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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9년1월13일주일 삼상16장6-13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그리운시냇가 2019. 1. 14. 11:24

어제 이상천목사님딸 은화양의 결혼식이 있어서 서울에 다녀 왔습니다. 이제는 서울에 다녀오는 일이 만만치 않습니다. 돌아올때 서울에서 출발해서 진주쯤 오면 피곤해서 비몽사몽간에 운전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남해로 오면 올수록 점점 더 마음이 기쁘고 쌩쌩한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도중에 시험에 들만한 일이 있었지만 성령께서 은혜를 주셔서 잘 마무리를 짓고 행복한 마음으로 돌아 왔습니다. 기도해 주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 맥킨지(Mckinsey&Co)는 작금의 경제 전쟁을 가리켜 그 핵심은 인재 전쟁이다”(The war of for talent)라고 말했습니다. 120개 기업 13,000명의 임원을 대상으로 인재 활용 사례를 5년에 걸쳐 연구를 했는데 연구 결과, 우수한 인재 발굴 및 유지가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사안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전경련이 삼성전자. LG전자. SK텔레콤. 현대자동차 등 국내 굴지의 11개 기업을 상대로 기업이 원하는 사람을 조사 발표했는데 기업이 원하는 사람의 공통점은 네 가지였습니다.


첫째, 개인 역량, 둘째, 국제 감각, 셋째, 원만한 대인관계, 넷째, 올바른 가치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사람을 뽑을 때는 어떤 사람을 선택하십니까?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의 특징이 오늘 본문 사무엘상16장7절에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하나님은 외모보다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마치 엑스레이와 같습니다. 뼈가 부러지거나 금이 가거나 척추가 휘었을 때 의사는 뼈의 정확한 상태를 보기 위해서 엑스레이 촬영을 합니다.


어떤 아름다운 여자가 엑스레이를 찍으러 가는데 얼굴에 화장을 하고 좋은 옷을 골라입고 향수를 뿌리고 엑스레이를 찍어도 그 여자의 하얀 피부나 화장이나 비싼 옷은 하나도 안나오고 앙상한 뼈들과 해골만 나옵니다. 엑스레이 앞에서는 외모의 화려함이나 지식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엑스레이는 사람의 뼈를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엑스레이처럼 사람의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들여다 보십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사람이 아무리 훌륭하다해도 다른 사람의 속을 들여다 보지는 못합니다. 예를 들어서 선지자 사무엘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최초의 예언자요 사울을 왕으로 세운 하나님의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선지자가 사울을 왕으로 세울 때 사울의 외모에 반했습니다. 삼상92절에 보면 사무엘이 이렇게 증거 합니다.


기스가 아들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사울이요 이스라엘 자손중에 그 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 하더라(삼상9:2) “사무엘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의 택하신 자를 보느냐. 모든 백성 중에 짝할 이가 없느니라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만세를 외쳐 부르니라(삼상 10:24)


사무엘의 평가에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외모가 준수했던 사울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영이 변질됩니다. 교만과 변덕과 악령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대적하고 다윗을 미워합니다. 그래서 결국 사울왕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습니다.


사울왕이 버림을 받자 사무엘은 슬픔에 잠겨 괴로워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이 이런 실패의 경험을 한 후에도 선지자 사무엘이 외모를 보는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더 이상 슬퍼하지 말고 사울을 대신해서 새로 왕이 될 사람을 찾아서 이새의 집으로 가라라고 지시를 합니다. 이새는 모압여인 룻의 후손입니다. 그런데 가문이 변변치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외모와 인품이 뛰어났던 사울을 왕으로 택했지만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는 사람의 본질적인 자격이 아니라는 사실을 사무엘로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또 외모를 봅니다. 6절을 보면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그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사무엘은 여전히 이새의 집에서 첫째아들 엘리압의 외모에 탄복해서 그가바로 하나님이 택한 일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삼상16장6-7)

사무엘선지자가 아무리 경건하고 풍부하고 위대한 선지자라 하더라도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노련한 노선지자 사무엘도 사람의 속을 들여다 보지는 못했습니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겉치장에 지나친 관심을 기울입니다. 최근에는 남자들에게도 성형수술이 유행한다고 합니다. 취직이나 혼인을 위해서 좋은 인상을 주려고 남자도 성형수술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속사람이 더럽고, 교만하고, 하나님 앞에서 죄만 가득하면 그런 사람은 아무데도 쓸데가 없습니다.


