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 베이컨은 사람을 세 종류로 구분 했습니다. 개미 인간, 거미 인간 그리고 꿀벌 인간입니다. 그중에 꿀벌같은 인간을 칭찬 했습니다. 꿀벌은 열심히 꿀을 모아서 남에게 도움을 줍니다.
사람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은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기에 살만한 세상이 됩니다. “돈이 다가 아닙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인터넷에 올라와 있었습니다. 한 부부가 평생을 같이 살았는데 남편이 파킨슨병에 결려서 남편을 요양원으로 모셨습니다. 두 사람이 평생 장사를 해서 10억을 모았는데 그 돈을 몽땅 양로원에 기증을 하면서 돈이 없어서 양로원에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돈으로 도와 주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났는데 아내도 이틀 후에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들의 헌신이 나중에 아들부부를 통해서 알려 졌습니다. 아들은 홍용희씨였고 아내는 한재순씨 였는데 부모님이 남겨놓은 통장에는 280만원이 남아있었습니다.
둘째딸이 이런글을 올렸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우리 다섯 남매의 학비를 빼고는 모든 것을 악착같이 아끼면서 살아오셨습니다. 더운 날에 선풍기도 잘 안켜고 먹고 싶은 반찬도 안 먹고 돈을 모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돈을 몽땅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 주라고 기증 하셨으니 정말 부모님이 존경스럽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마리아는 2,000만원 상당의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었습니다. 아주 값비싼 나드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았습니다. 마리아가 그렇게 한 이유는 자기 오빠 나사로가 죽었는 데 예수님이 살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아낌없이 비싼 향유를 부어 드린 것입니다.
그 무엇으로도 주님의 은혜를 갚을 길이 없었습니다. 마리아는 2000만원어치의 향유를 아낌없이 예수님께 부어드렸습니다. 그래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나는 만약에 죽은 우리 어머니를 예수님이 다시 살려 주신다면 평생 20억원을 갚으라고 해도 선뜻 갚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 드리는 것을 지켜보던 가룟유다는 5절에서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라고 말하면서 마리아를 책망 했습니다. 그 귀한 향유를 예수님에게 부은 것을 아깝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가룟 유다가 이렇게 말한 이유를 정확하게 기록했습니다. 6절에 보면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가룟유다는 돈이 목적이었습니다. 돈이 최고였습니다. 유다는 돈을 스승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 했습니다. 가룟유다가 그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않는다고 푸념한 것은 자기가 돈을 떼어 먹으려는 속셈 때문에 그런말을 한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도적이라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그런말을 한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철저한 위선의 사람입니다.
그는 이름부터가 위선자입니다. 유다라는 이름의 뜻은 “찬송”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좋은 이름을 가졌지만 그는 한번도 하나님을 찬송한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녔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유일한 제자가 바로 가룟 유다입니다.
예수님을 열심히 따라 다녔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말로가 비참해 집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전에 이런 설교를 하셨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군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 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 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요6:63-71)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렇게 물으면 어떤 분들은 야곱이다, 어떤 분들은 요셉이다 바울이다 라고 말하지만 가룟유다가 상당히 머리가 좋은 인물입니다.
오늘 본문 6절에 보면 그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 “돈궤”를 맡은 사람입니다. 말하자면 회계를 맡은 셈입니다. 회계는 재정을 총괄하는 사람입니다. 계산이 빠르고 머리가 좋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마리아가 향유를 붓자마자 당장 계산이 나옵니다.
“이 향유를 300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지 않았느냐?” “나드 향유의 시세가 얼마인지, 한 근이면 얼마 해서 당장 300 데나리온이 척하고 나옵니다. 그런데 유다는 그 좋은 머리로 돈궤에서 슬쩍슬쩍 공금을 횡령 했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사기는 아무나 치는게 아닙니다. 머리가 좋아야 사기도 치고 착복도 하고 횡령도 합니다. 요즘 회사 돈 수 천억을 횡령해서 비자금으로 빼돌린 사건들 때문에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그들의 수법이 얼마나 다양하고 교묘한지 그 똑똑한 검사들 수십명이 달라붙어서 조사를 해도 쉽게 잡아내지를 못합니다.
