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본문 시편 40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고난중에 응답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한 시입니다. 2절에 보면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시편 40편의 진정한 은혜는 이 시편을 끝까지 읽어야만 알게 됩니다. 첫 부분에는 다윗의 고백에 응답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감사의 기쁨이 넘칩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여호와를 의지하고 교만한 자와 거짓에 치우치는 자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다윗은 사울의 박해를 피해서 오랜 세월동안 도피생활을 했습니다, 때로는 살기 위해서 미친 척도 하고, 동굴에 숨어서 지내면서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사울이 길보아 산에서 전사한 후에 다윗은 자유를 얻게 됩니다. 이 찬양은 그런 고난이 지나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때에 부른 노래입니다.
기도에 응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찬송이 터져나오고, 이제부터는 주님의 뜻을 따라 살겠다는 고백으로 마음은 즐겁고, 평생 주님만 찬양하고 주님만 높이면서 살고 싶습니다!” 라고 다윗은 고백합니다.
여기까지는 분위기가 아주 좋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11절부터 분위기가 바뀝니다. 11절에 보면 주님의 긍휼하심을 나에게서 거두지 말아 주십시오. 12절, 눈 앞이 캄캄합니다. 나는 희망을 잃었습니다. 13절, 주님, 빨리 나를 도와주십시오. 17절, 나는 불쌍하고 가난합니다 주님 나를 생각하여 주십시오 나의 하나님 지체하지 말아 주십시오! 라고 고백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은혜의 시간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 영적 시련의 때도 있습니다. 은혜가 임해서 영적인 눈이 뜨일 때에는 너무나 기쁘고 황홀합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영생이 있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성령께서 내 마음에 임하시면 더 바랄게 없이 행복합니다.
문제는 그 충만함이 식어 질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침체가 옵니다. 마음의 기쁨이 사라지면서 때로는 버림받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두려움과, 수치심과, 불안이 몰려 올 때도 있습니다.
아무리 주님의 이름을 불러도 응답이 없는 것 같을때도 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어디 계시나? 왜 침묵하시나? 하면서 영혼의 밤을 맞이 할 때도 있습니다.
다윗 뿐 만이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100세에 이삭을 얻고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충격에 빠집니다.
모세는 영광중에 시내산에서 부름을 받았지만 40년이라는 긴 광야 생활의 고난을 겪었습니다. 요셉은 13년이라는 오랜 세월동안 노예생활과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 들어가서 생사화복의 갈림길에 서서 극심한 공포와 두려움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예레미야도 깊은 진흙 구덩이에 빠져서 절망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엘리야도 열왕기상 19장 4절에서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라고 고백하면서 차라리 지금 나를 죽여 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에 보면 사도 바울도 “주님! 제발 나를 괴롭히는 육체의 가시를 빼주세요”하면서 세 번이나 간절히 주님께 기도 했다고 증거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외치셨습니다.
마더 테레사도 캘커타에 가기전에 수년동안 깊은 내적 어둠속에서 갈등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 그녀는 하나님의 현존을 느끼지 못했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느꼈습니다.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까지 생각했습니다. 수녀생활에 회의를 느끼면서 좌절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하나님은 테레사에게 “네가 짊어져야 할 짐이 있다”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인도의 할렘가로 가서 가난하고 병든사람들을 돌보기 시작합니다. 무거운 짐이었지만 잘 감당하자 하나님이 그녀를 높여 주셨습니다.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더가 먼 나라까지 원정을 가서 전쟁에 승리한 후에 전리품으로 얻은 금은보화를 마차에 가득싣고 돌아왔습니다. 나귀가 마차를 끌었는데 워낙 먼 거리라 나귀가 지쳤습니다. 나귀가 점점 힘이 없이 걸어 갑니다.
그 모습을 본 마부는 나귀가 측은한 생각이 들어서 마차에서 금덩어리가 들어있는 무거운 부대자루 하나를 자기가 짊어지고 나귀를 몰았습니다. 우연히 그 모습을 본 알렉산더 대왕이 이상해서 물었습니다.
그대가 짊어지고 가는 것이 무엇인가? “황제님의 금덩어리입니다” “마차에 싣고가지 왜 금덩어리를 짊어 지고 걷는가?”그러자 마부는 “나귀가 너무나 힘들어 해서 짐을 덜어 주려고 제가 지고 가는 것입니다”하고 고백을 했습니다.
