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날 저희 부부와 김예슬전도사님과 이중희성도님과 박예본성도님이 대전에 가서 이상경집사님을 심방 했습니다. 이상경집사님의 몸 상태는 심각할 정도로 힘든 상태였지만 집사님의 얼굴에는 완치에 대한 결연한 의지와 더불어 확신의 믿음이 보여 졌습니다.
우리 일행이 대전 을지병원에서 만나서 병실로 가는데 김은경집사님과 이상경집사님이 복도로 마중을 나왔습니다. 이상경집사님은 여러개의 링거줄을 링거 받침대에 걸고 걸어오셨습니다. 집사님이 저를 보자마자 “할렐루야! 목사님이 복도를 걸어 오시는데 빛이 번쩍 번쩍 했습니다. 목사님이 천사들과 함께 빛이나는 옷을 입고 오시는게 보였습니다” 하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이상경집사님이 영안이 열려서 놀라운 광경을 보신 것입니다.
김은경집사님은 우리 일행이 온다는 전화를 받고 을지병원 원목실로 가서 목사님 방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목사님의 도움을 받아 놓았습니다. 이상경집사님이 계신 병실에 환자 한분이 그날 수술을 받고 들어오셔서 예민한 상태라서 병실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원목실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원목실을 사용할수 있도록 양해를 구해놓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상경집사님과 함께 원목실로 갔습니다. 거기서 예배를 시작해서 기도시간에 돌아가면서 기도를 하는데 얼마나 성령께서 임재 하시는지 김예슬전도사님이 기도할때는 성령충만이 임했고 사모님이 기도할때는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제가 기도할 차례가 되었는데 아무래도 통성기도를 해야 겠다 싶어서 제 차례에 다같이 통성기도를 하자고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병원 원목 목사님이 옆방에서 세미나를 하고 있으니 기도를 중단해 달라는 통보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회가 잠시 중단이 되었고 저는 조용하게 기도를 마친후에 설교를 하려고 했는데 모든 성도들이 은혜가 충만해서 제가 기도할 때 아멘 아멘 하고 크게 아멘을 해서 제가 아멘을 작게 합시다 하고 기도를 했는데 그래도 아멘 소리가 너무나 컸는지 원목 목사님이 오셔서 예배를 그만 중단 하라고 해서 우리는 원목실에서 쫓겨나서 예배를 드릴 다른 장소를 찾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좋은 장소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른 병동으로 옮겨서 소파가 있는 조용한 곳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중에 에스겔33장을 설교 했는데 하나님께서 저에게도 많은 깨닳음을 주셨습니다. 죄와 허물로 얼룩진 인생을 살았기에 죽어 마땅하지만 저당물을 도로주고 강탈한 물건을 돌려 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지켜 행하여 죄악을 범하지 아니하면 그가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지라 라는 15절에 큰 깨닳음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심방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박예본성도님이 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목사님! 이상경집사님을 위해서 금식기도를 해야 겠어요 아버지가 아프실 때 제 목숨을 가져가시고 아버지를 살려 주세요 하고 몸부림을 치면서 기도를 했는데 아버지 외에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한적이 없어요 이상경집사님이 이제는 우리 남해세광교회에 등록하신 성도님이신데 그렇다면 집사님의 고난에 동참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오늘밤부터 금식을 시작했어요” 합니다.
저는 감동을 받아서 “참 잘했어요! 훌륭한 결단을 했네요!”하고 치하를 한 후에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30분쯤 있다가 다시 전화가 와서 “목사님! 삼일 금식 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토요일까지 일주일동안 금식기도를 하고 싶어요 지난번에 금식을 작정하고 다 못했는데 이번에 한꺼번에 기도를 하고 싶어요”하고 전화가 왔습니다.
