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포도나무

[스크랩] 2018년11월11일주일낮 다니엘6장1-10절 다니엘의 감사

그리운시냇가 2018. 11. 12. 12:21

다음주는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그래서 추수감사주일을 앞두고 감사에 대한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지키는 추수감사주일은 청교도들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영국에서 기독교를 핍박하자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집도 버리고 땅도 버리고 직장도 버리고 오직 믿음생활 하나 잘해 보려고 다 버리고 떠났습니다. 영국에서는 온전한 예배생활도 힘들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수가 없어서 다 버리고 떠난 것입니다.


그들이 정든 집과 고향을 떠나서 도착한 아메리카는 생각보다 힘들고 어려운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들이 영국을 떠난때가 16209월달인데 그해 겨울인 1221일에 한겨울에 플리머스항에 도착 했습니다.


처음에 102명이 출발 했는데 각종 질병으로 48명이 죽고 절반 정도만 살아남았습니다. 그들이 미국땅에 도착했을 때 긴 여정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것이 첫번째 감사였습니다.


낮선 곳에 도착한 그들은 나무를 찍어서 통나무 오두막집 일곱채를 지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예배당 이었습니다. 그들은 통나무로지은 예배당에서 불을 피워 놓고 하나님 앞에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오자 그들은 가지고간 곡식 종자들을 심었습니다. 보리와 밀 그리고 다양한 곡식을 심었지만 토양이 달라서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가만히 지켜 보니까 이번에 도착한 사람들은 자기들을 습격하지도 않았고 정착해서 농사를 짓는 것을 보고서 인디언들이 찾아와서 화친을 청하고 청교도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인디언들의 도움으로 가을에 옥수수와 호박, 고구마등을 추수하게 되었습니다.


첫 추수감사절에 청교도들은 옥수수빵을 굽고 호박을 찌고 고구마를 굽고 그리고 들에 뛰어 다니는 칠면조를 잡아서 그걸 구워놓고 인디언들을 초대해서 추수감사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게 첫 추수감사절이 되었습니다.


미국은 지금도 추수감사절이 되면 집집마다 칠면조요리를 해 놓고 나누어 먹습니다. 미국에서는 추수감사절을 Thanksgiving이라고 합니다. 땡스기빙은 감사를 드린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날이 추수감사절입니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에는 어느 식당을 가도 어느 가정에 가도 온통 칠면조요리가 넘쳐 납니다. 그런데 칠면조는 별 특별한 맛이 없습니다. 고기가 퍽퍽합니다. 크렌베리 소스를 얹어서 먹으면 좀 먹을만 합니다.


미국 학생들에게 너희들 닭고기하고 칠면조 고기하고 어느 쪽이 맛있냐?”라고 물어보면 당연히 닭고기가 맛있다고 대답을 합니다. 그런데 왜 최고의 명절인 추수감사절에 칠면조고기를 먹느냐고 물어보면 우리조상들이 칠면조고기를 먹으면서 하나님께 감사했기 때문에 우리도 그 전통을 따라서 칠면조고기를 먹는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참된 감사는 맛있는걸 먹으면서 감사할 때 감사가 나오는게 아니라 고난의 때에 가난할때에 고구마 한덩어리를 놓고 감사할 때 진정한 감사가 나옵니다.


곽선희목사님은 6.25때 이북에서 피란을 나왔는데 그래도 잘사는 집에서 피란을 나왔기에 손에 손목시계를 차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피란중에 한 동네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고구마를 굽는 사람을 보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배가 고파서 가지고 있던 팔목시계를 풀어주면서 이 시계를 줄테니까 고구마를 줄수 있습니까? 했더니 그사람이 시계를 받고 고구마 네개를 주더랍니다.


그 당시에 자기 동네에서 손목시계를 찬 사람이 자기 아버지와 자기 뿐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귀중한 손목시계를 풀어주고 고구마 네개를 받았는데 그 고구마를 놓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는데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랍니다. 그때 감사하면서 고구마를 먹던 기억은 평생을 잊을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후에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어도 그 때의 고구마 맛에 비할수 없고 허기진때에 고구마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그 감사와는 아무것도 비교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청교도들은 고난중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영국에서 살때와 비교하면 감사할 조건이 전혀없는 형편없는 환경이지만 그러나 고난중에도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서 진정한 감사를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도저히 감사할수 없는때에 감사한 믿음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가 바로 다니엘입니다.


