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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6년8월18일 누가복음23장39-43 구원받은 강도

그리운시냇가 2016. 8. 21. 17:13


오늘은 일일 부흥회를 하겠습니다.


지난주에 류복례권사님의 남편 고성세집사님께서 돌아가셔서 장례식을 거행 했습니다. 고성세집사님은 그동안 부산에 계셨는데, 큰 아드님이신 고자현집사님께서, 아버지 고성세집사님을 집에서 가까운 노인요양병원에 모시고 돌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부산 장례식장에서 입관예배를 드리고, 화장은 남해 추모누리화장장에서 거행하고 유해는 설천 남양의 구두산 공동묘지에 매장을 했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자녀분들이 장례식을 치르느라 수고를 많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장례예배에 동참해 주신 모든 성도님들과 더불어 공동묘지까지 동행해서 하관예배를 마칠 때까지 동참해 주신 고재준집사님과 최원산성도님, 그리고 이진숙권사님께 감사 드립니다.


장례식이 끝난후에 류복례권사님의 세 아드님들이 교회에 감사 헌금을 해 주시고 그리고 저에게도 따로 금일봉을 주셨습니다.


제가 장례예배때 설교를 하면서 이제 남편을 떠나 보내고 홀로 남아 계시는 류복례권사님을, 세 아드님들이 두 세달씩 돌아가면서 모시기를 바랍니다라고 권면을 드렸는데 장례식이 끝나고 큰 아드님이신 고자현집사님께서 류복례권사님을 부산으로 모시고 가셨습니다. 주의 종의 권면을 즉시로 받아드려서 어머니를 모시고 가신 고자현집사님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실줄 믿습니다.


그런데 며칠후에 류복례권사님께서, 밭에 심어놓은 깨 농사를 마무리 하려고 오셨습니다. 새벽에 류금련권사님께서 류복례권사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전해 주셔서 모시고 와서 같이 새벽예배를 드렸습니다.


권사님들이 류복례권사님을 보시더니 이구동성으로 집이 좋지! 며느리 밥보다 내집이 최고지!” 하시면서 다들 그냥 집에 계시라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지난주에 장례식을 치르는 관계로 장애인수련회와 교회학교 수련회를 연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장례식이 끝난후에 주방에서 수고하는 고등부아이들과 정심이를 데리고 위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런데 김상철성도님께서 교회학교 학생들의 영화관람료를 제공해 주셔서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영화를 보았습니다. 귀한 사랑으로 섬겨주신 김상철성도님께 감사 드립니다.


지난주에 하나님께서 크게 도와주셨습니다. 고성세집사님의 하관예배를 드리는날, 아침에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상을당한 가족들과 예배에 동참하는 모든 성도들이 이 엄청난 무더위에 나무 그늘 하나 없는 구두산 공동묘지에서 하관예배를 드리면 얼마나 지치고 힘들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늘 우리에게 기적을 베풀어 주신 것처럼, 이번에도 기적을 베풀어 주셔서 하관예배를 드리는 시간에 시원한 날씨를 주셔서 순연히 예배를 드리게 하여 주시옵소서하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제 집사람도 동일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시원한 날씨를 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정말 기적이 벌어졌습니다. 올 여름에 이런 날씨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산에 올라가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그 시간부터 하관예배를 마치고 내려올때까지 하나님께서 구두산에 구름을 보내주셨습니다. 게다가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서 은혜중에 하관예배를 집례 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관예배를 마치고 산에서 내려왔더니 다시 찌는듯한 더위가 계속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구나라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관예배를 드리러 올라갈 때부터 내려올 때 까지는, 마치 저 지리산의 시원한 공기를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처럼 좋은 날씨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장례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할렐루야! 하나님아버지! 류복례권사님 가족과 우리를 사랑해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어린아이처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알고 보니까 고재준집사님도 호박넝쿨로 머리를 가린 요나처럼 우리에게 시원한 날씨를 주세요!” 하고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성도님들도 이 뜨거운 날씨에 우리 목사님이 산에서 예배를 인도 하시려면 얼마나 힘들까?” 하고 안쓰럽게 생각하시면서 모두들 기도를 해 주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금번 장례식을 위해서 기도해 주신 모든 성도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감사한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수요일날, 수요예배가 끝나자마자 이진숙권사님께서 벌떡 일어나더니 귀한 소식을 전해 주셨습니다.


권사님이 동네에서 한 여자분을 만났는데 그분에게 나는 남해세광교회에 다니는 권사입니다하면서 그분에게 안부를 물으면서 전도를 하려고 우리교회 이야기를 했더니, 생전 처음뵙는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남해세광교회의 김다윗목사님은 참 훌륭한 목사님입니다! 김다윗목사님 같은분이 몇 분만 더 계시면 세상이 바뀔거예요!”라고 하시면서 저를 극구 칭찬을 하더랍니다.