감동을 받은 알렉산더 대왕이 그에게 “지금 네가 짊어지고 가는 금덩어리는 네가 가져라” 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마부는 졸지에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것이요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심판 때에도 이와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내가 짊어진 것 만큼 하나님으로부터 되돌려 받게 될 것입니다.
가난한자를 돌봐 주었으면 돌봐준 만큼 더 받을 것입니다. 교회에서 충성봉사 했으면 봉사한 만큼 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힘들어도 내게 태워주신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이어서 오늘 본문에 보면 다윗이 기가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빠졌습니다. 믿음좋은 다윗이 왜 이런 고난을 당합니까?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도 때때로 이런 고난스러운 일들을 허락하십니까? 그것은 영혼의 밤을 만나서 고난을 당하면, 아직도 죽지 않은 내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난의 때에 비로소 내 영혼이 정화되고 내 부족한 자아도 고난을 통해서 연단이 됩니다.
고난의 때에는 하나님만 바라보게 됩니다. 마태복음 5장 11절로 12절에 보면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라고 증거 합니다.
18세기 초에 요한 웨슬레가 동생 찰스 웨슬레와 더불어 신앙운동을 벌이던 시절에 그들의 사역을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성직자들은 존 웨슬레를 이단으로 간주했고 교회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존 웨슬레는 온갖 좋지 못한 소문들을 들었고 고소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폭도들 때문에 죽을 고비도 여러번 넘겼고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웨슬레는 그런 박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이 자기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는 증거라고 생각 했습니다.
어느 날 요한 웨슬레가 말을 타고 가는데 문득 지난 사흘 동안은 자기가 아무런 핍박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즉시 말에서 내려서 땅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는 생각하기를 삼일동안 세상에서 핍박을 받지 않은 것은 내가 믿음이 약해지고 세상과 결탁하여 그런 것이 아닌가 하고 하나님께 회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는 자기가 잘못한 게 있으면 알게 해 달라고 큰 소리로 부르짖어 기도를 드렷습니다.
그런데 길 건너편에 서 있었던 한 사람이 그 기도 소리를 듣고서 요한 웨슬레인 것을 알아보고, “잘 됐다. 저 감리교 목사를 이번 기회에 단단히 손을 봐줘야지” 하고는 벽돌 하나를 집어 들고서 웨슬레를 향해서 힘껏 던졌습니다.
그 남자가 던진 벽돌은 다행히 웨슬레를 살짝 비켜서 날아갔습니다. 그러자 웨슬리는 그 사내에게 화를 내기는커녕 크게 기뻐하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가 아직도 당신의 임재 가운데 있음을 감사드립니다!”라고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한동대학교의 김영길 총장님은 한동대학이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대학”이라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온갖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급기야 일간지에 김영길 총장님을 비난하는 성명서가 실리게 됩니다. 그 때 아내 김영애 권사님은 너무나 억울해서 통곡하면서 울었다고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대학을 경영하는데 온갖 핍박과 비방이 따라오니 속이 상했습니다.
나중에 대학의 상황이 아주 심각해 졌는데, 그런데도 김영길 총장님은 퇴근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식사를 하시고 코까지 골면서 주무시더랍니다.
사모님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아침에 남편에게 “당신은 지금 잠이 와요? 사태가 이렇게 심각한데 잠이와요?”하면서 따져 물으셨습니다.
그런데 김영길총장님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난 이미 예수님 안에서 죽었는데 뭘그래?”하시더랍니다.
시편37편 7절에 보면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불평하여 말지어다” 라고 증거 합니다. 시편 42편5절에 보면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라고 증거 합니다.
시편 46편 10절에 보면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라고 증거 합니다.
야고보서1장2절에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라고 증거 합니다. 살다보면 시험이 올때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시험이 오고 가정도 공동체에도 시험이 올때가 있습니다.
실업자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직장에서 쫓겨났습니다. 가정이 가난해 졌습니다. 지붕이 새는데도 고치질 못 했습니다. 비가오면 안방에 물이 떨어졌습니다.
어느날 비가 오기 시작하는데 아버지가 잠간 나갔다 온다고 하면서 나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밤이 늦도록 돌아 오질 않았습니다. 식구들이 아버지를 찾아 나섰습니다. 식구들이 아버지가 갈만한 곳을 모조리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늦은 밤에 할 수 없이 모두들 집으로 돌아오는데 지붕위에 누군가가 우산을 쓰고 쪼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아들이 놀라서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우리 집 지붕위에 누가 있어요!”
