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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7년9월6일 수요저녁 누가복음18장1-8절 밤낮 부르짖는자의 축복

그리운시냇가 2017. 9. 8. 19:31


설교 준비를 하다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우유가 참 신기한 이름들로 지어졌구나! 하고 생각 했습니다.


아들을 낳은 한 엄마가 자기 아들에게 어떤 우유를 먹일까 고민하다가 자기 아들이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고 천재 물리학자의 이름을 따서 지은 아인슈타인 우유를 사다가 먹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는 것을 보니까 아무래도 세계적인 인물이 되기는 좀 어려울 것 같아서 우유를 서울우유로 바꾸었습니다. 적어도 서울대학교는 들어가야 그래도 괜찮은 인물이 될 것 같아서 서울우유로 바꾼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간 후에 성적 나오는걸 보니까 아무래도 서울대는 힘들 것 같아서 연세우유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적어도 연세대학교 정도는 들어가야 그래도 인생이 안정될 것 같아서 연세우유로 바꾼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는 것을 보니까 아무래도 현실에 맞는 대학을 보내야 겠다는 생각에 건국우유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건국대학은 그래도 서울에 있는 대학이니까 거기는 가야 장가가는데 지장이 없을 것 같아서 건국우유로 바꾼 것입니다.


그런데 고2이 되자 상황이 점점 심각합니다. 그래서 어쨌든 대학은 들어가야 될 것 같아서 삼육두유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삼육대학이라도 나와야 그래도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을 것 같아서 삼육두유로 바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엄마가 아들이 고3이 되니까 마지막으로 어쩔수 없이 저 지방 우유로 바꿨다고 합니다. 지방대학이라도 나와야 인생살이에 문제가 없을 것 같아서 저 지방우유로 바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사실을 알게 된 옆집 엄마가 하는 말이 아유! 저지방 우유면 어때요 지방대학이라도 나오면 괜챦죠! 난 우리애한테 매일우유먹여요 우리애는 툭하면 학교를 빼먹고 땡땡이를 치거든요!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가 매일 학교라도 빠지지 말고 가라고 매일우유 먹여요!”하더랍니다.


누가 만든 이야기인지 몰라도 참 재미있는 발상입니다. 살다보면 낙심되고 실망스러운 일들이 생깁니다. 그래서 용기를 잃게 됩니다. 사는게 무기력해 지기도 하고 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싶어서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8월 마지막주에 류복례권사님이 예배에 동참해 주셨습니다. 류복례권사님은 1년전에 큰 아드님이 부산으로 모시고 가서 집 근처에 있는 제일나라 요양병원에 입소하셨습니다. 권사님은 훌륭한 아드님들을 두셔서 노년에 요양병원에서 평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양병원에 심방을 가서 권사님을 만나보면 류복례권사님은 오매불망 남해를 그리워 하셨습니다. 권사님의 마음은 항상 고향집과 남해세광교회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정들었던 고향집에서 마늘도 심고 시금치도 심으면서 지내던 농사일을 잊지 못하셨습니다. 그리고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섬기던 교회를 그리워 하셨습니다.


권사님께서 부산으로 갈 때 집 앞 텃밭에 마늘을 심어놓고 가셨는데 봄에 마늘을 거둘때가 되자 권사님은 저에게 마늘 거두러 남해에 가야 하는데 어쩔꼬하면서 걱정을 하셨습니다.


부산에 심방을 갈때마다 권사님은 목사님! 우리집에 가고 싶습니다! 남해세광교회에도 가고 싶습니다!” 하시면서 교회와 고향집을 잊지 못하셨습니다.


그런데 지난주에 류복례권사님께서 일년만에 큰아드님과 함께 고향집을 방문해서 일박 이일을 지내셨습니다. 그러데 토요일날 아드님이 권사님을 모시고 집에 왔더니 권사님이 집에 오시자마자 큰아드님에게 난 이제 부산 안간다! 난 여기서 죽을란다! 죽어도 집에서 죽을테니까 날 두고가라!”라고 말씀을 하시더랍니다.


류복례권사님께서 얼마나 단호하게 말씀을 하시는지 큰아드님께서 밤새도록 고민을 하셨다고 합니다.


