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고재준집사님이 식사를 대접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전라도 한정식집에 가서 식사를 했습니다.
4월달에 삼천포에서 전라도 한정식당을 운영하시는 박정진사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박정진사장님은 구봉서씨와 배삼룡씨등 코메디언 1세대입니다. 3년전에 우연히 삼천포에 갔다가 전라도 한정식집에 들어가서 사장님을 만났습니다.
역시 음식은 전라도였습니다. 사장님과 사모님이 전라도분인데 모든 음식이 참 맛있었습니다. 저는 사장님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사장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 저는 교회에 가고싶은 마음이 있는데 제 아내가 워낙 독실한 불교 신자라서 교회에 가기가 어렵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2년전에 식당의 메뉴가 바뀌었습니다. 한정식 메뉴에서 불고기와 게장이 빠지고 칼국수를 대체 했는데 그 다음부터 식당이 사향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4월달에 사장님이 저에게 전화를 해서 "목사님! 제가 남해에 가서 한정식당을 운영하고 싶은데 어떻겠습니까?"하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사장님에게 "그거 참 좋은 생각입니다. 남해에는 마땅한 한정식집이 없습니다. 남해에서 한정식당을 하시면 대박이 나실겁니다. 하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저는 사장님에게 메뉴를 이전에 하던대로 원상복귀를 하시고 식사비를 만원에서 만 이천원을 받더라도 이전 메뉴를 하시라고 권면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사장님께서 그렇지 않아도 메뉴때문에 고민을 했는데 목사님의 조언대로 해 보겠습니다"하고 대화를 나눈후에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지난주에 한정식당을 개업했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그래서 개업축하 화분을 하나 주문해서 보내드린후에 다음날 고재준집사님과 함께 전라도한정식당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들어가는 입구에 화분이 하나 놓여 있는데 리본이 없습니다. 그래서 가까이 가서 보니까 리본에 남해세광교회의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그 리본을 꼬깃 꼬깃 접어서 화분 나무 가운데에 쳐밖아 놓았습니다.
저는 꾸겨진 리본을 뺐습니다. 그랬더니 사장님이 나오셔서 보더니 아니 누가 이 리본을 이렇게 꾸겨놨지? 목사님께서 보내 주신게 감사해서 일부러 식당 입구에 전시를 해 놓은건데 어떤사람이 이 리본을 이렇게 꾸겨놨지?"하면서 속상해 하셨습니다.
저도 그 모습을 보니까 마음이 편칠 않았습니다. 리본을 펴 놓고 식당으로 들어갔더니 사장님이 따라오셔서 "목사님! 고맙습니다. 목사님께서 조언해 주신대로 음식을 이전처럼 준비하고 음식값도 12000원을 받았더니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오는지 삼천포에서는 점심식사 시간에 사람들이 오고 저녁에는 사람이 없는데 여기는 점심시간에도 많고 저녁에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계속 사람들이 미어 터집니다. 고맙습니다"하고 인사를 하셨습니다.
저도 조언을 해서 그랬는지 사장님이 새로 개업한 식당의 장사가 잘 된다니까 마음이 기뻤습니다. 사장님이 대박이 난건 본인의 경험과 노하우도 중요하지만 고객의 의견을 기꺼이 수용하고 받아드렸기 때문에 대박이 난 것입니다. 서로가 하나 되었기에 좋은 열매가 맺은 것입니다.
오늘은 하나되게 하소서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국민성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은 하나가 되지 못한다”라는 이야기들을 합니다.
좁은 땅에 살면서 선거 때만 되면 단골메뉴처럼 제기 되는것이 지역주의입니다. 경상도는 경상도끼리 모여서 “그래도 박근혜 찍어야지!!”하고 떠들어 대고 전라도는 전라도끼리 모여서 “그래도 문재인이 찍어야제!!”하면서 지역주의를 버리지 못하고 갈라 집니다. 이것은 수천년동안 내려온 고질적인 문제이기에 해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직장에서도 기업에서도 학연과, 지연에 따라서 끼리 끼리 모입니다.
