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김상철성도님의 주선과 조은정사장님의 섬김으로, 우리 남해세광교회의 모든 성도님들이 남해에 새로생긴 보물섬시네마 극장에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라는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오래전에 다큐멘터리 영화가 50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금번에 그 영화를 보게 되어서 무척 기뻤습니다.
영화관람전에 한촌설렁탕집에서 모든 성도님들이 함께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점심식사는 김상철성도님께서 섬겨 주셨습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라는 영화는 89세 할머니와 98세 할아버지가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사랑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할머니는 끝까지 여자로써의 아름다운 모습을 저버리지 않았고, 할아버지는 죽는 그 순간까지 할머니를 사랑했습니다.
할머니는 연신 고마워요를 연발하며 할아버지를 행복하게 해 주었고 영화의 장면 장면들이 너무나 아름답게 처리되어서 내내 참으로 오랬만에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영화를 보았다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첫 눈을 서로에게 먹여주는 모습과 더불어 눈싸움을 하고, 물장난을 하고나서 두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모습은 정말 귀여운 로맨스처럼 보였습니다. 그건 분명히 사랑이 주는 행복과 기쁨이었습니다.
배려가 무엇이고, 존중이 무엇인지 당신들의 삶을 통해서 고스란히 느꼈고, 당신들이 누리는 진정한 낭만 앞에서 한없이 부러웠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 세월이 흐르면서 죽음을 향해가는 할아버지가 주는 슬픔과 절망이 공존합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슬픔과 절망때문에 내내 숨이 막혔습니다. 나중에는 너무 서럽고 슬픈 마음에, 울고 또 울었습니다.
앞줄에 앉아계신 눈을 못보시는 류금련권사님께서 얼굴을 아래로 묻고 우시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오늘 새벽예배가 끝나고 나서 괜히 류금련권사님에게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나?" 싶은 생각에 죄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만들어낸 웃음이 아니고, 만들어낸 행복이 아닌 영화! 만들어낸 슬픔이 아니고, 슬픔조차 아름다운 슬픔을 잘 나타낸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영화를 만든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세상 사람들은 저렇게 살다가 죽으면 그것으로 인생이 끝난다는 생각에 안스러웠습니다. 우리는 살아도 행복하고 죽어도 행복한데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가진 이 엄청난 행복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심히 아쉬웠습니다.
저는 이자리를 빌어서 우리를 선대해 주신 보물섬시네마의 사장님! 조은정사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극장에 도착 했더니 조은정사장님께서 저희들을 극진히 맞이해 주셨습니다.
심지어 우리 성도님들을 위해서 한사람앞에 한봉지씩 팝콘도 튀겨 놓으시고 그리고
자리도 200석 중에서 가장 좋은 로얄석으로 30석을 예비해 놓으시고 그 좌석표를 저에게 직접 전달해 주셨습니다. 조은정사장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특별하게 배려해 주셨는지를 깊이 느낄수가 있었습니다.
영화를 시작하기 전에도 손수 오셔서 돌봐 주시고 끝난 후에도 다시 오셔서 마지막 한사람이 나갈때까지 인사를 마다 하지 않으시는 모습에 또한번 감동을 받았습니다.
참으로 고맙고 감사기 그지 없었습니다. 극장에서 직원으로 일을 하는 용강에 사는 제자 효은이를 만난것도 기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차를 탈 무렵에 비가 쏟아지자 직원을 시켜서 우산을 들고 차를 타는 우리 성도님들을 일일이 우산에 씌워서 차까지 바래다 주도록 조치를 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 귀한 섬김에 더이상 할 말을 잃었습니다. "조은정사장님! 참 고맙고 감사합니다!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모든 동물을 입을 통해서 먹고 삽니다. 그러나 사람은 말로 먹고 삽니다. 동물의 입은 먹는 데만 필요하지만 사람의 입은 먹는 것도 먹는 것이지만 말을 사용하기 위해 존재 합니다.
입이 하는 역할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말입니다. 말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에게만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그래서 인간만이 말을 합니다. 따라서 사람은 말과 대화로 모든 문제를 해결합니다.
말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놀라운 능력이 숨겨져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우리의 말에도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나라의 지도자가 한마디 하면 경부고속도로가 뚫리고, 소강댐이 지어지고, 바다가 육지로 변하여 새만금이 됩니다. 누에는 자기 입으로 나오는 실로 고치를 짓고 살아갑니다.
