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포도나무

[스크랩] 2018년3월11일주일낮마태복음5장1-12 천국

그리운시냇가 2018. 3. 12. 10:27


어제 김예지성도님과 김제우성도님의 결혼식이 있어서 다녀 왔습니다. 서면에 있는 바다펜션에서 결혼식을 했는데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행복한 결혼식을 거행 했습니다. 오랬만에 날씨도 좋았습니다. 그래서 따사로운 바닷가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춥지않은 가운데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우리 남해세광교회의 윤기원집사님과 최예진집사님과 박예본성도님은 김예지성도님과 함께 힐튼호텔 골프클럽에서 같이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에 박예본성도님이 꿈을 꾸었는데 김예지성도님이 꿈에 보이더랍니다. 그래서 왜 그 언니가 꿈에 보였을까?”하고 궁금해 했는데 그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김예지성도를 구원하시려고 김예지성도님이 박예본성도님의 꿈에 나타난 것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게다가 기도중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예본이는 캐디다!”라고 말씀을 하셔서 그게 무슨 뜻인지 잘 모르고 박예본성도님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드디어 박예본성도님이 어제 결혼식장에 가서 결혼식이 끝나고 저에게 목사님! 드디어 하나님께서 예본이는 캐디다!”라고 말씀하신 이유를 깨닳았어요!“하고 고백을 했습니다.


오랬만에 만난 직장 동료들을 만나서 교제를 하다 보니까 하나님께서 그 선후배 동료들을 구원하라는 뜻으로 해석을 한 것입니다.


어제 신기한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박예본성도님의 꿈에 나타난 김예지성도님의 결혼식에 가서 그녀를 구원하려고 한달 전부터 기도를 해 왔습니다. 그런데 어제 청년 부부들과 함께 바다펜션에 도착을 했는데 입구의 가장 좋은 곳에 주차장 한곳이 예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주차를 하고 결혼식에 참석을 했습니다.


결혼식이 끝나고 마련된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는데 식사를 하다 보니까 옆자리에 앉은 중년 부인이 최예진집사님이 안고있는 지윤이를 보면서 아이구 넌 목사님의 사랑을 많이 받는구나!“ 하면서 말을 걸어 오셨습니다.


그래서 최예진집사님이 교회 다니세요?”하고 물었더니 교회를 다니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알고 보니까 그분은 권사님이셨고 그 옆쪽에 앉아계신 어르신이 신랑의 큰아버지였는데 장로님 이셨습니다. 그래서 장로님과 통성명을 하면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알고 보니까 신랑의 큰 아버님이 부산 새우리교회의 윤강덕장로님이셨습니다. 장로님은 남해 당항교회가 고향교회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반가와서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했는데 알고 보니까 신랑의 부모님들이 3대째 독실한 기독교 집안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신부를 축하하고 신부를 전도하러 갔는데 알고 보니까 신랑측도 뿌리깊은 신앙의 집안임을 알게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기뻐했습니다. 


그 많은 하객들 중에 우리 바로 옆에 앉아서 식사를 하신분이 신랑의 큰아버지와 큰어머니였다는 사실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우리는 결혼식장에 가기전에 윤기원집사님댁 앞에서 차안에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한 후에 결혼식장으로 갔습니다.


하나님! 오늘 결혼식장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해 주시고, 신랑신부를 축복하고 또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그리고 복음을 전하고 그리고 우리가 가장 행복한 하객들이 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를 하고 갔습니다.