이런 와중에 우리 민족을 하나되게 하는 것이 있다면 독도와 스포츠입니다. 국론이 갈려 있어도 일본에서 지도급 인사가 “독도는 일본 땅이다”라는 망언을 하면, 우리 국민들은 독도 때문에 하나가 됩니다. 그래서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길 때마다 그것이 우리 국민을 하나로 만드는 자극제가 되고 있습니다.
국민을 뭉치게 만드는 또 한가지는 스포츠입니다. 평소에 축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월드컵을 하면 열심히 경기를 보면서 응원을 합니다. 우리의 시선이 축구에 쏠려 있는 동안에는 전라도도 경상도도 필요 없습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두가 하나 되어서 우리나라 선수들을 응원 합니다.
하나가 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에디슨은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하나 더하기 하나”는 하나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바보 취급을 당하고 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 수학 능력이 전혀 없는 아이로 여겨져서 쫓겨난 것입니다.
그런데 에디슨의 어머니는 그런 에디슨을 가정에서 공부를 시킨 끝에 발명왕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에디슨의 어머니는 “얘야! 선생님은 네가 알고있는 것을 몰라서 그런거란다 힘내라”하고 위로했습니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하나”라는 수학이 일명 “에디슨 수학”입니다.
교회가 바로 에디슨 수학을 배워야 합니다. 에디슨 수학은 고등 수학입니다. 그것을 알면 예수님이 기도하신 것처럼 하나되는 신비를 깨닫게 됩니다. 지난주에 김종민성도님이 출타해서 못왔는데 김종민성도님이 자기 자리에 없으니까 마음이 무척 허전했습니다. 김종민성도님이 벌써 우리와 하나가 된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최후의 만찬 때 기도를 하셨습니다. “저들이 다 하나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여 주소서” 라고 기도 하셨습니다.
즉 “성부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 된 것처럼 제자들도 우리와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셨습니다.
옛날에 프란시스가 운영하는 수도원에는 수십명의 수도사들이 같이 수행을 했습니다. 어느날 3일 금식을 작정하고 모두 금식을 하는데 삼일째 되는날 금식이 끝나면 먹으려고 아침에 죽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몰래 죽을 훔쳐먹었습니다. 솥에있는 죽이 한가운데가 푹 패여서 없어진 것을 본 사람들은 “누가 죽을 훔쳐 먹었어? 이런 괘씸한 사람이 있나! 금식이 끝나면 다같이 먹을 죽인데 금식도 끝나기 전에 죽을 훔쳐 먹다니?” 하면서 열을 올렸습니다.
제자들이 언성을 높이면서 떠들어대자 프란시스가 다가와서 자초지종을 알고나서 “형제들이여 죽을 가져오시요! 다 같이 죽을 먹읍시다!” 하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아직 금식이 안끝났는데 죽을 먹다니요? 그래도 됩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프란스시는 “형제들이여! 그대들이 죽 먹은 사람을 정죄하다가, 받은 은혜를 다 잃어 버리겠소! 그러니 모두 다 함께 죽을 먹고 하나가 되어 은혜를 유지합시다!” 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제자들이 프란시스의 말에 감동을 받아서 금식을 끝내고 죽을 먹고는 다시 화목해 졌다고 합니다. 프란시스는 다 같이 죽을 먹음으로써 죽을 훔쳐먹은 사람의 잘못을 희석시켰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원하시는 공동체입니다. 살아도 같이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다는 마음이 있을때 그 공동체는 하나가 되고 또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에디슨의 수학이 하나님의 수학이고 또한 교회의 수학인 것입니다.
하나가 되는 것은 신비한 일입니다. 교회는 하나가 되어야 비로소 능력을 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전에 제자들이 하나되게 해 달라고 간절한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 내용이 21절에 나옵니다.
“아버지께서 내안에 내가 아버지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하나가 되어야만 세상을 구원하는 사명을 잘 감당 할 수 있기에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교회는 점점더 시기질투와 분쟁과 갈등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작가 “마크 트웨인”은 교회에 대해서 이런 조크를 했습니다.
“나는 개와 고양이를 한 우리안에 넣어 놓았다. 개와 고양이는 처음에는 다투고 싸웠지만 얼마 후에는 곧 서로 적응하고 잘 어울렸다. 이번에는 돼지와 염소를 한 우리에 넣어 놓았다. 그랬더니 그들도 처음에는 서로 싸우고 갈등하면서 지내더니 며칠이 지나자 서로 친구가 되었다.
