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핵심 단어는 용서와 사랑 그리고 회복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세 가지 선물을 주셨습니다. 첫째는 영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 지라”(창2:7)
이것은 가장 귀중한 선물입니다. 만일 어느 누가 금은 보화나 돈을 선물로 주는것보다 100년을 더 살 수 있는 생명 연장의 선물을 주었다면 그것은 최고의 선물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100년이 아니라 영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두 번째는 다스리는 권세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창2:15)
이 말씀은 아담과 하와에게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선물로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만일 어느 누가 대통령직을 선거로 얻지않고 대통령직을 선물로 받았다면 이는 큰 선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에게 만물의 영장의 권세를 부여 하셨습니다.
세 번째는 관계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영생이라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그리고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지만 그보다 더 좋은 선물은 천지의 창조주되신 하나님과 복된 관계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대통령과 마음껏 교제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그것은 큰 선물입니다. 제가 아는 분은 대통령과 사진을 한 장 찍었는데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크게 현상해서 집 안방에 붙여 놓았습니다.
저는 평소에 김문훈목사님을 존경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남해세광교회 입당예배때 윤인준집사님이 김문훈목사님을 초대해서 설교를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입당예배가 끝난후에 존경하는 김문훈목사님과 사진을 찍었습니다. 제가 그 당시에 건축하느라 신경쓰는일이 많아서 제 모습이 파싹 늙어 보이는데도 김문훈목사님과 사진을 찍은 것이 자랑스러워서 그 사진을 교회 입구 로비에 붙여 놓았습니다.
제 사촌동생 김화경권사는 우리 남해세광교회가 김문훈목사님을 모시고 입당예배를 드린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당장 저에게 전화를 해서 “오빠! 입당예배때 갈께요!”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전화를 끊은후에 “그래도 사촌오빠인 내가 시골에서 목회하면서 어렵고 힘든 성전건축까지 해 낸걸 알고 나를 축하하러 오는구나!”하고 생각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입당예배가 다 끝난후에 가족들과 식사를 하면서 사촌동생김화경권사가 하는 말이 “오빠! 평소에 내가 김문훈목사님을 엄청 좋아 했어요! 그런데 김문훈목사님이 내가 사는 경기도 파주에서 부흥집회를 하셔서 목사님을 만나고 싶어서 부흥집회에 참석했는데 아무리 기회를 만들려고 해도 목사님을 못만났어요 그런데 김문훈목사님이 오빠교회에 오셔서 설교를 하신다니까 야 오빠 교회에 가면 드디어 내가 김문훈 목사님을 만나뵐수가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합니다.
저는 대학에 다니는 딸을 데리고 천리 먼길을 와서 2박3일동안 열심히 섬기면서 봉사한 사촌동생이 김문훈목사님을 만나고 싶어서 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고재준집사님이 김문훈목사님에게 안수기도를 받을때 사촌동생 김화경권사도 달려와서 드디어 김문훈목사님을 개인적으로 만나서 안수기도도 받고 교제를 나누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촌동생 김화경권사가 나를 보러 온게 아니라 김문훈목사님을 보러 왔다는 말에 조금은 아쉬웠지만 그러나 김문훈목사님 때문에 천리 먼길을 찾아와서 2박3일동안 헌신적으로 섬기고 봉사한 것 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와같이 유명인사나 만인이 존경하는 분과는 사진 한 장만 같이 찍어도 영광인데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관계를 선물로 받은 것은 더할나위 없는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한가지 조건으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언약을 세웠습니다.
신랑과 신부가 결혼할 때에 서로에게 반지를 끼워 줍니다. 이는 이제부터 내 모든 것은 다 당신의 것이지만 순결만은 서로 잃어서는 안 된다는 언약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단 결혼하면 남편은 아내 외의 다른 여자와 관계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아내도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져서는 안됩니다. 부부의 관계가 아름답게 유지되려면 반드시 지켜야 할 서약입니다. 결혼하면 남자는 많아도 남편은 하나밖에 없고, 여자는 많아도 아내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마귀가 와서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고 하는 유혹에 넘어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자 아담과 하와는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렸는데 그중에서 아주 중요한 세 가지를 잃어 버렸습니다.