물끄러미 바라보던 엄마가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냥 집에 들어가자!” 모두가 안방으로 들어 갔습니다. 방에 물이 새질 않았습니다. 그때 엄마가 말했습니다. “얘들아! 아빠가 돈도 못 버니까 지붕을 못고쳐서, 그래서 미안해서 우리라도 편안하게 자라고 저렇게 구멍난 지붕에서 비가 새지 않도록 우산을 받치고 있는 것 같구나 아빠의 자존심 건드리지 않게 모르는 척 하고 자자”하더랍니다.
“아름다운 103가지 이야기”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가진 것은 없지만 그래도 끝까지 내 가정을 책임지려는 아버지의 희생을 잘 그린 이야기입니다.
교회 공동체에도 이와같이 누군가가 어려운일을 책임지고 희생하는 사람이 있으면 공동체가 아름다워 집니다. 아무도 무거운 짐을 지려고 하지 않으면 그런 공동체는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가 열심히 예배에 동참하면 하나님께서 믿음과 영성을 주셔서 주님처럼 귀한 사역을 감당하는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공동체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귀하게 쓰임받는 일군이 됩니다.
마이클 야코넬리의 “영성”이라는 글에 나오는 실화입니다. 영국의 한 목사님이 주일날 성도들에게 “이제 나는 더 이상 목회를 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기독교에 회의를 느낍니다. 그래서 사임합니다!” 라고 광고를 하셨습니다.
성도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장로님들은 목사님에게 예배를 마친 후에 성도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모두들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 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의 사임은 받아들여질 것이고, 퇴직금 문제가 거론되고, 새로운 목사를 찾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장로님들과 성도들은 상의를 한 끝에 목사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교회에서 목회를 하시면서 기독교에 회의를 느끼셨다니 죄송합니다.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몹시 힘들었을 줄 압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독교가 진리라고 믿습니다. 우리 기독교가 회의에 빠질만한 종교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님이 조금더 우리 교회에서 목회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신에 목사님께서 기독교에 대해서 회의에 빠진 이유를 매주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목사님과 논쟁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목사님께서 회의에 빠진 이유를 우리도 알고 그 문제를 함께 해결해 보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목사님의 설교를 계속 듣고 싶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그 후로 3년을 더 목회하면서 자기가 회의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기독교와 교회에 대해서 열심히 설교를 했습니다. 자기가 그 동안 의심하고 실망한 사건들과 내용들에 대해서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설교를 하다가 눈물을 머금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 보던 목사님은 비로소 큰 은혜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 했습니다.
“나는 이제 다시 믿음을 찾았습니다. 제가 회의에 빠져서 목회를 그만두려고 했는데 설교를 해 오는 동안에 성도님들이 크게 변화가 되었고 저도 변화가 되었습니다. 저를 믿고 신뢰해 주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믿음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기다려 주신 것도 감사드립니다”라고 고백을 하셨습니다.
드디어 목사님도 정상적인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목사님은 침체의 늪에 빠져서 허덕였고, 피곤에 지쳐 있었고, 혼란과 의심이라는 모래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알게된 장로님들과 성도들이 목사님에게 다시 기회를 주면서 회의와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을 돌아보고 잠시 쉴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목사님에게 목회를 부탁하면서 시간을 더 드린 것입니다.
이와같이 목사도 시험에 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도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때는 조금 더 참고 인내하면서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부산제일교회의 사찰 집사님이 보니까 어떤 사람이 지하 교육관에서 술이 취해서 잠을 자기에 깨워서 나가달라고 했더니, 그사람이 소리를 지르더랍니다. “이봐요! 나 전도사입니다!, 나도 시험에 들어서 괴로와서 술을 마셨습니다! 내가 한잔 마시고 아버지집에 오면 안됩니까?!”하면서 소리를 지르더랍니다.