사람들 역시 자기가 내뱉은 말로 살아갑니다. 말은 사람의 운명을 바꿉니다. 세상 사람들도 말에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한 말이 나중에 그대로 이루어는 신기한 현상을 보면서 사람들은 처음에는 “우연이겠지”라고 생각을 했지만 그런데 말한대로 이루어지는 신기한 현상이 계속 반복되자 놀래서 “말이 씨가 된다”라는 말을 만들어 냈습니다.
또 “천 냥 빚도 말 한마디면 갚는다”라는 속담이 있는가 하면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라고 말을 합니다. 한을 품은 여자의 입에서 나온 말은 독을 품은 저주의 말이 되어서 한 여름에도 서리가 내릴정도로 무서운 일이 생긴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속담과 말들은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케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18:20-21)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4장 1절에서 바울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사랑의 말을 하고 신령한 은혜를 사모하면 예언의 능력과 은사를 가지게 됩니다. 예언의 능력을 가진 사람은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베드로가 성령충만을 받고 새사람이 되어서 날마다 성전에 기도하러 다니더니, 어느날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거지를 보고는 그 거지에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선포 했는데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기적이 벌어 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면 이런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8장 18절에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두 세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여 일치된 마음으로 구하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화목은 말에서 나타납니다. 말이 일치하면, 모든 것이 일치된 것입니다. 말은 사람의 생각을 만들고, 태도를 만들고, 인격을 만들고, 삶을 만듭니다.
사람의 말 속에는 그 사람의 사상과 감정과 생각과 인격이 담겨 있습니다. “언중유골(言中有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 속에 깊은 뜻이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말은 엄청난 능력이 있습니다. 우주를 개발하고 자연을 지배하고, 인생과 삶을 개척하는 창조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이 세상을 만듭니다. 말이 사람을 만듭니다. 말이 성공을 만들고, 말이 실패를 만듭니다. 말이 천국과 지옥을 만듭니다.
오늘 아침에 보니까 세계 제일의 부자인 워렌버핏과 빌 게이츠가 나와서 대학생들과 좌담을 하는데, 한 학생이 “당신들이 생각하는 행복은 어떤 것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워렌버핏이 말하기를 “내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고 나를 사랑한다면 그런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요 성공한 사람입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워렌버핏은 우리 주변에 심지어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400대 부자안에 드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중에 세계의 명사들과 유명인사들을 초대해서 종종 멋진 파티를 벌이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서 “그러나 알고보면 아무도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겉으로는 사람들이 그의 호화로운 잔치에 참석해서 먹고 마시고 즐기면서 좋아 하지만 속으로는 그를 하나도 안좋아 한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고 워렌버핏은 말을 했습니다.
왜 그를 안좋아 하는지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 이유를 유추할수 있습니다. 그는 틀림없이 자기 자랑만 하고 잘난체하고 교만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입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점점 나를 떠나가고, 나를 비판하고, 나를 정죄한다면, 그것은 내가 신앙적으로나 인격적으로 잘못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게 다 말로 인해서 빚어지는 결과입니다.
사람은 말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그런데도 현대인들은 말의 귀중성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함부로 말을 합니다. 내가 하는 말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를 모르고 말을 합니다.
한 국가의 지도자의 이미지는 그 나라의 이미지입니다. 한 기업의 CEO의 말 한마디는 기업의 이익을 바꾸어 놓습니다. 말 한마디가 국익에 막대한 손익을 판가름합니다.
2014년도에 있었던 동계 올림픽을 유치 할 때 우리나라와 러시아가 평창과 소치, 두 도시의 동계올림픽 개최를 따내려고 무진 애를 쓰면서 치열하게 경합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가 거의 확실시 되어 가고 있을 때, 이제 마지막 투표만 남았는데, 막상 투표를 했더니 올림픽 개최지가 평창에서 소치로 역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국 유치 위원회는 망연자실하고 말았습니다.
당시에 여러모로 월등한 조건을 가진 평창을 제치고 소치가 동계 올림픽을 유치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말 때문이었습니다.
평창이 개최지로 거의 확실시 되자, 푸틴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올림픽 개최 의원들앞에서 비록 짧고 서툴지만 더듬 더듬 프랑스어로, 자기나라 소치에서 올림픽을 개최하게 해 달라는 연설을 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어로 연설한 푸틴대통령의 연설에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모든 나라들과 특히 아프리카의 대표들이 감동을 받아서 러시아를 찍는 바람에 전세가 뒤집히고 말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호주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 연설을 했는데 “APEC”을 “OPEC”로 발음을 하고 잦은 말실수와 성의 없는 연설을 했는데 가난한 나라들을 비하하는 말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전 세계 모든 나라가 부시대통령을 크게 성토했습니다. 그래서 부시대통령이 다스릴 때 미국은 경제적으로 큰 손실을 입게 됩니다.
