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늦게 저녁식사를 마쳤는데 김예슬전도사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사모님이 전화를 안받으셔서 목사님께 전화를 드렸어요! 하늘에 이상한 불이 빛이나고 있어요! 한번 보세요!”하고 놀란 토끼같이 들뜬 마음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그래서 스마트폰을 들고 저와 제 집사람이 밖으로 나가서 보니까 정말 길다란 촛불같은 불빛이 하늘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전도사님에게 “정말 빨간색 불빛이 하늘에 있네요 밝게 빛나진 않지만 선명하게 촛불같은 불빛이 있어요!” 했더니 전도사님이 “목사님 제가 진주에서 출발을 했는데 그 빨간색 불빛이 보여서 저게 뭘까? 하고 신기해서 바라보았는데 차를 타고 오는 동안에 그 불빛이 계속 제가 가는 쪽으로 따라오는 것 같아서 더 놀랐어요! 계속 그 불빛만 바라보고 왔는데 진교를 지나서 그 불빛이 없어졌어요!
그런데 집에 도착해서 다시 하늘을 봤더니 그 불이 보여서 너무나 기뻐서 목사님에게 전화를 드렸어요 나중에 엄마를 불렀더니 엄마가 안나오셔서 하영이 아빠에게 전화 했더니 전화를 안받았어요
목사님이 그 불빛을 보셨다니까 정말 기뻐요 저 혼자만 보는줄 알았는데 목사님도 보셨다니까 정말 기뻐요!” 하면서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는 하늘에 나타난 촛불같이 길다란 붉은 불꽃이 너무나 신기해서 “전도사님! 잠간 전화를 끊으세요! 저 불빛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데 사진을 한 장 찍어 놓을테니까 전화를 끊으세요 다시 전화 할께요!”하고 전화를 끊은후에 하늘에 나타난 길다란 촛불같은 빨간불빛을 스마트폰으로 찍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전도사님에게 전화를 해서 “사진 찍은 것 보냈어요”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사진을 찍은지 일분도 안돼서 그 불빛이 사라지더니 아주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불빛이 없어졌네요!” 했더니 “그래도 목사님과 사모님이 보셔서 다행이예요 저는 혼자만 본 줄 알았는데 목사님과 사모님이 보셔서 너무나 기뻐요”합니다.
그래서 “참 신기하네요 이런 기이한 현상은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걸텐데 불빛을 보니까 마치 예수님 탄생때 크리스마스 카드에 나오는 세로로 길다란 큰 별빛과 비슷하네요 이런 놀라운 불빛을 전도사님에게 보여주신걸 보니까 하나님이 전도사님을 무지 무지 사랑하나봐요 하나님이 보여주신 특별한 싸인이네요!”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전도사님은 너무나 기뻐서 어쩔줄 몰랐습니다. 사모님은 옆에서 “예수님이 오시려나봐요! 예수님이 오시는 싸인인 것 같아요 그러니 우리가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겠네요! 전도사님 축하 드려요!”하고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종말이 되면 하나님께서 일월성신에 특별한 징조를 보여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전도사님께서 본 촛불같은 붉은색 불도 하나님께서 뜻이 계셔서 보여주신 불빛임을 믿습니다.
전도사님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어린이집 교사를 그만두고 신학대학원 공부를 시작하니까 하나님께서 “힘내라!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보여주는 아름다운 불꽃처럼 너도 아름답게 타올라라 그래서 세상에 빛이되거라 내가 너와 함께하마!”라고 하시면서 전도사님에게 특별한 불꽃을 보여주신 줄로 믿습니다.
구름한점 없이 별이 반짝이는 하늘에 그런 신기한 붉은 불꽃을 보여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할렐루야!.
전도사님이 최예진집사님에게도 전화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예진집사님은 지윤이 때문에 나가질 못해서 못보고 박예본성도님에게 전화를 했더니 박예본성도님은 나가서 봤는데 안보인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부부가 보았기에 김예슬전도사님이 본 불꽃은 진실이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면 두 세 사람의 증인이 있어야 그 사실이 확정이 됩니다. 두사람의 증인을 확보한 김예슬전도사님의 고백은 사실임을 인정합니다. 할렐루야!
최근에 한동안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또 계속해서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혹시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까?”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만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돈이 주인 노릇하는 세상은 우리 마음속에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하지?” 라는 두려움을 주입합니다.
