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윤이 이야기로 설교를 시작하겠습니다. 월요일날 지윤이 집에서 백일축하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지윤이가 얼마나 착하고 아름다운지 제가 예배를 드리면서 지윤이 때문에 심령이 정화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그동안 지윤이 집에가서 예배를 두 번 드렸는데 갈 때 마다 지윤이가 자든지 울든지 해서 지윤이와 함께 예배를 잘 못드렸습니다. 그러나 두번째 예배를 드리러 간 다음부터 지윤이가 착하고 순둥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예배를 드리는데 백일밖에 안된 지윤이가 저를 쳐다보고 예배를 드리는데 예배를 시작해서 끝날때까지 고개한번 안돌리고 눈길한번 딴곳으로 돌리지 않고 그 까만 눈동자로 시종일관 저를 바라보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마치 사랑에 푹 빠진 연인이 만나서 대화할 때 눈길을 다른곳으로 돌리지도 않고, 돌릴수도 없는 것처럼 그렇게 지윤이가 저를 바라보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예쁜지 저도 그런 지윤이를 바라보면서 설교를 했습니다.
제가 설교를 하는 동안에 눈동자도 한번 안돌리고 저를 뚫어져러 바라보는 지윤이는 마치 제 설교를 다 알아듣고 이해하는 초등학생처럼 열심히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지윤이를 바라보고 열심히 설교를 했습니다.
제가 지윤이를 바라보면서 신이나서 설교를 했는데 혼자 흥분해서 설교가 조금 길어지니까 지윤이의 눈이 살짝 감겼습니다. 그래서 얼른 설교를 마치고 예배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예배후에 제가 찬송을 불러 주었더니 지윤이가 스르르 잠이 들었습니다.
제 평생에 어린아기와 예배를 드리면서 그렇게 행복하게 예배를 드린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저는 지윤이가 저를 바라보면서 한번도 고개를 돌리거나 눈동자를 돌리지 아니하고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보고서 큰 깨닳음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예배 드릴 때 지윤이처럼 예배 드리는 사람을 더욱 귀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시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배를 시작해서 끝날때까지 다른곳으로 눈길한번 안돌리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열중해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도 불꽃같은 눈으로 바라보시면서 복을 주시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전서3장12절에 보면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라고 증거 합니다.
하나님의 눈은 의인들을 향하고 계십니다. 의인들을 지켜주시고 의인들을 사랑하시고 의인들을 구원하시려고 불꽃같은 눈으로 바라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의인들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인은 의롭고 착하고 고결한 인격자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받은 죄인을 의인이라고 말합니다.
소극적 측면에서는 “십자가 보혈로 죄를 용서 받은 사람”을 말하고, 적극적인 면에서는 “천국을 기업으로 받아서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된 하나님의 자녀를” 말합니다.
이런 의인들의 가장 큰 특징은 은혜로 시작해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합2:4,롬1:17). 믿음으로 살면 믿음대로 됩니다. 스트레스도 많이 줄어듭니다.
어떤 목사님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스트레스지수를 조사 했는데 국민들의 95%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산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엄청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산다고 대답한 사람이 46%였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서 산다고 대답한 사람이 49%였습니다.
그래서 평균적으로 스트레스를 팍팍 받으면서 사는 사람이 95% 였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사는 사람은 5%에 불과 했습니다. 스트레스의 원인은 대부분 인간관계가 스트레스의 원인이라고 대답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사람을 만나는 것이 반갑고 좋습니까? 아니면 괴롭습니까? 어떨때는 “이사람은 참 좋아! 변함없이 계속해서 만났으면 좋겠어!”라는 생각이 드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이사람은 너무 스트레스야! 이제 그만 만났으면 좋겠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생을 살다보면 사람에게서 위로와 용기를 얻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람 때문에 상처를 입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설교 준비를 하다가 네이버에서 “아빠가 너무 혐오스럽고 더럽고 증오스러워요”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자 아이가 아빠를 증오하면서 올린 글입니다. 제가 토씨 하나 안틀리게 그대로 퍼왔습니다.
“정말 생각하면 할수록 짜증나고 드럽고 저주스러워요 제가 이 사람을 닮았다는 자체가 너무 수치스러워요 저희엄마가 너무 불쌍합니다..