오늘날에 과학자들은, 말에 대한 연구 조사를 하다가 엄청난 비밀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나라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 내뱉은 말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루 동안에 사용하는 말은 남자가 2만 5천 마디이고, 여자가 3만 마디라고 합니다. 이 말을 책으로 펴내면 약 5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됩니다. 사람이 하는 말을 일주일만 모아도 350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책이 됩니다. 그렇다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떠들어댄 말을 다 모은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양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우리가 한 말들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말 역시 에너지의 일종이기에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의해서 우리 입에서 나간 말은 아무리 시간이 오래 지났다 할지라도 절대로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내뱉은 말이 공기중에 떠돌아 다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지금 케네디 전 대통령이 생전에 했던 모든 말을 찾아서 녹음을 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한 말이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정말 신기하고 놀랍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2000년전에 이미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 마태복음12장 36절로 37절에서 이런 말씀을 하셧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판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저는 청년때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이 무슨수로 우리가 한 말을 기억하시고 우리가 한 말로 심판을 하신다는 거지?” 하면서 이 말씀은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말씀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과학자들이 이런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하면서부터 이런 의문이 풀린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고 우리는 듣는다”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도 하시지만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을 들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품성 가운데 가장 으뜸된 품성은 경청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말을 단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시고 다 듣고 계십니다. 그래서 시편 139편 4절에 보면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나이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심코 내뱉는 말도 다 놓치지 않으시고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말들을 천사들을 통해서 다 수집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녹음장비는 이 세상의 어떤 녹음장비보다 우수하고 성능이 좋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행동도 보고 계시지만 말까지도 다 듣고 계십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세상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모든 말들이 누군가에 의해서 다 녹음이 되어 있다면 정말 섬뜩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것은 사실입니다. 우리가 한 말을 하나님은 다 들으시고 모든 말들을 다 저장해 놓으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의 말들을 저장해 놓으십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한 말을 심판의 자료로 사용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심판날에는 내가 한 말을 통해서 상급을 받기도 하고 벌을 받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말을 통해서 의인과 죄인을 구별하십니다. 그래서 말을 보관하시고 또 계속해서 저장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말로 평가를 받는 존재들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판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말로 심판하시고 내 가 한 말로 나를 판단하십니다. 말이 심판의 근거입니다.
어제는 너무나 화가나는 일들이 생겨서 저도 모르게 막 육두문자를 써서 욕을 했습니다. 운전을 하다보면 엉터리로 운전을 해서 심장이 충격을 받아서 크게 놀라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너무나 놀래면 저도 모르게 “저런 못된놈이 있나?” 하고 욕을 하게 됩니다. 설교중에 여러 목사님들이 그런 상황을 만나면 자기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온다고 간증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엄청 화가나는 일이 생기는 바람에 스트레스를 팍팍 받아서 너무나 화가 나니까 저도 모르게 막 욕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나서 혼자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이게 내 인격이구나 이게 내 본전이구나” 하고 회개를 했습니다.
말의 성공은 인생과 신앙의 성공이요 말의 실패는 인생의 실패입니다. 성도는 행위로도 범죄 하지만, 먼저 말로 범죄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지은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말로 지은 죄 입니다. 그들은 말로 지은 죄 때문에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전부 다 광야에 엎드러져 죽었습니다.
그들은 말로 하나님을 대적 했습니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그들은 하나님께 불평하고 지도자 모세를 원망 했습니다. 그들은 툭하면 “우리를 이렇게 고생시키려고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냈느냐?
이게 뭐냐? 물이 있냐? 양식이 있냐? 도대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 준게 뭐가 있냐? 가나안이고 뭐고 차라리 돌아가자! 아니 차라리 여기서 죽는게 낫겠다! 하나님이 계시면 우리가 왜 이렇게 고생을 해야 하는거냐?” 하면서 그들은 시마다 때마다 입으로 독한 말을 쏟아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는 말을 다 들으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안들으시는 줄 알고 함부로 떠들어 댔지만, 하나님은 다 듣고 계셨습니다.
