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광주에 사는 이정주형제의 어머니 이정애권사님께서 돌아가셔서 문상을 다녀 왔습니다. 이정주형제는 제가 설천교회에서 시무할 때 광주 새순교회 청년부에서 전도 여행을 와서 알게 되었는데 십년이 넘도록 저와 친분을 쌓아온 형제입니다.
그런데 정주형제의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광주로 문상을 다녀 왔습니다. 정주형제는 어머니 빈소까지 찾아와 주셔서 고맙다고 지난 월요일날 장례식장을 방문한 네사람에게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해서 순천에서 만나서 교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날 박예본성도님은 못오고 김예슬전도사님과 우리 내외가 동행을 했는데 제가 정주형제에게 김예슬전도사님을 소개 하면서 전도사님은 올해부터 신학대학원에 입학해서 전도사가 되었는데 훌륭한 인품과 믿음으로 충성을 다하는 종인데 우리교회 형편상 사례비도 못주고 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날 식사를 한 후에 돌아가는 차안에서 김예슬전도사님이 정주형제에게 진심어린 위로와 신앙적인 충고를 했습니다. 정주형제가 교회에서 상처를 받아서 교회를 나가지 않고 있다는 말을 들은 김예슬전도사님이 정주형제에게 주님의 마음으로 위로하고 좋은 말씀으로 권면을 한 것입니다.
제가 정주형제를 만날때마다 차에서 내려서 문을 열어준 후에 손을 잡아서 올려주고 내릴때에도 먼저 내려서 문을 열어주고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김예슬전도사님과 같이 다니니까 이제는 김예슬전도사님이 제가 하는 일을 대신 합니다.
제가 김예슬전도사님에게 문좀 열고 정주 형제를 잘 내리고 타도록 도와 주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김예슬전도사님이 정주형제가 타고 내릴 때 문을 열어주고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제가 김예슬전도사님을 소개할때 전도사님은 정말 훌륭한 전도사님인데 경제적인 어려움이 문제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나중에 광주로 돌아간 정주형제가 저에게 전화를 해서 김예슬전도사님을 돕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해 주면 참 고마운 일이라고 하면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정주형제가 오늘 김예슬전도사님에게 드리라고 120만원을 송금해 주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김예슬전도사님이 시무하던 유치원에서 사임한 후에 나라에서 주는 후원금을 받기를 원했는데 그 일이 잘 추진이 안되어서 아쉽게 생각하던 차에 정주 형제가 귀한 사랑으로 전도사님을 돕겠다고 해서 얼마나 마음이 기뻤는지 모릅니다.
저는 정주형제의 섬김이 고마워서 120만원을 송금받은후에 카톡으로 고맙다는 문자를 보내고 오늘 저녁예배때 전달하겠다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정주 형제에게서 문자가 왔는데
“어머니에 비하면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의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가 모아놓은 연금 전액을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서 써 달라고 교육재단에 환원하셨습니다. 그 액수가 3억원입니다”라는 문자를 보내 왔습니다.
과연 훌륭한 어머니에 훌륭한 아들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정주형제는 지체 장애인입니다. 자기도 살아가려면 어려운 일이 많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편이 어려운 주의 여종 전도사님을 섬기기로 작정하고 귀한 예물을 보내준 것을 생각하니까 더욱 존경스럽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무쪼록 정주형제의 건강과 복된 믿음생활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은사에 대해서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은사는 헬라어로 “카리스마”인데 그 뜻은 “은혜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 은사입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아버지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11:13)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물은 가격으로 가치를 매기기도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누가 준 선물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제가 교사로 있을 때 한 선생님이 시계를 자랑했습니다. 그 시계에는 봉황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대통령에게 받은 시계였습니다.
그 시계의 가격은 몇만원밖에 안되는 시계 였지만 그 선생님은 대통령으로부터 선물을 받았기에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요 천지만물의 주인이요 천국과 지옥을 다스리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이 은사입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은혜” 라는 말과 “은사” 라는 말이 나옵니다. 은혜와 은사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그런데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은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을 은혜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자기의 몸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은혜로 속죄함을 받았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은혜를 죄사함의 은혜, 또는 구원의 은혜, 구속의 은혜라고 말을 합니다.
