웨슬레는 영국과 세계 선교의 아버지가 되었고, 조지 휫필드는 영국에서 가장 은혜스럽게 설교를 하는 설교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친구를 잘 만난 조지 휫필드는 많은 사람들의 영성을 일깨우는 사명자가 됩니다.
네번째는 부부가 잘 만나야 합니다. 부부는 서로가 부족한 점을 보충하고 서로 사랑하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부부는 가장 아름다운 부부입니다. 바울사도를 통해서 예수님을 믿은 이들 부부는 초대교회 최고의 영성과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위대한 모세 부부는 서로 떨어져서 살았습니다. 아브라함 부부도 헤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욥의 부부는 완전히 이별을 했습니다. 그러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늘 마음을 같이하여 하나님을 섬겼고 주의 종 바울사도를 생명처럼 아끼고 도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신약시대 최고의 모범부부로 소개하면서 그들을 복된 부부로 칭찬하셨습니다.
반대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욕심이 가득하고 교만이 가득해서 하나님을 속이고 교회를 속이더니 두 사람이 한날 한시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지옥불에 떨어지고 맙니다. 그래서 부부도 잘 만나야 하고 믿음생활도 부부가 같이 잘해야 복을 받게 됩니다.
다섯번째로 모름지기 사람은 교회를 잘 만나야 합니다. 교회는 천국의 모형이요 우리 영혼의 안식처 입니다. 사람은 영혼이 잘되야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람의 육체가 세끼 밥을 먹어야 건강을 유지 하듯이 사람은 영의 양식 즉 생명의 말씀을 먹어야 영혼이 건강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교회라고 다 좋은 교회가 아닙니다. 영이 죽은 교회가 있습니다. 생명이 없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런 교회에서 믿음생활을 하면 되는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좋은 교회에서 믿음생활을 하면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됩니다.
여섯 번째로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인생을 살다가 고난을 당했을 때, 내 힘으로 해결 할 수 없는 일이 생겼을 때 예수님을 만나면 기적이 벌어집니다.
열두해 동안 혈루병을 앓던 여인은 용하다는 의원들을 다 만났지만 병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이 지나갈 때 예수님의 뒤로 다가가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았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몸에서 능력이 나와서 그녀의 혈루병이 깨끗하게 낳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그녀는 예수님으로부터 나온 능력으로 인해서 병마가 떠나갔습니다.
사람끼리도 서로 만나면 영이 접촉됩니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느냐가 중요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을 만나면 성령이 흘러 갑니다. 그러나 악령이 충만한 사람을 만나면 인생이 망가집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생활의 문제도 해결해 주십니다. 전에 고봉례성도님이, 아들의 빚 문제 때문에 기도해 달라는 부탁을 하셨습니다. 땅을 팔아서 빚을 갚으려고 땅을 내 놓았는데 삼년이 지나도 땅이 안팔려서 고민이라고 하시면서 기도부탁을 하셨습니다. 저는 새벽에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시작한지 1개월만에 안팔리던 땅이 팔려서 빚을 갚았습니다.
왕의 신하나 수로보니게 여인은 자기 자식이 죽을병에 걸렸을 때 예수님께 나아와서 간청함으로서 자녀들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우리 나라에 와서 의료 선교를 하던 하디 선교사님은 캐나다의 토론토 의과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활동하던 게일 선교사의 초청을 받고 토론토 YMCA의 후원으로 1890년 9월달에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원산에서 의료선교와 전도활동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이렇다 할 구원의 열매는 맺지 못했습니다. 특히 1901년부터 강원도 통천의 지경대 교회에서 3년간 의료 선교사로 사역하면서 목회도 겸했는데 한사람도 전도를 못했습니다.
그는 깊은 절망감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하디 선교사가 선교에 실패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한국사람들을 만나서 지내는 동안에 한국사람들에 대한 불신이 점점 커졌습니다. 한국 신자들은 주일예배도 제대로 참석하지 않았고 술담배도 서슴치 않았고 성적으로도 문란했고 교회의 공금을 횡령하는 등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질이 너무나 부족했습니다.
그런 모습에 회의를 느낀 그는 한국교인들에게 실망해서 한국교인들을 무시했고 전도하는 일에도 등한히 했습니다. 결국 그는 의사일은 어느정도 감당 했지만 전도의 열매는 하나도 맺지 못했습니다.