저는 또한번 놀라서 “그렇게 길게 금식기도를 하려고요?”했더니 “예 기왕에 금식하는 바에는 이상경집사님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제 자신의 영성을 위해서도 기도를 하고 싶어요”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전화를 끊고 평신도가 저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이상경집사님을 위해서 금식기도를 한다는데 목사로서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주부터 금식기도를 해야 겠다는 감동이 있었는데 박예본성도님이 금식을 한다고 하니까 제 마음에도 금식을 해야 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저도 금식을 작정하고 월요일부터 이상경집사님의 치유를 위해서 금식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수요예배를 드리기 전에 하나님앞에 이상경집사님을 위해서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께서 “내가 치료해 주리라” 라는 확실한 음성을 듣게 되엇습니다. 저는 너무나 기뻐서 감격의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예배당에 가서 다시 통곡을 하면서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는 김은경집사님에게 “집사님 힘내세요! 주님께서 고쳐 주신대요 할렐루야 감사합니다!”라는 카톡문자를 보냈습니다. 얼마후에 김은경집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김은경집사님의 목소리를 들으니까 너무나 감사해서 목이 메서 말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집사님은 다시 목사님 하고 저를 불렀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감사해서 목이 메서 말이 안나오네요 하고 통화를 했습니다.
우리 모두의 간절한 기도와 바램이 하나님께 상달되어서 꼭 이상경집사님이 깨끗하게 완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최근에 한국 교회의 교인 수가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습니다. 특히 많은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났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청년들이나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교회를 찾지 않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세상에 너무나 즐겁고 다양한 문화와 볼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따분하고 재미없는 교회의 예배와 프로그램에 식상해서 안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세상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쾌락을 주지 못한다고 해서 교회가 희망을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희망은 세상의 희망과 다릅니다. 결코 화려하고 웅장한 교회 건물이나 구름떼 같이 모여 드는 교인들의 숫자에 토대를 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생명과 구원 되시는 예수님께 소망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네로가 통치하던 로마시대입니다. A.D. 64년 7월 여름에 로마의 중심가에는 엄청난 화재가 발생 합니다. 그 화재는 미치광이 황제 네로가 저지른 방화입니다.
그는 로마를 새롭게 건설 하겠다는 엉뚱한 착상에 로마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는 불타는 로마를 바라보면서 광적으로 즐거워 하면서 시를 지어 노래했습니다.
그 일로 인해서 성난 로마 군중들의 항의가 시작되자 네로는 당황해서 희생양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크리스찬들이 방화의 주범이라고 소문을 내고 그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줄줄이 잡혀가서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십자가형으로 처형을 당하고 사자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나중에 기독교인들은 모두다 로마를 떠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로마를 떠났습니다. 그들은 흩어져서 소아시아로 갔습니다. 그리고 소아시아의 암혈, 즉 바위 굴속으로 피신해서 고난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던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그들에게 서신을 보냈습니다. 그 서신이 바로 오늘 본문인 베드로전서입니다.
오늘 본문 베드로전서 1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 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편지하노니” 베드로사도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로마에서 떠나지 못한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지하무덤인 카타콤에숨어 들어가서 생활을 했습니다. 멀리 흩어진 사람들은 갑바도기아의 동굴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터키의 갑바도기아는 암굴 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전체가 거대한 바위 굴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네로 황제의 핍박과 추적을 피해서 도망간 성도들은 거기서 공동생활을 했습니다.
이어지는 서신을 보면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 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 지어다”라고 증거 합니다.
그리고 3절에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선포 합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1:3)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단어는 “산 소망”(Living hope)이라는 단어입니다. 산 소망은 “살아있는 소망”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흩어진 당시의 크리스찬들에게 소망을 가지라고 선언 했습니다.
이 산 소망이 바로 천국에 대한 소망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구원받아서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150년 전에 영국 에든버러 의과대학 교수였던 “제임스 심슨”이 마취제인 “클로로포름”을 발견했습니다.
그분이 마취제를 발견하기 전에는 수술을 할 때 생살을 수술칼로 째서 수술을 했습니다. 뼈가 부러져도 맹장에 걸려도 암에 걸려도 마취없이 생살을 칼로 찢어서 수술을 했으니 그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제임스 심슨 교수가 클로로포름을 발견했기에 고통없이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공로로 영국은 그에게 존귀한 귀족 작위를 주었습니다.