다리오왕이 다스릴때 다니엘을 시기질투한 간신배들이 다니엘을 제거하려고 술수를 꾸밉니다. 그들이 꾸민 궤계는 왕 이외에 어떤 신에게도 기도를 하지 말라는 조서를 내리는 계획입니다. 다니엘이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것을 안 그들은 다니엘을 죽이려고 그런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왕 이외의 어떤 신에게도 절을 하지 말라는 엄명이 하달됩니다.


그런데도 다니엘은 이런때에도 죽기를 각오하고 기도를 합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6:10)


죽느냐 사느냐 하는 절박한 상황이 임박했는데도 다니엘은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다니엘은 나라가 망해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다니엘은 청소년 시절에 부모 형제들과 생이별을 하고 포로가 되어 수천리 먼 베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바벨론왕은 영리하고 잘 생긴 유대소년들을 포로로 잡아다가 바벨론식 교육을 시켜서 바벨론의 신하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탁월한 스승들을 붙여서 교육을 받게했고 또 왕궁에서 먹는 좋은 음식들과 포도주를 제공했습니다.


그런데 오직 하나님만 경외하는 신앙을 가진 다니엘은 왕이 하사한 음식을 거부 했습니다. 왜냐하면 베벨론의 고기와 포도주는 우상에게 제사를 지낸후에 먹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채식만 먹었습니다. 그런데도 다른 소년들보다 얼굴빛이 아름답고 건강도 좋고 지혜가 넘쳤습니다. 왕이 소년들을 불러서 총명함을 테스트 했는데 다니엘은 다른 소년들보다 열 배나 뛰어난 지혜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꿈을 꾸었는데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왕은 나라의 모든 지혜자와 마술사, 점쟁이들을 다 불러서 자기가 꾼 꿈을 이야기하고 해석까지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바벨론의 술사들은 왕이 꾼 꿈을 우리에게 말해 주시면 우리가 해석해 드리겠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느브갓네살왕이 노 발대발 화를 내면서 내가 꾼 꿈도 알아맞히고 그 꿈에 대한 해석도 하라! 만약에 내가 꾼 꿈을 알아맞히지 못하고 또 해석도 못한다면 너희는 다 처형당할 것이다!”라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바벨론의 모든 술사들은 왕이 꾼 꿈을 알아 맞추는 것은 신이나 할 수 있는 일이지 사람의 지혜로는 불가능합니다라고 이구동성으로 고백 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내가 꾼 꿈이 무슨 꿈인지 알아내지 못하는 모든 술사들과 점쟁이들, 박사들을 모조리 잡아다가 죽여라!”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때 다니엘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놀라운 계시를 보여 주셨습니다. 왕이 꾼 꿈과 똑같은 꿈을 보여 주시고 그 꿈의 뜻이 무엇인지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때의 정황이 다니엘서219절 이하에 나옵니다. “이에 이 은밀한 것이 밤에 환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매 다니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다니엘이 말하여 이르되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도다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 데에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 나의 조상들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제 내게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우리가 주께 구한 것을 내게 알게 하셨사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나이다 곧 주께서 왕의 그 일을 내게 보이셨나이다 하니라”(2:19-23)


다니엘은 왕 앞에 나아가서 자기가 꾼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왕이시여, 왕은 아주 찬란하게 빛나는 큰 신상을 보셨습니다. 그 머리는 금이요, 가슴과 팔은 은이며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종아리는 쇠요, 발은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큰 돌이 날라와서 신상을 쳐서 부숴 뜨렸습니다.


그 꿈의 해석은 이렇합니다. 순금으로 된 머리는 큰 권세를 가진 느부갓네살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장차 왕의 뒤를 이어서 왕보다 못한 다른 나라들이 일어나서 세계를 다스리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돌이 날라와서 그 신상을 부숴 뜨린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나라들을 쳐서 멸하시고 하나님께서 영원히 다스린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와같이 다니엘이, 하나님이 주신 탁월한 지혜로 왕의 꿈을 해석하자, 왕은 충격을 받아서 다니엘 앞에 엎드려 절을 했습니다. 그때의 광경이 다니엘서246절에 나옵니다.