주일날 예배를 드린후에 큰아드님이 저를 만나서 목사님! 어머니가 부산에 안가신다고 하십니다! 죽어도 여기서 죽을테니까 나를 그냥 이곳에 두고 가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하시면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고자현집사님에게 알겠습니다! 식사후에 제가 어머니권사님을 설득해 보겠습니다!” 하고는 식사를 마치고 류복례권사님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류복례권사님에게 권사님! 요양원이 답답하고 힘드시겠지만, 그러나 집보다는 요양원이 낫습니다. 이젠 권사님혼자서 장을 보러 가기도 어렵고 또 밥도 해먹기가 어렵습니다! 권사님 혼자서 지내다가 아프거나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합니까?


권사님이 몸도 불편하신데 집에 혼자 계시면 세 아드님들이 얼마나 어머니걱정을 하겠습니까? 그래도 요양병원에 계시면 요양원에서 밥도 해주고, 건강도 체크 해 주고, 큰 아드님도 가까운데 계셔서 이틀에 한번씩 와서 권사님을 문안하고 위로하면서 지내고 계시지 않습니까?


권사님! 저도 좀 더 자주 권사님을 찾아가서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해 드릴테니까 좀 답답해도 요양병원으로 가세요! 그래야 모두가 평안하고 행복합니다!” 했더니 권사님이 제 이야기를 다 듣고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아드님과 함께 부산으로 가셨습니다.


제가 자주 찾아 뵙겠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에 월요일날 권사님을 찾아가서 심방을 했더니 권사님이 무척 반가와 하셨습니다. 그런데 권사님이 목사님! 저는 이곳에서 짐승만도 못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의 뜻은 그 요양병원이 사람을 짐승처럼 취급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제가 그동안 다녀본중에 류복례권사님께서 입소해 계신 그 요양병원이, 박희례권사님이 입소해 계셨던 부산요양병원 다음으로 입소한 분들을 잘 섬기고 계셨습니다.


류복례권사님께서 내가 짐승보다 못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신 의미는 사람이 일을 하지 않고 하루세끼 주는 밥만 먹고 지내니까 그런 생활이 짐승만도 못한 생활로 여겨집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제 집사람이 권사님에게 권사님! 우리안에 예수님이 계신데 그런 말씀을 하시면 예수님이 섭섭해 하세요! 그러니 그런생각 하지 마시고 예수 믿고 구원받은 은혜를 감사하면서 소망을 품고 지내세요!”하고 권면을 드렸습니다.


김순애집사님도 주일날 아침에 남해읍에 있는 남해요양병원으로 모시러 가면 차를 타자마자 울면서 목사님! 난 이제 이곳에서 못살겠어요! 난 이제 집에서 죽을랍니다! 요양원에 다시 안들어 갈랍니다!”하면서 우십니다.


그도 그럴것이 집에서는 밥만 먹으면 집 앞에 있는 정자에 나가서 시원한 바람도 쐬고, 또 오가는 사람들과 대화도 나누고 시마다 때마다 동네분들이 간식과 과일과 음식을 가져와서 서로 나누면서 재밋게 지냈는데, 요양병원에 들어간 다음 부터는 한평 침대가 내 삶의 생활공간입니다.


게다가 같은 방에서 생활하는 할머니들이 공교롭게도 식사 시간이 되면 똥을 싸서 방안에 똥 냄새가 진동을 해서 점심시간에 밥을 먹을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삼시세끼 외에는 간식도 없고 밥과 찬도 양이 적어서 더 달라고 해서 먹는데 매번 더 달라고 하기도 그래서 요즘은 그냥 주는대로 먹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답답해서 견딜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를 보기만 하면 목사님! 내가 죽어도 집에서 죽을테니까 나를 제발 집에있게 해주세요라고 하소연을 하셨습니다.


제가 매 주일마다 아침 9시까지 모시러 가는데 요양병원에 가면 같은방에 계신 할머니들이 저에게 아이구 목사님오셨네! 저 할머니는 일요일만 되면 새벽4시에 일어나서 목사님 오기만 기다리고 있어요! 오매불망 목사님만 기다립니다!” 하면서 다들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김순애집사님이 요양병원에 입소하신 이후 부터는 요양병원에 입소해 계신 성도님들을 좀 더 자주 심방을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강둘자집사님도 요양병원에 입소해서 한 병실에 여섯분이 같이 계십니다. 그런데 그런데 간병인 혼자서 여섯분을 돌보니까 간병사가 대변관리를 잘못하는 바람에 뒤가 짓무르고 헤져서 김상철성도님이 그걸 발견하고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본인이 직접 대변을 치웠다고 합니다.