제가 남해에서 목회를 하면서 동네 분에게 이렇게 과찬을 받은 것은 평생에 처음입니다. 물론 제가 길에서, 나이든 분들이나, 짐을 가지고 가는 동네 분들을 만나면 무조건 차를 태워 드리고, 또 마늘이나 마늘쫑을 싣고 옮겨다 드린 것 때문에 가끔 칭찬을 받은적은 있지만,


제가 목회자로서, 교회를 안다니는 동네분에게 훌륭한 목사라고 칭찬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에 나오지도 않는 동네분이 저를 칭찬했다는 말을 듣고 너무나 감격해서 잠이 안 올 정로도 마음이 기뻤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동네분들은, 저를 쫓아낸 분이 하도 악담을 하고 돌아 다녀서 저를 사이비, 이단, 엉터리, 가짜목사로 생각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동네 분 중에 한분이 저를 칭찬 하면서 이세상에 없는 훌륭한 목사님이라고 칭찬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그 말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던지, 지금까지 고생하면서 힘들었던 마음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진숙권사님의 이야기를 듣고나서 예레미야가 생각이 났습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면서 열심히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했지만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무시하면서 그를 하나님의 선지자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예레미야의 고향인 아나돗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얼마나 미워 했는지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런데 그 음모를 하나님께서 알려 주셨기에 예레미야는 그 음모에서 구원을 받게 됩니다.


전에 우리동네에 사시는 한 분이 우리 남해세광교회에 불을 지르겠다는 말을 하셨습니다. 그분이 가족들의 일로 인해서 감정이 격해진 끝에 그런말을 한 것입니다. 목사가 얼마나 미웠으면 교회에 불을 지르겠다고 엄포를 놓겠습니까?


저도 예레미야처럼 미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려고 최선을 다했는데 돌아온 것은 수치와 모욕 뿐이었습니다.


예레미야의 고향사람들은 예레미야가 얼마나 미웠는지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작정을 하고 음모를 꾸몄습니다. 사람이 미워지면 음료수나 음식에 독을 타기도 하고 온갖 궤계로 살인모사를 합니다. 그 내용이 예레미야서 1121절 이하에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아나돗 사람들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그들이 네 생명을 빼앗으려고 찾아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라 두렵건대 우리 손에 죽을까 하노라


아나돗 사람들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너는 더 이상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말라라고 엄포를 놓고 이곳을 떠나라고 공갈협박을 했습니다.


아나돗사람들이 하나님의 종 예레미야에게 포학을 행하고 공갈협박을 하자,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내가 아나돗사람들을 심판하겠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청년들은 칼에 죽으며 자녀들은 기근에 죽고 남는 자가 없으리라 내가 아나돗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곧 그들을 벌할 해 에니라(11:22-23)


하나님은 주의 종 예레미야를 미워한 아나돗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겠다고 선포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회개하지 않고 예레미야를 잡아다가 모질게 때리고 깊은 구덩이에 쳐넣고 예레미야가 죽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다시 구해 내셔서 계속해서 사명을 감당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5:1)


하나님은 이 성읍에서 한 사람이라도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성읍을 용서하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제가 지난 수요일날 이진숙권사님으로부터 이 동네에 사시는 어떤 여자분이 목사님을 많이 칭찬하셨어요!”라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 그분이 바로 이 설천에서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분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 남해세광교회의 모든 성도님들은 저를 예수님처럼 좋아하고 사랑하고 귀하게 여겨 주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은 대부분이 우상을 숭배하면서 삽니다. 아무리 전도해도 코방귀도 안뀌고. 교회와 하나님 알기를 우습게 알고 하나님의 종을 헌금이나 긁어내는 사기꾼으로 알고, 그래서 불까지 싸지르겠다고 벼르는가 하면 이 동네를 떠나라고 쇠뭉치를 들고 저를 죽이려고 까지 했습니다.


그러니 이런 동네에 무슨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겠습니까? 그러나 그중에 한사람! 그분이 누군지는 몰라도 그분은 모든 동네사람들이 다 목사 욕을 하면서 김다윗목사는 가짜 목사라고 떠들어 대는데도 남들이 떠드는 말에 아랑곳도 하지않고 김다윗목사는 참된 하나님의 종입니다라고 믿어주는 분이 계시기에 하나님은 그 한사람을 귀하게 보시고 재앙을 유보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한사람 때문에 아브라함이 살던 동네가 복을 받은 것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의 종을 선대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제가 이번주에 설교준비를 하면서 저런분이 예수믿고 구원 받아서 천국에 가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설교 준비를 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집안과 동네와 나라 전체가 우상숭배를 따랐기에 구원을 받지 못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경우가 있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그런가 하면 인생길에 어쩔수 없이 사람과 세상에 얽매여서, 교회한번 가보지 못하고, 성경도 읽어본적이 없고, 예수님에 대해서 알지도 못했던 사람이, 기적적으로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을 만나서 구원을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평생에 한번도 교회에 가본적이 없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극적으로 구원을 받아서 천국에 들어갑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예수님의 좌우에는 두 명의 강도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들을 행악자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다른 복음서에 보면 그들을 강도라고 기록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살인강도들 입니다. 그런데 두명의 살인강도중에 한 사람이 죽기 직전에 극적으로 구원을 받게 됩니다.


