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12제자 중에 사도요한은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12제자 중에 90세가 넘도록 가장 장수한 제자입니다. 그는 요한복음을 비롯해서 요한1,2,3서, 그리고 요한계시록 등 다섯권의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평생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영적 자녀들을 낳았습니다.
특별히 사도요한에게는 고맙고 잊을수 없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가이오입니다.
가이오가 살던 시대는 기독교 초기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가신 후에 약속하신 대로 오순절 성령 강림을 주셔서 복음은 세계로 전파되어갔고 곳곳에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로마 황제를 비롯해서 많은 박해와 핍박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불길은 계속 타 올랐고, 그래서 교회는 이곳 저곳에서 세워졌습니다. 한 가지 문제는 곳곳에 세워진 교회를 맡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교사들이 부족하였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편으로 순회 교사제도가 생겨서 전도자들과 교사들이 곳곳을 순회하면서 전도도 하고 또 교회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나 바울, 바나바, 빌립 등도 모두 순회 전도자였고, 교사였으며 사도 요한 역시 동일한 일을 하는 사역자였습니다.
순회 교사들은 보수를 받지 않고 단지 머무는 곳에서 숙식을 제공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순회 전도자를 가장한 거짓 교사들과 전도자들이 출현하는 바람에 순수하게 순회 전도사들을 접대하며 섬기던 사람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었고 순회 전도자들을 접대하는 일을 꺼려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디오드레베라는 중직자는 순회 전도자들을 접대하는 일을 공식적으로 거부하고 만약에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성도는 교회에서 출교시킴으로써 순회 전도자들을 접대하지 못하게 했고 성도들도 핍박을 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이런때에 핍박과 함께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꾸준히 그 일을 감당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가이오입니다.
가이오는 흔들리지 않고 처음부터 섬기던 일을 꾸준히 계속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와같은 가이오의 이야기가 초대교회의 지도자였던 사도 요한에게까지 전해 졌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가이오의 삶을 칭찬한 것입니다.
3절에 보면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고 하더라” 가이오는 순회 전도자들을 접대하는 일을 성실하게 수행했습니다. 그 일은 진리 안에서 행한 귀한 일이었습니다.
전도자를 선대하는일을 거부한 디오드레베의 악행과 비교해서 가이오의 행위는 삶을 통해서 진리를 실천한 훌륭한 일임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가이오를 크게 축복 했습니다.
2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라고 축복 합니다. 현대어로 번역하면 “네 영혼이 잘되기를 바란다. 네 육신이 건강하기를 원한다. 너는 범사에 형통하기를 원한다” 입니다.
이 세가지는 행복한 인생이 되기위한 필수조건입니다. 더불어서 사도요한이 가이오에게 축복한 내용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축복하시는 축복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구나! 내 영혼이 잘되기를 원하시는구나! 내 육신이 강건하기를 원하시는구나!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형통하기를 원하시는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네 영혼이 잘됨 같이”라는 말씀에서 “잘된다”라는 헬라어 원문의 뜻은 “길에서 도와주다, 성공하다 번영하다”라는 뜻입니다.
오늘날에는 길에서 죽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교통사고로 죽고 묻지마 살인으로 인해서 칼에 찔려죽고 크레인이 무너져서 죽고 여행중에 죽고 죽는 사람들이 대부분 길에서 죽습니다. 그래서 길에서 하나님이 도와 주셔야만 인생길에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을수가 있습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라는 말은 이와같이 인생길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영육간에 성공과 번영이 임해야 하는데 “네 영혼이 잘됨 같이”의 “잘됨”과 “네가 범사에 잘되고”의 “잘되고”는 모두 다 현재 수동태형 입니다.
즉 내 스스로는 잘 될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잘 되게 해주어야 잘 되는 것입니다. 가이오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미 잘 된 사람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요즘은 건강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운동을 합니다. 등산, 조기 축구, 수영, 스키, 헬스클럽, 스포츠, 댄싱 등 운동에 열을 올립니다. 또한 몸에 좋다면 온갖 좋은 것을 찾아서 먹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밤낮없이 씨름하면서 시간과 정력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 영혼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누가복음 12장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부자입니다.
이 부자는 하는 일마다 잘되어서 재산이 점점 불어났습니다. 농사를 지으면 다른 사람보다도 몇배의 많은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나중에는 쌓아놓을 곳이 없을 정도로 곡식이 넘쳐 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창고를 더 크게 짓고 그 안에 많은 곡식을 쌓아 놓았습니다.