전 정말 하루빨리 커서 엄마의 짐을 덜어드리고 싶어요.. 근데 이 미친놈은 하는일이 비싼차나 끌고다니고 그것도 엄마명의로 차를 사서 지금 돈도 안갚고 엄마가 사지도 않은 차 할부를 저희엄마가 다 갚아야 합니다
몇달전에는 엄마를 아주 반 죽여놨더군요 옛날엔 한 3년동안 집에 안들어 오더니 갑자기 회사 부도나니깐 우리집으로 오더군요. 그런데 저희엄만 좋다고 “아빠 오니까 좋지?” 이러시는데 정말 눈물이 나는겁니다..
그러다가 바람도 한 세번은 더 피고 정말 인간말종 좆같은 쓰레기자식입니다. 그렇게 당하시는 엄마도 너무 답답하고 정말 제가 칼로 그새끼를 찔러 죽이고 싶은 맘 뿐입니다
다른사람들은 그래도 아빠니까 말로만 그런다 하는데 정말 이제는 아무런 기대도 희망도 없는 거지새낍니다 이제 아빠라는 생각조차 들질 않아요
저희엄마 이제 다 체념하고 아빠 카드값 전부다 엄마가 다 갚으실려고 합니다 저 너무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오릅니다 정말 공부가 손에 안잡히고 그 인간을 죽이고 싶은 맘뿐이고 그새끼 때문에 우리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서럽고 짜증이 납니다
제발 그새끼.. 자기 카드값갚고 저희엄마 제발 놓아드렸음 좋겠습니다..저희엄마 정말 한번만이라도 마음펴고 편하게 자는 모습 봤으면 좋겠습니다..너무 짜증나요..어떡해야되죠?? 이런마음 가지면 안되는데 너무 짜증나요..아빠를 너무 죽여버리고 싶어요..”
이런 글이 네이버에 올라왔는데 한 사람이 그 글을 읽고 아래에 이런 답글을 올렸습니다,
“제가 이런말씀 드려도 되는지 모르겠는데요..아버지라는 사람이..참 무능력해 보이네요..정말..인간 말종입니다..
지금 공부하시는 중이라고 말씀하셨는데..고등학생이시면..더 악착같이 공부해서 좋은 대학교 가서 보란듯이 합격하세요..아마 어머니께서도 복수하기 보다는 님이 잘되는걸 오히려 더 좋아하실거 같애요..
아빠를 죽이고 싶다고 하셨는데요..죽이고 싶다고 해서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면..님의 인생이나 어머니 인생이 한꺼번에 날아가는거 잊지마세요..이럴때일수록 님이 이성을 찾으셔야될거 같구요..
솔직히..저희 집도 조금 그런 분위기랍니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 아들 세명에게 각각 유산을 나눠 주셨는데 저희 아버지가 받을 유산과 작은 아버지가 받을 유산을 큰아버지가 다 가로챘습니다.
큰아버지는 그 돈을 자기혼자 독차지하고 60평짜리 아파트에서 떵떵거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어린 제가 보기에도 너무 열받는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밤 늦게까지 일하시고 툭하면 아프다고 약 좀 사오라고 하십니다. 그런 아버지가 한때는 너무 바보같고 진짜 속터졌습니다. 저런 사람 죽여버리지..고소해서 경찰서에 잡아 처넣지..왜 그냥 가만히 있냐고 아버지에게 따지기도 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때 큰 엄마라는 사람이 저희 어머니 뺨 후려 갈기면서 난리를 쳤어요 너무 충격이 커서 그랬는지 그때부터 아버지와 어머니도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때 그집에 안 갑니다.
너무나 화가나서 아빠에게 따졌더니 아빠가 하시는 말씀이..그냥 두래요..돈보다 중요한건 네가 좋은 대학가서 멋진 사람 되는게 아빠를 도와주고 아빠를 힘나게 하는 일이라고 하셨어요.
아마 님의 어머니도 우리 아빠같은 마음일거예요..아니면 어머니께 말해서 이혼하라고 설득을 시켜보세요..정 때리거나 하시면 폭력죄로 가둬둘수 있어요..그 전에..님이 먼저 멋진 사람이 되고 난 후에 그런일을 해도 그때도 늦지 않을거예요..힘내세요..^^
제가 두사람의 글을 읽어보니까 두사람 다 큰 상처를 않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상처를 입고 마음이 상했다고 해서 사람을 안만날 수는 없습니다. 분하고 억울하지만 날마다 부딪치면서 살아야 하는 가족도 있고 이웃도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고도 신기한 것은 사람뿐만이 아니라 하나님도 사람 때문에 많이 힘드시고 가슴이 아프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사람 때문에 상처를 받으신 하나님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많이 상하게 한 대상이 바로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을 만들고도 사람 때문에 실망하시고, 사람 때문에 탄식하시고 사람 때문에 심히 근심하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성경 구절이 창세기6장 5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의 근심하시고”(창세기6:5-6)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있는 것을 보시면서 보시기에 좋으셨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은 그때부터 하나님의 근심이 시작됩니다.