환자를 방치한 것 때문에 진무르고 까지고 해서 힘든 상황이 되니까 김상철성도님도 화가나서 간병사를 책망하고 병실을 독방으로 옮기고 개인 간병사를 따로 두어서 강둘자집사님을 세심하게 간병하도록 조치를 하셨습니다.


강둘자집사님을 심방하던날 김상철성도님께서 포도와 과일을 사오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시는 간병사님들을 초대해서 인사도 시켜 주셨습니다. 간병사 팀장님과도 인사를 했는데 팀장님은 영락교회 권사님이셨습니다. 그래서 병실에서 그 권사님과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강둘자집사님이 입원해계신 중앙요양병원은 요양보호사님들이 대부분 예수믿는 분들이라는 말을 듣고 마음이 참 기뻤습니다. 아무래도 예수믿는 분들은 주님의 사랑으로 정성과 사랑을 다해서 환자들을 돌보기에 환자들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강둘자집사님이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허주목사님을 만나러 서울에 갔을 때 보봐스기념병원으로 먼저가서 권옥란권사님의 큰아들 윤정호집사님을 심방했습니다. 안내하시는 분에게 물어서 병실로 갔더니 윤정호집사님부부가 병실에 안계셨습니다.


그런데 같은 병실에 계신 한 환자분의 아내가 저희들을 보더니 친절하게 인사를 하면서 누구를 만나러 오셨냐고 묻길래 윤정호집사님을 만나러 왔다고 했더니 윤정호집사님은 지금 재활훈련 하러 가셨습니다! 제가 그곳으로 안내해 드릴테니까 저를 따라 오세요하더니 저희들을 안내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재활훈련을 하는 곳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분에게 교회에 다니세요?”하고 물었더니 그분이 평생 교회를 안다녔는데 언니가 얼마나 끈질기게 전도를 하는지 몇 달 전부터 교회에 나가고 있어요!”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참 잘하셨습니다! 예수믿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가장 잘하신 일이 예수믿는 일입니다!” 하면서 사진을 한 장 찍고 명함을 드렸습니다.


그 집사님이 얼마나 상냥하고 친절한지 이름도 모르는 그 집사님은 제 마음에 아주 인상적으로 남았습니다. 그분도 남편이 사고로 병원에 입원해서 수 개월동안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본래 병원에 가보면 당사자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분이 간병하는 식구들입니다. 나중에는 힘들고 지쳐서 만사가 귀찮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저희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셔서 밝은 얼굴로 우리를 선대 하셨고 친히 우리를 재활실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 성도님을 처음 만났지만 앞으로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실 일군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윤정호집사님도 남다른 인품을 가진 훌륭한 안수집사님이신 것을 금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아내이신 김수연권사님도 일년이 넘도록 병원에서 남편과 동거 동락 하면서 생사고락을 같이 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낙심하고 절망할 일들이 생길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더 큰 축복을 예비하시고 그 축복을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아무쪼록 고난 당한 모든 분들이 주님안에서 고난을 이겨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실망스러운 일들이 생겨서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바울사도가 개척한 고린도교회도 많은 갈등과 시험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갈등하는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권고합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는 줄을 앎이라”(고전15:58)


낙심하는 성도들이 많아진 갈라디아 교회에는 이렇게 권고했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6:9)


심지어는 열심히 기도를 하다가도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다윗도 그런 체험을 했습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 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13:1) 그러나 다윗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계속 기도하여 끝내 응답을 받아 냈습니다.


요즘 청년들의 취업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 지고 있습니다. 공무원시험을 수년째 치르는 청년들이 넘쳐나고, 직장 취직시험도 수년동안 치르다가 포기한 청년들이 부지기 수 입니다. 그래서 청년들은 점점 소망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지옥같은 청년시절을 보냈지만 끝까지 소망을 품고 인내 했습니다. 요셉은 황금같은 청소년시절과 청년시절을 노예생활과 감옥생활로 보냈습니다. 소망도 없고 기약도 없는 절망스러운 환경에서 무려 10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서 별과같이 빛나는 인생이 됩니다.