이번에는 침례교인과 장로교인을 한 우리에 집어 넣었다 그랬더니 그들은 곧 바로 싸움을 시작하더니 갈수록 격렬하게 싸우다가 나중에는 꼴도보지 않는 원수가 되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서로 물고 뜯으면서 싸우는 것을 비아냥거린 조크입니다.
교회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세상이 예수를 믿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하나가 되지 못하면 서로 싸우고 갈등하느라 세상 사람들을 구원 할 수 없습니다.
지난 수요일날 탕자에 대해서 설교를 했습니다. 탕자아들이 돌아 왔을때 아버지는 너무나 기뻐서 소를 잡아서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다 기뻐 하는데 큰아들만은 잔치를 벌이는 아버지에게 원망 불평을 털어놓았습니다.
교회안에도 새신자가 오면 기뻐하지 아니하고 시기질투하는 큰아들같은 교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전건축보다 새신자를 훨씬 더 기뻐 하십니다. 하나님은 웅장한 교회를 천개 짓는 것보다 새신자 한사람이 오는것을 더 기뻐 하십니다. 교회에 새신자 한사람이 오면 하나님은 천국에서 잔치를 벌이고 기뻐 하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교회 공동체가 하나가 되면 감히 이단이 침투하지 못합니다. 교회 공동체가 하나되면 전도의 사명과 선교의 사명 그리고 구제와 봉사의 사명을 잘 감당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교회는 영광도 함께 누리게 됩니다.
오늘 본문 22절에 보면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함이니이다” 라고 증거 합니다.
예수님은 “나를 믿으면 너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언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까? 사랑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죽으심으로서 사랑을 실천하셨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예수님은 죄인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사랑의 극치를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도 그걸 배워야 합니다.
남편이 일찍죽고 외동딸과 함께 사는 엄마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사랑하는 딸이 가출해서 술집에서 남자들의 술시중을 하면서 지냈습니다. 엄마는 딸아이를 찾아가서 술집일을 그만 두라고 권면 했지만 딸아이는 엄마가 찾아오지 못하는 곳으로 가서 계속 술시중을 드는 일을 했습니다.
엄마는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딸을 찾아서 데리고 오고싶었습니다. 엄마는 전단지를 만들어서 딸이 있을 만한 곳을 돌아 다니면서 전단지를 뿌렸습니다. 그 전단지에는 엄마의 사진과 함께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엄마가 너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단다 사랑한다”
엄마가 전단지에 딸의 사진을 넣으면 혹시라도 딸이 그사진을 보고 부끄러워 할까봐서 자기 사진을 인쇄한 전단지를 만들어서 돌렸습니다. 결국 일년만에 딸이 엄마 사진이 인쇄된 전단지를 보게 되었고 엄마 품으로 돌아 왔습니다.
딸은 엄마품에 안겨서 울면서 이렇게 고백 했습니다. “엄마! 전단지에있는 엄마 얼굴을 보는 순간에 가슴이 미어졌어요 나를 위해서 엄마가 대신 수치를 당하면서 나를 찾아 주어서 고마워요”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온갖 수치를 당하면서 우리를 찾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수치와 고통은 내 죄를 대신한 수치와 고통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를 믿었으면 더 이상 예수님을 수치스럽게 하는 일이나 예수님을 망신스럽게 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사랑하고 예수님처럼 희생하면서 섬겨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면 평화가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1절로 5절에 보면 “그러므로 주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은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주도 한분이시오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라고 증거 합니다.
교회의 수치는 분쟁이요, 교회의 영광은 일치입니다. 교회의 아픔은 갈라지는 것이고 교회의 행복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 한사람 한사람은 하나님과 하나되고 그리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일제 치하에서 공부를 하던 유관순이 어느날 이화학당 기숙사에서 밤새도록 울었습니다. 밤에 순찰을 돌던 스크랜톤 선교사가 그 광경을 보고 물었습니다. “너는 왜 밤 잠을 자지 않고 울고 있느냐?”