대저 높이는 일이 동에서나 서에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75:6-7)


결정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선택하십니까? 10절 이하에 보면 이새가 그의 아들 일곱을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이새의 아들인 엘리압이 지나가고 나머지 여섯 아들도 지나갔지만, 하나님은 고개를 가로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누구의 시선도 끌지 못했던 막내아들을 기다리셨습니다. 그가 올 때 까지 잔치는 시작될 수도 없었습니다.


막내아들 다윗이 도착했는데 그를 보니까 그는 피부가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다웠습니다. 어찌보면 사내 대장부 다운 모습은 없고 감성이 풍부한 문학도나 시인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니 누가 저런 감성적인 소년이 철갑으로 무장한 블레셋 군대를 무찌를 지도자가 되리라고 꿈엔들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이 사람이 왕이 될 사람이니 그에게 기름을 부으라”(12) 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가 바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왕인 다윗입니다. 1


3절에 보면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라고 증거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성령에 크게 감동되었습니다(13).


사람들은 겉을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다윗은 형들의 멸시와 아버지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양을 치면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평소에도 하나님을 만나고 있었고 하나님을 찬양했고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그는 비록 형들보다 키가작고 감성이 풍부한 남자였지만 그러나 그의 영혼은 성결했고 주님의 신부가 되기에 합당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중심을 보시고 그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속사람을 보십니다.


지난주에 성좌산기도원에서 신년축복성회가 있었습니다. 제 집사람과 정봉임권사님,박선엽집사님,최예진집사님,김인숙집사님이 집회에 동참하게 되어서 저는 기도원에 성도님들을 모셔다 드리려고 기도원에 갔습니다.


그런데 도착 했더니 노희정전도사님이 기다리고 계시다가 저에게 목사님!기도원의 강사 목사님이 목사님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그러니 잠시 기다리세요합니다.


그래서 제가 차를 주차하고 기다렸더니 한 목사님이 오셔서 인사를 하시면서 “목사님 같이 들어 가시죠합니다. 그래서 따라 갔더니 강사 목사님의 방입니다. 들어 갔더니 세분의 목사님이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저를 마중나온 그 목사님은 청주에서 목회하시는 신현찬목사님이신데 목사님이 저에게 목사님! 목사님을 꼭 뵙고 싶었습니다. 저는 성좌산기도원의 강사인 신현찬목사입니다하고 자기 소개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옆에 계신 목사님들도 소개해 주셨습니다.


신목사님은 매주 성좌산기도원에 오셔서 수요예배를 인도하시는 목사님이었습니다. 신목사님은 저에게 성좌산기도원에 오셔서 설교를 하신 강사 목사님들 중에서 김다윗목사님이 은혜스럽게 말씀을 전한다는 소식을 제가 들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하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깜짝 놀라서 저는 많이 부족한 종입니다. 허물과 죄로 얼룩진 종입니다. 죄가 많아서 은혜를 많이 주셨나 봅니다. 부족한데도 모두들 저를 그렇게 귀하게 여겨 주신다니 감사하네요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신목사님은 저에게 성좌산기도원의 목요집회 강사 목사님이 인천에서 오셔서 설교하시는 장상길목사님이신데 전에는 장상길목사님께서 못오시면 자기가 지명한 목사님이 오셔서 설교를 했는데 이제 부터는 박훈식목사님이 강사 목사님을 정하신다고 하시면서 목사님이 은혜스럽게 말씀을 전하니까 모두가 목사님을 좋아 하는것 같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는 그 말을 듣고 감개가 무량 했습니다. 나같이 시골 구석박지에서 유배목회를 하고있는 목사의 간증과 설교를 듣고 많은 분들이 은혜를 받았다는 말에 힘이 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오래전에 나에게 주신 예언의 말씀이 있었는데 그 예언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런데 집회 시간이 다 되자 두 목사님이 예배당으로 갔는데 신 목사님은 갈 생각을 안하고 저에게 이것 저것을 물어 보시다가 저에게 집회에 참석하자고 저를 강권하셨습니다. 저는 성도님들을 내려주고 바로 남해로 돌아오려고 했는데 신목사님이 저를 강권해서 데리고 가는 바람에 제가 할 수 없이 그날 저녁집회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그동안 성좌산 기도원에서 집회를 한 중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저는 맨 뒤에 앉아서 지금이라도 도망갈까? 그냥 집회에 참석할까?” 하면서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배가 시작되고 순서에 따라서 박훈식목사님이 시무하시는 주향한 교회의 성도님들이 나와서 율동을 하면서 찬송을 부르는데 얼마나 재밋고 은혜스러운지 그 찬송에 마음을 뺏겨서 결국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신년부흥성회 강사 목사님은 김종원목사님이셨는데 집회중에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목사님께서 사도행전927절 말씀을 띄우라고 지시를 해서 자막 띄우는 분이 성경구절을 띄웠습니다. 그래서 27절 앞부분이 화면에 보였습니다. “바나바가 바울을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이 부분은 바나바가 사울을 데리고가서 사도들에게 소개를 시키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이 자막이 딱 뜨자마자 저는 신현찬목사님이 저를 예배당으로 데리고 온 일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비하신 일이었구나 라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성좌산기도원에 처음 왔을때 장상길목사님이 저를 데리고 원장님께 기도를 받게 하신것도 특별한 은혜였지만 그날 신목사님이 저를 데리고 집회에 참석하게 하신것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생각이 들면서 온몸에 성령이 임하기 시작 했습니다. 