돈뿐이 아니라 직장이나 사회에서 또는 인간관계에서 “내가 뒤처지면 어쩌지? 쫓겨나면 어쩌지? 비난 받으면 어쩌지? 버림받으면 어쩌지? 잊혀지면 어쩌지?”등등의 생각때문에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살아 갑니다.
요즘은 학교폭력도 도를 넘었습니다. 맘에 안드는 아이를 데려다가 옷을 벗기고 발로 차고 때리고 피범벅이 된 아이에게 소변을 강제로 마시게 했습니다.
그런 학교 폭력 보도를 접하고 나면 “혹시 우리 아이가 그런꼴을 당하지 않을까?”하면서 두려워하게 됩니다. 폭력을 행사한 아이들은 “만약에 경찰에 신고하면 너희 부모도 데려다가 산에 매장해 버리겠다”라고 협박을 했습니다.
이런 일을 당하면 두려움 때문에 신고도 못하고 그 끔직한 사건이 트라우마가 되어서 평생 고통중에 살아가게 됩니다.
호세 안토니오 마린은 학교 폭력에 관한 글을 썼습니다. “학교 폭력에는 공격자와 희생자 그리고 수동적인 구경꾼, 방관자가 등장한다. 폭력이 벌어지면 누군가가 신고를 해서 폭력을 막아야 하는데 용기가 없어서 보복 때문에 신고를 못한다 문제가 생기면 당장 경찰을 부르거나, 지금 일어나고 있는 부당한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야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는데 사람들이 용기가 없어서 신고도 못하고 아는척도 못하고 그냥 방관자가 되기에 어두운일이 계속 된다”라고 증거 했습니다.
호세 안토니오는 “용기는 스스로 행동하는 자유다”라고 말했습니다. 스스로 행동하는 용기가 있어야만 “정치적 독재와, 타락의 유혹과, 폭력과, 폭행과, 욕망과, 두려운 힘의 압박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수있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능력 중에 하나가 용기다 진정한 용기는 사람을 행복으로 이끄는 비결이다”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호세 안토니오는 결론짓기를 “어려움을 만났을 때, 핑계 대거나 도망치지 않고 당당히 맞서는 것이 용기요 두려움이 와도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용기다”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용기는 무서워도 해야 할 일을 해 내는 힘이요 어려움에 당당히 맞서는 힘입니다.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슬로건은 “두려움이 없는 삶”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로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지난 주일날 오후에 이상경집사님댁에서 심방예배를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엄청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심방예배를 드릴때마다 하나님께서 늘 은혜를 주시지만 그날은 정말 특별한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날 하나님께서 저에게 욥기를 보도록 감동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성경 욥기 1장부터 3장까지 교독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42장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날 설교를 하면서, 욥이 뜬금없이 자기에게 고난이 임했을 때 그 고난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설교를 했습니다.
욥은 하루 아침에 엄청난 시험을 당합니다. 먼저 강도떼가 들이닥쳐서 욥의 전 재산을 다 약탈해갑니다. 그리고 대풍이 불어서 집이 무너지는 바람에 열명의 자녀들이 집안에서 앞사를 당해서 죽었습니다. 불이나서 축사의 양과 소가 다 몰살을 당해 죽었습니다. 몸에는 독한 병이 들어서 죽게 되었습니다.
이런 엄청난 고난을 당한 욥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1:20-22)
욥은 고난의 때에 원망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 했습니다.
그런데 병이 깊어지면서 욥의 진심이 욥기3장25절로 26절에 묻어 나옵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
욥은 평소에 두려워했던 그 일이 내게 임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뭔가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내면 깊은곳에 무서워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게 자기에게 임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모든게 잘 되고 형통하고 자식들도 잘 자라서 장성하고 부족함이 없이 살았는데 웬지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자기의 마음 깊은 곳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그 두려움이 어느날 갑자기 현실이 되었다고 욥은 고백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나를 사로잡지 못하도록 견고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이상경집사님에게 “이제는 더 이상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마시고 하나님이 나를 치료하시며,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며, 하나님이 나를 살리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사명을 감당하는 믿음을 가지세요!"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욥기42장에서 욥이 자기를 비판하고 정죄한 친구들을 위하여 축복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욥의 병을 치료해 주시고 재물의 축복도 더해 주신 것 같이 용서와 사랑으로 나아가서 동방의 거부였던 욥이 모든 것을 회복하고 엄청난 축복을 받은것처럼 집사님도그런 축복을 받으시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겨야할 대상이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이 엄습하면 사탄마귀가 그 두려움을 타고 들어와서 우리의 행복을 소멸하고 온갖 악한 가라지를 부립니다.
