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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5년7월8일 수요저녁 빌립보서4장4-7 감사함으로 아뢰라

그리운시냇가 2015. 7. 8. 23:37

지금부터 7년전인 2009년도에 미국에 있는 처제 윤영애 집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자궁암이 퍼져서 병원에서 더 이상 살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는 저와 더불어 언니인 제 집사람과 그리고 장모님과 모든 가족들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 소식을 듣고 크게 놀라고 또 상심했지만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 처제를 위해서 기도를 시작 했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믿어온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요 또한 못고칠 질병이 없는 여호화 라파!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믿기에 우리는 기도제목을 말씀 드리고 새벽마다 부르짖어 기도를 했습니다.

 

제 집사람은 처절한 심정으로 새벽마다 통곡을 하면서 눈물과 함께 동생 윤영애 집사님을 위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병원에서는 더 이상 손을 쓸수 없는 특이한 암이어서 항암치료를 하다가 포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머리도 빠지고 병세가 악화되던 처제가 병원에서 포기한지 두달만에 갑자기 건강이 호전되기 시작하더니 6개월 후에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완전하게 회복이 되었습니다.

 

죽게된 처제가 회복이 되자 병원에가서 다시 간검사와 피검사를 했는데 암은 씻은듯이 사라졌고 완전한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수 없는 암 3기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기적을 베푸셔서 건강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양유진집사님이 간암에 걸려서 병원에 입원하더니 동서 양유진집사님도 똑같이 소망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양유진집사님도 하나님을 의지하여 다시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 가정이 연단에 연단을 거듭하더니 급기야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양유진집사님이 신학공부를 시작해서 이제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연단과 고난이 오는 것은 더 좋은 것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섭리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다 보면, 돈으로 많은 것을 구할수 있고 행복도 누릴수 있지만,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입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입니다. 그래서 건강이 참 중요합니다.

 

그런데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건강을 회복했다 해도 사람은 언젠가는 반드시 죽습니다. 죽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조금 오래 살거나 조금 일찍 가는 것 뿐이지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 옵니다.

 

그런데 죽음으로 인생이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은 죽으면 영원한 천국과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진정한 행복은 영생을 얻은 사람이 진정한 행복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이니이다”(17:3)

 

오늘 새벽에 예레미야서를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부패한 죄인들을 택해서 그들에게 성신을 부어주고 그들을 좋은 무화과로 만들어서 그들에게 복을 주겠다.”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 입니다. 구약시대뿐 아니라 신약 시대에 와서도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에게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새 언약이요 은혜언약(Covenant of Grace)입니다.

 

이것을 칭의의 은혜(Blessing of Justification)라고 합니다. 내가 아무리 죄가 많고 형편없는 삶을 살았어도 하나님이 너는 죄 없다! 네가 죄사함 받았다! 내가 너를 의롭다고 인정한다!” 라고 말씀 하시면 그 순간부터 과거에 무슨죄를 지었던지 무조건 의인이 됩니다. 사형수가 사면복권으로 풀려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면 죄사함을 받고 의인이 되어서 예수님의 공로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우리는 나같은 죄인을 사랑하시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빌립보서 46절로 7절에 보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라고 증거 합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염려는 세상 모든사람들이 짊어지고 살아가는 무거운 짐입니다. 하루에도 온갖 염려와 근심이 떠날날이 없습니다근심걱정 염려는 사람을 괴롭게 하고 병들게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TV와 모든 매체에서 그리고 일상생활에서도 힐링이라는 단어가 유행합니다. 힐링은 치유, 치료라는 말입니다. 힐링캠프, 힐링바이오, 힐링데이, 힐링마을, 힐링메뉴등 힐링이 대세입니다.

 

특히 인기리에 방영되는 힐링캠프를 보면 연예인이나 유명 인사들이 나와서 자기의 과거 이야기를 합니다. 주로 과거에 아팠던 경험들을 고백하면서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면 본인은 자기의 아픔을 고백함으로서 힐링을 얻고 시청자들은 그것을 봄으로서 대리만족을 얻습니다.