다른 복음서에 보면 처음에는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 못박힌 이 두 강도들이, 예수님에게 욕을 했다고 증거 합니다.


마태복음2744절에 보면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마가복음 1532절에 보면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우리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 복음서를 읽어보면, 동일한 사건을 기록하면서 약간씩 차이가 나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기록한 사람들이 사건의 내용을 틀리게 기록한 것이 아니라, 더 강조하고자 한 의도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사람이 쓴 사 복음서를 비교하면서 보면, 성경을 더 구체적이고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두 강도가 같이 예수님을 욕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가면서 한 강도에게 심경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대개 십자가형에 처해진 사형수들은 그 잔인한 처형에 억울하고 분해서 죽을때까지 저주와 욕을 하면서 죽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서 엄청난 고통을 당하면서도 아무 말씀도 하지 아니하시고 그저 묵묵히 침묵하고 계셨습니다.


십자가 아래에서는 대 제사장을 비롯한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조롱하고 비웃고 훼방을 하는데도, 예수님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군인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2335-37)


이와같이 죽어가는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조롱하고 비웃으면서 악담을 하는데도 예수님은 묵묵부답입니다. 


그런데 드디어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입을 열어서 한마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한마디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였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처절한 고통중에 예수님이 처음으로 입을열어서 하신 말씀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은 원수들을 용서하는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두 강도중에 한 강도가 예수님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소리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니 이 고통을 당하면서도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을 용서한다고?” 그래서 한 강도는 도대체 저사람은 누구일까?”하고 의아해 하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이 와중에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는 기도를 할 수가 있을까? 아무래도 저분은 보통사람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다시 십자가 아래에 와 있는 제자 요한에게 요한아 어머니를 부탁한다! 이제부터 마리아를 네 어머니로 알고 잘 섬겨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강도가 또 감동을 받습니다. 지금 숨도 쉴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고통이 계속되는데, 그런상황에서 보통 사람같으면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어요! 차라리 나를 낳지 말지 그러셨어요!”하면서 원망을 하고,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을 향해서는 야이 나쁜놈들아 천벌을 받아라! 내가 뭘 잘못했다고 죄없는 나를 이렇게 십자가에 못을 박는거냐! 너희들은 다 지옥에 갈거다!”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악을 행한 자들을 저주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예수님은 죽어 가면서도 용서기도를 하시더니 다시 제자 요한에게 요한아! 어머니 마리아를 좀 돌봐다오!” 하면서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효도를 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은 하늘을 향하여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합니다.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15:33) 라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아들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어가는 것을 바라 보시다가, “내가 심히 슬프고 가슴이 아프다라는 사실을 자연의 징조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맑은 하늘이 캄캄해 지면서 낮 열두시부터 오후 세시까지 세시간동안 캄캄한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와같은 징조를 지켜본 강도는 점점 두려운 마음이 강하게 엄습합니다. “아무래도 저분은 보통분이 아니구나 저분이 정말 메시야가 아닐까? 소문으로 듣던 구세주가 아닐까? 저분은 죄인들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러 오셨다는데 하늘의 징조를 보니 그게 정말인가보다!”


한 강도가 고통중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자기와 같이 십자가에 못박힌 또 한사람의 강도가 예수님에게 소리를 지릅니다.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23:39)


그 강도는 예수님을 향해서 네가 그리스도면 어디 한번 너와 우리를 구원해 봐라!”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사실 이와같이 소리를 지른 이 강도도, 예수님이 용서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을 옆에서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를 잘 부탁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엘리엘리 라마사박다니 하고 큰소리로 외치면서 기도하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그후에 하늘이 캄캄해 지면서 세시간동안이나 하늘이 칠흑같이 어두워지는 징조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사건을 직접 체험하면서, 한 강도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예수님을 구세주 메시야로 믿는 길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한 강도는 이런 모든 과정을 똑같이 지켜 보았는데도, 예수님을 조롱하면서 네가 구세주라면 어디 한번 너와 우리를 구원해 봐라!” 라고 조롱하면서 넋두리를 합니다.


그때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기 시작한 강도가, 예수님을 조롱하는 강도를 강하게 꾸짖었습니다.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23:40-41)


여기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기 시작한 이 강도가 아주 중요한 고백을 합니다. “너와 나는 죄를 지었기에 죄 때문에 형벌을 받는 것이다라는 고백을 합니다.


이 고백이 그가 구원받는 중요한 동기가 됩니다. 이 강도는 마지막에, 죽기 직전에 내가 죄인이구나라는 사실을 깨닳았습니다. 그래서 회개할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다른 강도는 악에 바쳐서 소리를 지릅니다. 그는 끝까지 마음이 강퍅하고 교만해서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자기 동료를 꾸짖은 강도의 말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강도는 정말 중요한 진리를 깨닳은 것을 알게 됩니다. 40절에 보면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라고 고백합니다.