인간이 마귀에게 미혹 되어서 스스로 잘났다고 하면서 독립선언을 한 것이 선악과 사건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자기를 창조해 주신 하나님을 망각한 무지의 사건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이 인간에게 죄와 죽음과 파멸을 가져다줍니다.
이때부터 하나님은 사람 때문에 엄청난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그게 시작입니다. 하나님은 시대 시대마다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특히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더욱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무나 슬프고 외롭고 괴로우셨습니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일은 하나님이 심히 마음이 아파서 슬퍼하실 때 상처받은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 드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 잘났다고 큰소리치고 우후죽순처럼 나타나서 교만하게 행동할 때 “하나님! 내가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하고 겸손하게 낮아져서 회개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크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아울러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하나님! 하나님만이 나의 구주이시며 나의 생명이시며 나의 모든 것 되십니다! 하나님만 영광을 받으세요!”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존경하고 하나님만 높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한 사람들은 먼저 하나같이 회개를 잘 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잘한 바리새인보다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면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하면서 애통하는 마음으로 회개한 세리를 칭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세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회개하는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크게 위로를 받으시고 기뻐하신 일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산 사람들로 인하여 기뻐하셨습니다.
저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아리우나 라는 사람을 배우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셨던 다윗이 평생에 두 번 하나님앞에서 큰 죄를 범합니다. 하나는 밧세바와 간음한 일이었고 또 하나는 전쟁에서 승승 장구하여 브엘세바부터 단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이스라엘 최고의 강성대국을 이루었을 때 다윗은 자기 나라의 국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고 싶어서 군대장관 요압에게 인구조사를 시켰습니다.
그런데 그 사건이 하나님을 크게 진노하게 만드는 사건이 됩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칠 때 오직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그후로도 다윗은 20년간 전쟁터에서 살면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대적이 없는 부강한 나라가 되자 다윗은 내가 다스리는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를 조사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던 다윗이 사람을 의지하고 자기를 과시하려는 의도가 포함 되었기에 하나님이 진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군대장관 욥을 통해서 다윗에게 그런일을 하는 것은 합당치 않은 일이라고 충고를 합니다. 그 내용이 사무엘하 24장 3절 이하에 나옵니다.
“요압이 왕께 아뢰되 이 백성이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 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 하되”
군대장관 요압은 인구조사는 하나님이 노하시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요압은 다윗에게 “하나님이 당신에게 복을 주시기로 작정하시면 지금의 인구보다 백배라도 더하여 주실 것인데 왜 인구조사를 하십니까”라고 충고를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다음절인 4절에 보면 “왕의 명령이 요압과 군대 사령관들을 재촉한지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충신의 충고와 조언을 듣지않고 다그쳐 인구조사를 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런일을 한 것은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한”(대상21:1) 것이라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아
무리 성령충만한 사람이라도 사탄마귀가 충동하니까 일순간에 교만해져서 자기를 높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이런일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진노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갓을 다윗에게 보내서 다윗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죄의 댓가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을 예고합니다.
하나님은 세가지 재앙중에 한가지를 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갓이 다윗에게 나아가 그에게 말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마음대로 택하라 혹 삼년 기근이든지 혹 네가 석 달을 적군에게 패하여 적군의 칼에 쫓길 일이든지 혹 여호와의 칼 곧 전염병이 사흘 동안 이 땅에 유행하며 여호와의 천사가 이스라엘 온 지경을 멸할 일이든지라고 하셨나니 내가 무슨 말로 나를 보내신 이에게 대답할지를 결정하소서 하니”(대상21:11-12)
첫 번째 재앙은 삼년동안 이스라엘땡에 비가 내리지 않아서 기근이 임하는 재앙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 재앙은 석달동안 적군에게 패하여 쫓겨다니는 재앙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 번째 재앙은 삼일동안 나라 전체에 전염병이 임하는 재앙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다윗은 삼년기근, 석달동안 전쟁에서 패배, 삼일 전염병등 이 세가지 재앙중에서 한가지를 택해야만 합니다.
그제서야 다윗이 크게 당황하면서 “내가 곤경에 빠졌도다” 라고 탄식하면서 괴로워 하다가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손에 빠지리라 하고 삼일 전염병의 재앙을 선택 합니다. 그래서 드디어 무서운 전염병의 재앙이 이슬라엘 전역에 임합니다.