그런데 기도한 그대로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신랑 신부를 축복했고 두사람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청년 부부들은 그곳에 동참한 하객들에게 열심히 예수를 믿으라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신랑 신부와 가장 절친 친척인 큰아버지 부부를 만나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큰아버지 장로님은 저에게 조카가 예수를 믿도록 권면을 하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식사를 마치고 신랑과 인사를 나누면서 대화를 하다 보니까 큰아버지 장로님이 가시면서 예수 믿고 교회 나가라라고 권면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는 신랑과 신부에게 우리교회를 소개하고 꼭 시간을 내서 방문해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신랑이 교회를 방문하겠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윤기원집사님과 최예진집사님과 박예본성도님은 그곳에서 함께 일하던 많은 선 후배 동료들을 만났습니다. 그중에는 모태 신앙인도 있었고 부모님이 권사님인 분도 있었습니다. 모두가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열심히 전도를 했습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세분은 저에게 목사님! 몇명은 전도가 가능할 것 같아요!”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특히 박예본성도님이 하나님께서 왜 저를 캐디라고 하셨는지를 알았어요!” 라고 고백한 것은 우리 모두에게 큰 소망이 되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이세호성도님집을 방문해서 효준이를 위해서 기도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이세호성도님의 집은 남해의 풍광이 아름다운 산자락 밑에 있었는데 가서 보니까 이세호성도님과 송영희성도님께서 정성껏 집을 가꾸어서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잘 어울리는 집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이세호성도님의 어머니도 만나고 세준이의 여자친구와 언니도 보고 특히 수술을 마친 효준이가 아주 빠른 속도로 건강을 회복해 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모두가 기뻐 했습니다. 이세호성도님 가정이 하루빨리 교회에 오셔서 우리가 누리는 이 행복과 축복을 누리시면서 사시기를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 한가지 지난주에 있었던 감사한 일은 우리교회의 새벽기도가 부흥이 되고 있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10년세월이 지나면서 새벽기도에 나오시던 권사님들중에 몇분은 돌아가시고 몇분은 요양원으로 가시고 몇분은 다른 교회로 가셔서 최근에는 열 두세분이 새벽기도에 나오셨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20명 정도가 새벽기도에 동참하고 계십니다. 교인의 3분의 1이 새벽기도에 나오고 있습니다. 대전에서 오신 이상경집사님과 김은경집사님께서도 사순절을 지키기로 작정하고 가장 먼곳에서 열심히 새벽기도에 동참하고 계십니다.


고사에서 김춘자권사님께서도 새벽예배에 나오고 계십니다. 김춘자권사님은 새벽예배에 오고싶어도 차량운행을 못해서 못나오셨는데 윤기원집사님과 김예슬전도사님이 남해읍에서 매일 새벽기도를 나오면서 모시고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새벽기도가 평생에 숙원이지만 새벽잠이 많아서 못나오시던 이진숙권사님도 드디어 새벽예배에 동참하고 계십니다. 이진숙권사님이 새벽예배에 오니까 정봉임권사님이 가장 기뻐 하셨습니다.


정봉임권사님이 금음에서 혼자 나오시다가 같은 동네에 사는 이진숙권사님이 나오니까 동역자가 생겨서 얼마나 기뻐 하시는지 이진숙권사님과함께 차를 타면서 아이구! 새벽에 이진숙권사님을 보니까 죽은 부모님이 살아서 돌아오는 것보다 기쁘다!”라고 하시면서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이제 이진숙권사님은 목사안수를 받게될 사위와 사모님이 된 딸과 모든 자녀들과 손주 손녀들 그리고 형제들과 이웃들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하는 귀한 자리로 나오셨습니다.


교회에서 엄청 중요한 사명자가 새벽성도입니다. 하나님은 새벽성도를 기뻐하십니다. 새벽기도가 부흥되는 것은 교회가 부흥된다는 징조입니다. 아무쪼록 새벽제단의 부흥이 교회의 부흥으로 이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이제 말씀을 증거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하신일을 가장 잘 나타낸 성경말씀이 마태복음935절입니다.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일에 전념 하셨습니다. 공생애를 마칠 무렵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24:14)라고 말씀 하셨습니다예수님은, 모든 민족에게 천국 복음이 전파되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천국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정말 천국이 있을까?”하고 궁금해 합니다. 천국은 당연히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믿습니다. 그 근거는 천지를 창조하신 예수님께서 천국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서 피를 흘리면서 돌아가시기 직전에도 회개한 강도에게 천국을 소개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23:43)


천국에 계셨던 예수님은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가르쳐 주시면서 나사로는 죽었을 때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고 부자도 죽어서 장사되었는데 그는 지옥에 들어가서 뜨거운 지옥불 속에서 고통을 당하면서 지낸다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에 들어갈 사람의 자격조건을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7:21)


십자가 고난을 앞두고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최후의 만찬을 나누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한번 더 천국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14:1-3)


예수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구원 하시려고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삼일 만에 살아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40일 후에 천국으로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 아버지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예수님은, 예수믿는 성도들을 위해서 천국을 예비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믿는 성도들을 천국으로 데려 가십니다.