한편 은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시는 선물”을 은사라고 합니다. 그래서 은사는 그리스도의 은사라고 하지않고 성령의 은사라고 말을 합니다.
사실 은혜도 선물이요, 은사도 선물인데 은사는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은사는 계속 받아야 하는 성격이 있습니다. 은사가 복수인 이유는 은사중에는 앞서 말씀드린대로 여러 가지 은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은사를 계속 받아야 하는 이유는 마치 목이 마르면 물을 계속 마셔야 하고, 자동차에도 연료를 계속 주입 하듯이 성령의 은사는 계속 받아야만 유지가 됩니다.
계속해서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지 아니하면 한 번 받은후에 은사가 떠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인데 십자가의 은혜는 구속의 은혜나, 사죄의 은혜로 표현합니다. 십자가의 은혜와 구속의 은혜와 사죄의 은혜는 표현은 다르지만 하나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서 주신 십자가의 은혜는 계속적이지 않고, 단회적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은혜는 단번에 이루시고, 단번에 우리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주신 십자가의 은혜는 주셨다가 다시 회수하지 않습니다. 한 번 주신 은혜는 그것으로 영원히 주신 은혜입니다.
그러나 은사는 닫혀버릴 수 있고, 하나님이 거두어 가실 수도 있습니다.
은혜와 은사는 마치 직류전기와 교류전기로 비유가 가능합니다. 전기는 배터리를 이용하는 직류(DC)전기가 있고 가정에서 쓰는 교류(AC)전기가 있습니다.
배터리전기는 배터리에 저장해서 사용합니다. 그러나 교류전기는 발전소에서 전기가 계속 와야합니다. 교류전기는 저장이 안 됩니다. 계속 발전소에서 전기를 보내야만 사용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발전소에서 전기를 보내는데, 집에서 스위치를 올리지 않으면. 불이 안 들어옵니다. 집에서 스위치를 올려도 발전소에서 전기를 안 보내면 불이 안 들어옵니다.
은혜는 직류전기와 같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는 우리가 받아서 마음속에 저장을 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는 마치 교류전기와 같습니다. 발전소에서 전기를 계속 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집에서 스위치를 올려서 사용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주신 은사는 내가 사용할 때 역사합니다. 제자들이 처음에는 둘씩 나가서 귀신도 쫓아내고 하면서 사역을 했지만(막6:13) 나중에 그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막9:28) 은사가 소멸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은사는 마치 발전소에서 전기가 나오듯이 매일 매일 새롭게 받아야 합니다. 계속 새롭게 충만해야 합니다. 은사는 한 번 받았다고 지속되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안쓰면 중단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성령을 거역하지 말라. 성령을 훼방하지 말라,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그를 근심케 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교만, 자기 이성, 자기 고집에 빠지면 성령의 역사가 소멸됩니다.
성령이 떠나고 사람의 지성과, 사람의 의지만 남은 목사나 성도만 모인 교회는 생명력을 잃어버립니다. 마치 사울 왕과 같이 됩니다.
사울왕이 처음에는 겸손했는데 나중에는 교만해져서 자기가 직접 제사를 집례하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은 다 죽이라고 했는데 소와 양을 남겨놓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사울왕을 하나님이 심판하셔서 사울왕과 아들이 한날에 죽임을 당합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왕이 잘못할 때 이렇게 예언을 했습니다. “왕이시여! 당신이 스스로 작게 여기실 때는 하나님이 당신을 들어서 쓰셨는데, 지금은 당신이 교만해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은 우상 앞에 절하는 것 같고 귀신들린 자들이나 우상의 노예가 되어 흔들리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당신을 끊어버리셨습니다. 그래서 왕이 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삼상15:23)
그 후로 사울왕의 자손들은 아무도 왕이 되지 못하고 끝났습니다. 축복의 촛대가 베냐민 지파에서 유다 지파로 넘어갔습니다. 사울의 집안에서, 다윗의 집안으로 그 축복의 촛대가 옮겨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만하거나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사울왕처럼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떠나시고, 축복의 촛대는 옮겨갑니다.