 

그런데 이런 대화중에 많은 부분들이 작가가 미리 써 준 대본에 의해서 진행된다고 합니다.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려고 어느정도는 각색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힐링(healing) 이라는 단어는 10년 전만 해도 크게 유행하지 않았습니다. 본래 힐링이라는 단어는 교회에서, 미국의 은사주의 교회에서 사용했던 단어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몸을 치유하시고 우리의 마음도 치유하신다는 데에서 힐링이란 말이 유래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의 아픔이나 몸의 아픔은 대부분 과거의 상처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상처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기에 사람들이 치유를 위해서 자기의 과거를 더듬어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마음의 상처가 발생한다고 생각해서 엄마의 상처까지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상처의 근원이 주로 어디냐?”를 따져보니까 주로 가족, 부모, 학교, 친구, 아니면 어려운 가정 형편이 원인으로 나타 났습니다

 

사람들은 과거의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 힐링이 된다는 생각에 과거 이야기를 드러내놓고 이야기를 하는 프로그램을 힐링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독자적인 프로그램을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아픔과 근본적인 상처를 치유해 주실분은 성령님밖에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성령님이 내 안에 오십니다. 그 성령께서 나를 감동하시고 내 영혼을 거듭나게 하시면 과거에 나에게 아픔을 주었던 사람을 용서하게 되고 나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으면서 진정한 힐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힐링이 신앙의 뿌리에서 이탈하기 시작하면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냐면 성령이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고 내가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누군가를 탓하는 형식으로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개가 나에게 상처를 주어서 내가 아팠다, 누가 나를 왕따를 시켜서 내가 외로웠다, 우리 집이 가난해서 내가 힘들었다, 이런 식으로 남을 탓합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실제로 있지도 않는 과거를 상상으로 만들어서 진짜처럼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 아동 성추행을 당하지도 않았는데 실제로 그런일을 당한것처럼 상상추행을 당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이런 것을 일컫는 속담에 못되면 조상 탓! 잘되면 내탓! 이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힐링이 기독교의 뿌리에서 이탈하면서 생긴 또 다른 변화는 사람들 앞에서 나의 아픔을 말하면 치유를 받을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의 상처를 완전하게 치유해 주시는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앞에 아뢰는 것이 중요합니다.

 

찬송가 365장부르겠습니다. 

 

마음속에 근심있는 사람 주예수 앞에 다 아뢰어라, 슬픈마음 있을때에라도 주예수께 아뢰라 주예수앞에 다아뢰어라 주 우리의 친구니 무엇이나 근심하지 말고 주 예수께 아뢰라

 

병자들이 예수님께 자신들의 문제를 고백하면 치유를 받았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었던지 예수님께 고백하면 예수님께서 해결해 주셨습니다.

 

귀신 들린 아들을 데리고 온 아버지가 예수님의 제자들을 찾아갔는데 그들이 귀신을 내쫓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없을 때 예수님만이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보면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해 기도하라라는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의 문제에 대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서로의 상처를 말하라는 성경구절과는 거리가 멉니다.

 

쇼펜하우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의 문제를 나에게 말하지 말아라 내 문제만으로도 버겁다맞는 말입니다. 사람은 자기의 문제 하나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내 영혼도 구원하지 못합니다. 소경이 어떻게 소경을 인도합니까? 쇼펜하우어가 바른 말을 한 것입니다.

 

힐링이 세속화 되면서, 나의 아픔을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나의 아픔을 하나님께 말하는 것을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친구 사이에 뭔가 자신의 아픔을 말하지 않으면 친한 친구가 아닌 것처럼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뭔가 비밀을 말해야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풍조가 있었습니다.

 

교회의 소그룹에서도 뭔가 자신의 아픔을 공개해야 된다는 암묵적인 압력이 존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심리적인 폭력입니다. 성령께서 내 마음을 감동해서 내가 스스로 내 마음에 있는 것을 고백 할 수는 있지만 그 어느 누구도 내 마음의 비밀을 털어놓도록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공산주의에서도 이와 비슷한 습관이 있습니다, 자아비판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고 재판을 받는 것입니다.

 

요즘 이런 일에 인터넷이 합세를 했습니다. 인터넷은 저마다 하고 싶은 말을 쏟아놓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입이 있는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전부다 인터넷을 통하여 쏟아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30년전에 빌리그래함 목사님이 설교를 하실 때 요즘 젊은이들은 자기 방에 들어가면 라디오부터 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에는 라디오를 켰지만 요즘에는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그것을 대체합니다.