“이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염병을 내리시매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죽은 자가 칠만 명이었더라”(대상21:14) 하루 아침에 전염병으로 7만명이 죽어 나갔습니다.
2015년도에 우리나라에 중동 호흡기 중후군 이라는 질병인 메르스 전염병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나라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그때 국무총리가 국회에 불려나가서 청문회하듯이 국회의원들에게 혼쭐이 나고 대통령도 질타를 당하고 온 나라가 벌집 쑤셔놓은 것처럼 뒤집어 졌습니다. 메르스 전염병이 들어와서 6개월동안 나라가 시끄러웠는데 그때 죽은 사람이 23명입니다.
매년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평균 4500명입니다. 그런데 교통사고로 4500명씩 죽는데 그런일에는 그 누구도 눈하나 깜짝 안합니다. 그런데 전염병으로 스물세명죽었는데 그일로 인해서 나라가 뒤집혀서 국정이 마비가 될 정도 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시대에 다윗의 잘못으로 전염병이 임해서 7만명이 죽었습니다. 엄청난 재앙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화가 나셨으면 그런 재앙을 내리셨겠습니까?
하나님이 왜 그렇게 화가 나셨습니까? 그 이유는 믿었던 도끼에 발등찍혔기 때문입니다. “너 만은 끝까지 나를 기쁘게 할거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 만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라고 믿었는데 웬걸 이놈도 나를 배반하고 나를 실망시키네 하고 속았다고 생각하니까 화가 백배로 커져서 무서운 재앙을 내리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신기한 일이 벌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화가 나셨는지 예루살렘을 다 멸망시키기로 작정했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역대상21장15절에 보면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멸하러 천사를 보냈다”라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당시의 수도인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을 다 진멸하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우리나라 수도인 서울을 하나님이 진멸하셔서 서울시 인구 전체가 몽땅 죽는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엄청난 재앙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당시의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을 진멸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다 멸하려고 작정하고 전염병을 보내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데 갑자기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십니다.
하나님께서 천사에게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대상21:15)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래서 천사가 딱 멈춰 섰는데 천사가 멈춰 선 그 자리가 아주 중요한 자리입니다.하필 그 자리가 바로 아리우나 라는 사람의 집 앞입니다. 거기서 하나님께서 재앙을 멈추라고 지시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만큼은 지켜주고 싶었습니다. 그 사람만큼은 살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사람의 집 앞에서 재앙을 딱 멈추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하필이면 아리우나의 집 앞에서 재앙이 멈추게 하셨습니까? 그 이유가 그 다음에 나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해서 백성들이 전염병으로 죽어 나가자 다윗이 굵은베옷을 입고 장로들과 더불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서 회개를 합니다(대상21:16)
다윗은 비로소 “내가 범죄하였사오니 이 양떼들 즉 백성들을 치지 마시고 나와 내 집에 재앙을 내려 주시옵소서”라고 고백하면서 철저하게 회개를 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회개를 받으시고 선지자 갓에게 지시를 내립니다. “지금 다윗에게 가서 아리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
그래서 선지자 갓은 다윗에게 그대로 전합니다. 다윗은 그 즉시로 아리우나의 집으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아리우나에게 “내가 너에게 땅값을 줄것이니 이 타작마당을 나에게 넘기라 내가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이곳에서 제단을 쌓을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이때 아리우나가 놀라운 대답을 합니다. “내주 왕이 좋게 여기시는 대로 행하소서 내가 이것들을 왕께 드리겠습니다. 소들은 번재 제물로 쓰시고 곡식떠는 기구들은 화목제물의 화목으로 삼으소서 내가 이것들을 다 드리겠습니다”(대상21:23)
여기에 아리우나가 복을 받은 놀라운 축복의 비밀이 있습니다. 아리우나는 나라에 임한 전염병을 그치게 하기 위해서 다윗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겠다고 할 때 자기의 전 재산인 소 두 마리와 농사짓는 기구들을 몽땅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이유가 없었습니다. 아리우나가 이 순간에만 그렇게 했겠습니까? 아리우나는 평소에도 하나님을 지극정성으로 섬기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실 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아낌없이 드릴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이와같은 아리우나의 신실한 믿음과 더불어 평소에도 온맘다해 하나님을 섬기던 아리우나를 바라보시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전염병의 재앙을 내리던 천사를 향해서 “이제 그만! 거기서 재앙을 멈춰라! 아리우나의 집안에는 전염병이 임하지 않게 하라! 그는 나를 사랑하는 성도요 나를 지극정성으로 섬기는 자이니 그와 그의 가족들을 죽이지 마라!”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다윗이 아리우나의 타작마당을 사서 거기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하자 아리우나는 자기의 소 두 마리와 농사짓는 쟁기와 기구들도 드려서 하나님께 예배하는데 아낌없이 사용하라고 바친 것입니다. 아리우나가 이런 헌신적인 신앙을 가졌기에 하나님은 거기서 재앙을 금하시고 그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어떻게 됩니까? 다윗은 아리우나의 헌신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 감동되어 아리우나에게 큰 상을 내립니다. 땅값도 풍성하게 쳐서 그에게 줍니다. 그래서 아리우나는 복을 받게 됩니다.