다윗은 청소년시절의 10년을 양치기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다시 도망자가 되어서 10년이 넘도록 도망자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다윗도 하나님을 의지해서 모든 고난을 이겨냅니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사람은 욥입니다. 욥은 동방의 거부였습니다. 욥은 부자로 살다가 하루아침에 망해서 거지가 되었습니다. 열명의 자식들이 하루 아침에 사고로 죽었습니다. 몸까지 병들어서 비참한 모습이 됩니다. 욥은 온몸이 독한 창질의 썩어져가는 것처럼 되어서 몸에 구더기까지 생겼습니다.


남편이 그지경이 되자 욥의 아내는 더 이상 이런 남편과는 살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과 남편을 향해서 원망을 했습니다.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2:9)


그러나 욥은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2:10) 라고 고백 했습니다.


욥은 끝까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견디지 못한 아내는 욥을 저주하고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욥은 고백하기를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1:21) 라고 고백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욥이 다 죽게 되었는데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아니하고 믿음의 정절을 지키는 것을 보신 하나님은 결국 욥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시고 그리고 이전보다 갑절의 축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42:10)


욥이 회복되는데 결정적인 비밀이 이 성경말씀에 증거 됩니다. 욥이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욥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시고 이전보다 재물을 두배나 주시고 자식들도 다시 주셨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이 고난을 당했을 때 욥을 찾아와서 네가 죄가 많아서 그런일을 당한거니까 회개해라라고 욥을 정죄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욥은, 지금 내 인생이 힘든데 그런때에 나를 찾아와서 위로는 못할망정 나를 비난하고 정죄하다니 나는 하나님앞에서 죄를 지은적이 없다!”라고 항의를 합니다.


그러면서 서로 갈등하다 보니까 욥도 친구들을 미워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욥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러자 욥이 하나님앞에서 회개를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41:6)


이 회개하자 하나님은 욥의 친구들에게 너희도 회개하고 제물을 가지고 욥에게 가서 화목제사를 드리라라고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래서 욥의 친구들과 욥이 서로 만나서 하나님앞에서 화목제사를 드리고 서로 화해를 합니다.


욥은 그때 친구들을 용서하고 친구들을 위해서 진심으로 축복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욥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42:9)


이 사건후에 하나님은 욥의 건강을 완전하게 회복시켜 주셨고 재산도 이전보다 두배의 축복을 내려 주셨고 자식도 다시 열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사실 욥의 입장에서 볼 때 자기에게 불어닥친 환란은 도무지 이해할수 없는 환란이었습니다. 욥은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잘 믿고 있었던 동방의 의인입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재산이 날라가고 자식이 죽고 자기 몸이 병들어서 사경을 헤메는 재앙이 임했으니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다.


아마도 욥은 생각하기를 “내 인생이 이렇게 될 바에는 차라리 하나님을 안믿는 것이 더 낫지 않았겠나? 하나님이 계시면 왜 내가 이런 고난을 당하는 건가?” 라는 자괴감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욥에게 닥친 이런 알 수 없는 환란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는 영적인 사건입니다. 욥이 망하고 자식들이 죽고 몸이 병든 이면에는 사탄마귀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사탄마귀가 하나님을 찾아와서 하나님께 욥의 신앙은 가짜라고 고소를 합니다. “욥은 재물이 많고 세상적인 복을 많이 받았기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지 그에게서 모든 것을 다 뺏으면 그는 절대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하면서 욥의 신앙의 진정성을 의심하면서 욥을 참소합니다.


그 내용이 오늘본문 욥기19절로 11절에 소개 됩니다.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1:9-11)


그러나 하나님은 사탄마귀에게 욥은 절대로 나를 원망할 사람이 아니다 네가 진정 욥의 신앙을 확인해 보고 싶으면 욥의 생명만 건드리지 말고 네가 할 수 있는 모든일을 다 해 보아라라고 허락을 합니다.