제가 스무살 때 성령님이 임해서 주체할수 없이 부르짖으면서 방언이 터지고 눈물 콧물 흘리면서 은혜를 받던 그날처럼 성령님이 임해서 진동이 오기 시작하는데 제 옆에는 신목사님과 성도님들이  앉아 계시고 뒤에는 전도사님들과 같은 방에 계시던 목사님들이 앉아 계셨습니다. 


집회는 시작 되어서 모두들 조용한 가운데 설교를 듣고 있는데 저에게는 성령충만이 임해서 진동이 오는데 그걸 절제 하느라 한시간동안 죽도록 고생을 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벌어 졌습니다. 김종원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는데 저는 성령이 임해서 눈을 감고 참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갑자기 바울사도가 다메섹으로 가다가 예수님을 만나서 거꾸러지는 장면이 제 눈앞에 환상으로 환하게 보여졌습니다.


저는 너무나 놀래서 눈을 감고 온 몸에 임한 진동을 참으면서 그 영화로운 광경을 지켜 보았습니다. 하늘에서 나타나신 예수님은 강렬한 빛과 함께 서 계셨는데 말로는 설명할수 없는 주석같은 강렬한 빛 속에 서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낙타 세 마리가 보였고 사람들도 보였습니다. 바울사도가 낙타 옆에 쓰러져 있는데 예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그런데 예수님이 바울사도에게 하신 말씀이 마치 저에게 하시는 말씀처럼 들려 왔습니다. 그것도 점점 크게 들려 왔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회개하기 시작 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핍박한 사람이었구나!” “내가 아내를 핍박한 사람이었구나!”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을 핍박 한 사람이었구나!”


저는 눈물과 함께 통회자복을 하고 싶었지만 설교중이라 통회자복을 할 수가 없어서 절제하고 절제 하면서 회개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가 핍박한 사람들을 보여 주셨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제가 잘 아는 여자였습니다. 그 여자에 대해서는 설명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두 번째로 나타난 사람은 제 집사람이었습니다. 제 집사람이 의기 소침해서 서 있는데 하나님은 즉시 저에게 네가 네 아내를 핍박했다 라고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나님앞에서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제 아내를 핍박했습니다. 용서하여 주세요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를 했습니다.