그때 유관순이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지금 이 나라와 내 조국을 일본에게 뺏겨서 슬픈데 어쩌 울지 않을수가 있습니까? 지금의 형편을 보고 울지 않는다면 이 땅에서 살 자격이 없습니다”
그렇게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울던 유 관순은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감옥에 갔습니다. 그리고 1920년 10월 20일 열 아홉살의 나이로 일본 경찰에 의해서 육시 참사의 처형을 당했습니다.
기독교에는 국경이 없지만 기독자에게는 조국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울면서 기도 해야 합니다.
제 첫사랑은 유관순누나입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유관순누나를 배운후에 유관순누나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유관순누나의 사진을 제 지갑에 넣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제 집사람을 만나서 유관순누나의 사진을 뺏겼습니다.
제 집사람과 데이트를 하는데 제 집사람이 우연히 제 지갑에 있는 유관순누나의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 집사람이 저에게 그 지갑에 있는 여자사진이 누구사진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옛날 애인 사진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제 집사람의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기 시작 했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하자마자 제 지갑에서 유관순누나의 사진을 빼서 버렸습니다. 여자의 질투는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더니 저는 졸지에 사랑하는 첫사랑의 사진을 뺐겼습니다.
그후로 유관순누나는 제 곁에서 멀어 졌습니다. 시기질투가 발동하니까 애국자도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금주부터 북한의 개방과 구원을 위한 40일 특별 새벽기도를 시작합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복을 받은 것은 예수믿고 불철주야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한 주의 종들과 성도들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북한의 개방을 앞두고 북한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때가 찼습니다. 북한이 열리면 모두가 힘을 합쳐서 북한선교에 전념해야 합니다. 그일을 위해서 지금까지 우리 크리스챤들이 70년을 기도해 왔는데 이제 더욱 간절하게 기도할 때입니다. 모두가 동참해서 북한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라가 잘 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세상 모든 나라들은 강대국과 외교를 잘하는 것이 나라가 잘되는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강대국과의 외교에 목을 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사야선지자 당시에 이스라엘은 강대국 애굽과 앗수르의 중간에 끼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 강대국과 외교를 잘 해야만 살아남을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은 친 애굽파와 친 앗수르 파가 서로 갈등하면서 싸웠습니다. 이사야선지자는 친 애굽파에게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거니와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 말을 변치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를 치시리니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사31:1-3)
아울러 이사야는 친 앗수르파 에게도 경고를 합니다. “앗수르는 칼에 엎더질 것이나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니겠고 칼에 삼키울 것이나 여러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닐 것이며 그는 칼 앞에서 도망할 것이요 그 장정들은 복역하는 자가 될 것이라. 그의 반석은 두려움을 인하여 물러가겠고 그의 방백들은 기호를 인하여 놀라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여호와의 불은 시온에 있고 여호와의 풀무는 예루살렘에 있느니라”(사31:8-9)
우리 대한민국도 지금 마치 이사야 시대의 이스라엘과 똑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친미파와 친북파로 나뉘어서 갈등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강대국과 외교를 잘 하는 것이 정치를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잘하는 것입니다.
이사야선지자는 바른소리를 하다가 톱에 짤려 죽었습니다. 이사야의 바른 소리는 강대국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사31:3)
이사야선지자는 오직 하나님 제일 주의로 살자고 외쳤습니다. 강대국 눈치보지 말고 하나님 눈치를 보는 민족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 했습니다.
우리도 그런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소망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는 항상 하나님의 은총이 있습니다. 하나님만 경외했던 다윗은 이렇게 고백 했습니다. “산꼭대기의 땅에도 화곡이 풍성하고 그 열매가 레바논같이 흔들리며 성안에 있는 자가 땅의 풀같이 왕성하리로다”(시72:16)
산꼭대기에 곡식을 심는 농부는 없습니다. 산꼭대기에는 물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메마른 땅이 산꼭대기입니다.
화산이 폭팔한 산꼭대기에 백두산처럼 천지같은 연못이 있는 산도 어쩌다가 있지만 그러나 이스라엘 산에는 물이 있는 산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메마른 삭막한 산입니다.
그런데 산꼭대기의 삭막한 땅에 곡식을 심었는데 풍성한 수확이 임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나라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은총입니다.
땅이 문제가 아닙니다. 사막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면 어느 곳에서나 풍성한 열매가 맺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성안에 있는 자가 땅의 풀같이 왕성하여 진다고 다윗은 증거 했습니다.