한국사람들도 그가 한국사람을 무시한다는 사실을 알고 아무도 교회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됩니다. 밤에 잠을 자는데 예수님이 찾아 오셔서 “너는 한국땅에 무엇하러 왔느냐! 나는, 죄짓고 방탕하고 거짓말하고 사기치고 악을 행하는 한국사람들을 구원하려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노라!”라고 예수님께서 야단을 치셨습니다.
꿈에 예수님을 만나서 책망을 들은 하디 선교사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돌아보면서 깊이 묵상을 했습니다.
그런데 원산지역에서 선교하던 화이트선교사와 맥컬리선교사가 1903년 8월 24일부터 30일까지 일주일 동안 원산 지역의 선교사들을 위해서 성경사경회를 열었습니다. 그때 두 선교사는 의사인 하디선교사를 강사로 초대 했습니다.
하디선교사는 집회에 초대를 받아서 요한일서를 강해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한창 설교를 하고 있는데 성령께서 하디에게 임하셨습니다. “너는 지금 네 죄를 고백하고 지금까지 실패한 모든일을 간증하라!”
하디 선교사는 성령님의 지시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그날 자존심을 버리고 그동안 자기가 한국사람들을 싫어하고 미워했던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간증을 했습니다. 간증하는 동안에 그는 자기도 모르게 자기의 죄를 고백 했습니다.
“나는 그동안 한국사람들을 미워 했습니다. 안하무인으로 생활하고 죄가운데 살고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한국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점점 한국사람들을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나는 백인이라는 인종적 우월감과 더불어, 캐나다 최고의 대학을 나온 의사라는 교만함에 빠져서 한국 사람들을 더욱 무시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래서 제 사역에는 열매가 없었습니다. 오늘 여러분 앞에서 제 잘못을 회개 합니다. 사랑도 없고 긍휼도 없고 오직 교만과 정죄만 가득했던 제 자신의 모든 죄를 회개 합니다!”
설교중에 선교사들 앞에서 이와같이 공개적으로 회개를 하자 거기모인 모든 선교사들도 회개를 했습니다. 그는 다시 원산 조선 감리교회의 주일 오전 예배 시간에 한국성도들 앞에서 다시한번 자기의 죄를 공개적으로 고백하면서 회개를 했습니다.
정작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평양 대 부흥은 원산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하디 목사님의 원산에서의 회개가 평양 대부흥운동에 도화선이 되어서 그 불이 평양으로 옮겨간 것입니다.
하디 선교사는 예배중에 “나는 예수님을 믿는 진정한 믿음도 없었고 사랑도 없었습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이 말은 “내가 예수님을 위해서 열심히 일은 했지만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지 않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하지도 않았다”는 말입니다.
요한 웨슬레 목사님도 옥스퍼드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미국에 가서 선교사로 일을 했지만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전도를 해도 열매가 없었고 선교사역에 전념 했지만 실패 했습니다.
그는 1738년 5월 24일날 올더스케잇 가에서 회심하기 전 까지 예수님을 구세주로 확신하는 믿음도 없었고 성령을 따라서 일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는 체험을 한 후에야 비로소 그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님도 처음에 중국에 가서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10년동안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깨닳아지고 성령의 감동을 받고나서야 비로소 선교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 한국 교회는 설교를 듣는 사람은 많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믿음으로 전도하고 사랑으로 섬기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수 많은 교회와 신학교와 기독교 단체들이 있지만, 예수님과 개인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고 가슴이 뜨거워져서 헌신하는 성도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남해세광교회는 예수님을 믿고 가슴이 뜨거워진 젊은 성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은혜를 사모하고, 은사를 사모하고, 성령충만을 사모하는 성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나와 관계된 사람들이 지옥불로 가는 것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난 토요일날 박예본성도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이번 주일날은 우리 젊은 부부들이 최예진언니의 아버지집에 가서 아버지를 설득해서 아버지를 성좌산기도원에 모시고 가겠습니다”하고 전화가 왔습니다.
저는 허리를 다쳐서 잘 걷지도 못하고 또 오래전에 눈을 다쳐서 한쪽눈이 실명된 최천수성도님을 긍휼히 여기고 그분의 구원과 치료를 위해서 헌신하겠다는 전화를 받고서 마음이 기뻤습니다.
주일예배가 끝난후에 청년 부부들이 모두다 최예진집사님의 아버지 집으로 달려가서 아버지를 섬겼고 드디어 화요일부터 2박3일동안 최천수성도님과 박선엽성도님을 모시고 성좌산기도원에 가는일이 성사가 되었습니다.