사자가 쫓아오면 모든 동물이 혼비백산해서 도망가는 것처럼 인간도 두려움이 임하면 모든 능력이 마비됩니다.
고소공포증에 걸린 사람은 높은곳에 올라가면 벌벌 기면서 아무것도 못합니다. 폐쇄공포중이나 공황장애가 있는 사람은 꽉 막힌 공간에 있으면 미쳐버릴 것 같은 두려움과 공포심을 느낍니다.
그래서 조직 심리학 박사인 “앨런 다운스”박사는 인생 성공의 핵심이 바로 “두려움에서의 해방입니다” 라고 증거 했습니다. 두려움은 자신의 재능을 방해하고 재능을 무기력하게 만든다고 증거 했습니다.
유명한 철학자인 세네카도 “두려움이 있는 곳에 행복은 없다”라고 증거 했습니다. 시인 워즈워드도 “두려움은 수백 개의 눈을 가지고 있어서 당신의 마음을 괴롭힌다”라고 고백 했습니다.
사람이 두려움의 포로가 되면 “대인 공포증, 광장공포증, 고소공포증, 질환공포증, 폐쇄공포증, 죽음공포증” 등과 같은 심각한 공포증 환자가 됩니다.
사람이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소심해 지고 늘 경계심을 품게 만들고 불안에 떨고 자신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두려움의 포로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사명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아이성에서 실패한 이스라엘 공동체는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들이 됩니다.
이런때에 하나님은 실패한 여호수아에게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이 오늘 본문 여호수아 8장1절에 증거 됩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의 백성과 그의 성읍과 그의 땅을 다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수8:1)
하나님은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한 번 패배했다고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서 벌벌 떨고있는 그들에게 용기를 가지고 일어나서 다시 사명을 이루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이성의 인구는 12000명(수8:25)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슬라엘 군대는 60만1천7백30명입니다. 아이성의 인구가 12000명이면 전쟁에 나갈 군인은 3천명쯤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삼천이면 될 줄로 알고 삼천명이 전쟁에 나갑니다. 그런데 그 전쟁에서 대패했고 36명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완전 물처럼 녹아서 낙심해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아이성 전투에서 전쟁에서 실패한 원인을 여호수아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내용이 여호수아 7장10절에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나의 언약을 어겼으며 또한 그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져가고 도둑질하며 속이고 그것을 그들의 물건들 가운데에 두었느니라”
아이성 전투에서 실패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 번째 원인은 아간의 범죄(7:1)입니다. 아간은 전쟁중에 얻게된 전리품을 보고서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시날산의 외투와 금은보화를 취해서 감추었습니다.
아간의 죄가 전쟁실패의 원인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전쟁에서 패한 그들은 완전히 낙심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폐인처럼 되었습니다.
7장 5절에 보면 “그들의 마음이 녹아서 물같이 되었다”라고 증거 합니다. 이 말은 정탐꾼들이 가나안땅을 정탄한 후에 돌아와서 “간담이 녹았다”(수2:24) 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녹아버리니까 7장 7절과 같이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그들은 엄청난 군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멸망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9절에서 “이제 우리는 끝났다”라고 고백합니다.
두번째 원인은 지도자와 백성의 경솔함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교만과 안일한 태도였습니다. 여리고성의 승리에 도취된 그들은 하나님께 물어보지도 않고 자만하여 자기 뜻대로 아이성전투에 나갔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그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신명기 1장 21절에 보면 요단강가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너의와 함께하여 가나안땅을 너희에게 주겠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30절에서는 내가 너희보다 앞서 너희를 인도하겠고 내가 친히 싸워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정탐꾼들은 가나안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두려워서 벌벌 떨면서 우리는 메뚜기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메뚜기 콤플렉스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앞에서 믿음없는 신앙고백을 한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다 죽습니다.
부정적인 생각과 두려움은 괴물같아서 하나님이 주신 모든 축복을 포기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나폴레옹 힐은 “두려움과 공포는 모든 자신감을 꺽어 버리고 아름다운 상상을 파괴하고 모든 열정을 소멸시키고 모든 의욕을 없애 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을 비참과 불행에 빠뜨린다”라고 증거 했습니다.