저는 종종 아리우나를 생각하면서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가슴아프게 하고 또 주의 종을 가슴아프게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러나 한편 아리우나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귀한 성도들도 많기에 하나님이 아직도 심판을 유보 하시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교회에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저버리고 하나님을 가슴아프게 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이 기뻐서 어쩔줄 모르는 성도들도 있었습니다.
오늘 새벽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지금도 류금련권사님이 동네 정자에 놀러 나가면 동네 사람들이 들으라는 듯이 권사님에게 류복례권사님을 비방하고 욕을 한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미쳤지! 평생 농사 지어서 모은 돈 천만원을 교회에 바치다니! 그런 정신나간 노인네가 어딧어?”하면서 류복례권사님의 욕을 한다는 것입니다.
류금련권사님은 저에게 “아니 자기들이 헌금 드린것도 아닌데 왜 헌금드린 류복례권사님을 그렇게 욕하고 시기질투 하는지 모르겠네!”하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류복례권사님을 비방하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입니다. 류복례권사님과 그 가족들의 삶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류복례권사님에게 100배의 축복을 주신것을 알게 됩니다.
류복례권사님께서 천만원의 건축헌금을 드린후에 하나님께서 권사님의 손주인 고경두청년이 삼성그룹에 입사했습니다. 그리고 착하고 믿음좋은 영어선생님을 만나서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은 돈으로 되지 않습니다. 착하고 신실한 믿음을 가진 여인을 만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천만금보다 귀하고 중요한 일이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일입니다.
류복례권사님의 아드님이신 고자현집사님은 직장에서 평생동안 일을 잘 하시고 정년퇴직을 했는데 퇴직하던 해에 다시 좋은 직장에 취직이 되어서 지금까지 복되게 살아가고 계십니다.
둘째 아드님은 서울에서 전기사업을 하고 있는데 권사님께서 건축헌금을 드린후에 서울에서 전기공사에 입찰을 했는데 20명의 직원들이 3년동안 일을 해야하는 큰 관급공사에 입찰이 되어서 고맙다고 산삼을 사가지고 교회를 방문해서 건축헌금도 드려 주시고 산삼도 선물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뿌린대로 거두게 해 주시는 분입니다. 게다가 다시 생각해 봐도 감사하고 은혜스러운 일은 윤기원집사님과 김예슬집사님의 헌신입니다.
제가 우리교회 카페에도 인사말에 글을 올렸지만 두분은 가장 가난한 때에 셋째 아들을 낳고나서 나라에서 준 축하금과 직장에서 휴가급으로 받은 돈과, 그리고 부모님이 주신 축하금과 자비까지 몽땅 털어서 천만원을 하나님께 건축헌금으로 드렸습니다.
그러나 헌금을 드린 그 일로 인해서 아직 믿음이 없는 부모님은 그 일을 이해를 못하셔서 두 부부는 아이들을 데리고 쫓겨나서 남해읍으로 이사를 가서 월세방에서 고생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은 얼마 못 되어서 윤기원집사님과 김예슬집사님 부부에게 김예슬집사님의 외할머니가 사시던 3층집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범사에 복을 주셔서 세 아이들도 잘 자라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매 김예슬집사님의 친정 어머니를 보내 주셔서 세 아이들을 돌보게 해 주심으로서 두 부부가 열심히 꿈을 품고 살아가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이 모든일들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뿌린대로 복을 주시고 사랑한대로 사랑하시고 섬긴대로 도와주신 징표입니다.
월요일날 강둘자집사님의 병원심방을 다녀 오면서 윤인준집사님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시 간증하지만 윤인준집사님은 우리 남해세광교회의 건축을 위해서 7년동안 아낌없는 사랑과 섬김으로 건축에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설계도를 다섯 번이나 무료로 제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건축이 끝난후에 윤인준집사님이 포도원교회의 김문훈목사님을 모시고 입당예배를 드리는일에 일조를 해 주셨습니다.