예수님은 또 한가지 아주 중요한 심령천국도 가르쳐 주셧습니다. 우리가 죽어서 들어갈 천국과 더불어 살아 생전에 우리 마음속에서 이루어지는 천국에 대해서도 말씀 하셨습니다.


한번은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17:20-21)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너희 안에라는 말은 너희 마음속에라는 뜻입니다. 곧 천국은 성도들의 마음속에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성도들이 하늘나라에 있는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이 땅에서 이미 천국을 마음속에서 누리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본래 천국은 하나님께서 계신 곳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아름다운 영원한 나라입니다. 천국은 온통 아름다운 황금과 형용할수 없는 보석들로 만들어진 나라입니다. 천국은 아름답고 풍요롭기 때문에 천국 이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에 천국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믿고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신 성도는 이미 천국을 누리면서 살아갑니다. 고린도전서 316절에 보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3:16) 라고 증거 합니다.


예수믿은 성도들은 성령을 모신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래서 예수믿은 성도들은 이미 마음속에 천국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믿고 하나님을 마음속에 모시고도 기쁨이 없고 행복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지 못한다는 증거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아이는 부모를 잃어버린 고아입니다. 고아에게는 아무리 맛있는 것을 주고 좋은 장난감을 주어도 행복하지 못합니다. 가장 중요한 부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부모를 둔 아이들은 다 행복합니까? 그렇지도 않습니다. 행복한 아이들은 부모와 관계가 좋은 아이들이 행복합니다. 부모와 늘 갈등과 불화속에서 사는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살아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아이의 행복은 부모의 사랑을 받고 또 아이도 부모를 신뢰하고 사랑할 때 행복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믿은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천국에 들어갈 자격은 얻지만 그러나 예수믿고난 후에 행복하게 살려면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야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는 믿었는데 하나님의 말씀과 전혀 상관없이 내 멋대로 살고 내 고집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절대로 행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늘 이상한짓을 하면서 교회를 망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천국 시민의 가치관은 세상의 가치관과는 전혀 다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은 물질만능의 가치관이 지배합니다. 사람들은 무엇이든 경제논리로 생각해서 매사에 나에게 얼마나 이익이 되는지를 저울질하면서 삽니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 오지않고 예수를 믿지 않는 이유는 신앙생활이 경제성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가면 헌금을 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교회에 오질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밖에 모르는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헌금 때문에 교회에 못오는 사람은 영원한 천국의 축복을 놓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에 못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믿고 천국 시민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은 경제적인 접근으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습니다. 내가 예수 믿으면 경제적으로 얼마나 이익이 되는가를 계산하지 않습니다. 나같은 죄인이 구원받아서 천국에 들어가서 영원히 살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고마워서 헌금뿐 아니라 내 모든 것을 다 드리고 생명을 드려도 아깝지 않다는 감사함 속에서 살아갑니다.


로마서 1417절로 18절에 보면 세상과 하나님 나라의 차이점을 이렇게 증거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은 세상사람들이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가치관은, 좋은 것을 먹고,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곳을 여행하고, 그래야 살맛이 나고 행복합니다. 그렇게 살려면 돈이 필요하기에 돈을 벌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 합니다.


물론, 경제활동을 하면서 열심히 돈을 버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일입니다. 천국 시민 된 성도들도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돈 버는 것 보다 더 중요하고 우선적으로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천국 시민의 가치관을 지키면서 사는 일입니다.


하나님 나라 즉 천국은 먹고 마시는 일이 우선이 아닙니다. 성도는 진수성찬이 없어도 마른 빵 한 조각만 놓고서도 감사합니다.