이에 느부갓네살 왕이 엎드려 다니엘에게 절하고 명하여 예물과 향품을 그에게 주게 하니라 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시로다”(2:46-47)


느부갓네살왕은 내가 너보다 나은 것은 보좌 뿐이니라라고 하면서 다니엘을 크게 높여서 나라를 다스리게 했습니다.


느브갓네살왕의 뒤를 이어서 벨사살왕이 즉위했을때도 다니엘은 여전히 건재했습니다. 그 후에 왕이 바뀔때마다 다니엘은 계속해서 중요한 역할을 잘 감당했습니다.


바벨론이 망하고 메다 나라의 다리오왕이 통치할 때도 다리오왕은 고관 백이십 명을 세워서 세계를 통치했습니다. 그때 최고로 높은 총리 세 명을 수하에 두고 나라를 다스렸는데 그때 다니엘은 세 총리 중에 한 사람이 되었고 세 총리중에도 가장 뛰어난 총리로 일을 했습니다.


다리오왕이 다니엘을 모든 신하들보다 높여서 다스리게 하자 다른 신하들이 다니엘을 시기질투 했습니다. 그들은 다니엘을 끌어내리려고 온갖 수단방법을 동원해서 다니엘의 뒤를 캐고 모함을 했지만 아무런 허물과 실수를 찾지 못했습니다.


다니엘은 수십년동안 높은 자리에서 일을 했지만 권력을 남용해서 사리사욕을 채운 일도 없었고, 왕에게 거짓을 아뢴 적도 없었습니다. 직분을 잘못 감당해서 나라에 손해를 입힌 적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신배들은 다니엘을 무너뜨리려고 발악을 했습니다. 다리오왕이 바벨론을 다스리던 때에 간신배들이 또 다니엘을 시기질투해서 왕에게 찾아가서 아첨을 하면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왕이시여 만수무강 하옵소서 왕께서는 신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니 왕의 신하와 백성들 중에서 앞으로 30일동안 왕 이외에 어떤 신에게도 기도를 하면 왕을 무시한 불충을 저지른 중 죄인으로 인정하여 사자 굴 속에 던져 넣으시옵소서 그것을 법으로 정하여 만 천하에 고하옵소서”(6:6-8)


왕은 그들의 말을 듣고 도장을 꽝 찍어주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왕 외에 다른 신에게 기도를 하면 사자굴에 들어가서 죽습니다.


그런데도 다니엘은 왕이 금령에 도장을 찍어 다른 신에게 기도를 하지 말라고 공포한 것을 알고도 일을 마친후에 집에 돌아와서 창문을 열고 예루살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시작 했습니다.


이때 다니엘은 하나님! 또 시험이 왔습니다. 이 위험에서 나를 건져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저 간신배들을 심판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 감사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라고 기도 했습니다. 다니엘은 도저히 감사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했습니다.


기도하면 사자굴에 들어가는데도 정적들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분노심을 격동시키지도 않았습니다. 왕을 찾아가서 저것들이 나를 모함하고 있습니다. 억울합니다라고 호소하지도 않았습니다. 억울하고 분한때에 오직 하나님께 나아가서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결국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 죄목이 되어서 잡혀가서 사자 굴속에 던져졌습니다.


당시에 다리오왕은 다니엘을 끔찍하게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을 생각하면 금령에 도장을 찍지 말았어야 했지만 간신배들이 하도 판을 치면서 난리를 치는 바람에 할수없이 금령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다니엘이 자기가 섬기는 신에게 기도를 했다는 보고를 받은 왕은 간신배들의 계략에 빠져서 어쩔수 없이 총애했던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지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다리오왕은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져넣은 후에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오락과 식음을 전폐하고 금식을 했습니다.


왕은 밤새도록 한숨도 못 자고 괴로워 하면서 밤을 지새우다가 새벽녘에 동이 트자마자 사자굴이 있는곳으로 달려가서 다니엘을 불렀습니다. 그 장면이 다니엘서619절에 나옵니다.