그는 엄청나게 쌓아놓은 곡물을 둘러보는 것 만으로도 배가 불렀습니다. 그래서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라고 고백하면서 부유한 삶을 즐겼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자기 영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고백은 “내 영혼아”라고 고백 했지만 정작 자기 영혼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먹고 마시고 즐기면 영혼도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날밤에 이 부자를 향해서 이렇게 선포 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눅12:20)
하나님은 재물을 쌓아놓고 신이나서 행복해 하는 그 사람의 영혼을 그 밤에 데려가셨습니다. 그래서 그 영혼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자기 욕심만을 위해서 살았기에 지옥불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영혼을 무시하고 육체만을 위해서 살면 이런 어리석은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천지를 창조하신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설교입니다. 누구나 새겨 들어야할 가르침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께서 십자가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 주십니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의 죽은 영혼이 살아나고 거듭나게 해 주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영혼이 지옥에 가거나 말거나, 영혼이 병들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육신적으로 잘되고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혼이 잘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할 때 비로소 참된 행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복된 주일 아침에 우리가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신 하나님과 더불어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영혼이 건강한 사람은 예배를 사모합니다. 기도하기를 좋아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말씀듣는 것을 기뻐합니다. 항상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눕니다.
영혼이 건강하면 하나님을 즐거워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영국에서 목사님들의 세미나가 있었는데 중국 목사님이 나와서 간증을 했습니다. 중국 목사님은 중국의 부요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부족함이 없이 자랐습니다. 공부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선교사님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는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중국 공산당 치하에서 목사가 된다는 것은 인생의 모든 행복을 다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는 목사가 되어서 지하교회 지도자로 일을 하다가 결국 체포되어 강제노동수용소에 끌려갔습니다. 그곳에서 18년간 복역을 한 후에 풀려났습니다.
강제노동 수용소로 끌려가면 10년 안에 다 죽습니다. 고된 노동과 열악한 환경 그리고 부족한 식량 때문에 일하다가 죽습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은 18년간 복역하고도 아주 건강했습니다. 목사님이 건강을 유지한 비결이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강제노동수용소에서 노동을 하는데 정말 지긋지긋하더랍니다. 특히 목사님은 공산당들에게 가장 미운 존재였기에 아주 힘든 일을 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목사님에게 화장실에서 인분을 퍼서 짊어지고 진 밖의 인분 웅덩이로 나르는 일을 시켰습니다. 수용소 화장실에서 나오는 인분을 퍼서 나르는 일을 했는데 인분 웅덩이는 인분이 썩어서 악취가 진동하기 때문에 경비들도 그곳은 냄새가 너무 고약하기 때문에 멀리서 일하는 모습을 지켜 보기만 했지 가까이 다가가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인분웅덩이가 최고의 장소더랍니다. 왜냐하면 방안에 있을 때나 밖에서 노동할 때는 찬송을 하고 싶어도 부를수가 없었습니다. 기도 역시 마음속으로만 되뇔 뿐 입으로는 한마디도 고백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분을 짊어지고 인분 웅덩이로 가면 거기는 아무도 없었기에 마음대로 찬송하고 마음대로 기도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그곳으로 갈때마다 신나게 찬송했고 그곳에서 큰 목소리로 기도를 드리고 평소에 외워두었던 하나님의 말씀을 큰소리로 고백했습니다.
그렇게 인분 웅덩이에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과 은혜를 나누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 되었고 그래서 18년동안 건강을 유지한 것입니다.
게다가 목사님이 18년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부른 찬송이 있었는데 마일스(C. A. Miles)가 지은 찬송가 442장 “저 장미꽃 위에 이슬”입니다. 이 찬송은 하나님과 함께 있는 자의 행복과 기쁨을 노래한 찬송입니다. 목사님은 이 찬송을 끊임없이 부르면서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행복해 했기에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셨다고 간증을 했습니다.
우리도 다같이 찬송가 442장을 불러보겠습니다.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 있는 그때에
귀에 은은히 소리 들리니 주 음성 분명하다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그 청아한 주의 음성 울던 새도 잠잠케 한다
내게 들리던 주의 음성이 늘 귀에 쟁쟁하다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없도다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을 알 사람이 없도다”
하나님과 교제하고 함께 있는 그 시간을 사모하고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사람, 그는 영혼이 건강한 자입니다.