사람이 가지는 두려움의 90%는 상상적 두려움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슨일이 벌어져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두려움을 극복하면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 사명을 붙들고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순교자들은 복음의 사명을 위해서 죽음의 두려움도 이기고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들입니다.
“뿌리”라는 소설을 쓴 “알렉스 헤일리”는 평생 글을 썼지만 백 번이 넘도록 출판사에서 퇴짜를 받았습니다. 그는 글을 쓰기 시작한지 20년만에 55세가 되던 해에 뿌리라는 소설을 통해서 드디어 세계 최고의 작가가 됩니다.
헨리 트루먼은 평범한 농부로 살다가 “나도 올바른 정치가가 되어서 세상을 변화시켜 보겠다”라는 마음으로 공부를 한 지 10년만에 드디어 서른 아홉 살에 처음으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합니다. 그는 성실하게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정치가의 꿈을 키워 갑니다.
그리고 드디어 50세에 정치무대에 입성합니다. 그리고 10년동안 정직하고 성실하게 정치인 생활을 하다가 루즈벨트 대통령의 서거와 함께 미국의 대통령이 됩니다. 그는 61세에 자기의 꿈을 이룹니다.
영국의 작가 “서머셋 모음”은 얼마나 말을 더듬었는지 거의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말더듬이 였지만 위대한 문학가가 되었습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워싱턴은 대학을 다녀본적이 없습니다. 링컨, 트루먼. 영국의 체임벌린 총리도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인 록펠러와, 최초의 비행사 라이트형제와, 자동차왕 포드도 다들 고등학교를 중퇴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그들 모두가 위대한 사명을 감당 했습니다.
우리도 살펴보면 부족한 것 뿐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잘난게 없습니다. 교회적으로도 시골 구석박지에 있는 작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지금까지 놀라운 기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 하나 모든 것이 기적입니다.
어떤병에 걸렸든지 고쳐 주시는 여호와라파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부자이신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힘든일도 있고 두려워할 수 밖에 없는 일들이 있고 때로는 실패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 하지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도와 주시고 하나님이 붙들어 주셨기에 우리는 승리했고 또 앞으로도 승리하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살다보면 “이젠 끝장이구나! 틀렸구나! 어쩔수 없구나!” 하면서 낙심할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삶이 경직될 때 가 있습니다. 마치 고양이 앞에 쥐처럼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가 바로 다시 시작할 때입니다.
서양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실패란,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쓰러지고서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 실패이다” 두려움은 어린 유아기 때 부터 시작합니다.
유아기때에는 낮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나타납니다. 8개월부터 22개월 사이에 강하게 나타납니다. 사회 공포증은 열 다섯 살에서 20살 사이에 강하게 나타납니다.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인정 받지 못할까봐 나타나는 두려움입니다.
“에체부루아와 산딘”의 연구에 의하면 40퍼센트 이상의 아이들이 항상 강한 두려움속에서 살아간다고 합니다. 세계보건기구는 전 세계 20퍼센트 이상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심리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고 보고를 했습니다.
두려움에 대한 우리 기억의 일부는 두뇌의 편도체에 보관이 되어서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두려움이 자라서 병적인 두려움이 되면 통제할 수 없는 공포심에 사로잡혀서 공황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유전적인 영향보다는 양육 방식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는 가르치는 사람에 따라서 세상을 예측할 수 있는 지 없는지, 세상을 통제할 수 있는지 없는지, 세상이 안전한 곳인지 아니면 위험한 곳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세 가지 믿음을 초기 유아기때, 양육하는 사람을 통해서 습득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르치는 사람에 따라서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는 아이가 되기도 하고 오히려 두려움이 더 커질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어릴 때에 부모나 선생님이 아이를 아주 무섭게 가르치면 아이가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공황장애나, 사회적 공포증, 또는 외상 후 스트레스나, 강박적인 집착증과, 성 도착증이나 불안증에 사로잡힌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 아이를 너무 지나치게 무섭게 키우면 아이에게 성도착증세가 생깁니다. 그래서 비정상적인 상상이나 잘못된 성욕을 가지게 됩니다.
자란후에는 상대방에게 모욕을 주거나 또는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나이어린 파트너를 선택하기도 하고 또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는 불법적인 성행위를 하거나 또는 억압된 감정을 해소하고 싶어서 방황하거나 자유롭게 살고 싶은 욕망에 빠져서 방탕한 삶을 살기도 합니다.