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 굴로 가서 다니엘이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서 슬피 소리 질러 다니엘에게 묻되왕이 얼마나 다니엘을 사랑하고 총애 했는지 사자굴 앞에 가서 슬픈 마음으로 다니엘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혹시 다니엘이 살아있지는 않을까 하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6:20)


그런데 사자 굴 속에서 다니엘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다니엘이 왕에게 아뢰되 왕이여 원하건대 왕은 만수무강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6:21-22)


왕은 기절 초풍을 하듯이 깜짝 놀랐습니다. 왕은 너무나 기뻐서 당장 다니엘을 끌어 올리라 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을 끌어않고 기뻐합니다.


다리오왕은 다니엘을 모함한 정적들을 모조리 잡아서 사자 굴에 쳐 넣어서 사자밥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을 살려주신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온 나라에 조서를 내렸습니다.


다리오왕이 내린 조서가 이러합니다. 다니엘서625절입니다. “


이에 다리오 왕이 온 땅에 있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조서를 내려 이르되 원하건대 너희에게 큰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하였더라


이 놀라운 기적은 고난과 환란의 때에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린 다니엘의 기도를 통하여 이루어진 기적의 역사입니다감사는 기적을 만듭니다.


감사는 사자의 입도 봉합니다. 감사는 우리를 가로막는 어떤 장애물도 무너뜨립니다.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우리를 위해서 일하게 하십니다. 감사하면 우리를 해치려는 어떤 시도가 있어도 하나님께서 역전시켜주셔서 오히려 더 잘됩니다. 고난중에 다니엘처럼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크게 영광을 받으십니다.


서울에서 목회하는 한 목사님이 아들 둘을 키웠는데 큰아들은 공부를 잘해서 대기업에 들어갔고 둘째 아들은 공부를 그렇게 잘하지는 못했지만 신학을 공부해서 전도사로 일을 했습니다.


둘째 아들은 설교도 잘 못하고 찬양도 잘 못하고 기도를 많이 하지도 않고 가르치는 은사도 없는 것 같아서 아버지 목사님이 걱정을 했습니다. 아버지목사님은 적어도 나보다는 목회를 잘하는 목회자가 되면 좋겠는데 저래서 어떻게 하나?” 하는 염려를 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둘째 아들이 부족한 것 투성이입니다.


아들 전도사를 지켜보던 아버지목사님이 어느날 기도를 바꾸었습니다. “하나님! 탁월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작은 목회라도 평생 꾸준히 잘 감당하며 주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는 아들이 되게 해 주세요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에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아들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보다 더 귀하게 쓰리라!”라는 음성을 들려 주셨습니다.


목사님은 놀라서 기도하다 말고 하나님! 감사합니다!”하고 기뻐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무리 보아도 아들 전도사가 목회를 잘할 것 같은 기미가 보일질 않습니다. 목사님은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잘못 들었나?”하고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세월이 지나서 아들이 목사 안수를 받고 부목사로 일을 시작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교회에서 건축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 했습니다. 목사님은 자기 교회의 직분자 교인들에게 한 사람당 백 만원씩 헌금하자고 광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대전에 사는 대기업에 다니는 큰 아들이 건축헌금을 보내 왔는데 10만원을 보내 왔습니다.


그 헌금을 받아든 사모님이 실망해서 건축헌금을 하려면 좀 많이 하지 대기업에 다니면서 겨우 십 만원이 뭐야?”하고 속이 상해서 불평을 했습니다.


아버지목사님은 아내에게 큰아들이 우리교회 교인도 아닌데 그거라도 보내주었으니 고맙지 뭘 그래요! 게다가 이제 신혼살림에 집 장만하고 얼마나 어렵겠어요? 그냥 당신이 이해해요!”합니다.


그런데 부목사로 가난하게 사는 둘째 아들은 아예 헌금을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둘째 아들목사가 주일날 오후에 오더니 아버지에게 300만원을 가져와서 건축헌금이라고 하면서 내 놓았습니다.


아버지목사님은 깜짝 놀라서 이게 무슨 돈이냐? 네가 무슨 돈이 있어서 이렇게 많은 헌금을 했냐?”하고 물었더니 전도사 시절부터 적금을 들었는데 아버지가 교회 리모델링을 하신다니까 건축헌금 드리려고 적금을 깼어요 적금은 또 들면돼요!”합니다.