온몸은 떨려오고 눈물은 흐르고 마음같아서는 소리를 지르면서 통회자복을 해야 하는데 설교중이니 소리도 못지르고 저는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환상속에서 회개와 참회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김종원목사님은 설교중에 지름길이 있습니다 다소로 가지말고 지금 당장 회개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서 사는 길입니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저는 말씀을 들으면서 계속해서 회개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회오리바람같은 바람이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제 주위를 빙빙 돌다가 사라 졌는데 또 한사람이 보였습니다. 그 사람도 여자인데 그 여자는 밖에 나가서 어떤 사람을 만나서 바람을 피우고 들어왔습니다. 그 여자가 바람을 피우고 들어오는데 온 몸과 옷이 얼마나 더러운지 아주 추하고 더러워서 꼴도 보기 싫었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온 몸에 똥을 발라놓은 것처럼 더러웠습니다. 저는 냄새나고 더러운 여자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서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예수님이 보이는데 처음에 보았던 다메섹의 예수님이 보였습니다. 목사님이 설교를 하는 동안에 공중에 서 계시는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모습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저에게 시선을 고정하시고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저는 부끄럽고 송구스러워서 몸둘바를 모르고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렇게 설교가 진행되는동안에 예수님은 저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이어서 바울이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아나니아에게 안수받는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안수를 받는데 예수님께서 아나니아에게 하신 말씀이 들려 왔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9:15)


저는 그 말씀을 듣는순간 성령에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기에 감전된것처럼 성령에 감동되어 사시나무 떨 듯 떨림이 왔는데 떨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참았습니다. 아나니아가 안수를 하는데 신기하게 제가 바울사도가 누워있는 그 자리에 누워 있었고 제가 아는 한 사람이 저에게 안수기도를 하는 광경이 클로즈업 되었습니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면서 혹시라도 내가 떨거나 소리가 나오면 예배를 방해할까봐서 이를 악물고 참았습니다. 그런데 예배중에 김종원목사님이 "여러분 손을 가슴에 얹고 회개하면서 주님의 보혈을 기대하세요"라고 말씀하시길래 제가 가슴에 손을 얹고 "주님 보혈로 저를 씻겨 주세요"하고 기도를 했는데 갑자기 보이지 않는 주님의 손이 저를 만지기 시작 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예수님의 손이 머리부터 저를 씻어 주시는데 온 몸을 다 깨끗하게 씻겨 주셨습니다.


저는 또한번 신기하고 놀라운 체험을 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주님의 손이 제 몸을 씻겨주신 후에 제 몸을 들여다 보니까 마치 제가 투명인간처럼 깨끗했습니다. 저는 너무나 기뻐서 울고 또 울면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집회가 끝난후에 저는 저를 불러서 집회에 참석하게 해 주신 신현찬목사님에게 "오늘 목사님께서 저를 초대해 주셔서 제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주님은 저를 다시 부르셨습니다. 20대에 한얼산에서 철야기도를 하는데 성령님께서 임하셨습니다. 그때 주신 말씀을 그날 저녁에 다시 주셨습니다. 저는 회개하고 또 회개 하면서 한시간동안 성령의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회개 하면서 한시간을 지내고 났더니 진동과 눈물이 멈추고 평안과 안정이 찾아 왔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닳았습니다. 바울사도가 예수님을 만나서 그동안 잘못 걸어온 길을 돌이킨 것처럼 저도 잘못을 돌이키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복음 전하는 일에 올인하라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전에 하나님은 저에게 영분별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기도를 하거나 안수기도를 하면 기도를 받는 사람의 영혼이 어떤 상태인지를 정확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죄가 있는 사람은 죄를 보여 주셨고 주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큰 위로와 축복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앞에서 죄를 짓고, 오랜 세월동안 목회하느라 시달리고, 남해에서 사는 십오년 동안도 말로 할수 없는 환란과 고난을 당했고 그리고 이런 저런 일로 죄를 지으면서 살고 또 세상 세파에 시달리다 보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영분별의 은사와 병고치는 은사가 소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은사가 다시 임하기 시작 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면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가 느껴 졌습니다. 기도하면 더욱 강하게 영적이 상태가 느껴 졌습니다.


그동안 우리교회 성도들이 저에게 주셨던 은사를 다시 회복시켜 달라고 열심히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은사가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중요한것은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라는 주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앞에서 믿음생활을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주님이 보시기에는, 변화되기 전에 형편없었던 바울처럼 저도 형편없는 영성과 신앙으로 지내 온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도 사과하고 제가 상처를 준 사람에게도 사과를 했습니다. 교사생활을 할 때 제자들을 핍박한 것을 회개하고 군대생활을 할 때 본의 아니게 핍박한 일도 회개하고 목회를 하면서도 교만한 마음으로 그리고 목사의 권위로 성도를 핍박한것도 회개 했습니다.