윤인준집사님의 노력으로 포도원교회에서는 천만원의 건축헌금을 저희 교회에 후원해 주셨고 윤인준집사님도 천만원의 건축헌금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후에 하나님께서 윤인준집사님에게 엄청난 재물의 복을 쏟아부어 주셨습니다.
윤인준집사님이 섬기는 포도원교회에서 성전을 건축할 때 포도원교회에서는 혹시라도 갈등이 생길 것에 대비해서 포도원교회에 다니는 성도중에서 건축사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설계를 맡기지 않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역사 하셔서 결국 모든 장로님들과 목사님이 동의하셔서 400억 프로젝트인 포도원교회의 건축설계를 윤인준집사님이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큰 구찌의 설계들이 입찰이 되어서 넘치는 재물의 복을 받으셨습니다.
윤인준집사님은 왕지에 어머니를 위해서 집을 건축 했는데 건축사 답게 남해에서 가장 특이하고 아름다운 집을 건축 하셨습니다.
건축이 끝난후에 어느날 제가 윤인준집사님을 만날 기회가 있어서 집사님에게 물었습니다. “집사님! 저렇게 아름답고 엄청난 집을 지어서 어머니에게 드렸는데 혹시 빚을 지지는 않았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집사님께서 “목사님! 빚을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주셔서 어려움이 없이 집을 지었습니다!”하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윤인준집사님은 교회 가까운 곳에서 하나님을 섬기려고 교회 근처의 아파트를 사서 이사를 가셨습니다.
그리고 집사님을 통해서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김문훈목사님께서 종종 “집사님! 어느지역에서 가난한 시골교회가 건축을 하는데 집사님이 한번 들여다 보세요”하고 말씀을 하시면 집사님이 찾아가서 돌아본 후에 가난한 교회의 설계도를 무료로 도와 주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윤인준집사님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헌신 하니까 하나님께서도 윤인준집사님에게 하늘문을 여시고 재물의 복을 쏟아부어 주신 것입니다.
저는 윤인준집사님이 벤츠차를 타고 오실때마다 “집사님은 복을 받아 마땅한 분입니다! 더 많은 축복을 받으세요!”하고 속으로 축복기도를 하곤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사람들에게 물붓듯 영육간의 축복을 쏟아부어 주시는 분입니다.
지난달에 어머니권사님의 화장과 더불어 어머니권사님의 유해를 모시러 서울에 갔을 때 형님집사님과 함께 만나서 예배를 드리고 유해를 모셨습니다. 그런데 형님께서 지금 진행되는 사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시면서 지금 진행되는 일들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십일조도 점점 늘어나고 계셨습니다.
형님집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지금 진행되고 있는 사업이 잘 되기만 하면 내년에 딸 윤지를 시집보낼수도 있겠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머니권사님이 이 이야기를 들으시면 얼마나 기뻐 하실까?”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마도 어머니권사님이 들으시면 이런 생각을 하실수도 있겠구나!”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은 평소에 어머니권사님께서 형님이나 저에게 입이 마르고 닳도록 "먼저 하나님을 생각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권면이었습니다.
어머니권사님은 돈을 벌면 먼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고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먼저 해야 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머니권사님은 나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를 가슴깊이 뼈저리게 느끼고 사셨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시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라 그렇게 하면 모든일이 잘 풀리고 하나님이 복을 주실거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도 어머니권사님의 말씀에 늘 동의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그 어떤것도 아낌없이 드리고 또 생명까지도 기꺼이 드리기로 작정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훌륭한 다윗에게 진노하셨습니까? 따지고 보면 아리우나는 두 마리의 소를 드려서 하나님께 큰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소 두 마리분량의 헌금을 드린 권사님들과 집사님들이 대다수 입니다. 소 한 마리에 500만원이라면 류복례권사님과 김막순권사님, 류금련권사님, 김명심권사님도 소 두 마리이상을 드렸습니다. 그 외에도 고재준집사님과 조내원집사님과 윤기원집사님과 김예슬집사님도 소 두 마리 이상을 드렸습니다. 대부분의 권사님과 집사님들이 소 두마리에 가까운 예물을 드렸습니다.