위대한 발견을 한 그분이 세상을 떠나게 되자 제자 교수들과 의사들이 문병을 하러 찾아와서 선생의 공로를 치하하려고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교수님! 교수님께서 평생동안 하신 일 중에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엇입니까”
제자들은 스승이 당연히 “마취제를 발견한 것이지”라고 대답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스승은 뜻밖의 고백을 했습니다.
“내 생애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은 예수님께서 불쌍한 죄인인 나를 위해서 죽으시고 나를 구원하셨다는 것과 더불어 나같은 죄인이 천국에 갈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한 일일세!”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역사에 남는 위대한 이야기입니다. 최고의 발견은 천국이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나같은 죄인이 천국에 갈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는 고백은 정확한 고백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목적은 구원 받아서 천국에 가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본문 9절에서도 보면 예수 믿는 목적을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구원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성경은 구원을 크게 두 가지로 증거 합니다. 첫째는 영혼의 구원입니다. 사람은 반드시 천국에 가야 합니다. 지옥은 절대로 가서는 안됩니다. 가장 중요한 구원은 영혼구원입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가장 큰 목적은 영혼구원을 위해서입니다. 영혼구원에 대해서는 다시 상세하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두 번째는 생활의 구원입니다. 영혼 구원을 받았다 해도 이 땅에서 살아가다 보면 여러 가지 어려움과 문제가 생깁니다. 삶의 고난에서 구원을 받는 것이 생활의 구원입니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은 질병에서의 구원이 필요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에서의 구원이 필요합니다. 강도나 인신매매범에게 붙잡혀 있다면 강도나 인신매매범으로부터 구원이 필요합니다.
나라가 위태로울때는 나라의 구원이 필요 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다양한 구원이 필요합니다. 성경에 보면 생활의 구원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증거 됩니다.
히스기야왕때 앗시리아의 산헤립왕이 18만 5천명의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 왔습니다. 나라는 풍전등화에 처했고 멸망은 당연한 수순입니다.
그때 히스기야왕은 하나님앞에 엎드려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왕의 기도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서 산헤립의 군대를 하룻 밤 사이에 모두 진멸하셨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왕은 나라를 구해 냅니다.
아람나라의 나아만장군은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그는 썩어가는 육체를 가지고 이스라엘의 엘리사선지자를 찾아갔습니다. 엘리사는 나아만에게 요단강에가서 몸을 7번 씻으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나아만은 처음에는 화가나서 우리나라의 아마나와 바르발강이 요단강보다 깨끗하지 아니하냐 하면서 분노 했습니다.
그러나 신하들은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을 시켜도 병이 낳으려면 해야 하는데 가서 일곱 번 씻는게 뭐가 대수입니까?” 하면서 나아만을 설득했고 결국 나아만은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씼었습니다. 선지자의 말에 순종해서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은 나아만은 살이 어린아이같이 되면서 문둥병을 고침 받았습니다.
빚으로 고통을 당하던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엘리사에게 도움을 구했습니다. 엘리사는 그녀에게 그릇을 다 갔다놓고 그 그릇에 한병남은 기름을 부어서 빚을 갚으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엘리사의 말에 순종했고 그 결과 빚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삶의 고통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분입니다. 생활에 어려움이 오고 삶에 고난이 올 때 예수님께 기도하면 예수님이 해결해 주심으로 구원을 받게 됩니다.
한 장로님은 십 만평 땅에 밤을 심었습니다. 그래서 엄청난 밤을 수확해서 일본으로 수출을 했습니다. 한 해는 일본에 밤 풍년이 들었습니다. 밤나무에 밤이 주렁 주렁 열렸습니다. 일본에서 매년 밤을 사러오는 사람이 “올해는 일본에 밤이 많이 열려서 밤을 싸게 팔지 않으면 안사겠습니다”라는 연락을 해 왔습니다.
장로님은 헐값에 밤을 팔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원하는 값에 밤을 팔면 장로님은 한 해동안 들어간 거름값과 밤을 따는 인부들의 수고비도 안나오게 되었습니다. 한해 밤농사를 망치게 되었습니다.