어린 아이들을 강간하는 소아성애증에 걸린 사람들의 대부분이 어렸을 때 억압속에서 자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어린시절과 유년시절에 아이들을 너무 억압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세상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곳이다! 세상은 안전한 곳이다! 나의 삶은 내가 통제할 수 있다!”라는 적절한 믿음을 가지도록 가르쳐야 두려움과 공포를 이길수 있게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부모나 선생님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거나 공포의 대상이 되면 아이들은 두려움과 공포심에 사로잡혀서 세상을 두렵고 공포스러운 곳으로 각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란후에 비정상적인 사람이 됩니다.
아이들은 사랑으로 키워야 하고 믿음으로 키워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르치면 방금 말씀드린 모든 두려움과 공포는 저절로 사라지고 아이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속에서 자라게 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 이후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온다해도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예수믿은 나를 천국으로 인도해 주시니 걱정이 없다”라는 확실한 믿음만 있으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용기 있게 죽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을 추진하지 못하고 두려워서 포기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수1:5-6)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날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명을 품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호수아1장9절에 보면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라고 증거 합니다.
이 말씀도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모세가 죽기전에 하나님께서 신명기 31장 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과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보다 먼저 건너가사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하시고 네가 그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이며 여호수아는 네 앞에서 건너갈지라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신31:3-5)
예수님을 모신 사람은 인생이 달라집니다. 제가 전에 이경숙(李慶淑)박사님을 소개 했습니다. 그녀는 1994년도에 숙명여대의 총장으로 취임을 했습니다. 당시에 숙명여자 대학교는 큰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숙명여대의 땅은 해방 후에 토지 정리를 하지 않아서 국유지로 묶여서 숙명여대는 땅문서를 손에 쥐고도 수억원의 밀린 임대료와 더불어 벌금까지 쌓여 있었습니다.
이경숙 총장은 취임하자마자 땅 문제를 풀기 위해서 수개월동안 담당자들을 찾아 다니면서 노력을 했지만 일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몸은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쳐서 병이 났습니다.
결국 그녀는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를 시작 했습니다. 기도실에서 울면서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는 왜 나에게 구하지 않고 사람만 찾아 다녔느냐? 네가 나에게 구했으면 내가 해결해 주었으리라!”
이경숙 총장은 기도중에 성령의 감동으로 중요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일을 하기전에 먼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일을 해야 하는데 순서가 바뀌었구나! 내가 먼저 돌아 다니면서 일은 다 벌려놓고 하나님은 뒤에서 따라오게 했으니 내가 잘못했구나!” 하고는 하나님앞에서 진심으로 회개를 했습니다.
“하나님! 이제는 능력도 체력도 부족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기권입니다. 보잘것없지만 제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립니다! 하나님이 숙명여대의 주인이 되어주세요!”
이경숙총장은 그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총장자리를 맡기고 자기는 청지기로 섬기겠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리고 매사에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녀를 무시하던 시청 담당자들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여기 저기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아침에 모든 사람들이 도와주기 시작하더니 그 해 12월 31일날 드디어 땅 문제가 완전하게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돈한푼 내지않고 모든 문제가 다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 사건이 해결되자 이경숙총장은 제2의 창학을 선언한 후에 대학 정문에 여호수아 1장 9절 말씀을 새겨 넣었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사방 팔방으로 뛰어다녀도 안되던 일이 하나님께 돌아와서 회개하고 기도로 간구했더니 하나님께서 큰 축복을 내려 주셔서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었습니다.
휘튼 대학의 학장이었던 “레이먼드 에드먼드”도 어느날 자기가 신앙생활을 엉터리로 한 것을 깨닫고 예수님께 회개를 했습니다. “예수님, 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을 마치 종처럼 취급했습니다. 예수님이 필요할 때는 예수님께 간청해서 제 일을 도와 달라고 기도를 하고, 일이 해결되면 예수님을 외면했습니다. 예수님은 저를 도와 주시는 종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더 이상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이시간에 주님께 제 몸과 마음을 드립니다.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주님께 넘겨 드립니다. 이제 주님이 저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순종하겠습니다. 주님이 저를 아프리카로 보내신다면 가겠습니다. 혹시 암에 걸려야 한다면 암에 걸리겠습니다. 주님이 제 눈을 멀게 하신다면 소경이 되겠습니다. 저를 춥고 가난한 티벳이나 몽골로 보내셔도 기꺼이 가겠습니다. 이제부터 저는 주님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심으로 회개하고 마음을 주님께 바친 그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그의 삶에 성령의 열매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대학 총장이 되어서 사명을 감당하다가 은퇴한 후에 가난한 선교지로 거기서 평생동안 성경을 가르치다가 죽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실패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성으로 올라가라”
그리고 2절에서는 아이성 뒤에 복병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차 아이성 전투에서 실패한 이유는 방금 말씀드린대로 아간의 범죄(7:1)입니다.