마음을 돌이키고 예수님을 믿은 강도는, 예수님을 욕하는 강도에게 너는 어떻게 그렇게 죽는 자리에서 조차도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모르느냐?”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죽는자리에서 조차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41절에 보면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을 믿은 강도는 우리는 우리 죄 때문에 이런 고난을 당하는 것이다라고 고백하면서 우리가 당하는 이 모든 형벌과 고통은 죄 때문에 온 것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중요한 고백을 합니다. “지금 우리 옆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저 예수님은 옳지 않은 것이 없다!”라고 고백 했습니다. “저분은 죄가 없는 메시야 그리스도다!”라는 고백을 한 것입니다.


회개한 이 강도는 예수님을 조롱한 강도를 꾸짖은 후에 예수님에게 42절에서 이런 간청을 합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드디어 이 강도는 용기를 내서 예수님! 내가 지금까지 비록 죄만짓고 살아왔지만! 그러나 내가 마지막으로 예수님께 한가지를 간청드립니다! 예수님! 오늘 당신이 하늘나라에 들어가신다면 나도 좀 데려가 주세요, 나를 좀 기억해 주세요!”라고 간청을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 강도의 간청을 받아 주셨습니다. 43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할렐루야! 이게 바로 기적입니다.


이 강도는 평생에 한번도 교회에 가본적이 없었습니다, 예배를 드려본적도 없었습니다, 선한일을 한적도 없었습니다, 죄만 짓고 살다가 사람까지 죽여서 살인강도로 붙잡혀서 형벌로 십자가에 못박혔는데,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했기에 구원을 받아서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극적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죽기 바로 직전에, 그것도 십자가에 못박혀서 돌아가시는 예수님 옆에서 구원을 받았으니 참으로 아슬아슬한 구원이요 천만다행인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같은 자리에서 예수님을 훼방하고 죽은 강도는 지금까지 2000년동안 지옥불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영원토록 지옥불속에서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천국이요, 예수님을 외면하면 지옥입니다.


이제 이 사건을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세상에서 보면 죄인이면서도 죄인이 아닌척, 의로운척, 괜찮은 사람인척,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죄를 지은적이 없다고 하면서 내 죄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교만해서, 그 영혼이 무디어져서 자기죄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죄와 사망과 지옥이 선물로 주어집니다.


그러나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앞에서 겸허하게 죄인임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구원의 축복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을 때 필수적으로 하는 질문이 바로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인정합니까?”라는 질문입니다.


그 질문에 저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라고 인정할 때 비로소 예수님이 나를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면 무엇 보다도 먼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닳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죄를 병으로 비유하면 됩니다. 병든 사람이 병을 고치려면 먼저 의사를 찾아가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2:17)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너나 할것없이 죄인입니다. 죄인이 가는곳은 지옥입니다. 죄인이 죄사함을 받으려면 예수님을 믿어야 죄사함을 받습니다.


구원받은 강도가 예수님!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23:42)라고 간청을 했는데 이 강도의 고백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강도는 대단히 놀라운 비밀을 깨닳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강도는 천국을 당신의 나라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강도는 천국이 예수님이 다스리는 나라라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이 강도는 그 짧은 시간에 예수님을 믿었고 또 예수님은 천국을 다스리는 분임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강도는 올바른 신앙 고백을 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증거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10:9~10)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아서 천국에 가게 됩니다.


요한복음 1930절에 보면 예수님이 운명하시면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라는 말은 헬라어 원문성경에 테텔레스타이”(τετελεσται)라는 말로 완불했다라는 뜻입니다. “죄 값을 다 치렀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다 이루었다는 말은 내가 피를 흘림으로 너의 죄 값을 다 치렀다! 그러므로 나를 믿은 너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오늘 너는 나와함께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것은 천만금을 얻은 것보다 귀한 일입니다. 구원의 축복을 그 무엇에 비교 할 수 있겠습니까?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구원과 천국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내가 뭘 잘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십일조,헌금,봉사활동,구제활동,착한일 등을 열심히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신 것이 감사해서, 그래서 봉사하고 섬기고 충성하고 헌금도 드리는 것입니다.


이걸 모르면, “교회가면 헌금 때문에 힘들어 가지마!”라는 우매 무지하고 한심한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을 못받은 사람은 뜨거운 지옥불에서 아이고! 내가 교회갈걸! 내 집앞에 교회가 있었는데! 목사님이 교회 오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잘해주어도 헌금내는거 싫어서 교회 안갔는데! 지옥이 있는줄 알았으면 교회갈껄!”하면서 울부짖을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본문의 강도는 정말 행운아입니다. 평생 죄만 지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기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강도가 잘한 것이 또 한가지가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을 믿은 것은 가장 잘한 일이지만 또 한가지 잘한일은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지않고 오직 예수님 말씀만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힐 때 예루살렘의 고관대작들과 예루사렘성에 사는 사람들이 전부다 그곳에 모여서 구경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서 떠들어 대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예수님 욕을 했습니다.