그 내용이 12절에 증거 됩니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1:12)


그래서 사탄마귀는 얼씨구나 좋다 하면서 어디 욥이 망하고 자식이 죽고 몸에 중병이 들어도 하나님을 경외하나 보자!” 하고는 신이나서 욥의 재산을 따 뺏고 자식들 열명을 죽이고 몸에는 중병이 들게 만듭니다. 그리고 아내도 욥을 저주하고 도망가게 만듭니다.


사탄마귀는 이쯤되면 욥도 하나님을 원망하겠지! 차라리 나를 죽여달라고 하던지 자살을 하겠지!”하고 쾌재를 부르고 있는데 웬걸 욥은 나의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23:10) 라고 고백하면서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23:11-12) 라고 고백하면서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 했습니다.


욥은 정말 대단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욥은 무슨일이 벌어져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이 찾아와서 네가 죄가 많아서 이런일이 있는거다라고 자기를 비난할때는 잠시 잠깐동안 친구들 때문에 마음이 상해서 변론을 하면서 갈등이 있었지만 그러나 이내 마음을 돌이키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욥에게 임한 모든 재앙을 떠나가게 하시고 욥이 받았던 모든 축복을 다시 두배로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인생이 아무리 힘들어도 원망하거나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아직 끝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기도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역사 하십니다.


시편425절에 보면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라고 증거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찬송하는 날이 꼭 오게 됩니다.


우리 기독교는 기도하는 종교, 기도교입니다. 성경은 기도와 그 응답의 기록부입니다. 역사는 기도응답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교회를 향하여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11: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하기 좋은 계절이 있고 기도하기에 불편한 때가 있습니다. 너무 추워도, 너무 더워도 기도하기가 힘듭니다. 봄과 가을은 기도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비상기도를 해야할 때가 있고 좀 편안하게 기도할 때도 있습니다. 하만이 유대인을 몰살시키려고 할 때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금식을 선포하고 모든 이스라엘백성들과 함께 3일동안 금식하면서 부르짖어 기도 했습니다.


지금 우리도 부르짖어 기도해야 할 비상시국입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해서 전 세계가 요동을 치고 있습니다. 북한이 핵문제를 가지고 온갖 술책을 다 부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여러 가지 축복이 임합니다. 무엇보다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올리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자연에게 기도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범신론자들은 인간이 하나님이고 자연이 곧 하나님이다라고 말하면서 바다에 제사지내고 바위밑에 촛불을 켜고 자연에게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그것처럼 무식한 일은 없습니다.


귀신에게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무당들입니다. 알지 못하는 신에게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도행전 1723절에 보면 그리스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신에게기도를 했다고 증거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재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슬기롭고 지혜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11:15)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갈보리교회 목사님은 스물일곱살이 된 딸을 위해서 좋은 사위를 달라고 매일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추수감사절날 아침에 하나님께서 감사헌금을 드리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가족들 이름으로 한 사람당 365,000원을 드리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목사님부부와 두 자녀의 이름으로 한사람당 365,000원씩 봉투에 넣어서 준비를 했는데 성령님께서 목사님에게 네 기도제목중에 가장 큰 기도제목이 무엇이냐?”하고 물으시더랍니다.


그래서 사위를 얻는 것입니다했더니 그러면 사위 이름으로도 추수감사헌금을 드려라하더랍니다. 그래서 사위될 사람의 이름도 모르는데요?” 그랬더니 네가 강씨니까 강사위 라고 써서 내라하더랍니다. 그래서 강사위라는 이름으로 365,000원을 봉투에 넣어서 다섯사람분의 헌금 1,825,000원을 추수감사헌금으로 드렸다고 합니다.


목사님이 추수감사헌금을 드리면서 하나님께 한가지 조건을 붙였다고 합니다. “하나님! 이 헌금을 드린지 365일 이내에 사위를 만나게 해 주세요라고 조건을 달고 헌금을 드렸다고 합니다.