믿음도 없고 강퍅하기만 한 최천수성도님이 기도원에 가겠다고 약속을 한 사실 만으로도 기적이 아닐수 없었습니다. 화요일날 김제에서 이중희성도님과 박예본성도님이 음식과 반찬을 만들어서 남해로 내려왔습니다. 최예진성도님도 음식이 까다로운 아버지를 위해서 열심히 음식을 만들어서 아버지가 기도원으로 가는일을 도왔습니다.
드디어 화요일날 최천수성도님과 박예본성도님이 김예슬전도사님과 박예본성도님의 인도로 성좌산기도원으로 갔습니다.
우리도 그곳에서 두분이 병도 치료받고 예수님을 믿고 확신할수 있는 기적이 나타나게 해 달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화요일 저녁집회때 기적이 벌어졌습니다. 안수기도를 잘 하지 않으시는 최양자원장님께서 최천수성도님에게 축복기도를 15분이나 해 주셨고 안수기도까지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원장님은 최천수성도님에게 예수믿고 교회를 잘 다니라고 말씀하셨고 최천수성도님은 아멘 할렐루야로 화답하셨습니다.
내가 인생의 주인이 되어서 왕노릇 하면서 살아온 어르신이 이제부터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살겠다고 고백을 했으니 이보다 큰 기쁨은 없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올려 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요14:12)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지난주에 최천수성도님을 심방을 갔는데 방안에 들어가서 앉자마자 최천수성도님이 소리를 지르면서 아내이신 박선엽성도님에게 야단을 치는데 그 광경이 마치 사탄마귀가 발악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두시간만에 간신히 최천수성도님에게 예수님을 영접시켜 드릴수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강퍅하고 완악한 모습으로 소리 소리 지르면서 정죄와 비판에 빠진분이 고양이 앞에 쥐처럼 원장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또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에 고분고분하게 대답을 하면서 겸손한 모습을 보여준 것을 보면 “정말 최양자원장님의 능력이 남다르구나” 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를 믿는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 진 것을 확인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나타내는 사람들입니다. 내 이웃이나 주변 사람들이 나를 볼 때 예수님을 보는 것 처럼 여기는 사람이 되라는 말입니다.
하디 선교사는 처음에, 우리나라에서 전도의 열매가 없는 이유는, 조선 교회와 조선 사람들이 엉터리 신앙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조선 사람들이 하디 선교사를 통해서 예수님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열매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디 선교사는 조선사람들 탓만 했습니다. 만약에 하디 선교사가 예수님의 인격과 성품으로 행했으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을 것입니다.
그는 꿈에서 예수님의 책망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교회에 부흥이 없고 진정한 회심자가 없는 것은 바로 나 때문입니다!”라고 애통하면서 회개를 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 요한복음 15장 5절에서“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과 우리가 포도나무와 가지처럼 한 몸으로 연합된 존재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나요 내가 예수님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신다면 내가 예수님처럼 말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보면 마치 예수님을 보는 것 같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야만 구원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나를 통해서 예수님을 드러낼수 있습니까? 우리는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믿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나같은 죄인이 구원받아서 천국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같은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 받아서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다면 나도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조카와 싸웠으면 화해 해야 합니다. 부모와 싸웠으면 화해해야 합니다. 이웃과 싸웠으면 화해 해야 합니다. 성도끼리 싸웠으면 화해해야 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나는 죄인 이었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은혜로 용서를 받았다고 고백을 합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셔서 나를 사랑하셨고 나같은 죄인을 구원 하셨다고 고백 합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다고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면 내 안에 술을 들이 부어서는 안됩니다. 담배도 들이마셔도 안됩니다. 예수님이 계시면 다퉈서도 안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했으면 은밀한 죄도 지으면 안됩니다. 진정으로 천국을 믿는다면 고난도 축복이요 죽음도 두려워 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나의 왕으로 모셨다면 성공하고 출세하고 부자되는 것 보다 예수님이 더 좋아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면 세상 사람들이 나를 통해서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하디 선교사가 회개 했을때 원산에 큰 부흥이 시작됩니다. 그것은 하디 선교사가 단순히 회개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하디 선교사가 변해서 그에게서 예수님이 보여졌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기 전에 하디 선교사는 본성이 아주 냉정하고 차가운 의사 였습니다. 환자들은 그에게 병치료를 받으면서도 하디선교사가 너무나 냉정하고 차갑게 대했기 때문에 진료를 받기는 받았지만 그가 목회하는 교회에는 절대로 안갔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잘 선택해야 합니다. 은혜도 없고 성령충만이 없는 목사가 인도하는 교회에서 믿음생활을 하면 성도들도 다 영이 죽어서 기쁨도 없고 행복도 없습니다.