솔로몬은 소 천마리를 드려서 천번제를 드렸습니다. 다윗은 소값으로 따지면 5만마리 이상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런 엄청난 헌신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다윗이 왜 갑자기 엄청난 재앙을 당하게 됩니까? 그 이유는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람이 잘못하면 그만큼 하나님께서도 실망이 크기 때문에 그런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을 실망시켜 드리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시고 그리고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천국을 예비하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 영광의 나라를 선물로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온맘다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서 인간의 자격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사람은 아침과 저녁이 다릅니다
아침에는 그렇게 괜찮은 사람이 저녁에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할때가 있습니다. 왜 그렇게 변덕이 죽끓듯 합니까? 그것은 사람의 마음속에 성령이 들어있는게 아니라 악령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에 따라서 인간의 모습은 변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요사스러운지를 예레미야 17장에서 잘 증거하고 있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예레미야17:9) 만물보다, 세상의 그 어떤 피조물보다 거짓되고 부패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뻐하는 날은 사탄과 마귀들에게는 슬픈 초상 날입니다. 우리가 아파하고 힘들어하고 절망하는 날은 마귀 사탄에게는 신나는 잔치 날입니다. 그만큼 마귀 사탄은 우리 성도들이 기뻐하는 것을 정말 싫어하고 더욱이 성도들이 절망적인 고통과 슬픔에서 벗어나 기쁨과 소망으로 나아가게 되면 엄청난 좌절을 겪게 된다는 겁니다.
사도 바울은 사탄마귀가 주는 절망과 고통과 슬픔을 벗어날수 있는 비결을 오늘 본문에서 가르쳐 줍니다. 그것은 바로 기쁨과 감사입니다.
빌립보서는 “기쁨의 서신! 감사의 서신!”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4장 밖에 안 되는 짧은 편지에 “기뻐하라”라는 말을 16번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는 옥중서신입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쓴 서신입니다. 차가운 감방에 갇혀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빌립보서를 썼습니다.
오늘 본문 4절에 보면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라고 증거 합니다. 바울사도가 어려운 처지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도 기뻐하라고 말할 수 있었던 놀라운 비결이 4절에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주 안에서”입니다. 바울사도는 비록 차디찬 감옥 안에 있었지만 그의 영혼은 차가운 감옥이 아닌 “주 안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어디에 있든지, 내 처지가 어떠하든지 내가 주 안에만 있다면 나는 기쁨을 누리면서 살수가 있다 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뭘 소유해서 기쁜 게 아니라, 뭐가 잘 돼서, 조건이 좋아져서 기쁜 게 아니라 주님 안에 거함으로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6절과 7절에서 이렇게 담대하게 선포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고 바울사도는 증거 합니다.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주님이 문제를 다 해결해 주시는데 하나님의 평강으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고 증거 합니다. 다시 말해서 내 마음이 바뀌고 내 생각이 바뀌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마치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난 후에 그는 여전히 세리장이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현실은 조금도 안 변했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에 내 마음이 바뀌고 내 생각이 바뀌어서 기쁨이 넘치게 된 것처럼 그렇게 된다는 말입니다.
미국 시골의 한 통나무집에 병약한 남자가 살았습니다. 그 집 앞에 어느날 산에서 큰 바위가 굴러왔는데 그 바위 때문에 출입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바위를 치워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셔서 “사랑하는 아들아! 집 앞의 바위를 매일 밀어라!” 그때부터 그는 희망을 가지고 매일 시마다 때마다 바위를 밀었습니다.
8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바위의 위치를 측량해 보았는데 바위가 단 한 치도 옮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8개월의 수고가 원통해서 원망 불평을 하다가 슬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왜 그렇게 슬퍼하는거냐?”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난 8개월 동안 희망을 품고 시마다 때마다 열심히 바위를 밀었는데 바위가 전혀 옮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슬퍼서 낙심한 마음으로 앉아 있는 것입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나는 너에게 바위를 옮기라고 말한 적이 없단다. 그냥 바위를 밀라고 했을 뿐이다. 이제 집안에 들어가서 거울에 비친 네 자신을 자세히 들여다 보거라”
그는 거울 앞으로 갔습니다. 그리고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모습을 보다가 깜짝 놀랍니다.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은 병약한 남자가 아니라, 멋진 근육질의 남자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는 비로소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바위의 위치가 변하기를 바라신 게 아니라 내 자신이 변하기를 바라셨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입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고 방해하는 바위는 무엇입니까? 그 바위가 빨리 내 인생에서 옮겨지거나 없어지는 것을 바라고 있습니까?
그러나 진정한 기쁨은 그 바위가 없어지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그 바위 앞에 선 내 마음과 내 생각이 바뀌는 데서 오는 것임을 깨닳아야 합니다.