 

하나님앞에 나아가서 시간을 가져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께 기도할수 있는데 도무지 하나님께 나아갈 시간이 없습니다. 성도도 하나님께 나아가기 보다는 텔레비전과 사람 만나는 일에 시간을 보내기 일수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기도를 생명보다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면 죽임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다니엘이 사자굴에서도 기도하는 믿음을 가졌기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위기에 처했을 때 가까운 친구들이나 혈육을 의지하지 않고 살아계신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했기에 다니엘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게 됩니다.

 

이런 진리를 깨닳은 예레미야도 175절로 8절에서 이렇게 증거 합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건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사람만 의지하면서 살면 결국은 사막의 가시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물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그 잎이 청청하여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하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북 이스라엘에 요람이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요람은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랫동안 기회를 주시면서 기다렸지만 결국 도저히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시고 처단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북 이스라엘의 장군 예후에게 요단 왕 요람을 처단하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예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군대를 데리고 출동합니다. 그런데 파수꾼이 그 광경을 보고 요람왕에게 가서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보고를 합니다. 보고를 받은 요람은 불안한 마음에 사람을 보냅니다. “너는 나가서 앞에서 오는 군대를 만나면 평안하냐?” 라고 물어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영어 성경으로는 “Do you come in peace?”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요람왕이 보낸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죽을까봐 두려워서 예후장군에게 투항합니다. 보낸 사람이 돌아오지 않자 뭔가 잘못 되었다고 판단한 요람왕은 불안한 마음에 직접 말을 타고 달려 나갔습니다. 가서 보니 예후장군입니다. 그때 왕이 예후장군을 보고 한 말이 “Have you come in peace?”“평안하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죄를 지어서 심판을 받는 그 순간에도 죄를 지은 그 사람이 평화를 누리기를 원하는 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요람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습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심판받아 마땅한 죄만 짓고 살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그 가족들에게서 마음의 평화를 빼앗은 사람이었지만 정작 자기는 그렇게도 평화를 소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렇듯 악한자나 선한자나 모든 사람들이 갈망하는 것이 평화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라고 말씀 합니다.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라고 강조합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긍정보다 부정이 더 많아집니다. 그래서 부정적인 이야기를 더 많이 합니다. 세상 세파에 시달리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입니다.

 

세월이 지나가면서 밝음보다는 어둠이 더 많아집니다. 젊었을때는 얼굴이 밝았는데 세월이 지나갈수록 어두워집니다. 아이들을 보면 이런 모습을 확연하게 볼수 있습니다.

 

어릴 때 아이들의 모습은 한없이 밝습니다. 하영이나 하율이 그리고 지연이를 보면 얼마나 맑고 깨끗한지 정말 천사같습니다. 그러나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중학교,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얼굴이 점점 더 어두워집니다. 마치 인생의 짐을 다 짊어지고 가는 사람 같습니다.

 

사랑할때는 그 기쁨이 영원할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가면 이런 문제, 저런 어려움 때문에 오히려 슬픔만 남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이 어둠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월이 지나가면서 어둠이 우리를 물들입니다. 그래서 어깨에 자꾸 중압감이 들어가고 사십견, 오십견도 되고 여기저기 몸에 멍들기도 하고 마음에 멍이 들기도 합니다. 아픈 상처만 많고 슬픔만 많이 남습니다.

 

세상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요즘 웃음치료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TV에서 암에 걸린 사람들을 모아놓고 치료하는 것을 보여주었는데 강사가 웃으라고 하지만 처음에는 사람들이 잘 웃지 못합니다.

 

강사가 이들에게 억지로라도 웃으라고 합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저렇게 억지로 웃어서 무슨 치료가 될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정말로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그것이 처음에는 잘 안 되다가 한참 억지로 웃었더니 정말 웃음이 나옵니다.

 

그래서 혼자서 자주 웃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혼자서 웃고 말도 많이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날아가는 새를 보고도 이야기를 하고 고라니들을 보고도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 상당히 기분이 좋습니다. 그게 바로 항상 기뻐하는 마음의 자세입니다.