술을 마시고도 아버지 집에 오면 참 잘한 것입니다. 그래도 아버지 집에 오면 문제를 해결받을수 있습니다. 무슨일이 벌어져도 “주님! 나를 도와 주세요! 내가 주님을 바라봅니다! 나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하면서 겸손하게 엎드리면 길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항상 휴대폰을 주시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휴대폰보다 더 점검하면서 살아야 할 것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예수님과 동행하면 예수님이 나를 인도해 주시고 도와주시고 함께 하셔서 인생을 평안하고 든든하게 살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낸 엄마는 아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남편이 직장에 나가면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공부한 학생은 졸업 할 때를 기다립니다 농사를 짖는 농부는 밭에 나가서 땀흘리며 수고하면서 풍성한 곡식을 거둘 때를 기다립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실 때에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주님의 마지막 명령을 받은 제자들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 위해서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하면서 기다리더니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습니다
가나안을 향하여 나아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움직이기를 기다렸다가 움직이면 따라서 이동했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멈추면 거기에 하루고 이틀이고 한달이고 머물러야만 했습니다 철저히 인내하면서 기다렸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려야 합니다 모든 것을 생각해 보면 얼마나 잘 기다리느냐에 따라서 성공과 실패가 결정됩니다.
오늘본문에도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라고 증거합니다 무엇을 기다렸습니까? 다윗은 하나님께서 주실 기도의 응답을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라고 약속 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도 기다리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사람은 급해서 서두르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서두루지 않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간구 했으면 기다려야 합니다. 동양의 성자라고 말하는 가가와 도요히꼬는 “나의 나된 것은 밤중에 다른 사람들이 다 자고 있는 시간에 일어나서 한 두 시간씩 하나님께 기도했기 때문에 나를 이길수 있었다”라고 고백 했습니다.
스탠리 죤스박사는 “나에게 제일 큰 소원은 늘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라고 고백 했습니다.
미국은 백악관에는 기도실이 있습니다. 국회의사당 안에도 기도실이 있습니다. 그들은 기도하고 정책을 만들고 기도하고 나랏일을 의논합니다. 그러니까 미국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오랜 세월동안 청와대 안에 불상을 들여놓고 불공을 드렸습니다. 우상숭배가 5천년동안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관공서에도 기도실이 생기고 학교에도 기도실이 생기는 날이 오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한 없이 축복해 주실줄 믿습니다.
기도는 호흡입니다. 그런데 기도도 중요하지만 응답이 중요합니다. 기도는 응답에서 끝나야 좋은 기도입니다. 열심히 기도를 드리다가 은혜를 체험한 권사님이 계십니다. 성북제일 교회의 채벽산 권사님입니다.
권사님은 벽산 한의원 원장이신데 결혼할 당시에는 불신자였습니다. 남편 홍원식 박사는 한국의 한의학 박사 1호입니다. 부부가 한의사입니다.
어느날 우연한 기회에 채벽산권사님이 성경을 선물을 받아서 읽게 되었고 급기야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1983년도에 윤덕수 목사님을 통해서 세례를 받고 거듭났습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한의사로 일하면서 크로스 웨이, 베델성서등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다가 성경공부도 중요하지만 기도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1985년 5월달에 1000번제 새벽기도를 작정했습니다. 천날동안 새벽기도를 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마침 그때 막내딸이 대학진학을 앞두고 있었기에, "내가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하려면 새벽기도를 해야겠구나!"라고 생각하고 천일새벽기도를 작정한 것입니다.
그녀는 번개치는 날, 비를 퍼붓는 날, 영하 10도가 넘는 추운날, 눈보라가치는날등 어떤 날씨에도 안빠지고 새벽기도에 나갔습니다. 몸살 감기로 몸이 천근만근일 때도 나갔습니다. 해외에 일이 생겨도 해외에 출장을 갈 수가 없었습니다.
친척들이 상을 당하거나 무슨 일이 생겨도 자고 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누가 오해해도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00일, 200일이 지나면서 자기의 영성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기도를 기뻐하신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기도중에 가슴이 뜨거워 졌습니다. 기도하면 할수록 성령충만하고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어느날 남편이 신학공부를 하겠다고 하면서 한의사를 그만두고 보스톤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신학공부를 하러간 남편을 따라서 큰 딸아이가 연세 대학교를 졸업하고 같이 따라 갔는데 미국에 가서 예배 음악을 전공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무작위로 대학에 원서를 보냈는데 파이프 오르간의 거장인 맥스웰 교수님의 눈에 들어서 휴스턴 대학교의 장학생이 되었습니다. 3년 전액 장학금과 기숙사비 전액 무료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딸아이가 1000명이 모이는 미국교회의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로 초청을 받았습니다.