대제사장부터 바리새인 장로 서기관 율법사 로마군병 시민들 심지어 같이 십자가에 달린 강도까지 모두가 예수님을 욕하고 조롱하고 훼방하고 악담을 했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한사람 이 강도는 예수님의 말씀만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나쁘다고 떠들어 대는데도 귀를 기울이고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우렸습니다. 그래서 이 강도가 그 수 많은 사람들중에 가장 먼저 구원을 받아서 천국에 들어간 것입니다.


우리도 마귀가 하는 말에는 귀를 막아야 합니다. 부질없는 말과 쓸데없는 말과 악담과 훼방의 말과 어리석은 말과 도움이 안되는 세상적인 말들에 귀를 막고 오직 예수님의 말씀만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만 들으면 복이 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구원받고 금생과 내세에 평안과 행복을 누리면서 살게 됩니다.


저는 저를 칭찬하신 그 동네분이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분임을 확신합니다. 그분은 반드시 구원 받을 것입니다. 반드시 복을 받을 것입니다. 떠돌아 다니는 사탄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성령께서 주시는 말씀을 들었기에 하나님의 종을 알아본 것입니다.


제가 지금도 잊지 못하고 늘 마음에 품고 있는 사건이 있습니다. 가끔 제가 제 자신을 돌아보면 제 자신이 참 한심 할 때가 많습니다. 나같은 죄인이 목사가 되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을 보면 정말 하나님의 은혜구나 라는 생각에 눈물이 나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를 엄청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저를 사랑하시는지를 제가 4년전에 성좌산기도원에서 다시 확인했습니다.


제가 기도원을 가고 싶어서 간게 아니라 제 집사람하고 대한 싸우고 집을 나가서 우리나라를 일주일동안 방황하면서 돌아다니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전라남도 나주에 있는 성좌산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성좌산기도원은 저의 어머니권사님이 참 좋아하신 기도원입니다. 그 기도원에는 하나님의 성령을 따라 예언을 하시는 최양자 원장님이 계십니다. 저는 그 기도원엘 한번도 가본적이 없습니다. 다만 어머니권사님을 통해서 성령충만 하시고 훌륭한 나이드신 여자 원장님이 계신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정처없이 방황하다보니까 그 기도원 근처로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참 이상한 일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여기까지 왔으니 기도원엘 가보자 하고는 네비게이션에 성좌산기도원을 쳤더니 한 30분 정도면 도착한다는 멘트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기도원으로 갔는데 그날 저녁에 집회가 있었는데 나중에 알았지만 장상길목사님이라는 목사님이 설교를 하셨습니다. 저는 맨 뒷자리에 앉아서 설교를 들었습니다. 마음이 상해서 집을 뛰쳐 나왔으니 은혜를 받을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뫼됨됨한 마음으로 설교를 듣고 예배를 마쳤습니다.


이어서 최양자원장님께서 나오셔서 2부 순서를 맡아서 방언을 칠판에 쓰시고 통역설교를 하셨습니다. 저는 원장님께서 방언을 칠판에 쓰시고 통역설교를 하시는 것을 보면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 하나 모든 말씀이 저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렇게 은혜를 받았는데 원장님의 강의가 끝나갈 무렵에 일부예배때 설교를 마친 장상길목사님이 맨 뒤로 오셔서 저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남해에서 왔다고 했더니 멀리서 왔다고 하시면서 나는 인천에서 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통성명을 했는데 최양자원장님이 2부 부흥회를 마치자마자 장상길목사님이 저에게 목사님! 최양자원장님께 기도한번 받으세요! 내가 소개해 드릴께요!”하면서 막무가내로 저의 손을 잡고 앞으로 나갔습니다.


저는 강사 목사님이 강권해서 원장님의 기도를 받으라고 하는 바람에 얼떨결에 끌려 나가서 원장님의 기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장상길목사님은 최양자원장님에게 저를 소개하면서 남해에서 오신 남해세광교회의 김다윗목사님입니다. 원장님! 이 목사님 기도좀 해주세요!”하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러자 원장님이 그래요? 그럼 여기 누우세요!” 하면서 저를 바닥에 눕혔습니다. 제가 눕자마자 기도원의 집회에 참석한 100명 남짓한 분들이 전부다 제 옆에 빙 둘러 앉아서 구경을 했습니다.


저는 예배가 끝나면 축도를 마친후에 얼른 나와서 바닷가에 가서 기도를 해야겠다 하고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졸지에 앞으로 나가게 되는 바람에 좀 창피하고 부끄러웠지만 이젠 도망갈수도 없고 해서 이판 사판이니 할수없이 누워서 기도를 받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최양자원장님이 기도를 하시는데 우리 목사들이 기도하는 것처럼 열불나게, 뜨겁게, 큰목소리로, 성령충만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이시간에 함께 하셔서 은혜를 보여 주시옵소서!” 하고 한마디를 하시더니 머리에 손을 한번 짚으시고 기도하시고, 가슴에 한번 손을 짚으시고 기도하시고, 배와 다리에 손을 얹고 한마디 기도를 하시더니 그냥 가만히 계셨습니다.