좋은 머리로 사기 치고 남의 등이나 쳐먹는 사람들은 그 죄값을 받게 됩니다. 가룟유다도 예수님에게 사기를 치더니 그 이름이 영원히 더러운 이름으로 남게 됩니다. 영원히 용서 받을 수 없는 죄를 짓고 영원한 지옥불에 들어갔습니다. 차라리 머리가 나빴더라면, 차라리 계산이 둔했으면 그런 죄를 짓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보면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과 기업가들중에 탐욕에 빠져서 나라 전체를 고통으로 몰고 간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사람들의 대부분이 일류대 출신들입니다. 잘난 능력으로, 뛰어난 머리로 남에게 피해만 주면서 살았습니다.
옛날에는 학교에서 아이큐(IQ=Intelligence Quotient) 검사를 했습니다. 지능지수 검사를 해서 생활기록부에 기록해 놓았습니다. 아이큐가 148이 넘는 사람만 들어가는 ”멘사 클럽“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아이큐는 106이라고 합니다. 아이큐가 130이면 뛰어난 두뇌입니다. 150이면 천재 소리를 듣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아이큐 210이 있습니다. 그는 김웅용이라는 분입니다. 제가 중학교에 다닐 때 이분이 소년중앙에 나와서 본적이 있습니다. 현재 54세의 공학박사인 이 분은 세계인명사전과 “21세기 우수 과학자” “21세기 위대한 지성”에도 뽑힌 엄청난 천재입니다
이분은 5살 때 4개 국어를 구사하고, 6살 때 일본 후지 TV에 출연해서 미적분을 풀었습니다. 일본에서 실시한 아이큐조사에 210이 나와서 1980년 기네스북에 세계 최고의 지능을 가진 사람으로 등재가 되었습니다. 8살 때 1970년도에 미국우주항공국(NASA) 의 초청으로 미국에 가서 석박사를 마치고 5년간 나사 선임연구원으로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1978년도에 갑자기 귀국해서 한 지방대학에 입학하게 됩니다. 미국에서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또래도, 친구도 없이 미 항공우주국이 주는 과제를 수행하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박제 인생에 질려서 돌아왔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는 천재 소년에서 인간다운 삶을 사는 보통사람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지방대를 택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학교를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 조용히 살고 있습니다. 그는 평범한 인생으로 돌아온 것이 성공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신동이다 천재다 라는 소리를 듣고 자란 사람들을 추적해 보면 어디서 뭘 하는지도 모르고,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아이큐는 정말 높은데 성공도 못하고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서 요즘은 IQ, 즉 지능지수보다 EQ 또는 NQ가 중요하다고 말을 합니다. EQ는 Emotional Quotient, 즉 “감성지수”를 뜻합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과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방향으로 감정을 통제할 줄 아는 능력이 EQ입니다.
또 NQ는 Network Quotient, 즉 “공존지수”를 뜻합니다. 인간관계를 잘 맺고 남과 공존할 줄 아는 능력을 뜻합니다. 아이큐가 아무리 높아도 인간관계에 실패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혼자만 잘 나서 고집 부리고 남을 품거나 인정하지 못하고 공존하는 법을 모르면 실패하게 됩니다.
머리도 나쁘고 공부도 못하지만 성공하고 존경 받는 사람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이 지수가 높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 어떤 대기업은 신입사원을 뽑을 때 학력과 성적과 자격증도 중요하지만 다른 것도 시켜 본다고 합니다.
학력만 기준으로 사원을 뽑았더니 회사생활에 적응을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더랍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단체경기를 시켜본다고 합니다. 단체경기를 하면서 혼자 잘난척 공을 몰고 들어가 서 골인을 넣는 사람은 점수가 낮고 오히려 패스 잘하고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점수가 높다고 합니다. 그게 바로 공존능력과, 인간관계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성도는 어떤지수가 높아야 믿음생활을 잘 할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O Q(Obedient Quotient), 지수입니다. 즉 “순종지수”입니다. 하나님은 아이큐를 안 보십니다. 오직 “순종지수”를 보십니다. 하나님께 얼마나 잘 순종하냐?를 우선시 하십니다.