오늘날에도 교회에서 처음 봉사할때는 겸손하더니 나중에는 정죄에 빠져서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성령이 떠났는데도 그걸 모르고 방황하는 사람들은 빨리 회개하고 겸손하게 엎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 하나님은 여러 가지 다양한 은사를 선물로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중에 방언은 하나님과 영적으로 대화하는 언어의 능력입니다. 방언통역은 방언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예언은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능력입니다. 신유의 은사는 병을 고치는 능력입니다. 영분별은 성령과 악령을 분별하는 능력입니다. 능력 행함은 초자연적인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입니다.
믿음의 은사는 이성으로 믿어지지 않는 것이 믿어지게 하는 능력이요 또한 믿음으로 기적을 행하는 능력입니다. 지식의 말씀의 은사는 하나님이 주시는 초자연적인 말씀의 능력입니다. 지혜의 말씀의 은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는 능력이면서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입니다.
가장이 가족을 행복하게 하려면 인격도 좋아야 하고 재물을 얻을 능력도 있어야 합니다. 재물을 얻는 능력은 있는데 인격에 장애가 있어서 바람을 피거나 아내와 자식들을 마구 때리거나 거칠고 난폭하게 행동하면 가족들이 불행해집니다.
반대로 인격은 훌륭한데 도무지 돈을 못벌어오면 가족들이 힘들어 집니다. 돈을 벌어오는 능력도 없고 인격도 형편없어서 밤낮으로 도박만 하고 술만 마시고 돈만 쓰고 다니면 그건 정말 문제입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은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가 바로 예수님이 주시는 능력을 받아서 믿음생활을 잘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7절에 보면 은사를 “성령을 나타내심”이라고 증거 합니다. 우리가 은사를 받으면 그 은사를 통해서 성령님이 나타납니다.
예수믿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받는 은사가 방언의 은사입니다. 방언은 내 영이 하나님과 교통하는 언어입니다.
방언기도를 하는 사람의 방언을 들어보면 방언을 하는 나도 무슨말인지 모르고 듣는 사람도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방언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뜨겁게 기도를 하기 때문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방언이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라는 사실을 알게되면 방언하는 사람이 부러워서 방언을 사모하게 됩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입니다. 성령님께서 자신을 나타내 보여주시는 방법이 은사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은사는 상당히 많습니다. 어느 성경학자는 성경에 스물세가지의 은사들이 기록되어 있다고 증거 했습니다. 한편 은사에 관해서 연구한 다른 학자는 은사가 서른 한가지라고 정리를 했습니다. 학자들에 따라서 차이가 납니다.
은사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한가지만 비유 한다면 손재주와 관련된 은사를 받은 사람도 손재주가 각각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가구를 잘 만들고, 어떤 사람은 꽃꽂이를 잘하고, 어떤 사람은 그림을 잘 그립니다. 어떤 사람은 피아노를 잘칩니다. 손재주에 따라서 나타나는 은사가 전혀 다릅니다.
오늘 본문에는 9가지 은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홉가지 은사를 정리하면, 먼저 언어와 관련된 은사가 있습니다. 방언과 통역과 예언 그리고 능력의 은사입니다.
이어서 병 고침과 능력 행함과 믿음의 은사입니다. 그리고 지성과 관련된 은사가 있는데 영분별과 지식의 말씀과 지혜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아홉가지의 은사가 소개되고 있지만 그러나 로마서 12장에 보면 또다른 다양한 은사가 소개 됩니다. 섬기는 은사, 가르치는 은사, 위로하는 은사, 구제하는 은사, 다스리는 은사, 긍휼의 은사등이 소개 됩니다.