장로님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한 해 동안 지은 밤농사를 망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올해는 우리교회가 건축을 해야 합니다. 밤을 팔아야 하나님께 건축헌금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벌어졌습니다. 갑자기 해일과 태풍이 불어닥쳐서 일본 전역의 밤나무에 달린 밤이 다 떨어졌습니다. 그 후에 일본 장사꾼이 다시 장로님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태풍 때문에 우리나라의 밤이 다 떨어졌다고 하면서 밤값을 예전 가격보다 두배로 줄테니까 밤을 팔라는 소식이 왔습니다.
그래서 장로님은 이전에는 매년 5억원어치의 밤을 팔았는데 그해에는 10억원의 소출을 올렸습니다. 장로님의 부르짖는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어려운 문제가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생활구원보다 더 중요한 구원이 영혼구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구원 받아서 천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영혼구원은 우리에게 엄청난 축복을 가져다 줍니다. 첫째, 구원을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증거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말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소유하신 천국부터 온갖 좋은 은사와 선물들을 받을수 있는 자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두번째로 예수믿고 구원을 받으면 하나님의 도움과 보호를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 5절에 보면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라고 증거 합니다.
영혼의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를 받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에 하나님아버지께서 구원받은 자녀들을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전에 경산에서 열차 사고가 났습니다. 한 권사님이 딸 집에 가는데 손녀딸을 데리고 기차에 탔습니다. 그런데 손녀딸이 신나게 놀다가 음식을 파는 홍익회 직원이 카트를 밀고 지나갔습니다.
손녀딸은 자기가 좋아하는 과자가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을 보고서 할머니에게 칭얼대면서 “할머니, 할머니, 나 저 과자 사주세요 빨리 저 아저씨애게 가서 과자를 사요! 저 앞쪽으로 가봐요!”하면서 떼를 썼습니다. 권사님은 “얘야, 나중에 다시 돌아올 때 사줄께!”하고 이야기를 하는데도 손녀딸은 막무가내로 권사님의 손을 끌고 앞으로 갔습니다.
권사님은 손녀딸 아이가 하도 보채니까 잠시 손녀딸 아이가 하자는 대로 손녀딸 아이를 따라서 앞칸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앞쪽으로 두칸을 옮겨 가자마자 갑자기 열차가 탈선하여 처박혔습니다.
그때 권사님이 배정받은 좌석이 있는 칸의 열차가 격리 되면서 뒤집어 졌습니다. 그 칸에 있던 사람들이 가장 많이 죽었습니다.
권사님은 앞 칸으로 옮겨간 덕분에 무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이와 권사님을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생활에 늘 이와같이 극적인 보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때는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구원 받은 우리들에게는 때때로 고난도 축복이 되고 화가 변하여 복이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보호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어제 설교준비를 하다가 보니까 도박왕 안종주장로님이 나와서 간증을 했습니다. 이분은 전라남도 고성 분인데 청소년때 서울에 올라와서 당구장을 하는 친구집에서 당구를 치고 도박을 하면서 지냈습니다. 얼마나 화투를 잘했는지 도박으로 점점 돈을 벌기 시작하더니 강남의 땅 빌딩 집등 수십채를 도박으로 벌었습니다.
아내인 김덕자권사님은 처녀때 서울에 와서 지내다가 안종주장로님을 만났습니다. 서울에 갈 때 아버지가 딸에게 “다른 사람은 다 괜찮지만 도박하는 사람은 절대로 만나면 안된다”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도 만나고 보니까 도박꾼 이었습니다.
안종주장로님은 도박으로 돈을 엄청나게 벌면서도 아내에게는 돈을 한푼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김덕자권사님은 파출부, 요구르트배달, 포장마차등 안해본일이 없이 고생을 하면서 살림을 꾸려 갔습니다.
가장 참기 힘든일은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남편이 때리고 구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김덕자권사님은 고난의 세월을 인내로 견뎌 냈습니다. 첫 아기를 낳다가 실신해서 죽을뻔 했고 아기를 낳은 후에도 미역국도 못먹고 수제비만 먹고 지냈습니다.