사실 머리 좋은 사람이나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오히려 하나님께 쓰임 받기가 어렵습니다. 고학력자가 하나님을 믿는 것도 어렵습니다. 부자청년이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고, 주님을 따르는 일보다 재산을 더 소중히 여겨서 근심하며 돌아간 것처럼 머리가 좋은 사람은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생각이나 자기 머리를 더 의지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다처럼 넘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못나고 부족해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은 위대한 역사를 일으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미련한 자들의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셨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들은 미련한 자, 약한 자들입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능력이나 머리를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련하고 우직하게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능력으로는 아무 역사도 안 일어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순종지수는 또한 겸손지수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가룟유다를 책망하고 마리아를 칭찬하셨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마리아의 행동은 정말 무식하고 우직합니다. 그 비싼 나드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부어 버렸으니 얼마나 어리석고 한심한 낭비입니까? 정말 가룟유다 말대로 차라리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거나 선교 헌금을 하면 훨씬 더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마리아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마리아는 아이큐보다 감성지수가 높았습니다. 머리로 생각한게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기꺼이 표현한 것입니다. 사랑지수가 높았습니다. 주님을 최고로 섬기고 싶은 간절한 마음 때문에 귀한 헌신을 한 것입니다.
가룟유다는 마지막까지 머리를 굴립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잡아 죽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잽싸게 그들을 찾아가서 예수님을 팔아 먹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잡으러 갈 때 앞장서서 갑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면 내가 키스하는 사람이 예수라고 군호를 짭니다. 그는 사랑의 표시인 키스로 예수님을 잡는일을 도와줍니다. 그래서 이런 위선자인 가룟유다를 향해서 예수님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위선자는 앞과 뒤가 다른 사람입니다. 이 사람 앞에서는 이말을 하고 저 사람 앞에서는 저말을 합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입니다. 충신같은 데 배신자입니다. 양의 탈을 쓴 늑대입니다. 하나님이 보실때에는 죄를 짓는 자가 위선자가 아니라 죄를 짓고도 안 지은 척 하는 사람이 위선자입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 열 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요6:70)
사람이 밤낮 무슨 생각을 하느냐가 그사람의 본모습입니다. 밤낮 돈 생각만 하면 돈의 종입니다. 밤낮 술만 생각하면 술의 종입니다. 여자만 생각하면 성의 종입니다. 늘 예수님만 생각한다면 예수님의 종입니다.
가룟 유다는 돈만 생각하다가 마귀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막 14:21) 예수님은 가룟유다를 향해서 그는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귀가 들어간 사람은 인간의 가치가 사라집니다. 그래서 악한일에 쓰임 받습니다. 마귀는 원어로 “디아블로스”입니다. 뜻은 “분리시키는 자”입니다.
마귀의 속성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일을 합니다. 가룟유다 속에 마귀가 들어가니까 예수님과 분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분리되면 죄가 문에 엎드립니다. 죄의 노예가 되면 저주가 임합니다. 결국 지옥의 형벌이 기다립니다.
그러나 성령이 들어가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됩니다. 오래전에 미국 켄터키 루이스빌 이라는 동네에 믿음이 좋은 부인이 살았습니다. 그 부인이 길거리에서 한 초등학교 아이를 만나서 전도를 했습니다.
그 부인이 아이에게 “너 우리교회 주일학교 에 한번 와볼래?”하고 전도를 했습니다. 그 아이는 “네” 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 아이가 주일날 교회에 왔습니다. 부인은 그 아이에게 특심한 관심을 가지고 돌봐주고 사랑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어느날 그 부인은 열심히 교회에 나오는 그 아이에게 “너는 장차 하나님의 일군이 되는게 좋겠구나!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되어볼래?”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가 “네”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 아이가 성장해서 일본에 선교사로 갔습니다. 그 선교사는 교토에 있는 한 중학교에 영어교사로 재직 하면서 몇몇 아이들을 전도 했습니다. 그 선교사가 전도한 아이중에 한 아이가 바로 가가와 도요히꼬입니다.