구약성경에도 은사를 받은 사람들을 소개 합니다. 브살렐과 오홀리압은 특별한 손재주의 은사를 받아서 성막의 기구들을 만들었습니다. 다윗은 찬양의 은사와, 문학의 은사와. 정치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신명기8장18절을 보면 재물 얻을 능력이 나옵니다. 돈을 버는 은사도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은사는 다양해서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는 그 누구도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가장 좋은 은사가 무엇인지는 성경을 읽어보면 단번에 알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장 좋은 은사는 뭐니 뭐니해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 로마서 5장 15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도 은사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서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데 십자가의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은사요 선물입니다. 구원보다 큰 은사는 없습니다.
오늘 본문 7절에 보면 은사를 주신 이유는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증거 합니다. 무슨 유익입니까? 먼저 은사를 받으면 1) 영성생활에 유익합니다. 영성생활의 목적은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과정입니다.
성경 요한일서1장3절에 보면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라고 되어있고 에베소서4장13절에 보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고 증거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합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과 교제하고 예수님을 닮아 가려면 반드시 은사가 필요합니다.
은사는 하나님의 음성을 수신할 수 있는 수신기와 같습니다. 방송국에서 보내는 전파는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잡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텔레비전은 그 전파를 잡아서 화면과 소리로 변환을 시켜서 우리에게 전달해 줍니다.
마찬가지로 은사도 그런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은사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게 변환작업을 해 줍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면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은사를 받으면 점점 더 깊은 은혜생활을 하게 됩니다. 방언의 은사를 받으면 방언을 하면서 내 영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 교제하게 됩니다. 방언은 알아 들을 수는 없지만 영의 언어입니다. 방언을 하면 내 영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게 됩니다.
이사야서 28장 11절에 보면 “그러므로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라고 증거 합니다. 여기서 다른 방언은 외국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방언의 은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 21절에 보면 방언에 대해서 가르치시면서 이사야서 28장 11을 인용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신 방언으로 기도하면 내 영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게 만들어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방언의 은사는 개인의 영성생활에 유익합니다.
은사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도구와 연장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목수도 연장이 있어야 목수 일을 잘 감당합니다. 톱이 있어야 나무를 자르고 망치가 있어야 못질을 하듯이 하나님의 일도 은사가 있어야 잘 감당합니다.
마찬가지로 은사를 받으면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유익합니다. 은사가 없으면 나도 힘들고 남도 힘듭니다. 예를 들어서 찬양을 못하는 사람이 성가대를 하면 자기도 힘들고 남도 힘듭니다.
얼마전에 대형교회 목사님이 설교를 하는데 자기는 찬송을 너무나 못해서 자기보고 성가대를 하라고 하면 그게 바로 지옥일거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음치가 박자와 음정을 무시하고 싶어서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안 되니까 이상한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이상한 소리를 내면 지휘자도 힘들고 반주자도 힘들고 듣는사람도 힘들고 성가대를 하는 사람도 힘듭니다.
그러나 찬양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성가대를 하면 자신도 행복하고 남도 은혜를 받습니다. 그래서 은사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도구입니다.
세 번째로 3) 은사는 영적인 싸움에 유익합니다. 은사는 영적인 무기요 영적인 레이더입니다. 우리나라는 8조 3천억 원을 투자해서 차세대 전투기 60대를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차세대 전투기를 수입하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스텔스기능입니다.
스텔스 기능은 적의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기능입니다. 적의 레이더에 잡히지 않으니 전투를 하는데 얼마나 유리하겠습니까.
귀신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육신의 눈의 레이더에는 포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육신으로만 귀신과 싸우면 백전백패가 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은사를 받으면 은사라는 레이더에 귀신이 포착됩니다. 그래서 영적인 싸움에 승리하게 됩니다. 영적인 은사가 나타나면 악한 영이 역사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럴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악한 귀신을 쫓아내면 됩니다.