집에서 키우던 개가 하도 말을 안들어서 한번 심하게 때린적이 있는데 그것도 회개를 했습니다. 저는 회개하다가 아나니아가 바울사도에게 안수한 후에 바울에게 선포한 말씀을 기억해 냈습니다.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바울사도는 평신도인 아나니아를 통해서 성령충만을 받고 또 사명을 회복했습니다. 겸손하게 낮아지라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는 기도 였습니다.  


예수님은 다메섹에서 바울사도를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바나바를 보내서 바울사도를 데려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아나니아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깨닫게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예수님께로 인도해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세상 죄악가운데 살다가 지옥불에 들어가서 영원토록 고통속에서 지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를 강권 하셔서 예수믿게 하시고 사명을 일깨워 주시고 잘못 갈 때에는 돌이켜 주님께로 나아오게 하시고 회개의 열매를 맺고 하나님이 쓰시는 일군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금번에 성좌산기도원에 가서 엄청난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다시 부르시는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그동안 잘못 살아온 죄를 회개할 수 있는 기회도 주셨습니다. 그리고 열방에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사명도 깨닳았습니다.


하나님은 허물 많고 부족한 저를 이곳 남해 유배지에서 연단을 받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10년 연단의 기간을 다소에서 보냈습니다. 저도 15년동안 연단의 기간을 가졌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저를 씻겨 주시고 저의 영안을 열어서 다시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케 하셔서 복음 전하는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게 하실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선물을 받으면 포장지나 선물의 크기로 선물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느냐를 보고 기뻐합니다. 포장지는 아무리 예뻐도 쓰레기 통에 버리거나 모아 두었다가 다시 포장하는데 쓸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속에 있는 선물의 알맹이 입니다. 하나님도 우리속에 있는 속사람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중요한 것은 외모가 아닙니다. 사람의 시선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발의 때는 양말로 가릴 수 있지만, 마음의 때는 하나님앞에서 가릴 수 없습니다. 죄의 때를 씻어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군으로 쓰임 받을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고 사람을 택하십니다.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지만 그가 왕이 되기 까지는 14년이 걸렸습니다.


미국의 20대 대통령 가필드는 별명이 꿈의 사람 이었습니다. 그는 가난했던 소년 시절에 남의 밭에서 힘들게 일하면서 지냈습니다.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 하루는 신문배달 소년에게 아주 친절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친구는 가필드에게 신문배달하는 소년에게 그렇게 까지 친절할 필요가 있나?”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가필드는 하늘을 쳐다 보면서 그 소년의 가슴에 무엇이 감추어져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지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장차 이 소년이 대통령이 될지 목사가 될지 모르기에 지금부터 그 소년을 귀하게 여긴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소년 다윗에게 왕에게 붓는 기름을 부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미래를 바라보시면서 그를 택하신 징표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의 독특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보십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이루어진 것처럼 보십니다. 미래를 현실처럼 보십니다.


성좌산기도원의 최양자원장님은 미래를 선포 하십니다. 미래를 보시고 선포하시는데 그대로 이루어 집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행한 것처럼 선포하면 다 이루어 집니다. 마치 조선시대 중종 때 영의정 정광필이 소리없는 데서 듣고 형상이 없는 것도 본다라고 고백한 것처럼 최양자원장님은 대단한 통찰력과 앞을 내다보는 예지를 가지고 그렇게 예언을 합니다.


하나님은 만왕의 왕 이십니다. 세계와 영계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다 꿰뚫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평범한 소년목동인 다윗을 왕으로 대우하셨습니다. 미리 기름부어 세우셨습니다.


그 이유는 너는 장차 왕이 될것을 기억하고 어려움을 이겨나가라라는 뜻에서 일찍이 기름부어 세우셨습니다. 이제부터 거짓된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승리하라는 당부입니다.


13절에 보면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이 얼마나 감격적인 말입니까? 하나님은 다윗에게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다윗은 그 이후로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다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서 늘 찬송하면서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선택하자 다윗도 평생 하나님 편이 되어 살았습니다.