그렇게 10년을 매를 맞으면서 지냈는데 어느날 순복음교회에 다니는 집사님이 전도를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삶의 모든 고난에서 벗어나고 행복하게 살수 있다는 말에 교회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마음에 평안이 오고 기쁨이 오고 행복이 왔습니다. 비로소 삶에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수십년동안 길거리에서 포장마차를 하면서 너무나 고생을 해서 중병에 걸렸습니다. 중병이 네가지나 되었습니다.
병원에도 못가고 지내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포장마차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던 어느날 찬송을 부르는데 갑자기 몸에 이상한 기운이 임하면서 네가지의 중병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권사님은 너무나 기뻐서 울고 또 울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 사건후에 권사님은 남편을 용서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집을 나간 남편을 찾아가서 돌아 오라고 권면을 했습니다. 남편은 집으로 돌아왔고 새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0년동안 남편에게 매를 맞으면서 지냈던 권사님은 이번에 또다시 고난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남편이 교회가는 것을 핍박한 것입니다. 남편은 교회에 가지 말라고 때리고 핍박하면서 성경책을 무려 스무권이나 찢었습니다. 사면 또찢고 사면 또찢고 하면서 때리고 구박을 했습니다.
그렇게 또다시 10년동안 매를 맞으면서 교회를 다녔습니다 어느날 남편이 부엌에서 칼을 가지고 나오더니 권사님의 머리를 싹뚝 싹뚝 잘랐습니다. 그렇게 머리를 세 번이나 짤렸습니다.
그런데도 권사님은 오직 믿음으로 남편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한지 10년만에 드디어 남편이 교회를 따라 나섰고 그때부터 남편은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새사람이 된 남편은 자기와 도박을 하면서 동업하던 사람들에게 집 열채를 나누어주고 자기는 도박에서 손을 뗐습니다. 그리고 새출발 했는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성령이 임해서 거듭난 후에 해외 선교부장이 되어서 아프리카 동남아등 선교사역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재물의 복도 부어 주셔서 매년 수억원을 선교하는데 헌신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었다고 다 형통한것만은 아닙니다. 남편의 핍박을 받기도 하고 직장 상사의 핍박을 받기도 합니다. 사탄마귀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통해서 고난과 어려움을 줍니다. 그러나 그런 고난을 이기고 나면 하나님이 크게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어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놀라운 변화가 시작됩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하나님을 믿으면 만사가 형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자동문이 열리듯이 범사가 형통해야 하는데 실생활에서는 오히려 그와 정 반대로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연단과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시험에 들게 됩니다. 부모는 자식을 교육하고 훈련합니다. 그래야 아이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훈련하고 연단하십니다.
하나님이 자녀를 교육하시고 훈련시키시는 목적은 첫째, 예수님을 닮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면서 사는 성도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항상 하나님의 뜻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내뜻대로 살면 롯처럼 패가망신을 당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처럼 연단을 받아서 하나님을 신뢰하면 복의 근원이 되고 믿음의 조상이 됩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이 성도에게 연단의 훈련을 시키는 이유는 하늘에서 상을 받게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인생은 이 세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의 문을 통과하면 성도에게는 천국이 기다리고 불신자들은 영원한 지옥이 기다립니다.
천국은 이 세상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곳입니다. 그러나 천국에서의 생활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느냐로 결정됩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뜻대로 살면 하늘나라에서 상급을 받게 됩니다.
네로황제가 기독교를 박해하던 시절에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정예부대로 손꼽히던 황제의 근위대 병사들 중에 그리스도인이 생겼다는 보고가 네로의 귀에 보고가 되었습니다.
네로는 즉시로 근위대 사령관에게 “당장 그리스도인을 색출하여 모조리 죽여라!”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사령관은 부하 장교에게 “황제 근위대 소속의 군사들을 모조리 집합 시키고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을 색출하라”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부하 장교는 근위대 병사들 수천명을 모아놓고 “여기서 기독교를 믿는 병사들은 모두 앞으로 나오라”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40명의 군사들이 앞으로 나왔습니다.