그후에 날마다 기도를 했는데 정말 기적이 벌어졌습니다. 헌금을 드린지 정확하게 꼭 365일이 지난 추수감사절날 딸이 남자를 데리고 와서 추수감사 예배를 드렸는데 딸이 그 남자와 결혼을 하게된 것입니다. 그날 추수감사예배를 드리던날 목사님은 아무도 모르게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 후에 딸이 강남에 있는 매리엇 호텔에서 결혼을 했는데 결혼식을 앞두고 목사님이 철야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 하나님! 저에게 좋은 사위를 주신 것 감사 드립니다. 이 결혼이 복되고 행복한 결혼이 되게 해 주세요!”하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꼐서 또 말씀하시기를 강 목사야! 결혼한 네 딸 이 복되게 살기를 원하느냐?”하고 물으시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 그야 당연한거 아닙니까?”했더니 그러면 첫 열매를 몽땅 헌금해라하시더랍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첫 열매가 무엇입니가?”했더니 네 딸의 결혼 축의금이다


그 음성을 들은 목사님은 하나님! 사실 금번 결혼식은 호텔 결혼식이라 식사비가 만만치 않습니다! 일인당 식사비가 10만원씩인데 천명만 와도 일억입니다!”했더니 네가 믿음으로 드리면 내가 책임지리라!”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더랍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두 말 하지 않고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하고 순종 했다고 합니다.


금요 철야기도때 그런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토요일 아침에 장로님들을 불러서 식사를 같이 하면서 장로님들에게 이번 결혼식때 축의금 책상에는 우리 가족이 앉지 않겠습니다. 교회 재정부에서 나와서 앉아서 축의금을 받아 주십시요! 그리고 10원도 떼지 말고 몽땅 하나님께 드려서 재정에 넣으십시오!”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기도중에 성령께서 감동하신대로 순종해서 결혼식날 들어온 축의금 1억원을 몽땅 교회 제정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식 식사비용이 일억원이 나왔는데 그날 차가 밀려서 결혼식이 끝나고 늦게오신 분들과 더불어 친구들과 친지들이 목사님의 은행구좌로 보내준 결혼 축의금이 일억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는 일억원의 헌금을 드리고 식사비도 완벽하게 해결 했다고 합니다.


 목사님께서 기도중에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했더니 그후에 딸과 사위가 얼마나 복되게 사는지 하는 일마다 승승장구해서 경제적으로도 복을 받고 자식도 낳아서 딸과 사위가 큰 축복을 받으면서 살고 있다는 간증을 하셨습니다.


기도하면 이와같이 놀라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되고 하나님의 은혜도 누리게 됩니다. 기도는 기도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반드시 응답에서 끝납니다.


한 장로님의 간증입니다. 이 장로님은 사업이 잘 되어서 큰 돈을 벌었습니다. 그래서 큰 저택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도가 났습니다. 집과 집안에 있는 모든 물건들은 다 차압을 당했습니다.


결국 장로님은 집에서 쫓겨나서 경기도 부천에 월세방을 얻어서 이사를 했습니다. 큰 저택에 살다가 학고방같은 월세방에서 살려니까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금식기도원에 가서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평생에 처음으로 금식기도를 했는데 엄청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금식기도중에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느니라


장로님은 비로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가장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날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꿀보다 달았습니다. 말씀안에서 사는 기쁨이 재벌로 살때보다 훨씬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초월하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망해서 아무것도 없었지만 금식기도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또 성령충만을 받고 나니까 세상이 새하늘과 새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새로웠습니다.


장로님은 하산해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간증을 했습니다. “저택과 좋은차와 모든 재물을 다 잃어버렸지만 하나님께서 더 큰 집과 행복을 주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장로님이 금식기도를 하더니 하나님께서 욥처럼 큰 축복을 주셨구나! 금방 재기 하셨구나! 역시 금식기도의 능력이 대단하구나!”하고 다들 부러워 했습니다. 그래서 장로님에게 장로님! 도대체 무슨일이 벌어졌습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다시 축복을 주셨습니까?”하고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그러자 장로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보니까 내주예수 모신곳이 그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골방이 작아도 말씀을 보면서 주님과 함께 하니까 거기도 천국입니다.


내 아버지집인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고 기도하면 그보다 행복한 일은 없습니다. 그동안은 교회는 잠시 와서 예배만 드리고 가는 곳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보니 교회가 아버지의 집이요 내 집이요 가장 행복한 곳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기도하는 아버지 집에서 날마다 천국을 경험하면서 삽니다라고 고백을 하셨습니다.