민수기14장 27절로 30절에 보면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한 마디로 “너희들이 입만열면 죽겠다고 말 한 그대로 내가 너희에게 시행 해 주겠다”라는 말씀입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그런데 어떻게 됩니까? 밤낮 하나님께 원망불평을 하고 또 지도자 모세를 대적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한 1세대 60만명 모두가, 한사람도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말이 생의 바퀴를 불사른다! 말이 삶에 굴레를 씌운다!"라고 증거 한 것입니다. 그리고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다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라고 증거 했습니다.
영어로 보면 더 이해가 쉽습니다. “The tongue has the power of life and death” “혀에는 두 가지 능력이 있다 곧 죽이는 능력과 살리는 능력이 있다”라는 말입니다.
신명기 11장 2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너희가 가나안땅에 들어가면 두 산에 올라가서 축복과 저주를 선포하라”라는 명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대로 행했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타납니다. 축복을 선포한 그리심산은 숲이 우거진 아름다운 산이되고 저주를 선포한 에발산은 삭막한 산이 됩니다.
그 광경을 보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선포한 대로 되는구나” 라는 사실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말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배우게 됩니다.
애벌레가 꽁무니에서 실을 뽑아서 자기 몸을 칭칭 감아냅니다. 그래서 고치를 만듭니다. 말이 바로 그와 같습니다. 말이 내 인생을 묶습니다. 그래서 내 인생의 진로와 성공과 실패는 말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인생을 팔자라고 말을 합니다. 인생을 운명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숙명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팔자와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말이 내 운명을 만드는 것입니다. 내가 자주 쓰는 말이 내 인생을 결정합니다.
어떤 목사님이 어렸을 때 6.25가 터졌습니다. 안방에서 식구들이 다 모여서 잠을 자는데 폭탄이 아랫목에 떨어져서 외할머니와 아버지 이모 등 여섯명이 죽고 윗목에서 잠을자던 어머니와 어린 목사님만 겨우 살았습니다.
그때 너무나 어머니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혼자 살아남은 것이 늘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늘 “얘야, 엄마는 오래 못살꺼야! 오십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거야!”하고 푸념을 했습니다.
목사님은 자라면서 어머니가 하는 푸념을 수천번도 더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깜짝 놀랐습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나이가 49세 364일을 살고 돌아가셨습니다. 50세 생일을 하루 앞두고 돌아가셨습니다. 9시간만 더 살면 50이 되는데 그걸 못 채우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정말 어머니의 말대로 되었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놀란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에게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사55:11)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 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2장35절에서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는 선한말만 해야 합니다. 이웃에게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원망불평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웃집에 놀러가든지 아니면 여행 중이라도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 빈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눅10:5-6)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축복하고 평안을 빌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축복과 평안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으면 그 축복과 평안이 임할것이고 그 사람이 축복과 평안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으면 내가 빈 축복과 평안이 나에게로 돌아 온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말 한마디가 우리들의 인생의 행 불행을 좌우합니다. 인생이 힘들고 고통스럽고 어려움이 계속되는 사람은, “내가 말을 함부로 하고 살았구나!” 하고 회개를 해야 합니다. “내 인생이 평안하고 즐거우면 내가 말을 참 잘하고 살았구나!” 하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험한 말이 험한 인생을 만들고, 고운 말이 형통한 인생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우리 몸을 만들 듯이, 우리가 하는 말이 우리 인생을 만듭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 인생을 좌우하는 키가 바로 말입니다. 불행한 사람은 불행한 말을 하면서 살고 행복한 사람은 행복한 말을 하면서 삽니다. 말 한마디에 인생이 바뀝니다.
다시 소개하는 예화입니다. 시골의 작은 성당에서 한 아이가 주일 미사를 돕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중심을 잃고 그만 들고있는 포도주를 바닥에 쏟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화가 난 신부가 아이에게, “이런 바보 녀석 같으니라구, 그거 놓고 저리 가! 다시는 이곳에 오지 마!”하고 야단을 쳤습니다.
또 다른 성당에서 한 아이가 주일 미사 중에 같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그 성당의 신부는 아이를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면서 “괜찮다. 나도 어릴 때 실수가 있었단다! 너도 좋은 신부가 될거다!” 하고 위로와 격려를 해 주었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성당에서 쫓겨난 그 아이는 성당을 떠났고 강팍한 마음으로 자라서 공산주의 국가인 유고슬라비아에서 수 많은 사람들을 죽인 전제군주인, 티토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격려를 받은 아이는 미국의 유명한 대주교인 “훌톤 쉰 대주교”가 되었습니다. 두사람이 자기들의 과거를 고백해서 알게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기분이 나쁘다고 함부로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얼마 전에 수락산에서 아침 등산을 하는 등산객 여인이 무참히 살해되었습니다. 며칠 뒤에는 의정부 사패산에서 등산하는 여인이 또 무참히 살해되었습니다. 부천에서는 자기의 아내의 남자친구가 남편에게 찔려 죽었습니다. 엊그제는 모텔에 같이 투숙한 여인을 남자친구가 목 졸라서 죽였습니다.