장교는 엄청난 숫자에 깜짝 놀랐습니다. 장교는 그들에게 “기독교인은 모두다 죽이라는 황제의 분부가 있었단 그러나 지금이라도 기독교 신앙을 버리는 자는 살려 주겠다 기독교 신앙을 포길할 사람은 다시 들어가라”
그런데 40명 중에 단 한 명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추운 겨울에 죽음의 형벌을 받기 위해 호수로 갔습니다. 거기서 옷을 다 벗고 알몸으로 꽁꽁 얼어붙은 호수에 누워있게 했습니다.
40명 모두가 살을 에이는 바람과 차가운 얼음판 위에 누워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가 얼음판 위에서 얼어죽어 갔습니다.
호숫가에는 천막이 쳐졌고, 그 안에는 커다란 목욕통이 있었는데 불을 지펴서 물을 따뜻하게 데웠습니다. 장교는 “누구든지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는 사람은 나와서 따뜻한 물속에 들어가서 살라”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40명 중에 아무도 포기하지 않고 모두 다 얼음판 위에서 얼어 죽어 갔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한 사람이 죽기 직전에 기독교인이 되기를 포기하고 일어나서 천막 안에있는 따뜻한 목욕통속으로 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즉사해서 죽고 말았습니다. 얼었던 몸이 따뜻한 물에 들어가자 마자 심장마비를 일으켜서 죽은 것입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지휘관은 소름이 끼쳤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장교가 얼어죽어가는 39명의 병사들을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호수 위 하늘에서 40명의 천사가 40개의 면류관을 들고 춤을 추더니 내려와서 그 면류관을 죽어가는 병사들의 머리에 씌워주는 것이었습니다.
장교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부관에게 “자네! 저 광경이 보이는가? 저기 저 하늘에서 면류관을 들고 내려오는 천사들이 보이는가?”하고 놀라서 물었습니다.
그러자 부관은 “뭐가 보입니까? 아무것도 없는데요?”합니다.
장교는 “저기 39명의 천사들이 면류관을 들고 내려오는게 안 보이는가?”하고 물었습니다.
부관은 “대대장님 도대체 뭐가 보인다는 말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장교는 비로소 하늘을 쳐다보다가 뭔가 결심을 한 듯이 근엄한 표정을 짓더니 천천히 자기의 투구와 옷을 벗기 시작했습니다. 완전히 옷을 다 벗은 장교는 얼어붙은 호수위를 걸어가더니 방금 신앙을 저버리고 밖으로 나와서 따듯한 물통에 들어가서 죽은 그 병사가 누워있던 자리로 가서 거기에 누웠습니다.
그 장교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는 사실과 더불어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닳았습니다. 그래서 한 병사가 저버린 구원의 면류관을 대신 받고자 죽음의 길로 나아간 것입니다.
네번째로 구원받은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서 영광중에 영생복락을 누립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은 세상에서의 삶에 목숨을 걸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살다보면 좋은 일도 만나고 힘든 일도 만나지만 그것 때문에 연연해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영원한 시간에 비교하면 아침 안개와 같기 때문입니다.
죽음 후에 들어갈 천국은 이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이 좋은 곳이요 또한 영원한 곳이기 때문에 천국을 사모하면서 살아 갑니다.
진해에서 사는 한 집사님이 여름에 8살 된 딸아이와 바닷가에서 놀다가 그만 딸아이를 잃어버렸습니다. 갑자기 다가온 파도가 딸아이를 집어삼킨 것입니다.
그녀는 딸아이의 장례를 치른후에 너무나 슬퍼서 울기만 했습니다. 교회에도 두 달간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밤에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꿈으로 딸아이를 보여 주셨습니다. 딸아이가 천국에 있는데 아름다운 옷을 입고 천사들과 함께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자기딸을 지켜주지 않아서 딸이 불쌍하게 죽었다고 한탄하면서 지내다가 자기 딸이 천국에서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보고서 비로소 마음을 돌이켰습니다.