그러나 목사가 성령충만을 받고 거듭나서 예배를 인도하면 성도들도 성령충만을 받고 거듭나서 섬기게 됩니다.
하디선교사가 거듭나서 진정한 사랑으로 사람들을 치료하고 또 목회사역도 사랑과 섬김으로 목회를 하자 그때부터 병원에도 사람이 점점 많아 졌고 교회도 하루 아침에 수백명으로 부흥 했습니다.
조선 사람들은 처음에는 병들었는데도 하디선교사에게 치료 받기를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하디 선교사가 은혜를 받고 진실한 사랑으로 진료하자 나중에는 하디선교사가 병자의 손만 만져도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전해 졌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 요한복음 15장 4절에서 “내 안에 거하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보면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은 예수님께 내 마음문을 열고 예수님을 모시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은 거저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줄 압니다. 아닙니다. 예수님은 밖에서 마음문을 두드리십니다. 내 마음을 열어야 예수님이 내 안으로 들어오십니다.
사실 마음을 여는 것이 쉬운일이 아닙니다.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내 마음속에 모시고 존경하고 따르고 사랑한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고 쉬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내 마음속에 모시고 존경하고 사랑하면 사탄마귀가 가만히 있지를 않습니다. 시기질투하고 딴지걸고 미워하고 훼방을 놓습니다.
내 마음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 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고 살겠다는 말이요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시고 나는 예수님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마귀는 이걸 견디질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믿은 사람을 훼방하고 못살게 굽니다.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내 인생의 주인이 예수님이라는 뜻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같이 사랑하라” 라고 말씀 하셨으면 오늘 먹을 양식밖에 없어서 오늘 먹고 내일 죽는다해도 오늘 나에게 있는 것으로 이웃을 사랑한 사렙다의 과부처럼 배고픈사람을 대접하고 살아야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일을 성수하고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라” 라고 말씀 하셨으면 그대로 순종하고 지켜야 정말 예수님을 모신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데도 왜 삶은 변화되지 않습니까? 십자가 구원을 믿으면서도 원수 사랑은 안되고, 재물의 축복을 받았는데도 다른 사람에게 일절 나누어주지 못하고, 주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내 죄를 씻으신 것을 믿으면서 나의 은밀한 죄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가 무었입니까?
그것은 내 마음속에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용서 하라고 하셨으면 용서 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나는 죽어도 용서 못한다? 그런 사람은 예수님을 왕으로, 인생의 주인으로 모신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내가 왕노릇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헌금? 시간? 생명? 재산? 땅?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기도 하고 도로 가져가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진정한 한가지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가장 기뻐 하십니다.
우리가 어른이 된 후에는 우리 마음속에 왕이 없어졌습니다. 어렸을때는 부모가 왕이었고 젊었을때는 애인이 왕이었고 결혼한 후에는 남편이 왕이었고 직장에 다닐때는 상사가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내 안에 왕 두는 것을 싫어합니다. 내가 왕이 되고 싶어 합니다. 내 마음대로 살고 싶어 합니다.
예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기는 믿지만 예수님을 왕으로 여기지는 않습니다. 말만 예수님을 왕으로 여기지 실제로는 내가 왕입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고 살면 반드시 삶이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내 집에 사랑했던 탤런트나 가수 또는 존경했던 선생님이나 목사님과 함께 산다면 내 삶에 반드시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부모님만 모시고 살아도 언행심사를 조심하고 술이나 담배도 절제합니다.
그렇다면 나의 생명을 구원하시고 나를 영원한 천국에 들여보내주실 예수님을 내 마음속에 왕으로 모시고 산다면 당연히 내 삶이 바뀌게 됩니다.
그동안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았는데도 삶의 변화가 없었다면 그런 사람은 예수님을 무시하고 산 것입니다. 예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 변화가 없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도 받지 못하고 구원의 열매도 없는 것입니다.