이스라엘나라의 성은 거의 다 산꼭대기에 있습니다. 농사는 밖에 나와서 짓습니다. 그리고 밤이면 성문을 닫습니다. 그런데 성 안에서도 범사가 형통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다스리는 곳에는 은총이 있습니다. 배인봉씨의 간증입니다. 아내는 자궁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외동딸은 불치병에 걸렸습니다. 그 와중에 배인봉씨가 문둥병에 걸려서 소록도에 감금되었습니다. 거기서 10년을 사는 동안에 팔다리가 다 썩어서 떨어져 나갔고 시력도 잃었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날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났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소망은 오직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는 비참한 지경에 처했지만 예수님을 영접하고 소망중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이런 유명한 기도문을 남겼습니다.
주님! 시력을 다시 달라고 기도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하늘 나라를 볼 수 있는 영안을 열어 주옵소서.
다시 걷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전도할 수 있는 은혜를 주옵소서
그는 비참한 지경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천국에 갔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절망도 이기게 됩니다.
예수님이 다스리는 나라는 항상 신기한 기적이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 하는 상식을 초월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홀로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하라”(시72:18)
하나님은 능치 못 할 것이 없으신 분입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전기도 없고 냉장고도 없고 얼음도 없는데 한 성도가 온 몸에 열이 펄펄끓어올랐습니다. 40도가 넘자 서서이 죽어 갔습니다. 당장 얼음찜질을 해야만 살릴수가 있습니다.
선교사님이 너무나 안타까와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얼음이 필요합니다. 얼음을 주세요!” 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벌어졌습니다. 기도중에 하늘에서 큰 우박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박으로 얼음찜질을 해서 그 성도가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는 이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중국에서 선교하는 선교사님은 더 신기한 간증을 했습니다. 선교사님이 선교하는 마을에 비가 오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흉년이 들어서 온 마을에 먹을 양식이 없어서 모두가 굶주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선교사님이 성도들과 함께 모여서 합심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우리를 도와 주옵소서!” 날마다 간절하게 기도를 하는데 삼일째 되는날에 엄청난 바람이 불어 오더니 하늘에서 쌀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놀라운 소식이 전해 졌습니다. “몽고지방에 강력한 토네이더가 일어나서 회오리 바람이 쓸고 지나갔는데 엄청나게 큰 쌀 창고가 토네이더에 빨려 올라가더니 중국쪽으로 날아갔다”
알고보니 하나님께서 회오리바람으로 몽고의 쌀을 옮겨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분입니다.
유대인 가정에서는 이런일도 있었습니다. 한 아들이 기도도 하지 않고 하나님을 잘 섬기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군대에 가서 전쟁에 참전하고 돌아온 후에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기도하고 밥을 먹고 충성스럽게 주일을 성수했습니다.
식사때 기도하는 아들의 모습을 본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얘야! 넌 어떻게 그렇게 달라졌냐? 무슨일이 있었냐?”
그러자 아들이 식사하면서 전쟁터에서 있었던 신비한 사건을 간증을 했습니다.
이집트 군대 3개 사단 약 3만명이 이스라엘을 침공했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 전방 진지에는 겨우 200명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명은 견딜 수 있는 데까지 견디면서 후원군이 올 때 까지 생명을 걸고 싸우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사력을 다해서 기관총을 쏘고 고사포를 쏘면서 저항을 했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2개 사단 3만명이 갑자기 후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맨 앞에서 공격하던 1개 대대가 두 손을 들고 항복했습니다. 항복한 그들이 총을 버리고 손을 들고 다가왔는데 이집트 병사들은 이스라엘군의 숫자가 200명밖에 안되는 것을 보고 모두가 놀랐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의 원군이 저 멀리서 다가 왔습니다. 그리고 이집트 병사들을 모두 포로로 잡았습니다.
항복한 이집트 병사들이 물었습니다. 우리가 항복할 때 당신군대는 왜 200명 밖에 없었습니까? 그 많은 군사들은 다 어디로 간겁니까?”