둘째딸은 북경 중의대학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기숙사에 불이 났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당장 달려가야 하는데 새벽기도 때문에 갈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은 화재가 나기 한 달 전부터 이상하게 “딸 아이가 머리털 하나도 다치지 않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가 계속 나왔습니다. 그런데 대 화재가 났는데 둘째 딸아이는 시험공부를 하다가 늦게 잠이 들었는데 유독까스에 중독되어 쓰러졌습니다.
구조대원들이 올라가서 보니까 딸아이가 기숙사 방에서 기어나와서 4층 난간까지 왔는데 일미터만 더 기어갔으면 4층에서 땅으로 굴러 떨어지는 자리에 와서 의식없이 앉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지켜주신 것입니다.
권사님은 교회가 멀어서 매일 택시를 타고 새벽기도에 갔습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택시기사님들에게 예수님을 전도했고 예수님을 영접한 기사님이 많았습니다.
병원을 다시 짓는데 건축하면서 어려운 일들이 많았지만 신기하게 모든 일들이 하나 하나 풀리면서 다 해결이 되었습니다.
새벽기도를 시작한지 3년째 되던날 벽쪽에 있던 그릇장이 무너지면서 갈비뼈를 다쳤지만 그래도 새벽기도는 결석하지 않고 다녀온 후에 병원에가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1,000번제가 끝난 1995년도에는 집 지하실에 기도방을 만들어 놓고 매일 2시간씩 기도하고 찬송하면서 지냈는데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기도응답의 축복을 계속해서 주신다고 간증을 하셨습니다.
인내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대부분이 수 많은 시행착오와 피눈물나는 노력과 끈기를 투자한 사람들입니다.
밀턴은 매일 아침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실낙원을 집필했습니다. 노아 웹스터는 “웹스터 사전”을 집필하기 위하여 36년동안이나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그 옛날에 두번이나 대서양을 횡단했습니다.
플라톤의 국가론은 무려 아홉번이나 대필한 다음에 완성이 되었습니다. 시인 브라이언트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시를 쓴 후에 보통 99번이나 다듬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은 8년동안 땀흘려 완성한 작품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도 10년이나 걸려서 완성한 작품입니다.
슈만 하인크는 위대한 기수가 되기 위하여 20년간 가난과 싸웠습니다. 꿀벌은 살아 있는 동안에 지구의 세바퀴나 되는 거리를 날면서 꿀을 모읍니다. 모두가 인내와 끈기로 이루어 내는 이야기입니다.
불의한 재판관에 나오는 과부는 불의한 재판관이 들어줄 때까지 매달렸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과부처럼 끈기있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에게 가서 졸라댈 때에 전심으로 졸라댔습니다. 과부를 상대도 안해주고 귀찮아 하는데도 날마다 가서 졸랐습니다. 그래서 결국 한맺힌 일을 해결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전심으로 기도하는 사람의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대하16:9)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29:12-13)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랑하신 이유는 다윗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내 종 다윗이 나의 명령을 지켜 전심으로 나를 좇으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만 행하였나니”(왕상14:8)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기가 막힌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려 주셨습니다. 기가막힌 웅덩이와 수렁은 다윗이 처한 어려운 상황에서 건져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때에 “기가막힌다”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말이 안나올 때 기가 막힌다고 말을 합니다. 깊은 수렁에 빠진 사람은 누군가가 도와 주어야 나올 수 있습니다. 죄의 수렁에 빠진 인생은 하나님께서 끌어내시고 반석 위에 세워 주시면 견고한 믿음이 됩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반석이요 구원자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에게 소망을 두고 사는 것입니다.
더불에서 찬송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3절에 보면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하나님을 의지하리로다”라고 증거 합니다.
우리의 절대 주권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조로증에 걸려서 일찍 늙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너무 빨리 늙어서 할아버지처럼 되었기에 친구들과 같이 공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아이는 혼자 집에서 가정 교사에게 공부를 배웠습니다. 어느날 그 아이가 선생님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나는 왜 다른 아이들보다 빨리 늙어야 하나요?”