사건의 이유는 하나같이 나를 기분 나쁘게 했다는 것입니다. 나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자존심을 건드리면 죽이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됩니다. 언제 어느때 기분나쁜 사람이 나를 해꽂이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전에 신동찬씨가 조사를 했는데 사형수들의 99%가 기분이 나빠서 사람을 죽였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래서 기분이 나쁘다고 함부로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요즘은 감옥이 너무나 식사와 대접이 좋아서, 세상에서 불편하게 사느니 차라리 사람을 죽이고 들어가서 편하게 사는게 낫다고 말을 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혀는 생의 바퀴를 불사르는 불이다” 라고 증거 한 것입니다.
전에 이천에서 노동자 40여명이 한꺼번에 불타 죽었는데 알고보니까 자기를 왕따 시키고 못살게 군 조선족 노동자가 화가나서 불을 질렀습니다. 그래서 조선족 13명과 나머지 근로자들까지 다 죽었습니다. 말을 함부로 해서 마음이 상하면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인간은 하루도 말하지 않고는 살지 못합니다. 그리고 말의 습관은 한번 굳어지면 여간해서는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혀를 길들이는 것은 그 어떤 것을 다스리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그러나 혀는 잘만 사용하면, 엄청난 효과를 가져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남자가 만취 상태로 집에 들어와서 난장판을 쳤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눈을 떳더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전날 아내한테 행패를 부리고 난리를 친 주사가 생각이 나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자리에서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니까, 방도 깨끗하고, 옷도 말끔하게 손질이 되어 있고 머리 맡에 쪽지가 있었습니다. “여보! 요즘 많이 힘들지요? 식탁에 아침 상 차려 놓았으니 꼭 식사하고 나가세요! 나는 볼 일이 있어서 먼저 나가요! 사랑해요, 여보!”
어리둥절해진 남편이 주방에 가서 보니까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는데 아들 녀석이 먼저 밥을 먹고 있습니다. 남편은 이상하다 싶어서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어젯 밤에 무슨 일 없었냐?”
그러자 아들은 “어제요? 아빠가 술에 취하셔서 집에 들어온게 새벽3시였고요. 아빤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다짜고짜 화를 내면서 가구를 부수더니 마루에다가 오바이트를 하고요, 문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혔는데 하마터면 못에 찔릴뻔 하셨어요 엄마가 붙잡아서 다행이 찔리지 않았어요!”
그 말을 들은 남편이 다시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집이 깨끗하고, 엄마는 아빠 옷까지 깨끗하게 다려놓고, 아침식사까지 준비해 놓았는데 어떻게 된거냐? 엄마가 화가나지 않았더냐?”
“아, 그건요! 엄마가 아빠를 간신히 침대에 눕혀놓고 옷을 벗기려고 하는데, 아빠가 엄마한테요 “이봐, 아가씨!, 그 손 당장 치워, 이래 뵈도 난 지금까지 내 아내와 아주 행복하게 결혼생활을 하고있어! 내가 술은 취했지만 다른 여자는 절대로 가까이 안해! 그러니 내몸에 손대지마” 하고 이야기를 했대요! 그래서 그 말을 들은 엄마가 너무나 감격해서 이렇게 맛있게 상을 차려 놓고 나가셨어요!” 하더랍니다.
그 다음부터는 아내가 얼마나 혼신의 힘을 다해서 남편을 수발하는지 남편이 아주 호강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두 부부는 행복한 부부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때에 맞는 적적할 말 한마디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효과를 발휘 합니다.
그래서 잠언 15장 23절에 보면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은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한 남자가 도박을 하다가 전 재산을 털어먹고 아내와 아이들마저 떠나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루아침에 노숙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용산 역 주변에서 배회하면서 역 주변 식당가를 다니면서 구걸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식당 중에 아무도 음식을 주는 식당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노숙자들에게 얻어맞고 개에게 물리고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독한 욕설을 들으면서 각박한 세상인심에 시달리던 그는 점점 화가나기 시작 했습니다.