가가와 도요히코는 일본을 복음화 시킨 일본의 영적 거성입니다. 가가와 도요히코를 전도한 선교사가 바로 마야스 선교사입니다. 한 부인이 동네 아이를 전도 했는데 결과는 엄청난 열매로 나타 났습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전도한 한 사람이 나중에 어떤 역사를 일으킬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잡는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나중에 수만 수십만 수백만 수천만명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훌륭한 제자가 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돈 있는 사람을 선호하고 돈 있는 사람을 따라갑니다. 정 주영씨는 북한에 소 500마리를 보냈습니다. 건설 자금도 엄청나게 보냈습니다. 금강산 관광개발을 하면서 돈을 엄청많이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김정일은 정주영씨 장례식에 조문객을 보냈습니다.
사람들은 권력있는 사람을 따릅니다. 한 자리 얻을 수 있을 것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출세하려면 높은 사람에게 눈도장을 찍어야 합니다. 장관자리 하나라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훌륭한 스승을 따라 갑니다. 그 분을 따라 가면 지식과, 인격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거스틴에게 몰려들었습니다. 어거스틴은 제자가 되겠다고 몰려든 사람들을 모아 놓고 배추를 하나씩 주면서 밭에 거꾸로 심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배추를 다 똑바로 심었습니다. 그런데 한 명만 어거스틴이 시키는 대로 배추를 거꾸로 심었습니다. 어거스틴은 순종한 그 한사람만 제자로 뽑았습니다. 그 제자가 훌륭한 사명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돈도 없었습니다. 가난뱅이었습니다. 권력도 없었습니다. 목수였습니다. 그런데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이 모든 것을 다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갔더니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세 가지 큰 보상을 주셨습니다.
첫째는 영생 즉 천국을 선물로 보상해 주셨습니다. 두번째는 생명을 걸만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네 명은 모두 다 어부였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고기를 잡다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고기잡이를 마치고 그물을 깁다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어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을 부르셔서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후에 그들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모두가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에 생명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네 명 모두 다 순교로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베드로는 로마에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순교했습니다. 안드레도 X 자로 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했습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헤롯의 칼에 죽었습니다.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되어 요한 계시록을 쓰고 순교했습니다. 모두다 죽기까지 복음을 증거하다가 순교했습니다. 모두 다 장렬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사명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미국 신문에 실린 기사입니다. 뉴욕에서 갑자기 영하 34도까지 내려가는 주일이었습니다. 그 날 뉴욕 교회에는 평소의 절반 정도밖에 교인들이 출석하지 못 했습니다. 살인적인 추위로 인해서 자동차가 얼어붙고 사람들이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88세되신 “골디 슈리버”라는 할머니가, 평소에 자기가 늘 모시고 가서 예배를 드리는 100세되신 해밀턴 노인의 집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할머니는 그를 차에 태우고 다시 교회로 가는 길에 94세 된 친구 할아버지인 파크스의 집에 둘러서 그까지 태우고 교회로 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30년을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어느날 목사님이 “힘들지 않으세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그저 내게주신 작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 뿐이지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려고 노력할 뿐이랍니다”
사람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자기에게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면서 사는 사람이 가장 복된 사람입니다. 미국의 백화점 왕 워너메이커가 중국에 가서 관광을 하는 중에 이상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소와 아들이 멍에를 같이해서 밭을 가는데 아버지가 뒤에서 쟁기를 붙들고 밭을 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워너메이커가 이상해서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하는 말이 “우리 아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너무나 좋아서 하나님께 소 한 마리를 헌금으로 드리고 싶다고 해서 “그럼 소를 드리고 네가 소 대신 일을 해라!” 라고 했더니 아들이 그렇게 하겠다고 해서 소 한 마리를 팔아서 헌금으로 드리고 그 다음부터 아들이 팔아버린 소 자리에 들어가서 대신 일을 하는 것입니다”라고 아버지가 대답을 하더랍니다.