사모님은 둘째 아들이 집으로 돌아간 후에 으이구! 나중에 장가갈 때를 위해서 적금하나 들어 놓으라고 했더니 그걸 깨가지고 가져와? 차라리 신대원 등록금이나 내지하면서 안타까와 했습니다.


그때 아버지목사님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 났습니다. “내가 너보다 더 크게 사용하겠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아버지 목사님은 바로 이거 였구나! 우리가 보기에는 큰 아들이 공부도 잘하고, 책도 많이 읽고 찬송도 잘해서 저놈이 좋은 목회자 감이라고 생각 했는데 큰아들은 회사로 빠졌고 오히려 부족한 둘째 아들이 목사가 되었는데 이제보니 둘째 아들이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룻 이었구나! 둘째 아들의 믿음의 그릇이 큰아들보다 훨씬 크구나!”라는 생각에 비로소 마음이 기쁘더랍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과 감사할줄 아는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행복은 감사하는 마음에 있습니다. 나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시고 오늘도 나를 사랑해 주시는 주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니에게 주신 재물을 하나님을 위해서 기꺼이 드릴수 있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금번에 설천노인대학경로잔치를 준비 하면서 광고를 드렸습니다. 200인분의 떡을 해서 봉지에 담아서 나누어 드리면 노인들은 그 떡을 가져가서 자기 이웃 분들과 나누어서 드십니다. 그래서 200인분의 떡을 하기로 했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데 김안순집사님과 새신자 황 참믿음성도님께서 떡값을 제공해 주시겠다고 연락이 와서 넘 기뻤습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감사하는 사람을 잘 되게 하십니다.


요즘 과학자들은 엔돌핀보다 4000배나 더 강한 다이돌핀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다이돌핀이 생성되면 암도 낫는다고 합니다. 이런 엄청난 능력이 있는 다이돌핀이 언제 생기냐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강하게 역사할 때 생성되고 또 기쁨과 감사가 넘칠 때 생성 된다고 합니다. 연약한 인간이 초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두가지 비결이 바로 믿음과 감사에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큰 감사를 한 사람이 세리장 삭개오입니다. 삭개오는 세상적으로는 성공한 사람입니다. 권력 있고 돈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한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그것은 종교적 고민입니다. 신앙적으로 하나님을 등진 것 같은 죄스러운 삶이 그의 고민입니다.


또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매국노라고 부르는데 대한 고민입니다. 당시의 세리는 로마 사람을 위해서 일하는 직업입니다. 세금을 거둬서 로마에 바쳐야 하기에 동족을 착취했습니다. 그래서 민족을 배반한 고통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괴로웠습니다.


당시의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아 구세주를 기다렸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어서 속히 메시아가 와서 새로운 질서, 새로운 평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주기를 바라는, “메시아 대망사상”(Messianic Expectation)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삭개오도 그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도 예수님이 정말 메시야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서 예수님을 만나러 길가로 나왔습니다.


그는 부자가 되기 위해서 예수님을 만나러 오지 않았습니다. 더 잘 살기 위해서 예수님을 만나러 오지 않았습니다. 병을 고치려고 예수님을 만나러 오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러 온 이유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세관에 앉아있었던 마태를 현장에서 불러서 제자를 삼으셨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길래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미워하는 죄인의 대명사인 세리를 불러서 제자를 삼았을까? 그게 궁금했습니다.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조롱을 받으면서도 세리를 사랑한 그분이 보고 싶었습니다.


삭개오가 길가로 나갔는데 그는 키가 작아서 도무지 예수님을 볼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오늘날로 말하면 부산 국세청장쯤 되는 지위에 있었는데 체면을 내던지고 뽕나무위로 기어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인파와 함께 지나가는 예수님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삭개오는 이 은총적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습니다. 일생에 딱 한 번 주어진 이 중요한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기대한 것은 뽕나무에서 예수님을 한번만이라도 보는 것 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삭개오에게 다가와서 우러러보시고 "삭개오야 내려오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평생에 처음만난 예수님이 자기 이름을 불렀습니다.


예수님은 개인적으로 삭개오를 만나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삭개오의 마음을 읽으셨습니다. 아무런 주고받은 이야기가 없는데도 예수님은 삭개오의 마음을 훤히 꿰뚫고 계셨습니다.