그렇게 보름동안 빌어먹던 그는 식당과 주변 사람들에게 박대를 받으면서 분한 마음에 그날 밤에 휘발유를 가져다가 뿌리고 가게에 불을 질러 버리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몰래 자기가 구걸하러 다니던 가게중에서 자기를 구박하고 박대한 집마다 한집 한집 X자를 그려놓았습니다.
어느날 가게에 불을 질러서 복수를 하기로 작정을 한 날 하루종일 밥을 얻어먹으려고 다니다가 아무것도 못먹고 지쳐서 다니다가 작은 골목에 있는 한 할머니가 운영하는 국수집엘 가서 구걸을 했는데 이 할머니가 남루한 그를 들어오라고 하더니 큰 대접에 국수를 한 대접을 말아 주었습니다.
허겁지겁 국수를 입에 퍼 넣고 있는데 할머니가 그사람을 측은하게 여기고 삶은 국수한대접과 국물을 다시 그릇에 넣어 주었습니다. 그는 곱빼기로 두 그릇을 먹었습니다. 그는 다 먹은후에 할머니가 다른 사람의 국수를 삶는 틈에 밖으로 나가서 도망가듯이 뛰어갔습니다. 혹시라도 돈을 달라고 할까봐서 도망을 간 것입니다.
그러자 할머니가 길로 나와서 “뛰지말어! 넘어지면 다쳐! 돈 안받으니까 뛰지말어!”하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습니다.
그 남자는 용산역 앞으로 돌아가서 자기 신세를 생각하다가 그래도 자기에게 배가 터지도록 국수를 주신 할머니의 사랑에 고마운 마음이 들어서 고마움과 서러움에 펑펑 울었습니다.
실컷 울고 난 그는 그날밤에 용산역 근처에 있는 가게들을 불바다로 만들려던 계획을 포기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외면하고 무시했지만 할머니의 사랑과 위로의 말 한 마디가 그에게 사랑과 소망을 주었습니다.
그는 다시 재기하기로 작정하고 그날부터 일자리를 찾았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그리고 수년후에 그는 마음을 추스르고 혼자서 파라과이로 이민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15년 후에는 꽤 큰 옷장사를 하면서 드디어 인생이 반전을 해서 성공시대를 이룩해 냈습니다. 제가 그분의 이야기를 선교사님으로부터 직접 들었습니다.
우리는 하루에 수천 수만마디의 말들을 내뱉으면서 살아 갑니다. 그러나 그 말들이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고 잊고 삽니다. 그러나 한 분! 하나님은 그 말들을 다 듣고 계시고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을 잘해야 합니다.
작은 골목에서 국숫집을 하시던 할머니의 국수 한그릇과 애정어린 한마디가 비참하게 살아가던 한 사람의 인생을 뒤바꿔 놓은 것처럼 그렇게 우리가 사랑으로 섬기고 따뜻말 한마디를 잘 건네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수 있는 큰 힘이 됩니다.
악한 말을 심으면 나쁜 열매가 열립니다. 결국 우리의 운명은 말에 의해서 좌우됩니다. 나쁜 씨를 뿌리는 농부는 없습니다. 좋은씨와 좋은 종자를 심어야 좋은 열매를 거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너희가 하는 말로 복록을 누린다고 말씀 하시는데도 우리는 말은 함부로 합니다. 그리고 함부로 말한 그 열매를 먹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불행하고 일이 안 풀리는 것입니다.
밤낮 원망불평을 하는 사람은 절대로 잘되지 않습니다. 밤낮 옛날이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절대로 잘되지 않습니다. 칭찬과 위로의 말은 한마디도 안하고 비판과 정죄만 하는 사람은 복을 받지 못합니다.
매사에 부정적인 말을 하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남편이 속을 썩일 때 마다 “아휴! 저런 인간하고 사느니 차라리 혼자 사는게 더 낫겠다! 귀신은 도대체 뭘 하는거야? 저런 인간 안 잡아가고?”하고 시마다 때마다 남편 원망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여기 경찰서인데 남편 되시는 분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사망했습니다”
이 여자가 딸과 함께 정신 없이 병원으로 달려가서 보니까 정말 남편이 죽었습니다. 그러자 여자가 통곡을 하면서 슬피 울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 보던 딸이 “엄마는 왜 울어? 엄마 소원대로 아빠가 죽었는데 도대체 왜 울어 좋아해야지” 하더랍니다.
인생은 말대로 됩니다. 뿌린 대로 거둡니다. 그래서 부부간에 절대로 상대방을 비판하면 안됩니다. 서로 미워하고 원망하는 부부는 절대로 복을 못받습니다. 날마다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미워하느니 차라리 혼자 사는게 낫습니다.