고**씨는 우리나라 사람으로서는 최초로 1977년도에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산을 등반한 사람입니다.(1977년9월15일) 우리는 그가 8,848m의 에베레스트산을 정복해서 정상에 태극기를 꽂는 모습을 T.V뉴스로 보면서 감격스러워 했습니다. 그때 그의 배낭 속에는 작은 성경책이 들어 있었습니다. 기도하면서 등반한 그에게 하나님이 승리의 깃발을 최고봉에 꽃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독신이었던 그가 드디어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불신자와 결혼했습니다. 그것도 무당의 딸과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한 이듬해에 그는 알래스카의 맥킨리(6.194m)산을 등정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실족해서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때 그의 배낭에는 성경대신 부적이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죽어도 복이 됩니다. 천국에 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당과 우상을 의지하면 살아도 복을 못받고 죽으면 지옥입니다.
영혼이 잘되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세상에 다른 일도 잘되어야 하겠지만 그 무엇보다도 영혼이 잘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다른 것도 부차적으로 잘 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진짜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가이오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세상 것이 잘 된 후에 영혼이 잘되게 하겠다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예수 믿으라고 하면 “돈 좀 벌어놓고 믿겠다”라고 고백합니다. “급한 볼일 좀 보아놓고 믿겠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언제 내가 벌고 싶은 돈 다 벌 수 있습니까? 돈은 벌어도 벌어도 더 벌고 싶은 것입니다. 그 한 예를 카네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백만 장자 강철 왕 카네기가 노년기에 접어들었을 때, 어떤 기자가 인터뷰 요청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터뷰가 있게 되었는데 대화 중에 “당신은 그렇게 돈을 많이 벌었으니 이제는 만족하시겠네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카네기는 “아니요, 조금만 더 벌어야지요”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게 유명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영국에서 “당신은 돈을 얼마정도 가지면 만족하시겠습니까?”라는 설문 조사를 했더나 “백만 파운드짜리 복권 한 장만 당선되면 만족하겠습니다”라는 답이 대부분이었습니다. 10억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백만원짜리 복권이 당첨되면 며칠은 만족해 할지 몰라도 그 다음에는 틀림없이 “차라리 2백만 파운드짜리가 당선되었다면 더 좋았을 걸”하고 아쉬워 할 것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 다 해 놓고 예수 믿겠다는 사람은 절대로 예수 못 믿습니다. 기회가 오질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선 순위가 바뀌어야 합니다. 먼저 예수 믿고 그 다음에 세상 것을 믿음 안에서 누리는 삶이 복된 삶입니다.
가이오는 이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가이오는 남들이 어떻게 생활하든 개의치 않고 신실하게 받은 복음대로 생활해 나간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의 영혼이 점점 잘되어져 갔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위대한 사도인 요한이 가이오를 향해서 축복을 선포 했습니다.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했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면 가이오와 정 반대의 삶을 살았던 한 사람도 소개됩니다. 디오드레베라는 사람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 사람을 향해서 강한 책망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9절 10절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는 세속에 물들어서 교회에서도 으뜸 되기를 좋아했습니다.
바꾸어서 말씀을 드리면 교회를 자기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려는 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요한이 부탁했던 권고 즉 순회 전도사들을 잘 접대하라는 당부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무례하게 요한을 헐뜯었습니다. 망령되이 폄론했다는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폄론이라는 말은 우리가 잘 쓰지 않는 말인데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디오드레베가 사도요한에 대해서 좋은 말을 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는 전도자들을 접대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전도자들을 대접하는 성도들을 교회에서 쫓아내는 악한 짓까지 서슴치 않았습니다. 따라서 요한은 그에게 어떤 칭찬이나 축복을 하기는커녕 그를 책망하면서 자기가 디오드레베에게 가면 그의 모든 악행을 낱낱이 들추어 낼 것이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이런 악한 사람은 하나님앞에서 쫓겨나서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증거를 통해서 이렇게 선을 행하는 사람을 나쁘다고 정죄하고 주의 거룩한 종을 폄훼하고 선한 성도를 쫓아내고 교회를 자기 뜻대로 좌지우지하려는 악한 사람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과 보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겸손하여 언제나 자기를 낮추고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가이오는 성령의 말씀을 듣고 순종했기에 칭찬을 받았지만 디오드레베는 그런 말씀을 듣지 않았기에 책망과 징계를 받았습니다. 동일한 환경 속에서 동일한 기회가 주어졌건만 가이오는 영혼이 잘되는 길을 걸어서 축복을 받았고 디오드레베는 악을 행함으로 영혼을 망치고 책망 받는 자로 기록이 되었습니다.
사도요한은 가이오에게 디오드레베와 같은 자를 따르지 말라고 교훈했습니다. 그 내용이 11절에서 나옵니다.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 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 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느니라”
하나님을 뵈옵는 성도가 있는가 하면 하나님을 뵙지 못하는 성도도 있습니다.
아무쪼록 우리는 선을 행하여 하나님도 뵈옵고 그리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누리면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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