원장님은 무슨 특별한 기도를 하지도 않으시고 주여! 주여! 역사하소서!”하시면서 한 10분정도를 그렇게 계시더니 드디어 기도를 하기 시작했는데 축복기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종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종이다 내가 너에게 복을 주노라 영적인 복과 육적인 복과 재물의 복을 주리라 너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리라 너는 나의 영광을 위해서 귀하게 쓰임을 받을 것이다 내가 너에게 큰 재물의 축복을 주리니 너에게 물권이 임하여 네가 나의 영광을 나타내리라하시면서 엄청난 축복이 임할 것을 선포 하셨습니다.


저는 그 축복기도를 아멘으로 받으면서 기뻐했습니다. 기도를 받으면서 마음의 상처도 다 씻겨졌고 저에게 상처를 준 아내도 용서하게 되었습니다. 원장님의 기도를 받으면서 다시 새롭게 거듭나는 은혜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미 오래전에 성령께서 예언을 주신 말씀들 이지만 최양자원장님의 예언을 통해서 그 은혜를 다시 확신하게 되었고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큰 축복기도를 받고 기도원을 나와서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장상길목사님에게 인사를 하고 그리고 승용차가 있는 곳으로 가는데 갑자기 한 남자분이 달려와서 저에게 인사를 하셨습니다.


그분은 이상경집사님인데 대장암으로 인해서 절망에 빠져 있던 분인데 성좌산기도원에서 기도를 받고 건강을 많이 회복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분의 고향이 남해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남해에서 왔다고 하니까 유심히 눈여겨 보고 있다가 원장님의 기도가 끝나자 달려 나와서 저에게 목사님! 남해에서 오셨다면서요! 제 고향이 남해입니다!”하시면서 자기가 기도원에 와 있는 이유와 살아온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날 이상경집사님이 저에게 놀라운 고백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제가 이 기도원에 일년이 넘게 있었는데 수많은 목사님들과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이 오셔서 원장님의 기도를 받는데 목사님처럼 그렇게 엄청난 축복기도를 받으신 분은 처음 보았습니다. 제가 놀래서 목사님에게 가르쳐 드리려고 달려왔습니다하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저는 모든 분들이 저처럼 축복기도를 받고 가는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100이면 100 다 원장님에게 혹독하게 야단을 맞고 간다는 것입니다. 목사든 장로든 원장목사님이 성령을 따라서 기도를 하시는데 얼마나 혼이 나는지 대부분 개망신을 당하고 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기도원에서 김다윗목사님처럼 그렇게 축복기도를 많이 받고 가시는 분은 처음 본다고 하면서 정말 목사님은 하나님이 특별하게 사랑하시는 분인 것 같습니다 하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돌아오는 길에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서 한없이 울면서 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하나님께서 나를 여전히 귀하게 보시는구나!" 라는 생각에 무한 감사를 드리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 사모도 그후에 성좌산기도원에 갔다가 최양자원장님에게 기도를 받으면서 얼마나 혼이 났던지 네가 사모냐? 네가 무슨 사모냐? 너같이 못된게 무슨 사모냐?하면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개망신을 당하고 돌아 왔습니다.


그러더니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울면서 회개기도를 하더니 6개월쯤 후에 다시 가서는 두 번째 기도를 받으러 갔을때는 축복기도를 받고 큰 은혜를 받고 돌아왔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을 알아 봅니다. 성령의 사람은 성령의 사람을 알아 봅니다.


그러나 성령을 훼방하는 사람들은 성령 훼방죄를 짓는 것입니다. 성령 훼방죄는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훼방하고 하나님의 종을 훼방하는 것은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사람은 죽음 앞에서 단순해집니다. 새는 죽을 때에 그 울음소리가 구슬퍼지고, 사람은 죽음의 자리에 이르면 그 입의 말이 착해진다고 합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무력화시킵니다.


죽음 앞에서는, 아무리 잘나고, 돈많고, 높은자리에 있었다 해도, 인간의 한계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시간입니다. 죽음이 다가오면 모든 것을 포기합니다. 죽음은 내가 붙잡고 있던 세상의 모든 것을 체념하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한편 죽음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마지막 기회이기도 합니다. 죽기 전에 회개하는 사람은 참으로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를 발견한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내가 죄인임을 자각하는 것보다 더 위대한 깨닳음은 없습니다. 죽기 전에라도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이 깨닳아 지면 구원을 받을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한 강도는 죽는 순간까지 마음이 강퍅해서 예수님을 조롱하고 예수님을 믿지않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한 강도는 마지막 순간에 회개하고 겸손하게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었기에 영광스러운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어떤길을 선택하겠습니까? 예수님을 믿은 강도는 예수님으로부터 네가 오늘 나와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라는 축복의 음성을 육성으로 직접 들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마귀가 그의 영혼을 데려가려고 십자가 옆에서 기다리다가, 예수님께서 네가 오늘 나와 함께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라고 선포하는 순간에 마귀는 혼비백산해서 도망을 갔을 것입니다.