그래서 다시 믿음을 회복하고 “할렐루야! 하나님 감사합니다! 딸 아이가 내가사는 초라한 집보다 천 배, 만 배 더 좋은 천국에서 잘 살게 해 주신 것 감사합니다. 환란많고 고생많은 세상에서 고생하지 않고 천국에서 행복하게 살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하고는 그 다음부터는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천국을 보여 주셨습니다. 천국에서는 고통이나 눈물이 없습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에는 사망도 애통도 곡도 아픈 것도 없습니다.
어제 새벽에 기도를 하는데 최예진집사님이 천국에서 아름다운 옷을입고 하나님의 보좌 옆에서 수종을 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최예진집사님은 예수 믿은지 일년도 안됐는데 전도왕 기도왕입니다. 온통 머릿속에 전도밖에 없고 하루종일 아기를 보면서 중보기도를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기뻐서 영광중에 천국에서 시중드는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박예본성도님은 저에게 목사님 기원오빠나 예슬씨나 예진이 언니는 믿음이 충성되고 변함이 없는데 저는 왜 그렇게 믿음이 널뛰듯 하는건가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본씨에게 다른 사람들은 주님께 뿌리를 박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만 예본씨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서 기복이 심한거예요 하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최예진집사님은 교회에 오는 그날부터 지금까지 목사가 시키는 대로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는 것은 무조건 순종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무조건 거절합니다. 언니는 그렇게 순종을 잘하니까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거라고 예본씨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천국에 갑니까? 에베소서 2장 8절에 보면 구원은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라고 증거 합니다. 선물은 받기만 하면 됩니다. 선물은 공짜입니다.
우리나라에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복음을 전할 때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갑자기 동네마다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그 때 영국에서 플레밍이 페니실린 항생제를 발견했고 그 항생제가 전 세계에 보급 되었습니다.
가난한 농부가 선교사를 찾아와서 전염병에 걸렸으니 도와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선교사는 미국에서 공수된 페니실린을 그 농부에게 주면서 “이 약은 최근에 발명된 약인데 아주 좋은 항생제입니다. 이 약을 사용하면 나을 것입니다” 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농부는 그 약이 비쌀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얼마냐고 물었습니다. 선교사는 “공짜입니다”라고 하면서 약을 주었습니다.
농부는 돈을 들고 있다가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선교사의 집을 나갔습니다. 농부는 생각하기를 “그처럼 좋은 약이라면 무척 비싸야 할텐데 그냥 주는 것을 보니 싼게 비지떡이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농부가 선교사 집을 나가자 선교사가 창밖으로 내다보았습니다. 그런데 농부는 집 밖으로 나가자 마자 선교사가 준 그 약을 땅에 던져버렸습니다. 얼마후에 그 농부는 죽었습니다. 미련한 농부는 생명을 건질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공짜라는 것에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의 선물도 공짜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내 대신 죄값을 지불 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아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두 번째는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
진짜 믿음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이슬람권에서는 입으로 예수님을 시인하면 감옥에 가거나 죽게 됩니다. 목숨을 걸어야만 시인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고백 할 수 있으니 복받은 나라에서 사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고 받아드리면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구원 받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첫째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심판에 이르지 아니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앞으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자마자 이미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예수님의 공로로 이미 구원을 받았다”
두 번째는 구원받은 성도는 구원받은 성도답게 생활을 해야 합니다. 어느 이단 종파에서는 이미 구원을 받았으니까 이제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것은 사탄마귀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구원에서 떨어져 나갈 수도 있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마7:19)
열매는 구원받은 성도의 행위의 열매를 말합니다. 삶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서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라고 증거 했습니다.
바울사도는 자기의 구원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에게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 버림을 당할 수 도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자기에게 주신 구원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을 쳐서 주님께 복종시키는 생활을 했습니다.
빌립보서 2장 12절에서 바울사도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렇게 증거 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했습니까? 방심하면 구원에서 떨어져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박예본성도님이 이 앞에 있는 종이로 만든 화한 꽃에 “방심하면 천국버스 노친데이”라고 썼습니다. 참 훌륭하고 정확한 표현입니다. 방심하고 나태하거나 타락하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바울사도도 그렇게 경고한 것입니다.