은사는 영적인 싸움을 하는데 유익합니다. 어느날 스가랴는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놀라운 환상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사탄마귀가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참소하는 광경을 보게 된 것입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슥3:1)
사탄마귀는 교회와 주의 종을 대적하고 참소합니다. 참소 한다는 것은 정죄하고 비판하고 원망하고 훼방하는 것을 말합니다. 동방의 의인 욥도 사탄마귀의 참소를 받았습니다. 다윗도 사탄마귀의 참소를 받았습니다.
판사앞에는 항상 검사와 변호사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서는 반드시 천사와 사탄마귀가 같이 공존합니다. 사탄마귀의 특징은 참소입니다. 사탄마귀에 사로잡힌 사람은 늘 원망불평하고 훼방합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스가랴선지자는 제사장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내가 말하되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슥3:4-5)
하나님은 스가랴선지자에게 영안이 열리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스가랴의 더러운 옷을 벗기라고 명령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은 벗겨졌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아름다운 옷을 입히고 정한 관을 씌워 주자 여호수아가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은사가 임하면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를 밝히 보게 됩니다. 그래서 타락하는 길을 막아주고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도록 권면합니다. 은사를 받은 사람은 사람들을 권면해서 정결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만들어 줍니다.
네 번째로 은사는 4) 내적인 만족함에 유익을 줍니다. 은사는 카리스마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런데 카리스마는 본래 “카라”라는 말에서 나온 말입니다. 카라는 “기쁨”입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으면 너무나 기쁘고 행복합니다.
기도를 못하는 사람이 성령의 은사를 받으면 기도하는게 기쁘고 행복합니다. 전도를 못하는 사람이 전도의 은사를 받으면 전도가 기쁘고 즐겁습니다.
달리기를 못하는 사람을 달리기 선수로 만들겠다고 달리기 연습을 시키면 그 사람은 달리기가 괴롭습니다. 부모의 욕심 때문에 공부를 싫어하는 아이에게 공부해서 서울대에 가라고 하면 아이는 미치게 됩니다.
공부를 못하면 그 아이의 은사에 맞는 일을 찾아서 가르치면 아이는 행복하고 그 분야
에서 성공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은사대로 살면 내적인 행복이 임하고 삶에도 유익합니다.
다섯 번재로 은사를 받으면 5) 생활에 유익합니다. 전에 자동차 온도 게이지가 빨간 선까지 올라간 적이 있습니다. 놀라서 가다말고 카센터에 들어가서 무슨일인가를 살펴봐 달라고 했더니 카센터 사장님이 엔진 헤드가 나갔다고 하면서 수리비가 50만원이 든다고 했습니다.
저는 사정상 다음에 고치겠다고 하고 다시 차를 몰고 제가 아는 정비소로 갔는데 그 정비소의 기사님은 “목사님, 냉각수가 부족합니다. 냉각수만 부으면 됩니다”하고 냉각수를 부어 주어서 돈을 안들이고 고쳤습니다.
처음에 갔던 카센터 사장은 사기를 치려고 했습니다. 그때 웬지 마음이 편칠 않아서 그냥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혜의 은사를 주셔서 그냥 나왔기에 생활에 유익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면 범사에 유익한 일이 따라옵니다.
한 목사님은 초등학교를 나와서 시골에서 농사지으면서 통신으로 신학을 해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성실하게 목회를 잘해서 많은 제자를 양성 했습니다.
이분의 목회 비결은 자신이 받은 은사를 잘 사용한 것입니다. 이 분의 은사는 간절한 기도와 사랑입니다. 성도들을 위하여 날마다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지극정성으로 섬기니까 그 은사를 통해서 평생동안 귀한 사역의 열매가 넘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 1절에 보면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을 사모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신령한 것이 바로 은사입니다. 우리가 은사를 사모하면 하나님께서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십니다.(시107:9)
고린도전서 14장 13절에 보면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라고 증거 합니다. 은사를 받은 사람은 더욱 은사를 사모할 때 더 큰 은사를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내 자신에게 필요한 은사를 구하고 그리고 기왕이면 은사가 더 강력하게 나타나도록 기도해서 더 크고 강하게 받으면 좋습니다.