첫째로 영생을 잃어 버렸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거역한 그때부터 죽어야 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다스리는 권세를 잃어 버렸습니다. 세번째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마귀와 친구가 되었으니 하나님과 원수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깨진 인간은 이와같이 저주받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받은 저주를 회복시켜 주신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축복의 선물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야 구세주로 오신 증거가 누가복음 4장18절로 19절에 증거 됩니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곧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 가사 성경을 읽으시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을 믿으면 회복의 축복이 임합니다. 그런데 회복을 원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집안에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들은 회복이 되질 않습니다. 몸이 아플 때는 의사를 찾던지 약을 찾아야 고침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백퍼센트 성함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누리는 축복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탕자의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귀한 교훈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눅15:12)
둘째 아들은 유산을 미리 받아 가지고 먼 나라로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허랑방탕하다가 재산을 다 탕진한 후에 흉년이 들자 탕자는 돼지치는 집에서 일을 했고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로 배를 채웠습니다.
견디다 못한 탕자가 한탄하면서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17-19) 라고 고백하면서 아버지가 계신 고향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버지가 돌아온 탕자를 발견하고 달려가서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때 탕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21)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23-25) 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부터 입니다. 잔치를 하는 데 맏아들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 왔습니다. 큰아들은 풍류와 춤추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큰아들은 종들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종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27)
그 말을 들은 형은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집안에 들어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나와서 큰아들에게 “애야 왜 안들어오고 그렇게 밖에 서 있느냐 들어가자” 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큰아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29-30)
그러자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니라”(31-32)
성경학자들은 이 탕자의 비유를 해석하면서 집을 나간 탕자와 집안에 있는 탕자로 해석했습니다. 오늘은 집안에 있는 탕자인 큰아들에 대해서 살펴 보겠습니다.
첫째로 큰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큰아들 탕자로 평가 되고 있습니다. 둘째로 큰아들은 동생을 용서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탕자아들로 평가됩니다. 그러나 나쁘게만 평가된 이 큰 아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큰아들에게도 착한점과 장점이 있었습니다.
먼저 큰아들은 성실한 사람입니다. 이 비유에서 아버지는 큰 부자였습니다. 당시의 유산법에 의하면 큰 아들에게는 재산의 3분의 2를 주고, 차남에게는 재산의 3분의 1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탕자 동생이 생떼를 써서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받았습니다.
그때 큰아들도 유산을 받을 자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큰아들은 유산을 전혀 받지 않았습니다. 큰아들은 홀로계신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이 탕자의 이야기에는 어머니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큰아들은 홀로 사는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는 사실을 유추해 볼수가 있습니다.
두 번째로 큰아들은 효도를 잘했고 아버지를 잘 섬긴 성실한 아들입니다. 큰아들의 고백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29절에 보면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이라고 증거 합니다. 큰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한 적이 없는 효자 아들입니다.