그 광경을 보게된 워너 메이커가 큰 감동을 받고 미국에 돌아가서 일평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충성을 다했습니다. 중국 시골의 한 믿음좋은 아들을 보고 헌신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명을 찾은 날은 제2의 생일이다”라고 칼 힐티는 말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사명이 깨닳은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오늘 날 목회자로 또는 선교사로, 직분자로 사명을 받았는데 그 사명을 감당하기는커녕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얼마 전에는 강원도의 한 목사님부부가 생활고에 못 이겨서 자살을 했습니다. 목사님 부부가 워낙 내성적이라 말도 못 하고 속으로 끙끙 앓다가 자살한 것입니다.
세번재로 예수님은 예수님을 따른 사람들에게 명예를 주셨습니다. 솔로몬은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잠22:1) 라고 증거 했습니다.
재물보다 명예를 택하라고 했는데 네 명의 제자는 두 가지 명예를 얻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명예를 얻었습니다. 또 하나는 천국문에 그들의 이름이 기록되는 명예를 얻었습니다.
천국에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보좌에 앉아 계시고 하나님과 예수님의 주변에는 24 장로들이 보좌에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천국 문에는 야곱의 열두 아들들의 이름과 더불어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 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그 성에 성곽은 열 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 이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계21:12-14)
2000년동안 천국에 들어간 사람들은 누구나 다 이 천국문을 통과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천국에 들어갈 모든 사람들도 열두사도의 이름이 적혀있는 천국문을 통해서 들어가게 됩니다.
천국문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랐더니 천국을 주셨고 사명을 주셨고 명예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가는 우리들에게도 이런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정치가들은 자기와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한 사람들에게 보상을 합니다. 이명박대통령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를 따르던 참모들은 모두가 장관이 되고 국가에서 운영하는 수많은 기관단체의 장들이 되었습니다.
박근혜대통령도 박사모로 충성한 측근들에게 톡톡히 보상을 했습니다. 전에는 대통령이 되면 장관을 한번씩 시켜 주느라 장관들이 자주 바뀌기도 했습니다.
징기스칸이 황제가 되어서 세계를 지배하기 까지에는 엄청난 고난이 있었습니다. 징기스칸이 세계를 정복하는데 결정적인 한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징기스칸이 전쟁터에 나갔는데 그만 전쟁에서 패하고 도망을 쳤습니다. 아내가 적군에게 붙잡혔습니다.
아내는 적장에게 강간을 당하고 임신을 해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후에 삼년후에 징기스칸이 다시 군대를 재 정비해서 적군에 쳐들어가서 전쟁에 승리하고 아내를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아내를 찾고 보니까 아내가 강간을 당해서 적장의 아이 하나를 낳아서 않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장 아내를 죽이고 다른 여자를 아내로 맞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징기스칸은 적장에게 강간을 당해서 아기를 낳은 아내를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기 아내로 받아 들이고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낳은 그 아이도 자기 아이로 입적을 시켰습니다. 징기스칸이 그런 대범함과 훌륭한 인품을 보여주었기에 부하들이 감동을 받고 자기들의 주군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 충성하기로 결심을 합니다. 그래서 징기스칸이 세계를 정복하는 것입니다.
징기스칸이 세계를 정복하기 까지에는 자기와 생사고락을 같이 하면서 목숨을 걸고 충성한 부하들이 있었습니다. 징기스칸이 전 세계를 정복한 후에 자기와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충성된 장군들에게 “타르탄”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타르탄으로 추대된 그들에게는 여섯가지 특권을 주었습니다.
첫째, 타르탄들은 언제든지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나를 만나러 들어 올 수 있다. 둘째.타르탄들은 전쟁을 끝내고 나면 전리품중에 가지고 싶은 물건을 가장먼저 골라 가질 수 있다.
셋째. 타르탄들은 평생 어떤 세금도 내지 않는다.
넷째. 타르탄들은 사형에 해당되는 죄를 지어도 9번까지 용서받을 수 있다.
다섯째. 타르탄들은 우리 나라 땅 안에서 살고 싶은 땅을 언제든지 골라서 가질 수 있다.
여섯째. 타르탄들에게 준 권리는 4대 후손까지 계속된다. 그들이 징기스칸과 생사고락을 같이한 댓가로 그런 엄청난 축복의 권리를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주사모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주님께서는 주사모 회원인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10:29-30)
예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 집니다. 예수님은 거짓말을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동행하고 예수님을 위해서 헌신한 사람들에게는 징기스탄에 타르탄들에게 준 선물과 축복보다 수천 수만배 복된 선물과 기업이 주어 집니다. 할렐루야!