두 번째 원인은 지도자와 백성의 경솔함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교만과 안일한 태도 때문입니다. 여리고성의 승리에 도취되어 하나님께 물어보지도 않고 자기들멋대로 행했습니다.
세 번째 원인은, 그들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아이성 인구가 12000명(수8:25)밖에 되지 않자 그들은 삼천이면 이길줄 알고 삼천으로 싸웠습니다. 결국 36명이 죽고 대패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새로운 훈련을 시켰습니다. 처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서들을 이끌고 물이 철철 넘치는 요단강을 건너갈 때 하나님은 요단강물이 멈춰서서 산처럼 싸이는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때에도 화살하나 쏘지않고 기적을 일으키셔서 여리고성이 무너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죽음의 위기 앞에 직접 나서게 만드셨습니다. 용기와 담대함으로 두려움을 이기고 가나안땅을 하나 하나 점령해 나가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기적을 베푸셔서 전쟁에 승리하게 하셨지만 이제는 두려운 현실 앞에 당당하게 직시하도록 만드시는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내게 주신 믿음과 능력을 가지고 용기 있게 사명을 감당하는 훈련을 시키신 것입니다.
광야에서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훈련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이 주신 재능과 능력을 가지고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 있게 가나안땅을 점령하는 훈련을 시키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여호수아는 이제 3천명이 아니라 3만 명을 뽑아서 성 뒤에 복병을 시킵니다(3절). 그리고 오늘 본문 10절에 보면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군사를 거느리고 직접 아이성 공략에 나섭니다.
대장인 여호수아는 전쟁을 장군들에게 맡기지 않았습니다. 장군들을 전방에 보내고 자기는 후방에 있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최전방에 나섰습니다. 백성들의 맨 앞에 서서 올라갔습니다.
고대 전투는 지도자가 죽으면 끝장입니다. 그런데도 여호수아는 모든 두려움을 물리치고 최선봉에 서서 용기의 본을 보여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용기도 모방합니다. 장군이 담대하게 싸우면 병사들도 목숨을 걸고 싸웁니다. 여호수아는 최전방에서 싸우다가 유인책을 써서 아이성 사람들을 밖으로 끌어낸 후에 복병으로 치게 해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 때 여호수아모습이 26절에 증거 됩니다. “아이 주민들을 진멸하여 바치기까지 여호수아가 단창을 잡아 든 손을 거두지 아니하였고”
여호수아는 단창을 들고 끝까지 담대하게 전투에 임했습니다.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살아가게 만들려면 어릴 때부터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겁이 많고 소심한 아이나,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하거나 겁이 많아서 화장실에 혼자 가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용기를 키워주려면 부모가 잘 가르쳐야 합니다.
잘 가르치면 나만의 반응 스타일로 즉 순향적인 사람으로 변화가 됩니다. 그래서 잘 훈련되면 “나는 원래 이래”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는 더 잘 할 수 있어”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됩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라고 고백하고 “도무지 해결방법이 없어 틀렸어”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해결책이 있어 할 수 있어 기적은 있어”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됩니다.
학자들은 부정적인 감정의 50퍼센트는 유전에 의해서 나타나고, 다른 50퍼센트는 학습에 의해서 좌우된다고 말합니다. 아이들을 잘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게 되면 모든 염려 근심과 두려움을 이깁니다.
하나님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10: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딤후 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일찌기 우리 조상들은 양지바른 곳을 골라서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크고 작은 모든 도시나 군소재지도 급속히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늘어 나면서 그늘진 곳이 많이 생겼습니다. 도시화가 진행 될수록 한편으로는 어둡고 음침한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아 집니다. 그래서 갈수록 우울증환자가 늘어 난다고 합니다.