한 화가가 해 지는 넓은 들녘에서 가난한 농부 부부가 마주보고 고개를 숙여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부부의 피곤하고 슬픈 발밑에는 조그마한 아기의 관이 놓여 있습니다.
그림의 내용인 즉슨 불쌍한 젊은 농부 부부가 아기가 죽어서 관을 묻기 전에 기도하는 비통한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그 그림은 밀레가 그린 그림입니다. 그는 그림을 그려서 선배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때 선배가 충고를 했습니다. “이보게 자네가 그 아름다운 전원과 황혼에서 가난한 농부의 애틋한 사연을 그린 것은 좋은데 관이 맘에 걸리네 차라리 관 대신 바구니를 그려 넣으면 어떻겠나?”
밀레는 선배의 충고를 받아드려서 아기의 관을 바구니로 고쳐서 그렸습니다. 그랬더니 그림의 의미가 엄청나게 바뀌었습니다. 바구니 하나 고쳐 그렸더니 비통한 장례식이 황혼의 감사로 승화되면서 불멸의 명화가 되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범사에 감사하면 하나님은 더 많은 감사의 제목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감사가 담긴 기도, 고맙다는 말씨 하나, 감사한 마음이 담긴 찬양 만으로도 인생이 달라집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행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아무리 많은 재산을 소유한 부자라도 감사가 없는 인생은 불행합니다. 아무리 큰 성공을 이룬 인물이라도 감사가 빠지면 초라합니다. 아무리 좋은 자리에 있어도 감사를 모르면 인생이 허무해 집니다.
감사는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사람은 행복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할 때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행복지수가 높습니다.
어떤 분은 기도하고 싶은데 기도가 잘 안 된다고 말합니다. 기도해도 내 기도가 하나님께 올라가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합니다. 또 실제로 기도하지만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이 오지 않는 것 같다고 합니다.
이런 때에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먼저 감사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감사의 제목들을 하나하나 떠올려서 기도하면 기도의 문이 열립니다. 우리의 기도가 막히는 것은 감사함으로 아뢰지 않기 때문입니다.
목사님들이 자주 인용하는 예화가 있습니다. 저도 전에 두번이나 소개 했습니다. 오늘 다시 소개 합니다.
참으로 불행한 과거를 가진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지독하게 가난한 엄마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엄마가 키울수가 없어서 할머니의 품에서 자라났습니다.
14살에 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해서 애기를 낳고 미혼모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낳은 아기는 태어난지 두주만에 죽었습니다. 그 충격으로 인해서 그녀는 가출했고 타락해서 마약을 복용하면서 지옥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18살에는 몸무게가 107키로나 나가는 불행하기 짝이 없는 흑인 미혼모로 지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녀가 친아버지를 만나게 됩니다. 아버지는 그녀를 돌보지 못한 것을 사과하면서 그녀에게 용서를 빌고 그녀에게 교회에 가자고 제안 했습니다. 그동안에 아버지가 예수믿고 회개해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아버지를 따라서 교회에 나가기 시작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은후에 그녀는 드디어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열 아홉 살 때 TV 방송국에 취직이 되었고 흑인 여성 최초로 뉴스 앵커로 발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담당자는 그녀의 뉴스가 너무 감정에 치우친다고 뉴스 앵커에서 아침방송 프로로 좌천시켜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비록 아침방송으로 좌천되었지만 여기도 하나님이 주신 자리라고 믿고 감사하면서 열심히 방송을 했더니 기대 이상의 대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그래서 그녀는 토크쇼의 여왕으로 등극합니다.
그녀는 지금 전세계 132개국에서 1억 4천만명의 시청자를 웃기고 울리는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바로 오프라 윈프리 쇼를 진행하는 오프라 윈프리입니다.
그녀는 에이미상을 30회나 수상했고 TV 아카데미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녀는 10억 달러가 넘는 대 재벌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성공자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는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날마다 감사일기를 쓰는 것입니다. 하루 일과를 돌아보면서 매일 다섯 가지의 감사제목을 찾아서 평생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어느날 적은 다섯가지 감사의 내용을 소개합니다. 아주 평범한 것들입니다.
1. 오늘도 거뜬하게 잠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2. 유난히 눈부시고 파란 하늘을 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3. 점심 때 맛있는 스파게티를 먹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4. 얄미운 짓을 한 동료에게 화내지 않고 참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 다.
5. 좋은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을 쓴 작가로 인해 감사합니다.
아무쪼록 우리도 범사에 감사 하고 또 기뻐하면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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