 

아울러 5절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라고 증거 합니다. 감사의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기도의 내용이 다릅니다. 상황도 다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어떤 상황이든지 기도가 어떤 내용이든지 간에 감사의 기도를 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너무 너무 어렵고 힘들고 급박할 때에는 감사의 기도가 잘 나오지 않지만 그러나 감사의 기도를 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30년 동안 알코올 중독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남편을 위해서 결혼 하자마자부터 30년 동안 기도를 했습니다. 아들도 기도했습니다. 나중에는 결혼한 며느리까지 힘을 모아서 기도를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 알콜 중독자의 아들은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에서 특별한 것을 깨우치게 됩니다. 하나님께 사람을 변화시켜 달라는 기도나 환경을 바꾸어 달라는 기도 보다는 하나님께 감사할 때 기적이 역사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아들이 크게 뉘우쳤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수 많은 세월 동안 아버지가 변화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지만 한 번도 아버지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깨닳은 이 아들은 그 깨달음을 자기 아내와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둘이서 지금까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 기도는 우리 아버지가 알콜 중독자가 되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어찌보면 말도 안되는 기도지만 그러나 감사하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점점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조건 감사 했더니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날이 토요일이어서 아들 부부가 부모님과 함께 늘 하던대로 함께 모여서 저녁 식사를 했는데 그동안은 아버지가 식사를 하자마자 자리를 떠나서 아버지 방에가서 술을 마시던지 잠을 주무셨는데 그날은 아버지가 이상하게 자리를 떠나지 않고 앉아서 끝나고 차를 마시더니 아버지가 뜻밖의 질문을 했습니다.

 

라디오에서 마약 중독자가 신앙으로 마약을 끊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런 일이 정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냐?”하고 물은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과 며느리는 아버지에게 예수님을 믿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면 술을 끊을수 있다고 말씀을 드린후에 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아내는 더 열심히 감사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감사기도를 시작한지 몇 주일이 지나지 않아서 아버지가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아버지가 어느날 갑자기 술을 끊으셨습니다.

 

아들은 너무나 감사해서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변화시켜 달라고 30년을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깨닫고 아버지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한 것은 단 한달 이었습니다감사의 능력을 보여주는 간증입니다. 원망하면 원망이 끝없이 계속됩니다. 감사하면 감사할 일들이 계속됩니다.

 

저는 금번 건축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하면서 하는 일에는 감사가 계속 되지만 원망하는 일에는 계속해서 원망할 일들이 생긴다는 사실입니다.

 

근 두달동안 성건건축공사가 계속되면서 감사할 일이 넘쳐 났습니다. 크고 작은 감사거리가 매일 계속되었습니다. 크게는 안전시공 완전시공의 기도제목이 은혜중에 이루어지고 있고 또 건축을 위해서 많은 분들이 헌신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큰 어려움 없이 건축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기초공사부터 철골공사 그리고 조적공사와 실내 인테리어공사까지 공사가 진행 되면서 일하시는 분들과 함께 동거 동락 하면서 삶의 현장에서 새벽부터 저녁까지 땀흘리면서 일하는 일군들의 수고와 희생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건축을 하는 동안에 우리가 원하는대로 되어지지 않아서 마음 상하는 일도 있었지만 한편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찾아내서 지도해 주시고 주어진 일보다 훨씬 더 많은 일들을 해주시는 분도 계셔서 엄청난 위로와 힘을 얻고 있습니다.

 

성전건축을 하다 보니까 사람들의 마음도 헤아리게 되었습니다. 전기공사를 하면서 두분에게 견적을 의뢰 했는데 한분은 양심껏 견적을 내 주시고 섬기는 마음으로 저희를 도우려는 마음으로 헌신할 마음을 가진분이 있는가 하면 어떤분은 말은 그럴 듯 한데 실상은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모든일을 지켜 보면서 하나님께서 왜 여호와 치드케누의 하나님이신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제 우리는 여호와 치드케누를 배웠습니다. 공의의 하나님이 여호와 치드케누입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예레미야에게 보여주신 복받을 무화과와 복을 받지 못하고 저주를 받을 무화과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사람은 복받을 사람이 있고 저주를 받을 사람이 있다고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 하셨습니다. 속이는 저울과 속이는 사람은 복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섬기고 사랑하고 베푸는 사람은 복을 받게 된다고 주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섬기고 사랑하고 희생하는 사람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 하시기를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6:37-38)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본문 7절에 보면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이것을 영어 성경은 “The God of peace will be with you”라고 되어 있습니다.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들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입니다.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평화를 주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축복이 함께 합니다.

 

아무쪼록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행하여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은혜안에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출처 : 보물섬남해세광교회
글쓴이 : 행복을 주는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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