그순간 하늘에서 천사들이 내려와서 기다렸다가 회개한 강도가 죽자마자 그 영혼을 받들어 천국으로 데리고 갔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가 이런 놀라운 구원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마지막 순간에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 강도가 자신의 죄를 깨닳았으면서도, 우물쭈물하면서 예수님에게 예수님 내가 예수님을 믿습니다!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나를 좀 구원해 주세요!” 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면 그는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맛보고 있을 것입니다.


그가 천국에 가지 못하고 지옥불에 들어갔다면 얼마나 후회 막심했겠습니까! 그래서 구원에도 골든타임이 있습니다. 우리도 지금이 구원받을 때입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제가 목회를 하는 동안에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강도처럼 아슬아슬하게 구원을 받은 사람들을 종종 보았습니다. 임종을 얼마 남기지 않고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유족들과 함께 가슴을 쓸어 내립니다.


죽어도 예수님을 안믿다가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을 영접하는 분을 보면 정말 천만다행이네요!”하면서 감사하게 됩니다. 그래서 먼저믿은 우리도 기회를 놓치지 말고 전도해야 합니다.


혹시 지금 이 자리에 예수님을 믿고도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고백한 적이 없다면 지금 당장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내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나의죄를 용서하시고 나를 구원해 주실줄 믿습니다!”하고 고백을 해야 합니다.


교회에 처음 나오셨든지 오래 되셨든지 이것은 누구에게나 다 해당 됩니다. 지금 이 시간이 구원받을 기회입니다. 내가 죄인인 것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면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예수님께서 지금 당장 너는 천국에 들어가리라!”라고 확증해 주십니다.


한번 따라서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내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실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런데 구원받은 그 강도에게도 한가지 아쉬운 점은 남아있습니다. 이 강도는 비록 구원은 받았지만 천국에 가서 큰 후회와 아쉬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내가 진작에 예수님을 믿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입니다.


한 마디로 만시지탄(晩時之歎:때늦은 한탄)입니다. 그의 구원은 아쉬움이 남는 구원이었습니다. 그가 진작에 예수님을 믿었다면, 아마도 우리처럼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기쁠때나 슬플때나 주님이 주시는 풍성한 축복과 구원의 축복을 찬송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아쉽게도 예수믿은 성도들이 누리는 현세의 축복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았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단순히 육신의 죽음 이후에 천국에 들어가는 것, 그것 뿐입니까?


물론 천국에 들어가는일이 가장 중요하기에 예수를 믿는 것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있는 동안에도 특별한 축복을 누리면서 살아 갑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우물가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여인은 다섯 남자와 결혼했다가 이혼을 하고, 여섯 번째 남자와 동거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잘생긴남자, 돈많은남자, 힘이좋은남자, 자상한남자, 착한남자, 똑똑한남자, 외국남자등 여섯 번이나 남자를 갈아치웠지만 인생은 여전히 곤고하고 행복하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남의 이목을 피해서 뜨거운 한낮에, 아무도 없을 때 우물가에 물길러 나왔다가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4:13~14)라고 말씀하시면서 성령과 영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서 비로소 구원의 은혜를 깨닫고 가슴이 뜨거워져서 당장 동네로 들어가서 내가 메시야 구세주를 만났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분을 만나 보세요!”하면서 전도를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7:38)라고 말씀하시면서 성령의 은혜를 부어 주셨기에 그녀는 더 이상 세상 정욕대로 살지않고 신령한 은혜를 누리면서 사는 여인으로 변화됩니다.


요한계시록 221절로 2절에 보면, 천국 보좌에서 흐르는 생명수의 강이 소개 됩니다. 그 좌우에는 생명나무가 있어서 열두가지 열매를 맺습니다. 천국에 들어간 사람들은 그 열매를 먹으면서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된다고 예수님은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모형이 바로 이 세상에서 누리는 영생의 기쁨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기쁨을 모르고 지지고 볶으면서 살아갑니다. 지상 지옥은 지지고 볶고, 죄악 가운데 살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서로 주고받은 상처 때문에 괴로워하고 그러다가 죽으면 영원한 고통의 나라인 지옥에 들어가서 불가운데서 불로 소금치듯하면서 지내게 됩니다. 이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이렇게 되는 이유는 죄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죄 사함 받고 영생을 얻은 사람은 날마다 지상 천국을 경험하면서 살아갑니다. 물론 험악한 세상에서 때로는 사탄마귀의 궤계로 인해서 고난도 있지만 그러나 기쁠때나 슬플때나 항상 계속되는 구원의 기쁨이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주시는 평안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14:27)