오늘본문 누가복음 18장에서 예수님은 응답받는 기도의 비결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이 설교는 불의한 재판관에 대한 비유라고 불리워 집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날 제자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한 재판관과 과부를 예로 들어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교만한 재판장이 있었습니다.


그 도시에 억울한 일로 원한맺힌 한 과부가 날마다 그 재판장을 찾아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십시요!”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하지만 돈많고 높은 자리에서 지내는 이 재판장은 하찮은 과부의 청을 무시하고 외면했습니다. 그런데 이 과부가 날마다 찾아와서 끈질기게 매달리면서 계속 하소연을 하니까 재판장이 속으로 생각하기를,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장이지만 이 과부가 하도 나를 번거롭게 하니까 내가 그녀의 원한을 풀어 주어야 되겠구나! 이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지 않으면 이 과부가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할테니 차라리 빨리 해결해 주자하고는 그 과부의 원한을 풀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어보아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택한 성도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래 예수님 당시에 남편없이 살아가는 과부들은 인권을 보호받지 못했고 또 억울한 일도 많이 당했습니다. 그러나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소연 할 데도 없었고 하소연을 한다해도 가난한 과부의 청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설교에 나오는 이 과부는 억울한 일을 당한후에 재판장을 찾아 갔습니다. 그러나 이 재판장은 공의를 세우는데 전혀 관심이 없는 교만한 재판장입니다. 게다가 하나님도 믿지않는 불의한 재판장입니다.


이 대목이 중요한 부분입니다. 과부는 대단히 용기있는 여자였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과부는 유대인이었고, 재판장은 유대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말은 헤롯이나 또는 로마의 재판장입니다.


유대인중에는 재판장이 필요없었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장로들이 재판했습니다. 큰 문제는 서기관이나 제사장들이 판결했습니다. 제사장들에게 종결 판결권이 주어져 있었습니다. “레위 자손 제사장들도 그리로 올지니 그들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사 자기를 섬기게 하시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신 자라 모든 소송과 모든 투쟁이 그들의 말대로 판켤될 것이니라”(21:5)


그런데 이 과부는 이방인재판장에게 가서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간청 했습니다. 이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더 높은 재판장이 틀림 없습니다.


당시의 재판장들은 거의 다 돈이나 빽에 의해서 재판을 하고 판결을 했습니다. 뇌물을 가져가면 뇌물을 받은 그 사람에게 유리하게 재판을 했습니다. 그래서 불의한 재판장들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우리 나라도 한때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계신 예수님은 그 재판장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장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런 불의한 재판을 다야네 게젤론”(Dayyaneh Gezeroth)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강도 재판이라는 뜻입니다. 뇌물을 받고 엉터리 재판을 했기에 강도재판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과부는 돈도 없고 빽도 없으면서 이방인이요 또한 불의한 재판장에게 가서 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간청을 했으니 그 용기 하나만큼은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와같이 담대하고 용기있는 자세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해 보이고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해도, 하나님만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과부가 가진 것은 오직 한가지 끈기로 매달린 것 뿐입니다. 과부의 태도를 보면 자주 가서(3) 번거롭게 하니(5) 늘 와서(5) 괴롭게 하리라(5)”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말씀들의 공통점은 끈기입니다.


그래서 용기는 시작하게 하고, 믿음은 계속 하게 하고, 끈기는 일을 종결짓게 하는 도구입니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대부분 수많은 시행착오와 피눈물나는 노력과 끈기를 투자한 사람들입니다. 밀턴은 매일 아침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실낙원을 집필했습니다.


노아 웹스터는 웹스터 사전을 집필하기 위해서 36년동안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대서양을 두 번이나 횡단하면서 자료를 모았습니다. 플라톤의 국가론은 무려 아홉 번이나 대필한 다음에 완성했습니다.


시인 브라이언트는 자신의 시를 보통 99번이나 다듬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8년동안 땀흘려 완성한 작품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10년 걸려서 완성한 작품입니다.