그 때 가정 교사가 “밤하늘에 별들이 있지? 그 중에 아름답게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았지? 너는 일찍 떨어지는 아름다운 별똥별과 같단다”
“선생님! 왜 나만 별똥별이 되어야 하나요?” 그 때 선생님은 “그것은 너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다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이기 때문이지”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중에 베드로와 야고보가 감옥에 갇혔는데 하나님께서 베드로는 천사를 보내서 살려주시고 야고보는 순교를 당하게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속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는 유황불로 멸하시고 타락한 니느웨 성은 요나를 보내서 구원시켜 주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도 하나님의 절대주권입니다. 누가 뭐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120세가 되도록 눈이 흐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훌륭한 바울사도는 중년에 눈이 흐려져서 성경을 제대로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다른사람이 대필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모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절대 주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속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무조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내 인생도 우주 만물도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빌려 쓰고 있는 것 뿐입니다.
우리 몸은 온 천하보다 귀하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귀한 몸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몸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찬송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시편 100편 기자는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감사해야 한다고 증거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의미입니다. 어느 나라 백성이냐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중에 특별히 이북에서 피난온 사람들이 미국에 이민을 많이 갔습니다. 그 이유는 미국 시민권을 가지게 되면 북한을 갈수가 있습니다. 내가 나고 자란 고향땅에 한번 가고 싶어서 미국으로 이민을 간 것입니다.
그런데 이민간 사람들이 미국 시민권을 가지려면 엄청 힘듭니다. 많은 노력을 해야만 시민권을 얻을수가 있습니다.
한편 미국은 속지주의입니다. 누구든지 여행중에라도 미국 땅에서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에게 미국 시민권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원정 출산이라는 말이 생긴 것입니다. 아이를 낳을 때가 되면 몰래 미국으로 들어가서 그 곳에서 아이를 낳고 돌아 오는 출산입니다.
미국시민권자가 되면 미국에서 많은 혜택을 받습니다. 그래서 미국시민권을 받으려고 원정출산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미국 시민권을 가지려는 이유는 미국 시민권자가 되면 강력한 미국의 보호를 받기 때문입니다.
며칠전에 미국에 억류되었던 케네스 배 선교사님이 2년만에 풀려나서 기독교 방송에 나와서 간증을 하는것을 보았습니다. 배선교사님이 잡혀가서 취조를 당하는데 다른사람들 같으면 때리고 굶기고 죽도록 고생을 시켜서 죄를 뒤집어 씌워서 재판을 받고 강제 수용소로 보내져서 죽을때까지 고생만 하다가 죽는데 케네스 배 선교사님은 미국 시민권자 입니다. 그래서 취조를 하는데 방에서 여섯시간을 세워놓더랍니다. 그게 제일 힘든 취조 였다고 합니다. 미국 시민권자이기에 북한도 함부로 못한 것입니다 .
마찬가지로 어느 나라 백성인가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천국백성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감사하고 찬송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찬송이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임재 하십니다
오늘 본문 3절에서 새 노래로 찬송한다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노래로 찬송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찬양 받으시기를 기뻐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 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찬송은 구원받은 성도의 마땅한 일입니다 우리가 장차 천국에 올라가서 해야 할 일이 한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입니다.
이어서 5절에 보면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소이다 내가 들어 말하고자 하나 주의 앞에 베풀수도 없고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라고 증거 합니다.
하나님은 능치 못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한 당신의 생각이 깊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르시는 양입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개도 누가 기르느냐에 따라서 행복감이 다릅니다. 미국이나 유럽에는 개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게에게 아주 멋진 옷을 입힙니다. 양장점에 가서 맞춤복으로 입힙니다. 개 레스토랑에 가면 메뉴가 나오고 그리고 털을 더럽히지 말라고 턱받이가 나옵니다. 개 식성에 따라서 주문해서 먹입니다.
개를 의자에 편안히 앉히고 주인이 개 옆에 앉아서 먹입니다. 가난한 집 아들보다 낫습니다. 정말 개팔자가 상팔자입니다.