노숙자 생활을 하던 “폴 마이어”는 어느날 길거리에서 볼펜을 팔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고급 승용차를 타고 가는 사람이 문을 열더니 볼펜을 사면서 “당신도 사업가입니다. 열심히 사업을 해 보십시오”하고 갔습니다.
그 말을 들은 폴 마이어는 용기가 생겨서 열심히 볼펜을 팔게 되었고 그러다가 장난감을 팔았고 장난감을 팔다가 기계공구를 팔았고 장사가 잘되자 구멍가게를 얻어서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어느날 목사님의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은후에 날마다 가게에서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점점 사업이 확장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사업의 은사를 받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너도밤나무를 가공해서 전 세계 70여 개국에 하드우드 제품을 수출하는 기업을 경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건축 및 인테리어, 가구재 600여 가지을 생산해서 세계 각지로 수출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폴마이어 그룹은 헌신적이고 우수한 인력 덕분에 유럽에서 가장 효율적인 목재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게다가 폴 마이어는 기부천사입니다. 엄청난 돈을 사회에 환원해서 타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폴 마이어와 가족 재단은 전 세계적으로 30개가 넘는 사역단체와 자선단체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폴마이어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위해, 가능한 한 많은 방법으로, 가능한 한 오랫동안, 가능한 한 많은 선행을 행하는 것”을 일생의 과제로 삼고 봉사하고 있습니다. 폴 마이어는 노숙자로 있다가 예수믿고 나서 자기에게는 장사하는 은사와 사업하는 은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닳았습니다.
아울러 은사는 잘 사용해야 합니다. 은사는 먼저 자기 자신을 위하여 필요합니다. 내 자신을 영적인 사람으로 만들기 위하여 은사가 필요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 10절에 보면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서로 봉사하라”라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이 은사를 받고도 쓰지 않거나 잘못 사용하면 하나님께서 은사를 거두어 가십니다. 삼손은 힘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힘을 여자에게 썼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삼손의 힘을 거둬가셨습니다. 기계를 안쓰면 녹슬어서 못쓰게 됩니다. 은사도 안쓰면 소멸됩니다. 은사를 계속 유지하고 더 풍성하게 만들려면 성령의 충만한 상태를 계속 유지해야 합니다.
은사를 주시는 분은 성령님입니다. 8절로 9절을 보면 은사는 “성령을 통해서 온다”고 네번이나 증거 합니다. 성령께서 임하시면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거나 성령의 은사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성령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은사는 모든 사람에게 역사합니다. 교회만 와 있어도 쓰임을 받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소매치기가 들어와서 대표기도 시간에 자기 옆에 앉은 여자의 핸드백을 뒤졌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 뒤에는 믿음이 없는 한 남자가 아내를 따라와서 예배에 참석 했는데 이사람은 믿음이 없었기에 예배시간에 눈을 멀뚱 멀뚱 뜨고 있다가 앞자리에 앉은 소매치기가 핸드백을 뒤지는 것을 보고 소매치기를 잡았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는 사람도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모든 지체가 다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교회가 행복하려면 모든 지체들이 각자의 은사를 가지고 협력해야 합니다. 28절에 보면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교회를 아름답게 세워 나가기 위해서 직분과 은사를 주셨습니다. 교회는 질서를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4장 33절에 보면 은사에 대해서 증거하면서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은사를 받아서 교회에 덕을 세우고 성도들을 바로 세우고 내 자신도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가 성령의 은사를 풍성하게 받아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포도나무 > 포도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2018년6월3일주일낮 창28장20-22 야곱의 축복 (0) | 2018.06.03 |
---|---|
[스크랩] 2018년5월6일에베소서6장14절 네 부모를 공경하라 (0) | 2018.05.06 |
[스크랩] 2018년4월22일 주일예배 신명기8장1-6절 하나님을 경외하라 (0) | 2018.04.22 |
[스크랩] 2018년4월8일주일낮 야고보서4장13-17절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0) | 2018.04.08 |
[스크랩] 2018년3월28일수요저녁요한복음15장1-8절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자 (0) | 2018.03.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