삭개오가 왜 뽕나무로 올라갔는지, 왜 자기를 보려고 애를 쓰는지 왜 저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메시아구세주를 기다리는지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고민! 나의 괴로움을 다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과 말을 해본적이 없어도 예수님은 다 아십니다.


그래서 삭개오가 감격한 것입니다. 자기 이름을 알고 그리고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라고 말씀하신 그 말씀에 가슴이 미어 졌습니다.


예수님이 세리의 집에서 하룻밤을 머문다는 것입니다. 온 유대 사람이 상종하지도 않고 인사하지도 않고 미워하는 세리의 집에 오신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심지어는 거지도 세리의 돈은 더러워서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세리가 준 돈인 것을 알면 받았다가도 도로 던져 버렸다고 합니다. 그렇게 더럽게 취급하는 세리의 집에 예수님이 오셔서 하룻밤을 머물겠다고 하시는 이와같이 고마울데가 어디 있겠습니까?


가장 큰 사랑은 나에게 돈을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같은 죄인을 인정해 주시고 나에게 의를 주시는 분이 가장 고마운 분입니다.


예수님이 죄인의 집에 오시면 그 집은 복받은 집이 됩니다. 예수님이 내 마음에 오시면 죄인이 의인이 됩니다. 신분이 바뀝니다. 족보가 바뀝니다. 엄청난 축복이 선물로 주어 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오시니까 정말 놀라운 변화가 임합니다. 예수님이 삭개오에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임하였느니라라고 선포 하셨습니다.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는 말은 영생을 선물로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너도 이제부터 아브라함의 자손이다라고 선포 하셨습니다. 이 말은 네가 이제부터 죄인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완전한 의롭다함을 얻었다는 엄청난 축복입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서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고민과 갈등과 어두움과 슬픔속에서 살다가 기쁨이 넘쳤습니다. 누가복음196절에 보면 예수님이 삭개오를 부르자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했다라고 증거 합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서 보여준 첫 번째 감정은 예수님이 자기를 만나 주신 것이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래서 즐거워했습니다. 재물을 얻은것도 아니고 세상적인 그 어떤 것을 얻어서 즐거워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나의 집에 오신다는 그것 때문에 그는 기뻐했습니다예수님을 모신다는 것은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사건입니다.


또 한가지는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서 마음이 열렸습니다. 마음이 열리면서 놀라운 일을 행하게 됩니다. “예수님! 내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겠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뜻이 무엇인지도 깨닳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뜻을 당장 준행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은 가난한 자를 돕는 분이다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내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다고 고백 했습니다. 그리고 토색한 것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습니다라고 고백 했습니다이 말은 율법을 지키겠다는 고백입니다. 율법이 그렇게 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된 감사는 생각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생각이 돌아오면 믿음의 사람이 되고 감사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생각하다라는 단어 “Think”와 감사하다 라는 단어 “Thank” 는 어원이 같습니다. 그러니까 생각이 없으면 감사하지 못하고 생각이 있으면 감사한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어떻게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감사도 하고 원망도 하게 됩니다.


어떤 여자가 식물인간이 된 남편을 위해서 수고하다가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십년 동안 남편을 수발했는데 남편은 아무 응답이 없어요, 말 한마디 없어요. 제발 눈을 한 번 뜨고 여보 고마워 라는 말 한번만 들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식물인간이 된 남편을 위해서 아무리 수고해도 남편은 말도없고 응답도 없습니다. 이게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작은 수고에도 고마워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게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인간의 삶이 무상하다라는 것을 깨닳았다면 그는 불교인 입니다. 인간의 삶 속에서 인간이 해야할 도리를 깨닳았다면 그는 유교인 입니다. 인간의 삶 속에서 은혜를 알면 기독교인 입니다.


우리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종교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알면 그가 바로 참된 그리스도 인입니다. 그것을 깨닳은 사람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수 있습니다.


은혜를 깨닫고 감사가 있으면 참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을 감사로 해석하고 또한 감사가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내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겠습니다라는 실천을 감행하게 됩니다. 받은 은혜를 알고 은혜를 베푸는 마음, 그것이 감사의 진수입니다.


인생의 성공은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감사하는 것이 성공입니다.


무쪼록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감사하면서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출처 : 보물섬남해세광교회
글쓴이 : 행복을 주는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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