우리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예수님만 따라가면 참된 생명과 행복이 선물로 주어집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면 하나님이 기뻐 하십니다.
서울에서 목회하는 한 교회의 목사님이 신장암에 걸렸습니다. 그 목사님은 성도들을 끔찍하게 사랑한 목사님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일곱 번째로 많은 암이 신장암입니다.
콩팥에 암덩어리가 생겨서 죽는 암인데 목사님이 암에 걸려서 죽게 되자 그 교회의 장로님이 성도들에게 “우리가 목사님을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둘수는 없으니 우리중에 한사람이 목사님에게 콩팥을 드립시다” 하고는 예배가 끝난후에 다들 마당에 모이라고 하고서 깃털을 하나 가져다가 전도사님에게 들려 주어서 교회 지붕에 올라가서 위에서 깃털을 던지게 했습니다.
그래서 마당에 모여있는 성도들중에 그 깃털이 떨어진 사람이 목사님에게 콩팥을 드리기로 했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장로님의 의견에 순종해서 예배후에 다들 교회 마당에 모였습니다. 여전도사님이 깃털을 가지고 지붕에 올라가서 깃털을 휙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그 깃털이 맨 앞에 서 계시던 장로님에게로 떨어집니다. 그러자 장로님이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하면서 소리를 지르니까 깃털이 휙 날아서 그 옆에 있던 안수집사에게로 갑니다.
그러자 안수집사가 “아멘! 아멘! 아멘! 아멘!” 하면서 소리를 지르니까 깃털이 옆에있는 권사님에게로 날아 갑니다.
그러자 권사님이 “주여! 주여! 주여! 주여!”하고 소리를 지르니까 그 깃털이 날라서 옆에있는 집사님에게로 갑니다.
그러자 집사님이 “예수! 예수! 예수! 예수!”하니까 이 깃털이 다시 옆으로 날아갑니다. 깃털이 어떤 성도에게 가니까 그 성도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하니까 그 깃털이 옆으로 날아서 결국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콩팥을 못받고 돌아가셨습니다. 정말 희생할 상황이 되면 몸을 사리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낮아져서 섬기는 모습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섬긴다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섬김은 일시적이거나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섬김은 반드시 희생을 감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잘 섬기면 반드시 열매가 맺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가난한 사람이 꽃을 가꾸는 화원을 경영하는 사람의 일터에 취직이 되었습니다. 넓은 비닐하우스에 거름을 주고 풀을 매고 관리하는 일을 일년 동안만 임시직으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은 점심을 싸가지고 갈 수조차 없을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사람들이 모여서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같이 먹었는데 그는 혼자 나무 밑에 누워서 점심시간을 보냈습니다.
삼일째 되는날 주인이 그사람의 곁으로 와서 도시락을 펼치더니 혼잣 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이 놈의 마누라가 나를 코끼리로 아나? 점심을 이렇게 많이 쌌어! 이보쇼 이리와서 나좀 도와 주쇼! 이것 좀 먹어주쇼!” 하고 그에게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날부터 가난한 사람은 주인과 같이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는 날마다 주인이 싸온 도시락을 같이 먹었습니다. 일년이 된 마지막날 여느때처럼 여직원이 나와서 월급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는 주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가려고 사무실로 갔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어디를 갔는지 사무실에 없었습니다. 여 직원이 들어오길래 여 직원에게 “주인아저씨에게 일 잘하고 점심밥도 잘 먹었다고 전해 주세요! 그리고 사모님에게도 매일 점심을 많이 싸주셔서 나까지 잘 먹었다고 전해 주세요!”
그러자 여 사무원이 “우리 사모님은 5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어요! 사장님은 5년 째 혼자 살고 계세요!” 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제서야 이사람이 놀래서 매일 점심을 싸 준 것은 사모님이 아니라 사장님이 점심을 싸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점심을 못먹는 것을 안 사장님이 일부러 밥과 반찬을 많이 싸와서 그와 같이 먹은 것입니다.