예수님은 생계를 위해서 걱정하는 우리에게 이같이 말씀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6:25-34)


하나님은 예수믿는 성도들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는 분입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은 산상수훈중에 팔복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누릴 최상의 복 여덟 가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 보면, 이 여덟 가지 복은 한가지 복으로 귀결 됩니다. 그것은 천국이 너희 것이다라는 축복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우리에게 주시면서 천국시민이 가져야할 가치관과 삶의 태도가 무엇인지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중에 첫 번째가 3절과 같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는 말씀입니다.


천국을 소유하고 천국을 누리려면 심령이 가난해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은 그 마음이 겸손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유는 마음이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도 얼마든지 잘 살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자기의 무능을 절감하고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책임지고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천국의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해 주십니다.


예수를 믿은후에 천국의 기쁨과 평안을 누리면서 살았던 한 사람을 소개 합니다. 그 사람이 바로 베드로입니다.


느날 베드로는 밤에 고기잡이를 나갔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너무나 맑아서 낮에는 고기가 잡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밤에 고기를 잡습니다.


베드로가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그 날따라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새벽이 되었고 더 이상 고기를 잡을 수 없는 아침이 되자 베드로는 할 수 없이 그물을 씻으면서 정리를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다가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미 아침부터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 왔습니다.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몰려들자 예수님은 생전 처음 만난 베드로에게 배를 좀 빌려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배를 빌려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배 위에 올라 서서 사람들에게 천국복음을 가르쳤습니다. 베드로는 귀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피곤한 몸으로 그물을 정리했습니다.


씀을 마친 예수님이 그물을 씻고 정리하는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5:5-6) 라고 고백한 후에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고기가 얼마나 많이 잡혔는지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그래서 동료들이 달려가서 고기를 건졌는데 물고기가 두 배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4:19)라고 말씀 하셨습니다베드로는 즉시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그후로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베드로는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가장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 이상하고 신기한 일이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육신적인 출발은 전적으로 부모님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부모를 통해서 태어납니다. 이 세상에 자기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부모도 나라도 자기의 성씨도 자기가 정하지 못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부모를 통해서 세상에 태어납니다. 태어나고 보니까 내가 대한민국 사람이고 태어나고 보니까 내 성도 아버지의 성을 따라서 김씨 이씨 박씨 최씨가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천국 백성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아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리가 내뜻대로 예수님을 믿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고 나로 믿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와같은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16:17)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찾으셨습니다. 베드로의 시작은 베드로가 아니라 예수님이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시작도 아브라함이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모세의 시작도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바울의 시작도 바울이 아니라 예수님이셨습니다.


우리의 시작도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베드로는 엄청나게 고기를 많이 잡았습니다.


그런데 이때 베드로의 첫 고백이 놀랍습니다. 고기를 배에 가득 싣고 물가로 나온 베드로가 예수님 앞에서 고백한 첫 고백은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고백이었습니다.


내가 죄인임을 아는 것이 믿음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죄를 안 지었어도 죄인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원죄가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예수님을 믿은후에 진리를 깨닫고 이렇게 고백 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3:10)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 하더니”(3:23)


베드로가 배에서 나와서 고백한 고백을 보면 뭔가 앞뒤가 맞질 않습니다. 밤새도록 물고기를 한 마리도 못잡다가 예수님 말씀에 순종해서 깊은곳에 그물을 내렸더니 물고기를 엄청 많이 잡았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에게 예수님 감사 합니다! 고기를 엄청 많이 잡았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고백해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을 했으니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것이 있습니다. 가난한 내가, 돈이 엄청나게 많은 대기업 수장이나 또는 큰 부자를 만나면 내가 얼마나 가난한 사람인지를 알게 됩니다.


낮고 천한 내가, 지위가 높은 대통령이나 권세자를 만나면 내가 얼마나 낮은 사람인지를 알게 됩니다. UFC헤비급 챔피언 벨트를 놓고 싸우는 강한 사람들을 보면 내가 얼마나 약한 사람인지를 알게 됩니다지식이 해박한 박사나 박식한 사람을 만나면 나의 무식함을 알게 됩니다.