주일날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가는데 내 눈에 예수님이 나를 따라오시는게 보인다면 아마도 이런 말을 하는 성도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 왜 따라오세요? 예수님은 그냥 교회에 계세요! 저를 따라오지 마세요 따라 오시면 심히 부담스러워요! 전 그냥 혼자 있고 싶어요! 자유롭고 싶어요! 담배도 피워야 하고 술도 마셔야 하고 게임도 해야하고 오늘 저녁에는 친구들과 만나서 클럽도 가서 즐겁게 놀아야 해요! 그러니 예수님! 저를 따라오시면 곤란해요! 예수님은 그냥 교회에 계세요!”
이런 태도로 예수님을 믿으니까 삶에 변화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내 마음에 왕으로 모시지 않은 사람은 마귀가 그 사람의 주인입니다. 마귀가 내 마음을 지배하기 때문에 늘 이기적으로 살고 싸우면서 살고 죄를 지으면서 사는 것입니다.
사탄마귀가 내안에서 왕노릇 하기에 여 성도와 불륜에 빠진 목사가 나오고, 부정한 방법으로 사업을 해서 감옥에 들어간 장로가 나오고, 원수를 맺고도 풀지 못하는 권사가 나오고, 먹고 살기 어렵다고 술집에 나가는 여집사들이 나오고, 세상일이 바쁘다고 밤낮 세상일만 하면서 믿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성도가 유혹에 빠지는 이유는 유혹이 강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내 삶의 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용도 목사님이 쓴 “마음을 붙잡아 주십시오”라는 시가 있습니다.
주여, 글쎄 이를 어찌 하나요
마음을 결심의 띠로 꽁꽁 묶어
주님의 제단에 바치려고 정성스레 들어 올리노라면
어느덧 묶였던 띠가 끊어지고
모았던 마음이 산산이 풀어져서
이 바람 저 바람에 날리고 마니
글쎄 이를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얼마 후에는
또 흩어진 마음을 집어 모으느라고
눈물을 짜면서 애를 박박 쓰곤 합니다,
주님의 제단에 한 번도 알뜰한 제물을 바쳐보지 못하고
밤낮 세상에서 쓸데없는 짓만 하다가
서산에 해가 떨어지듯 인생이 떨어져 버리고 말면
결국 인생은 끝나게 될 것이니
어찌합니까, 주님이시여!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온전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겨보지도 못하고 마귀에게 질질 끌려다닙니다. 우리의 가장 큰 죄 중에 하나는 예수님을 믿고도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지 않는 죄는 큰 죄입니다. 그것은 주님이 내 안에서 일하지 못하게 하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깨닳은 하디 선교사가 진심으로 회개한 것입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은 제자들이 깨닳은 진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예수님이 원하시는 대로 나를 드리겠다는 결심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모두 다 순교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죽이려고 칼을들어 내리칠 때 하나님은 급히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에 이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을 아노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바친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에게도 그런 믿음이 있는지를 알고 싶어 하십니다. 사도 바울이 깨닳은 진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2:20) 다윗도 오직 하나만을 원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시27:4) 하나님은 우리도 그런 믿음을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면서 사는 그런 사람을 주님은 지금도 찾고 계십니다. 예배를 드리다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적이 있습니까? 감동의 눈물을 흘려본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천국에가서 실제로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예배를 드릴 때는 얼마나 황홀하겠습니까? 성경을 읽다가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모든 진리가 다 밝혀지는 천국에서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때는 얼마나 가슴이 벅차겠습니까? 일출이나 일몰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아름다움을 느낀다면 새 하늘과 새 땅의 아름다움을 볼 때는 얼마나 감동적이겠습니까? 지금 성도의 교제를 통해서도 크게 감동하고 식사 한끼를 같이 나누면서도 감사가 넘친다면 모든 족속과 모든 민족이 천국에 모여서 영광중에 잔치를 벌릴 때, 내가 그 영광스런 천국에 있다면 그 기쁨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베드로전서1장 8절에 보면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라고 증거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영광은 우리가 꼭 하나님 앞에 가야만 체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예수님을 내 인생의 왕으로 모시기만 하면 지금 당장 그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나에게 염려스런 일이 있고 답답한 일이 있어도 예수님을 내 마음의 왕으로 모시고 살면 하늘의 영광을 누리면서 살게 됩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생명이십니다”를 줄이면 예나생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십니다”를 줄이면 예나주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왕이십니다”를 줄이면 예나왕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예나생! 예나주! 예나왕!”믿음을 가지고 행복하게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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