예수믿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평안과 행복이 있습니다. 이게 바로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찬송을 부르면서 장례식을 치르고 자식이 죽어 나가도 낙심하지 않고 소망중에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믿고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오늘 본문의 설교를 듣고나서 목사님! 그 강도는 아주 경제적인 신앙생활을 했네요! 마지막 순간에 믿고 천국에 갔으니 예수믿느라 고생도 안하고 헌금도 안하고 새벽기도도 안하고 아주 편안하게 구원 받았네요!”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 강도는 사실 죽기 전까지 평생 죄만짓고, 양심의 가책속에서 살고, 온갖 고통을 겪으면서 평안도 없고 행복도 없이 지옥 같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갈등과 고통과 억울함과 분노와 상처로 얼룩진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가 진작에 예수님을 만났었더라면 고난이 있어도 위로받고 환란중에도 천국의 평안을 누리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오히려 예수를 안 믿었기에 오랜 세월동안 손해를 본 것입니다.


그래서 아쉬움이 남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것을 누리고 세상에서 아무리 잘 살아봤자 그게 다 허사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구원의 기쁨을 감사하면서 늘 예배와 기도와 말씀속에서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와같은 하나님의 구원을 깨닳은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한 것입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84:10)


이 사람은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성전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구원의 기쁨을 감사하는 하루가 세상에서 누리는 천날의 즐거움보다 좋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이게 바로 구원받은 사람의 기쁨인 것입니다.


더불어서 예수님을 믿으면 순간 순간 세상살이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축복해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삼서1:2)


끝으로 죽기 전에 예수를 믿은 강도에게 아쉬운 한가지는 그에게는 아무런 상급이 없다는 것입니다. 비록 간신히 구원을 받아서 천국에는 들어갔지만 그는 마치 불난집에서 간신히 몸만 빠져나온 사람처럼 하늘나라에 가서 아무런 상급이 없습니다.


그래서 천국을 체험한 바울사도가 증거한 것처럼,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예수님을 믿고도 하나님을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은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된다고 증거 했습니다.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전3:15)


성경을 자세히 보면, 죽은 사람은 두 종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정죄심판과 상급심판입니다. 정죄심판은 일명 백보좌심판이라고 합니다(20:11-15)


이 심판은 죽어서 예수를 믿지않아서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사람이 받는 심판인데 둘째 사망 즉 영원한 불못에 떨어져서 영원한 지옥불에 들어가는 심판입니다.


다행히 구원받은 강도는 예수님을 통해서 죄 사함을 받았기에 이와같은 정죄심판은 면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상급심판이 남아 있습니다. 예수믿고 천국에 가는 모든 사람들은 상급심판을 받게 됩니다. 바울사도는 상급심판에 대해서 이렇게 증거 합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5:10)


여기서 심판대는 헬라어로 베마”(βμα)인데 시상대라는 뜻입니다. 예수믿은 사람은 살아 생전에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지에 따라서 평가를 받고 상급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상급심판을 일명 베마심판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으면 떠날 때 빈손 들고 천국에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사실은 신앙생활의 결과를 가지고 하나님앞에 가는 것입니다.


불신자는 죄를 지은 결과를 가지고 지옥에 들어갈 심판을 받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안믿은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아무리 착한일을 했어도 그게 다 무용지물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에 무조건 정죄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믿은 신자는 이 세상에서 행한 공적을 가지고 가서 상급심판을 받게 됩니다. 천국은 믿음으로 들어가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았던 공적에 따라서 상급을 받게 됩니다.


세상에서 살아 있을 때 한사람이라도 전도를 했으면 하늘나라에서 영광의 면류관이나 구원의 면류관을 받고 칭찬과 축하를 받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하나님을 위해서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사람은 부끄러운 구원을 받고 천국의 저 변두리에 가서 외롭게 살게 됩니다. 그래서 천국을 방문했던 분들은 이런 이야기도 합니다. 


천국에 갔더니 모든 사람들이 다 영광스런 옷을입고 좋은집에 살고 면류관을 쓰고 다니는데, 두 사람이 빤스만 입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저 변두리에서 왔다 갔다 하더랍니다. 그게 누구인가 하고 봤더니, 바로 예수님 곁에서 죽기전에 간신히 구원받은 강도와, 아브라함의 조카 롯 이더랍니다.


이 두사람은 부끄러운 구원을 받았기에, 일명 팬티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말들을 합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유럽 성지순례때 바울사도가 목이 잘려 죽은 참수터를 방문 하면서 그 감옥에서 참수터가 빤히 바라보이는 곳에 감금된 바울사도가 눈하나 깜짝 하지않고 그 감옥에서 잘 버티면서 옥중서신을 썼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울사도는 서 수 없이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고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러다가 로마의 감옥에 갇혀서 서서이 참수형을 당할 순간이 다가오는 것을 예감하면서도 바울사도는 전혀 두려워하거나 근심하거나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죽은 다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급과 영광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죽기전에 로마의 감옥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 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7-8)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도 믿음을 잘 지키고,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충성을 다함으로서 예수님에게 칭찬을 받고 그리고 천국에서 많은 상급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출처 : 보물섬남해세광교회
글쓴이 : 행복을 주는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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