하루 종일 지하 상가 같은 데서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은 대단히 심각합니다. 우리의 몸은 햇빛을 필요로 하는데 하루종일 빛이 없는 곳에서 사니까 우울증에 걸릴 수 밖에 없고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도 마찬가지로 빛을 필요로 합니다. 생명되신 예수님이 없는 사람은 그 영혼이 어둡고 우울하고 음침 합니다. 그러나 빛되신 예수님을 모신 사람은 그 영혼이 예수님처럼 밝고 투명해 집니다.
제가 지난주에 이어령박사님을 소개 했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인 이어령박사님이 예수를 믿은후에 정말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대해서 부정적인 비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유일한 희망인 것은 그래도 예수믿는 사람들이 아직도 사회에서 많은 봉사를 하고있고, 가난한자들과 병든자들과 소외된자들과 장애자들을 돌보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기독교인들 이기에 소망이 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세례를 받은 이유는 세속적 의미의 평화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자신의 해체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세례를 받았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어령박사님은 지식으로나 학문으로나 인격으로나 더 이상 갈데가 없는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이요 훌륭한 분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예수를 믿고나서 생각해 보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신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면서 “내가 세례를 받은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세례를 받았다”라고 말씀 하신후에 좁은문으로 걸어 가신 것을 알고서
“예수님이 가신 길은 만사형통의 길이 아니라 인류 구원을 위해서 가시밭길,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행복은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과 전혀 다른 행복입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를 잘 믿으려면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서 주님처럼 섬기는 자가 되는 것이 예수를 잘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세례를 받고 자기해체의 길을 가기로 했습니다”
자기 해체의 길을 간다는 말은 내 자신을 부인하고 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좆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어령박사님은 세례를 받은후에 신앙생활을 하면서 중요한 진리를 깨닳았습니다. 교인들의 비리도 발견했지만 한편 칭찬받을 점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어령박사님은 이렇게 고백 했습니다. 교회 안에는 네 가지 유형의 크리스천이 있습니다. 첫째는 발로 뛰면서 믿는 사람입니다. 교회에 가면 가장 눈에 많이 띄는 사람이 발로 뛰면서 믿는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들은 새벽기도부터 시작해서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를 하면서 충성을 다하는 교인들입니다.
두 번째는 가슴으로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아서 눈물을 흘리고 마음 깊숙한 곳에서 할렐루야와 아멘을 외치는 성도들입니다.
그 다음에는 머리로 믿는 사람입니다. 선한일을 전혀 하지않고 말로만 떠드는 교인입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자신이었다고 이어령박사님은 토로했습니다. 발로 뛰어 보지도 않고, 가슴으로 받아들이지도 않고 머리만 굴리면서 비판판 하고 말로만 믿는 사람이 바로 머리로만 믿는 사람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어령박사님은 “머리로만 믿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번째는 온 몸으로 믿는 사람입니다. 발로도, 가슴으로도, 머리로도 믿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해서 온 몸으로 열심히 예배에 동참하고 기도하는 성도가 있는데 그런 신자가 바로 제대로된 신자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어령박사님은 예수를 믿기로 작정한 후에 자기의 과거를 다 버리기로 작정을 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장관의 명예, 대학교수의 명예, 문인으로서의 명예, 위대한 책을 쓰고 칼럼을 쓰고 글을 쓰면서 받은 명예, 사회에서 그 누구보다도 두터운 고위층과의 인맥등 이런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고,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 예수님앞에 서기로 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믿은 후에는 오직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기로 결심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상일에는 기승전결(起承轉結)이 있는데 기승결(起承結)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과학은 기승결이 있을수 있지만, 그러나 문학이나 종교는 기승전(起承轉)이 있어야 결(結)이 나온다고 하시면서 믿음의 행로에는 반드시 전(轉), 즉 전환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을 잘해서 복을 받으려면 전환, 즉 가던길에서 돌아서야만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도 돌아선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 믿었으면 술도 끊고 담배도 끊고 죄된 생활도 끊고 세상 즐거움도 끊고 제사도 끊고 세상 즐거움을 추구하던 삶에서 돌이켜서 하나님을 잘 경외하면, 비로소 결(結)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하면 하나님께서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축복을 주신다고 고백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알고나면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가장 좋으신 분이요, 복주시는 분이요, 믿어 마땅한 분임을 알게 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성경을 묵상하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참 제자가 될 수 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사람의 본분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사람답게 살고 보람있게 살아 갑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행복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소망이 넘칩니다.
아무쪼록 우리모두가 두려움에서 벗어나서 소망중에 즐거워하며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면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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