말을 잘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말에는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의 성경책인 잠언서에 보면 거의 대부분이 말에 관한 교훈입니다. 몇 장을 제외하고는 각 장마다 말에 대한 진리가 나옵니다. 그만큼 말이 중요하기 때문에 말에대한 진리를 가르친 것입닏.
특히 잠언 18장 21절에 보면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느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성경은 우리 인간의 신체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있는 것이 “혀”라고 증거 합니다. 그래서 혀를 다스리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증거 합니다.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사도도 혀가 가장 무서운 독이 될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약3:8)
전에 현대그룹의 수장격인 정몽준회장이 전에 서울시장 선거에 나가서 거의 당선권에 들었습니다. 서울시장 후보경선 여론조사에도 1위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마지막에 결정적인 사건이 생겨서 서울시장에서 떨어졌습니다.
그 이유는 정몽준 후보의 아들이 말을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정몽준후보의 아들이 세월호 사건을 지켜보다가 “우리 국민정서가 미개하다”라는 표현을 했는데 그 말 한 마디가 벌집쑤셔놓은 것처럼 난리가 나는 바람에 결국 정몽준후보는 낙선의 고배를 마셨습니다. 그래서 정치인과 그 측근 가족들은 혀를 잘 놀려야 합니다. 말이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믿음의 신앙고백은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인도의 선교사로 유명한 스탠리 존스 목사님은 89세에 중풍으로 쓰러지셨습니다. 목사님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말도 제대로 못한채로 수 개월을 지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간호사에게 더듬거리는 말로 이렇게 말을 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간호사님! 병실에 들어와서 나를 볼때마다 하루에 몇 번이라도 좋으니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어라! 라고 말을 좀 해주세요”하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 부탁을 받은 간호사는 주사를 놓으러 오던지 약을 가지고 오던지 무슨일로 오던지 병실에만 들어오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어라”라고 선포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존스 목사님은 “아멘! 아멘!” 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사실 89세의 노인이 중풍으로 쓰러졌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런데도 목사님은 말의 권세와 능력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기적이 벌어졌습니다. 4개월이 지난 어느날 간호사가 늘 하던대로 병실에 들어와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어라”라고 말을 했는데 목사님이 “아멘!”하고 대답을 한 후에 몸을 움직였더니 몸이 움직여 지면서 굳었던 몸이 풀리더니 일어나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목사님은 새롭게 건강을 회복했고 6개월 후에는 중풍병에서 완전히 고침을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선포한 말에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보이지 않는 말의 능력이 보이는 현실세계를 만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말의 권세를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담대하게 믿음의 말을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말씀으로 영계를 제압하셨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더러운 귀신아 그사람에게서 나오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예수님이 선포하시면 그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사탄마귀는 물러가고 귀신들은 떠나가고 병마도 떠나갔습니다.
예수님은 자연계에 명하여 자연도 다스리셨습니다. 파도를 향하여 “잠잠하고 고요하라”라고 명하자 거친 풍랑과 파도가 즉시로 고요해 졌습니다.
이미 죽은 시체에게 명령하자 죽은자가 살아났습니다. “달리다굼. 소녀야 일어나라”라고 명령했더니 죽은 소녀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미 죽어서 썩어가는 나사로에게 “나사로야 나오너라”라고 명령하자 죽은 나사로가 무덤에서 걸어서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권세를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놀라운 말의 권세를 우리에게도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2절에서 예수님은 말씀 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하신 일을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아니 그보다 더 큰 일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주님의 자녀 된 자들이 가진 권세입니다. 권세는 사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말의 권세를 사용해야 합니다.
말의 권세는 기도를 통해서도 역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은 다 듣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기적을 행하십니다.
그런 엄청난 기적들을 우리가 숱하게 경험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은혜를 받고나면 제일먼저 변하는 것이 말입니다. 예수믿기 전에는 입만열면 욕이 나오고 원망불평이 나오던 사람이 예수믿고 은혜를 받으면 말이 바뀝니다.
욕이 사라지고 감사가 넘쳐납니다. 부정적인 입술이 긍정적인 입술이 됩니다. 의심하는 입술이 확신의 입술로 바뀝니다.