사실 그 동안 큰아들은 나쁘게만 평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살펴보면 큰아들에게도 장점이 확실하게 보여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큰아들은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재산이 많은 부자였습니다. 동생은 자기 유산을 받아가지고 가출했습니다. 그런데 큰아들은 아버지의 모든 소유를 관리하면서 지냈지만 자기 맘대로 염소 새끼 한 마리 잡아 먹은 적이 없습니다. 그 증거가 29절로 30절에 증거 됩니다.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었나이다” 큰 아들은 열심히 일하면서도 친구들과 파티를 한 적이 없습니다.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네 번째로 큰 아들은 충성스럽게 일만 했습니다. 탕자 동생이 돌아 오는 그날에도 큰아들은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 왔습니다. 동생은 가출했고 아버지는 늙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오직 집을 나간 탕자 아들에게만 신경을 쓰면서 지냈습니다. 그래서 집안의 모든 일은 큰 아들이 도맡아서 했습니다. 사실 이 집은 큰아들이 직접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집입니다. 품군이 많습니다. 품군이 한 명만 있어도 그런 대로 부잣집입니다. 그런데 일군이 많은 집입니다. 그런데도 큰아들은 밭에 나가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다섯째로 큰아들은 과묵한 사람입니다. 탕자 동생을 향해서 침묵을 지켰습니다. 탕자 동생이 아버지를 공갈 협박해서 재산을 받아 가지고 나갈 때 형은 동생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너 조심해라! 세상이 얼마나 험한 지 알기나 하냐? 정신 안차리면 넌 패가망신한다!” 아니면 좋은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 나쁜 놈아! 나도 유산을 안 받았는 데 네가 유산을 받아? 너 하는짓을 보니 아버지가 준 재산 다 털어 먹고 거지가 될게 틀림없다 돈 다 없애면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마라 네것은 이미 받았으니까 집에는 얼씬도 하지 마라” 그러나 탕자동생이 떠날 때 형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탕자 동생이 돌아 왔을때도 마찬가지로 탕자동생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습니다. 큰아들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 와서 보니까 집안에서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그 잔치가 돌아온 탕자 동생을 위한 잔치라는 사실을 알게된 큰아들은 심히 노했습니다. 그래서 큰아들이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28-30) 지금 형이 누구에게 노하고 있습니까? 형은 동생에게 노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노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는 자기를 몰라 준 아버지에게 화가난 것입니다. 그러나 돌아온 동생에게는 침묵입니다. 탕자 동생에게는 잘 왔다는 말도 왜 왔냐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형은 탕자 동생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야! 임마! 너 돈 다 써버리고 무슨 낯짝으로 집에 들어 왔어? 창녀와 딩굴다 죽어 버리지 왜 왔어? 꼴도 보기 싫다 나가! 난 너 같은 놈하곤 오늘부터 한 지붕 밑에서 살 수 없다!” 아니면 이런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동생아 잘 왔다 아버지는 네가 나간 날 부터 잠도 못 주무시고 밥도 못 잡수셨다. 이제 네가 돌아왔으니 아버지가 두 다리 뻗고 주무실 수 있겠구나 참 잘 왔다. 이제 나가지 말고 같이 살자!” 그러나 형은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아버지에게만 신경질을 부렸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화를 내는 큰아들에게 축복을 선언합니다. 31절에 보면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다” 이 말은 마치 하나님이 화만내고 짜증만 부리는 우리에게 주시는 최상의 축복의 말씀과 같습니다. 게다가 아버지는 집에서 아버지를 잘 섬긴 큰 아들을 아들로 보지않고 아버지와 동급으로 여겼습니다. 아버지의 고백에서 그것이 잘 보여집니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31-32) 아버지는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니라”라고 선포 했습니다. 그동안 큰아들은 항상 나쁘게만 소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큰아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큰아들에게서도 좋은 점이 발견 됩니다. 형은 성실했습니다. 잘 섬겼습니다. 검소했습니다.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침묵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도 일방적으로 판단해서 무조건 나쁘다고 이야기를 해서는 안됩니다. 한편 무조건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만 해서도 안됩니다. 종합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전에도 한번 말씀 드렸지만 1942년에 아메리카를 발견한 콜롬버스는 훌륭한 모험의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대륙을 발견했기에 미국은 콜롬버스의 날이 있습니다. 그 날은 국경일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콜롬버스를 모험가요 역사를 바꾼 사람이라고 칭찬을 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에게도 큰 단점이 있었습니다. 스페인 북부 발라돌리드 지역의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콜롬버스에 대한 문서가 발견되었습니다. 그 문서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 문서에는 콜롬버스가 행한 스물 세가지 일들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중에 몇가지만 소개 합니다. 어떤 여자가 콜롬버스에게 “저 사람은 “하류 계급의 아들이다”라고 비난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콜롬버스가 그 여자를 데려다가 혀를 잘랐습니다. 그리고 옷을 다 벗겨서 당나귀에 태운후에 길거리를 돌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