그때 200명의 이스라엘 병사들은 “우리는 200명이 당신들을 막았습니다 여기에는 우리 200명 밖에는 없었습니다”
알고 보니까 하나님께서 천군천사를 동원해서 적들을 막았고 적군은 그 엄청난 천군천사를 이스라엘 병사들로 착각했습니다. 그래서 200명이 3개 사단을 이기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마치 기드온의 300군사와 같은 기적이 벌어진 것입니다.
아들은 그 놀라운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독실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에서는 이런 기이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인도의 성자 타고르도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내가 마음이 답답해서 괴로워 할 때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나에게 오셔서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내가 찬송할 때 하나님은 평강을 주셨습니다. 내가 아플 때 하나님은 나에게 오셔서 치료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이 복을 내려 주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아들 솔로몬을 왕으로 세울 때 가장 먼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만이 견고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에 축복이 임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에 은혜와 기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72편18절에서 “홀로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하라”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의 생애는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다윗의 고백처럼 되어야 합니다. 내 잔이 넘쳐서 다른사람들의 잔까지 채워주면 더 신나는 삶이 됩니다.
요즘 우리나라국민의 86퍼센트가 쩔쩔 매는 삶을 살고 있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모시고 살면 항상 잔이 넘칩니다. 뉴욕 맨하탄 슬럼가에 갔더니 벽에 성경을 써 놓았는데 성경을 변질시켜 놓았습니다.
돈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돈이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마약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마약이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심판받아 마땅한 짓입니다. 예수님을 목자로 모시고 사는 사람만이 진정한 행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당부와 마지막 기도는 “하나가 되게 하소서!”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 되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가 되어야 하나님의 영광을 주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려면 하나님과도 하나가 되고 성도들도 한마음 한뜻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임합니다.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9살된 한 거지 소년이 신문을 팔러 다녔습니다. 이 소년이 대궐같은 부잣집 앞에서 자기도 모르게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이런 집에서 살아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집은 재벌중에 재벌인 로우리의 집이었습니다.
마침 로우리가 집에 있다가 초인종이 울리자 누구냐고 물었는데 소년은 신문을 판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출근하면 신문을 볼 수 있지만 로우리는 문을 열고 신문을 하나 샀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로우리에게 “아저씨, 아저씨에게는 아들이 있으세요?”하고 당돌하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로우리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직 자녀가 없단다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단다” 그러자 이 아이가 “아저씨 그러면 저를 아들로 삼아 주세요 저는 아저씨의 아들이 되고 싶어요”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로우리는 그 아이를 물끄러미 쳐다 보다가 집안으로 들어가서 아내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여보! 아이를 하나 키우고 싶지 않소?”
그러자 아내도 “아이가 갖고 싶어요”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로우리가 아내에게 “우리 밖에 한번 나가 봅시다 괜찮은 아이가 하나 와서 대문앞에 와 있거든”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두사람이 나가서 이 아이를 보자 신물팔이 아이가 로우리에게 “아저씨, 만약에 저를 아저씨의 아들로 삼아주시면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아저씨에게 드릴께요”합니다.
로우리는 그 아이에게 “아빠 엄마가 계시냐?”하고 물었습니다. “아뇨! 두 분 다 돌아 가셔서 안계세요”
“그럼 어디에서 자냐?” “그냥 아무데서나 자요”
그러자 로우리의 아내가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여보! 우리 이 아이를 아들로 길러요 똑똑하네요” 그래서 로우리 부부가 그 소년을 아들로 받아 주었습니다.
이 아이는 약속을 지키려고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로우리부부에게 주었습니다. 그 아이가 가진 것은 자기가 팔던 신문 20부와 신문판돈 오천원이었습니다.
로우리는 “우리는 그돈과 신문이 필요 없단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단다 이젠 우리의 모든 것이 다 네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 아이처럼 양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소유인 하늘나라가 기업으로 주어집니다. 온갖 좋은 선물을 거저 받습니다. 죄사함도 받고 구원도 값없이 받습니다. 엄청난 선물을 거저 받게 됩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은 한가지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면 나라와 민족도 살아나게 됩니다. 요셉 한사람이 나라를 구원한 것처럼 하나님은 한 사람을 보십니다. 그리고 한사람 한사람이 하나님과 연합하고 서로가 하나되면 하나님의 기적이 임하게 됩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가 하나님과 하나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면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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