성령을 받은 증거 가운데 방언이 있습니다. 이 방언은 새로운 언어입니다. 방언의 은사를 받으면 감사가 나오고 찬양이 나오고 항상 기뻐하고 쉬지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말만 하면서 지냅니다. 과거의 불신앙적인 말들이 사라지고 믿음의 언어와 감사의 언어와 축복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입만 열면 “난 못해요 싫어요”하는 말만 하던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하면서 충성을 다합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평생에 한번도 사용하지 못하던 사람이 성령충만을 받으면 사랑합니다.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아이를 보면 아무리 못났어도 “그녀석 참 이쁘다 그녀석 참 아름답다”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참 못생겼구나! 어찌 그리 못생겼냐!”하고 말을 하니까 따귀를 맞고 망신을 당하는 것입니다.
“정상에서 만납시다”의 저자인 지그 지글러 박사가 어느날 뉴욕의 지하도에서 구걸하면서 볼펜을 파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이 소매를 붙잡고 볼펜을 사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서 귀찮다는 듯이 뿌리치고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1달러를 주고 바삐 지나갑니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지그지글러 박사가 그에게 다가가서 “볼펜 한 자루 주세요!”하고는 볼펜을 받아 들고서 1달러를 그에게 건네 주면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이제부터 당신도 번듯한 사업가입니다! 볼펜이 필요한 사람에게 볼펜을 파는 당당한 사업가입니다. 그러니 당신은 더 이상 구걸하는 걸인이 아닙니다 힘을 내십시요!”
그 한마디에 구걸하던 거지가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래! 나는 걸인이 아니야! 비록 1달러라도 돈을 받고 볼펜을 파는 일을 하고 있으니 나도 사업가야!” 그 생각이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그는 스스로 “나는 사업가다! 나는 구걸하는 사람이 아니라 물건을 파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볼펜을 팔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정말 성공을 해서 지그 지글러 박사를 찾아가서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말 만 잘 해주어도 인생이 바뀝니다. 미국 대통령 클린턴은 초등학교에 다닐 때 백악관에 초대를 받아서 케네디대통령을 만났는데 그때 케네디 대통령이 “너는 훌륭한 지도자가 될거다”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때 클린턴은 “나도 대통령이 되어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결국 케네디의 고백대로 그는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창조적인 사람은 믿음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부정적인 말을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복도 안주시고 일을 맡기지도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말은 “주님의 은혜로 나도 할 수 있습니다!” 이고 가장 싫어하시는 말은 “난 아무것도 못합니다!”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매일 내 자신에게 “나는 예수님의 도움으로 무슨 일이든지 할수있다! 내게는 불가능이 없다!”라고 선언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라고 물었다면 어떻게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부정적인 생각으로 꽉찬 사람은 “요즘 죽겠습니다! 너무 힘드네요! 경기가 안좋아요! 온몸이 다 아파요! 아이고! 모르겠습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요!”라고 말을 합니다.
평범한 사람은 “그저 그렇습니다! 먹고는 살지요! 대충 삽니다! 세상이 만만치 않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감사할 것 뿐입니다! 잘 될줄 믿습니다! 괜찮습니다! 힘을 내야죠! 주님 은혜입니다! 믿음으로 살아야죠”라고 고백을 합니다. 놀라운 일은 말 한 대로 고백한 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메아리가 돌아오듯 내가 말한대로 내 인생이 그대로 됩니다.
상대방에게 악담을 하고 악한 행동을 하면 부메랑처럼 악한 일이 나에게 생깁니다. 그러나 상대방을 축복하면 그 복이 나에게도 옵니다. 그래서 축복하는 일은 결국 나를 축복하는 결과가 됩니다. 남을 칭찬하면 내가 칭찬을 받게 됩니다. 상대방을 무시하고 미워하면 내가 그런일을 고스란히 받게 됩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칼과 창의 전쟁이 아니라 말의 전쟁이었습니다. 골리앗은 하나님을 모욕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다윗은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줄 알게 하겟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라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17장45-47)
다윗이 한 이 말을 하나님께서 들으셨습니다. 그래서 말한대로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은 말이 이긴 전쟁입니다.
신앙생활도 말로 하는 것입니다. 무슨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축복과 저주가 갈립니다. 말한대로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십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사람은 말 때문에 행복해지고 말 때문에 불행해집니다. 말이 당신과 나의 인생을 만듭니다.
부정적인 말, 불평의 말, 원망의 말, 미움의 말, 남을 헐뜯는 말, 남의 약점을 들춰내는 말을 버리고 그 대신에 아름다운 말, 친절한 말, 칭찬의 말, 감사의 말, 위로의 말, 섬김의 말을 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인생이 평탄해지고 행복이 찾아올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는 성령 안에서 지혜롭게 말을 하는 사람들이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기적과 축복을 경험하는 삶을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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