다윗은 양치는 목동으로 살다가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다윗은 여전히 양치는 목동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양을 치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심어주신 원대한 꿈이 자라나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그들은 탈출한 노예 떼거리들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19:6)


이스라엘 자손이 이 약속의 말씀을 들었을때 얼마나 귀를 의심하면서 놀랐겠습니까? 그들이 애굽에서 한 일은 노예로 지내면서 평생동안 애굽의 거대한 피라밋과 신전들과 왕궁들을 건축하는 중노동 일을 했습니다. 


신전이나 왕궁이 완공되면 거기에는 화려하고 위엄있는 의복을 갖추어 입은 왕과 제사장들이 통치합니다. 특히 제사장들은 바로왕의 권력 핵심에 있어서 모든 것을 조언하고 주관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노예로 지내면서 그런 모습을 친히 목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백성과 이스라엘 나라를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겠다고 하셨으니 놀라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이런 감격은 목동인 다윗으로 이어졌고 심지어 우리도 왕같은 제사장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하리로다” (5:10,20:4,6)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우리의 현실이 아무리 초라해도 하나님이 바라 보시고 은혜를 베푸시면 반드시 은혜와 축복이 임합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은 얼마나 추하고 부끄럽고 수치스러웠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녀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주님은 그녀의 절망적인 현실을 뛰어넘어서 그녀를 순결한 백지처럼 죄를 사해 주시고 그녀의 아름다운 미래를 열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녀를 거듭나게 하시려고 진리를 선포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새로운 순결을 주시려고 그녀 대신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엄청난 값을 치르시고 그녀를 사셨습니다. 그녀의 미래를 사신 것입니다. 그래서 죄사함 받은 그녀는 주님께 죽도록 충성하는 믿음의 여인이 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면 어떤 죄도 사함받고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왕같은 제사장처럼 존귀한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미래를 현실에서 보십니다. 그리고 미래를 만들어 가십니다.


사람도 무엇을 보는가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물이 끓는 주전자를 무심하게 쳐다본 사람은 수도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왓츠(Watts)는 끓는 주전자를 보면서 거기서 증기기관차를 만들어 냈습니다.


번개를 보고 무서워 한 사람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프랭클린은 번개에서 어둠을 밝힐 전기를 보았습니다.


조각가 로뎅은 한 바위 앞에 섰습니다. 로뎅은 그 돌덩어리에서 인생을 깊이 생각하며 지옥을 고민하는 한 젊은이를 보았습니다. 그 돌덩어리는 로댕에 의해서 인류 최대의 명작 생각하는 사람이 됩니다.


쥐를 본 사람들은 쥐를 다 징그럽게만 생각했지만 그러나 디즈니는 쥐를 보고 미키 마우스라는 위대한 만화를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본다고 다 똑 같이 보는 것이 아닙니다. 평범한 현실 속에서 아름다운 미래를 보기도 하고 깊은 생각속에서 놀라운 혜안으로 기적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하나님도 추하고 더러운 우리를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라보시고 부르셔서 성령의 기름을 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초라한 목동인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시면서 그를 왕처럼 여겨 주셨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후에도 다윗은 여전히 양을 쳤고, 형들은 건장한 신체로 일을 하면서 다윗을 심부름이나 하는 동생으로 여겼습니다.


형들은 다윗이 자기들 보다 더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형들은 전쟁터에서 다윗을 아주 우습게 여기고 함부로 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름부음 받은 다윗에게 특심한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그래서 때가 차매 다윗으로 하여금 골리앗을 물리치게 하시고 위대한 왕으로 만드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나같은 죄인을 불러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역 복음화와 북한선교 그리고 세계 복음화의 원대한 사역을 우리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시면 어디든지 가서 복음을 전하는 복음의 전사가 되어야 합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우리들을 그대로 두시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가장 비싼 값을 치루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과 맞바꾼 존재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이 별볼일없는 우리를 귀하게 보신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시선으로 이웃을 보고 이웃을 구원하고 이웃을 선대하고 이웃을 죄악에서 불러내야 합니다. 그 사명을 우리가 받은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도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이웃을 바라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출처 : 보물섬남해세광교회
글쓴이 : 행복을 주는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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