사람도 누가 키우느냐에 따라서 신분이 달라집니다. 대통령이 양아들로 키우면 좋은 대접을 받으면서 자랍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양”입니다. 하나님이 길러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동물에는 세 가지 종류의 동물이 있습니다. 싸워서 약한 동물을 잡아 먹는 동물이 있습니다. 사자나 호랑이 같은 동물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열심히 노력해서 먹고 사는 동물이 있습니다. 소같은 동물입니다. 소는 열심히 풀을 뜯어 먹으면서 삽니다. 다른 동물에게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양같은 동물도 있습니다. 양은 남을 잡아 먹지 않습니다. 그런데 양의 시력은 2-3m밖에 안됩니다. 그래서 자기가 풀을 찾아 갈 수 없습니다. 목자가 풀이 있는 곳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양은 목자가 없으면 굶어 죽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목자이시고 우리는 그의 양입니다. 예수님이 길러 주시고 예수님이 보호해 주셔야 제일 안전합니다. 남편이나 아내도 하나님만큼 안전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언제 어느때에 무슨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어느날 남편이 일 때문에 퇴근이 늦어져서 집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받지 않고 다른 여자가 받았습니다. 그래서 “누구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저는 파출부입니다”합니다. 가끔 파출부가 와서 일을 했기에 그래서 “주인 아주머니 좀 바꿔주세요”했더니 파출부가 하는 말이
“아주머니는 남편 분하고 침실로 드셨는데요?”합니다. 남편이 놀래서 “내가 남편입니다 제 아내가 도대체 누구랑 침실로 들어갔단 말입니까?”했더니
“아 지금 야근 끝나고 오셨다고 하던데요 방문을 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남편이 그 말을 듣고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어떤 놈이 내 아내와 침실에 들어간건가 하고 생각하니까 불이 났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파출부에게 “내가 이백만원, 아니 오백만원 드릴테니까 나를 좀 도와주세요 부탁합니다!” 하고 간청을 했습니다
그러자 파출부가 500만원을 준다니까 마음이 동해서 “뭘 도와 드리면 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남편은, “몽둥이를 하나 들고, 몰래 문을 열고 침실에 들어가서 남편이라는 사람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내리쳐서 기절시키세요! 만약에 마누라가 발악하면 마누라도 같이 때려 눕히세요! 뒷 일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부탁합니다!”
파출부는 잠시 망설이더니 500만원을 준다는 말에 넘어가서 한번 해보겠다고 대답을 하고 몽둥이를 들고 몰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전화기도 수화기를 그냥 내려놓았기에 조금후에 전하기로 소리가 들렸습니다. “으악 아이구”하면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잠시 후에 파출부가 다시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시키는대로 했어요, 둘 다 기절했어요 이젠 어떻게 하죠?”
“잘했습니다! 두 사람을 묶어두세요! 거실 오른쪽 구석에 다용도실이 보이죠? 그 안에 끈이 있으니 가져오세요”
파출부가 가서 찾았는데 없습니다. 파출부가 다시 전화기를 들고서 “이 집엔 다용도실이 없는데요?”합니다.
남편이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습니다. “거기 532-3737 아닌가요?” 그러자 파출부가 “아닌데요! 532-3787인데요 합니다.
알고보니 엉뚱한 집에 전화를 걸어서 엉뚱한 사람들을 때려잡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시지 아니하시면 이와같이 언제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릅니다. 내가 아무리 운전을 잘해도 갑자기 대형트럭이 들이닥쳐서 죽거나 다치기도 합니다. 건널목을 건너 가는데 갑자기 차가 덮쳐서 여러명이 죽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켜 주셔야만 가장 안전합니다. 욥은 많은 시험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하여 범사에 감사하므로 모든 시험을 이겼습니다. 우리도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끝으로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실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다윗에게는 수 없이 많은 원수들이 달려들어서 고통을 주고 어려움을 주면서 “아하 우리가 이기었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모든 악인들로부터 그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악인의 형통함은 오래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성도에게는 반드시 승리의 날이 옵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기쁠때나 슬플때나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 험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기가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찬송하면서 감사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아무쪼록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라는 찬송처럼 하나님께 찬송하고 감사하면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포도나무 > 포도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2016년10월2일 주일낮 요한복음12장1-8 섬기는 자의 행복 (0) | 2016.10.02 |
---|---|
[스크랩] 2016년9월11일 주일낮 요한복음6장1-15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 (0) | 2016.09.04 |
[스크랩] 2016년8월18일 누가복음23장39-43 구원받은 강도 (0) | 2016.08.21 |
[스크랩] 2016년8월17수저녁에베소서5장15-21 자세히 주의하여 (0) | 2016.08.18 |
[스크랩] 2016년8월7일주일낮 마태복음22장1-14절 왕의 초대 잔치 (0) | 2016.08.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