지난 금요일날 청년부부들이 금요기도회를 했는데 제가 설교준비 하느라 참석을 못했습니다. 기도회가 끝나고 전화로 이상경집사님을 위해서 기도를 해 드렸습니다. 나중에 제 집사람을 통해서 들었는데 이상경집사님이 우리 청년부부들의 열심과 섬김을 보면서 내가 허송세월을 보낸 것 같다!”라고 고백을 하셨다고 합니다. 참 솔직한 고백입니다. 열심을 품고 섬기는 사람을 보면 나의 부족함을 보게 됩니다.


무엇 보다도 예수님 앞에 서면 내가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전능하시고 성결하신 예수님 앞에서 자기의 진심을 고백합니다. “나는 죄인입니다이것이 베드로의 첫 번째 고백입니다.


이어서 베드로의 두 번째 고백은 영성이 묻어나는 고백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천국복음을 전파 하시고 병든자를 고치시고 사람들을 먹이실 때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보고 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어느 순간부터 기적을 일으키지 않고 내가 죽으러 왔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너희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지 않으면 나와 상관이 없다 라고 말씀 하시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6:67)


그러자 베드로가 두 번째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6:68)


이것이 베드로가 고백한 두 번째 신앙고백입니다. 내가 죄인임을 알고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구원의 길이 가깝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죄 때문에 죽는 것입니다. 죄로인해 죽어서 지옥에 간다는 사실을 깨닳은 사람은 영생의 길을 찾게 됩니다.


병든 사람은 의사를 찾을 수 밖에 없습니다. 배고픈 사람은 먹을 것을 찾을 수 밖에 없습니다. 추운 사람은 따뜻한 곳을 찾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한 베드로는 드디어 예수님만이 영생의 말씀을 주시는 분임을 깨닳았습니다.


하나님은 천하에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영생의 말씀을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베드로는 비로소 예수님만이 영생을 주시는 분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절대로 예수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고백 했습니다.


그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가이사랴 빌립보로 가셨습니다. 그 곳에서 예수님은 한번 더 제자들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16:13)


그때 제자들은 예수님을 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다시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 때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16)


그 고백을 들은 예수님이 너무나 기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16:17-19)


베드로의 세 번째 고백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는 고백이었습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깊어집니다. 믿음도 깊어지고 신앙심도 깊어 집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합니다. ()는 헬라어로 큐리오스인데 절대자라는 의미입니다. 주 앞에서는 무엇을 시키든지 순종해야 합니다.


나폴레옹 군대가 러시아에 쳐들어 갔다가 후퇴할 때 추운 겨울에 다리가 흔들렸습니다. 잘못하면 다리가 무너져서 건너갈수가 없게 됩니다. 나폴레옹은 네사람의 병사에게 물속에 들어가서 교각이 흔들리지 않도록 붙들고 있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네사람이 물속에 들어가서 다리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병사들이 다리를 안전하게 건넌 후에 나폴레옹이 네 병사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너희들도 철수하라그러나 네 병사는 꼼짝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부관이 내려가서 보니까 네사람의 병사는 물속에서 교각을 붙들고 얼어 죽어 있었습니다. 빳빳하게 얼어서 그들도 교각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주()에게 순종하는 자세 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 라고 고백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라고 고백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하나님의 아들이 예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죽기까지 주님께 충성했습니다.


이어서 베드로의 네 번째 고백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고백한 고백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일 먼저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 가신 후에 옛 직업인 어부일을 하려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갈릴리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요한 복음 21장에 보면 그때의 광경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다시 어부일을 시작 했지만 고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를 찾아 오셨습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예수님인 줄 몰랐습니다. 감히 죽은 사람이 살아 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호숫가에서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21:6) 그래서 그물을 던졌더니 엄청 많은 물고기가 잡혔습니다. 그때 한 제자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수님이다!”


베드로는 물속으로 뛰어 들었고 예수님에게로 다가 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준비해 놓으신 아침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물었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 어린 양을 먹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또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또 세 번째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근심하면서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내 양을 먹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신했는데도 예수님은 베드로를 다시 찾아 오셨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비로소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세번째에 베드로는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한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비로소 예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깨닳은 것입니다.