우리가 한 번 구원을 받았으면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변덕을 부리는 분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을 배신하고 엉뚱한 짓을 하거나 타락하면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2장 3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책이 바로 구원 받은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생명책을 말하는 것입니다.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는 말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과 17절을 보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예수믿은 사람은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전인 몸을 술이나 담배, 음란, 도박, 도둑질, 사기, 강도질등으로 더럽히는 죄를 범하면 하나님이 멸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멸하신다는 말이 바로 구원에서 떨어져서 지옥에 간다는 말입니다.
“나는 예수 믿고 구원 받았으니 이제 됐다”라고 생각하면서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행동하면 안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구원 받았으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혹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났다면 철저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사람은 지옥불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천국에 다녀온 어떤 분들은 교회 안에서 천국에 가는 사람들이 20%밖에 안된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내 자신이 정말 천국에 들어갈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진지하게 내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진정한 믿음은 회개를 동반합니다. 예수믿은 후에도 여전히 과거에 즐기던 일들을 계속 하고 있다면 그런 사람은 진정한 회개를 한 사람이 아닙니다. 진정한 회개가 없다면 구원의 확신이 있다해도 그 구원은 자가당착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동차를 운전해서 대전을 가는데 대전을 지나쳐서 갔다면 빨리 유턴을 해야 합니다. 자동차를 돌려서 대전으로 가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잘못간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간다면 그 사람은 목적지에 갈 수 없습니다.
십일조 내고 주일날 교회에 나온다고해서 안심해서는 안됩니다. 진정한 회개는 구원 받은후에 옛 생활을 버려야 합니다. 끊을 것은 끊고 버릴 것은 버리고 과감하게 돌이켜야 합니다. 진정한 회개와 들이킴이 구원 받은 증거입니다.
천국신앙은 하나님의 뜻대로 산 성도들을 위해서 준비하신 영원한 보상의 세계입니다. 천국을 믿으면 세속적인 어떤 작은 이윤이나 이익에 매달려서 몸부림을 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타계신앙 즉 천국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1세기를 살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성도들의 대담한 믿음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사자밥이 되면서도 두려워 하지않고 기둥에 묶여서 화형을 당하면서도 찬송을 불렀던 그들의 담대함은 천국신앙에서 온 것입니다. 천국을 믿는 신앙이 삶을 바꾼 것입니다.
고향에 가는 사람들이 고생 고생 하면서도 즐겁게 가는 이유는 사랑하는 부모형제를 만난다는 기쁨 때문에 즐겁게 가는 것입니다. 고향에 딱 도착하는 순간 그 고생을 다 잊어버립니다.
마찬가지로 저 천국에 영원한 영생복락이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이 땅에서 겪는 어려움도 견딜 만 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승리를 믿는 사람들은 죽을때에도 평안하게 죽어서 천국에 갑니다. 예수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마치 축구나 야구로 비유하면, 경기를 생중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승리가 이미 확정된 경기를 녹화 비디오로 보는 것과 같습니다. 다 이겨놓은 경기를 평안한 마음으로 보는 것처럼 그렇게 평안한 마음으로 천국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항상 의식주 문제 때문에 힘들어 합니다. 예수를 믿고 나서도 늘 삶의 문제로 일희일비합니다. 물론 십자가와 부활이 당장 나에게 돈을 가져다주거나 내 삶의 피부에 와 닿는 주제는 아닙니다. 그러나 십자가와 부활의 승리가 성도의 참된 소망이라고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 하셨습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살펴보면 구원과 천국이 대 주제입니다. 그게 복음의 핵심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에 소망을 가지고 살지만 그것은 신기루에 불과 합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 자살률 1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경제가 부요해지고 굶어죽는 사람도 없고 점점 좋아지고 있지만 자살로 죽는 사람이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보다 훨씬 많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의 삶에 대한 절망이 깊어지고,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께서 영육간에 복을 주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축복받은 사람들인지를 알면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게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소망중에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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