그는 비로소 주인의 사랑을 깨닫고 돌아서서 눈물을 흘리면서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는 화원 주인에게 언젠가 내가 받은 은혜를 갚겠다고 다짐하면서 돌아왔습니다.
그후에 6개월쯤 지난후에 우연히 길에서 사장님을 만났습니다. 사장은 너무나 반가와서 차나 한잔 하자고 하면서 커피숍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사장에게 "화원에서 일을 한 후에 건강이 좋아져서 노가다 일을 하는데 경기가 좋아서 지금까지 쉬지않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그때 매일 점심을 주셔서 고마웠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혹시 교회에 한번 가보지 않겠냐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는 오래전에 교회에 다니는 사람에게 상처를 받아서 교회를 다니다가 떠났다고 하면서 사장님이 가자고 하면 다시 교회에 가겠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사장님의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은 그는 그 교회의 충성된 성도로 지내다가 장로가 되어 귀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남보다 잘 살고 남보다 조금 더 많이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기도 하지만 사명이기도 합니다. 가난한 이웃을 도와 줌으로서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구원하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세계사를 공부해 보면 전쟁 중에 가장 무섭고, 잔인한 전쟁이 종교 전쟁이었습니다. 모든 종교는 평화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전쟁의 복판에 서 있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종교의 힘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지배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도 예외는 아닙니다. 십자군 전쟁으로부터 비롯해 수많은 전쟁의 명분으로 하나님의 뜻을 내세웠지만 그 내면에는 인간의 욕심과 욕망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힘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려 하셨다면 만물을 지으신 힘으로 단번에 그리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힘이 아닌 섬김을 통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과 헌신으로 서로를 섬기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아담과 하와의 후손인 인류를 다시 에덴동산, 즉 하나님의 나라로 구원하시기 위해 선택하신 방법은 섬김입니다. 섬김에는 헌신과 희생이 따릅니다.
예수님은 그 일을 이루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죄인들을 구원 하시려고 높은 영광보좌를 버리고 낮고 천한 세상으로 오셨습니다. 안죽어도 되는분이 일부러 죽으려고 오셨습니다. 편안한 곳을 등지고 불편하고 힘든 고생길을 자처하셨습니다.
그 주님이 우리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13-14)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먼저 좁은 문으로 들어 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 길을 제자들이 따라 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 내가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즉각 배와, 그물과, 엄청나게 잡힌 고기까지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갔습니다.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다른 어부들은 어처구니가 없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 후로 예수님만 따라 다녔습니다. 3년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녔는데 월급을 받았거나 집으로 월급을 송금한 적도 없습니다.
베드로는 거머리처럼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예수님과 함께 일을 하다가 결국 예수님을 위해서 로마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습니다.
베드로는 마치 삿갓조개처럼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삿갓조개는 바위나 배 밑바닥에 붙어서 삽니다. 한번 붙으면 아무리 억센 파도가 쳐도 삿갓 조개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삿갓조개가 붙어 있는 힘은 마치 시속 3백 마일의 폭풍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서 있는 것과 같은 힘으로 붙어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과학자들은 아직도 그 엄청난 부착력의 비밀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에게 붙어 있었던 베드로를 죽음으로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고난의 길을 걸었습니다. 결코 주님과 떨어지지 않고 죽기까지 붙어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베드로는 지금 천국에 계십니다. 베드로는 지금도 예수님에게 붙어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지구상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잡으러 왔던 말고의 귀를 짜르던 이야기를 하면서 재미있게 지내실 것입니다. 고난의 좁을 길을 택한 베드로는 천국에서 그 누구보다 영광스러운 곳에서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일부러 고생을 사서하는 사람들입니다. 새벽기도하랴, 전도하랴, 헌신하랴 늘 주님과 동행합니다. 그에 대한 분복은 반드시 주어집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주님을 섬기면 하나님께서 귀히 여겨 주신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무쪼록 온맘다해 주님을 섬김으로서 섬기는자의 행복을 누리면서 살고 또 하나님으로부터 귀하게 여김을 받으면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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