지금까지 베드로는 자기를 위하여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자기를 위해서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베드로는 그동안 예수님을 믿었지만 예수님을 이용만 했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구원을 받아야만 했기에 예수님을 믿었고, 기도 응답이 필요했기에 예수님께 기도했고, 병고침이 필요했기에 예수님을 따랐고, 먹을 것을 주셨기에 예수님을 따라 다녔고 영생을 얻고 천국에 가야만 했기에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비로소 예수님이 얼마나 존귀한 분인지를 깨닳았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이용할 분이 아니라 사랑해야 할 분임을 깨닳았습니다. 그래서 비로소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제는 나를 위하여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위하여 예수님을 믿는 신앙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는 예수님을 위해서 얼마나 희생하는지를 보면 알수가 있습니다.


마음이 있는 곳에 물질이 있고,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습니다. 하루 24시간을 지내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누구에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과 늘 같이 있고싶어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돈 쓰는 것이 아깝지 않습니다.


박예본성도님이 저에게 설교준비를 하면서 간식을 드시라고 과자를 보내 주었습니다. 택배로 왔는데 다섯상자가 왔습니다. 사랑만큼 많은 과자를 보냈습니다.


지난 금요일날 박예본성도님과 통화를 하는데 참 솔직한 고백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무당을 가까이 하면서 살때는 무당에게 주는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고 합니다. 무당이 천만원짜리 굿을 해야 한다고 하면 대출을 해서라도 돈을 주고 굿을 했다고 합니다.


굿을 하면 뭔가가 눈에 보이고 느껴지는게 있어서 수천만원을 갖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데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웬지 아깝더랍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헌금을 해도 당장 나에게 축복이 나타나거나 보여지는게 없으니까 헌금이 아깝더라는 것입니다. 참 솔직한 고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천국과 지옥을 다스리시고 나의 영원한 생명을 책임져 주시는 분입니다.


베드로가 뒤늦게 이런 진리를 깨닳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을 한 것입니다. 이 고백으로 인해서 베드로의 믿음은 한 차원 더 높아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베드로의 믿음은 능력의 믿음으로 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초대교회는 사도들을 통해서 부흥성장합니다. 사도행전 1장부터 8장까지는 베드로 행전입니다. 9장부터는 바울사도가 등장하여 28장에서 사도행전이 마칩니다. 그래서 9장부터 28장까지는 바울행전입니다.


베드로 행전에서 베드로는 맹 활약을 합니다. 하루에 3천명을 회개시키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앉은 뱅이를 일으킨 날은 5천명이 회개하고 교회로 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적이 일어날 때마다 베드로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 말이 바로 예수 이름으로입니다.


어느날 베드로가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다가 성전 미문앞에 앉아았는 앉은뱅이를 보고서 이렇게 선포 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3:6)


이제 베드로는 오직 예수 이름만 외쳤습니다. 예수 이름은 놀라운 이름입니다. 모든 기도응답이 예수 이름으로 이루어집니다. 모든 기적도 예수 이름으로 이루어집니다. 천국도 예수 이름으로 갑니다.


베드로가 하루에 3천명을 회개시켜서 하나님께 돌아 오게 한날 베드로가 외친 설교가 이렇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벧전2:38-39)


세상 사람들은 이 진리를 알지 못합니다. 예수 이름 권세에 담긴 놀라운 축복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천국을 선물로 받고 온갖 좋은 은사와 선물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오는데도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오직 재물을 많이 가져야만 행복할줄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나 깨나 돈을 따라갑니다.


도대체 돈을 얼마를 가지면 만족합니까? 세계 제일의 부자였던 솔로몬은 증거 하기를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5:10) 라고 고백 했습니다.


마음이 가난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많은 재물을 가져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결코 천국을 누릴 수도 없고 천국에 들어갈수도 없습니다.


러나 심령이 가난한 성도는 재물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언제나 천국의 축복을 누리면서 살아갑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깨닳은 사람은 비로소 예수님을 사랑하는 단계의 믿음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능력과 기적과 은혜와 온갖 좋은 은사와 천국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도 예수님을 사랑함으로서 예수님이 주시는 온갖 좋은 은사를 누리다가 천국에 다 들어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출처 : 보물섬남해세광교회
글쓴이 : 행복을 주는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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