슈만 하인크는 위대한 기수가 되기 위하여 20년간 가난과 싸웠습니다. 꿀벌은 살아 있는 동안에 지구의 세바퀴나 되는 거리를 날면서 꿀을 모읍니다. 이 모든 이야기가 끈기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의 과부도 누가 뭐라 해도 불의한 재판관이 들어줄 때까지 매달렸습니다. 예수님은 과부처럼 끈기있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재판관은 처음에는 힘도 없고, 돈도 없고, 빽도 없는 과부의 간청에 코방귀도 뀌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과부는 포기하지 않고, 이른 아침만 되면 불의한 재판관의 집으로 찾아가서 재판관이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재판관이 출근하기 위해서 집밖으로 나오면 달려가서 제발 저를 좀 도와 주세요하면서 통사정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나흘 한달 두달 계속해서 재판관의 집 앞에 가서 출근할때와 퇴근할 때 재판관을 기다렸다가 재판관이 나오기만 하면 달려가서 도와달라고 애절하게 간청을 하니까 결국 이 재판관이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이지만, 이 과부가 하도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이 과부가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여기에 예수님의 교훈이 있습니다. “불의한 재판관도 강청하면 그 소원을 들어 주는데, 하물며 의로운 재판관이요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어찌 너희의 기도를 안 들어주시겠느냐?” 라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끈질기게, 그리고 간절하게 기도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들어주시고, 응답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새벽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철야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금식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작정기도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중보기도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기도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셨는지 성전을 예배드리는 장소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찬송하는 법을 가르쳐 주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읽는 법도 가르쳐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도하는 법은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7:7-11) 라고 말씀하셔셨습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기도하는 사람의 역사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복음을 전했고 기도하는 사람이 축복을 받아서 하나님께 헌신했고 기도하는 사람이 사명을 받아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어 나갔습니다.


종교개혁의 선구자 마르틴 루터는 하루에 2시간씩 기도를 했습니다. 바쁘면 마귀가 틈탈까봐서 더 열심히 기도를 했습니다.


요한 웨슬레도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기도를 했습니다.


죤 웰치는 하루에 다섯시간씩 기도를 했습니다. 어느날 그가 자다가 깨어서 엉엉 울면서 기도를 하자 아내가 잠에서 깨서는 여보 왜 우세요?”했더니 내가 기도해 주어야 할 영혼이 3,000명인데 오늘은 2000명 밖에 기도를 못해 주어서 안타까와서 우는거야!”하더랍니다.


마티스 트랜티는 늘 기도로 일을 했습니다. 어느날 기도하러 기도실로 들어 가면서 비서에게 오늘은 시간이 없으니까 30분이 지나면 노크를 해 주시게하고 부탁을 했습니다.


30분이 지나서 비서가 기도실로 갔더니 마티스 트랜티가 어찌나 열심히 기도를 하는 지 도저히 중단을 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1시간후에 갔더니 기도소리가 더 커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2시간후에 갔더니 목이 터져라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3시간을 기다리다가 더 기다릴 수가 없어서 노크를 했더니 마티스 트랜디가 나오면서 벌써 30분이 지났나?”하고 나오더랍니다.


성경에 보면 간절하게 기도할 때, 기적들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인생 승리의 비결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하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기도응답의 원리는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선지자에게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 떼 같이 많아지게 하리라”(36:37)


소원을 이루려면 내게 구해야 한다고 하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오늘 본문 8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 보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즉 과부와 같은 믿음을 가진 자를 찾아 보기가 힘들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예수님 편에서 이해하면 주님은 세상 끝날까지 오직 믿음이 있는 사람을 보기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믿음 이외에 다른 것은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믿는 사람이 마지막까지 붙잡아야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기도를 통해서 검증이 됩니다.


땅에 속한 것과 육에 속한 것을 의지한 사람들은 마지막 날에 다 썩어지고, 불에 타버리고,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세상에 속한 것만 바라보고 산 사람은 아침 안개가 사라지는 것처럼, 다 사라집니다. 그래서 그날에 슬피울며 이를갈면서 탄식하게 됩니다.


그러나 험악한 세상살이에 과부처럼 답답하고 억울한 일을 만나도 끈질기게 기도하면 하나님은 하늘문을 여시고 복을 내려 주십니다. 우리도 기도하되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아무쪼록 우리도 7절과 같이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라는 축복을 누리면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출처 : 보물섬남해세광교회
글쓴이 : 행복을 주는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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